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는 말

틱낫한 스님의 한자 이름은 석일행(釋一行)으로 1926년에 베트남의 중부에서 출생해서 16세인 1942년에 임제종에 속하는 사찰로 출가했다. 스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틱낫한을 ‘타이(Thay)’1) 라는 존칭으로 부르고 있다. 타이는 출가 이후 “모든 불교는 삶에 참여한다.”는 취지의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를 주창해서 민중의 고통을 덜어주는 실천적인 사회활동에 커다란 노력을 기울였다.

1961년 9월 펠로우십 장학금을 받고 2년의 일정으로 미국 프린스턴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던 틱낫한 스님은 1963년 12월 16일 컬럼비아 대학에서 머물며 베트남 학과를 이끌어 달라는 학장의 권유를 거절하고 귀국했다. 1965년 사회봉사청년학교를 설립해서 본격적으로 사회문제에 개입했고, 또 불교대학을 설립해서 현대화된 승가 교육을 시도했다.

다소 급진적인 이러한 개혁 활동으로 인해 베트남의 원로 스님들에게 적지 않은 질타를 받고 외면을 당했지만 그의 사회개발 사업은 커다란 성과를 일궈냄으로써 마침내 사이공 지식인들의 찬탄이 대상이 되기까지 했다.

1966년에는 사회의 문제를 불교의 입장에서 풀어보려는 취지에서 접현종(接現宗)이라는 불교 종파를 창립하고, 베트남 전쟁의 종전을 설득하기 위해 미국의 워싱턴으로 가서 그해 6월 1일 5개 항목으로 된 평화제안서를 발표했다.

그런데 베트남의 공산 정부가 그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였기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스님은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이후 1968년까지 미국에 머물며 반전평화운동을 전개했고, 그런 가운데 1967년에는 마틴 루서 킹 목사에 의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을 받기도 했다.

베트남 정부에 의해 귀국 금지 조치를 당한 스님은 1973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그리고 종전 후에는 보트피플로 대표되는 베트남 난민을 돕는 일에 주력하며 그들의 고통을 치유해 주는 한편, 정신적인 뿌리를 잃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었다. 1982년 프랑스의 보르도 지방에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를 설립하고, 1983년부터는 미국에서도 가르침을 펼치기 시작해서 1990년대에는 버몬트 주에 그리고 2001년에는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 인근에 사찰을 세웠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백여 종이 넘는 책을 발표하고 세계 각국을 오가며 설법을 하면서 불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참신한 해석과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시적인 어투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2)

스님은 일찍이 1995년에 일단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일반 사회는 물론 불교계에서조차 그다지 커다란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92년에 처음으로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책은 스님의 방한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줄곧 서점의 한쪽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야 했다.

한마디로 말해 작가로서 스님의 한국에서의 데뷔전은 처절한 실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딱 10년 뒤 《화》라는 책이 출간되어 의외(?)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가 지은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서점가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급기야 2003년에 명진출판사의 초청으로 다시 방한을 하게 되었고, 불자는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 달라이 라마와 더불어 현대 세계 불교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러한 인식은 그 무렵을 전후해서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던 현각 스님이 여러 대중 설법회장에서 틱낫한을 숭산, 달라이 라마 그리고 마하 고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자주 거론한 것이 여러 매체를 통해 곧잘 인용됨으로써 거의 공식적인 것으로 굳어지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의 틱낫한의 재발견은 비록 다소 우연적인 일로 촉발되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일정 정도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스님의 설법, 즉 콘텐츠에는 적지 않은 독자들의 눈길을 이미 사로잡았고 또 앞으로도 사로잡을 여지가 있는 ‘그 무엇’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그 후로 작금에 이르기까지 약 40여 종에 이르는 스님의 책이 출간되었고, 또 신간이 끊임없이 출간 준비 중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이 바로 왜 틱낫한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될 것이기에 본론에서 나름대로 그것을 찾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나는 2002년 여름에 명진출판사에서 구성한 플럼 빌리지 취재단의 일원으로 그곳을 처음으로 방문해서 틱낫한 스님을 인터뷰하고, 그 후로도 두 차례 더 방문해서 보완 취재를 하기도 하고 수행에 동참하기도 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님의 책을 네 권 번역하고 한 권의 방문기를 지었으며, 십여 종이 넘은 잡지에 유관 기사를 써왔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스님이 어쩌면 우리 한국 불교가 속해 있는 북방대승불교를 그 핵심과 정체성을 놓치는 일 없이 가장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스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스님의 책을 번역하고 여러 가지 자료의 연구를 통해 이론적인 차원의 해명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으로서는 심증은 이미 섰으나 물증의 구성이 아직은 빈약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본격적인 이론 작업의 완성과 발표는 훗날로 미루고 이번 글에서는 주로 직접 참관하고 체험한 다소 주관적인 측면에서 왜 틱낫한인가 하는 문제에 대답해보겠다. 그렇다고 해도 보편적인 설득력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으므로 미리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또한 이런 식의 글쓰기가 어떤 경우에는 대상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는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남들이 이미 말한, 그것도 일종의 립서비스에 해당되는 평가들을 이리저리 엮어서 문제에 대답하는 것은 결국 그 밥에 그 나물, 즉 본질적으로 동어반복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님은 달라이 라마에 비하면 국제정치적인 차원의 프리미엄을 아마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았던 잠깐 동안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누린 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책에서 스님이 우습게도 미국의 9·11 테러 이후 일단의 제자들을 데리고 종교 활동을 위해 미국에 입국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친 초정밀 검색을 당하느라 겪은 고초를 털어놓는 대목은 그가 오늘날 국제정치적인 차원에서 누리고 있는 지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곧잘 국빈 자격으로 서방 국가를 방문하는 달라이 라마에 비하면 거의 필부 수준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를 기꺼이 만나고자 하는 서방 국가의 지도자는 적어도 근래에는 한 사람도 없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의 대중적 인기 또는 귀의에는 국제정치적 차원의 프리미엄이 거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왜 틱낫한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왜 달라이 라마인가 하는 문제의 그것과 시작부터 다르게 전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가 누리고 있는 서방 세력이 얹어준 프리미엄은 어떤 분석에 따르면 그 인기와 귀의의 적어도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부분을 우선 집중적으로 규명해서 긍정 또는 부정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지만, 틱낫한 스님의 경우에는 적어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규명하거나 분석할 것이 거의 없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프리미엄이 전혀 없는데도 전 세계적으로 달라이 라마에 버금가는 그리고 적어도 한국에서는 달라이 라마와 그 인기와 귀의에 자웅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달라이 라마의 그것에는 음모론이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지만, 틱낫한은 그러한 음모론으로부터 자유로우므로 그에 걸맞은 다른 설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2. 왜 틱낫한인가?

1) 직관적이며 체험적인 대답:  이론과 실천의 통일

2007년 새해 첫날이던가 혹은 그 무렵의 일로 기억된다. 그날 아침 일찍 플럼 빌리지 승가의 모든 구성원들은 틱낫한 스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새마을3)의 만월선당으로 서둘러 갔다. 설법이 7시 반에 시작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몹시 서두른 덕분에 6시 반 무렵에 도착해서 앞에서부터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6시 50분쯤, 그러니까 설법이 시작될 시간이 아직도 40분이나 남았는데, 스님이 제자 하나를 대동하고 선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법상에 올라 엉덩이에 쿠션을 깔고 무릎을 꿇고 앉는 베트남식 정좌 자세를 취하더니 눈을 감고 좌선에 들어갔다.

나는 스님이 그렇게 잠시 좌선을 하고는 바로 설법을 앞당겨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당시 속랍이 이미 여든이 넘은 스님은 수미산처럼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좌선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스님의 이른 출현에 당황하던 사람들은 모두 재빨리 각자 편한 대로 좌선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렇게 십 분, 이십 분이 지나가자 계속 흐트러지는 자세를 되잡느라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한 사람이 많아졌고, 마침내 좌선을 그만두는 사람도 늘어만 갔다. 그러나 스님은 처음 자세로 본래의 설법 예정 시간인 7시 반까지 좌선을 지속했다. 그러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낮게 경탄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이미 감동 어린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에피소드는 여느 종교단체에서 혹은 정치 집회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쉽게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연출인지 아닌지는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그리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평소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체화된 것이 아닌 연출은 부자연스럽고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에 조만간 들통이 나고 마는 법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기억을 이리저리 뒤져보아도 연출된 것이라도 그런 모습을 한국의 사찰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서로 알아차리고 서로 민망해하는 촌극을 본 적은 여러 번 있는 것 같다.

어느 사람의 평소 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우리는 그를 신뢰한다. 특히 종교인의 경우에 이론과 실천의 일치, 즉 통일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는 남을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감복시킬 수 없다. 스님은 늘 강조하는 전념4)을 생활화해서 항상 고요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을 플럼 빌리지 승가의 구성원들에게 보여준다. 플럼 빌리지는 게스트들에게 전념의 체득을 위해 적어도 2주 이상은 플럼 빌리지에 머물 것을 권고하고 있고, 각종 안거 프로그램은 최소 일주일을 묵으며 함께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게스트들은 최소 일주일 이상씩 플럼 빌리지에 묵으면서 스님의 설법을 듣고 함께 걷기 명상(walking meditation)을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스님을 근거리에서 접할 기회가 많으므로 스님의 행동거지가 연출된 것인지 아닌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그것이 스님의 본래 면목이라는 것을 확신하기에 한 번 왔던 게스트들이 재차 삼차 방문을 하다가 마침내 정식으로 삼보에 귀의해서 불자가 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는 일반 재가불자들이 소위 큰스님과 직접 함께 수행을 하거나 각종 활동을 하는 것이 도대체 왜 그렇게 드문 것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틱낫한 스님과 함께 수행하고 생활해보면 스님의 이론과 실천이 통일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왜 틱낫한인가 하는 물음에 근본적이고도 직접적인 대답이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것은 물리적인 만남이 가능한 사람들에게만 설득력이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2) 간단해서 알기 쉬우면서도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수행론

틱낫한 스님이 가르치는 수행론은 전념, 씨앗(種子), 전환(transformation)의 세 가지 주요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언급한 전념은 처음에는 육체상의 움직임과 변화를 의식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신적 차원의 움직임과 변화를 감지하기 위한 일종의 연습인 것이다.

전념의 진짜 대상은 바로 ‘씨앗’이다. 스님은 마음을 갖가지 종류의 씨앗이 심어져 있는 밭에 비유하고 있다. 이 씨앗에는 가치상으로 볼 때 연민·기쁨·희망과 같은 건전한 또는 긍정적인 것 그리고 슬픔·두려움·곤란과 같은 불건전한 또는 부정적인 것 그리고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적인 씨앗, 이렇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본다. 또한 발생적인 면에서 볼 때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 두 종류가 있다.

선천적인 것으로는 사람이 타고나는 감정을 들 수 있으며, 후천적인 것으로는 학습이나 교육을 통해 형성된 지식 또는 편견, 즉 사견을 손꼽을 수 있다. 스님은 마음이라고 하는 밭에 심어져 있는 이러한 씨앗들이 끊임없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시들고 하는 과정이 바로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내용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어떤 종류의 씨앗이 많이 싹을 틔우고 또 그 힘이 강한지에 따라 삶의 고락(苦樂), 즉 불행과 행복이 결정되는 것이다.

마음속에 심어져 있는 씨앗들은 조건이 알맞게 되면 싹을 틔우고 마침내 꽃을 피운다. 다시 말해 이것은 처음에 아주 미세한 성질을 가지고 있던 씨앗이 이윽고 강한 성능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우리의 마음속에는 ‘화’라고 하는 씨앗이 이미 들어 있는데, 상대방이 나를 속이거나 해치려 하고 있다고 오해를 하는 순간 그것이 알맞은 조건이 되어 화의 씨앗은 지체 없이 싹을 틔우게 된다. 틱낫한 스님은 꽃에 물을 주면 꽃이 활짝 피듯이 이러한 오해를 화의 씨앗에 물을 주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화를 다스리려면 이론적으로 말해서 화의 씨앗에 물을 주지 않으면 된다. 물을 주지 말아서 화의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어느 것이 화의 씨앗인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이 물을 주는 행위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이 전념이라고 하는 에너지인 것이다.

마음속에 심어져 있는 미세한 화의 씨앗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라 오해 등등의 물을 받고 싹을 틔워 마침내 꽃을 피우는 과정은 순식간에 벌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의 씨앗이 활짝 꽃을 피우고 나서야 그것을 인지하고 후회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평소 전념의 수행을 통해 그 힘을 길러 화의 씨앗의 존재와 움직임을 확인하고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화의 씨앗을 잘 보듬고 다독거리면서 물을 주지 말아서 그것이 급속하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을 막아야 한다.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화는 우리가 갖추고 있는 기관(器官)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일부다. 화가 나면 스스로를 돌이켜봄으로써 화를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 ‘화야, 꺼져버려라. 난 네가 필요 없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배가 아플 때 ‘배야, 난 네가 필요 없으니 꺼져버려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배를 잘 보살펴준다.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화를 보듬어주고 잘 보살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궁극적으로 화의 씨앗이 본래의 성질을 잃게 만드는 것을 ‘전환’이라고 부른다. 이 전환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화가 완전히 다스려진다.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상 화는 정말로 소멸된 것이 아니라 다만 억압, 즉 참고 있을 뿐이므로 언제라도 금방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한편 마음이라고 하는 밭에는 사랑과 연민 같은 긍정적인 씨앗도 심어져 있다. 우리는 전념의 힘을 통해 이러한 씨앗을 빨리 확인해서 그것에만 선택적으로 물을 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랑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싹을 틔우고 마침내는 활짝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하고 증오나 미움 그리고 화는 자리 잡을 곳이 없어지게 된다. 이때 비로소 우리는 참다운 행복과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전념, 씨앗, 전환이라고 하는 세 가지 주요 개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념이다. 전념이라고 하는 에너지가 없으면 씨앗의 움직임은커녕 씨앗의 존재 자체도 제대로 확인하기 힘들므로 그것을 전환하는 일은 요원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은 전념을 가장 힘주어 강조하고 될 수 있는 한 많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님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수행의 관건은 바로 전념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스님의 입장에서 볼 때 전념은 수행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스님의 수행론은 전념의 힘을 길러 긍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하며, 부정적인 씨앗은 물을 주지 않고 잘 보듬고 다독여서 궁극적으로 그 성질이 바뀌게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수행론은 이론적으로도 매우 간단하고 그 실천 역시 어렵지 않고 구체적이며 막연한 부분이 없다.

지금 당장 우리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한국 불교의 전가의 보도라고 할 수 있는 간화선은 어떤가? 화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번뇌를 처리하기 위해 화두가 절로 터질 때까지 붙들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그것이 모든 번뇌의 궁극적인 소멸로 통하는 길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방법이 요원하고 막연하며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점 때문에 일반 불자들 또는 명상 수행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3) 전통 술어의 현대적이면서도 긍정적인 변용

틱낫한 스님은 전통 술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현대인이 알아듣기 쉽고 뉘앙스가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표현하기 좋아한다. 예를 들어 스님의 책에서는 ‘interbeing’이라고 하는 아직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신조어가 곧잘 사용되고 있는데, 이 단어는 직역하자면 ‘상호존재’라고 할 수 있고, 의미는 곧 ‘상즉상생(相卽相生)’이다.

스님은 이 단어를 불교의 가장 중요한 개념의 하나인 ‘무아(無我)’를 대체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무아’는 표현도 부정적이지만, 그 의미도 언뜻 파악하기 힘든 면이 있다. 그래서 심지어는 비불교적 또는 반불교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갖가지 해석과 이해가 난무하고 있기도 하다. ‘무아’를 ‘비아(非我)’로 규정하려고 한다든지 ‘아’를 가아(假我)와 진아(眞我)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 등이 그에 해당된다.

스님은 ‘무아’의 본질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해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interbeing’이라는 말을 고안해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삼법인의 하나인 ‘제법무아(諸法無我)’를 “모든 존재에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라고 기존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것에 비해 ‘interbeing’의 말의 의미대로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해서 존재한다.”라고 해석해보면 불자가 아니라 해도 금방 이해하기도 쉽고 표현도 긍정적인 뉘앙스를 갖게 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탁월한 변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통 술어를 현대적이면서도 긍정적으로 변용하려는 스님의 노심초사는 여러 곳에서 엿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또 하나는 부처님 당시에 제정된 5계(戒)를 ‘다섯 가지 전념 훈련(The Five Mindfulness Trainings)’ 이라고 개칭하고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적극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제1훈련: 삶이 붕괴될 때 야기되는 고통을 깨달음으로써 동물과 식물은 물론이고 광물까지도 헛되이 목숨을 잃거나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자비심을 기르고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5계의 불살생계에 해당된다.

제2훈련: 도둑질하거나 남의 재산을 탐하지 않고, 남의 재산을 존중해 주되 착취와 사회적 불의 그리고 억압을 좌시하지 않으며 나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재산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관대함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불투도계에 해당된다.

제3훈련: 부적절한 성관계를 갖지 않음으로써 개인과 부부와 가족 그리고 사회의 안전과 고결함을 지키는 일에 책임감을 배양하는 것이다. 불사음계에 해당된다.

제4훈련: 언제나 사랑이 깃든 부드러운 말을 하고 남의 말을 경청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행복을 가져다주려고 한다. 남을 비난하거나 경멸하는 말을 삼가고 분열과 불화를 일으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갈등이 생겼을 때는 반드시 해소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불망어계에 해당된다.

제5훈련: 먹고 마시는 등의 모든 소비에 주의를 기울여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정신적·신체적 증진을 도모한다. 술을 비롯해서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모든 것을 소비하지 않고, 나쁜 내용이 들어 있는 TV 프로그램, 영화, 잡지 그리고 책도 보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다. 불음주계에 해당된다.

틱낫한 스님은 5계의 본질이 나쁜 과보를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소극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지켜서 몸에 익게 해야 한다는 뜻에서 계율이라는 말 대신 훈련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 또한 단순히 표현만 변용한 것이 아니라 내용도 ‘~하지 마라.’라는 금계(禁戒)에서 적극적이고도 의식적으로 ‘~하라.’라는 권계(勸戒)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4) 전통적인 계율과 수행의 과감하고도 창조적인 개변

스님은 전통 술어를 현대적이면서도 긍정적인 표현으로 변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전통적인 계율과 수행도 창조적으로 개변하는 과감성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2003년 서울의 중앙승가대학에서 개정된 계율을 발표한 일이다. 이것은 2,600년 만에 처음으로 계율을 현대화해서 개정한 것으로 그 안에는 자동차, 컴퓨터, 텔레비전, 전자게임, 인터넷 등 현대 문명, 혹은 문화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었다.5) 스님은 스스로 이 일을 혁명적인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개정된 계율은 현대사회에서 수행자가 겪는 실제 상황과 그들의 실수와 약점에 초점을 맞추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본질적으로 따져 보면 전통적인 행동 수련 조항 중 많은 부분이 그대로 수록되었다. 다만 표현만 현대화되고 좀 더 명확하게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새로 추가된 내용도 많다.

붓다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또한 전통적인 항목 가운데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부분은 없앴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 전통적 계율은 여전히 그대로 있으므로 그것을 참조하고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수행자들이 20년 단위로 함께 모여서 계율을 개정할 것을 권한다. 그렇게 할 때 계율은 신선하고 살아 있는 것으로 유지되며 수행자들 역시 깨어 있는 행동 수련을 더욱 쉽게 이해하고 나날의 삶에 적용해 더 열심히 수행에 정진할 수 있다.6)

스님의 말을 들어 보면 변화된 사회에서 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계율을 개정한 것이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이것은 찬사를 얻기보다는 외면 내지는 분노에 가까운 반감을 산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부처님이 제정하신 것을 어찌 함부로 바꿀 수 있느냐 하는 정서적인 차원의 거부감은 이해할 수 있으나 적어도 스님을 비난하려면 그는 전통 계율을 온전하고도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출가자여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시대가 변해 전통 계율 가운데 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바람에 철저히 지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계율의 현대화를 위한 노력을 시건방진 시도로만 치부하는 것은 정신 나간 남방 소승불교의 출가자들이 전통 계율에 언급된 바가 없다는 이유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으로 어처구니없고도 남세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거나 플럼 빌리지에서는 개정된 계율을 준수하고 있는데, 그 기풍은 언젠가 한동안의 논의 끝에 전통 계율을 온전히 유지하기로 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한 어느 한국 종단의  그것보다 오히려 훨씬 더 엄격해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틱낫한 스님의 창조적인 개변 정신을 잘 보여주는 수행법 가운데 하나로 자자(自恣)를 매우 적극적으로 현대화시킨 ‘새로 시작하기(Beginning Anew)’라는 것을 들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꽃에 물주기: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그 사람이 훌륭한 일을 했으면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승가에 대한 그의 기여를 빛나게 하고 그의 장점이 늘어나도록 격려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② 후회 나누기: 우리가 했던 행동이나 말 그리고 생각에 미숙한 점이 있었으나 미처 사과하지 못했다면 이때 털어놓는다.

③ 마음의 상처 표현하기: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 그리고 생각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이 있으면 말한다. 이 과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다른 자리를 마련해서 당사자 둘이 일대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필요하다면 두 사람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제3자로 삼아 입회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는 반드시 꽃에 물주기를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④ 오래된 어려움 나누기 및 도움 요청하기: 과거에서 비롯된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음으로써 그들이 우리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우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을 지원할 수 있게 한다. 

자자는 본래 하안거의 마지막 날에 정진하던 대중으로 하여금 보고 듣고 의심하는 세 가지 일에 걸쳐 자신이 범한 죄과를 대중에게 고백하고 참회하는 수행법이었다. 스님은 이것을 일상화시켜서 자기 자신, 즉 자신의 과거 행동 그리고 말과 생각을 깊숙이 그리고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자기 내면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쾌하게 새출발하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이 수행법은 친절한 말과 자비심에서 우러나오는 경청의 능력을 계발하며 승가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인지하고 감사하는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3. 끝맺는 말

왜 틱낫한인가라는 물음은 먼저 왜 틱낫한을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은가 하는 것으로 바꾸어 볼 수 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는 이론과 실천의 빈틈없는 통일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적이고도 영적인 차원의 감화력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와 같은 범부들이 스스로 자기 마음 또는 인간관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론을 이해하기 쉽고도 간결한 언어로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위에서 제시한 네 가지 사항 가운데 앞의 두 가지가 그것에 해당된다.

다음으로 그 물음은 넓게는 현대의 세계 불교와 좁게는 우리 한국 불교가 틱낫한 스님에게서 작금 배워야 하거나 눈여겨 보아두어야 할 점은 무엇인가 하는 것으로 바꾸어 물을 수 있다.

 그 대답으로 제시된 것은 뒤의 두 가지, 즉 전통 술어의 현대적이면서도 긍정적인 변용 그리고 전통적인 계율과 수행의 과감하고도 창조적인 개변을 통해 끊임없이 불교의 현대성과 보편성을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틱낫한 스님이 달라이 라마에 비해 급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도의 결과가 현대의 세계 불자와 명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호응을 얻고 있기에 달라이 라마가 누리고 있는 엄청난 국제정치적인 프리미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더불어 현대 세계불교의 쌍두마차이자 특정 종교를 떠난 영성 수련분야에서도 손꼽히는 대가의 한 사람으로 확실하게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불교의 교리와 수행법은 스님의 참신한 해석과 실천을 통해 새로운 형식과 표현으로 현대인들의 마음의 질병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 있는 방법론의 하나로 확실히 자리매김되고 있는 것이다.

선종을 중심으로 하는 통불교적 입장에 서 있는 한국불교로서는 그 종교적 토양이 거의 비슷한 임제종 선사인 틱낫한 스님이 보여주고 있는 불교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왜 더 먼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선의의 경쟁심을 가지고 연구해서 또 다른 창조적 차원의 계승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그러나 그러기보다는 어찌된 일인지 달라이 라마를 찾아가 사진을 찍는 데 급급한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입맛이 좀 씁쓸해진다. ■

 

진현종 /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양의 역사와 사상 분야의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틱낫한 스님과의 소박한 만남》 《한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여기, 공자가 간다》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틱낫한의 행복》 《틱낫한 스님의 아미타경》 《틱낫한 스님의 아! 붓다》 《틱낫한, 내 스승의 옷자락》 《우리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행복한 사람 달라이 라마의 인생 수업》 《달라이 라마 삶을 이야기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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