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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기다리는 소나무 / 전보삼
[40호] 2009년 09월 10일 (목) 전보삼 신구대 교수·만해기념관장

남한산성에 20년째 살다 보니 나무들과도 친구가 되어 간다. 남한산성은 민족자존의 역사가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산성의 역사로나 축성의 기법에 있어서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산성이 남한산성이다. 조선왕조 16대 인조 임금부터 27대 순종 황제까지 사용하였던 남한행궁(국가사적 480호)도 복원 정비되면서 경기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터 잡아가고 있다.

여기에 수도권 최대의 소나무 군락지로서 자연환경도 잘 보존된 자연유산의 공간이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산림이 울창한 자연유산의 터전에 만해 한용운 선사의 기념 공간을 만들어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보람과 역경이 수없이 교차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만해기념관의 성과를 논하기 전에 만해기념관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의 지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만해기념관을 준공할 무렵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소나무 몇 그루를 심기로 하고 조경사와 상의하여 소나무 다섯 그루를 심었다. 그중에 수령이 잘생긴 놈을 골라 기념관 입구에 심었다. 나무 한 그루 심는 데도 많은 정성이 들어야 했다. 소나무가 똑바로 잘 자란 놈은 아니고 약간 비스듬하게 구부러져 있었기에 그 형태 그대로 심었다. 곧게 잘 자라주기를 고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면서 소나무는 점점 기울어지더니 곧 스러질 듯하였다. 소나무가 너무 기울어져 넘어질 것 같은 걱정을 안고 있었다. 더욱이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긴장하며 소나무 쓰러지는 것을 방지하겠다고 내 딴에는 꽤 고심하면서 소나무를 건물 기둥에 넘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매어서 태풍이 무사히 지나기를 기다렸다. 강풍이 부는 날 나는 소나무를 지키기 위하여 비바람과 사투를 벌리며 소나무 지키기에 온 힘을 다 기울였다. 태풍은 무사히 지나갔고 소나무는 건재하였다.

소나무가 뿌리가 더욱 활착되고 잘 자라서 내년에 다시 오는 태풍도 이겨 주기를 기원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소나무의 생리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걱정이란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소나무는 햇볕을 쫓아가는 양수 식물인 것을 그때만 하여도 잘 몰랐다. 즉 햇볕이 무엇보다도 소나무 생육에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보니 기념관의 소나무가 너무 건물 쪽에 가까이 심어져 있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큰 건물이 소나무 가까이 있으니 소나무는 그 건물의 그늘을 피하기 위하여 가능하다면 멀리 떨어져 많은 햇볕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소나무는 처음 심었을 때보다도 더 기울어서 경사가 심화되었다. 한참 기울어지던 소나무가 어느 날 다시 똑바로 하늘을 향하여 잘 자라는 것이었다. 소나무 생육의 조건인 햇볕을 쫓아가는 양수 식물인 것을 알고 나니, 기울어져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소나무는 자기의 생육 조건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울기도 하고, 기역 자로 구부러지기도 하고, 영양분은 좀 모자라도 햇볕을 가리지 않는 나무들이 없는 바위틈에서 나 홀로 낙락장생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나뭇잎이 무성하고 키가 큰 나무 즉 신갈나무 주변에는 소나무가 자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여름의 무성한 신갈나무 숲은 소나무의 햇볕을 자꾸 가리고 소나무는 햇볕을 확보 하기 위하여 애를 태웠다.

그렇게 햇볕을 가리더니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니 그 무성한 나뭇잎들은 낙엽 되어 흩어져 온데간데없고 온종일 따스한 볕만 쬘 수 있게 된 소나무는 행복해 보였다. 매서운 겨울 추위쯤이야 견딜 만하다고 소나무는 더욱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신갈나무 숲의 소나무들은 겨울이 오기를 기다리며 겨울이 오히려 행복한 계절이요 자연의 섭리를 잘 이용하는 즐거운 계절이다. 잎이 지고 난 겨울의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의 위용은 참으로 멋진 경관인 것이다. 여기다 눈꽃이 휘날려 소나무 숲에 설화라도 피어나면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 경이로움을 체험하고 싶으면 눈 오는 날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으로 오라.

남한산성 20만 평의 소나무 군락지의 생태에 관하여 공부를 하고 보니 저기 저 소나무는 왜 구부러졌고, 이 소나무는 어째서 쭉쭉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잘 자라는지, 소나무 숲의 생태를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소나무 숲이 한층 자랑스러워졌다. 그와 함께 저 소나무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의 양이며 음이온의 양을 측정하여 자연의 은혜에 고마움을 표시하여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남한산성 행궁 뒤쪽에는 술이 깬다는 바위(醉醒岩)가 있어 생명의 지표를 일러 주고 있다. 그곳에는 소나무 기운인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감도는 곳이요 음이온이 제일 많이 발생하여 정신이 번쩍 드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인간에게 소나무 숲은 생명의 길러주는 무한한 은혜의 숲이다. 이제 웰빙(well-being)을 넘어서 내추럴빙(natural-being)의 시대다. 자연과 더불어 잘 살자는 이야기를 남한산성 만해기념관 소나무 숲에서 느낄 수 있었으니 필자의 행운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무들도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생리적 현상을 나타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찾아서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한다. 소나무에 상처가 나면 병원균의 칩입을 막기 위하여 송진 액을 흘려 방어벽을 쌓고, 나무들도 20~30년을 걸쳐 전쟁을 하며 자기들 영역을 확보하였다는 사실을 접하고 보니 자연의 경이로움에 한층 고마움을 표해야 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한산성의 저 소나무들은 우리 생명의 원천이요 보물이다. 잘 가꾸어진 소나무 숲은 우리와 함께 이 땅을 가꾸어가는 보배로운 존재들로서 함께 잘 살아야 한다. 인간은 숲에서 태어나 숲과 함께 잘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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