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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행복 찾기 / 지혜경
[40호] 2009년 09월 10일 (목) 지혜경 연세대 강사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어릴 적 우리의 삶은 세상의 근심 걱정이란 찾아볼 수 없는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어린아이들은 지난날 우리처럼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어른이 되면서, 세상을 알아가면서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이전처럼 즐겁지 못하다. 즐거움과 행복을 꿈꾸지만 그 모든 것들은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것일 뿐 잡을 수 없다. 슬픔이 있기에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는 일종의 자기 위안일 뿐, 누구나 영원한 즐거움, 행복을 원한다. 열반의 세계는 영원하고 즐거운 세계라고 하지 않는가. 즐거움·행복은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 가운데 하나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마냥 즐겁고 행복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많은 명상 서적에서는 행복이란 소소한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의 일상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아침에 눈을 뜨고 출근하고 일을 마치고 퇴근하고, 다시 잠을 자고 아침을 맞는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일 없이 언제나 반복적이기에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일 년이 지나도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반복되며 새로운 것이 없는 무료함. 그러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이는 여행을 가고, 어떤 이는 취미생활을 한다.

그러나 여행을 간다 해도 일상은 일상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며, 취미생활도 규칙성을 가지면 결국 일상으로 편입된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또 다른 새로움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대며 부유하게 된다. 언제나 다른 먹이를 찾아 떠도는 맹수처럼 즐거움을 충족하게 위해 계속해서 새로움을 쫓는다.

어릴 적 즐거움으로 충족되던 시간들이 지금은 갈망으로 대치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전에 들은 연기(演技, acting) 수업에서 그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수업은 연기의 원리를 몸에 익히기 위한 워밍업 수업으로, 하루는 수업시간 때 옷을 입고 벗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했다. 연기란 일상의 순간을 재현하는 것이기에, 일상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을 바탕에 두어야 한다.

깊은 관찰을 위해 옷을 입고 벗는 행위에 속도를 변화시켜보고, 행동을 하다가 멈춰보고, 몸을 떨면서 옷을 입고 벗는 등 단순한 동작으로 생각되는 옷을 입고 벗는 행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보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옷을 입고 벗는 행위를 천천히 지켜보았었다.

천천히 나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옷을 벗을 때 팔이 잘 빠지게 하기 위해서 팔을 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머리 부분을 뺄 때 눈을 감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속도를 빨리할 때는 급한 마음에 동작이 엉키기도 했고, 떨면서 옷을 입고 벗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 알 수 있었다.

옷을 입고 벗는 행위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위이기에 우리가 어떻게 옷을 입고 벗는지 기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를 천천히 하기도 하고, 빨리하기도 하며 속도를 바꾸며 집중을 하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연한 행동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옷을 입은 행위’ 또는 ‘옷을 벗는 행위’ 하나였다. 그러나 과정을 관찰하고 과정에 변주를 주면서 그 행위는 결과만 남기고 스쳐 지나가는 일상이 아니라 우리 기억에 흔적을 남기는 사건이 되었다. 사건은 우리의 일상을 즐겁게 만든다. 신문지상을 뒤덮는 수많은 사건 소식은 우리의 무료한 일상에 놀라움과 충격을, 때론 슬픔이나 즐거움을 준다. 사건이란 일상을 일상이 아니게 만드는 것이다. 사건은 단지 나의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할 때 사건은 더 늘어난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매 순간순간이 새로움의 연속, 낯섬의 연속이게 된다. 옷 입는 행위가 사건이 될 때 그것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새로움을 주는 놀이가 된다. 사건과 놀이는 우리의 감정에 파장을 일으키고 즐거움을 준다. 그동안 잊고 있던 영원한 즐거움, 행복의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일상을 사건으로 만드는 것, 삶을 살아가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놀이하듯 즐기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것이다.

어린아이와 우리가 다른 것은 모든 경험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데에 있다. 당연함은 놀라움을 사라지게 한다. 당연함은 집중의 필요성도, 관찰의 필요성도 없게 만들기에 우리의 감각을 닫아버린다. 하지만, 무감각한 일상의 한 점에 집중해서 관찰하는 행위는 대상을 낯설게 하기 때문에 일상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 우리의 감각을 열어 순간순간 변화하는 대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놀라움과 즐거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옷은 입는 행위’는 누구나 하고 있는 당연한 일상일 뿐이지만, 그 과정에 집중하여 각각의 행동들을 쪼개어 관찰할 때 일상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사실 이러한 집중과 관찰은 불교 수행의 기초 중의 기초인 염(念, sati)이다. sati는 대상에 의식을 집중하고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다. 호흡에 대한 집중에서 시작하여, 몸의 자세, 느낌, 마음, 마음의 대상(法)에 대한 집중을 통해 대상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보고 집착을 버리게 한다.

sati는 높은 단계인 정념(正念, samm켥-sati)이 되어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을 자각하게 하여 정견(正見, samm켥-ditthi)을 갖게 한다. 일상에서 적용하는 sati는 정념처럼 높은 단계의 정신작용까지는 아니지만, 기초적인 집중만으로 삶의 순간은 새롭게 구성될 수 있다. 자신의 호흡, 몸 동작, 생각에 대한 집중과 관찰은 매순간 존재하고 있는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게 할 것이며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고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일상이 사건이 될 때 삶은 즐거움으로 넘치고, 순간순간은 소중하게 된다. 순간의 소중함은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되고, 이는 일상의 행복을 만들어 준다. 일상의 행복찾기의 시작은 바로 sati에 있다. sati는 멀리 있는 수행법이 아니라 삶을 즐겁고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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