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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과 불교 / 김경재
[40호] 2009년 09월 10일 (목) 김경재 목사

1. 들어가는 말

이 논문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는, 20세기의 기독교계의 대표적 사상가 중의 한 사람인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의 철학적 신학을 살펴보고, 그가 그의 생애 후반 사상적 원숙기에서 불교를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소개하려는 것이다.

필자에게 주어진 논제를 받아들고 두 가지 과제를 파악하였다. 첫째, 《불교평론》의 주류 독자층이 불교 전통에 익숙하나 기독교계 동향엔 생소한 독자층임을 감안하여 우선 폴 틸리히의 신학사상 배경과 특징, 그리고 20세기에서의 공헌을 소개하는 일이다. 둘째, 그가 말년에(1960) 일본을 방문하여 몇 개월 체류하면서 일본 선불교 학승들과 깊은 대화를 통하여 심화확충된 그의 사상, 다시 말해서 우주적 종교인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 유형적 특징을 어떻게 이해하였고 양자의 상보적 관계 설정을 어떻게 했던가 파악하려는 것이다. 다소 포괄적인 논제를 구성적으로 풀어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본 논문을 전개할 것이다.

먼저 제2장에서, 불교사상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의 폴 틸리히의 사상 배경과 기독교계 철학적 신학자로서의 공헌과 위상을 소개할 것이다.

제3장에서, 틸리히가 이해하는 ‘성속의 변증법’을 통하여 특히 ‘존재자체로서의 하느님’이라는 그의 신론(神論)과 불교의 ‘공(空)’ 혹은 진여법계(眞如法界))와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고찰 해볼 것이다.

제4장에서 기독교 신앙 패러다임의 특징인 목적 지향적 역사의식이 왜 그토록 사물의 그림자처럼 기독교적 사유 체계에 따라다니는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세계관의 두 가지 패러다임인 ‘영원회귀신화(Myth of Eternal Return)’와 ‘기대의 신화(Myth of Expectation)’를 대비시키는 틸리히의 소견을 고찰할 것이다.

제5장은 본 논문의 핵심 부분으로서 틸리히가 불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의 말년의 강연과 저작물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서 틸리히가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 유형적 특징을 총괄적으로 드러낸다고 보는 두 상징어 곧 ‘니르바나’와 ‘하나님의 나라’를 틸리히가 어떻게 대비적으로 이해하는가 살펴보려고 한다. 그와 동시에 두 종교의 구경적 목적인 ‘해탈’과 ‘구원’ 이해의 유사성과 특수성을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 렌즈를 통하여 대비시켜 봄으로써, 한국 종교문화에서 불교와 기독교의 보다 성숙한 상호존중과 이해협력에 보탬이 되기를 기대해 볼 것이다.

2. 폴 틸리히의 사상 형성 배경과 20세기 기독교계에서 자리매김

폴 틸리히(1886~1965)는 19세기와 20세기를 경험하면서 살고 간 20세기 대표적인 기독교 사상가였다.1) 그의 생몰년대가 암시하듯이, 그는 19세기 서구 부르주아 문명의 완숙기와 몰락기를 실존적으로 경험했는데 정치경제적 세계 상황과 근대 서구문명을 지탱하던 세계관 자체가 허물어지는 삶의 근본터전의 진동을 보았다. 《흔들리는 터전》이라는 그의 유명한 설교집 제목이 그러한 시대적 경험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17세기 이후 계몽주의 시대정신이 주도하던 서구 근현대 문명사 300년이 끝나고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종교 이해가 동트는 시대 전환기에 살았던 사상가였다.

1차 세계대전에서 ‘흔들리는 터전’을 경험한 틸리히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등장과 나치 정권의 마성적 정치 광기를 대항하기에는 속수무책인 기독교 교회와 지성인들의 무능력을 보았다. 그러한 체험을 통과하면서, 기독교라는 역사적 종교의 지반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재구성을 시도한 전형적인 변증적 신학자가 폴 틸리히였다. 그의 기독교 사상을 드러내는 이름표로서 틸리히를 철학적 신학자·변증신학자·문화신학자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그의 사유하는 자리를 언제나 스스로 ‘경계선상’에 설정하고, 실존적 삶의 문제, 역사사회 문제, 세계관 문제, 철학종교 문제와 씨름했기 때문이다.

히틀러가 그를 프랑크푸르트 철학부 교수직에서 해임(1933)시키기 전까지, 그는 유럽 지식사회에서 학자로서 활동하였다. 본래 가정 배경은 루터교 목사인 아버지와 경건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면서, 독일의 낭만주의적 자연신주의 문학가들 예를 들면 횔덜린(H켞elderlin), 노발리스(Novalis), 릴케(Rilke)의 작품을 통하여, 그리고 소년기에 그가 자란 자연의 깊은 숲속에서 성장 경험을 통하여 ‘자연신비주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자연이 계몽주의적 세계관에서 바라보는 생명 없는 물질계의 총집합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연’이고 거룩한 것을 매개하는 ‘성례전적 자연’이었다.

그가 대학 시절(1904~1910)에 영향 받은 사상가로서 니체, 칸트, 헤겔, 특히 셸링을 들수 있겠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1910) 〈셸링의 적극철학에서 종교사의 개념〉이나 〈셸링철학의 발전에 있어서 신비주의와 죄의식〉이라는 신학전문직 학위논문, 특히 대학교수 자격취득 논문(Habilitationschrift) 제목으로서 〈계몽주의 시기 독일 신학에서 초자연의 개념〉을 보면 틸리히의 사상적 기초 단계에서 그의 학문적 관심과 사상 형성 배경을 엿볼 수 있다.

폴 틸리히가 처음으로 독일 지성인 사회에 학자로서 등장하게 된 사건은 그가 33세 때(1919년) 베를린 칸트학회에서 〈문화신학의 이념에 관하여〉라는 주제로 학자들 앞에서 공개 강연을 한 사건이었다. 1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서구의 전통적 종교관 특히 전통 기독교의 초자연주의 인격신관과 자연/초자연이라는 이중 구조의 중세 스콜라신학적 종교관을 극복한 틸리히는 “종교는 문화의 실체요,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로 그의 사상을 집약했다. 그의 이 기본 사상은 본 논문의 각 장에서 조금씩 해명되어 가겠지만, 종교란 인간의 개인적 삶과 사회적 공동생활에서 정신적 삶과 활동의 한 특수한 정신기능이 아니라 모든 정신적 삶의 ‘깊이의 차원’이라고 갈파했다.

틸리히의 위 논문이 말하려는 근본 취지를 다른 용어로써 표현하자면 종교학적 언어로는 ‘성속의 변증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좀 더 크게 불교적 어휘로서 표현하자면, ‘실재(眞如)’와 ‘현상(生滅)’의 상호 관계 혹은 공색(空色) 관계를 바르게 파악하려는 대승불교 사상가들의 논지와 같은 문제인 것이다.2)
틸리히는 교수 자격 취득 이후 히틀러 나치 정권에 의해 교수직에서 해임당할 때까지 약 10년간(1924~1933) 독일 여러 대학에서 신학·철학·종교학 분야의 교수로 활동하였다.

 그의 사상적 지향성은 자기만족적인 자본주의적 문화나 그것의 모순을 혁명적으로 변혁시키려고 등장한 러시아 볼셰비키 공산혁명 문화나, 독일 나치당 및 무소리니 등의 국가사회주의 이념에 기초한 정치적 광기가 인간을 비인간화시키고 문명을 파괴하는 것을 비판하고 제3의 길을 찾으며 현실에 깊이 참여했다. 유럽의 교수사회 지성인들이 흔히 그랬듯이, 틸리히는 종교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독일 민주사회당에도 가입했다.

미국 유니언신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던 세계적 기독교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독일 나치 정권이 쉽게 끝날 것으로 보지 않고, 첨엔 귀중한 학자들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미국 유니언신학교 객원교수 신분으로서 틸리히를 초빙하였다. 틸리히는 첨엔 히틀러 정권이 1~2년 이내에 붕괴될 줄 알았고, 미국 유니언신학교 객원교수로서 체류도 잠시일 줄 알았다.

그러나 히틀러의 장기집권과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독일에 귀환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제2 학문적 생애를 시작하고 미국 시민으로 귀화했다. 유니언신학교 교수, 시카고대학교 신학부 교수, 그리고 하버드대학교 명예교수로서 그의 학문적 역량을 발휘하면서, 수많은 저작물과 논문을 통하여 20세기 기독교계 거성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그의 대표적 저작물을 하나만 든다면 이미 고전으로 평가받는 세 권으로 구성된 《조직신학》을 들 수 있다.3) 그의 생애를 일별했지만, 그가 받은 사상적 배경 및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첫째, 철학사 및 신학사적 계보에서 본다면 그는 파르메니데스, 필로, 어거스틴, 후설, 하이데거로 면면히 이어지는 서구문명의 ‘존재신비주의’ 계열에 속한다. 그가 하나님을 ‘존재 자체(Being-itself)’·존재의 지반(Ground of Being)·존재의 능력(Power of Being)이라고 은유적 표현을 즐겨 쓴 것에서 드러난다.

둘째, 틸리히는 영국계의 경험론 철학 계보보다는 대륙의 합리론과 독일 관념론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지만, 그의 사상은 ‘존재와 생성’ ·‘플라톤 철학사유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사유’를 통전하고 종합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한 조정신학자(調整神學者)라고 볼 수 있다.

셋째, 틸리히 사상의 뿌리에는 독일 신비주의 전통의 맥이 흐른다. 중세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야곱뵈메, 종교개혁자 중에서도 마틴 루터와 유대계 철학자 스피노자, 그리고 20세기 루돌프 오토와 멀치아 엘리아데 등의 영향도 깊었다.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 내용은 범신론과는 다르지만, 자연의 우주만물이 존재 자체를 드러내고 포용한다는 입장을 지님으로 성례전신학·상징신학에 큰 공헌을 했다.

넷째, 틸리히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로마가톨릭 신학과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장점을 모두 포용하려 하지만, 결국은 그는 ‘프로테스탄트 원리’에 충실하려는 신학자였다. ‘프로테스탄트 원리’란 유한자 특히 인간의 실존은 ‘신의 은총의 능력 안에서’ 치유받아야 할 존재로서 분열갈등적 존재라는 정직한 인지와 더불어 어떤 이념이나 형태나 조직 체계를 ‘궁극적인 것’이라고 절대화시키려는 우상화의 경향성에 저항하는 ‘우상파괴’ 정신이다.

다섯째, 틸리히는 변증신학자로서 전통적인 기독교 교의들(Dogmas)을 반복하지 않고, 인간실존 상황과의 상관관계(相關關係) 안에서 복음이 말하려는 진리를 재해석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신학은 기독교 복음이 말하려는 본질적 내용을 현대인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마르크스적 사회주의 역사철학·실존철학·심층심리학·현대표현주의 예술·종교학 등과 깊은 대화를 시도하였다.

3. 존재 자체이신 하느님과 진여법계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이 20세기 기독교에 주는 충격은, 그가 전통적 기독교의 ‘초월적 인격신관’을 비판적으로 극복하면서 하느님은 ‘존재자체’라고 말함으로써 촉발되었다. 틸리히를 미국 유니언신학교에 초청한 라인홀드 니버마저도, 틸리히의 신관은 그리스 철학 영향에 침윤당하여 헤브라이즘 전통의 성서적 인격주의 신관을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비판적이었다.

파스칼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은 철학자의 하느님과 다르며 자기는 강렬한 인격신 체험에 근거하여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느님’을 신앙한다고 천명했다. 그런 입장에 대하여 틸리히는 철학자의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양자택일하거나 상충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틸리히는 그의 ‘존재 자체로서 하느님’은 반드시 성서적 인격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도 명백하게 주장했다. 왜냐하면, 성서가 증언 고백하는 하느님 체험은 인간의 인격성의 존재론적 근거와 지반이기 때문이다.

틸리히가 주장하려는 비판적 논지는 ‘하나님’이라는 궁극적 실재를 언급하거나 경험할 때, 인간 생명 차원에서 경험하는 ‘인격적 실재성’의 존재론적 근거와 능력이 된다는 점에서, 신은 인격 이하의 실재일 수 없으나 동시에 동네 할아버지 같은 ‘한 인격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틸리히의 ‘존재 자체로서의 하나님’은 인격의 긍정이면서 동시에 부정이다.

 다른 말로 하면, ‘궁극적 실재’인 하나님을 탐구하고 경험하고 표현하려는 인간 실존 자체가 ‘인간적인 격’에 기초한 존재론적 시각 렌즈 즉 인격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동시에 제한된다는 것을 인지하자는 말이다. 전통적 통속신앙에서 하느님을 ‘만신전(萬神殿)’의 최상 자리에 좌정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초월적 인격신’은 성서가 증언하는 진정한 하나님 이해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모든 표현들이 철저하게 의인화된 신인동형동성적(anthropomorphic) 묘사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성서종교의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동적 현실성을 보다 생생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동기 때문이다. 성서는 하나님이 인간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질적차원을 지닌 불가해한 신비자임을 동시에 고백하고 있다(사55:8-9). 모세가 호렙산에서 경험했다는 하나님의 자기 이름 계시(창3:14)는 ‘존재하는 것들을 있게 하는 자’ 혹은 ‘스스로 있는 자’ 혹은 ‘나는 나이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히브리어 발음이지만, 그것이 전하려는 핵심은 하나님이란 인간의 인격적 개념으로 다 규정하거나 언표할 수 없는 ‘존재 자체’라는 의미로 틸리히는 본다.

모든 종교적 언어가 은유적이고 상징적임을 잘 아는 틸리히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초월적 인격자이시다”라는 표현들이 은유적이고 상징적임을 강조한다. 그에 비하여 “하나님은 존재 자체이시다”라는 표현은 가장 직접적이고 비매개적 표현이라고 본다.

틸리히에 의하면 “하느님은 인간 실존에 내포된 궁극적 물음에 대한 답이다”.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신이란 인간 본질의 객관적 투영이라고 보는 포이에르바하의 종교 기원의 비판 논지와 동일한 것처럼 들리기 쉽다. 그러나 틸리히는 그런 입장이 아니다. 우선 하느님은 진리 자체(verum ipsum)·선 자체(bonum ipsum)·존재 자체(esse ipsum)로서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하여 하느님 물음을 묻기 전에도 하나님이셨다.

틸리히는 인간이 종교와 신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그럴듯한 설명을 어리석은 견해라고 본다. 기존 전통 종교 안에 내포된 비리와 모순과 비진리를 비판하고 폭로하는 모든 무신론적 열정 자체가 참과 진실을 밝히자는 열정일진대, 하느님은 바로 그러한 열정의 존재론적 지반이고 창조적 비판 능력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존재 자체’라고 이해하는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에서 그의 지론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첫째, 틸리히의 ‘존재 자체로서의 하느님’은 헬라철학이 ‘본질’과 ‘현상’을 구분하고 신을 ‘본질’과 동일시했던 그러한 헬라 본질 철학에서의 ‘본질 자체로서의 하나님’은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틸리히의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은 ‘본질과 현상’ 혹은 ‘본질과 실존’의 대립을 넘어서 있고 동시에 그 양자를 동시적으로 아우르는 ‘존재 자체’이기 때문이다. 틸리히의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은 플라톤적인 이데아계에서 요지부동하며 모든 감정과 운동에서 초연한 신플라톤적인 무감동·무관심(apathetical)한 일자(一者) 같은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교의학에서 발전한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은 그리스철학의 본질 개념으로서 기독교신관의 역동성을 설명해보려고 했던 고대교부 시대(3~5세기) 역사적 산물이라고 틸리히는 보지만, 그 삼위일체론이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과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하겠다. 틸리히는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은유적 관계 설명으로서 삼위일체론이 말하려는 진의는, 성부(聖父)는 ‘존재 자체’의 신성(Godhead)의 근원성과 깊이와 무진장을 말하려는 은유적 마스크요 암호이다.

성자(聖子)는 ‘존재 자체’ 안의 로고스적 성격 곧 ‘존재 자체’가 불합리하거나 자기은폐적인 혼돈적 실재가 아니라, 자기현현의 원리로서 진리 로고스(말씀)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성령(聖靈)은 대모귀신(大母鬼神)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지닌 창조적 에너지와 자유로운 역동성을 은유적으로 상징한다. 성령이 ‘불과 바람’으로 상징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연계의 물질현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설명하려는 ‘존재유비’를 기독교는 조심스러워하지만, 비유하건대 핵융합반응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태양 자체는 성부, 태양에서 쏟아져 나오고 태양을 볼 수 있게 해주는 태양광선은 로고스 성자, 태양광선에 동반되는 태양열 에너지는 성령에 상응한다. 광원·광선·광열은 세 가지 존재 방식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에서 동일하다.

궁극적 실재에 대한 언어기호적 기표(記標)인 틸리히의 ‘존재 자체’를 불교적 기표인 공(空, Sunya)·진여(眞如, Tathata)·법계(法界, Dharmadhatu)와 비교할 때 얼마나 다르거나 혹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가? 불교 전공자가 아닌 필자로서 이 짧은 지면에 그 물음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적 의미에서 종교담론을 하는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특히 기독교신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위 질문에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독자들은 용납하리라 믿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독교 신학자 틸리히가 말하고자 하는 ‘존재 자체’나 불교 특히 대승불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궁긍적 실재를 가리키려는 공·진여·법계하고는 다른 차이보다는 같음 혹은 통함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 차이란 마치 대승불교에서 ‘궁극적 실재’를 표현하는 문자적 기호로서 필자가 얻어들은 세 가지 대표적 어휘들 공·진여·법계라는 세 가지 어휘들이 같은 것을 지시하면서도 서로 약간 다른 기의(記意)적 뉘앙스를 지닌 차이 정도와 같다고 느껴진다. 물론 동일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 엄청난 근본적 차이가 있어서 마치 물과 기름 관계나 심지어 물과 불 관계 같은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것을 그 단어들이 말하고 있다고 누가 주장한다면 분명히 과장이거나, 상대방의 ‘궁극적 실재’에 대하여 자기 나름대로 고정관념을 가지고 비교 평가하는 결과라고 본다.

물론 전통적으로 보면 기독교에서 ‘궁극적 실재’를 언표하는 대표적 어휘들로서 하나님·창조주·역사섭리자 등의 기호들은 피조물과 질적 차이를 지닌 인격적 초월자라는 느낌을 훨씬 강하게 풍기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전통적 기독교의 신관념은 ‘궁극적 실재’가 언제나 시공간적으로 만유 위에, 만유 밖에, 만유에 맞서서 존재하는 궁극적 실재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틸리히는 그러한 이해가 잘못임을 지적하면서 ‘존재 자체로서의 하나님’을 말했다.

교토학파 선불교 철학자 마사오 아베는 대승불교에서 ‘궁극적 실재’를 언표하는 ‘공’이나 ‘진여’가 궁긍적 실재의 ‘대상화 불능성(unobjectifiability)’을 강조하고, 또한 ‘끝없는 개방성(boundless openness)’을 가리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충만함(fullness)과 비어 있음(emptiness)이라는 대립을 넘어선 그 역설적 일치를 강조한다고 설명한다.4) 마사오 아베의 선불교적 궁극적 실재관인 ‘공(空)’·진여(眞如) 가 말하려는 진리를 폴 틸리히의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이 받아들이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궁극적 실재가 대상화 불능성·무한한 개방성·비움과 충만의 역설적 일치성을 지닌다는 것은 기독교신학 특히 틸리히의 신학에서는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 실재’만을 놓고 볼 때에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를 굳이 집어낸다면, 기독교에서 ‘존재 자체’로서의 궁극적 실재가 객관화 불능이고 무한히 열려있으며 자기를 비우면서도 항상 충만한 역설을 드러내지만, ‘영원한 당신’으로서 자유롭고도 거룩한 존재(Sein) 주체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비교할 때, 불교는 ‘궁극적 실재’ 자체가 연기(緣起) 그 자체이기 때문에 ‘공’(空)하고 ‘진여’(眞如)라고 표현 할 수 있을 뿐 존재‘(Sein)주체성이란 허망한 망상이고 희론이 된다. 법계연기 인드라망 속에서 매듭으로서 현성(現成)하는 천태만상의 잠정적 개별주체들이, 찰나적으로 ‘지금·여기’에서, 평등한 동일성의 원리아래서, 잠정적으로 주체성을 누리고 책임지는 평등한 화엄법계의 세계가 불교 세계관에는 용납될 뿐이다.

불교와 기독교라고 부르는 두 우주적 종교의 차이와 특색은 시간·역사관에 있다. 만물을 법계연기의 영원한 바다 물결의 충만한 출렁거림으로 보느냐, 아니면 반복하는 영원회귀 운동속에서도 이전에 없던 새로움이 출현하는 죽순(竹筍)의 자람같은 은유가 상징하는 ‘지향성’을 갖는냐의 실재관 특색에서 드러난다. 그 문제를 다음장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4. ‘영원회귀의 신화(Myth of Eternal Return)’와 ‘기대의 신화( Myth of expectation)’

일찍이 20세기 저명한 종교학자 멀치아 엘리아데는 《우주와 역사》 속에서, 세계 종교들을 우주라는 기조범주에서 숨 쉬는 종교와 역사라는 기조범주에서 자기를 형성해가는 종교로 대별한 바 있다. 인류종교사의 대부분의 긴 시간 동안은 전자에 속한 것이고, 후자는 아브라함의 종교 출현 이후 발생한 아주 생경한 실재관을 지닌 종교라고 보았다.

말할 것도 없이 우주대자연(cosmos)은 시공간적으로 무한광대한 것이고, 역사(history)는 동양화 큰 그림 액자 안에서 지극히 작은 위치를 점유하는 인물 소묘 정도에 해당한다. 그런데 서구문명사의 내용인즉, 바로 이 우주적 종교와 역사적 종교가 청실홍실처럼 튼튼한 동아줄을 엮으며 짜아가는 갈등과 겨룸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실재를 시간 과정의 역사 관점에서 본 아브라함의 셈족계 종교의 중심에 그리스도교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폴 틸리히도 훗날 미국 시카코대학에서 엘리아데와 공동 세미나를 이끌며 종교학과 신학 사이의 상호 심층적 배움의 계기를 갖기 훨씬 전에, 비교적 그의 사상 활동의 초기에 ‘역사적 실재’의 특유성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틸리히는 어찌 보면 역사철학자 혹은 역사신학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가 미국에서 학문 활동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초기(1939) 〈역사 해석에 있어서 역사적 해석과 비역사적 해석의 비교〉라는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였다.5)

틸리히는 위에서 말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세계의 위대한 문명사에서, 종교와 철학이 역사를 이해하는 유형에는 두 가지 대조적인 유형이 있다. 하나는 역사적 실재를 대하여 이해하고 기술할 때, 근본적으로 역사를 자연을 통해 해석하는 ‘비역사적 해석’ 태도와 다른 하나는 역사 그 자체를 통해 해석하는 ‘역사적 해석’ 태도가 그것이다. 비역사적 역사 해석의 경우 ‘공간’이 압도적 우위를 같고, 역사적 해석의 경우 ‘시간’이 압도적 우위로서 사고를 지배한다.6) 물론 시간 개념과 공간 개념은 상호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순수한 두 타입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역사철학의 유형적 분류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틸리히는 ‘역사 해석에 있어서 비역사적 사고 유형들’의 사례로서 중국의 도(Tao)사상, 인도의 브라마 종교철학, 헬라의 자연철학, 그리고 후기 유럽사상사 속에서 생의 철학(니체 등)을 열거한다.7) 역사 해석에서 역사적 유형의 종교철학 계보로서는 조로아스터교, 유대 예언자들의 역사 이해, 초기 그리스도교의 역사 이해, 그리스도교의 교회사에 나타난 소종파들의 역사의식 등이 그에 속한다고 틸리히는 보았다.8)

틸리히가 역사적 실재를 비역사적 시각으로 보는 사례들의 열거 속에 불교를 예시하지 않았지만, 불교가 브라만 종교의 혁신 운동으로서 새로운 종교로 등장했다면, 역사적 실재를 해석하는 기본적 태도나 관점에서는 인도 정신문화 토양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크게 보아 같은 태도라고 필자는 이해한다. 그러므로 틸리히의 신학사상과 불교사상과의 대화에 있어서 ‘역사적 실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는 중요한 쟁점 주제가 된다.

틸리히의 역사 이해와 불교의 그것 사이에 대화를 시도하기 전에, 우선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역사를 이해하는 두 가지 타입들의 특징을 틸리히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핵심만을 정리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먼저 역사 이해를 비역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유형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틸리히는 요약한다.9)

(i)자연(혹은 초자연)은 실재(reality)를 해석하는 최고 범주로 작동한다. (ii)공간은 시간에 대하여 우위적이고 시간은 원운동을 하거나 그 자체 무한반복 운동으로 파악한다. (iii)시간적 세계는 실재성이 덜하거나 궁극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고 본다. (iv)참된 존재와 궁극적 선은 영원하고, 비운동적이며, 생성과 시작과 소멸을 초월한 것이다. (v)구원이란 시간과 역사로부터의 개인의 구원이지 시간과 역사를 통한 공동체 구원이 아니다. (vi)역사는 한 세계 시대(world era)의 불가피한 자기파괴로 나아가는 퇴보적 타락(deterioration)으로 해석된다. (vii)비역사적 역사 해석에 대응하는 종교적 상응 형태는 다신론이거나 범신론 형태이다.

다른 한편, 틸리히는 역사 이해에서 ‘역사적 해석’을 가지는 세계관이나 종교철학의 유형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10) (i)역사란 하나의 독립된 실재이며,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실재 해석의 탁월한 범주이다. (ii)시간은 공간에 대하여 우위이다. 시간 운동은 방향이 있고, 결정적인 시작과 끝을 지니며, 궁극적 성취를 향하여 움직인다. (iii)시간적 세상은 신화론적 의미이든 이성적 의미이든 선악 세력의 투쟁장이다.

그렇지만 존재론적으로, 혹은 창조로서의 세상은 선한 것이다. (iv)참 존재 혹은 궁극적 선은 시간 과정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자기실현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v)구원이란 역사 안(in)에서, 역사를 통하여(through) 악한 힘들로부터의 공동체 구원이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구원사’이다. (vi)역사는 전환점 혹은 중심을 가지는데, 그 전환점 혹은 중심 안에서 역사 의미가 나타나고, 역사 과정의 자기파괴적 경향성이 극복되며, 자연의 순환과정에 의해 좌절되지 않는 새로운 무엇이 창조된다. (vii)역사에 관한 역사적 해석 유형에 상응하는 종교적 형태는 철저한 유일신관이다. 인류의 보편사를 주관하는 시간의 주(主)로서의 하나님 신앙인데, 그 절대자가 역사 안에서 역사를 통하여 경륜적으로 일하신다는 신앙을 지닌다.

이상에서 살펴본 역사관의 두 가지 유형을, 종교적 거대 담론을 상징하는 은유적 신화 형태로 표상하자면, 전자는 ‘영원회귀의 신화’이며 후자는 ‘기대의 신화’이다. 틸리히가 역사 해석의 유형적 특징을 두 가지로 대별하고, 그 양자의 특징을 너무나 단순하게 대립적으로 대조시킨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일단 두 가지 유형의 역사관이 있음을 확연하게 자각하도록 돕는 공헌이 있다. 이 논문에서 우리의 문제는 불교의 역사관을 틸리히가 말하는 ‘비역사적 역사 해석’의 범주로 소속시키고, 그가 그런 유형의 실재관의 특징으로서 열거하는 특징들을 불교에도 그대로 작용시킬수 있는가의 여부 문제이다. 대답은 ‘ 그렇다, 그렇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불교적 실재관이 인연생기설에 입각한 실재관으로 인하여 브라만종교와 다르다. 통속적으로 말하면 불교도 윤회적 순환사관을 가지며, 역사나 시간의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평가하지만, 깊이 보면 만물이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반복하는 순환적 실재관이 아니고, 역사나 시간의 의미를 무시하는 종교도 아닌 것 같다. 특히 대승불교의 모습에서 그렇게 보인다.

해탈에 도달한 불자가 ‘지금·여기’라는 중심점에서 사면팔방의 방향으로 시공간을 확장하고 동시에 수렴하는 무수한 중심들을 지닌 인드라망 안에서의 역동적 진동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역사가 시간의 불가역성을 특징으로 하면서 이전에 없던 그 무엇이 출현하는 창조적 과정이요, 뜻의 실현 과정이요, 목적지향적 성장 성숙 과정이라는 견해를 부정한다는 면에서 보면 틸리히의 거치른 요약이 불교에도 해당된다는 말이다.

불교의 역사관이나 기독교의 역사관의 우열론이나 진위론은 말이 안된다. 다만 실재관의 유형적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서로 인지하고, 서로에게 경청하고, 서로를 배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에서 시간은 전적으로 무시무종(無始無終)하다고 보는 시간관을 가지며, 만물은 인연생기 법칙에 의해 생멸이 반복된다고 보는 이상, 절대자의 역사경륜 신앙이나 목적지향적 역사의 ‘의미와 뜻의 실현 과정’으로서 목적론적 구원사도 불교 입장에서 보면 거대 담론적인 망집에 불과하게 된다.

그런데 기독교가 실재를 ‘의미와 뜻의 역사적 실현 과정’으로 보는 것은 지구 진화의 생명사를 과학적 눈으로 볼 때, 테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가 말하는 ‘의식―복잡화 법칙’이 작용되어 왔고, 진화는 물리적 자연에서나 유기적 자연생명에서나 ‘반복하면서 자람’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철학 영향을 받은 과정신학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스티브 오딘(Steve Odin)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대승불교 화엄사상의 실재관과 서구 기독교적 영향을 받은 과정신학적 실재관 사이엔 차이가 있다. 안형관 교수는 그 차이의 해설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화엄의 이론 구조는 대칭적(symmetrical) 인과설을 이루고 있는 데 반해, 화이트헤드의 그것은 비대칭적(asymmetrical) 인과론을 명시한다. 전적으로 대칭적인 인과론을 바탕으로 한 화엄불교의 주장, 즉 사건들 간의 상입(interpenetration), 상호융섭(interfusion) 또 상호내재성(mutual immanence)설과 예리한 대조를 이루면서, 화이트헤드의 입장은 엄격한 비대칭적 전이(轉移)의 이론에 의해 구성된 것으로서 ‘누적적 진입’ ‘누적적 상호융섭’ ‘누적적 내재’의 형이상학을 포함한다.11)

위 인용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누적적(cumulative)’이라는 단어이다. 이것은 시간의 불가역성을 전제하면서, 실재의 세계가 창조성·새로움의 창발·자유를 향유하도록 담보한다. 물론 불교 화엄사상에서도 화엄법계 안에 창조성·새로움의 출현·자유가 담보된다.

그러나 화엄사상에서는 상호내재와 상호융섭이 ‘지금·여기’에서 형성하는 개별자의 생기사건(生起事件) 안으로 사면팔방에서 진입해 오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불트만신학에서 말하는 ‘현재적 종말론’을 닮은 ‘역사성’은 가능하지만 ‘지속·누적·성장·성숙’을 담보하는 ‘과정으로서의 역사’는 없는 것이다. 그점을 마사오 아베는 인정하면서 불교의 지혜(프라주나) 관점에서는 시간은 극복되거나 의미를 상실하지만, 자비(카루나)의 관점에서 보면 고해의 중생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제도한다는 ‘서원과 행위의 역사’는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12)

틸리히가 역사에 대한 ‘역사적 해석’ 유형에서는 선악을 분별하고, 역사 과정은 선으로 악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하여 공동체가 역사 안에서, 역사를 통하여 공동체가 구원을 얻는 것이었다. 마사오 아베는 불교적 실재관에서 볼 때, 긍정성과 부정성 혹은 존재와 비존재, 혹은 삶과 죽음이 존재론적으로 동시적이고 동등하고 호혜적이기 때문에, 극복되어야 할 것은 대립항의 후자들이 아니라 그 관계를 긴장갈등이나 이율배반적 모순으로 보는 ‘무명(無明)’이라고 본다.13)

5. 열반과 하나님의 나라

틸리히가 불교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하면서 심도 깊게 불교와 기독교의 유형적 특성을 언급한 것은 그의 생애 말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1961년에 행한 제14회 뱀프턴 강좌(The bampton Lecture)를 통해서였다. 이 강좌도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에만 집중하지 않았지만, 강좌의 후반부에서 불교에 대한 그의 소견이 이전 어느 곳에서보다 심도 깊게 술회되었다.

이 강좌에서 행한 원고가 《그리스도교와 세계 종교들과의 만남》14)이라는 작은 책자로 출판되었을 때, 이 작지만 매우 중요한 책을 틸리히에게 일본 여행을 가능하도록 주선해 준 타카기 교수(Prof. Yasaka Takagi)에게 헌정한다는 헌정 문구를 넣었다. 그것은 틸리히가 일본 방문 기간(1960)에 일본의 선불교 학승들과 대화 및 불교 사찰의 방문에서 받은 깊은 인상의 신학적 응답이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선 틸리히가 불교에 대한 대화 자세는 두 종교를 가장 대조적인 유형적 특징을 지닌 보편적 세계 종교로서 받아들이고, 그 각각의 유형이 지닌 특징을 대조하면서 논한다. 그리고 두 종교의 유형적 특색을 가장 포괄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을 열반(니르바나)과 신국(하나님의 나라)으로서 보았다. 틸리히는 그 대조적인 두 종교의 유형적 특징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으로 대비시키고 있다.15)

(i)열반의 상징은 ‘존재로서 성스러움 체험(the experience of the holy as being)’을 지향하는 ‘신비적 경험’의 종교이고, 기독교는 ‘당위로서 성스러움체험(the experience of the holy as what ought to be)’을 지향하는 ‘윤리적 경험’의 종교이다.

(ii)불교적 열반에서 깨달음은 ‘동일성의 원리(principle of identity)’가 지배적이고, 기독교적 신국에서 구원은 ‘참여의 원리(principle of participation)’가 지배적으로 작동한다.

(iii)열반이 지향하는 목적은 ‘만물과 만인의 열반 안에서 성취(the telos of everything and everyone fufilled in the Nirvana)’이다. 이에 대조하여 기독교의 신국이 지향하는 목적은 “만인과 만물이 신국 안에서 통일(the telos of everyone and everything united in the Kingdom of God)”이다.

(iv)열반의 상징은 ‘존재론적 상징(an ontological symbol)’이며, 생멸과 고해가 그친 진여(眞如) 안에서 ‘만물의 지복동체(the blessed oneness of everything)’가 강조된다. 신국의 상징은 사회적·정치적·인격적 상징(a social, political, and personalistic symbol)이며 정의와 평화의 지배가 강조된다.

(v)자비는 무명의 고해에서 벗어난 보살이, 아직 무명고해(無明苦海) 상태에 시달리고 있는 중생과의 동일화(identification)를 통해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아픔을 함께 앓는 것이다. 기독교의 아가페 사랑은 용납할 수 없는 자를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용납하여 변화시키는 에너지이다. 변화시키는 창조적 에너지는 개인의 내면적 혁명만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혁명을 통한 외면적 해방을 동일하게 중요시 한다.

이상의 요약은 불교와 기독교라는 종교가 각각 유형적 특성을 달리하면서 지닌 색깔들을 틸리히의 견해에 따라 정리해본 것이다. 유의할 점은, 틸리히도 누누이 강조하는 바처럼, 유형적 대조(typological comparison)의 위험은 한쪽에 있는 유형적 특성이 다른 쪽엔 전혀 없는 것인 양 단순화시키는 오류이다. 불교적 특성으로서 열거하는 특징들이 기독교 안에도 있고, 그 반대도 역시 그렇다. 문제는 양극성 중 어느 것이 주도적이냐일 뿐이다.

예언자 종교의 정신 후예인 틸리히는 기독교를 인격주의, 윤리적 책임의식, 역사의 변혁 의지, 정치사회적 변혁을 강조하는 종교로서 본다. 그것이 신국의 상징 속에 담겨 있다. 그러나 그와 다른 유형적 종교로서 불교는, 인간의 윤리적 당위성이나 역사의식을 상대화시키고, 도리어 있음 그 자체의 성스러움에 눈뜰 것과, 지혜의 깨달음과 자비의 보살행은 둘이 아니고 동전의 양면임을 강조하는 종교이다.

마사오 아베는 틸리히의 위와 같은 유형적 대비가 정확하지 않고 상당부분 오해에 기인한다고 비판한다.16) 특히 상좌부불교(Theravada Buddhism)의 관점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대승불교 관점에서 보면 틸리히의 유형론적 대비는 섬세하지 못하고 평면적 단순 비교라고 비판하는 마사오 아베의 비판에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이 논문에서는 마사오 아베의 비판에 대한 평가를 할 자리가 아니다. 다만 20세기 대표적 개신교 신학자인 틸리히가 불교 일반의 유형적 특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고자 한다. ■

 

김경재 / 1940년 전남 광주 출생. 한신대학교, 연세대 연합신학 대학원,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졸업. 네덜란드 유트레이트대학교 박사학위 취득. 한신대 신학대학교 교수 역임(조직신학). 현재 서울 대신동 삭개오작은교회에서 목회 활동 중. 기장의 대표적인 진보신학자로서, 종교 간의 대화에 관한 눈문 다수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 《해석학과 종교 신학》 《폴 틸리히 신학 연구》, 《영과 진리 안에서》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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