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평론 2009 올해의 논문상 수상작

1. 들어가는 말

티벳불교의 번역 과정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가 초기 전파기로서 약 850년대 티벳왕조의 멸망과 더불어 끝나며, 두 번째가 후기 전파기로서 1040년대에 아티샤(Ati굴a)의 티벳 방문과 더불어 시작되는 시기이다.

초기 전파기를 특징짓는 가장 큰 문화적 사건은 티벳이 불교를 국교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가 공인된 이후 두 사건이 티벳불교의 성격을 결정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첫 번째 사건은 흔히 삼예사의 논쟁으로 알려진 까말라쉴라와 마하연의 논쟁이다.1) 약 794~5년에 걸쳐 일어난 이 논쟁은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중의 어떤 형태의 불교를 중심으로 불교를 이해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논쟁의 결과 인도불교측이 승리하여 인도불교가 공인되고 중국불교는 배척되었다고 티벳 역사서는 기술하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상이한 번역용어를 티벳어로 표준적으로 번역하기 위한 번역용어집의 제작이었다. 티벳인들은 인도 불전의 번역 사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을 때 역경 과정에서 번역자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번역어가 사용되었을 경우의 혼란을 예견했고 또 실제로 경험했을 것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그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산스크리트의 티벳어 번역용어를 통일하고 이를 왕의 칙령을 통해 규정화시켰고, 기존의 번역은 모두 새로운 용어에 맞추어 수정했다. 중국의 역경 작업과 비교해 보면 이 작업의 중요성과 사상사적 의의 및 그 파급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의 번역이 새로운 용어법에 따라 모두 수정된 이후 수정된 판본만이 티벳대장경에 수록되었고 기존의 번역은 어디에도 보존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티벳어 번역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그 용어법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티벳대장경에 의존하는 한 전혀 짐작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간격을 어느 정도 보완해 주면서 새로운 연구 자료를 제공해 주는 것이 돈황(敦煌)에서 발견된 티벳어 자료이다. 이 자료의 중요성은 이것들이 새로운 번역용어의 규정 이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당시 티벳어 구문 연구와 번역어 연구에 중요하다는 점에 있을 뿐 아니라 이들 중의 상당수가 한역불전에서 티벳어로 번역된 자료라는 점에 있다. 여기에는 중국인에 의해 저작된 중국 찬술 문헌의 번역인 것도 있고, 또는 한문으로 번역된 경전을 다시 티벳어로 중역(重譯)한 것도 있다.

티벳대장경에 입장(入藏)된 중국 찬술 문헌 중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법성(法成, Chos grub)에 의해 번역된 원측의 《해심밀경소》 티벳역(이하 SNST로 약칭)이다. SNST가 사상사적 관점에서 티벳불교의 유식학 이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2)는 점에서도 자체 연구할 가치가 있겠지만, 오히려 초기 전파기 시기의 티벳어 번역 과정에 대한 본고의 관심사와 관련해서도 SNST는 다른 텍스트의 연구에 비해 번역용어의 대조 가능성 등의 연구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해심밀경》에 주석으로서 SNST가 성립할 때에 당연히 《해심밀경》의 티벳역이 먼저 이루어졌음을 전제할 것이다. 그런데 돈황본 《해심밀경》의 티벳역이 부분적으로 현존하고 있어 이들 상호 다른 세 티벳판본을 비교해 보면 초기 전파기 시대 티벳어 번역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초기 전파기 시대 티벳어 불전 번역의 특색

티벳의 전승에 따르면 632년 무렵 송짼감포(Srong brtsan sgam po: ―649/50) 왕은 티벳의 고유한 문자를 만들기 위해 퇸미 삼보타(Thon mi Sambho쿡a)를 비롯한 여러 젊은이들을 인도로 파견해 문자를 배우게 했다고 한다. 티벳 문자의 모델로 채택된 것은 캐시미르 지역에서 사용되던 문자였고, 이에 기초해 퇸미 삼보타는 30개의 문자로 이루어진 티벳 문자를 만들었다.

티벳 문자는 초기 행정조직의 정비를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지만, 곧 불교 문헌의 번역을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고, 산스크리트의 풍부한 어휘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어휘를 만들어가고 구문을 정비해 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러한 티벳어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西田龍雄은 티벳어의 발전을 시대적으로 7기로 구분하고 있다:3)

(1)원초 티벳어, (2)고대 티벳어, (3)中古 티벳어: 7-9세기 초, (4)近古 티벳어: 9-10시기, (5)중세 티벳어: 10-17세기, (6)근세 티벳어: 17-19세기, (7)현대 티벳어: 20세기.

이 중에서 인도 불전이 처음으로 번역되기 시작했던 시기의 티벳어는 (3)을 말하며, 여기에 돈황 지역에서 사용되고 번역된 티벳어 문헌도 포함된다. 반면 칙령에 의해 확정된 표기법과 어휘를 사용하여 불전 번역에 적용한 티벳어는 고전 티벳어로서 (4)를 가리키며, 이 시기를 초기 전파기라고 부른다.

위에서 초기 전파기에 티벳의 불전 번역 과정에서 사용된 두 가지 형태의 티벳어를 언급했다. 여기서 (3)중고 티벳어를 사용한 번역의 특징은 간략히 말해 산스크리트 단어의 번역에 있어 어떤 확정된 원칙이나 기준이 없이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있다. 본고의 3. 2와 4. 1에서 보듯이 산스크리트 단어의 번역이 번역자에 따라 완전히 자의적으로 취사선택되었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문헌에 따라 동일한 산스크리트어가 상이한 티벳어로 번역될 가능성은 현존하고 있었다.

이런 용어의 혼용이 철학적, 종교적 문헌의 이해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한역의 경우가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티벳인들이 한역의 상이한 번역어의 사용에 대해 구체적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티벳인들은 후대 티벳불교의 발전을 위해 결정적인 문화사적 중요성을 가진 번역용어의 통일이라는 과제를 진행시켜 나갔다. 이것은 (4) 근고 티벳어 시기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시기의 작업을 특징짓는 것이 바로 번역용어집의 발간과 역경 목록의 편찬이었다.

먼저 번역용어집으로서 《번역명의대집(飜譯名義大集, Mah켥vyutpatti, Bye brag tu rtogs pa byed pa)》은 왕의 칙령에 의해 예세데(Ye shes sde)에 의해 814년에 편찬되었다. 따라서 이 책의 번역 방식에 따른 불교용어를 ‘신정어(新定語, skad gsar bcad)’4)라고 부른다. 《번역명의대집》의 한역어(難語釋)에 해당되는 《이권본역어석(二卷本譯語釋, sGra sbyor bam po gnyis pa)》 도 역시 814년에 편찬되었다.5) 야마구치는 먼저 《번역명의대집》(北京版 No 5833, 동북목록 No. 4347)이 편찬되고 814년에 《이권본역어석》(北京版 No 5832, 동북목록 No. 4346)이 편집되었다고 간주하고 있다.6) 《번역명의대집》에서 확정된 신정어의 방식에 따라 이전의 번역 문헌에서 사용된 자의적 번역어는 모두 이 신정어에 따라 수정되었고 이후의 번역 문헌에서는 모두 이 방식에 따라 번역어가 사용되도록 칙령에 의해 확정되었다.

문화사적으로 의의가 깊은 두 번째 작업은 역경 목록의 편찬이다. 티벳불교사에서 역경 과정을 아는 데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해 주는 것이 불전 번역 목록인데, 그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록은 824년7) 댄까르 궁전에서 팰(dPal brtsegs), 남캐닝포(Nam kha’i snying po), 루의 왕포(kLu’i dbang po)가 편찬한 《댄까르마(lDan dkar ma)목록》8)으로 당시까지 인도 불전과 중국 불전에서 티벳어로 번역된 경전의 리스트를 담고 있다.

3. 돈황에서의 한문불전의 티벳어 번역과 법성(法成)의 《해심밀경소》 번역

1) 돈황에서 행해진 티벳어 번역 작업의 성격

티벳이 781년에서 848년까지 돈황을 점령한 시기 동안 티벳불교는 중국불교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보인다. 돈황 지역에서 활동했던 많은 중국계 불교승려들이 티벳의 돈황 점거 이후 라사로 들어와 활동했고 그들이 상당히 많은 정치적,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은 삼예사의 사지(寺誌)인 바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삼예사 논쟁의 결과 중국불교에 대한 인도불교의 승리로 인해 티벳에서 인도 찬술 불전이 중심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한문으로 쓰여진 불교 문헌도 꾸준히 티벳어로 번역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번역의 중심지가 티벳의 중앙이었는지 아니면 돈황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의 접경 지역이었는지의 여부는 계속 연구할 필요가 있겠지만, 많은 수의 중국불전의 티벳어 번역이 돈황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번역 중의 많은 것들이 후에 교정을 거쳐 티벳대장경에 포함되게 되었다.

이러한 학문적 작업을 주도한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법성(法成, Chos grub)이다. 그는 담광(曇曠)과 함께 9세기 돈황 지역의 불교학을 대표하는 인물로서9) 비록 중국본토의 자료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펠리오가 소개한 이래 학계에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한문 불전을 티벳어로 번역하는 작업 이외에도 한문으로의 번역과 집성, 저술과 강의록 등의 다방면에 걸쳐 활발히 작업했던 학승이었다.10)

그중에서 특히 그가 중점을 두고 작업한 분야는 한문 불전의 티벳어 번역으로 모두 20종의 번역이 현존하고 있는데, 본고의 주제 영역인 《해심밀경소》 이외에 《성입능가경중 일체불어심품(聖入楞伽經中 一切佛語心品)》(大谷 No. 776)이나 《성미묘금광명최승왕대승경(聖微妙金光明最勝王大乘經)》(大谷 No. 174) 등을 들 수 있다.11) 그의 번역은 돈황본에 주로 남아 있지만, 몇몇은 북경판 서장대장경에도 실려 있다. 그는 ‘비구(比丘)·대교열번역사 법성(大校閱飜譯師 法成)’ ‘대교열궤범사(大校閱軌範師)·번역사(飜譯師)·세존의 종도(宗徒)·사문 법성(沙門 法成)’의 칭호로 불린 것으로 보아 티벳의 공식적인 번역 조직에 참여했다고 보인다.

티벳 본토에서 수행된 번역 작업이 주로 인도인 학승을 중심으로 티벳인 공동 작업자와의 공동 번역의 방식으로 인도 찬술 문헌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다면, 돈황에서는 번역 작업은 이와는 달리 주로 한역 문헌의 티벳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평가된다.

더구나 그 작업을 주도한 인물들은 법성의 경우가 잘 보여주듯이 한문과 티벳어 모두에 능숙한 돈황의 토착인이었다. 따라서 한문 불전의 티벳어 번역에 있어서도 한문 구문에 충실한 축자역의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 보통이었다. 법성의 티벳역의 경우도 한문 술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축자적으로 번역했다고 평가된다.12)

축자역이란 인연(因緣)이란 단어를 티벳어로 번역할 때 因과 緣으로 분리하여 rgyu dang rkyen으로 번역하는 방식으로서 한문의 자구의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하는 방식을 말한다. 《해심밀경》에서 하나의 예를 들면 용맹정진위인연(勇猛精進爲因緣)을 brtun pa’i brtson ’grub kyi rgyu dang rkyen byas pa로 번역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응하는 티벳장경의 표현은 단순히 rtul ba’i rgyu이며, 《해심밀경》 돈황본의 표현은 yongsu gdung ba’i rgyu이다.13)

그렇지만 因緣이란 단어는 산스크리트의 hetu에 대응하는 일상적인 한문 술어로서 이를 법성의 번역에서처럼 분리하여 사용한 것은 범어 불전은 말할 것도 없이 신정어를 의용한 티벳어 번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법성이 확정된 신정어를 번역어로서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돈황의 티벳어 번역 문헌을 검토한 原田覺(1982: 6)에 따르면 “돈황에서 한문으로부터의 티벳역도 티벳 중앙에서의 범문으로부터의 티벳역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을 것”이며 “법성은 신정어를 의용했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황의 번역자들의 축자역에 대한 선호는 일반적인 한문의 2음절(二音節) 명사 표현의 영향으로 인해 이를 유사한 다른 단어와 구분되는 어떤 특정한 단어의 번역어로 이해하기보다는 자구적으로 수용하는 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14)

2. 《해심밀경소》의 티벳역(SNST)을 둘러싼 문제들

원측은 주지하다시피 자은대사(慈恩大師) 기(基)와 함께 현장의 양대 제자의 일인으로서 《해심밀경소》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의 저서는 모두 10장(티벳역; 현장역에 따르면 8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제10장 전체와 제8장의 앞부분이 결락된 채, 현재 속장경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이 근래 약간의 교정을 거쳐 한국불교전서 1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본고에서는 이를 사용했다.

이 《해심밀경소》가 돈황에서 활동했던 법성(法成, Chos grub)에 의해 약 9세기 초에 티벳어로 번역되었고 다시 티벳대장경에 수록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근래 稻葉正就(1972)가 이 번역본에 의거하여 결락된 부분은 다시 한문으로 복원하여 발표했다.

법성이 언제 어디서 《해심밀경소》를 번역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해심밀경소》의 번역은 북경판(No. 5517) 탠주르 〈mdo sde sna tshogs ’grel pa〉 vol.106(mdo ’grel Ti 1a-Di 198b) 전체에 걸쳐 실려 있다. 이 번역본의 마지막 부분(Di 198a4-5)에 있는 콜로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phags pa dgongs pa zab mo nges par ’grel pa’i mdo rgya cher ’grel ba brgya’i slob dpon wen tshig gis mdzad pa rdzogs so// dpal lha brtsan po’i bka’ lung gis/ zhu chen gyi lo ts켥 ba dge slong ’gos chos grub kyis rgya’i dpe las bsgrur cing zhus te gtan la bab pa/// (“중국의 궤범사인 원측에 의해 저작된 《성해심밀경대소》를 마쳤다. 길상의 왕(dpal lha brtsan po)의 명에 의해 大校閱飜譯師 비구인 吳法成이 중국문헌에서 번역했고 교열해서 확정했다.”)

여기서 Chos grub이 언제 어디서 《해심밀경소》를 번역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다만 번역 시기에 관해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이 텍스트가 왕의 칙령에 의해 번역되었다는 기록이다. lha brtsan po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왕의 재위 기간과 법성의 활동 기간을 고려할 때 티쭉데짼(Khri gtsug lde brtsan: 806~841, 재위 815~841) 왕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인다.

그는 부왕인 티데송짼 왕의 불교 정책을 계승하여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매우 강력한 친불교 정책을 편 왕으로서 알려져 있다. 번역사업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번역명의대집》, 《이권본역어석》 등에 의해 확립된 통일된 번역어에 기초하여 그의 재위 기간 중에 예세데 등이 기존의 불전 번역을 다시 교정해 나갔다는 사실과,15) 또한 《댄까르마 목록》과 같은 역경 목록이 편찬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댄까르마 목록》에 모두 7종의 《해심밀경》에 대한 주석서가 기재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5종은 대승경장의 주석(theg pa chen po’i mdo sde’i ti ka)16)으로서 인도 찬술이고, 나머지 2종은 중국에서 번역된 경장의 주석(mdo sde’i ti ka rgya las bsgyur ba)17)으로서 중국 찬술로 분류되고 있다.

이 중국 찬술 주석의 하나가 ’phags pa dgongs pa nges par ’grel pa ti ka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 원측의 《해심밀경소》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찬술된 《해심밀경》에 대한 주석은 원측소 이외에 현범(玄範)과 영인(令因)의 주석이 현존하고 있지만 이들의 주석이 티벳어로 번역되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제목이 원측소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보이며, 그렇다면 법성에 의한 《해심밀경소》 번역은 이미 824년18) 이전에 완료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법성의 번역이 어디에서 이루어졌는가에 관해서는 콜로폰은 어떠한 정보도 제시하지 않고 다만 왕의 칙령에 의해 행해졌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왕의 칙령에 따라 번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공식적인 번역 통로를 통해 진행되었다는 것이고 실제 그러한 사실은 법성의 이름 앞에 붙은 zhu chen gyi lo ts켥 ba dge slong(‘大校閱飜譯師 비구’)라는 칭호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대교열번역사(大校閱飜譯師)라는 칭호는 초기 전파기의 가장 위대한 번역자의 하나이며 《번역명의대집》의 편찬자인 예세데(Ye shes sde)나 《댄까르마 목록》의 편찬자인 팰(dPal brtsegs)과 같은 인물에게만 부여된 칭호임을 고려한다면, 법성이 얼마나 높은 대우를 받았으며, 그와 함께 당시 티벳인에게 있어 한역 불전의 티벳어 번역이 가진 중요성에 대해서도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번역 장소와 관련해 약간의 힌트가 되는 것은 법명인 Chos grub 앞에 붙은 ’gos란 글자이다. 다른 돈황 문헌에서 종종 ’go로 표기되기도 하는 이 글자가 법성의 속성(俗姓)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이미 上山大埈(1967: 139-140)에 의해 설득력 있게 해명되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다만 주목해야 할 것은 법명 앞에 속성을 쓰는 방식이 인도―티벳 전통 속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으며, 동아시아 전통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화에서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볼 때 번역 장소는 티벳 중앙 지역이 아니라 돈황이나 그 인접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콜로폰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항은 위에서 언급한 정도이지만, 법성의 번역의 특징이 매우 원문에 충실한 번역 태도를 보여주고 있고 고의로 누락해서 번역하지는 않았다고 지적되고 있어19) 티벳역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선행 연구의 결과로서 언급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하에서는 돈황본 《해심밀경》과 티벳장경 《해심밀경》 등의 자료와 SNST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티벳대장경(東北目錄 No. 106)에 수록된 《해심밀경》의 번역자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콜로폰이 없어 그 번역 경위를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이 경의 명칭이 《댄까르마 목록》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824년 이전에 번역이 완료되었을 것이다. 또 후대의 부뙨(Bu ston)의 목록(西岡 No. 189)에 따르면 《해심밀경》은 ‘신정어(新定語)에 의해 교정된 것(skad gsar bcad kyis bcos pa)’이라고 기록되어 있어,20) 이러한 교정 작업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번역자에 의해 《번역명의대집》의 편찬 직후에 신정어의 방식에 따라 수행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자료가 돈황본 《해심밀경》이다. 이 사본은 Stein No. 194의 49 folio와 Stein No. 683의 1 folio의 50개의 folio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현존하는 티벳대장경에 실려 있는 분량의 약 42%에 해당된다.21) 木村(1985: 634f)은 돈황본 《해심밀경》에 나와 있는 오류가 티벳대장경에 실려 있는 《해심밀경》에서도 그대로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지만 이것은 한역에는 올바로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는 돈황본 《해심밀경》이 한역으로부터의 번역이 아니라 범본의 번역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그는 돈황본 《해심밀경》이 티벳대장경 《해심밀경》의 저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22)

이들 두 번역본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Pelliot No. 1257에 수록되어 있는 어휘집이다. 이 〈P 1257 어휘집(語彙集)〉은 한역에서 티벳어로 번역된 불교 술어의 어휘집으로서, 이 사본의 제3부에 현장역 《해심밀경》의 한역 용어 106개가 티벳어로 번역되어 실려 있다. 木村隆德(1985)은 이 어휘집으로부터의 어휘 인용을 분류하면서, 이들 번역어가 인도계 문헌의 역어와 일치하는 경우와 중국계 문헌의 역어와 일치하는 경우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어휘집의 성격에 대해 高崎直道(1986: 25)는 한편으로는 인도계(돈황본)의 역어를 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해심밀경》을 놓고 양자의 대응을 메모해서 이후 한역할 때에 사용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여하튼 이들 번역어는 《번역명의대집》의 용어와도 다를 뿐 아니라 티벳대장경에 수록된 《해심밀경》의 번역과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23) 이 어휘집에 보이는 용어를 공유하는 문헌은 814년 이전에 티벳어로 번역된 문헌으로서 주로 산스크리트에 기초한 역어가 다수이지만 한역어로부터의 번역어도 보인다.24)

따라서 이 어휘집의 역어는 신정어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나는 것이 있고 그것은 인도계의 구역어(舊譯語)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木村은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어는 중국계 역어에 영향을 주어 사용되었는데, 예를 들어 如來(tathat켥)를 yang dag par gshegs pa로 번역하는 것이 그것이다.25) 후에 이 단어는 de bzhin gshegs pa로 번역되었다.

木村隆德(1985)의 연구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점은 접두어의 사용에 대한 그의 관찰이다. 그는 범문장역 문헌에서 보면 돈황본 《해심밀경》은 814년에 반포된 칙령의 접두어에 관한 번역 규정에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814년 이전에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26)

그렇지만 비록 《이권본역어석》에서 규정된 방식대로 접두어가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독자적인 접두어의 번역 방식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번역은 한문본으로부터의 번역이 아니라 범어로부터의 번역이라고 간주된다.27) 독자적 방식이란 예를 들어 pari- 를 yongs su가 아니라 kun du로, samyak-을 yang dag par가 아니라 g-yung drung로, sam-을 yang dag par가 아니라 shin du로 번역하는 것이다.

袴谷憲昭(1984: 13)는 접두어가 아닌 일반 단어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기는 하지만 PT 1257 제3부에 대응하는 Stein No. 194 + 683에서 사용된 번역어가 한역으로부터의 번역이라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P 1257에서 사용된 단어 nan gyis reg ching chags, sgyus byas pa, myig ’khrul pa, zil gyis myi non par ’gyur, rtag pa yun du rtag pa, brtan pa yun du brtan pa, thog ma nas zhi ba, rang bzhin gyis mya ngan las ’das pa 등이 Stein No. 194에서 사용된 것과 일치하고 있다.28)

이제 《해심밀경》에 대한 이들 두 번역본과 이에 대한 주석으로서의 SNST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두 번역본의 선후 관계에 대해 일단 木村의 추정을 따른다면 돈황본 → 티벳대장경의 순서가 인정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석의 번역은 주석이 해석하고자 하는 원텍스트의 이해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법성의 SNST 번역은 적어도 돈황본 《해심밀경》에 비해 후대일 것이라고 보는 것이 상식적으로 타당할 것이다.

또한 그의 《해심밀경소》 번역이 814년에 제정된 신정어에 의거해 있다면 그의 번역은 티벳대장경 《해심밀경》과 상당 부분 일치할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성의 번역과 관련하여 과연 그의 번역이 돈황본과 티벳대장경 《해심밀경》 중에서 어디에 가까운가 하는 것을 밝힐 수 있다면 당시 돈황의 번역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할 것이다.

4. 《해심밀경소》 〈일체법상품〉에 대한 법성(法成, Chos grub) 티벳역의 검토

이하에서는 돈황본 《해심밀경》과 티벳장경 《해심밀경》의 용어와 비교하여 SNST의 용어의 차이를 〈일체법상품〉을 중심으로 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그런 후에 한역을 교정하거나 보완하는 데 있어 법성역의 장점을 몇 가지 제시하면서 논의를 마치고자 한다.

1) 〈일체법상품〉의 어휘 비교표
법성이 《해심밀경소》을 티벳어로 번역할 때 어떤 판본에 의지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곳에서 사용되는 번역 용어가 티벳장경 《해심밀경》이 가까운지 아니면 돈황본 《해심밀경》의 어휘에 가까운지를 비교해 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다음 〈표 1〉에서는 이들 세 본에 나오는 동일한 술어를 택해 이들이 각기 어떻게 번역되고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표 1〉

 

위에서 제시한 25개의 단어 중에서 SNST의 번역어가 티벳장경의 《해심밀경》과 같은 것이 16개이다. 나머지도 9개 중에서 6개는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A의 용어와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번역어도 돈황본의 용례와 비슷하게 제시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SNST 번역이 신정어에 의존해서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그렇지만 위에서 *로 표시한 3개의 번역어의 경우 법성의 번역어는 주목할 만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앞의 두 경우는 동일한 구문이기에 함께 묶어서 논의하자.

현장의 번역에서 용맹정진위인연(勇猛精進爲因緣)은 명백히 소유복합어(Bahuvr콒hi)의 형태임을 보여주며, “용맹정진을 원인으로 해서” 등으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A에서 rtul ba’i rgyu로 번역한 것은 고전 티벳어에서 일반적인 방식이며, 문맥에 따라 소유복합어의 방식으로 풀이하든 아니면 격한정복합어 등의 방식으로 풀이하면 되기에 번역상의 오류는 없다.

반면 법성의 번역인 brtun pa’i brtson ’grub kyi rgyu dang rkyen byas pa는 한문의 직역으로서 ‘근면한 정진의 인과 연을 행함’ 또는 ‘근면한 정진이라는 인과 연을 행함’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후자의 번역은 이 복합어가 소유복합어라는 것을 고전 티벳어의 번역보다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여리작의무도사유위인연(如理作意無倒思惟爲因緣)의 번역에도 그대로 타당할 것이다.

세 번째 단어인 若 ~ 則의 경우 산스크리트 원문이 명백히 yad켥 ~ tad켥의 관계부사 구문임을 보여준다. A와 B의 번역의 경우 모두 이런 관계문의 특성에 따라 번역하고 있다. 반면 법성의 경우 한문의 구문에 따라 若을 ‘만일’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며 관계문의 특성을 살려 번역하고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관계문이 없는 티벳어나 한문의 경우 이런 방식의 번역이 더욱 구문적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법성이 다른 곳에서는 관계문을 사용하고 있고 더욱 원측 자신의 해석을 티벳어로 옮기는 중에서도 종종 관계문을 사용하여 번역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관계문의 번역에 서툴러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번역은 아마 신정어에 의해 교정되기 이전의 원래의 법성의 번역 구문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위에서 보았듯이 일반적으로 SNST에서 《해심밀경》 원문을 인용할 경우 그 번역어는 티벳장경에 실린 티벳역의 용어와 흡사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순수한 한문용어의 번역이나 불교 학술용어 이외의 번역에서 SNST는 신정어에 의해 확립된 방식보다는 당시 돈황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번역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고 보인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산스크리트 복합어를 해석하는 방법인 육합석(六合釋) 중에서 지업석(持業釋, Karmadh켥raya)과 의주석(依主釋, Tatpuru콴a)의 번역 방식이다. SNST는 지업석을 las yongs su ’dzin pa’i rnam par bshad pa로, 그리고 의주석을 bdag po’i dbang du mdzad pa’i rnam par bshad pa로 번역하고 있지만, 이 번역은 (특히 후자의 경우) 명백히 한역의 의미에 따라 번역한 것으로서 산스크리트어나 《번역명의대집》(No. 4726-4731)에 실린 las ’dzin pa(No. 4731)나 de’i skyes bu(No. 4728)의 번역어와 차이가 난다.

이러한 티벳역의 복합어 번역 방식은 《성유식론》에 대한 돈황본 사본에서도 반복되고 있어,31) SNST가 당시 돈황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진 한문 불전의 티벳어 번역 방식을 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 티벳역 《해심밀경소》에 인용된 경전명과 인용문의 티벳장경과의 대조
《해심밀경소》 〈일체법상품〉에 인용된 경전은 모두 22종으로 간접 인용을 포함하여 약 108번 인용되어 있다.32) 그중에서 가장 빈번히 인용된 문헌은 《유가사지론》(18회)과 《성유식론(成唯識論)》(14회), 《섭대승론》(10회)이다.

이들 인용경전 중에서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대비바사론(大毗婆沙論)》 《순정리론(順正理論)》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의 티벳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진제(眞諦)역 《섭대승론(攝大乘論)》과 《심밀해탈경(深密解脫經)》은 각기 이역(異譯)이기 때문에 티벳역을 참조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제외하고 이들 인용문 중에서 몇 가지를 택해 예시하면서 《해심밀경소》에 인용된 이들 문헌의 티벳어 문장을 티벳장경의 번역문과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해심밀경소》 티벳역의 번역 과정에서 법성이 의존했던 자료들이 한역된 자료였는지, 또는 이들 문헌들의 티벳역이었는지 아니면 양자를 다 참조했는지 등의 문제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당시 번역 상황의 일단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인용된 경전명의 비교

 

여기서 SNST에 나오는 경전명은 티벳대장경에 나오는 경명과 많은 점에서 차이가 보여주는데, 그 차이는 SNST의 인용이 한문경전명의 직역이라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SNST에서 논서명의 마지막에 붙은 ‘론(論)’은 bstan bcos로 직역되어 있어 티벳장경의 표현과 차이를 보여준다.

문제는 유식부에 속하는 대부분의 논서들이 이미 초기 전파기에 번역이 되어 《댄까르마 목록》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34) 그렇다면 왜 법성이 정확한 제명으로 인용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 이유는 아마 《댄까르마 목록》 자체가 법성에게 알려지지 않았거나 이용가능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은 어떤 경우건 이는 법성이 SNST를 번역할 때 중앙 티벳에서 번역하지 않고 돈황 지역에서 번역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② 인용문의 비교

〈예문 1〉
 

* SNST의 zhes bya’o(= 故名)와 de’i phyir(= 是故)가 대응하는 섭대승론 티벳역의 구문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법성이 한문 구문에 따라 직역한 것으로 보인다.

* 顚倒生相을 SNST는 phyin ci log ’byung ba nyid로 번역하고 있다, 마지막 단어인 티벳어 nyid는 산스크리트 t켥, 또는 eva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기서 법성은 相을 추상명사를 만드는 어미 t켥(= 性)의 의미로 이해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相은 티벳역 rgyu mtshan을 참조하면 nimitta에 대응하는 것으로 〈예문 2〉와 〈예문 3〉의 SNST의 mtshan nyid 역시 한문에 의한 글자의 혼용이다.

〈예문 2〉


* SNST에서 ’di lta ste는 所謂의 번역어이지만. MSgBh와 대응하지 않는 한문의 직역임.
* SNST의 번역은 위의 원측소와 세친석에서 ‘無量行相者. 所謂一切境界行相. 意識遍計者. 謂卽意識說名遍計’의 방점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 번역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MSgBh의 번역과 대조해 보면 자명하다. 더욱 行相35)에 상응하는 SNST의 번역어인 rnam pa’i mtshan nyid는 MSgBh에 따르면 dmigs pa(ala컴bana)로서 법성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문을 직역한 것임을 보여준다.

〈예문 3〉

 

 * 법성은 현장역에서 〈卽〉이 티벳어 nyid(=산스크리트 eva)로 번역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 이것은 그가 卽意識을 yid kyi rnam par shes pa nyid로 번역하는 데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이 번역 역시 그가 한문을 티벳역으로 직역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예문 4〉

 

* 《섭대승론》에 대한 SNST의 번역과 MSg의 번역은 몇몇 사소한 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치하고 있다. 

〈예문 5〉

 

 * 세친석의 從自因生을 인용하면서 원측소는 이를 從自因緣生으로 바꾸고 이에 상응하게 SNST에서도 rang gi rgyu dang rkyen las skyes로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 역시 법성이 한역에 따라 축자적으로 번역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예문6>

 

 * SNST는 無虛팂性을 brdzun pa’i dngos po로 번역하지만 MSgBh의 slu ba med pa nyid가 산스크리트 avisa컴v켥daka에 대응하는 단어이다. (橫山宏一 et. al.(1997), p. 884 참조).

〈예문 7〉

 

* 원측소의 引發功德은 SNST에서 두 방식으로 티벳어로 번역되어 있다. 앞의 번역은 rab tu ‘dren cing skyed pa이고 뒤의 번역은 mngon par bsgrub par bya ba이다. 그런데 有其三用 이하의 세 가지 작용의 나열은 실제 《유가론》에는 나오지 않고 원측이 《유가론》의 의미를 정리한 것이다.

반면 뒤의 번역은 《유가론》의 인용이다. 橫山宏一, 廣澤隆之(1996: 54)에 따르면 引發功德의 티벳역은 yon tan mngon par sgrub pa로서 이 번역어는 SNST의 인용문이나 《유가론》 티벳문과 거의 일치한다. 이것은 법성이 《유가론》을 인용하는 경우와 원측의 해석을 구분해서 번역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예문 8〉  

 * 《변중변론》은 삼성(三性)과 오사(五事)의 관계에 대해 게송으로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SNST의 번역은 원측소의 설명을 직역한 것으로, 《변중변론》의 내용을 요약해서 제시한 것이다.

〈예문 9〉  

 * 《유가론》 티벳역 gang gsungs pa der의 구문은 산스크리트문이 관계문임을 보여주지만 SNST에서는 관계문의 방식으로 번역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한역이 관계문의 방식으로 번역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SNST에서는 세존의 설을 bshad pa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것은 gsungs pa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번역명의대집》의 방식에도 맞는 번역임을 고려한다면 아직 이 규정이 철저히 준수되지 못한 단계의 번역임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3) 법성역을 통한 《해심밀경소》 한문본의 교정 가능성

앞에서 보았듯이 SNST는 신정어(新正語)에 의거하면서도 부분적으로는 한문의 축자역 방식도 병행하고 있다. 이는 단지 원측의 해석 부분의 번역에서뿐 아니라 원래의 《해심밀경》의 인용문을 번역하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이 인용문은 돈황본 《해심밀경》의 문장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SNST가 번역될 당시 돈황본을 참조해서 번역되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SNST는 이미 교정된 SNS를 참조해서 번역되었지만 동시에 한문 구문이 가진 특성을 살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한문의 축자역에 따른 이해는 종종 내용상의 오류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行相〉을 rnam pa’i mtshan nyid로 글자별로 나누어 번역하고 있는 것이나 vi콴aya를 의미하는 〈境相〉을 yul gyis mtshan nyid로 번역하는 것이 그것이다.39) 그 밖에도 한역의 相이 가진 mtshan nyid(= lak콴a컹a) 또는 mtshan ma/rgyu mtshan(nimitta)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한문에만 의거해 번역하는 데에서 나오는 오류도 지적될 수 있다.40) 

이러한 번역상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법성의 번역을 한문본과 비교해 읽을 때 한문본이 가진 불확실한 개소나 오류를 교정해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하에서는 SNST를 통해 《해심밀경소》의 교정 가능한 경우를 제시하겠다.

 가)한문판본 오류의 교정

① HB 237c9: 無淨色喩圓成故에서 無淨色은 내용상 이해할 수 없음. SNST(301a4)는 nor pa med pa yongs su grub pa’i dpe bstan pa’i phyir로서 無亂으로 이해했고 이것은 눈병이 없어 착란의 현상이 없는 것을 원성실성으로 보는 《해심밀경》의 설명과도 일치한다.

② HB 237c12: 眼等五眼으로 되어 있고 각주에서는 아마 이것이 五根의 오기라고 적고 있지만 뒤따르는 내용에서 판단해 본다면 五根은 五識의 오기로 보인다. SNST(301a5)에서도 rnam par shes pa lnga po(=五識)로 번역되고 있다.

③ HB 237c15: 十二唯識은 二十唯識으로 교정해야 한다(nyi shu pa: 301a8).

④ 240c10: 但有無名義故를 但有名無義故로 바꾸어야 이해 가능하다. SNST(308a7)는 ming kho nar zad kyi don med pa’i phyir ro 로 번역하고 있다.

⑤ HB 240c23: 起於熏智는 起於薰習으로 바꾸어야 한다.
SNST(308b5)는 교정안에 상응하게 yongs su 〈b〉sgo ba bskyed nas 로 번역하고 있다. yongs su bsgo ba가 薰習과 유사하게 변역된다는 것에 관해서는 橫山宏一 et. al.(1997), p. 796을 볼 것.

나) HB 《해심밀경》 〈일체법상품〉에는 여러 판본의 불분명한 개소를 각주로 처리해 놓은 곳이 10군데 있다. 이들 중에서 몇몇은 티벳역의 도움 없이도 해결이 가능한 곳이며 반면 몇몇은 티벳역의 도움으로 해결되거나 달리 교정될 수 있다.

① 234a의 각주 1은 경본에 따라 〈謂〉를 첨가하는 것이 좋음.

② 235a의 주 1은 以諸法功能差別〈故〉로 〈故〉를 삽입하는 문제. SNST 294a4에서 chos rnams kyi nus pa’i bye brag tha dad pas 로서 故를 보충하는 것이 좋을 듯함.

③ 236a: 若中邊에서 若〈依〉中邊으로 〈依〉를 첨가하는 문제. SNST 296b8-297a1에서 bstan bcos dbas dang mtha’ rnam par ’byed pa dang sbyar ba 로 되어 있어 한 단어(아마 依)를 첨가해 읽었다고 보인다.

④ 236c: 解脫二縛二縛用으로 중간의 二縛을 제거하여 解脫二縛用으로 교정하는 문제. 티벳역(298b3)도 ’ching ba rnam par dgrol ba’i nus pa로 교정을 지지하고 있다.

⑤ 237c: 五眼을 각주에서 五根으로 의심된다고 추정하고 있으나 티벳역(301a5) rnam par shes pa lnga po에 따르면 五識이다.

⑥ 238a: 각주는 〈相〉을 보완하여 眩톜衆〈相〉喩로 읽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티벳역(301b6f.: rab rib kyi mtshan ma sna tshogs kyi dpe bstan pa’o)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⑦ 238a: 각주 2에서 경본에 따라 耶를 取로 읽어야 한다고 제안하는데, 사실상 사본에서 耶와 取는 보통 異體字로 취급되고 있다.

⑧ 239a: 각주 1에서 이본에서는 謂白種現執 成所執故에서 白을 由로 바꾸어 謂由種現執 成所執故로 읽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내용상 타당하다고 보이며, 티벳역(304a8)은 ’di ltar sa bon gyis dbang gis brtags pa snang bar gyur nas btags pa nyid du mngon par grub pa’i phyir te/ 로서 이유를 나타내는 단어인 phyir를 사용하고 있어 由로 읽고 있다고 보인다.

⑨ 239c: 각주 2에서 說常常有를 說常常時로 읽을 것을 제안하고 있는데, 구문상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뒤따르는 言恒恒時의 표현에 따라 바꾼 것으로 보이지만, 言恒恒時라는 표현은 앞의 〈說〉자를 〈言〉자로 바꿈으로써 4음절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뒤의 〈時〉자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티벳역(305a6)에서는 rtag pa rtag pa zhes bya ba gsungs so 로서 說常常言의 방식으로 읽었다고 보인다. 이것은 바로 직전의 說常常言과 說恒恒言 등의 표현에 의해서도 지지된다.

⑩ 242c: 각주 1에서 初以上이 初〈地〉以上의 〈地〉의 탈자로 의심하고 있는데, SNST 313b3-4에서 sa dang po yan chad로 번역되어 있어 원문도 初地以上이었다고 보인다.

다) 이들 이외에도 한국불교전서 《해심밀경소》 〈일체법상품〉에 나오는 오탈자와 글자의 순서가 뒤바뀐 곳은 다음과 같다.

① 235a5: 而成得立은 而得成立으로 바꾸는 것이 옳다.
② 238c12: 以는 似의 오자임.
③ 239c21: 淸X正法에서 X에 해당되는 淨이 누락된 것으로 보아 이를 淸〈淨〉正法으로 교정하는 것이 좋음.
④ 240a3: 成圓實性을 圓成實性으로 글자의 순서를 바꿈.

5. 요약 및 결론

티벳어 번역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전거는 814년 제정된 《번역명의대집》과 《이권본역어석》이다. 이 문헌에서 규정된 방식이 신정어(新定語)로서 이를 통해 이전의 번역 문헌의 용어가 새롭게 교정되었고 그 이후의 번역도 이 방식에 따라 진행되었고, 이것들이 수집되어 후대에 티벳대장경으로 편찬되었다. 따라서 그 이전의 번역용어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티벳대장경에 의거하는 한 파악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간격을 채워주는 것이 돈황에서 발견된 티벳어 자료들이다. 그리고 이 자료들은 많은 부분 중국 찬술이나 중국에서 번역된 불전의 티벳어 번역이기 때문에 7~9세기 티벳의 번역 상황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가장 두드러진 예가 법성(Chos grub)에 의한 원측의 《해심밀경소》 번역(= SNST)이다.

본고에서는 SNST가 가진 번역상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돈황에서 행해진 한문 불전 번역에 대한 일본학계의 연구 성과에서 출발하여 SNST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콜로폰의 분석을 통해 번역자인 법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논의했고 아울러 SNST와 《해심밀경》의 두 티벳어 번역용어와 비교했다.

그리고 SNST가 번역될 때 이들 중 어느 판본에 의거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일체법상품〉에 실린 용어를 비교해서 SNST가 명확히 티벳장경에 의거하고 있음을 제시했다. 또한 SNST 〈일체법상품〉에서 인용된 경전명을 북경판 티벳대장경의 그것과 비교하여 왜 차이가 나는지의 이유를 추정했고, 약 108개의 인용분 중에서 9개를 선택하여 번역용어의 차이와 그 이유를 추적해 보았다.

SNST 전체에 걸친 조사가 완결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 결론을 미리 내는 것은 조급한 일이지만 잠정적 결론은 법성의 번역에 두 층위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인도 찬술의 문헌을 인용한 개소의 번역에서는 상대적으로 티벳장경의 용어법과 비슷한 반면 원측 자신의 해석을 번역한 개소에서는 한문의 축자번역이 많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SNST의 자료적 가치를 제시하기 위해 이를 통한 한국불교전서 1권에 실린 원측의 《해심밀경소》의 교정을 시도했다. 매우 심각한 한문판본의 오류가 SNST에 의해 교정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 이 논문은 《인도철학》 27집(2009)에 실린 것을 재수록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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