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을 전공하고자 동국대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한동안 동국대의 장점을 찾아보려 애썼던 기억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건학 이념으로 하면서 진정한 의미에서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그 학교가 동문 여러분이나 학교 관계자 여러분에게는 대단히 죄송스런 견해지만, 당시만 해도 후기 모집의 2류 대학으로 서서히 몰락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억누를 길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던 차에 참으로 고맙게도 동국대의 각별히 자랑할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 동국대는 지체장애아들에게 문호가 활짝 열려 있었다. 보통 이공 계통에서는 실험실습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장애아들을 선발전형에서 제외하고 있었지만, 동국대만큼은 일부 특수학과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힘들어 학교를 다니지 못하면 몰라도 장애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입학을 불허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연유로 탄생한,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우리 동문 가운데 한 명이 장기상이란 친구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두 다리가 부자유한 그는 자신의 적성을 무시하고 다른 대학 문과 계열에 입학했다가 동국대 소문을 듣고 중퇴한 뒤 학교를 바꿔 다시 입학한 친구다. 그는 이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덕에 있는 원자력연구소 입사시험에 응시했는데, 그 친구 때문에 연구소 시험 결과 발표가 일주일 늦춰졌다. 워낙 뛰어난 성적이었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을 뽑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 연구소 입장에서 고민거리였던 것이다. 물론 일주일 후 그는 합격했다.

그가 재학 시절 학교에서 주최한 학생논문 선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탄 적이 있었는데, 물론 전공이 다른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분야였지만 그가 낸 논문의 주제는 발광 다이오드에 관한 것이었다고 기억한다.1980년대 초반의 일이었는데, 요즘 새로운 산업 분야로 각광받고 있는 LED와 관련된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동문을 배출한 동국대가 요즘은 용역업체에 위탁을 맡겨 운영한다는 이유로 장애인 등록차의 주차 할인 혜택에 대해서도 외면하고 있다.

1994년도 조계종 개혁 이후 불교계는 그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다양한 사회사업들을 전개하고 있다. 포교라는 것이 거의 이데올로기화됐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포교를 명분으로 하는 다각적인 시도들에 대해서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고개를 갸웃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일들도 있다. 예를 들면 내 경우에 사찰 전통요리라는 것이 좀 못마땅한 분야이다.

채식을 위주로 하면서 오신채를 먹지 않는 전통에 따라 불교에는 산채를 소재로 한 다양하고도 독특한 음식문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특히 웰빙에 목을 매는 현대인들에게 사찰 음식은 건강식의 전형으로 촉망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계몽한다는 입장에서 여기저기 전개되고 있는 사찰 전통요리 시연회 등을 지켜보다 보면 뭔가 전도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음식은 내 몸을 살리기 위한 약쯤으로 여겨 맛에 집착하지 않고 받으며 구하기 쉬운 제철 푸성귀들로 만들어 소박하고 검소함이 사찰 음식문화의 생명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소재만 채식일 뿐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희귀한 재료들이 난무하고 자연산 송이버섯 탕수니 김치 피자니 전통에는 있지도 않은 퓨전음식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물론 문화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진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런 것을 사찰 전통음식이라고 접해본 일반인들에게서 “스님들은 늘 이런 음식만 드세요?” 하는 질문을 받게 되면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청담 스님께서 당시 그렇게도 경계하셨던 요릿집 불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의 좁은 견해로 과거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이념 운동 위주였던 불교운동은 이제 문화운동으로 시급히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될 시점에 와있다. 그러나 백범 선생께서 문화에 대해 일찍이 정의하셨듯 ‘백성들을 복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 반드시 부처님 가르침의 참된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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