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토신앙은 방편법 오해 결과…대상화 안돼”

“현재의 정토사상은 방편으로 설해진 법문을 문자대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아미타불을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대상경계를 만드는 것으로 비불교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극락왕생도 마찬가지다. 어딘가로 가야할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불자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망자의 ‘극락왕생’을 발원한다. 그런데 그토록 간절하게 발원하는 극락이 실재(實在)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대상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다.

'정토사상의 이해와 실천'을 발표한 성본 스님

7월 10일 열린 <불교평론> 열린논단에서 동국대 경주캠퍼스 선학과 교수 성본 스님은 ‘정토사상의 이해와 실천’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정법에 의해 정토사상을 전면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본 스님은 “불교의 모든 수행은 불법의 사상과 실천구조가 같아야 하나 참선수행과 염불수행을 보면 전혀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며 “(이는) 언어라는 방편을 방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데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언어란 아상(我相), 인상(人相)을 토대로 판단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한 성본 스님은 “방편법문을 언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법(佛法)에 의한 판단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성본 스님은 “경전을 해석함에 있어서 주관적인 해석은 금해야한다”며 “불법(佛法)에 의한 번역만이 올바른 수행체계를 확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본 스님은 “정토란 깨달음의 상징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닌 작용하는 주처”라고 설명했다.

“아미타불도 법신불의 작용일 뿐 실재하는 대상은 아니며, 실재한다고 믿는 것은 비불교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한 성본 스님은 “죽을 때 극락왕생하고 아미타불을 친견한다는 말을 글자가 아닌 법으로 해석한다면 죽음이란 육체의 죽음이 아닌 중생심(즉 인생사 번뇌의 망념)이 사라질 때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본 스님은 또 “아미타불 친견은 진여지(眞如智)의 작용으로 본성을 자각하게 됨을 의미하며 왕생이란 중생심에서 불심(佛心)으로 전환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정토사상에서 극락왕생하는 수행법으로 제시하는 염불도 대상을 염(念)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지를 인식하는 지혜의 작용을 의미한다”고 재차 강조한 성본 스님은 “이근원통(耳根圓通)의 방법으로 염불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수행”이라고 제시했다. 이근원통에 의한 수행은 염불을 하는 것이 진여이고 염불을 자각하는 것도 진여이므로 대상과 대상의 경계가 없이 그대로 본성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본 스님의 주장대로 극락도 아미타불도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라면, 아미타와 극락의 실재를 믿는 불교의 현실적인 신행모습에 큰 혼선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참석자들은 공감과 함께 기존 신행체계의 혼란에 대해 우려의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불교평론> 홍사성 주간은 “현재의 정토사상이 방편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면 천도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성본 스님은 “천도재는 본래 불교에는 없는 것이지만 종교의 요청에 의해 생겨난 현상”이라며 “수용과 변형에 유연한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당시 도교와 유교에서 제기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천도재는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물음에 대해서 성본 스님은 “(천도재를) 한다, 안 한다로 구분해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경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답했다. 천도재에 대한 질문이 잇따르자, <불교평론>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 문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천도재 및 불교와 현실문제에 대해 별도로 토론 시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염불만 일심으로 하면 아미타불을 친견하고 극락정토에 왕생한다는 경전의 내용을 믿고 따르는 불자들에게 극락도 아미타불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뿐 아니라 큰 혼란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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