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한국불교는 어떤 지도자를 원하는가

1. 들어가는 말

조계종은 10월 22일 제33대 총무원장을 뽑는 선거를 치른다. 선거를 5개월쯤 앞둔 지금 총무원 주변에서는 선거가 종종 뜨거운 화제가 된다. 몇몇 스님들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며, 후보로 거론되는 스님들의 인물평과 최근 움직임 그리고 이르긴 하지만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분석과 함께 차기 총무원장이 이뤄내야 할 과제가 제시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조계종 선거 이대로 좋은가’이다. 그러고는 각자 보거나 들었던 경험을 섞어 선거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나름대로 선거제도에 대한 대안을 내놓기도 하는데, 이내 갑론을박으로 이어진다.

그동안의 조계종 선거는 돈 선거, 구성원의 의사 반영 부족, 전망을 내놓지 못하는 선거, 선거 관리 기관의 중립성 부재, 선거 후 소송 등을 통한 극심한 갈등이 화합을 깨뜨리고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등의 비판이 거세게 터져 나왔다. ‘조계종 선거 이대로 좋은가’라는 비판적인 주제가 제기되는 이유는 이러한 비판에 연유한다.

어느 집단이든지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 원리를 담은 각종 제도와 관행, 관습을 생산한다. 집단에는 권력이 형성되며, 이 권력을 어떻게 만들어 내고 운영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국가로 대표되는 집단의 권력에 대해 정치사상가들은 사회계약론 등으로 국가의 성립을 설명했으며, 운영 원리로서 민주정, 귀족정, 공화정 등을 제시했다. 이 같은 운영 원리와 제도, 장치는 집단 안팎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예방, 조정, 해결하기 위한 규율이다. 발전하는 집단은 갈등과 문제를 원만히 해결함으로써 발전의 거름으로 삼았으며, 그렇지 못한 집단은 도태되었다.

이 글은 조계종 선거에 대한 여러 비판이 타당한 것인가를 먼저 살펴볼 것이다. 타당하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따져 볼 것이다. 다음에는 조계종과 진각종, 천태종의 선거제도를 살펴 본 후 선거제도의 불가피성를 강조하고, 끝으로 공화제를 중심에 놓고 바람직한 선거의 방향을 시론적인 의미로 제시할 것이다.

2. 조계종 선거에 대한 비판

1) 돈 선거

돈 선거는 조계종 선거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크든 작든 선거가 있을 때마다 돈 선거 얘기가 터져 나온다. 중진 스님들이 검경의 수사를 받고 옥살이를 했던 일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이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선거에 소요되는 대략의 액수까지 제시하며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질타했을까. 중앙종회의장을 역임했고, 여러 차례 총무원장 후보로 거론됐던 조계종단의 원로 스님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발언이다.

“종회의원 선거에 수천만 원이 들고, 총무원장 선거에 수억, 수십억 원을 씁니다. 국회의원도 100만 원 받으면 모가지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절집 안에서 어떻게 삼보정재가 좋지 않은 곳에 쓰입니까. 서산 스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중 된 것이 그게 간단한 일이냐. 먹고살기 위해서도 아니요, 편안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명예를 위한 것도 아니다. 불조의 혜명을 이어서 도탄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뭐하는 짓입니까.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삼보정재를 사정없이 써 댑니다. 이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종단적으로 박복해지는 일입니다. 이런 병폐를 쓸어 버리지 않고서는, 지금 이런 구태의연한 선거 방법에 의해서 계속 나간다는 것은 불교를 스스로 멸망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1)

돈 선거는 예전에는 선거 당사자들만 알았을 뿐 소문으로만 나돌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 보니 감춰지지 않는다. 특히 선거를 치르면서 깊어진 갈등으로 인해 상대방의 허물을 고발하는 상황들이 잇따르고 있다. 조계종 6교구본사인 마곡사의 경우는 한 예에 불과하다.

 교구본사 주지를 뽑는 선거를 치른 후 사찰신도회의 한 간부가 돈 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호법부 조사 결과 호계원에 제소해 1심에서 공권 정지 5년의 징계를 받았다. 마곡사는 이번뿐만 아니라 4년 전에도 같은 사례가 발생해 당시 주지스님이 종단으로부터 제적의 중징계를 당했으며, 법원에 의해 징역을 살았다. 이 외에도 몇 교구에서도 당선되면 말사 주지로 임명하겠다며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지난 32대 총무원장 선거 당시에는 ‘청정선거’ 감시단원으로 활동하던 한 스님이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돌리던 돈뭉치를 훔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돈 살포는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제점이 심각하다. 사례를 열거하자면 더 있지만 이 정도면 돈 선거가 공공연하며, 한두 번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고질적인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증거하고도 남을 것이다.

2) 구성원 의사 반영 부족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중앙종회의원 81명과 24개 교구에서 10명씩 뽑힌 240명 등 모두 321명이 투표권을 행사한다. 중앙종회의원은 각 교구에서 2~4명씩 뽑은 51명과 비구니 10명, 선원·강원·율원 등을 대표하는 직능직 종회의원 20명 등으로 구성된다.

교구에서 선출하는 종회의원은 구족계를 수지한 비구로서 교구본사 재적승, 재직승(본말사 주지, 본사 부주지, 본사 국장), 당해 교구에 1년 이상 거주승이 선거권을 행사해 선출한다(중앙종회의원선거법 제8조). 비구니 종회의원은 전국 비구니 대표단체(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회)의 추천과 직능대표 선출위원회(당연직 위원장 총무원장)의 심의를 거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출한다(중앙종회의원선거법 제31조).

종단의 대표를 뽑는 총무원장 선거에 구성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교구에서 뽑는 총무원장 선거인단 선출 방법 때문에 나온다. 각 교구는 교구종회에서 10명의 총무원장 선거인단을 뽑는다. 그런데 교구종회의 구성원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데서 논란이 발생한다.

조계종의 교구종회법에 따르면, 교구종회는 본사 주지, 부주지, 본사 각 국장, 말사 주지와 직선으로 선출된 10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돼 있다(교구종회법 제2조). 따라서 본사 주지와 본사 소임자, 말사 주지 외의 구성원들은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통로가 없다. 각 교구의 평균 승려 수는 200여 명인데, 이 가운데 절반은 교구종회에서 배제된다. 교구종회 구성원들이 교구 내 여러 스님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투표를 하면 모르겠지만, 교구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장치가 일체 없어 이는 불가능하다.

또 조계종 승려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구니 대중의 투표권은 아예 배제돼 있다. 예비 승려인 사미와 사미니를 뺀 조계종의 승려는 비구 5,292명, 비구니 5,209명 등 1만501명이다.2) 이에 따라 조계종을 대표하는 총무원장을 선출하는 것인 만큼 일정 승랍(5년 또는 10년) 이상의 모든 승려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제기되었다. 나아가 비구니의 입후보권까지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3)

3) 평가와 전망 부재

선거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지난 시기를 평가·비판하고 종단 안팎의 상황을 따져 다가올 날을 전망하면서 종단적 계획을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선거는 의미 있는 행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선거는 선거의 긍정적 측면을 살려내지 못했다. 총무원장선거법에서는 총무원장 후보자의 신상명세, 종책을 교계신문에 1회에 걸쳐 게재하여야 한다고 함으로써 선거 홍보를 의무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총무원장선거법 제15조) .그러나 한정된 지면에 총무원장 임기 4년 동안의 종단의 역할에 대해 종단 구성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종책을 제시하는 선거 홍보는 요식 절차에 불과하다.

지난 32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각 후보들은 교계신문의 광고 외에 종책자료집을 발간해 배포했다. 지관 스님 선거대책위원회가 발행한 종책자료집을 살펴보면, 앞뒤 표지를 제외한 18쪽 가운데 사진의 전면 게재 3쪽, 인사말 2쪽, 수행 이력 1쪽, 종단 운영 기조 3쪽, 공약 5쪽 등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공약은 10개 분야에 63개 사업의 제목을 나열하는 데 머물렀다. 다른 후보 진영도 지관 스님 진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소장 승려와 29개 단체의 참여로 구성되어 활동했던 청정선거실천위원회가 후보자 종책 토론회를 제안했으나 후보자들의 거절로 이뤄지지 못했다. 청정선거문화정착운동본부는 호소문을 통해 △청정성과 도덕성 △리더십과 업무 수행 능력 △교단 평등과 화합을 위한 의지 등을 총무원장 덕목으로 제시하고, 별도의 토론회를 통해 총무원장상을 제시했지만 후보자들과의 공감은 미미했다.4) 후보들의 종단 운영 기조와 공약을 사부대중이 살펴보고 공유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선거를 치렀다.

4) 선거 관리 기관의 중립성 부재

1995년 치러진 32대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중립성이 도마에 올랐으며, 선거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후보들 사이에서는 사설 사암 종단 미등록 후보들이 설립한 법인의 정관에 종단 관장하에 있음을 명기하지 않았으며, 국법에 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것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5)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4일 전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하면서 위원장이 지관·정련 두 후보자의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고는 일방적으로 회의장을 떠났다. 그러자 중앙선거관리위원 9명 중 7명이 다시 모여 다음 회의를 열어 위원장을 불신임하고 두 후보자의 자격이 없다는 선언을 번복해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하는 등 큰 혼란 상황을 초래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또 종무원법에 국법에 의하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실이 있는 자는 교역직 종무원(총무원장도 교역직 종무원에 해당한다)에 임용될 수 없다는 규정에 후보자들이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각 후보자에게 범죄사실 증명원을 제출받겠다고 했다가 며칠 후 번복하는 혼란을 빚었다. 이 같은 상황은 중앙선거관리위원들이 관련법의 규정에 의거해 엄정한 선거 관리를 통해 공명정대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보다 특정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줄서기’에 합류한 결과였다.

선거 관리 기관의 중립성 부재는 선거 과정과 선거 후 나타나는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다. 32대 총무원장 선거에 기호 4번으로 출마했던 월서 스님은 공명정대하고 청정한 선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선거 당일 후보를 사퇴했으며, 선거 직후 정련스님 선거대책위원회는 원로회의에 지관 스님의 총무원장 당선 인준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2년 후 제주 관음사 주지 재임 중 체탈도첩된 중원 스님이 지관 총무원장의 당시 후보 자격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5) 선거 후 갈등

대표적인 경우로는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법원 등 종단 외 기관에 심판을 요구하는 소송이다. 의현 총무원장 당시에 소송이 가장 많았다. 이때는 의현 총무원장의 전횡에 항거하는 한 방법으로 소송이 활용되었다는 것이 특징인데, 〈종단판례집〉에 따르면, 1982년부터 93년에 이르는 10년 사이에 총무원장 직무정지 가처분, 종회의원 권리행사 방해금지 가처분 등 10건이 있었다. 소송을 제기하고 대응하느라 삼보정재와 에너지를 허비한 대표적인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1994년 종단개혁 후에도 소송은 그치지 않았다. 진경 스님 등은 1994년 4월 10일 전국승려대회를 거쳐 들어선 개혁회의는 적법한 기구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개혁회의를 통해 선출된 탄성 총무원장 직무대행의 직무정지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법원의 판단에 의해 총무원장이 임기 중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1999년 10월 1일 서울민사지법은 정화개혁회의가 제기한 총무원장직 부존재확인 소송에서 “136회 임시종회는 공고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이며, 이 종회에서 개정된 총무원장선거법에 근거한 총무원장 선거는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어 다음 날인 2일에는 고산 총무원장의 총무원장직 부존재확인 판결 확정 시까지 도견을 직무대행자로 선임한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종단은 일대 혼란에 휩싸였으며, 총무원 청사를 두고 총무원과 정화개혁회의 사이에 극렬한 물리적 충돌도 빚어졌다. 이 해 11월 15일 제30대 총무원장 선거를 치러 정대 스님이 당선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됐다.6)

1994년 종단개혁 후 등장한 총무원장에 대한 소송이 끊이지 않았는데, 현 32대 지관 총무원장에 대한 소송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주 관음사 주지 중원 스님이 2007년 9월 지관 총무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은 2008년 5월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가 “총무원장 부분은 기각하고, 지관 스님 부분은 각하한다”고 선고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이 소송을 제기한 배경은 정화개혁회의처럼 종단 운영의 주도권을 잃은 측의 대응적 차원이라는 성격이 짙다. 그러나 소송을 할 수 있도록 원인 제공이 있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선거 과정에서의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이 소송을 부추긴 원인으로 작용했다. 고산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뽑은 1998년 총무원장 선거를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둘째, 32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보여 주듯 종헌과 총무원장선거법에 정한 총무원장 후보자에 대한 자격 시비를 말끔히 정리하지 못함으로써 소송의 실마리가 되었다.

셋째, 총무원장이 승가의 도덕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의현 총무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는 민망하게도 늘 내연 관계가 언급됐는데, 내연 관계로 인해 계율을 위반했고 이에 비구 자격을 상실했으므로 총무원장으로 임명 또는 선출된 것은 무효이며, 이에 따라 총무원장의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3. 주요 종단의 선거제도

1) 조계종

조계종의 총무원장은 중앙종회의원 81명과 교구에서 뽑힌 선거인단 240명 등 모두 321명의 선거인단에 의한 무기명 비밀투표로 선출한다. 투표 결과 선거인 재적 과반수를 득표한 후보자가 당선인이 된다.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경우에는 1, 2순위 득표자에 대한 재투표를 실시하여 과반수의 득표를 얻은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 후보자가 1인인 경우에는 무투표로 당선된다.7)

총무원장 선거에 관하여는 중앙종회의원 등 각급 선거와 달리 선거에 관한 소청을 일절 할 수 없도록 선거관리위원회법(제17조①)에 규정하고 있다. 이는 총무원장 선거 후 이의 제기 등으로 인한 종단의 분열과 혼란을 막고 총무원장선거법에 정한 당선무효의 사유가 아닌 이상 선거의 결과를 존중하여 종단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장치이다. 그러나 이 규정은 선거 후 소송 등으로 인한 종단의 혼란을 야기하지 말자는 선언적인 의미일 뿐 실제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현재의 총무원장 선거제도는 1994년 서의현 체제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개혁종단에서 마련한 종헌·종법에서 이 제도를 마련했다. 그 전에는 75명이 정수(직선 48명, 간선 27명)인 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을 뽑았다. 1994년 이전에는 총무원장에게 교구본사 주지 임명권은 물론 파면권까지 주어졌고, 규정부를 이용해 총무원장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승려를 탄압하는 등 전횡이 극심했다. 총무원장이 임명하는 교구본사 주지와 총무원의 각 부장이 중앙종회의원을 겸직하는 등 중앙종회도 총무원장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중앙종회에서 뽑도록 하는 제도는 장기집권과 전횡을 합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요식행위 이상이 될 수 없었다. 1994년의 총무원장 선거제도의 변경은 그전의 제도와 달리 교구에서 뽑힌 선거인단을 중앙종회의원보다 더 많이 배치해 특정 세력이 중앙종회와 교구를 장악하는 것을 방지하는 장치를 신설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2) 진각종

진각종은 지난 4월 16일 조계종의 총무원장에 해당하는 통리원장을 뽑는 선거를 치러 혜정정사를 임기 4년의 28대 통리원장으로 선출했다. 선거를 언제 치렀느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한 선거였다. 이번뿐만 아니라 진각종은 1947년 창종 이래 지금까지 통리원장 선거를 치르는 동안 잡음이 일지 않았다. 이는 진각종의 독특한 선거제도 덕분인데, 이 선거제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진각종의 통리원장을 뽑는 선거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입후보자를 별도로 정하는 절차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8) 45세 이상 4급 이상의 행계, 승속행계(승랍) 12년 이상에 해당하는 정사·전수는 모두 자동적으로 통리원장 후보자가 된다. 이번 선거에는 37명이 후보자 자격을 갖췄다.

통리원장은 37명으로 구성된 진각종의 최고의 의결기관인 종의회(조계종의 중앙종회에 해당)에서 뽑는다.

종의회 의원들은 통리원장 자격을 갖춘 37명의 명단이 적힌 투표용지를 받아 그중 선호하는 1명의 명단에 표시를 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한 대상자가 있으면, 투표를 종료하고 과반수의 득표자를 당선자로 발표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3인의 다수 득표자를 대상으로 과반수를 득표할 때까지 투표를 한다. 대개 2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가려진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되도록 하는 장치인 것이다.

종의회의원 선거에서도 입후보자가 없다. 소정의 자격을 갖추면 모두 후보자가 되며, 통리원장 선출 방법과 같이 다수표 37순위까지를 당선자로 결정한다. 통리원장 선거와 다른 것은, 종의회의원을 뽑는 선거는 스승총회에서 하는데, 진각종의 전체 스승들이 투표권을 가진다.

별도의 후보자 등록 절차가 없으므로 선거운동이란 개념이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또 이번에는 통리원장 선거와 종의회의원 선거를 다른 날 뽑았지만, 10여 년 전에는 같은 날 종의회의원을 뽑은 직후 통리원장을 선출했다. 그러므로 선거운동을 하고 싶어도 물리적인 시간이 주어지지도 않았다.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 관례와 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가 작동했던 것이다. 창종한 지 60여 년에 불과한 신생 종단인 만큼 역대 통리원장이나 총인(종정)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창종주인 회당 대종사의 가르침을 더 강조하는 종단 분위기도 선거 과열을 막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

3) 천태종

천태종 총무원장은 종정이 지명하고 임명한다. 종정의 권위에 의지하는 지명제를 채택하고 있다. 종정의 총무원장 지명 후 종의회의 인준 절차를 거치지만 부결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종의회의 인준은 종정의 지명에 복종한다는 뜻의 표현이다. 따라서 선거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날 소지가 없다. 구성원 특히 종의회 내의 내홍 가능성이 있지만, 종정의 권위가 절대적이므로 갈등이 발생했더라도 깊어지거나 장기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천태종의 종정은 절대적인 권위체다. 천태종 종헌에 따르면, 종정은 종단 인원의 임면권, 종의회 전형위원 위촉권, 승니 및 신도에 대한 포상·징계·복권·사면권, 신도회 임원 임면권, 종의회의 결의사항에 대한 1차에 한한 거부권 및 종의회에 대한 재심 청구권, 종헌 및 종법안에 대한 대한 심의 요구권, 사찰 및 종단 기관에 속한 재산 감독 및 처분 승인권, 종헌·종법·종령 등의 공포권, 종단 비상사태하에서 종의회 해산 및 행정부서의 권한을 정지하는 긴급명령 발동권, 기타 종단 운영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지닌다.9)

선거의 일반적인 방법으로 투표가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나, 투표에도 여러 층위가 있다. 진각종의 선거제도의 사례와 같이 후보자 출마 과정이 없는 가운데 일정 자격을 갖춘 다수의 구성원을 후보자로 해서 투표하는 방법도 보았다. 추첨의 방법도 있다.

 아테네 민주정은 대부분의 기능을 추첨을 통해 선출된 시민들에게 위탁했다. 이 원칙은 주로 집정관들에게 적용되었다. 아테네 행정부를 구성했던 700명가량의 행정직 중에서 600명 정도가 추첨을 통해 충원되었다. 30세 이상의 시민들(기원전 4세기에 약 2만 명 정도) 중에서 시민권 박탈이라는 처벌을 받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지 행정직에 취임할 수 있었다.

 30세 이상의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 후보로 지원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추첨이 이루어졌다. 추첨에서 이름이 뽑힌 사람은 직무를 수행하기 전에 심사를 받았다. 직무 수행을 위한 법적 자격이 있는지,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만족할 만한지 그리고 납세 실적은 어떠하며 군복무는 마쳤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었다.10)

4. 바람직한 선거의 방향

1) 정치 과잉과 정치 부족의 극복

정치는 집단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과정이다. 집단에는 지향하는 이념이 있으며, 이를 이루기 위한 조직 구성과 운영 원리가 있다. 조계종에서 이를 명문화한 것이 종헌이며 종법이다. 종헌과 종법에는 지향점과 조직 구성, 운영 원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총무원장에게 종헌과 종법이 제시한 바를 실행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으며, 권한의 실행을 위해 권력이 주어진다. 종교 집단이라 할지라도 정치와 권력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조계종도 종단의 이념과 조직 구성 및 그 운영 원리를 담고 있는 종헌이 종단의 정치의 원리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원리에 의해 운영되도록 하는 정치생활 주도 기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종헌은 종단의 정치생활을 규범적으로 주도하고 규제하는 기능을 갖는다. 종헌이 ‘정치 규범’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도 그 대문이다. 종단의 정치생활의 큰 흐름이 규범적으로 주도되고 규제되지 않은 경우 자칫 정치만능의 현상이 나타나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원리’에 의하기보다는 ‘힘의 논리’가 종단을 지배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힘의 철학’에 의해서 주도되는 정치는 무통제와 무절제의 폭력행위로 이어지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종도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최악의 상태를 뜻하기에 ‘힘’과 ‘사랑’에 의한 운영 대신 ‘법에 의한 운영’과 민주적이고 여법한 종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종헌이 정치생활을 주도하고 규제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11)

선거는 정치의 중요한 과정이다. 정치가 있는 한 소임자를 뽑는 선거 또한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비중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다.

불교교단의 초기에는 소임자 선출이 수계나 치벌(治罰)보다 중요성이 작았다. 교단 입단을 허가하는 수구식, 각종 출죄, 승가의 결의에 의해서 결정된 정사의 운영이나 인사에 관한 사항 등 모든 일이 갈마(羯磨)에 의해서 결정된다.

갈마는 단백갈마, 백이갈마, 백사갈마 등 세 가지이며, 다루게 되는 내용의 경중에 따라서 세 가지 중 하나를 취했다. 단백(單白)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고지하는 것이며, 백이(白二)는 결의안에 해당하는 백을 제출하여 그렇게 결정해도 좋은지 의견을 구하는 것인데, 전원이 찬성하여야 그 결의안이 성립된다.

백사(白四)는 백에 대한 찬반을 구하는 갈마설이 세 번 반복되는 것인데, 중요한 문제의 결정에는 이 형식을 취했다. 당(唐)의 도선(道宣)에 의하면 율장 《사분율》에 기록된 일 중에 단백갈마를 적용하는 경우는 사타죄의 출죄, 사미의 출가, 삭발, 자자 등 39종이다. 백이갈마에 의하는 것으로는 승물 분배, 소임자 선출, 결계(結界) 등 57종이 있다. 백사갈마로 처리하는 것으로는 수구(수계), 치벌, 멸쟁, 승잔죄의 출죄 등 38종이 있다.12)

불교교단이 출가한 수행자 집단이었던 만큼 교단의 입교와 화합 교단을 위한 징계의 처리가 가장 큰 사안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승가의 모든 일을 화합을 위해 평등하게 처리하는 것이 운영 원리였으므로 순서를 정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법랍을 기준으로 법랍이 높은 사람이 상좌가 되는 장유의 질서에 의지했다. 실제 갈마사를 뽑을 때도 지원자 중에서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비구를 백이갈마로 결정했다.13)

초기 교단과 지금의 시차가 너무 크므로 단순 비교한다는 것이 큰 의미는 없겠으나, 지금의 소임자 선출의 비중이 초기 교단에 비하면 과잉일 정도로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의 수가 늘어나고, 지역적으로도 더 확장됐으며, 승가가 속한 사회의 경쟁이 극심해지고 다양성이 확대됨에 따라 이에 대응하는 종단의 운영도 더 치밀해질 수밖에 없어 정치와 소임자 선출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과 4, 50년 전만 해도 주지 등의 소임살이를 요청하면 수행에 방해된다면서 극구 사양했던 것을 보면, 지금의 종단정치는 표면적으로는 과잉 상태임이 분명하다.

과잉의 원인은 제도의 미비와 함께 공정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인식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앞에서 지적한 조계종 선거의 문제점 가운데 구성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 하나만 제도의 미비라는 항목에 포함할 수 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규정에 따라 운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점들이다.

그러므로 제도는 최소한의 규정인 만큼 미비한 제도를 보완하고, 규칙을 지켜 가려는 공동체의식이 없다면 공명정대한 선거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또 정치 및 선거의 불가피성을 외면하는 정서도 제도 보완과 공명정대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 과잉과 선거 만능주의도 문제지만, 우리의 문제에 대해 등을 돌리는 정치 부족 현상도 공동체의 발전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 화합을 위한 구성원의 의사 반영

교단 구성원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는 제도 개선은 미룰 일이 아니다. 조계종이 운영 원리로써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화합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로 여겼던 초기 교단에서는 구성원 전원의 참여와 합의를 매우 강조했다. 화합의 전제는 전원의 참석이었다. 갈마에서 한 사람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있으면 그 의안은 성립되지 않거나 쟁론의 대상이 되어서 별도로 다루었다.14) 그러나 승랍 10년 이하의 출가자는 스승에 의지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일정 승랍의 모든 승려를 직접 또는 간접 선거의 방식에 관계없이 참여시키는 방안이 더욱 승가적이다.

그런데 조계종의 제도 중 교구본사 주지를 뽑는 산중총회에서는 승랍 5년 이상의 비구이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총무원장 선거인단을 뽑는 데서는 이를 배제하고 있어 일관성을 잃고 있다.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총무원장 개인을 포함한 총무원과 종헌·종법 기관의 권위를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종단 미래상에 대한 공유가 적음으로 해서 종단의 정체성은 물론 소속감이 옅어지는 상황으로도 연결된다. 즉, 종단에 소속해 있으면서도 개인화, 문중 또는 교구별 그룹화의 분리 현상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교단자정센터는 지난 3월 ‘제33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제도 개선을 위한 선거공영제 도입 토론회’를 열었는데, 정웅기 참여불교재가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현행의 제도를 “교구본사 주지와 유력가들의 의지가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교구 내 문중 간에 적당히 나눠먹기식으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비판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교구선거인단은 간선제인 현행 총무원장 선거제도에서 대중의 뜻을 대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창구이기에,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되어야 할 일종의 대의원들이다. 마땅히 이들부터 대의원에 걸맞는 절차(선거)에 의해 뽑혀야 한다. 가능하다면 교구선거인단 입후보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종책을 가진 후보를 지지하고자 하는지 신념을 밝히고, 그 신념을 대중에 물어 선출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에는 반드시 현행 총무원장선거법 안에 교구선거인단의 입후보 자격, 선출 방법, 선출 시기, 권리와 의무 등을 명기하고, 이들이 총무원장 후보자와 공개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연설회, 토론회 등 다양한 방법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럴 때 현행 간선제는 최소한 존립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15)

이에 대해 중앙종회는 같은 달 열린 임시중앙종회에서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여 총무원장선거법 개정안으로 제출했다. 이 법 제8조의 2에 선거인단을 뽑는 절차를 명시했으나,16)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교구본사 주지들의 반대 목소리가 컸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총무원장선거법 개정안의 본회의 논의를 이틀 앞둔 날 본사 주지들은 긴급하게 모임을 갖고 총무원장 선거인단을 뽑는 선거가 법제화될 경우 교구 내 갈등이 우려된다면서 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개정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개정안까지 만들어졌다는 것을 두고, 예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총무원장선거법 개정을 하지 않는 것도 선거문화를 혼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제도화의 권한을 지닌 중앙종회는 선거법 등의 민감한 사안은 늘 미루는 식으로 방기한다. 지난 3월 열린 종회에 총무원장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선거를 7개월 앞둔 시기였다. 따라서 선거법 개정 여부 및 개정 내용에 따라 예비후보 측과 교구본사 주지 등 이해 관련자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중앙종회의원들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중앙종회의원은 계파와 출신 교구의 이해 관련자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의회는 상대측에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기 위한 대표자 또는 대변자들의 회합이 아니라, 지역적인 목적이나 편견이 아닌 전체의 일반이성에서 기인하는 공공선에 의해 이끌어지는, 전체를 위해 같은 목적을 갖는 동일한 민족국가의 심의단체라는 버크(E. Burke)의 정의17)를 인용한다면, 중앙종회는 종단 전체의 이념을 이루기 위한 심의기관이다. 따라서 최소한 선거를 2, 3년 앞두고 개정을 논의한다면 바람직한 선거법을 만들어 내는 좋은 조건 하나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선거법 개정을 하며 이해 관련자들은 물론 사부대중, 연구자 등 제3자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는 논의 방법도 채용해야 한다.

5. 글을 마치며

대의제는 대표에게 권력을 위탁해도 좋다는 구성원들의 동의에서 성립된다. 어떤 제도든지 그 제도의 생명력은 구성원과 소통하고 갈등을 변화로 이끄는 힘에 달려 있다. 불교교단의 이념과 운영 원리는 화합에 있다. 교단을 중심에 놓고 제도와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열심히 뛰었지만 옆길로 새는 꼴이다. 《대지도론》에서는 교단, 즉 승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무엇을 이름하여 승가라 하는가?

승가는 대중을 일컫는 말로서, 여러 비구가 한곳에 화합하여 생활하는 것을 승가라 한다. 비유하면 큰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것을 숲이라고 이름하는 것과 같음이니, 낱낱의 나무를 숲이라고 하지 않지만, 낱낱의 나무를 떠나 숲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개개인이 비구를 승가라 하고 하지 않지만, 개개인의 비구를 떠나 승가가 따로 있지 않다. 따라서 여러 비구가 함께 모여 서로 화합하므로 승가라는 이름이 성립되는 것이다.

교단은 그 지향과 운영 원리로 화합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겼다. 교단과 개인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었으며, 그 운영의 화합을 이루기 위해 중의에 따라 결정하고 운영하는 공화제였다. 공화제는 가장 이뤄내기 어려운 방법이다. 구성원들의 자발성과 상호 협조와 권리와 의무가 흐트러짐 없이 행해질 때 유지되는 체제이다. 조계종은 지금도 이 지향을 존중하고 있으며, 조직 구성과 운영 원리에서 이를 실현하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거 등의 중요한 과정에서는 방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며, 대부분 종단의 권력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는 스님들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다. 따라서 혼탁한 선거를 통해 종단의 지향을 흐리는 책임은 마땅히 종단의 중요 소임자에게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공화제를 이상으로 삼고 있는 한 모든 구성원들 또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교단에 대한 참여의 권리가 있음이 분명한데도 참여하기를 포기했고, 이에 따라 참여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이번 10월에 치러지는 총무원장 선거가 공명하고 청정하게 치러지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는 후보자와 후보자 그룹, 선거인단, 선거관리 기관이 잘하기만을 바라는 것 말고는 달리 묘수가 없는 것 같다. 선거가 5개월쯤 남은 시기라면, 지난 선거에 대한 평가와 드러난 문제점을 재연하지 않기 위한 제도와 선거문화, 이후 총무원장 임기 4년 동안의 청사진과 이에 적합한 총무원장상 등에 대한 논의, 이런 논의들을 조직하고 이끌어 가기 위한 기구의 형성이 있어야 함에도 잠잠할 뿐이다. 조계종이 집단 무기력증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 증세를 자각할 때에야 비로소 ‘조계종 선거 이대로 좋은가’라는 질문의 해답이 풀릴 것이다. ■

정성운 / 경기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대한불교신문〉 〈현대불교신문〉 기자를 거쳐,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했다. 현재 인터넷 신문 〈불교포커스〉 대표. 저서로 《한국불교 기도성지》(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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