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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碑銘)을 생각하는 날 / 임연태
[40호] 2009년 09월 10일 (목) 임연태 시인·현대불교신문사 편집부국장

문명 발달의 원동력 ‘기록’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처음 발견한 스페인의 아마추어 고고학자 사우투올라는 억울했다. 자신이 열두 살짜리 딸과 함께 발견한 그 위대한 예술을 ‘위조된 것’이라고 일축하는 학계가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 억울함이 ‘위대한 발견’으로 인정받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자신이 사실을 입증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유명 고고학자 앙리 브뢰이으가 프랑스 남서부와 피레네 산맥에서 석기시대의 그림들을 잇따라 발굴해 내자 사우투올라도 억울함을 벗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본 것만 믿는다. 그렇지 않은 경우 신뢰할 만한 어떤 권위가 자신의 판단을 지배할 때 믿는다.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면 처음엔 믿지 않지만 동네 산부인과 의사가 말한 것이라면 믿는다. 처녀가 아이를 낳았는지 어쨌는지는 그 다음의 문제가 되고 만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카메라 광고 카피가 있었다. 기록한다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가운데서도 아주 중요한 사항이다. 기록은 한 시대를 다음 시대로 누적시킨다. 그렇게 켜켜이 쌓아진 삶의 궤적이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고 지혜를 유전시킨다.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다면 인간의 역사는 현재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기록할 것이 많아진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문자의 사용과 기록 본능,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문명사에 더 없이 중요한 동력이다. 한 달에 수백 건씩 휴대폰 문자를 주고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기가 막혀 하는 부모는 아이들보다 뒤처진 자리에 서 있는 것에 불과하다.

종교의 기록 유전자 ‘경전’

경전이 없었다면 오늘 불교는 있을 수 있을까? 이심전심(以心傳心)만으로 부처의 마음이 지금의 나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암송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체계화하고 공인시킨 당시의 제자들은 참으로 위대한 분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부처를 능가하는 부처’였는지 모를 일이다. 그 뒤 경전이 문자로 기록되고 문화와 풍습 언어가 다른 나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첨삭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부처를 능가하는 부처’가 출현 했었다.

불교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기록으로 전하는 교조의 가르침은 절대적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은 곧 여호와고 이슬람교도에게 꾸란은 곧 알라다. 성경도 단순치 않은 편찬사와 번역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꾸란도 불교경전의 결집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드는 사람들이 사는 시대와 풍토에 따라 견해가 달라지고 믿음의 가치도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기록에 대한 해석의 측면은 가치관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에게는 기록의 본능도 있지만 해석과 신뢰에 대한 자유도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종교도 기록이라는 유전자를 통해 그 가치와 질서의 원형질을 인류사에 누적시켜 왔다. 경전이 그 핵심 유전인자다.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나 경남 울주군의 반구대 암각화에도 아득히 먼 시대 사람들의 기원과 주술 즉, 종교적 성격이 담겼지만 기록의 본능이 그 밑바닥에 흐르고 있다.

문제는 기록하는 사람과 그 기록을 해석하고 믿는 사람이다. 단 몇 년 혹은 몇십 년이나 몇백 년 나아가 수천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조우한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이 어떻게 ‘이심전심’을 하느냐 하는 문제 말이다. 그 조우 앞에 벽화가 있고 패엽경이든 석경이든 그림이든 판각이든 필사본이든 다양한 형태로 기록된 경전이 있다. 그 조우 앞에서 학자와 종교인의 입장은 달라진다. 학술적인 견해로 풀어내는 ‘진실’과 종교적 입장에서 이해하고 믿는 ‘진리’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

부도 앞의 탑비, 그 눈부신 기록들

올 초부터 기자의 신분으로, 시인의 감성으로 ‘부도밭 기행’을 다니고 있다. 이 기행에서는 두 가지를 공부해야 한다. 하나는 부도의 양식을 비롯한 미술사적 정보들을 익히고 감상하는 안목을 갖추는 공부다. 또 하나는 부도와 짝하여 서 있는 탑비를 이해하는 것인데,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고 비명을 지은 사람과 글자를 새긴 사람, 서체 등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부도를 보는 눈과 부도의 주인이 어떤 인물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다.

부도는 수행자의 무덤이지만, 그 자체로 공경의 대상이다. 한 수행자의 높은 수행과 가르침이 응결된 상징체이기 때문이다. 그 상징성을 사실로 공인시키는 기록이 바로 부도탑비다. 탑비에는 수행자의 일생이 아름답고 찬연한 문장으로 새겨져 있다. 탑비의 눈부신 기록이 있음으로 부도의 주인이 이룬 수행은 눈부신 빛을 얻는다. 특히 구산선문 개산조들의 부도와 탑비들은 한국선불교의 시원을 장엄하게 전하는 기사들을 가득 안고 있다. 그 기록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선불교는 뿌리 없는 줄기로 서 있는 고목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선불교에 있어 부도탑비는 소중한 기록유산의 결정체들이다. 안타깝게도 잃어버리고 깨져버리고 도괴되어 버린 탑비가 부지기수다. 부도는 시린 발로 서 있는데 그 곁을 지켜야 할 탑비가 없는 경우도 있고, 탑비는 외롭게 서 있는데 주인 행세를 해야 할 자리에 부도가 없는 경우도 있다.

역사의 한 시점을 살아가는 입장에서 기록유산들을 더 발굴하고 더 반듯하게 해석하여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한 시대를 살다 가는 한 인간 혹은 불자로서 자신의 비(碑)에 얼마나 좋은 내용을 기록하여 후세에 귀감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부도밭 기행을 다녀오는 날에는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나의 비(碑)에는 무엇을 기록하게 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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