- 권오민 지음 《불교학과 불교》(민족사, 2009)

권오민 지음
《불교학과 불교》
(민족사, 2009)
고대 인도철학사에서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토대는 여러 학파 간의 논쟁에서 비롯되었다.

서로 간의 논쟁은 한 학파의 정체성을 수립하거나 정통성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심지어 학파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는 역설적으로 학파 간에 서로 영향을 미쳐 상호 보완의 발전 계기를 마련했다고 보여진다.

대론에 임하는 논사들은 자신이 속한 학파의 사상을 아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학설과 사상에도 일부 연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외면적으로 상대 학파의 학설을 논파한다는 공격적인 입장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상대 학설의 이해와 나아가 수용이라고 하는 개방적인 면모도 함께 갖춘 것이다.

인도라는 전통을 지닌 토양에서 탄생한 불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이나교를 비롯하여 외도라 불린 육파철학 등과 함께 인도철학 사상을 풍부하게 장식하며 발전해왔다. 불교가 인도 북부를 중심으로 인도 전역에 걸쳐 영역을 넓혀가던 이 시기에는 자신이 속한 학파 혹은 교단을 지키기 위해 학문적, 사상적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논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타당한 논거를 수집하기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인도에서의 불교는 부파의 분열은 물론 불교가 아시아 전체에 전래되면서 대승과 소승으로 나뉘고, 중국에 전래되어서는 교종과 선종, 남종과 북종의 대립 등 다양한 논쟁 속에서 자신만의 다양한 해석과 사상들을 쏟아내며 질적,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이와 같이 수많은 논쟁과 대립은 논쟁을 통해 외도와 이단으로 불러온 인도의 다양한 사상들까지도 자양분으로 흡수하며 발전해온 불교가 우리나라로 전래되어 점차 그 빛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있다.

초기불교의 진리인 4성제(四聖諦)는 반야공관(般若空觀)에 의해 방편설로 전락하고, 공관 역시 유식(有識)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으로, 유식은 진여일심(眞如一心)으로 이해되기도 하며, 이 모든 교학체계의 사상들은 본질과 목적이 동일시되어 방편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불교학과 불교》의 저자는 대승(大乘)만이 옳거나, 실천 없는 이론만이 전부가 아니듯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한국불교는 다양한 불교 연구 역량을 축적하고, ‘내일의 불교’로 나아가기 위해서 능동적인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사(?)가 된다.

이 책은 저자가 대학에서 불교와 불교철학을 강의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의 불교학’이라는 주제로 쓴 글들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불교와 불교학’에 대한 여러 방면의 주장과 논의를 통해 저자 자신이 현대를 살아오면서 느낀 회고와 전망,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전체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 저자의 주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는 오늘 우리 불교에서는 ‘깨달음’만을 강조할 뿐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에 관한 교학(철학)적 반성이 결여되었음을 말한다.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에 따라 불타의 가르침에 대한 연구의 목적과 방법이 다양해지고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2장 ‘교학과 종학’에서는 한국사회의 불교도를 지도할 중추적인 교육기관인 불교 강원의 교과과정에 대한 의견이다. 평소 저자가 보고 느낀 점을 서술하여 교과과정의 세목과 그 유래, 선종과 성종(性宗)에 치우친 데 대한 비판과 대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제3장 ‘불교학과 불교’에서는 불교는 철학적 반성적 탐구에서 비롯되었고 선정(修慧)을 통해 확증된 것으로, 불교 전통에서의 ‘믿음’이란 이러한 확증(혹은 확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와 불교학은 다른 것이 아니다. 불타의 말씀은 그의 깨달음을 근거로 다양한 가설과 방편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그 형식에 맞추어 일정한 이론 체계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따르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제4장 ‘뇌허 김동화의 불교학관’에서는 전통 불교의 종합과 재정리를 통해 불교(학)의 부흥을 꿈꾼 뇌허 김동화 선생의 의견을 제시하고 그에 저자의 의견을 부연하고 있다. 제5장 ‘우리나라 인도불교학의 반성적 회고’에서는 인도불교의 중요성에 비해 그에 대한 연구 성과는 현실적으로 부진함을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불교학’을 실현하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였다.

제6장 ‘인도불교사 연구 단상’에서는 인도불교사에 관한 한 선진(일본) 학계의 새로운 학설을 시의에 맞게 수용할 만한, 비판적으로 검토할 만한 학문적 토대조차 마련되지 않았음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제7장 ‘불교의 물질관에 관한 단상’에서는 인간 삶의 바탕이 되는 물질(色)과 현상에 대한 불교적 통찰 없이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을 외치는 것은 공허하며, 의천(義天)이 주장한 성상겸학(性相兼學)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제8장 ‘연기법이 불타 자내증이라는 경증 검토’와 제9장 ‘4성제와 12연기’에서는 불타의 깨달음이 과연 연기법인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연기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초기불교에서 나타난 사성제와 업, 윤회의 이론보다 연기에 치중한 경전 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10장 ‘5종성론에 대하여’에서는 5종성론(五種性論)을 둘러싼 여러 논의를 통해 불교학의 제문제는 어느 한 교의나 종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오해와 반목으로 굴절되어 변용된 사례를 보여준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저자는 불교학과 불교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수많은 방편으로 다양하게 전개된 불교학보다는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불교만으로 한정하여 오로지 현실의 불교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 우리나라의 불교가 ‘깨달음’만을 강조할 뿐 ‘무엇을, 어떻게, 왜 깨달아야 하는가’에 관한 교학(철학)적 반성이 결여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에 따라 ‘왜’ ‘어떻게’ 깨달아야 할지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로 시작하는 저자의 투정(?)은 한국 불교가 인도불교를 비롯하여 다양한 교학체계를 갖추지 못함에 대한 통탄에 가깝다.

따라서 현재 이 땅에서 불교를 배우고 연구하는 불교학도로서 불교학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인도불교 사상사에 나타나는 제학파의 논사들이 제시한 수많은 대론의 논거를 확보하고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더불어 그들이 어떻게 그런 논거들을 제시하였는가에 대한 다양한 방법에 대한 접근도 필요할 것이다.

불교의 유구한 역사 속에는 불교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인도에서뿐만 아니라 티베트와 중국, 한국, 일본에 전래되면서 불전의 번역과 그에 따른 해석적인 연구를 통해 수평적 확장을 거듭했다. 그중에는 독창적인 학설이 제시되기도 하고, 선승의 한마디 할(喝)과 방(棒)의 가르침이 불교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이 책의 주된 목적은 저자가 거듭 밝히고 있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불교를 보다 정확하고,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해하자는 것이다. 인도불교에서부터 시작되는 초기, 아비달마, 대승공관, 유식, 여래장, 밀교를 비롯하여, 이에 근거한 화엄의 소승교, 대승시교, 대승종교, 대승돈교, 대승원교라면, 천태의  장교, 통교, 별교, 원교를 이에 따라 계통적으로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이해하자는 것이 이 책을 저술한 이유일 것이다. 10개의 별장(別章)을 나누어 다양한 주제로 구성하고 있지만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현재 우리의 지식 체계에 갇혀 있는 불교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 불교와 불교학 발전의 디딤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회고와 반성의 자성을 요구하며 한쪽으로 치우친 불교가 아닌 과거 선현들의 가르침과 사상을 널리 수용하고 이해할 필요성을 환기시킨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불교학이 나아갈 길에 대한 저자의 반성과 다양한 문제 제기는 그 명맥을 이어가야 할 신진 불교학자들에게 불교학을 연구하는 대장정에 지침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

양경인 /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 박사과정 수료.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불학연구소 상임연구원, 동국대학교 외래강사.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