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의 제목부터 해명하자. 제목이 이색적(?)이기도 하거니와 독자의 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그 해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제목에서 분명히 드러난 사실은 이 글이 불교 그 자체를 논의하는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마르크시즘 그 자체를 논하는 글도 아니다. 이 글의 초점은 동몽이상에 있다. 불교와 마르크시즘 사이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논의해 보려는 것이 이 글의 초점이다.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만남이 이 글의 애초의 기획의도이자 최종 목적이지만, 바로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라도 그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선명하게 밝히는 것이 선결 과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와 마르크시즘은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한 제목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듯이, 불교와 마르크시즘은 비록 논의의 초점은 아니지만 만남의 당사자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언뜻 보기에도 ‘겉’궁합이 좋지 않은) 불교와 마르크시즘인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자.

주지하듯이 인간은 밥만 먹고 살지 않는다. 돼지와 다르기 때문이다. 베버(Max Weber)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인간은 의미를 따먹고 산다.”고 말했다. 때문에 삶의 의미를 제공하는 종교와 그 생산수단은 삶의 필요불가결한 일부이다. 실제로 최소한 불자에게는 마음의 양식(糧食)을 제공하는 불교와 그 생산수단인 수행은 생활필수품이며, 나아가 세계종교(world religion)로서 불교가 인류문명을 한 단계 더 진보시키는 힘을 지닌 일종의 보편적 문화 기획으로(그래서 인류의 공유자산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밥을 먹지 않고는 배고파서 못 산다. 육체를 가진 생물학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양식을 발견한 붓다조차도 배고픈 사람에게는 마음의 양식인 법보다 먼저 육체의 양식인 밥을 주라고 당부하셨다(김용택, 1996). 그러한 한 그리고 그러한 정도만큼, 우리의 삶에서 물질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노동과 생산수단의 발전은 마르크스(Marx)의 표현대로 ‘필연의 영역’이다.

때문에 헤겔이나 마르크스는 말할 것도 없고 아담 스미스와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조차도 이미 노동을 물질적 가치생산의 원천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에서 노동의 물신화를 비판하고 소외된 노동을 지양시킴으로써 궁극적인 인간해방을 성취하고자 했던 마르크시즘은 현실사회주의가 패망한 오늘날까지도 가장 진보적인 이론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그리고 인간이 육체와 정신을 가진 존재라면, 육체의 양식으로서 밥과 마음의 양식으로서 법은 존재의 절대요소이며, 때문에 그것을 생산하는 수단인 노동과 수행은 인류문명의 생활필수품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 물질의 흐름을 규명하고 그 생산의 본래적 원천인 노동해방을 통해 인간해방을 모색하는 마르크시즘과 마음의 양식을 생산하는 가장 우수한 생산수단 즉 수행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불교는 인류문명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두 축이자 지적 자산이다.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조우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리고 비록 아널드 토인비가 “불교와 서양의 만남은 20세기의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이다.”라고 했다 하더라도(르누아르, 2002), 아직까지도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의미심장하게 만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인도차이나반도를 포함한 인도 문명권의 일부 사회주의국가를 제외하면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만난 사례는 드물며1), 그러한 만남의 사례조차도 인류문명사에서 의미심장한 그 무엇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안타깝게도, 기원전 5세기경에 탄생한 불교와 서구 근대문명의 한 축인 마르크시즘의 만남이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고 또 인류문명의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그런데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만남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가, 통상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 추구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교와 마르크시즘은 인간해방이 이루어진 ‘계급 차별 없는 이상사회’라는 ‘같은 꿈’, 즉 동몽(同夢)을 꾸었고 지금도 꾸고 있다.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결정적인 차이는 ‘꿈’이 아니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방법, 실현 조건 등이다. 이렇게 볼 때, 불교와 마르크시즘은 마치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뒤바뀐 조합, 즉 동몽이상(同夢異床)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교와 마르크시즘은 각각, 최소한 학문적 차원에서는, 상호보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요컨대 ‘속’궁합은 괜찮다.

이 글의 목적은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만남이란 전제하에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동몽이상의 실상을 확인해 보고 그 차이점을 좁힐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있다. 그 전략은 다음과 같다. 우선 만남의 명분이 마련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공통의 꿈(동몽(同夢))에 대해 간략하게 논의할 것이다. 그런 다음 그러한 꿈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 방법, 실현 조건 등을 비교의 관점에서 논의할 것이다. 동상이몽의 강조점이 이몽(異夢)에 있듯이 동몽이상의 초점도 이상(異床)에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자세하게 전개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불교와 마르크시즘 사이의 만남을 위한 논의로 이어갈 것이다.

2.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동몽(同夢): 이상사회를 향한 꿈

트레버 링(1993; 162-165)에 따르면, 불교와 마르크시즘은 세 가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인간의 운명을 인간 외부의 절대자에 신탁하지 않는 무신론적 태도이고, 둘째는 세상을 무상(변화)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실천 지향적 태도이며, 셋째는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적 태도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공통적으로 인간해방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붓다와 마르크스는 공통적으로 ‘계급 차별이 없는 사회’를 이상사회의 패러다임으로 간주하고 있다. 붓다와 마르크스가 지양하고자 했던 구질서(혹은 구체제)가 계급 차별과 그로 인한 고통의 재생산이란 한계(혹은 모순)를 내포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회악을 해결하고자 했던 붓다의 눈에는 카스트와 같은 계급 차별의 현존이야말로 고통의 진원지에 다름 아니었으며, 소외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자유의 왕국’이 건설되기를 바랐던 마르크스의 눈에도 자본주의적인 계급관계야말로 노동을 물신화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때문에 붓다는 혈연적 귀속성에 기반을 둔 브라만적 지배질서 즉 사회이동이 전혀 허용되지 않았던 폐쇄적인 계급질서인 카스트를 철폐하고 모든 사람의 본래의 불성이 발현되는 불국토를 건설하려고 노력했으며,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계급관계를 재생산하는 생산양식을 지양하고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 되는 무계급사회 즉 사회주의사회의 건설을 주장하였다.2)

여기에서 불국토와 사회주의사회는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공통의 꿈 즉 ‘계급 차별 없는 사회’를 지칭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기에서 불국토란 수행으로 탐·진·치를 극복한 사람들로 구성된 선한 사회를 만들고 역으로 그러한 선한 사회가 사람을 선하게 만들기 위해 국가의 부를 개인의 필요에 따라 평등하게 분배하는 사회다.

무소유의 출가자 공동체인 승가가 그 모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사회는 노동을 통하여 인간의 유적(類的) 본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그러한 사회는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공동체적 본성을 실현하게 하는 조건이 되는 사회이다.3) 곧 각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사회이다(Fromm, 1966).

이렇듯 붓다와 마르크스가 인간해방을 추구하였고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급 차별을 부정하였지만, 그것이 물질적 생산의 원천인 노동을 부정하였거나 심지어 경제발전을 경시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노동 그 자체 혹은 물질 그 자체가 인간해방의 장애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붓다에게는 물질 그 자체가 아니라 그에 대한 인간의 탐욕이 인간해방의 장애물이었고 마르크스에게는 노동이나 경제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을 물신화하는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가 인간해방의 장애물이었다.

마르크스가 추구한 사회주의나 붓다의 불국토는 오히려 물질 생산의 원천으로서 노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예컨대 붓다에게 있어서 법시와 교화되는 재시야말로 사적 소유를 부정한 승가의 존립 조건이었으며,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일정 정도의 생산력 발전이야말로 사회주의의 필수적인 실현 조건이었다. 게다가 수행을 강조한 불교가 육체노동을 무시하거나 경시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며, 생산력 발전을 중시한 마르크스도 정신노동을 무시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백장청규가 입증하듯이 수행을 가장 강조하는 선불교에서 오히려 육체노동을 울력으로 간주하여 의무화하였다는 사실(秋山範二, 昭和 41年)이 전자의 근거라면4), 다음의 인용문은 후자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공업이 발전하게 됨에 따라서 현실적인 부의 창출은 노동시간과 적용된 노동의 양보다는 수행자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며, ……이 수행자의 능력은 다시 ……과학의 전반적인 수준과 기술의 진보, 다시 말해 이 과학의 생산에의 응용에 의존한다. ……노동은 더 이상 생산과정에 포함된 것으로 나타나지 않고, 인간은 오히려 생산과정의 감시인과 조절자로 행동하게 된다.……노동자는 생산과정의 주행위자가 되는 대신에, 옆에서 서서 그 과정을 감시하게 된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비판 요강》(2000)

이렇듯 붓다와 마르크스가 물질적 성장을 무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계급 차별 없는 사회’를 이상사회로 설정한 이상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용인할 수는 없었다. 붓다와 마르크스가 구성원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부의 분배가 평등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붓다의 경우 부의 평등한 분배야말로 사회 전체의 도덕(혹은 善) 증진의 전제조건으로 간주할 정도로 중요시하였다(피야세나 딧사나야케, 1987). 이렇게 볼 때, 불교와 마르크스가 공통적으로 꿈꾼 이상사회(同夢)는 육체의 양식인 물질적 분배와 마음의 양식인 의미의 분배가 골고루 이루어진 사회였다5).

문제는 이러한 이상사회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동과 수행의 결합 방식과 정도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자본주의사회의 계급구조를 지양하고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려는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 주체의 계급투쟁을 역사의 가장 중요한 계기로 설정하고 있으며, 수행보다는 노동에 우선성을 부여하고 있다. 반면에 붓다는 불국토와 같은 이상사회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전위집단(vanguard group)으로서 가르침을 전달하는 승가(수행자들의 공동체)의 법회가 이루어져야 했으며, 때문에 불제자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출가자에게는 노동보다 수행이 더 근본적인 전제조건이었다. 때문에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만남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불교와 마르크시즘 사이의 동몽(同夢)보다도 불교와 마르크시즘 사이의 이상(異床)을 자세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3.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이상(異床): 수단 및 방법의 차이

오늘날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혁명적이듯이, 기원전 5세기경 혈연적 귀속성을 부정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볼 때 정신과 물질의 연기적 관점과 마르크시즘의 유물론적 관점이 동일하지 않듯이, 붓다와 마르크스가 동원하는 혁명의 수단과 방법은 결코 동일하지 않았다. 게다가 붓다와 마르크스가 기존의 사회질서를 지양하고 자신의 이상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 동원하는 투쟁은 세월의 차이만큼이나 그 차이가 크다. 말 그대로 판(床)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럼, 이상(異床)의 실상을 추적해 보자.

1) 불교의 상(床): 수행과 승가

(1) 수행: 고(苦)의 해결 수단이자 의미(意味)의 생산수단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고(苦)로부터 해방되는 것인데, 이러한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고의 원인을 명확히 밝혀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일찍이 붓다는 고의 궁극적 원인을 불성을 더럽히는 탐·진·치 삼독에서 찾았으며 그것을 해결하는 길이 곧 팔정도이며 수행의 길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수행이야말로 고의 해결수단이다.

이렇듯, 수행이 고의 해결 수단이 되는 순간, 그것은 동시에 종교적 가치를 생산하는 생산수단이 된다. 때문에 붓다는 출가자가 하는 수행생활을 노동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경전(耕田)》이란 경에서, 붓다는 자신을 농부로 자처하기까지 하고 있다. 농부는 농부되 토전(土田)을 가꾸는 농부가 아니고 심전(心田)을 가꾸는 농부다(호진, 1988). 그러나 출가자의 수행을 일종의 노동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붓다의 인정투쟁이 필요했는데, 붓다는 이러한 인정투쟁에서 승리하였다.

다음의 일화를 보자: 어느 날 걸식을 나간 붓다에게 한 바라문은 자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가 노동해서 얻지 않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이에 붓다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믿음은 종자요,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내 멍에와 호미, 뉘우침은 괭이자루, 의지는 잡아매는 줄, 생각은 내 호미 날과 작대기, 몸은 근신하고 말은 조심하며 음식을 절제하며 과식을 하지 않소. 나는 진실을 김매는 것으로 삼고 관용이 내 멍에를 떼어 놓소. 전진은 내 황소, 나를 열반의 경지로 실어다 주오. 물러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곳에 이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오. 내 밭갈이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단 이슬(열반)의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오.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되지요.” 이 게송을 들은 그 바라문은 “밭을 잘 가십니다. 고오타마시여”라고 하면서 붓다 역시 자기와 같은 농부라는 것을 인정했다(호진, 1988).

이렇듯 인정투쟁을 통하여 붓다는 출가자의 수행조차 일종의 노동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는 출가자의 정신노동이었고, 그러한 의미에서 삶의 의미, 즉 마음의 양식(糧食)을 생산하는 생산수단이었다. 물론 불교가 점차 발전해 감에 따라 수행의 종류는 대단히 다양해졌고,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선수행은 물론 보살행까지도 수행으로 간주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고의 해결이라는 수행의 목적과 불교적 의미의 생산이란 수행의 수단이 변한 것은 결코 아니다.

(2) 전위집단으로서 승가와 가르침을 통한 혁명

붓다는 어린 시절 사문유관 이후 ‘어떤 것이 다른 것들보다 우세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가졌다. 그리고 스스로도 부, 권력, 명예 등을 모두 버리고 출가하여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붓다는 연기법의 원리를 깨달았다. 연기법에 입각하여 붓다는 인간의 사회적 지위가 출신성분에 의해 결정된다는 전통과 그 전통의 권위는 바라문들이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일 뿐이며, 따라서 인간의 지위는 오로지 그 자신의 행위, 즉 업(業)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천명하였다. “바라문,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따위의 구별은 바라문이 만든 구분일 뿐입니다. ……모든 강물들이 바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각기 다른 이름을 잃게 되듯이, 모든 종족과 출신계급은 우리들의 승가에 들어옴으로써 예전의 차별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Ratnapala, 1992).” 이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회혁명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이는 바라문교의 전통과 권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는데, 바로 그러한 사상적 결단 위에서 붓다는 당시 인도사회의 계급 불평등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의 불평등 현상을 해결하려는 실천적 문제의식을 끝까지 견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붓다는 사회 불평등의 모순적 현실을 고발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을 결행하였다.

승가는 그러한 실천의 구현체이자 그것을 사회로 회향하는 담지자(trager)였다. 게다가 당시 출가수행자들의 탁발유행은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만나고 법(다르마)을 전파함으로써 개인적·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실천수행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혁명적 실천이 사회혁명 일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불교가 사회혁명을 달성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불교는 문자 그대로 깨달은 자의 가르침이다. 이는 불교가 세상의 질서를 변혁하는 방법이 가르침임을 시사하는 한편, 일반적인 사회혁명의 주체와는 달리 가르침의 주체 즉 변혁의 주체가 계율을 철저히 준수하는 수행자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재시(財施)와 법시(法施)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고려하면, 수행자는 재가자들에게 법을 전달해 주는 담지자이고 바로 그러한 점에서 출가자는 불교적 혁명의 전위이다. 때문에 불교 이외의 사회혁명과는 달리 불교적 사회혁명의 방법은 철저히 계율에 구속받지 않을 수 없었고 주체의 청정성이 생명일 수밖에 없다. 불교적 혁명이 아힘사에 의존해야 하는 것도 그럴 때야말로 비로소 계율에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2) 마르크시즘의 상(床): 노동과 노동자계급

(1) 노동: 가치생산의 원천이지만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는 소외된다

헤겔은 중세까지의 부정적 노동 개념을 벗어나 인간의 삶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본질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한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6). 헤겔에 따르면, 동물과 달리 인간은 단순한 생존의 물질적 욕구를 넘어서서 사회적 인정이란 비물질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존재인데, 주인은 노예로부터 이러한 비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킨 존재이다. 그러나 주인은 노예가 생산한 물(物)의 종속성에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반면에 노예는 물에 부정적으로 관계하기 때문에 즉 자연을 지배하고 변화시키는 노동의 주체이기 때문에 주인의 주인이 된다.

노예는 주인에 대한 봉사 속에서 노동하면서 그의 개별적 의지와 아집을 제거하고, 욕구의 내적인 직접성을 지양하는 가운데 ……일반적인 자기의식으로 이행한다. ……따라서 노예는 그의 자연적이라고 하는 의지의 이기적 개별성을 넘어서 자신을 고양하는바 바로 이러한 그의 가치에 의하여 이제 그는 주인보다도, 다시 말하면 이기심에 사로잡힌 채 노예에게서 단지 자기의 직접적인 의지밖에는 직관하지 못하는, 즉 부자유스러운 의식에 의해 형식적으로 인정된 주인보다도 더 높은 위치를 점하게 된다. 노예에 의한 이러한 이기심의 극복은 인간의 진정한 자유의 시초를 형성한다(임석진, 1990).

결국 인정투쟁의 형식적 패자인 노예가 자연의 지배, 주인의 지배,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기적 욕망의 지배에서 해방(자유)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사회적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노동은 어떤 특정한 인간 ‘활동’이 아니다. ……노동은 오히려, 그 안에서 각기 개별적인 활동들이 정초되고 다시금 반작용을 일으키는 그러한 하나의 행위7)이다. 자세히 말하면 노동이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이 비로소 ‘즉자적으로’ 자기 고유의 본질로, 즉 자각적으로 자기 자신에로 귀환하며, 자기 현존재의 형식 내지 ‘존속’의 형식을 획득함과 동시에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게 되는 것인바, 결국 노동이란 인간의 세계 내적 존재 방식으로서의 행위이다”(임석진, 1990).

이러한 헤겔의 노동 개념은 마르크스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세계 역사라 불리는 것은 모두 인간의 노동에 의한 인간의 창조에 지나지 않는다. 즉 그것은 인간의 본성의 발로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기원을 스스로 창조했다는 명백하고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초고》(1990)).

그러나 문제는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가 소외된 노동을 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사회가 노동을 물신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종교에 있어서 인간의 상상력, 즉 인간의 지성과 심정의 자발적 활동이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소원한 신과 악마의 활동으로서 개인에 작용하듯이, 노동자의 활동은 그 자신의 자발적 활동일 수는 없다.”(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초고》(1990)). 설상가상으로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바로 이러한 소외된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삶을 포기해 버리지 않는 한, 노동자는 구매자계급 즉 자본가계급을 외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만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마르크스/ 김태호 역, 1999). 그러나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노동자계급을 혁명주체로 설정하였다.

(2) 혁명주체로서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혁명

저 유명한 〈포이어바흐 테제(ⅩⅠ)〉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마르크스/ 최인호 옮김, 1990). 유물론자인 마르크스가 기존의 관념론을 비판한 말이지만, 서구 관념론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헤겔은 자신의 정신현상학에서 이미 노동자가 사회변혁의 실제적인 주인임을 논증한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 포섭된 노동자의 노동은 필연적으로 소외되고 또 그러한 노동소외를 가장 심각하게 경험하는 계급은 노동자계급이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은 전 인구 중에서도 근대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직접적이며 가장 깊숙하게 포섭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마르크스는 노동해방을 통한 인간해방의 주체로 노동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변혁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론적 차원에서 보면 기존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전복이며, 실천적 차원에서 보면 계급투쟁이었다. 마르크스의 ‘가장 짧은 그러나 가장 강렬한’ 저작인 《공산당 선언》(2002)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 저작은 “지금까지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여,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란 문장으로 끝난다.

물론 계급투쟁의 최종 목표는 생산수단을 사회화한 사회주의사회의 건설이었다. 마르크스가 그리는 이상사회는 소외된 노동(혹은 생산관계 속의 노동)의 해방이 실현된 사회인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적 소유를 철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적 소유제도야말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질서를 성립시킨 근본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동주체인 노동자가 노동소외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노동해방이 필요불가결하지만 당장은 노동시간이 걸림돌이다.

때문에 필요와 외적 합목적성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 즉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노동시간이 줄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의 왕국은 필연의 강제 즉 외적 유용성의 강제에 의한 노동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Fromm, 1966). “노동시간의 단축이 근본 조건이다”(마르크스, 《자본론》 III(2004)). 이렇게 마르크스는 노동시간의 단축을 노동해방의 한 요소로 꼽고 있다. 관건은 여하히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바로 여기에 사회주의사회의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생산기술의 발전이 전제된다. 다시 말하면 생산기술이 일정 정도 발전하여 사회주의사회의 단계로 진입하면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자유의 왕국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3) 상(床)의 차이: 출가자의 인정투쟁과 노동자의 계급투쟁

이상으로 우리는 불교의 상(床)과 마르크시즘의 상(床)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두 사상이 모두 인간해방과 이상적인 사회의 건설이란 목표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은 차이가 있었다. 특히 방법의 차원에서 보면 전자가 인간해방을 통한 사회혁명을 지향하고 있다면 후자는 사회경제체제의 변혁(혹은 사회주의 건설)을 통한 인간해방을 지향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상(床)의 차이 즉 방법의 차이는 사회혁명의 실천인 투쟁의 차이로 현상된다. 출가자의 투쟁이 가르침의 도덕적 인정을 통한 새로운 사회건설 즉 인정투쟁8)인 반면에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기존의 사회질서, 보다 직접적으로는 현존 생산관계를 직접적으로 전복하는 방법, 즉 계급투쟁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인정투쟁과 계급투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인정투쟁과 계급투쟁의 차이점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로 대상의 성격 규정의 차이를 보면, 인정투쟁에서는 특정한 집단에 대한 본질적 배타성을 전제할 수 없으며 수행자에 대비되는 세속인은 적대적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비 실천의 상대인 반면에,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유무는 물질적 이해관계의 적대성으로 현상하기 때문에 계급투쟁의 경우 노동자계급과 짝하는 자본가계급은 적대적 대상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사회 건설을 위한 생산관계의 전복을 위해서는 타도의 대상이다.

둘째로 주체적 조건의 차이를 보면, 인정투쟁에서 투쟁의 내용은 도덕성, 정당성, 윤리성이기 때문에 주체에게는 탐·진·치로 현상하는 자신의 이기성을 극복해야 하는 반면에 계급투쟁에서는 지배자에 의해 주입된 이데올로기(허위의식)를 극복하고 자신의 역사적·사회적 위치를 자각한 의식 즉 참의식인 대자적 의식(계급의식)을 갖추어야 한다.

셋째, 이렇듯 투쟁 대상 및 투쟁 주체의 차이는 실천의 차이로 현상한다. 인정투쟁에서 실천은 법회와 같은 가르침이 곧 실천이고 그러한 점에서 실천 방법은 철저히 즉 아힘사(비폭력)이지만 계급투쟁은 반드시 힘(혹은 무력)의 투쟁이기 때문에 폭력과 같은 강제력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두 가지 투쟁은 명백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혹은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투쟁은 각각의 단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변혁(인간해방)을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갖추어져야 하고 사회경제적 조건을 변혁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변화( 주체의 변화)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불교와 마르크시즘은 두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두 사상이 만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생의 조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4.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공존 가능성

주지하듯이 동상이몽은 종국적 분열이 예견되거나 그것을 전제로 한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결합 상태를 지칭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상이몽의 전후를 바꾼 동몽이상은 비록 지금 현재는 분리되어 있지만 종국적으로는 결합할 가능성을 가진 표현이 된다.

그럴 경우 이상(異床) 사이의 관계는 동일한 꿈에 이르는 상호보완적 수단이라는 관계를 갖기 때문에 방법의 다름이 오히려 양자를 결합시키는 이유가 된다. 이러한 이치 때문에, 우리가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관계를 동몽이상의 관점에서 조망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불교와 마르크시즘은 얼마든지 공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에 아래에서는 그 가능성의 조건들을 따져 보고자 한다.

1) 마르크스의 종교관과 불교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공존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상대방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해소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르크스의 종교관은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공존 가능성을 논의함에 있어서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종교관은 마르크시즘의 역사적 실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종교를 어떻게 보았는가?

마르크스는, 한편으로는 포이어바흐가 자신의 저서 《기독교의 본질》에서 종교를 인간의 열망의 투사로 해석한 것을 수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열망이 투사되는 삶의 현실과 종교 발생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독특한 종교관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종교관은 자신의 유물론적 관점과도 상통하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상품의 물신화, 노동의 물질화, 인간의 소외, 불의하고 비인간적이며 냉혹한 사회 등과 같은 삶의 현실이 종교(문제)를 발생하게 하는 것이다9). 한마디로 마르크스는 종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만든다. 달리 말하면 종교는 아직 자아를 찾지 못했거나 자아를 상실한 인간의 자기의식이자 자기감정이다
―마르크스, 《헤겔법철학 비판》(1988)).

이러한 관점을 현실 종교 문제에 적용시킨 저작이 바로 저 유명한 초기 저작 즉 〈유대인문제(On the Jewish Question)〉이다10). 이 저작에서 마르크스는 유대인 문제의 원인은 특정한 종교인 즉 유대인이 아니라 사회 현실의 구조적 모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상황에 대한 환상을 단념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단념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인간소외》(1995)에서 재인용).

마르크스가 종교를 기능주의적으로 해석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종교관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는 종교를 기능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종교가 사회모순을 은폐하고 사회의식을 마비시키는 이데올로기 제공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종교적 고통은 동시에 진정한 고통의 표현이고, 또 진정한 고통에 대한 반항이다. 종교는 억압받는 피조물의 한숨이고 냉혹한 세계의 감정이며, 영혼 없는 조건들의 영혼이다. 그것은 민중의 아편이다”(오경환, 1992에서 재인용).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종교는 일시적인 위안(허위의식)을 제공하는 기능을 하는 동시에 종국적으로는 참의식인 계급의식을 마비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을 영원한 노예로 전락시키는 역기능을 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볼 때,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은 인간소외 및 물신화 현상에 대한 비판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종교관에 비추어 본다면 불교는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과는 무관하다. 왜냐하면 불교는 인간 외부에 별도의 신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교는 그것을 비판하고 모든 인간 현상을 자신의 동기에 의한 업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주로 유신론적 종교인 기독교에 대해서는 비판적 개입을 시도했지만 동아시아 종교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요컨대 비유신론적 종교로서 불교와 과학적인 사상으로서 마르크시즘은 신 중심의 세계관을 부정하고 물신화를 비판하는 사상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이는 마르크시즘의 종교관이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공존을 방해하는 조건이 아님을 의미한다.

2)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공존 조건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공존할 수 있는 조건은 크게 두 가지 경우 즉 불교가 마르크시즘을 수용할 경우에 요구되는 조건과 마르크시즘이 불교를 수용할 경우 요구되는 조건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서 불교가 마르크시즘을 수용하는 경우에 요구되는 조건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 사회가 불교문화적 전통을 가진 불교문화권 사회이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조건의 유무 때문에, 실제로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불교문화권 국가에서는 이론적 차원에서든 실천적 차원에서든 마르크시즘을 수용하여 불교와 결합시키려는 시도들이 반복되고 있는 반면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그러한 시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르크시즘이 비유신론적 이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타력신앙이 강한 대승불교 문화권 사회보다는 초기불교에 충실한 상좌부불교 문화권 사회에서 마르크시즘을 수용하기 쉽다.

다시 말하면, 비유신론적 불교문화라는 자력신앙의 조건이 마르크시즘 수용의 또 하나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이다. 동남아시아 불교 문화권 국가에서 불교사회주의가 실험된 반면에 대승불교 문화권에서는 그러한 시도가 없다는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시즘이 불교를 수용할 경우에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주지하듯이 마르크스 이후 마르크시즘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면서 발전했는데, 그중에서도 특정한 마르크시즘은 불교와 보다 친근하게 만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반면에 전혀 그렇지 못한 마르크시즘도 존재한다.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큰 관심을 갖는 인간주의 마르크시즘이 전자의 경우라면11) 구조주의 마르크시즘은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12). 요컨대 인간주의 마르크시즘이야말로 마르크시즘이 불교를 수용할 경우에 필요한 조건이다.

실제로 인간주의 마르크시즘의 꿈이나 방법은 불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 로버트 터커(Tucker, R., 1961)는 “마르크스는 공산혁명을 자기혁명으로 보며 ……공산주의는 인간이 자기를 얻는 것이며, 자기를 재통합하거나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자기 소외를 극복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철학적 분석의 주된 논지는 “인간의 자기실현의 적(敵)인 이기적인 욕구, 즉 사물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양하는 데 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이상사회를 실현하는 수단이 이기적 욕망의 지양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간주의 마르크시즘은 탐·진·치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불교를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신분석가이자 대표적인 인간주의 마르크시스트인 에리히 프롬13)이 말년에 선불교를 수용한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사상적 자서전이라 일컫는 《인간 소외(1995)》라는 저서에서 자신의 사상을 떠받치는 양대 축이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말년에 선불교를 접하고 〈선과 정신분석〉(2005)이란 글을 통해 선불교와 프로이트의 사상이 거의 유사함을 자세하게 입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만약 우리가 프롬의 두 가지 저술을 종합하면, 프롬의 사유 속에서 마르크시즘과 불교가 충돌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비록 프롬이 너무 늦게 선불교를 접한 탓에 마르크시즘과 불교의 유사점을 밝힌 저술을 내놓지는 못했다고 생각되지만, 마르크스, 프로이트 그리고 선불교를 받아들인 프롬에게는 행위 주체로 하여금 허위의식의 지양을 통한 소외의 극복, 즉 인간해방을 기획한 마르크스,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한 인간해방을 추구한 프로이트, 그리고 허상의 진원지인 탐·진·치로부터의 자유를 통한 인간해방을 기획한 붓다의 문명 기획이 동일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었을 것이다.

5. 맺는말

아널드 토인비는 “불교와 서양의 만남은 20세기의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이다.”라고 했다. 물론 이 말 속에는 서구 근대문명의 한 축인 마르크시즘과 불교의 만남도 포함될 것이며 그들의 만남도 의미심장한 사건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불교와 마르크시즘은 ‘계급 차별 없는 사회’라는 비슷한 꿈을 꾸면서도 좀처럼 만나질 못했다.

아마도 그 꿈을 구현하기 위한 조건(수단, 방법, 현실적 상황)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혹은 바로 그러한 차이 때문에 21세기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만남은 오히려 의미심장할 수도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전제 속에서, 그리고 21세기 문명사적 혼융 시대(혹은 전환의 시대)를 맞아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만날 수밖에 없다는 가정하에, 따라서 불교와 마르크시즘 사이의 만남의 조건을 탐색해 보려는 현실적 필요성 속에서, 불교의 마르크시즘의 동몽이상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불교와 마르크시즘이 공통적으로 ‘계급 차별 없는 사회’를 이상사회로 꿈꾸어 왔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크게 잘못된 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수단과 방법의 차이였다. 해서, 우리 속담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강조점이 이몽(異夢)에 있듯이,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만남과 관련하여 우리의 인식 관심의 초점도 ‘동일한 꿈(同夢)’보다는 실현 조건(수단, 방법, 현실적 상황 등)의 차이―이상(異床)―에 맞추어져 있었고, 그것도 예상과 다르지 않게 커다란 차이점을 보였다.

요컨대 불교는 수행자에 의한 인정투쟁을 통해서 이상사회에 도달하려고 한 반면에 마르크시즘은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에 의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고 한다. 해서, 마르크시즘이 만날 수 있는 조건을 크게 두 가지 즉, 마르크스의 종교관이 특히 자력신앙으로서 불교의 관점과 다르지 않았다는 조건 그리고 인간주의 마르크시즘은 인간해방을 통한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불교와 만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발견은 어떠한 함의를 갖는가? 불교와 마르크시즘은 비록 동몽이상의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관계조차도 결과론적 관점에서 보면 동상이몽(同床異夢)보다는 상대적으로 풍부한 가능태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동상이몽은 끝내 분열로 귀결되지만 동몽이상은 수단의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그러한 다양성이 동일한 목표로 수렴된다.

게다가 목표는 동일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결코 동일하지 않은 양자 관계야말로 창조적인 이종교배를 예기(豫期)하게 한다. 이렇게 본다면, 출가자의 공동체를 이상사회(ideal society)의 패러다임으로 간주하고 있는 불교적 이상사회의 모델과 사적 소유를 인정하지 않고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마르크시즘의 이상사회 모델 사이의 이종교배가 21세기 문화 혼융시대의 인류문명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가능성을 굳이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유승무 / 한양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석사, 한양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이후 중앙승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중앙승가대학교 포교사회학과 교수 및 불교사회과학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음. 저서로 《불교복지, 행복을 만나다》(공저), 《유교적 사회질서와 문화, 민주주의》(공저) 등과, 〈불교사회학의 성립 조건〉, 〈베버의 대승불교 해석에 대한 비판적 이해〉 등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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