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불교평론》에서 다석사상(多夕思想)에 관심을 가져 준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불교 시인 고은이 다석(多夕)을 총기 넘치나 부질없는 생각을 한 늙은이로 평가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1) 유불선과 기독교를 하나의 사상으로 회통시키는 일이 시인에게 낯설게 보였을 것이다.

좀 더 솔직하자면 불교를 기독교식으로 의미화한 것이 마음에 거슬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無) 혹은 공(空)의 시각에서 기독교 서구를 능가하는 불교적 신학을 기초했던 교토학파의 사상가들과 다석의 출발점이 달랐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석은 불교 자체를 온전히 긍정했다. 하늘로부터 계시받을 것은 다 받은 종교라고도 하였다.

그의 제자 함석헌은 ‘뜻’에 있어 불교 역시 기독교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다석의 시종일관된 관심은 기독교의 정수를 동양적으로, 비정통적 방식으로 언표하고 살아내는 일이었다. 헬라화를 거친 제도적 은총의 종교로서가 아니라 유불선의 바탕에서 이해된 수행적 기독교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불교는 다석에게 기독교적 핵심을 표현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유교도 그러했으나 ‘없음’을 강조한 불교가 비서구적 기독교를 말할 수 있는 원천적 토대라 생각한 것이다. 기독교를 ‘없음’의 빛에서 재구성한 다석 신학―‘없이 계신 하느님’―은 그렇기에 불교와 더불어 말할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다석은 유교 역시도 본래성에 있어 불교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석은 ‘태극이무극(太極而無極)’이란 말과 ‘진공즉묘유(眞空卽妙有)’란 것을 함께 본 것이다.

이것은 교토학파에게 없는 다석의 고유한 시각이다. 조상숭배로 전락한 유교의 역사적 실상을 모르지 않으나 유교 또한 절대무이(絶代無二)한 종교라 여긴 것이다. 여기서 유교는 기독교 고유의 타자적 인격신관을 수행적으로 순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유교의 종교성을 뜻하는 ‘효(孝)’ 곧 부자불이(父子不二, 父子有親)를 다석은 ‘하늘 뜻’ 따르는 예수의 십자가로 이해한 것이다.

결국 다석사상은 불교적 바탕(空)에 유교적 내용(孝)을 첨언하여 기독교의 십자가를 해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다석사상은 ‘삼재론(三才論)’이라 불리는 한국 고유한 문화 원리가 있어 가능했다.2) 천지인(天地人) ‘삼재론’은 불교, 유교 그리고 기독교를 회통시키는 원리이자 ‘없음(빈탕)’에 초월적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불교적 ‘공(空)’과 같으면서 다르다. 즉 ‘공’이 ‘0도=360도’의 세계관을 반영한다면3) 다석의 ‘없음(빈탕)’은 본래 수직적 차원의 영적(天)세계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간다, ‘위’로 부른다는 말을 다석은 수없이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없이 계신 이’를 궁극적으로 인간의 ‘밑둥(바탈)’에서 보았듯이 많은 경우 다석은 그것을 불교의 ‘여래장(如來藏)’ 개념과 동일하게 사용한 흔적이 많다. ‘여래장’이 초기불교와 무관하다는 논쟁이 불교 내에 있으나 그것이 대승불교의 핵심 내용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점에서 다석의 ‘없음(빈탕)과 여래장은 모두 전체가 하나인 ‘불이즉무(不二卽無)’의 세계를 전제하며 그곳에로의 귀일(歸一)을 목적한다고 볼 수 있다.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의 하나 됨을 여래장이라 하듯 다석 역시도 A=비(非)A의 세계를 상정한 것이다. 하지만 다석은 이를 논리가 아니라 지난한 수행의 결과로 여겼다. 이 점에서 다석은 예수의 십자가를 탐진치로부터의 해방을 목적한 불교적 ‘고행’으로 풀어냈다. 필자는 이를 ‘돈오돈수적 점수론(頓悟頓修的 漸修論)’이란 개념으로 이해한다.4)

하지만 다석은 예수만을 자신의 스승이라 고백했다. 불교적 수행의 절정을 예수 십자가에서 본 것이다. 서구 기독교의 구속주 개념과 맥을 달리하는 동양(불교)적 기독론의 출현이라 하겠다. 결국 다석은 불교와 소통하되 기독교적 시각을 견지했다. 그에게 궁극적 ‘하나’는 언제든 하느님이라 호칭된 것이다. 이 점에서 불교 고유한 입장이 다석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비판이 가능할 수 있다. 필자로선 다음과 같은 다석의 전언(傳言)―“원래물불이(元來物不二), 이것이 하느님이요 니르바나님이다.

 나는 원래물불이를 믿는다”5)―을 불교학자들이 어찌 평가할지 궁금하다. 본 글이 다석사상과 불교를 상호 소통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다음의 절차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는 한국 문화의 구성 원리인 삼재론의 틀로 재구성된 다석의 신학 원리를 소개할 것이며 둘째는 그 신학 원리를 불교의 여래장 사상의 빛에서 풀어내어 기독교와 불교를 의미론적으로 소통시키고 셋째는 인간 구원(해탈)을 위한 수행 방법을 소개하고, 불교―기독교 간 대화의 난제로 꼽히는 가역성/불가역성 문제를 자속/대속의 문제로 풀어 볼 것이며 마지막으로 생태 위기 상황에서 탐진치 제거를 목적한 이들 수행론의 중요성을 강조할 생각이다.

1. 삼재론(三才論)의 틀에서 이해된 다석(多夕)의 신학적 회통 원리

주지하듯 천지인 삼재사상은 본래 수렵문화의 산물로서 사후(死後) 영혼의 세계를 중시, 그 개념들을 발전시켜 왔다. 사냥을 통해 먹을거리로 제공된 뭇 동물 영혼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지역의 샤머니즘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태동된 것이다. 영(靈)의 세계로서의 하늘(天)과 죽음의 세계인 땅(地) 그리고 양자를 잇는 영적 매개자로서 샤먼(人)의 삼재론이 그의 핵심 내용이었다.

인간을 매개로 하는 천지인 삼재론은 공간을 수직으로 이해했으며 언제든 보이지 않는 세계, ‘없음’에 대한 이해를 전개시켰다.6) 이는 공간을 수평으로 분할했던 중국의 음양론적 세계상과 비교할 때 더욱 또렷해진다. 이 점에서 9000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81자 〈천부경(天符經)〉과 〈삼일신고〉 등은 삼재론의 틀에서 구성된 한민족 최초의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다석이 ‘하늘에 꼭 맞닿은 글(하늘 일 쪽월)’이라 하여 순수 한글로 풀어놓은 〈천부경〉은 영원한 ‘하나’가 천지인 셋으로 나뉘나 결국 그것이 ‘하나’로 통일(歸一)됨을 강조했다.7) 나아가 귀일의 장소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 〈천부경〉의 핵심인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의 본뜻이다. 인간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만난다는 것이 삼재(三才) 혹은 삼극론(三極論)의 요체였던 것이다.

본래 ‘하나’는 뭐라 개념화할 수 없는 것, 시작도 끝도 없는 일자(一者)로서 만물을 생성시키는 신비이자 만물이 돌아갈 곳이지만 인간에게서 찾아질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천부경〉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하나)를 강조했고 그것이 만물 속에 내재해 있다고 보았고 인간의 자기 수행을 통해 그에게로 돌아가는 것(歸一)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석은 이를 ‘밑둥(本)’과 ‘끝둥(末)’의 관계로 풀었다. 상대계(개체) 없이는 절대(하나)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귀일 사상은 인간에게 궁신(窮神)의 길을 가게 했으나 그것은 언제든 자신을 향한 내면의 길이었다. 비서구적 논리체계인 A=비(非)A의 자각과 실천은 치열한 수행과정을 통해 획득된 열매란 사실이다. 신학자 유동식은 고운(孤雲) 최치원이 〈난랑비서(鸞郞碑序)〉에 쓴 현묘지도(玄妙之道)와 〈천부경〉의 삼재론 간의 유관함을 말했고 유불선을 수용한 문화적 주체성을 바로 여기서 찾았다.8)

즉 삼수분화(執一含三)를 전제로 ‘하나’로 돌아가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사상 속에서 포함삼교(包含三敎)의 주체적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말한 ‘풍류도(風流道)’ 역시 하늘(한)과 땅(삶)의 조화를 이룬 인간의 길(멋) 일 뿐이다. 후일 다석이 모음(母音)을 인간을 부르는 하늘소리(天文)로, 자음을 부름에 응답하는 인간소리로 보고 이 둘의 만남 속에서만 한글이 정음(正音), 곧 바른 소리가 될 수 있다고 한 것도 모두 같은 이치이다.9) 이렇듯 소리글자인 한글을 일체 뜻글자로 풀어낸 것 또한 실상은 모두 앞서 언급한 삼재론의 의미론적 지평 덕분이었다.

이를 토대로 다석은 천지인 삼재를 순수 우리말인 ‘계’, ‘예’ 그리고 ‘긋’으로 풀고 삼수분화(三數分化)의 틀 아래에서 기독교는 물론 유교와 불교를 이해하는 ‘자기 발견적’ 신학적 원리를 제시하였다.10) 주지하듯 ‘계’란 수직적 차원의 ‘그곳’을, ‘예’란 이어이어 내려오는 지금 ‘이곳’, 땅의 세계를 그리고 ‘긋’은 하늘의 한 끝으로 이 땅에 존재하는 인간을 일컫는다. 첨언하자면 ‘계’는 절대계, 영원한 ‘하나’의 세계, ‘예’는 죽음과 소멸의 탐진치 세계를 그리고 ‘긋’은 하늘의 ‘끝둥’으로서 이 땅에 ‘받’아 ‘할’ 일을 갖고 사는 인간의 본성(바탈)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한글의 구성 원리, ‘계소리(母音)’, ‘가온소리(子音)’ 그리고 ‘제소리(正音)’에 각기 상응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삼재론에 근거한 이런 신학적 원리는 이제 기독교는 물론 유교, 불교 나아가 동학(東學)을 이해하는 틀로 적극 활용된다. 삼재론이 제 종교를 상호 소통시키되 그를 포함하며 넘어서는 현묘지도(玄妙之道)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삼재론에 터한 다석의 기독교 이해 구조는 다음과 같다. ‘없이 계신 하느님’, 부자유친(父子有親)한 예수 그리고 ‘참나’인 성령. ‘없이 계신 하느님’은 실재(Reality)를 ‘있음(有)’으로 상정한 서구 존재론과 달리 ‘없음’ 곧 ‘빈탕’을 존재의 근거로 인식한 동양적 산물이며 부자유친한 예수는 죽음의 땅에서 ‘제 뜻(몸나)’ 버려 ‘하늘 뜻’ 따름(십자가)으로 ‘없이 있는 이’가 된 존재이고 ‘참나’인 성령은 인간 모두가 하늘의 ‘빈탕’을 자신의 바탈로 지닌 존재임을 각인시켜 누구나 독생자(그리스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재론될 것이지만 여기서는 예수의 대속적(代贖的) 죽음이 ‘자속(自贖)’으로 이해되고 인간 누구라도 ‘빛(脫存)’이기에 ‘빛’이 되어야 한다는 존재론적 각성이 힘껏 강조되고 있다. 제도적 은총에 의거한 기독교가 수행적 종교로 변모된 것이 다석 신학의 핵심이라 해도 좋겠다.

다석은 또한 《중용(中庸)》의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를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했다. 유교 역시도 본래 ‘없음’의 종교이며 하늘의 ‘없음(허공)’이 인간 마음(밑둥)과 다르지 않다(不二)는 확신의 결과였다. 인간 본성(本然之性)이 ‘빈탕’과 다르지 않음을 믿고 그 본성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인간 모두에게 성인지도(聖人之道)가 열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석강의》에는 동학을 언급한 부분이 없었으나 필자는 〈천부경〉의 요체를 근거로 다석 신학과 동학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바 있다.11) 필자가 보기에 동학 역시도 삼재론의 틀을 벗어나 있지 않았다.

이는 ‘시(侍)’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즉 ‘내유신령(內有神靈)’ ‘외유기화(外有氣化)’ 그리고 ‘각지불이(各知不移)’가 ‘계’ ‘예’ ‘긋’의 세계상과 부합된다는 것이다.12) 다석에게 천중(天中)의 천(天)이 인간의 속알(바탈)이듯이 ‘내유신령’은 그에 상응하며 ‘외유기화’는 몸 안에 모셔 있는 신령의 자기 밖 활동으로서 ‘땅(우주)’과 마주하는 개념이다. 천지화육(절대생명)에 동참하려는 인간(얼나)의 몸짓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각지불이’는 인간 모두가 개별아를 넘어 절대생명을 지닌 영적 존재임을 각인시킨다.

마음 안팎에서 활동하는 신령과 기화가 하나이기에 개체와 전체는 둘로 나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고의 중심 주제인 다석의 불교 이해 역시 이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견성, 고해 그리고 성불을 불교의 핵심이라 여겼던 것이다. 이는 때론 성문(聲問), 연각(緣覺), 보살(붓다)이라고도 표현되었고13) 신해행증(信解行證, 믿음, 닦음, 깨침) 이라고도 말해졌다. 본래 자신 속에 있던 불성을 자각하여 온갖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현실태로 만들어 자신을 산부처(覺有情), 곧 여래(如來)로 만드는 일을 불교의 전부라 여긴 것이다.14) 즉 붓다의 말씀을 듣고 그것의 요체를 깨닫기 위해 몸부림치다 사람의 몸(중생)을 입고 열반에 이를 수 있음을 불교의 가르침이라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의 일치를 말하는 ‘여래장’사상과 ‘본점(頓漸)’의 문제이다.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을 말하는 여래장 사상과 고행의 과정을 통해 불성의 현실화(보살)가 가능하다는 돈오점수론이 삼재(三才) 사상에 터한 다석의 신학 원리와 접목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음 장에서는 먼저 삼재론의 틀에서 이해된 여래장 사상을 언급할 것인바, 기독교와 불교 간 소통을 위한 자리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비(非)정통’이라 여겼던 다석과 그의 신학이 불교인들에게도 이해 가능한 언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2. 불교와 기독교 간의 소통 원리로서의 여래장 사상―삼재론에 대한 불교적 이해

앞서 보았듯 다석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영원한 ‘일자(一者, 하나)’를 만물의 궁극처로 생각했고 그에게로 돌아가는 것, 곧 귀일(歸一)을 인생의 목적이라 믿었다. 그는 이 과정을 〈천부경〉에 근거 일즉삼 삼즉일(一卽三, 三卽一)의 삼수분화적 세계상으로 설명했고 일체 종교를 회통시키는 신학적 원리로 삼은 것이다. 《다석강의》 곳곳에는 불교(부처) 역시도 결국 ‘하나’를 구하는 것 이상일 수 없다는 말이 수차례 나온다.15) 기독교 신관에 따라붙는 ‘유일(唯一)’이란 것도 실상은 ‘귀일(歸一)’인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결국 인간이 상대계에 종노릇하는 일을 그치게 하려 함이었다. 다석은 이런 ‘하나’의 세계를 ‘불이즉무(不二卽無)’란 말로 풀어냈다. 상대가 없으면 절대이고 그렇기에 절대는 ‘무’로서밖에 달리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석은 이것(無)을 다시 ‘원일물(元一物)’이라 명명했는데 결국 원일물로서의 무, 곧 허공(빈탕)은 다석에게 하느님이나 부처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허공은 참이고 하느님이다. 허공 없이 진실이고 실존이고 어디 있는가? 우주가 허공 없이 어찌 존재할 수 있는가? 허공이 있기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16)

하지만 다석은 본디 ‘하나’인 원일물이 인간에게 갖춰져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소유(실체) 개념으로부터 절대 자유한 상태이다. 소유한 적이 없었고 있었던 소유도 잊어야 할 본래(本來)의 모습이란 것이다. 다석은 이를 ‘무(빈탕)’인 ‘하나’와 짝하는 인간의 ‘바탈(얼)’이라 했다. 허공, 곧 ‘없이 계신 하느님’과 마음이 둘이 아니고 하나란 것이다. ‘유일(唯一)’의 ‘일자(一者)’를 ‘귀일(歸一)’의 측면에서 보았기에 절대 타자(他者)인 하느님이 인간의 ‘바탈’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17) 다석에게 ‘바탈’은 ‘얼(나)’과 동의어였고 기독교적으로는 ‘성령’과 전혀 다른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성령은 한 번도 끊어져 본 적이 없었다고 역설하였다. 허공(빈탕)으로 존재하는 하느님을 인간의 ‘바탈(本然之性)’로서 이해한 다석 신학은 그렇기에 ‘비정통(동양적)’이라 불릴 수밖에 없다. 이하의 글은 다석 신학의 비정통적 급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예수만 외아들입니까? 하느님 씨앗, 곧 성령이 나라는 것을 깨닫고 아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독생자입니다.”18)

이처럼 ‘없이 있는’ 근원적 ‘하나(빈탕)’를 인간 마음속에 내재된 것(성령)으로 여겨 그를 근거로 상대적 유/무의 세계를 벗고 ‘빈탕’과 하나 된 삶을 추구한 다석의 생각은 불교의 여래장 사상과 결코 무관치 않다. 물론 다석의 남겨진 글 속에서 여래장 개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곳곳에서 불교에 대한 언급을 했으되 여래장을 표면화시킨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석의 ‘없이 계신 하느님’과 인간의 ‘바탈(얼나)’의 관계는 의당 여래장 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삼재론의 신학 원리 속에 대승불교(華嚴)의 핵심인 여래장 사상이 수용되었음을 뜻한다. 역으로 말하면 여래장 사상이 부정되면 다석 신학의 틀 역시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래장 사상이 무아(無我) 개념을 강조한 초기 불교(유식사상)와 무관하다는 학계 논쟁이 있지만19) 본고에서는 여래장 사상을 전제하여 이들 관계를 밝히는 일에 주목할 생각이다. 주지하듯 동서양의 제 종교가 그러하지만 불교는 특히 본래성(本來性)과 현실성을 두 축으로 양자의 관계를 강조해왔다. 본래성(佛性)은 어느 시점에도 실재하나 언제든 그것이 현실적인 것에 의해 은폐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인욕(人慾)이 들끓는 현실에서도 금강석처럼 빛나는 불성의 실재를 더한층 강조했고 본래적인 것을 절실하게 추구토록 중생을 이끌어 왔다. 그렇기에 불교는 공부(수행)를 통해 본래성과 현실성의 일체된 순간(一如)을 시종일관 강조할 수 있었다.

 양자 간 괴리 상태를 극복하는 방식에 따라 돈점(頓漸) 논쟁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지만 본래성과 현실성이 일여태(一如態)임을 부정한 적은 없었다.20) 수행론의 문제는 다음 장의 주제인바, 이 역시 본래주의(本來主義)의 기반에서 본래성과 현실성의 대립에 터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本來主義란 본질주의와 구별돼야 하는 것으로서 여래장 사상을 일컫는다. 화엄학과 선종의 근간인 여래장이 실체론적 사유의 산물이 아니란 것이다. 본래 여래장은 불성 혹은 법신과 같은 말로서 ‘일체중생 실유불성(一體衆生 悉有佛性)’에서 연유된 것이었다.21) 이는 비본래적인 것이 본래적인 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부처(如來)가 될 원인이 이미 중생에게 두루 갖춰져 있음을 각인시켰다. 본래 여래장이란 여래의 태아(embro)를 뜻한 것이다.22)

이는 하느님 아들 될 씨앗이 인간에게 두루 있어 누구든 독생자가 될 수 있다는 다석의 말과 결코 다르지 않다. 중생 속에 여래장이 있다는 불교는 그래서 일체가 평등한 시원(眞如)적 일승교(一乘敎)가 될 수 있었다.

다석이 ‘허공(빈탕)과 마음이 둘이 아니다’라고 본 것과 내용적으로 일치한다. 다석의 다음 말이 바로 그것이다. “니르바나님(하나, 빈탕)으로부터 온 생명을 여래(如來)라 한다. 참 나가 왔다는 말이다. 여여불생(如如不生), 내내불멸(來來不滅)이다. 여여(茹茹)하게 그대로 와도 나지 않고 오고 와도 죽지 않는다. 불생불멸의 참 생명이요 얼 생명이다.”23)그래서 다석은 불교에 있어 자신 속의 불성을 발견하는 ‘견성(見性)’을 불교의 핵심이라 여겼고 ‘없이 계신 하느님’과 함께 생각할 수 있었다. 참 나로서의 불성, 얼 생명(바탈)은 시간 속의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낳는 시원적(始原的) 존재라는 것이다.

필자로서는 이런 불성을 힌두교의 ‘아트만(我說)’과 같게 보아 무아(無我)를 설한 부처의 가르침에 위반된다는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다. 탈주체적 주체성이란 말이 종교를 말함에 있어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4) 논어의 ‘군자불기(君子不器)’ 또한 더 큰 주체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없음’. ‘허공’을 근거로 참 나를 말한 다석의 경우 본질주의, 근원실재주의란 말로 호도될 수 없다.25) ‘빈탕’과 기체(dhatu)는 동일선상에서 논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세기 부정신학자 에크하르트의 말을 빌리면 이는 인간 속에서의 신성(神性, Gottheit)의 탄생일 뿐이다.

불교에서는 자신 속의 불성을 깨닫는 경성을 본각(本覺)이라고도 한다. 다석 역시도 없이 계신 하느님을 인간의 ‘밑둥’에서 보았고 그것을 ‘깨침’의 자리로 여겼다. 기독교의 ‘믿음’을 ‘바닥(바탈)소리’라고도 풀었던 다석에게 ‘얼나’의 자각은 돈오나 시천주(侍天主)의 경험과 다르지 않았다. 이는 비정통적 다석 신학의 또 다른 면으로서 주객 대립을 인정치 않는 조신(祖信)의 경우라 하겠다.26)

이는 죄인된 인간의 빛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속죄(贖罪)를 기다리는 기존 기독교 신앙 양식인 교신(敎信)과 전혀 다른 것이다. 마치 소금과 물(소금물)이 그러하듯 신인(神人)의 관계를 상호 내인적인(internal) ‘포함(包含)’ 관계로 보는 것을 불교는 조신(祖神)이라 불렀다.27) 후술할 내용인바, 다석이 예수를 구속주로 보는 대신 유일무이한 ‘스승’으로 본 것이 바로 조신의 경우인 것이다.

하지만 원시불교의 입장에선 본각 개념도 부정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성이 원리로서는 보편적이나 닦음의 과정에선 개별적이란 사실을 인정할 경우 다시금 주체의 문제는 중요해 진다. ‘무아론’에 입각해 윤회의 주체를 ‘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실상 그것은 사후세계의 논리일 뿐이다.28) 불교의 앞날을 위해 강조될 사안은 여전히 현실을 사는 개별적 주체라고 믿는다. 그래서 여래장은 본각과 시각의 총체성을 지시할 수밖에 없다. 일심(一心)에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이 있다는 일심이문(一心二門) 사상이 그래서 여래장 연기의 핵심이 된 것이다.29) 다석이 역사적 예수에게조차 ‘얼나’와 ‘몸나’를 구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일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는 일체중생이 본래 구원되어 있다는 본래성의 교설이 분명 전제되어 있다.30) 이것은 세상의 빛이기에 빛이 되라는 성서의 말씀과 맥이 닿는 부분이다. 길을 가다 길이 되라는 것이다.

주지하듯 여래장 사상은 이분법적 초월은 물론 직선적 합목적성의 논리와 무관하다. 여하간 불변의 목적, 고정된 원칙을 중생에게 부과하는 것은 무장애(無障碍)의 법계로서의 일승의 종교일 수 없다.31) 동시에 무장애의 세계는 지금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여래장을 기초했던 ‘사리무애(事理無碍)’ 화엄학의 본질인 것이다.

하지만 이(理)가 추상적인 것이 아니며 사(事) 속에 내재하는 한 ‘사리무애’야말로 여래장 사상의 궁극적 바탕이 된다. 일체 중생이 여래장을 갖고 있다는 논거도 여기서 비롯한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혼융무애(混融無碍)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석 역시도 생태적 위기와 같은 사실적 종말의 징조를 걱정하긴 했으나 교리로서 기독교 종말론을 신봉치 않았다. 그가 내건 ‘일일일생(一日一生)’ 주의는 인과율과의 단절이자 시간제단(時間際斷)을 통한 절대 부활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죽어서 가는 부활이 아니라 관념을 꿰뚫어 실재와 부닥치는 일을 절대부활이라 했다.

 ‘우로보로스’ 신화가 보여주듯32) 절대 ‘하나’, 곧 자신의 ‘바탈’로 돌아가는 ‘귀일’만이 다석에게 소중했던 것이다. 천지만물을 모두 깨어있는 기성불(期成佛)로 보고 인간 자신만을 미성불(未成佛)로 본 것도 다석의 진의가 담긴 말씀 중 하나이다. 또한 유일신과 만유신론의 일치를 말하며 만물 속에서 하느님 속성을 깨닫는다고도 고백한 바 있다. 여기서 다석이 인간만을 미성불로 본 것은 사사무애의 이름하에 실천적 주체성을 상실할 것을 염려한 불교의 기본 정신과 부합한다.33)

사사무애가 구경(究竟)임에도 불교가 여전히 사리무애(事理無碍)를 강조하는 것이나 다석이 여전히 ‘위(上)’ 혹은 천(天)이란 표현을 강조하는 것은 맹목적 사사계, 곧 탐진치의 세계와의 싸움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시각에서는 다석이 수용했던 삼재론의 틀이 원융무애의 자기 기만성을 치유하는 세계관이자 방편이었다고 믿어진다. 그렇고 보면 본래 하나인 본래성과 현실성, 그러나 실제로는 나뉠 수밖에 없는 이들 간의 현실적 괴리를 메우는 일이 다석 신학이나 불교 모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필자는 불성과 중생성의 간격, ‘얼나’와 ‘몸나’간의 분열을 없애는 과정을 다음 장에서 살피고자 한다. 종교적 수행(修行) 혹은 고행으로 불리는 지난한 과정이 인간의 ‘몸성’, 혹은 생멸문인 ‘중생성’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3.‘자타불이적’ 구원(해탈)론으로서 십자가 사건― 돈오돈수적(頓悟頓修的) 점수론(漸修論)과의 대화

언급하였듯 다석 신학의 체계 속에서 예수의 십자가는 ‘없이 계신 하느님(빈탈)’과 하나 되는 과정이었다. 제 뜻 버려 아버지 뜻과 일치된 부자불이적(父子不二的) 존재, ‘몸나’를 벗고 ‘얼나’로 솟구친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였던 것이다. 인간 예수가 하느님(그리스도) 되는 필연적 과정을 기독교는 십자가로 보았고 그것은 불교의 고행에 비견되었다.

예수의 십자가 속에서 본각과 시각의 일치를 위한 백사천난(白死千難)의 수행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신해행증(信解行證)’으로 말하면 해(解)와 행(行)의 과정이 여기에 속할 듯싶다. 이런 ‘십자가’ 이해는 다석 신학의 백미로서 ‘없이 계신 하느님’만큼이나 비정통(비서구)성을 나타내 보인다. 희랍적 실체(존재)론을 채용한 서방 기독교가 예수와 하느님간의 존재론적 일치를 강조했다면 다석의 예수는 자신을 빈탕(허공)의 아들로 깨닫고(本覺) 그것, 곧 ‘절대 하나’의 아들 노릇 하려고 자신의 ‘바탈’을 불사른 존재로 이해한 것이다.

나아가 실체론에 근거한 정통 기독교가 예수의 십자가를 만인을 위한 ‘속죄적 죽음’으로 이해했던 것에 반해 다석은 예수의 죽음 자체를 자속(自贖)의 길,34) 곧 절대 생명과 ‘하나’ 되는 길로 여겼다. 다석에게 대속(代贖)이란 희생제의에 익숙했던 유대인의 풍습이자 남의 생명을 먹고살 수밖에 없는 세상의 원리였을 뿐이다. “그리스도가 내 양식이라면 나를 위해 대속되는 만물은 죄다 그리스도입니다.”35) 다석이 ‘참 하느님이자 참 인간(vere Deus vere Homo)’으로서의 신인(神人) 양성론적 예수를 ‘몸나’와 ‘얼나’로 재(再)언표한 것도 자속의 원리를 더한층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혹자는 이런 예수 이해를 일컬어 영지주의적인 것이라 오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 역시 탐진치를 지닌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말하는 것이 가현주의(假現主義, Doceticism)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예수에 대한 존재론적 배타성을 벗겨낸 채 동양적, 보편적 인간상을 예수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탐진치란 태양을 가리는 구름 같은 것으로서 다석은 이를 ‘원죄’라 했다.36)

인간 본성의 타락을 말해온 기독교적 인간 이해와는 구별되는 발상이다. 그렇기에 다석은 예수의 몸 자체를 숭배하지 말 것을 가르쳤다. 몸을 지닌 예수는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버려 부자유친한 예수, 오직 그 만을 하느님이자, 그리스도로 여길 뿐이었다. “몸나가 없는 곳에 한아님이 계시고 한아님 앞에 얼나가 있다…… 얼나와 한아님은 하나다.”37) ‘얼나’로 솟구친 예수는 절대생명(하나)인 하느님과 다를 수 없고 이런 예수를 본 사람은 이미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는 것이 다석의 시종일관된 믿음이었다. 일본의 불교학자 야기 세이치도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아버지의 말씀이다”(요한 14장 10절)를 동일 선상에서 풀어냈다.38) 예수에게 있어 ‘자신(self)’이란 전적 타자인 동시에 주체였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다스림이 예수의 ‘에고(몸나)’ 속에 분명하게 육화되었기에 예수는 자신을 신적 존재로 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예수와 하느님 간의 역설적 동일성 곧 가역성(可逆性)을 존재론의 틀에서가 아니라 ‘탈자적 실존(脫自的 實存, self)’의 차원에서 본 것은 분명 ‘절대 무’를 말한 불교의 덕택이었다. 그러나 다석의 입장에선 신적 지배(로고스)만큼 혹은 이상으로 예수의 십자가가 소중했다.39) 그에게 십자가는 신인(神人)의 역설적 동일성을 현시하는 매체 이상으로서 ‘얼나’를 위해 걸머져야 할 삶의 몫이었다. 비록 맥락은 달라졌으나 다석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동양의 수행적(修行的) 차원에서 적극 재해석 했던 것이다. 이는 삼재론의 틀에서 유교의 실천적 효(孝)마저 포함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지하듯 다석에게 십자가의 고행은 ‘일좌식 일언인(一座食 一言仁)’으로 표현되었다.40) 늘 기도 속에서 말씀을 찾고 하루 한 끼 먹으며 남녀 관계를 끊고(解婚), 말씀 전언(傳言)을 위해 어디나 걸어 다니는 일을 십자가로 이해한 것이다. 이는 종종 일식(一食)과 단색(斷色)이란 말로 축약되어 강조되기도 한다. 《불교평론》이 ‘금욕과 깨달음’을 주제로 특집을 엮은 것은 본 사안의 중요성을 환기시켜준다.41)

수행 전통을 지닌 동양 종교들의 핵심이 바로 이 점에 있을 것이다. 육체적 욕망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이들 종교의 궁극적 목표였기 때문이다. “육체적 욕망을 완전히 초월하였기에 성(性)에 대한 열망에 불을 붙일 불씨가 남아 있지 않다. 모든 아라한은 성적 능력이 있는 성 무능자이다.”42) 다석 역시도 근본 취지에 있어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는 일식이 강조되었고 단색은 그의 결과로 이해된 듯 보인다. 다석은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을 형이상학적 욕망에서 보았다. 유일하게 머리를 하늘로 향한 존재로서 ‘님’을 마주할 ‘이마’를 갖고 있는 인간의 본능은 ‘정신’에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일식은 인간을 정신적 존재로 만드는 지름길로 여겨졌다. 다석에게 일식은 자기를 먹는 일로서 대속을 끊는 일이었다.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는 것이 바로 일식의 의미였다. “쌀 한 알을 심어 천 알, 만 알 수확하는 것도 이득이지만 단식으로 내 자신을 하느님께 바쳐 내가 하느님으로 변하는 이득이 더 큰 이득이다.”43) 다석은 이를 예수 십자가의 원뜻이라 여겼고 인간은 누구라도 그리 될 존재인 것을 강변한 것이다. 그에게 일식은 결국 자기 살을 먹고, 자기 피를 마시는 일로서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다.

이것이 “제 삶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제 삶을 미워하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12장 25절)라는 말뜻이라 했다. 단색(斷色)도 동일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 식색(食色)이 동물에겐 본성이나 인간에겐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다석의 생각이었다. 하여 식색에 빠진 인간을 향해 실성(失性)한 존재란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단색을 통해 몸의 ‘정(精)’이 간직되어야 ‘마음놓이’가 가능하고 자신의 ‘바탈’을 불사를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었던 것이다. 결국 ‘몸을 줄이고 맘을 늘리는 것’이 다석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서 발견한 동양화된 케리그마(Kerygma)였다.44) 탈(脫)맥락화되었으나 십자가의 역사적 실천성은 전혀 약화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자속과 대속 간의 자타불이적 관계성이다. 앞서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속죄가 아닌 자속의 길이라 했다. ‘얼나’를 위해 자신의 ‘바탈’을 불사른 존재, 바로 그가 예수였다는 것이다. 정통적 의미의 구속주(救贖主)로서 예수 이해가 폐기처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석은 ‘pro me(우리를 위한)’적 차원에서의 예수의 역할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삶과 사상의 일치만이 진리라는 동양적 시각이 자속을 앞세운 듯하지만 다석에겐 유일한 스승(意中之人)으로서의 예수상이 분명히 존재했다. 예수의 십자가를 주체적으로 이해하여 그 자신이 따라야 할 ‘길’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가 간 ‘길’이 있었기에 그는 오늘 우리에게 대속주(代贖主)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길’을 스스로 ‘길’이 될 책임은 우리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것을 제도적 은총의 종교로부터 수행적 종교로의 토착적 이행이라 생각한다.45) 수행적 종교에서는 대속과 자속은 단순히 하나도 아니지만 결코 둘로 나뉠 수 없다. 예수의 십자가(自贖)가 그 길로 나가게 하는 구체적 힘(代贖)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스승기독론’의 본질로서 다석이 불교인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인인 확실한 이유가 된다.

물론 다석은 예수조차도 마침표가 아닌 ‘미정고(未定稿)’로 이해했다.46) 예수가 했던 일보다 더 큰 일도 우리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적 실천, 곧 ‘일좌식 일언인’을 통해 누구든지 ‘몸나’에서 ‘얼나’로 달라질 수 있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 다석의 확신이었다. 다석의 스승기독론이 누구나 그리스도(독생자)가 될 수 있다는 ‘얼기독론’으로 변한 것을 필자는 다석 신학의 백미라 믿고 있다. 그를 동양(불교)적, 한국적 신학자로 부를 수 있는 결정적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 주제는 마지막 장에서 재론될 사안인바, 단지 여기서는 다석의 십자가 사건을 불교적 돈점(頓漸) 논쟁의 시각에서 언급할 것이다.

앞서 보았듯 다석에게 예수는 자신 속의 하느님, ‘씨알(바탈)’을 깨닫고 얼나로 솟구친 존재로서 자신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다석은 예수의 그리스도(하느님) 됨을 존재론적 틀이 아닌 십자가적 삶에서 찾은 것이다. 불교적으로 보면 그리스도는 고행을 통해 본각과 시각을 통전시킨 존재(如來)라 하겠다. 여기서 필자의 관심은 자타불이적 구원론을 기초했던 십자가를 돈오돈수적 점수설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일이다. 주지하듯 성철의 지눌 비판을 기점으로 돈점에 관한 불교 신학적 논쟁이 활발했던 적이 있었다.47)

 여기서 양자의 비교를 위해 필자가 택한 입장―돈오돈수적 점수설―은 재미 불교학자 박성배의 시각이다. 박성배는 본래 하나인 불성과 중생성의 현실적 거리감을 좁히려는 실천적 수득(收得)의 문제에 집중했다. 일체중생이 부처라는 조신(祖信)이 여래장 사상의 근간이지만 중생이 현실적으로 부처일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바로 그 원인을 근본불각(根本不覺, 無明)에서 찾았다.

본래성에 대한 자각의 결여를 문제로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무명 또한 ‘본래불성’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고 봄으로써 여전히 본각을 중시했다.48) 인간의 훈습(薰習)에도 불구하고 본래성불의 기반을 확고하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성과 중생 간의 균열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불교가 본각에 의지하면서도 상중하 근기에 따른 주체적 수행을 거부할 수 없었던 배경이다.49)

돈오에 점차적 수행, 곧 점수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가 태어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돈오가 여기서 해오(解悟)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비판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빛에서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본각이 일체중생에게 본유(本有)된 것도 사실이지만 범부의 시각에선 무명이 본각에 앞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여 인간의 망념을 너무 가볍게 보지 않을 것을 돈오점수는 주문, 강조했다. 돈오돈수가 자신의 심신으로 본래성불을 오해할 공산을 경고한 것이다. 망상을 시간 속에서 실체화시킨 돈오 없는 점진주의도 문제이지만 인간의 한계, 원죄와도 같은 탐진치의 실상을 간과한 본래주의 폐단 역시 적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돈오점수의 돈오가 해오라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성과 중생성의 간극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돈오는 본래 ‘닦을 것’이 없는 ‘깨침’으로서 돈수, 곧 몸적 변화까지 동반하는바, ‘닦음’을 필요로 하는 경우, 돈오는 머리로 아는 해오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감수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 경우 해오는 본질상 점수의 산물인바, 돈오점수(頓悟漸修)는 점수해오(漸修解悟)라 해야 더 옳은 표현이 된다. 이것을 모르지 않았음에도 돈오점수(頓悟漸修)를 고집한 것은 여전히 본각의 중요성과 우선성을 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고, 점진주의의 악순환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도했던 까닭이었다.50)

이 점을 간파한 박성배는 불교의 돈점 논쟁을 돈오돈수적 점수론으로 결론지었다. 우선 그는 돈오돈수에서의 ‘수(修, 닦음)’에 집착하지 말기를 요청했다.51) 여기서 ‘수(修)’는 ‘오(悟)’를 강조하는 최적의 한정사라 여긴 것이다. 다시 말해 돈오점수의 ‘수(修)’와 그 의미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전자는 ‘깨침의 자세’를 후자는 ‘깨침의 폭’을 넓혀준 것으로 의미 지웠다. 그렇기에 박성배는 돈점 논쟁을 어느 것도 틀린 것이 없기에 양자택일로 선택할 사안이 아니라 했다. 상근기의 사람에겐 돈오돈수가 적합할 수 있으나 돈오점수를 통해서는 더 많은 중생들이 입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오를 조신으로 보았던 그였기에 ‘내가 부처’라는 깨침 자체가 더한층 강조되었다. 따라서 박성배의 돈오돈수적 점수설 역시도 본각의 우선성과 중요성에 근거해 실천성을 담보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체용론에 근거 본각과 시각을 몸과 몸짓의 관계로 보았다는 말이다.52) 초신(初信)이 묘각(妙覺)과 다르지 않다는 뜻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석의 십자가 사건을 다시 떠올려 본다. 자신 속 ‘바탈’을 ‘없이 계신 이(빈탕)’와 다르지 않음을 깨친 예수가 그와 현실적으로 하나 되는 지난한 과정이 십자가였다. 십자가란 몸을 줄이는 일로서 탐진치 제거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인과율적 세계로부터의 단절(時間際斷)이라고도 하겠다. 다석은 모든 인간이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아버지께로 솟구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누구라도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하늘 아버지의 ‘씨알’을 지닌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각은 ‘바탈(씨알)’일 것이고 시각은 ‘몸나’를 벗은 ‘얼나’의 상태와 견줄 수 있다. ‘바탈’과 ‘얼나’가 본각과 시각의 관계인 것이다. 다석이 은총의 종교, 대속의 종교이기를 뒤로하고 ‘일좌식 일언인(一座食 一言仁)’에 근거한 수행적 기독교를 말한 것은 바로 성령의 동양적 표현으로서 ‘바탈’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하지만 다석은 탐진치를 원죄와 동류의 것인 양 치열하게 이해했고 그를 결판내려 했다. 여기서 ‘바탈’을 강조한 것은 본각의 우위성을, 탐진치와의 싸움은 중생의 무명, 망념과 각기 상응하는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다석이 자속을 앞세울 수 있었던 것은 재차 강조하는바, ‘바탈’을 확신했던 탓이다. 다석의 ‘바탈’개념이 박성배의 돈오돈수적 점수론과 맞물릴 수 있는 이유이다. 다석의 다음 말은 본래성에 우위를 둔 돈점론을 환기시켜준다. “성신(령)은 꼭 기독교인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은 우리의 정신적인 숨 쉼과 같다. 성신은 우리말의 얼이며, 성신의 얼은 참 나다.”53)

4. 생태적 주체성(자아)으로서의 ‘얼나’와 불교적 ‘무아(無我, 成佛)’―‘덜 없는 인간’을 넘어서

앞서 보았듯 다석에게 ‘얼나’는 ‘바탈’의 현실태로서 본각에 대한 시각의 불교적 표현과 다르지 않았다. 부자불이(自贖)를 이룬 예수의 십자가에 의거 그를 의중지인(스승)으로 삼았던 다석은 예수의 길이 누구에게도 열려 있음을 강조했다. 자신의 ‘바탈’에 먹구름을 드리운 탐진치를 벗겨낼 수 있다면 누구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의 자속은 우리 모두를 십자가 길로 인도하는 대속이 되기도 했다. 인간을 ‘얼나’로 솟구치게 하는 방편이 바로 십자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행(고행)은 ‘없이 계신 하느님’이 인간의 밑둥(바탈)에 있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본래 사람이 하느님의 ‘씨알’이니까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다석의 입장은 초발심과 구경각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대승불교의 논리와 맞물릴 수 있다. 필자가 돈오돈수적 점수론으로 다석의 입장을 정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인간이 본래 ‘부처’라는 깨침(信)에 근거하여 그를 이해하고(解) 그렇게 되려고 노력(行)하는 가운데 정말 법문을 설하는 부처(證)가 될 수 있다.

불교의 성불(成佛)은 본래 ‘내가 부처’라는 조신(祖信)의 결과라는 것이다. 십자가, 곧 수행(고행)의 장에서도 조신(祖信), 곧 하느님 ‘씨알’이라는 깨침은 탐진치와의 대결에서 역동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54) 이는 하느님과 자신 간의 현실적 간격보다 본래불성, 바탈의 힘이 더 컸음을 뜻한다. 아울러 이런 간격이 기독교 서구가 말하듯 존재론적 차이가 아닌 것을 함의한다. 다석은 그렇기에 자신의 제자들이 십자가, 곧 일식과 단색에 걸려 넘어진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성철이 그랬듯이 다석 역시도 불퇴전의 믿음(깨침)을 역설했던 까닭이다.

십자가를 거쳐 새롭게 태어난 성령의 존재, 곧 ‘얼나’는 미정고로 남겨진 예수의 일을 완성시킬 책임이 있다. 다석이 ‘얼나’의 탄생을 강력히 희망한 것도 예수보다 더 큰일을 감당케 하려 함이었다. 예수 한 분에게 맡겨진 책임이 다수의 그리스도, 성령의 사람이 된 뭇 ‘얼나’에게 나뉠 수 있으니 항차 감당치 못할 일이 없을 듯하다. 필자는 이를 서구적 종교다원주의의 ‘급진적 보편화’라 일컬은 바 있다.55) 불교의 성불, 곧 부처가 되란 말도 이와 다를 수 없다. 자신의 실체를 벗고 연기가 본질임을 알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언제든 성불을 지향한다. 이 경우 성불은 무아의 존재를 뜻할 것이고 이는 ‘몸나(탐진치)’를 벗은 다석의 ‘얼나’와 교차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얼나’와 ‘무아’ 또는 ‘그리스도’와 ‘성불’ 이들 개념 쌍을 인류가 직면한 생태학적 재난의 빛에서 짧게 의미 지워 볼 작정이다. 부처와 예수가 경험치 못한 전대미문의 생태적 위기 상황은 ‘얼나’와 ‘성불’ 이 두 인간상이 걸머져야 할 공통된 과제라 믿기 때문이다.

거듭된 말이지만 불교와 다석에게 ‘없음’이 본질이었다. 기독교 서구가 항시 ‘있음’에 주목할 때 그 ‘있음’을 가능케 하는 것을 ‘없음’ 곧 빈탕으로 본 것이다. 이 경우 ‘없음’은 생태적 위기의 근간인 인간의 탐진치와 견줄 때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무의식의 불교적 표현인 ‘아뢰야식(8식)’에는 중생의 종자와 부처의 종자, 곧 소유 지향성과 존재 지향성이 상호 얽혀져 있다고 한다.56)

이것이 소유로 고착화되면 중생의 삶이 되고 존재론으로 가면 부처가 된다. 본래 종이 한 장 차이인 ‘소유’와 ‘존재’이지만 분별심이 소유로 방향을 튼 탓에 인간은 망념에 빠져 있고 세상은 기후 붕괴 원년을 경험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유로부터 존재로의 역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근원적 ‘없음(無)’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서구적 ‘있음’으로는 분별심을 치유키 어렵고 오히려 인간 욕망만을 확대시킬 뿐이다. 이 점에서 근원적 없음 이 ‘있음(有)’을 소유 대상으로 전락시키지 않을 근거라는 주장은 정확히 다석의 견해와 같다.

다석의 다음 말은 바로 그것을 적시한다. “꽃을 볼 때 온통 꽃 테두리 안의 꽃만 보지 꽃을 둘러싼 허공, 곧 빈탕을 보지 않습니다. 허공만이 참입니다.”57) 다석에 의하면 모든 것을 있게 하는 ‘하나’ 곧 ‘빈탕한 데’를 모르기에 인간은 탐진치의 지배를 근본적으로 벗을 수 없다. ‘빈탕’의 큰 ‘하나’를 알지 못한 탓에 탕자처럼 몸나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여 다석은 ‘없음’만이 세상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존재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근원처’라고는 했다. 왜냐하면 빈탕은 소유할 수 없는 ‘없이 있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물(物)을 보고 마음을 일으키는 현대인의 욕망이 더 이상 자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見物不可生). ‘맛’을 추구하는 몸나가 아니라 ‘뜻’을 찾는 얼나의 삶이 출원하는 까닭이다. 여기서 ‘뜻’이란 다석에게 진물성(盡物性)이란 말과 연루되어 있다.58) ‘본래적 없음’에 터해 있는 만물의 본성(無性)을 온전히 알라는 가르침이다. 만물 역시 결코 소유의 대상일 수 없으며 우주만물을 성례전적(sacramental)으로 이해하라는 뜻이었다. 따라서 진물성은 자신을 위해 대속하는 물질 혹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자각이자 자신의 살과 피를 먹는 자속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닭고기를 먹는 경우 적게 먹되(一食) 닭처럼 일찍 일어나 ‘기도(一座)’하라고 했다.59) 다석이 강조했던 자속은 결국 ‘없음’에 근거하여 인간에게 존재의 길, 곧 몸을 줄이고 마음을 늘리는 수단이었다. 단색(斷色) 역시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동물에겐 식(食)과 색(色)이 본능이겠으나 인간에겐 그것이 결코 본성일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자신의 정(情)을 마구 배출하는 현대인을 다석이 실성(失性), 곧 본능상실의 존재로 본 것은 뼈아픈 말이다.60) 몸성히가 되지 못하면 방심(放心, 마음놓이)이 불가능하고 자신의 ‘바탈’을 태울 수 있는 힘이 없음을 잘 알았던 까닭이다. ‘뜻’을 찾지 못한 존재는 결코 ‘견물불가생(見物不可生)’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다석은 생각했다.

이로부터 다석은 우리에게 ‘빈탕한 데 맞혀 놀기’를 권면하고 있다. ‘있음’이 아니라 ‘없음’에 걸맞게 살자는 것이다. 일식과 단색으로 표현되는 자속도 결국 빈탕한 데 맞혀 놀기 위함이었다.61) ‘없이 있는’ 하나(빈탕)가 하느님이고 그것이 인간의 ‘바탈’로 인한, 인간은 ‘없이 사는’ 존재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다석에게 구원이었고 해탈이며 생태학적 자아(주체성)의 실상이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없이 있(살)지’ 못하고 ‘덜 없는’ 존재로 살고 있다. ‘덜 없기’에 ‘더러운’ 존재가 된 것이 죄인 된 오늘 우리의 모습(無明)이란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 곧 자신 속의 ‘바탈’을 보지 못하고 물(物)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고 있는 것이다. “……깨끝은 깨끗입니다. 상대계가 끝이 나도록 깨트리면 진리인 절대가 나타납니다. 참나를 깨닫는 것이지요. 깨끝이면 아멘입니다. 다 치워야지요. 아직도 덜 치워 남아 있으면 더럽지요. 덜 없으면 더럽지요. 덜 치워 없는 것이 더러운 것입니다.”62) 다석의 이 말씀이 기후 붕괴 원년을 초래한 현대인들의 삶을 재정위하는 방향타가 될 것으로 믿는다. 그가 탐진치의 제거(自贖)를 넘치도록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평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얼나’에 대한 생태적 이해는 성불의 근원적 의미와 다르지 않다고 필자는 믿는다. 성불의 구원론적 의미를 생태적으로 풀면 다석의 앞선 생각과 결코 상이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성불(成佛)의 다른 이름으로 무아와 연기 그리고 제행무상, 세 개념을 들어 생태학적으로 해석하고 다석과의 일치점을 간략하게 언급해 볼 것이다.63)

우선 무아를 진여자성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진여(眞如)는 스스로 그러함(suchness)을 말하는 것으로 ‘있음’의 절대성을 지시한다. 자신 및 일체 사물의 진여자성은 반성적 사유 이전의 현실인 것이다. 존재 자체의 자율성, 창조성 역시도 진여(眞如)라는 말과 더불어 생각될 내용이다. 일체 존재는 불성, 곧 본유가치를 지녔기에 한 순간도 진여가 아닌 상태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일성이 아닌 생명 중심의 타자성 철학을 가능케 한다. 다석 또한 삼라만상이 부처 아닌 것이 없다 했고 그가 강조한 진물성 개념도 진여의 틀에서만 이해 가능한 것이었다. 연기는 너무도 확연한 불교적 생태 원리로서 존재하는 것들의 관계성을 적시한다. 존재하는 일체가 상호의존적 관계하에서 생기(生起)한다는 본 이론은 ‘본래적 있음’ ‘공(空)’의 장소적 의미를 각인시켜 주는 것이다. 연기가 있음과 없음의 구별을 넘어 ‘없이 있음’을 뜻한다는 말이다. 삼재론의 틀을 사용한 다석과 뉘앙스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절대 없음이 있음의 근거라는 발상은 양자의 경우 너무도 확연하다.

끝으로 제행무상, 곧 무상성은 존재의 비연속성, 곧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불교의 핵심 교리로서 무아론과 의미 상통하는 개념이다. 고정불변한 이데아로서의 서구적 하느님 이해 역시도 더 이상 자리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영원불변한 것에 집착함 없이 불연속적 순간순간에 집중할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없이 계신 하느님이 인간의 바탈로서 존재한다는 다석의 ‘얼기독론’도 실상은 ‘무상성’의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에게는 인간의 방식으로 새나 짐승에게도 그들의 방식으로 관계한다는 탈(脫) 인간중심주의도 가능케 했다. 다석이 기독교 서구의 유신론을 거부하고 만물 속에서 하느님을 본다고 했던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결국 부처는 자신이 만든 일체의 아상(我相)을 떨쳐버린 존재로서 ‘없이 있는’ 존재와 하나된 존재인 것이다. 자신 속에 ‘덜’ 없음을 완전히 털어내신 분, 그래서 일체를 자신과 하나로 느낄 수 있었던 생태적 자아가 바로 성불한 존재인 것이다. 이를 위한 백사천난의 수행과 고행이 다석과 부처에게 필연적인 것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누구라도 같은 수행을 하면 ‘얼나(그리스도)’가 되고 성불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확신이었다. 생태학적 위기 시대에 자신의 바탈을 깨달아 예수가 했던 일보다 더 큰일을 담당하는 존재들이 이 땅에 출현하기를 하늘에서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정교(正敎)보다 정행(正行)의 중요성을 오늘의 기독교가 강조하며 종교간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이정배 / 감리교신학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 스위스 바젤대학교 신학부 졸업(조직신학 전공, 신학박사). 1986년 이래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교수, 한국조직신학회 회장, 문화신학회 부회장 역임. 현 YMCA 연맹 환경위원회 위원장. 주요 저서로 《토착화와 생명문화》 《한국적 생명신학》 《한국개신교 전위 토착신학》 《켄 윌버와 신학》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다석 신학의 얼, 틀 그리고 쓰임》 등 다수. C.F. 폰 바이젝커의 《시간이 촉박하다(기독교서회, 1987)》와 J. 리프킨의 《생명권 정치학》(대화출판사 1996) 그리고 J. 폴킹혼의 《과학시대의 신론》(동명사, 1998)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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