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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전법에 나타나는 장애요인 / V.A.구나세카라
―민족불교와 명상불교를 중심으로 서양의 단체화된 불교 고찰
[41호] 2009년 12월 01일 (화) V.A.구나세카라 / 장은화 역 ehj001@dreamwiz.com

1. 몇 가지 예비적 논점

불교란 무엇인가?

본고는 불법을 서구에 전파할 때 나타나는 몇 가지 장애요인1)을 다루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의 성격에 대한 몇 가지 기본적인 문제, 그리고 서양불교의 단체화된(institutional) 형태를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불교란 고타마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이른다. 그는 붓다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불교도란 그의 가르침이 정당하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이다.

불교도 자신들은 그의 가르침을 빨리어로 dhamma, 혹은 몇몇 불교학파에서는 산스크리트어로 dharma라고 칭한다. 이 말이 가진 근원적인 의미들 중 하나는 ‘지탱하다(산스크리트어로 dhr)’이고, 또 그런 의미에서 ‘우주를 지탱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때때로 규범 혹은 법이라고 번역되어 왔다.

불법이 종교냐 아니냐는 다양하게 논의되어 왔다. 불법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적인 의미로 본다면 종교가 아닌 게 확실하다. 기본적으로 불법은 ‘선지자’ 혹은 최고신(最高神)의 일가친척쯤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불법은 비종교적 학문이라고 알려진 과학, 철학, 심리학과 동등한 것도 아니다. 불법은 두 가지 특징이 있어서 이런 학문과 구별된다.

불법은 도덕률을 포함해서 일련의 엄격한 규범적 가치를 요구하지만 세속적, ‘비종교적’인 과학들은 윤리, 도덕 문제에 대해 실증적이고도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불법은 이런저런 형태의 내세를 주장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해석에 의하면 불법은 완전하게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모종의 내세가 예비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완전히 깨달은 사람의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논란이 더 많다.

이런 두 가지 특징 때문에 불교는 전통적으로 서양에서 규정하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종교의 정의에 부합된다. 오히려 이렇게 수정된 종교의 정의가 일반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하나의 종교로 간주되어 세계의 다른 종교와 비교될 수도 있고 또 비교되어야만 한다. 불자들은 불교의 주장을 다른 종교와 비교해야만 한다. 종교를 분류하는 일은 이런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보편종교와 특수종교
종교란 그 영역 면에서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보편종교의 요건은 뒤에 언급하겠지만, 양자의 차이점은 어떤 종교 안에서 구성원의 자격 요건을 평범한 신도로 하느냐 아니면 특정한엘리트로 하느냐에 달려있다. 보통 ‘보편적’이라고 간주되는 종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다. 반면 유대교와 힌두교는 특수종교의 사례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 구성원의 자격이 민족이나 인종 등의 기준에 의거한, 특정한 사람들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반화가 그렇듯, 종교를 이렇게 단순 분류하는 데에도 예외가 있다. 그래서 대개는 특수하고 배타적이었던 종교들이 최근 들어서 그 호소의 목소리를 높이며 엄격했던 입회의 요건도 어느 정도 완화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반면, 근원적으로는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종교들이 민족ㆍ인종적 변종을 형성하기도 했다. 한 종교에서 이런 종족적 변종들이 발현되면 그 종교의 영역은 상당히 위축되었다.

그리하여 비(非)유대인들(예를 들어, 에티오피아인들과 소수의 미국 흑인들)이 유대교로 들어왔고, 또 최근 유럽계의 사람들이 힌두교의 변형인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2)를 받아들였다. 두 사례의 경우, 입회자들이 동료 신자들에게 일률적으로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많은 유대인들은 비유대인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반대했으며, 서양인 하레 크리슈나 사제들의 주장도 정통 힌두들로부터 도전을 받아왔다. 그들이 태생적으로 브라만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예외적 사례가 있다고 해서 이들 종교의 민족적 성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수화된 종교의 또 다른 특징은 이들 종교가 특정 국적이나 인종에 제한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항이 그 종교를 믿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신도(神道)3)와 시크교4)는 민족종교로 간주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많은 원시부족, 종족 등의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이런 신앙은 그 민족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특수종교’ ‘민족종교’ 그리고 ‘문화종교’라는 용어를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하면서, 보편종교로 간주되는 것들과는 모든 면에서 상반되는 것으로 사용할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민족불교’란 불교가 역사적 보편성과는 상반되게 발현된 것을 가리킨다. 불교가 자국 내에서 발현될 때는 문화적인 측면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른 문화에 이식될 때는 이런 면이 아주 뚜렷해지면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보편종교의 특징
한 종교가 보편성을 가지도록 해주는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원칙의 보편성 이런 종교의 기본적 신앙 속에는 틀림없이 그 구성원을 특정한 민족이나 인종 집단으로 제한하는 요소가 없다. 만일 ‘선택된 민족’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이 특징에 위반된다.

구성원의 비배타성 어느 누구라도 이 종교의 신자가 될 수 있고, 다른 모든 이들과 동등한 특권과 의무가 부여될 수 있다. 이 말은 물론 모든 신도들이 동일한 수준의 업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인종이나 카스트 같은 외적 요인 때문에 그 종교에 완전히 참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널리 분산됨 이 종교는 필시 다양한 민족 혹은 인종 집단 사이에서 신도를 모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종교가 첫 번째 두 요건을 충족한다 해도 그 발생지를 벗어나서 확산되지 못했다면 그것이 보편종교의 자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이나교는 보편적인 원칙과 비배타성이 있다 할지라도 보편적이라고 간주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언어의 비배타성 종교의 실행은 음성을 통한 의사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언어로도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권위 있는 기본 경전은 원래 설해진 그 언어로 유지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것을 번역할 경우, 그 번역본이 원전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특정한 문화적 관습과 무관함. 이 종교의 실천은 음식, 의복5), 좌석, 등의 문제에서 특정 집단의 문화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이런 기준들 하나하나가 문제를 야기하지만 보편종교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이런 점들이 상당 부분 충족되어야만 한다.

불교는 이런 특징들을 기반으로 할 때, 붓다에 의해 원래 설해진 그대로, 전형적인 보편종교로서 기술될 수 있다.

현실적인 고려 사항
그러나 실제로, 불교는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실천되었던 그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약간의 민족적 특이성을 띠게 되었다. 이런 점은 다른 보편종교도 마찬가지다. 기독교가 문화적으로 변용된 것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 정교 혹은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슬람교의 시트파(派)도 이란인 혈통에게만 문호가 열려 있기 때문에 이슬람교의 민족적 변용으로 간주될 수 있다.

보편종교의 민족적 변형은 이렇듯 흔하지만, 이런 종교의 문화적, 민족적 내용이 부차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또 문화적 변용이 그런 문화 성향이 나타나는 특정 국가에서만 사용될 경우, 피해는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종교가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계율 가운데 어느 것도 버리지 않고 특정 국가나 문화 환경에 적응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한 종교가 수 세기 동안 한 나라에서 실천되면서 그 종교를 실천할 수도 있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접촉이 거의 없을 때, 이런 인종적, 민족적 변형물이 등장할 수 있다. 민족적 변형이 필자가 언급한 세 개의 주요 보편종교 모두에서 나타난 이유는 이것으로 설명된다.

보편종교의 민족적 변형에서는 신도들이 타국으로 이주하면서 그 종교의 보편주의적 측면뿐 아니라 문화적 요소까지도 함께 가지고 갈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럴 경우 보편적 측면을 우선시하고 적합하지 않은 문화적 측면은 버리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하지만 종종 문화적인 측면이 가장 우선시되면서 결과적으로 그 종교는 이주민들이 정착한 나라에서 잘못된 이미지를 주게 된다.

운송 수단의 급속한 발달, 세계경제의 출현, 그리고 다양한 방면의 표준화로 인하여 최근 몇십 년 동안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민족의 이동이 일어났다. 이런 대량 이주로 다양한 종교를 믿는 민족들이 자기네 종교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에 살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이민자 의존도가 높은 호주 같은 나라가 좋은 예가 되는데, 유럽 그리고 심지어 아시아 같이 더 오래된 정착지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호주는 다문화주의를 공식 정책으로 채택해왔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불교가 이런 다문화주의의 한 부분으로 간주될 때가 가끔 있다. 엄격히 말해서 불법이란 문화적 특이성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다문화주의’라는 편향된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2. 불법의 보편성

불법의 특징
필자가 규명해 본 특성들에 의거해서 불교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불교도들은 불교의 ‘삼보’ 즉 불, 법, 승에 ‘귀의하는’ 자들이다. 이 셋 중 현대 불교 수행에 가장 적절한 것은 오직 두 번째, 즉 법에 귀의하는 것뿐이다.6)

최초의 불교 경전으로 알려진 빨리어 경전에서 설시(說示)된 불법에 관심을 돌려보자. 붓다는 언제나 모든 인류의 스승으로 간주되었다. 붓다의 칭호 가운데 ‘인천의 스승(sattaa devamanussaana.m)’이라는 게 있고 또 인간이 아닌 존재들에게 법문을 했다는 것을 보면 정말 그의 가르침의 범위는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빨리 경전에 나오는 붓다의 법문 가운데 태반은 인간들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중 대부분이 승려를 위해서 그리고 약간은 평신도를 위한 것이었다.

빨리 경전에서는 보편주의의 성격을 명확하게 입증해주는 불법의 특징이 열거되어 있다. 전통적인 의식서(儀式書)에 언급된 불법의 여섯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명확한 설시(說示)(svakkhato) 명확한 설법은 특정한 부류에 적합할 수 있는 난해한 요소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 스스로 체험함(sanditthiko) 이것은 인증받은 성직자 혹은 공인된 스승에 대한 의존을 낮추어준다. 기꺼이 필요한 시간을 바쳐서 노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수행하고, 경험해서 불법을 터득할 수 있다.

③ 시간을 초월함(akaaliko)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a)불법의 결과는 거의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b)불법은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단지 시간이 흘러간다고 해서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니다. 바로 두 번째 해석에서 보편성이 드러난다.

④ 경험주의(ehipassiko) 불법의 타당성은 수행을 통한 실험과 관찰에 의해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이론적인 단정이자 검증할 수 있는 주장이다.

⑤ 실행성(opanayiko) 불법은 관심만 있다면 그 누구도 실행할 수 있다.

⑥ 지혜로운 자들의 이해(paccattam veditabbo vinnuhiti) 불법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혜가 필요하다.

위의 여섯 가지 특징 가운데 처음 다섯이 불법의 보편성에 기여한다. 여섯 번째는 ‘현명한’ 사람들만 불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이 더 쉽게 이해한다는 것이다. 불법이 이런 본질을 가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보편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

다른 종교들도 역시 이 중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전부 다 가진 것은 아니다. ‘특수’종교는 어떤 면에서 대개 인종을 기반으로 한 특정 집단에 한정된다. 따라서 종교의 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민족성의 주요 측면을 고찰하고 나서 그것들이 불법에서도 나타나는지 알아보아야 하겠다.

불교는 전도 종교다
불교가 가진 보편주의적 특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는 불교가 세계 최초의 전도 종교라는 것이었다. 불교 이전의 그 어떤 종교가 세계적인 기반을 두고 포교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증거는 없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불교 이전의 종교들은 포용보다는 배척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구성원을 자기 집단의 사람들로만 국한시켰던 대부분의 원시부족 종교가 그랬다. 또한 다른 초기 종교들, 이를 테면 인도의 브라만교뿐 아니라 고대 이집트, 바빌로니아 종교들도 그랬다.

브라만교는 구성원의 요건을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지켜왔는데, 특히 브라만 계급들이 심했다. 중동 지방에서 부상하고 있던 유대교 역시 신도를 ‘선민(選民)’으로 국한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배타성을 지닌 다른 종교들도 몇 개가 있었다.

이런 지배적인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붓다는 일단 불법을 선포하겠다고 결심하고 난 다음, 그 법을 보편적으로 선포할 길을 모색했다. 이것이 명확하게 선포된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아마 종교 역사상 최초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고전적인 언급은 율장과 상윳따니까야 둘 다에 나와 있다. 전법 초기, 비구의 수가 몇 명 되지 않았을 때, 붓다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비구들이여, 자 전도를 떠나거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모든 사람들[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마라.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法=진리)을 설하여라.

또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설하여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아,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Uruvela)의 세나니가마(將軍村)로 가리라.(SNi, 104-5)

이 경구에는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불법의 보편성이 잘 나타나 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불법을 전파하라고 권유할 뿐 아니라 그 자신도 모범을 보였다. 그의 전 생애 동안 계속된 모범이었다. 《법구경》이 “불법의 선물이야말로 모든 선물 중 으뜸이다”(v.354)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도 또한 이런 정신을 담고 있다.

불법을 모든 사람에게 전도하고자 했던 붓다의 바람을 실현했던 인도의 통치자는 아쇼카 황제였다. 세계적인 그의 전도 활동은 아마 최초의 체계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쇼카는 어느 정도 성공했을 뿐이고, 그의 전도 활동 가운데 많은 부분은 후속적인 노력이 뒤따르지 못했다.

비록 극히 단명하기는 했어도7) 아쇼카 황제의 노력이 서양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그리스뿐이었다. 그러나 불교는 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뚫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기도 했다. 불교가 쇠퇴하면서 이런 ‘이득’ 중 많은 것들이 상실되었다. 그리고 쇠퇴가 더 급격해진 이유는 특히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공산주의라는 세 개의 서양 종교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도 세계적 전도 종교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불교와 이 두 개의 신(神)의 종교 간에는 전도 방법이 크게 다르다. 불교는 논증과 모범을 통해서 ‘개종’을 모색했지만, 이 신(神)의 종교들은 강압과 폭력뿐 아니라 온갖 선전, 뇌물, 사기 및 속임수의 방법을 동원했다. 이들 종교들은 과거에 그렇게 많은 성공을 거두었던 이런 방법을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세련화하고 있다.

현대 불교도들은 진리 전파에 관한 붓다의 명령을 실행하는 데 무감각했다.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Anagarika Dharmapala)와 같은 진정한 개척자들의 노력은 잊혀졌다. 사실상 민족불교에 회귀한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불교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포교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서양에 다수의 스리랑카 승려들이 있지만 그들은 포교활동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해외 스리랑카인 공동체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사실 그들은 보편불교를 부인하면서, 붓다의 분명한 명령과 상반되는 민족종교라는 특수성으로 회귀하게 하고 있다.

불법과 언어
종교의 실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민족적’ 측면은 아마도 언어일 것이다. 종교의 실천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런 소통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언어다.

언어는 여러 가지로 종교에 영향을 준다. 첫째, 종교의 교리는 후세까지 존속하기 위해서는 문자로 기록되어야 한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빨리어를 사용한다. 빨리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빨리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만 그것이 붓다의 언어였는지는 불확실하다.

붓다는 석가족이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빨리어가 모국어는 아니었을 것이다. 붓다의 활동은 대부분 마가다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에서 붓다는 주요 언어인 마가다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빨리어는 우짜인 지역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붓다는 그곳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없다.

또 다른 학자들은 빨리어가 불법을 기록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인공 언어이며, 사람들에 의해 사용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진실이야 어찌 됐든, 분명한 것은 붓다의 원래 설법은 (어떤 언어로 설해졌든) 옛날 아라한들에 의해 빨리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오늘날 붓다 교설이라는 결정적인 단위를 형성하고 있다고 상좌부에서는 주장한다.8)

불법은 빨리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다. 불행히도 이런 번역자들 중 다수가 방만(放漫)하게 번역을 했다. 빨리성전협회(PTS)의 영어 번역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불법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빨리어 원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전의 언어야 어찌 됐든, 난해한 고전 언어로는 불법을 대중적으로 전도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붓다는 명확하게 선언한 바가 있다. 이것은 율장에 나오는 말로서, 두 형제 비구인 야멜루와 떼꿀라가 붓다께 ‘설법 시 현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질문한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붓다는 규칙을 내려주었다.

“anujaanaami bhikkave sakaaya niruttiyaa buddhavacana.m pariyaapunitun ti.”(Vin 1, 139).
이는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다. “나는 붓다의 말을 각자 자신의 언어로 배우기를 명한다.” 필자는 이것을 ‘sakaaya niruttiyaa 규칙’ 혹은 더 단순하게 불교의 ‘언어 규칙’이라 칭할 것이다. 붓다는 오직 결정적인 선언을 할 때만 명령적인 용어 anujaanaami(‘나는 명령한다’)를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sakaaya niruttiyaa 규칙은 붓다에 귀의하는 모든 사람들을 강제하는 결정적인 명령으로 간주될 수 있다. 문제는 sakaaya niruttiyaa 규칙을 현대 상황에서 적용할 방법을 알아보는 것이다.

Sakaaya Niruttiyaa 규칙의 적용
대체로 불교도들은 초창기에 sakaaya niruttiyaa 규칙에 담긴 붓다의 명령을 적용해왔다. 그리하여 1,500년이 흐르는 동안 불법은 여러 나라에 정착되었으며, 그 언어는 신할라어, 미얀마어, 태국어, 캄보디아의 라오어, 티베트어, 중국어, 한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이다. 이런 모든 경우에 있어서 현지 언어는 불법의 전도를 위해 거침없이 사용되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불교가 처음으로 전파된 모든 나라들은 아시아 국가들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종교에 대한 관용과 호기심이 일반화되어 있던 것은 바로 이런 나라들뿐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에도 기독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기 이전에는 이런 관용이 존재했었다.

유럽에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과 기독교의 국가권력 장악 이후, 다른 모든 종교들은 가혹하게 억압당했다. 유대교만 존속이 허용되었지만, 유대인들 역시 심한 탄압을 감내해야만 했다. 타 종교인에 대해서는 고문과 죽음을 관례화했으며, 심지어 기독교 내의 이단들 역시 마찬가지로 취급했다.

종교에 대한 관용이 어느 정도 보장되면서, 불법이 유럽에 건너갈 수 있게 된 것은 19세기 시절의 일이었다. 그러나 오랜 종교 압박으로 인해 이런 종교들이 왜곡되었던 것은 차치하고라도 많은 사람들은 이런 종교들을 믿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빨리어와 로마 문자로 된 상좌부 경전은 런던에 본부를 둔 빨리성전협회(PTS)에 의해서 발간되었지만 많이 유통되지는 못했다. 불법은 유럽 언어 중에서는 영어로 상당히 많이 번역이 이루어졌지만, 모든 번역물들이 그렇듯 어느 정도 해석이 개입되어 있다.9)

독일어로는 몇몇 경전이 번역되기도 했지만 다른 유럽 언어(심지어 불어와 이태리어조차도)로 번역된 경우는 극소수다. 대부분의 경우 비(非)영어권 유럽인들은 번역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해석이 가미된 주석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호주, 아프리카도 역시 유럽과 마찬가지였다.

불법과 여타 민족문화적 측면들
언어를 제외한 다른 민족문화적 경향은 불교에서 그다지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이것이 힌두교 등과 다른 점이다. 그렇지만 이런 측면 가운데 몇 가지를 간략하게 언급해보자.

좌석 배열
대부분의 아시아 불교국가에서 불교 활동(붓다에 대한 예경, 염불, 법문 듣기, 법문강론에 참가하기, 참선 등)이 관례적으로 마룻바닥(때로는 방석 위)에 앉아서 이루어진다. 사실 많은 아시아 국가(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앉기 때문에 집안에도 의자가 없다.

그러나 바닥(방석이 있든 없든)에 앉는 것이 불법의 요건은 아니다. 붓다와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서 경전에는 ‘ekamanta nisidi(즉, 한쪽 방향으로 앉았다)’라는 상투적인 어구를 사용했다. 그 사람이 바닥에 앉았다거나, 붓다의 좌석(우리가 이해하는 것으로 바닥보다 높은 좌석)보다 더 낮은 곳에 앉았다거나 하는 암시는 전혀 없다.

그런데 만일 사람들이 붓다와 대등한 높이로 준비된 의자에 앉아서 붓다와 담론을 할 수 있다면, 서양의 비하라 같은 불교 단체의 집회 장소에서 의자를 다 치워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규칙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굴종’의 잔재이다. 그렇게 해서 불법의 요건을 따르지 않는 문화불교 혹은 민족불교가 나타난다.

복장
서양의 하레 크리슈나 신도들이 인도인 복장(도티와 사리)을 하는 것은 흔하다. 불교에는 특정한 복장 규정이 없다. 율장은 승려에게 필요한 의복만을 정해 놓고 있는데, 이는 인도의 기후 조건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에 관해서도 승려들은 인도식의 승복으로는 몸을 충분히 보호할 수 없었던 추운 기후에서는 비하라 복장 규정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 대승 승려들은 이미 이렇게 변화했으며 지금은 상좌부 승려들까지도 추운 나라에서는 이렇게 하고 있다.

평신도들은 특별히 규정된 복장이 없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용인된다면 어떤 복장이라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면에서는 동양의 관습이 지켜지고 있다. 전각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이런 관습도 역시 문화적인 것이고 불법에 있어서는 아무 구속력이 없다.

이 문제에서는 희한하게 절충이 됐다. 그래서 왜 그러는지 그 근거는 분명하지 않다 해도 양말을 신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대한 적합한 태도는 신발이나 양말에 관한 이와 같은 특이성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이런 특이성이 불교 단체가 설립된 나라의 관습이 아니라면 말이다.

아시아에서는 아시아의 관습이 채택될 수 있고, 서양에서는 서양의 관습이 채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음력으로 결정되는 포살(布薩, uposatha)의 ‘sil’ 의식에 특정한 옷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이 행사 때 입게 된 흰 옷은 스리랑카의 관습을 영속화한 것으로, 경전의 근거는 희박해 보인다.

3. 서양의 민족불교와 비민족불교

서양의 불교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양불교는 유럽 국가가 기독교를 보호해주다가 그만두면서 가능하게 된 것이 비교적 최근의 발전상이다. 불교가 서양에 처음으로 알려질 때는 큰 관심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불교는 다윈주의와 기타 과학적 발견으로 인해 기독교의 기반이 상당히 붕괴되었던 시기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초기에 일어난 열정은 지속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래로 불법은 서양의 대부분 지역에서, 적어도 토착인들 사이에서 쇠퇴하고 있었다.

현재 두 가지 위험이 불교의 확산을 가로막고 있다. 하나는 경우에 따라서 붓다의 보편적 메시지를 편협한 숭배로 변화시키기도 했던 민족불교가 퍼져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불교의 해탈 구도에서 ‘명상’의 역할이 뭔지 모르는 ‘지도사들’이 불교를 보잘것없는 명상 치료로 변형시키려는 시도다. 본고에서 필자는 이 중 첫 번째에 주로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지만, 후자에 대해서도 몇 가지 의견을 내놓을 작정이다. 대다수의 이런 ‘지도사들’이 동양의 스승들로부터 ‘명상’을 배웠기 때문에, 이 후자의 경우도 민족불교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10)

서양불교는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하나는 주로 경전 공부에, 그리고 불교의 전문가나 해설자들의 강의를 중심으로, 재가자들 사이에 불교 단체를 결성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로는 상좌부불교 국가에서 불자들의 일상적인 집회 장소였던 비하라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비하라 양식이었지만 서양에서는 비종교적인 단체의 설립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두 모델이 서양에서도 존재할 수 있고 정말로 그래야 하겠지만, 서양의 비하라는 동양에서 수입된 민족 사원의 복제품이 아니라 주류 불교의 것이어야만 한다. 필자는 이 두 양식의 서양의 단체화된 불교를 고찰하겠지만 비하라 양식에 더 역점을 둘 것이다.

런던 비하라와 랑카라마 모델
서양에서 두 가지의 비하라 불교 모델이 등장했다. 런던 비하라와 랑카라마 모델이 그것이다. 1920년대에 세워진 런던 비하라는 서양에서 운영되는 불교 비하라의 모델이 되었다. 랑카라마는 스리랑카의 신할라 이주민들이 1940년대에 싱가포르에 세웠는데, 원래의 스리랑카 환경이 그대로 외국에 이식된 것으로서 또 하나의 인종불교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서양 최초의 상좌부 비하라가 상좌부 불교에 가장 정통한 도시였던 런던에 세워졌다는 것은 적절했다. 생겨난 지 10년이 지나자 이 비하라는 서양의 다른 불교단체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곳은 주로 영어를 사용하면서 불법의 연구, 수행, 포교의 중심이 되었다.

이곳 비하라의 승려들은 학술 간행물과 종교 문제에 대한 대중 토론에 기여함으로써 두각을 나타냈다. 이 비하라는 주로 오랜 세월 동안 전수된 불법의 포교에 관심을 두었으며 스리랑카의 불교 상황에 특징적으로 나타난 지역적 특이성을 전파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비록 비하라의 설립에 관여했던 사람들 대다수가 스리랑카 출신이었음에도 그랬다.11)

이 비하라는 명상의 중심이었지만, 서양의 불법 수행의 주요 방법이었던 이런 활동에 더 부가되는 것은 없었다. 다른 몇 가지 측면, 이를 테면 비하라에서 의자 배치 같은 측면에서, 런던 비하라는 스리랑카의 방식보다는 현지 관습을 고수하려고 했다.

이처럼 고매한 이상이 항상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아니었고, 논란의 시기도 있었다. 특히 다수를 차지하던 비하라의 영국인 후원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스리랑카 출신의 이주민으로 바뀐 다음에 그랬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었지만 이 비하라는 다른 비하라가 설립될 수 있는 모델을 제공했다. 불행히도 이것을 본받아 세워진 비하라는 거의 없었다. 어떤 비하라들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세워졌는데, 서양의 불교 비하라로서 올바른 원칙을 실제로 고수한 면도 있지만 그들은 결코 이 분야에서 모범적인 사례가 되지는 못했다.

호주에는 어찌 보면 런던 비하라와 대등하다고 할 만한 비하라는 없었다. 고(故) 샨티 바드라 마하 테라(Ven. Shanti Bhadra Maha Thera) 스님이 긴 세월 동안 이끌어왔던 브리즈번 불교 비하라가 어느 정도 그것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샨티 바드라 스님이 떠난 후, 이 비하라는 많은 민족 지향성을 지닌 구성원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민족사원을 세우기 위해 분리되어 나갔다. 샨티 바드라 스님이 세웠던 높은 기준에서 약간 후퇴도 있었고, 민족불교라는 유혹을 완전히 탈피한 것도 아니다.

랑카라마 모델은 런던 비하라 모델과 아주 많이 대조된다. 최초의 랑카라마는 싱가포르에 거주하던 스리랑카 인에 설립되었다. 그 이래로 싱가포르의 랑카라마 모델에 기반을 둔 몇 개의 비하라가 서양의 많은 나라에서 설립되었다. 어떤 것들은 랑카라마야라는 이름 그 자체에 긍지를 느끼기까지 했고, 또 어떤 것들은 이름은 다르지만 같은 모델을 변형한 것이었다.

 필자는 이런 서양 비하라들을 랑카라마야 비하라라고 부르고자 한다. 아시아 불교의 대승과 상좌부에 기반을 둔 또 다른 유형의 인종불교도 있다. 여기에는 주로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중국, 베트남, 티베트, 그리고 일본의 모델에 기반을 둔 사원이 포함된다. 서양에서 이렇게 발현된 민족불교를 모두 탐구할 수는 없고 필자는 주로 신할라 불교에 기반을 둔 랑카라마 모델에 주안점을 둘 예정이다.

서양 상좌부 비하라의 랑카라마 모델의 주된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비하라의 구성원은 주로 신할라인이다. 비하라의 종헌(宗憲)에는 적혀 있지 않다 해도, 실제 종교 활동에서는 다른 이들의 적극적인 참가가 배제된다.

비하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주된 매체는 신할라어다. 바로 이 언어를 통해서 대부분의 법문이 행해지고, 비하라의 활동도 공지된다.

비하라의 주요 신행 활동은 다음과 같다.

①신할라 방식의 법문(bana)
②승려에게 공양과 가사 제공
③‘호경(護經, pirit)’ 염송, 삐리뜨(pirit) 실 묶기
④불상(buddha-puja), 보리수, 그리고 유물(이런 것들이 스리랑카에서 수입되었을 경우)에 대한 예배
⑤신할라 자녀들에게 불법 가르치기(daham-paasaela)
⑥신할라어 가르치기, 신할라 신년 축하 등과 같은 특별 문화활동

랑카라마 스타일의 비하라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신행 활동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보편종교로서의 불교 전통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바나 스타일의 설법에서는 일반적으로 법의 토론(dhamma-saakaccaa)이라는 오래된 관습이 배제된다. 빨리 경전 연구에도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사원에서는 경전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고, 구한다 해도 깊이 공부할 기회가 없다.

간단히 말해서 랑카라마 스타일의 비하라는 현지인들과 접촉이 거의 없고 현지인에 대한 전법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은 스리랑카 이주민들이 고향 불교의 전통 관습에 몰두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호주의 경험
호주는 1920년과 1968년 사이에 인종편향적인 이민정책을 실시했다. 이 말은 곧 이 기간 동안에 호주에 정착한 신할라인이 거의 없었고, 또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민족적 불교사원들도 설립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종차별적인 이민정책이 시행되기 전에 왔던 이주민들에 의해 민족 편향적 불교 활동이 이루어졌던 증좌가 얼마간 있기는 하지만 이런 활동은 곧 멈추었고, 그때 당시 이주했던 거의 모든 불교도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말았다. 호주에 최초로 출현한 불교는 중국의 대승불교였지만, 그것 역시 인종차별적 이민정책이 시행된 후 곧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소수의 불자들에게는 활동상 몇 가지 제약이 가해진 상태에서 단기 입국이 허용되었다. 이들 중에는 금세기 최고의 깨달음을 이룬 상좌부 승려 중 하나인 스리랑카의 나라다 마하 테라 스님과 미국인 상좌부 비구니 담마디나 스님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노력 덕택에 소규모의 불교단체들이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에 들어섰다. 이 단체들은 진정한 국제불교의 정신으로 설립되었으며 민족적 특색은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런 기관들은 다양한 변동을 겪었지만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12)

1980년대에는 이민정책이 더욱 완화되면서 스리랑카와 다른 아시아 불교국가들로부터 다수의 민족불교도들이 입국했다. 그들은 곧 전통적인 스타일로 민족사원을 설립하는 일에 착수했다. 상좌부 측에서 최초로 이런 일을 한 것은 태국인들이었다. 그들은 전통 방식으로 몇 개의 와트를 세웠다. 앞에서 랑카라마 스타일의 주요 특성을 살펴본 바 있지만 이것들은 그런 고전적인 랑카라마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사원들은 (최종적으로 세워졌을 때) 태국의 와트 관습을 따랐다.

최초의 스리랑카 민족 비하라는 빅토리아 불교협회에 대한 대안으로서 멜버른에 세워진 것 같다. 민족성을 띤 신할라 불교단체들이 퍼스, 다윈, 애들레이드, 캔버라, 그리고 그들이 이미 민족사원을 세웠던 곳 중 몇 군데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랑카라마야의 이름을 내건 최초의 신할라 사원이 세워진 것은 바로 시드니였다.

오랫동안 시드니의 신할라 불교도들은 와트 붓드랑세와 와트 붓다다르마와 같은 태국식 와트의 후원자들이었다. 그러나 1990년 랑카야마야의 설립은 호주의 하늘 아래 순수한 스리랑카 방식의 사원을 운영하겠다는 결단을 보여준다. 브리즈번에서는 스리랑카 사찰협회가 결성되었다. 그 협회는 최근 브리즈번에 최초의 랑카라마야를 건설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한편 또 다른 집단의 신할라가 설립한 또 하나의 신할라 사원이 브리즈번의 선 센터로부터 임대한 방들에 들어섰다.

그리하여 스리랑카 민족사원은 이제 호주의 주요 도시에 확고하게 정착했다. 어김없이 다른 주들에서도 곧 이 전례를 따라서 점차 증가하고 있는 스리랑카 이주민들에 의해 이런 사원들이 세워져서 늘어나는 수요에 부응할 것이다. 여러 사원들은 다수의 스리랑카 승려들을 호주로 데려와 이들 사원에 배치해왔다.
호주의 경험은 다른 서양 국가들의 경험과 대등하다. 영국에서도 이름은 다르지만 몇 개의 랑카라마야 유형의 신할라 사원들이 들어섰다. 미국에는 대승불교가 지배적이며 상좌부불교는 소수의 비하라에 한정되어 있다.

이제 호주와 서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불교 발달의 결과를 전반적으로 고찰해봐야겠다.

4. 단체화된 형태의 서양불교

단체의 유형

앞선 논의를 기반으로 서양에 출현한 상좌부불교에 다음과 같이 규격화된 형태가 있음을 규명해볼 수 있다.

A.비종교적 불교 단체 모델 이 유형은 빨리 원전을 통한 불법 집중 연구, 불법의 요건에 일치하는 생활규범의 개발, 불법 준수의 장려에 관심을 두고 있다.

B.원조 런던 비하라 모델 이 모델은 비종교적 단체의 목적들을 망라하고 있지만, 설법을 듣기 위해서는 수계받은 승려를 초빙해야 한다는 점에 더 큰 주안점을 둔다. 경전을 해석할 때에, 비종교적 단체는 원전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는 반면, 이 모델은 붓다고사의 주석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C.랑카라마 모델 이것은 전형적인 민족불교 모델이다. 주요 목적은 붓다 교설의 보편성 내지 거주 국가의 외적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네 본국에서 실행하던 그대로의 민족불교 모델을 사용하는 이주민 집단의 정신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D.명상센터 모델 여기서 불교 단체는 자칭 ‘스승’이라는 사람의 지도를 받는 ‘명상’ 센터로 변형된다. 실행되는 명상은 최초 확립된 사념처(satipatthana)를 간소화한 것으로서, 붓다가 이 마음챙김의 기법을 올바르게 실행하도록 신중하게 규정해놓은 모든 전제조건들을 무시하고 있다.

이 네 모델은 원형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실제로 특정 단체들은 이런 특성들을 어느 정도 결합할 수도 있지만, 거의 모든 경우 이 중 하나가 지배적인 특성이 될 것이다. 이것으로 특정 단체가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 결정된다.

오직 A 양식과 B 양식만 빨리 경전에 설시된 불법에 상당히 상응하고, C 양식과 D 양식은 그것과 동떨어진 게 분명해 보일 것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A 양식은 붓다의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서양에서 전법 수단으로 개조된 것치고는 이상적일 수도 있는 서양식 단체 형태다. 이것이 서양 전법 시 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서 통용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의미 때문이다.

대략 1960년대까지 서양불교는 A와 B 양식을 사용해서 불법을 단체방식으로 표출하는 주요 수단으로 삼았다. 비록 널리 활용되지는 않았지만, 이 때문에 서양사회에서 불법이 올바르게 출발할 수 있었다. 1970년대부터 아시아 불교도들(신할라인, 태국인 등)의 서양 이주가 시작되었다.

역사상 유례없던 일이다. 이로써 C 양식의 단체가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D 양식의 불교 역시 아시아 불교국가들(태국, 스리랑카 그리고 비중은 덜 하지만 미얀마)의 스승들로부터 배웠거나 아니면 이런 수행을 거친 서양불자의 제자들인 서양인 선생들에 의해 확산되기도 했다.

필자는 민족불교가 불교의 보편주의적 성격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민족불교는 서양에 도입될 때 특정 형태의 불교를 한 인종게토(거주지) 안으로 옮겨놓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게토 종교로 인식할 위험이 있다. 사실 서양의 대중매체는 불교를 보편적인 해방의 메시지가 아니라 민족종교로 표현하는 데 능숙하다. 서양 민족불교도의 활동은 이와 같은 대중매체의 선전을 지원하면서, 서양 불교의 대의를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

명상센터 유형에 대해 몇 마디 해야겠다. 최근 몇십 년 만에 서양에는 온갖 종류의 명상 기법(예를 들면, 초월명상, 요가, 선, 자기실현, 하레 크리슈나, 등)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이처럼 명상이 크게 부상하는 것은 서양에서 삶의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많은 심리적 신경질환이 발생하고 있지만,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등을 통한 전통적인 치료법은 너무 비싸거나 효과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급증하는 명상운동은 재래식 치료법이 통하지 않는, 경미한 신경질환에 특히 적합했다. 명상센터식 불교의 옹호자들은 서양에서 명상 전파자의 무리에 열성적으로 가담했다. 그들은 확실히 여타 공동명상 보급 단체들처럼 이런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면서, 평온과 안정을 통해서 병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기도 한다. 그러나 위험은 그들이 효과도 없는 가짜약을 붓다의 중요한 발견으로서 혹은 깨달음과 해방의 수단으로서 통용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특별한 접근 방식의 중심에는, 많은 ‘스승들’13)이 불교에서 명상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사실이 있다. ‘명상’에 대해 그들은 빨리어 bhavana를 사용한다. 이제 이 말이 슬그머니 불교용어로 들어왔지만, 붓다는 이것을 현대 명상가들이 덧붙인 의미로 결코 사용하지 않았다.

 경전상의 용어는 삼매(samadhi), 선정(禪定, jhana), 알아차림(念, sati)이다. 삼매란 불교에서 필요한 진정한 집중인데, 이것을 아라한과를 증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르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붓다는 삼매가 개인의 노력만으로도 성취될 수 있음을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 수행자가 번뇌(asavas, 한역에선 漏)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를 얻고 바라밀(paramitas) 가운데 몇 가지를 충족했다면 말이다.

선정은 순전히 요가 수련이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들이야 그로부터 이득을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깨달음의 요건은 아니다. 상기해야 할 바는 붓다가 정각을 이루기 오래전에 당시 요가 스승들로부터 그런 방법을 배워서 선정을 성취했다는 것이다. 일부 현대 명상가들은 추종자들에게 자기최면을 유도할 수 있었지만, 이것을 가지고 네 가지 선정 상태 가운데 어느 하나에 도달한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알아차림(sati)이 전형적인 명상가가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팔정도 중 하나인 이 소중한 수행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것을 보면, 《염처경(念處經, Satipatthana sutra)》에서 붓다가 밝혀놓은 마음챙김이란 것을 어설프게 단순화한 것에 불과하다. 이 경전을 서양의 ‘스승들’이 설하는 방식을 보면, 그들은 경의 서품에서 붓다가 분명히 정해놓은 두 개의 근본적인 전제조건을 무시하고 있다. 그 전제조건이란 이렇다.

1)수행자는 세속의 엉킴을 상당 부분 내려놓아야만 한다(‘vineyya loke abjia domnassa’)는 것. 그렇다고 그 수행자가 반드시 가정생활을 버리고 ‘출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붓다가 이 경을 설한 대상이 출가해서 이 전제조건을 충족한 승려들이기 때문에, 출가를 강력히 권장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틀림없이 가족, 부, 권력에 대한 집착에 빠져 있는 재가자들에게 단기간의 안반수의(anapana sati) 수행을 통해 4념처(satipatthana)에 도달한다는 인상을 주는 현재의 관행은 올바르지 않다.

2)사념처 수행(satipatthana)은 여럿이 모여서 하는 게 아니다. 붓다는 수행자가 빈방(suagara)에 들어가거나 실외인 경우 나무뿌리(rukkham-la)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명상센터에서는 유일한 목적이 정례화된 공동 명상인 것 같다. 이런 ‘명상 수행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든, 그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명상센터 방식이 민족불교 방식만큼 그 위험이 크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서양 불법에 초래할 수 있는 피해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서양불교에 대한 가장 만연된 비판 중 하나는 그 수행자의 자비심이란 게 자기가 앉은 자리만 편안하면 그뿐이라는 것과, 현실 세계에서 동료 인간(그리고 비인간)의 행복과 관련해서 재가자들이 발휘할 수 있는 온갖 기회를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명상센터 불교는 대중불교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들이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우겨댄다고 해도 명상센터에서 풍겨 나오는 강력한 증거를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명상센터의 고객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붓다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어떤 내용도 빨리어 경전에 설시된 방식의 삼매와 사념처 수행(satipatthaana)이 불법 수행에서 중요치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둘은 깨달음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필자가 반대하는 바는 이런 어려운 수행을 서양에서는 ‘명상’이라 불리는 단순 운동으로 잘못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5. 결론

필자는 서양에서 불법을 전파하는 데 나타나는 두 가지 장애(민족불교와 명상불교)를 이 짧은 논문에서 제시해보고자 했다. 물론 다른 거대한 장애물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보통 외부 요인 때문에 발생하지만 필자가 논의해온 장애들은 불교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야기된 내부적인 장애다.

외부적 장애에 대한 고찰은 다음으로 미뤄야만 하겠다. 비록 서양불교도들이 민족불교를 포기하고 올바른 수행으로 회귀해서 불법을 깨닫는다 할지라도, 서양 포교에는 여전히 굉장한 어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깨달음을 주는 붓다의 가르침과는 크게 동떨어진 수행에 편승함으로써 이런 어려움을 가중시킬 까닭은 없다. ■

빅터 구나세카라(V. A. Gunasekara) / 스리랑카 출신으로 1969년 호주 퀸스랜드(Queensland)로 이민 갔다. 퀸스랜드의 스리랑카인 협회(The Sri Lanka Society of Queensland) 창립 멤버로서, 협회에서 분기마다 발행되는 회보의 편집과 웹사이트의 관리를 맡고 있다. 1985년부터는 호주에서 스리랑카 분리주의자들의 선동에 맞서 대항해왔다. 퀸스랜드 불교협회(The Buddhist Society of Queensland)의 서기관이며 브리즈번 불교비하라의 운영위원과 또한 퀸스랜드 인도주의자 협회(The Humanist Society of Queensland)의 서기관 그리고 The Humanist Society of Queensland 지(紙)의 편집자로 활동 중이다.

장은화 / 경희대, 동 대학원 영문학 전공. 동국대학원 선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불교번역가. 저서로 Journey to Korean Temples and Templesta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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