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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다람살라, 그리고 백담사 / 이경철
[40호] 2009년 09월 10일 (목) 이경철 문학평론가·동국대 겸임교수

1999년 8월, 한여름인데도 만년설이 하얗게 쌓인 히말라야 연봉에 둘러싸인 고원 분지 라다크의 한 명상센터를 찾았었다.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과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햇살 아래 라다크에서는 여름 넉 달 동안 씨 뿌리고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추수해야하는 척박한 환경. 산들도 다 늙어 바스러져내려 오르려면 도마뱀처럼 오체투지로 기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곳 명상센터 소장 스님의 명상에 대한 이야기가 참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걸 생각게 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 종족이 늘어남에 따라 인간들은 남들보다 좀더 좋은 것을 많이 달라며 신을 성가시게 했다. 인간들의 성화에 신은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숨기로 했다. 설산 꼭대기로 거처를 옮기니 엄홍길 같은 산악인 올라오고, 깊은 바다 속으로 옮기니 산소통을 메고 내려오고, 달나라로 숨어도 아폴로로 찾아왔다. 해서 신은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에 꼭꼭 숨었다는 게 그 스님의 말. 그러매 우리 마음속에 숨은 신, 내 마음의 적멸보궁을 찾아가는 게 명상은 아닐는지.

해발 4,000m 가까운 고지에 위치한 명상센터에서는 산소가 희박해 나도 모르게 숨이 끊어질까 무서워 잠들 수 없었다. 그래 밤마다 옥상에 올라 눈높이 하늘 가득 반짝이며 눈 속으로, 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지는 벌똥별만 바라보았다. 티베트 오방기 펄럭이는 소리, 만년설 녹아 흘러내리는 소리, 도마뱀 울음소리, 실로폰 같은 풍경소리 등 사방 어둠 가득 바람에 실려 가는 소리뿐인데. 별똥별들도 떨어져 내리며 뭔가 소리를 내고 있는 듯했다. 아니 내게 뭔가 숨 가쁘게 묻고 있는 듯했다.

열흘째 되는 명상센터에서의 마지막 밤, 그들이 묻는 소리가 내 눈가에 또렷이 들리는 듯했다. “형, 나 언제 또다시 별로 떠오를 수나 있는 것이야”라고. 나는 그 가엾은 동생 같은 별똥별들에게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래, 다시 곧 별로 떠오를 수 있을 거야. 물소리, 풍경소리, 만년설, 풀꽃, 야크 똥, 거지, 왕, 바람소리로 돌고돌다 곧 다시 별이 될 것이야”라고. 내 마음속에 숨은 부처님이 한 말씀이라면 라다크에서의 별 바라기 열흘이 헛된 날은 아니었을 터. 

2000년 6월, 방한(訪韓) 이야기가 오가던 달라이 라마를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로 가 친견(親見)했었다. 지구상 마지막 제정(祭政)일치로 현실에서 극락정토를 열려는 나라. 그러나 지금은 천상에서 가장 가까운 히말라야 고원에서 쫓겨나 겨우 그 끝자락 남의 나라 한 귀퉁이로 남은 국가가 티베트 아닌가.
다람살라는 과거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 장교들의 별장과 휴양소가 있었던 히말라야 산록답게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티베트 불교의 마음을 물리학, 우주과학, 생명과학 등 첨단과학과 사이버 시간, 공간에 응용해 상생(相生)의 삶과 사회를 세계에 전하고 있는 ‘지혜의 큰 바다’가 달라이 라마다.

제정일치 왕으로서 현실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에 두루 훤한 그에게 이 혼란스런 시대 마음의 안정에 이르는 길 등 많은 것들을 물었다. 조목조목 일상의 예를 짚어가는 답변은 쉽고 구체적이고 재미있었다. 여느 큰 스님들의 설법이나 게송(偈頌)처럼 고도의 은유나 파격의 의뭉스러움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쉬운 말로 스스로 깨치게 했다.

그런데 정작 “정말 환생하신 부처님이십니까?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떤 마음이 이 세상을 극락정토로 가꿀 수 있습니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엔 그냥 환하게 웃고만 있었다. 그런 웃음만 쳐다보며 뭔가 갈구하고 있는 내가 민망해보였던지 달라이 라마는 손을 활짝 벌리며 “아이 돈 노우”라고 했다. 순간 크고 명료한 깨달음이 이마를 확 덮쳐오는 듯했다.

한 순간이면 즉시 극락정토에 들어가고 한 생각 돌이키면 몇 억겁 넘나드는 그 큰 깨달음을 어찌 말로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알더라도 그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지경을 말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웃을 수밖에. 너무 환해서 멍청한 어린애 같은 웃음, 그런 염화미소(拈華微笑)를 달라이 라마에게서 본 듯했다면 친견의 먼 길도 헛걸음은 아니었을 터.

2009년 여름 한 달, 찌든 나를 둘러보고 수년 전부터 미뤄온 글을 쓰려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묵었다.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 이전에 일어나려 했는데 와글바글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 성가셔 처음 며칠간 잠 이루기 힘들었다. 두어 시간 잠 못 이루다 차라리 밖으로 나갔다. 나가 보니 글쎄, 10년 전 히말라야 라다크에서 떨어진 별들이 설악 하늘 가득 반짝이며 인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물 위에 뜬 별빛 개구리 울음 와글바글거리며.

그때부터 개구리 소리 자장가 삼아 편히 잠들고 설악산보다 먼저 깨어나기 시작했다. 미명에 밖에 나가면 사위가 조용하다. 저 동해 바다 속 떠오르는 빛살 기미를 감지했을까. 새 한 마리 휘파람 소리 내며 운다. 그걸 신호로 뭇 새 도량석하듯 지저귀면 설악산도 부스스 깨어나는 것을 보곤 했다. 안개로 머리 감고 세수하며, 안개 털고 깨어나는 꼭두새벽 설악 연봉을 바라보면 그곳 큰스님 ‘무산(霧山)’이 그대로 느껴지곤 했다.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강물도 없고 해서 다리도 없는 공(空)의 세계가 새벽 안개 자욱한 백담 설악 봉우리 봉우리들같이 보일 듯 말 듯. 아무것 없는 공의 세계마저 콸콸 흘러가게 하고 범람케 하는 통 큰 법력(法力)이 무산 스님의 위 시 〈무자화(無字話)―부처〉와 함께 느껴지곤 했다. 그래 이 시 운(韻)에 기대어 나도 한 수 감히 이렇게 읊고 만해마을을 내려왔다.

큰 산도 쓰싹쓰싹 안개 피워 지워놓고
안개도 훠이훠이 바람 불어 쓸어놓고
없는 산 꿍, 떠메 가는 저 산안개 사람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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