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집중탐구

프롤로그

미국과 유럽에서 달라이 라마가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꼽혔다는 기사가 2008년 12월 1일 세계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미국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과 프랑스 뉴스 전문 채널 ‘프랑스 24’가 여론조사 기관인 ‘해리스 인터렉티브’에 의뢰해 진행한 이 여론조사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과 미국 등 6개국 1,000명의 성년을 대상으로 실시된 것이었다. 유럽과 미국 등 6개국 전체에서 달라이 라마가 단연 1위였으며, 2위는 미국의 경우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유럽은 메르켈 독일 총리가 차지했다.

달라이 라마는 6개국에서 고른 지지를 받았는데, 특히 프랑스, 독일과 이탈리아 시민들의 호감도는 무려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결과는 사실 그리 놀라운 뉴스는 아니다. 2007년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달라이 라마는 독일 출신의 교황 베네딕토를 누르고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꼽혔으며, 기타 여러 설문 조사에서도 세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랭킹에서 달라이 라마는 빠지는 법이 없다.

최근 서구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서구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불교 중에는 흑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일본불교도 있고, 불광산사로 대표되는 대만불교도 있으며, 위빠사나라는 체계적 수행 체계를 갖춘 미얀마·스리랑카의 상좌부권 불교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 합친다 해도 티베트불교의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인구를 모두 합쳐도 600만에 불과한 티베트인들이 불교를 대표하는 리더그룹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 이유 중 8할은 사실상 달라이 라마라는 개인의 인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유럽 등지에서 열리는 달라이 라마 강연회는 연일 매진이며, 달라이 라마가 대중 연설을 할 때면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수만 인파로 가득 메워진다. 그를 직접 면담한 불교학자, 과학자, 심리학자, 의사, 기자, 심지어 할리우드 톱스타들까지 그의 이야기를 활자화하는 데 열심이다. 이만하면 살아 있는 한 개인으로서 그보다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 인사는 없는 듯하다.

달라이 라마, 2,500년 세계불교사에서 비주류인 티베트 겔룩파의 수장이자 나라조차 없는 난민정부의 대표에게 왜 세계인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달라이 라마가 세계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부터였다. 노벨평화상 기념 연설에서 그는 티베트의 현실을 알리는 동시에 인간의 보편적 책임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세계인들은 티베트가 예전에는 중국과는 별개의 독립국가였으며, 아직도 티베트의 독립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됐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티베트가 불교라는 종교를 매개로 1,000여 년간 종교 중심의 공동체를 유지했으며, 현재 또한 불교적 교리에 근거해 비폭력 노선을 수십 년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후 세계 언론은 달라이 라마의 말 한마디,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고 상당한 양의 지면을 할애해 오고 있다. 그로 인해 티베트의 정치적 문제는 물론 그들의 신앙까지 매스컴에 소개되고, 덩달아 불교에 대한 서구인들의 관심 또한 증폭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시작된 달라이 라마 열풍은 서구에서 확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양으로도 역수입됐다. 한국에서 달라이 라마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서구보다 약 10여 년 뒤인 1990년대 중후반부터였다. 달라이 라마에 대한 뉴스가 일간지에 오르내리고, 불교를 전공하는 소장학자들이 달라이 라마의 저서를 연달아 번역하면서 그는 더 이상 히말라야에서 쫓겨난 난민들의 수장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의 조국을 잃어버린 채 50년간 망명 생활을 해 온 한 불교 지도자의 이 같은 인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일부에서는 그것이 서구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오리엔탈리즘에서 비롯되었다고, 혹은 티베트불교의 신비주의의 영향이거나 매스컴이 만들어 낸 현대판 신화라고 폄하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서구 열강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정치적 의도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가히 ‘달라이 라마 신드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열광의 원인과 이유를 한국불교의 입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에서 대승불교의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티베트와 한국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나라 잃은 망명정부의 불교가 세계인들의 환호를 얻고 있는 반면 한국불교는 여전히 반도 속에 갇혀 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많은 이들이 티베트불교에서 인류의 미래를 갈망하는 반면 한국불교에서는 암울한 내일을 예측하고 있다는 점이다.

티베트불교의 밝은 빛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불교의 그림자가 보인다. 이 글의 목적은 바로 그 빛과 그림자를 조명하는 데 있다.

티베트의 깊은 불심

티베트 하면 떠오르는 장면 중의 하나는 설산을 넘어 포탈라궁을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티베트 불자들의 모습이다.

동상으로 손이 부르트고 얼굴이 꽁꽁 얼어붙다 못해 실핏줄이 터져 나와도 그들은 수개월, 심지어 수년간의 긴 여정을 기쁜 마음으로 걸어간다. 이생은 다음 생을 향해 가는 잠시 동안의 과정일 뿐, 아주 먼 생에 다가올 성불을 위해 그들은 오늘의 고통쯤은 참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같은 신심은 티베트불교의 우수한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티베트불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달라이 라마라는 인물은 우연히 만들어진, 혹은 중국 침공이라는 외부의 핍박에 의해 다듬어진 인물만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티베트불교의 강점은 ‘두터운 신심’과 ‘체계적인 불교 교리’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티베트불교는 불교 교리에 대해 모르는 이에게는 아주 쉽고 단순하지만, 불교 교리를 잘 아는 이에게는 아주 난해하고 고차원적인 불교이다. 얼핏 보기에는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티베트불교가 문자를 모르는 사람부터 최고 수승한 경지의 수행자들에게까지 모두 적용될 만큼 폭넓은 수행 체계와 교리를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티베트불교에서는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마니차, 마니주 같은 수행 도구를 만들었다. 경전이 빽빽하게 새겨진 회전대를 돌리기만 해도 그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는 그 수행 도구는 경전을 읽을 수 없는 이들에게 보살도에 대한 절대적인 경외심과 신심을 키워 준다.

‘옴마니반메훔’으로 대표되는 주력 수행, 설산을 넘으며 수천 리를 오체투지를 하는 절 수행, 경전을 읽는 간경, 비밀스러운 탄트라 수행 등이 티베트불교에는 함께 공존한다.

단순히 공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철저하게 교리로 연결된다. 한국에서는 여러 종류의 수행들이 각각의 영역에 별개로 행해지는 것과 달리 티베트불교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한 수행자가 모두 거쳐야 할 수행의 일부들이다.

이 같은 수행의 체계화는 티베트 수행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람림첸모》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람림첸모》는 겔룩파의 창시자 총카파가 불교 입교에서부터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실천 방법을 상세히 기록한 책이다. 총카파는 이 책에서 붓다의 모순적인 가르침들이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의 수행 단계의 적당한 지점에 장소를 얻어 적절히 배치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람림》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보다 먼저 불도 수행의 길에 들어서기 위한 준비와 불도 수행을 시작하기 위한 동기를 설명한다. 그다음에는 불교의 실천적 이론적인 가르침을 하급·중급·상급 세 등급의 사람을 모델로 하여 설명해 간다.

준비 단계는 불교의 가르침을 전해 주는 스승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 일러 주며, 불도 수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을 귀중히 여기고, 불도 수행에 힘써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현실 세계나 윤회 세계의 본질이 고통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불도 수행에 뜻을 두기 위한 동기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하여 불교 신앙에 들어설 준비를 마친 뒤에는 불교의 다양한 설법을 각 개인의 자질이나 불도 수행의 목표에 부합하도록 순서를 정하여 상세히 설명해 간다.

제일 하급의 사람은 아직 불도 수행 자체에 들어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적어도 내세에 불도 수행이 가능한 신세로 태어나기 위한 도덕적 덕목을 실천하라는 권면을 받는다. 중급의 사람은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만을 목적으로 하는 존재이며, 상급의 사람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자 결심한 자이다.1)

수행자는 우선 현교의 수행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를 마스터한 사람만이 밀교의 수행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대승의 방편들을 고도로 정교하게 체계화시킨 것이 금강승, 바로 밀교 수행이다.

티베트불교는 언제나 소승과 대승, 금강승 세 가지를 아우르는 수행 전통을 이어 왔다. 즉 수행자 개인의 생활양식은 소승의 관점에 두고, 깨달음을 향한 의식은 이타행의 대승적 관점에 두며, 깊고 심오한 내면의 깨달음은 지혜와 방편이 합일된 금강승의 길에 의지해 왔다.

티베트불교에서 꿈꾸는 완전한 수행자의 모습은 바로 이 세 가지의 길을 함께 가는 것이다.2)
티베트불교는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라마교로 불리어왔다. 라마교라는 호칭 속에는 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대승불교와는 달리 ‘라마’를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불교를 지칭하는 동시에 성적(性的) 탄트리즘이 내포된 변질된 의미까지 포함돼 있다.

이 같은 오해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지금도 역사학계에서는 고려시대 라마교의 유입으로 고려불교가 퇴폐적으로 변질됐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할 정도 티베트불교에 대한 한국 학계의 인식은 매우 낮다.

하지만 중관사상을 전공하는 불교학자들은 “티베트불교만큼 지적이고 정통적인 불교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라고 힘주어 말한다.3) 인도 대승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티베트불교는 중관사상을 체계화시켜 고도의 수행 체계를 완성시켰고, 현재까지 그 전통을 가장 잘 보전하고 있는 곳은 티베트라는 것이다.

폭넓은 교리 체계가 만들어 낸 포용력

티베트불교의 강점은 문자를 모르는 이부터 최고 단계의 수행자에 이르기까지, 만트라부터 탄트라까지 포함하는 수행 단계를 체계화시켜 하나의 체계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한 데 있다.

티베트불교의 폭넓은 교리 체계는 불교의 여러 종파를 넘어 다른 종교까지 포함할 수 있는 포용력을 만들어 냈다. 이와 같은 내용은 달라이 라마의 법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2003년 12월부터 2004년 1월에 걸쳐 다람살라를 방문한 한국인들을 위해 설법한 《입보리행론》 법문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부처님께서 법의 넓이와 깊이를 달리해 설하신 것은 중생의 성향과 기질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중생 각자의 근기에 따라 도움이 되고, 각 중생에게 가장 적절한 법을 설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대승과 소승 모두 존경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끔 우리도 이런 짓을 합니다. 대승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소승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다소 얕잡아 봅니다. 소승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대승법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같은 대승법 안에서도 ‘밀교는 법이 아니다.’라고도 합니다. 한편 밀교 수행을 특별하게 여겨 육바라밀 수행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법을 수행하는 사람은 각자의 성향이 다르고 근기가 다름을 알아 다양한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합니다.4)

달라이 라마는 불교 수행자임에도 ‘불교가 최고의 종교’라는 말을 극도로 피한다. 이는 다른 문화와 종교적 토양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티베트불교’가 아니라 ‘보편적 진리’를 설파하기 위한 달라이 라마 특유의 화법으로 이해된다.

이 같은 포용적 태도는 오히려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로 하여금 불교에 관심을 갖고 불교에 귀의하도록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의 붐, 달라이 라마 신드롬이라는 현상을 통해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티베트불교의 강점은 바로 한국불교의 약점이기도 하다.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모든 종류의 수행법을 포용하는 통불교의 전통을 갖고 있음에도 근현대에 들어서 간화선만을 중시하는 수행 풍토로 변화됐다. 간화선 수행법은 체계적인 교학 체계 속에서 배울 수 있는 혹은 검증받을 수 있는 수행법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은 스승에 의해서만 점검받을 수 있고, 100만 혹은 1,000만의 수행자 중에서 그 경지를 체득한 사람이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고도의 수행법이다.

만일 그의 수행 경지를 점검해 줄 스승이 없다면 그 법 또한 끊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로또에 가까운 확률을 가진 수행 체계 속에서는 낙오자 역시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점을 지닌 간화선을 한국불교는 가장 수승한 수행법으로 인정했고, 한국불교의 간화선 중심주의는 다른 수행법들은 저차원의 수행법으로 치부하는 오류를 낳았다.

간화선과 소수 정예 수행자를 중심으로 하는 수행 문화는 한국불교 내에서 여러 가지 병폐를 낳았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문제점은 일반 불자들로 하여금 불교를 막연하고 피상적인 대상으로 여기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시스템이 만들어 낸 인물, 달라이 라마

티베트불교에서는 언제라도 달라이 라마를 또다시 배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티베트 시골 마을의 가난한 집 아이 하나를 데려다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을 붙이고 승려 교육을 하면 된다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티베트불교가 갖고 있는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달라이 라마라는 지도자를 통해 티베트불교의 가르침이 언제까지라도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달라이 라마는 어린 시절 전생부터 스승이었던 린포체들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린포체들이 그를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지목했듯이, 린포체가 입적한 후에는 달라이 라마가 파견한 고승들이 린포체의 환생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훌륭한 린포체로 장성할 때까지 달라이 라마의 특별 관리 속에서 린포체로서 고된 교육을 받는다. 이는 티베트 불교를 이어 가는 방식이자 후에 환생할 달라이 라마에게 올바른 법을 전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을 수차례 방문해 지금은 꽤 유명 인사가 된 링 린포체의 경우 현재 달라이 라마에게서 특별 교육을 받고 있는 린포체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생에서는 자신이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고, 현재는 달라이 라마가 자신의 스승이며, 수십 년 뒤에는 제18대 달라이 라마로 지목되는 소년을 가르치게 될 의무를 안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남인도의 드레풍 사원에서 수학하고 있는 링 린포체를 수시로 다람살라로 불러 자신이 직접 경전을 강의하는 대부분의 법회에 참석게 한다. 그리고 때때로 법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공부를 점검해 오고 있다.

티베트의 독특한 환생 제도는 인물과 인물의 교차를 넘어 교학과 교학이 계승되는 역할을 담당한다. 달라이 라마 또한 자신이 제1대부터 13대까지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달라이 라마의 언행을 잘 따라가다 보면 해를 거듭할수록 스스로 전대의 달라이 라마의 전생으로서, 혹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서 긍지를 갖게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달라이 라마가 ‘달라이 라마로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달라이 라마가 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5)

달라이 라마는 그의 자서전 등을 통해 5대나 13대 달라이 라마와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토로하곤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티베트의 환생 제도는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해지는 윤회 관계라기보다는 법에서 법으로 전해지는 윤회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3보다 더 강도 높은 교육

티베트 승원의 스님들은 한국의 고3보다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게쉐라는 최고 학위를 받을 때까지 약 20년이 걸리는데, 이때까지 하루에 평균 20시간 정도 교학 공부를 해야 한다. 이 같은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것은 달라이 라마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사미가 되기 전 행자 시절에는 상용 근행집을 암기해야 하고, 사미가 되면 전통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의한 불교 교리 학습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뻬체 게겐’을 따르게 된다. 승려에게 있어서 ‘뻬체 게겐’이라는 것은 석존이 설파한 말을 구전으로 가르쳐 그 법맥을 직접 전해 주는 스승이다. 티베트불교에서 스승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티베트불교가 라마불교라고 지칭되는 진짜 이유는 바로 라마가 법을 전승해 주는 특별하고도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비 승려는 우선 불교의 기초적인 교의를 배우기 위한 수업에 들어가 문답 방법을 학습한 후 불경 강독 수업을 받게 된다. 스승은 우선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불경을 낭독하여 제자에게 들려주고 그 의미를 문답 형식으로 해설한다. 제자는 수업 전후에 전수받을 불경 텍스트를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어야 하며, 암송할 뿐만 아니라 동급생과 문답을 하고 불경이 의미하는 내용을 모든 각도에서 이해하여 자신의 말로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런 암기와 문답에 의한 학습법이 티베트불교 학습법의 핵심이다.

티베트 승가 교육의 백미는 ‘딱셀’이라는 토론법이다. 티베트 사원에 가면 마당에서 붉은 승복을 입은 스님들끼리 손바닥을 딱딱 치며 요란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딱셀이다. 두 토론자가 차례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데, 질문을 제기할 때는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 후 앞으로 뻗친 왼손에 내려쳐 손뼉을 치고 동시에 왼쪽 발로 땅을 구른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손뼉 소리와 함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한다. 답변자는 질문자가 구성한 명제에 대해 그렇다, 왜 그런가, 논거가 성립하지 않는다, 필연 관계가 없다 등 네 가지 답변 중 하나만 대답할 수 있다.

이러한 합리적인 교리문답을 통해 어떤 질문에서도 거침없이 답변할 수 있는 논리 체계를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 강원의 스님들은 대중 앞에서 보름에 걸쳐 시험을 본다. 한 사람당 3명에서 10명씩 돌아가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데 거의 무의식 중에 대답을 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강원에서 소승불교의 수행법과 대승불교의 교학 및 논리 체계를 이수한 사람만이 비로소 다음 단계인 밀교 수행으로 들어갈 수 있다.

티베트불교의 강점을 단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수천 리를 오체투지 하면서 나갈 수 있는 신심을 바탕으로 성립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불교 체계로 설명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에 관한 책 중에서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은 하워드 커틀러라는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와 달라이 라마의 수개월간 대화를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과학, 사랑, 욕망,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 있다.

하워드 커틀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고, 달라이 라마는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한다. 어떤 질문에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논리를 불교적으로 풀어내는 훈련은 달라이 라마뿐만 아니라 티베트의 모든 스님들이 거쳐야 하는 교육 과정의 일부이다.

이 같은 모습은 한국 승가에서 경전을 경시하는 풍조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한국의 선방에는 불립문자라 하여 문자를 경시하고 대신 화두 참구만을 중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근현대 고승 중에는 아예 제자에게 글을 익히지 못하게 하고 무조건 화두 참선만을 하라고 한 경우도 있었으니 이 얼마나 대조적인 모습인가.

평생토록 화두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중생들에게 자신이 깨우친 법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더구나 불교에는 무지하지만 세속의 지식은 차고 넘치는 현대인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고난으로 가득한 독특한 인생 이력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역대 달라이 라마 중 ‘가장 복이 없는 라마’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고난으로 가득한 인생을 보냈다.

후일 달라이 라마 14세로 지명되는 텐진 갸초는 1935년 7월 6일 티베트의 탁최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생후 2년 만에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지목된다. 네 살때부터 포탈라궁으로 간 그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예비 지도자로서 교육을 받았다. 이때까지 티베트의 통치는 그의 섭정인 레팅 린포체가 맡았다.

하지만 그가 성년식을 치르기도 전인 1951년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로 침입했다. 이후 달라이 라마의 삶은 매 순간 난해한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중국 공산당이 처음 티베트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달라이 라마는 공산주의의 이상과 불교가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이라는 욕망을 버리고 공동체의 삶, 인류의 공존을 추구하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이징에서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등 중국 공산당 수뇌부와 만난 그는 공산주의 치하에서 불교의 정신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1959년 라싸에서 민중 봉기가 발발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달라이 라마는 결국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한다. 그리고 당시 수상이었던 네루의 도움을 받아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 지역에 티베트 난민정부를 수립한다.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수립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난민들의 정착을 돕는 한편 티베트 승가를 복원하는 일을 전개한다. 나라는 없더라도 불법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다람살라를 비롯해 인도 각지에 티베트 사원을 건립하는 한편 티베트의 지도자로서 독립을 위한 ‘독특한’ 행보를 전개한다. 나라를 잃은 망명 정치가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열강의 도움을 받아 무장 세력을 조직하는 대신 달라이 라마는 인류애에 호소하는 비폭력 노선을 전개했다. 폭력은 폭력을, 복수는 복수를 불러올 뿐이라 판단한 달라이 라마는 그를 따르는 600만의 티베트인에게 “중국을 용서하라.”라고 설파하며, 무기를 드는 대신 세계 곳곳으로 건너가 불법을 전파하라고 당부했다.

자신 또한 세계 곳곳으로 대중 강연을 떠났고, 세계인들을 그의 친구, 그의 제자, 그의 추종자로 만들었다.
평생토록 고난에 찬, 하지만 늘 희망에 찬 달라이 라마의 인생 역정은 자신의 삶을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오히려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달라이 라마는 비폭력 노선을 주창하며, 중국인을 사랑하라고 역설해 왔다. 종교인으로서 지극히 종교적인 삶의 모범을 보여 주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그는 1989년 이 시대의 스승들에게 수여하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동정심이 더 큰 동정심을 만들다

달라이 라마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당시 누군가 성금을 어디에 쓰겠느냐고 질문을 했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들은 가난합니다. 난민입니다. 하지만 굶주려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배고픈 자들을 돕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에 보내 배고픈 사람들이 허기라도 면할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의 노벨상 상금 중 상당 부분은 나병환자 치료에 쓰라며 테레사 수녀에게 보내졌고, 또 일부는 아프리카 기아들에게 보내졌고, 아주 작은 일부만이 망명정부에 지급됐다. 그나마도 주위 사람들이 티베트를 위해서도 그 돈을 써야 한다고 수차례 설득을 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이 사례는 달라이 라마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동정심’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만약 달라이 라마가 세계에서 가장 핍박받는 민족의 지도자에 불과했다면, 혹은 그가 독립국가 티베트의 수장으로 존재했다면 그는 오늘날과 같은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인간을 더욱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준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삶의 표본이다. 그가 보여 준 티베트에 대한 그리고 인류에 대한 한없는 연민은 그의 추종자들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벨평화상은 그 효과가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분기점이었다.

달라이 라마의 이 같은 면모에 대해 대중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잘 간파하는 ‘아주 머리 좋은 스타’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친구 혹은 추종자들은 그의 동정심이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불자들은 그 마음을 ‘지혜 바라밀’이라고 여긴다.

달라이 라마와 가장 큰 공감대를 형성한 민족은 아무래도 (달라이 라마를 보기만 해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티베트인들을 제외하고) 유대인들이 아닐까 싶다. 달라이 라마의 영적 메시지에 끌려 불교로 개종한 서양인들 중에는 유대인이 유난히 많다. 불교 개종 유대인들을 서양에서는 주부(Ju-Bu, Jewish buddhist의 준말)라고 부른다. 《연꽃 속의 유대인》의 저자 로저 캐머네츠는 유대계 미국인의 최소 6%에서 30%가 불교 단체 활동을 한다는 설문 결과를 밝혔다.

이스라엘―티베트연구소 공동 창립자 하임 페리 박사에 따르면 최근 이스라엘 젊은이들에게는 군대 제대 후 다람살라를 순례하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가 되었다. 또 영성을 찾아 혹은 유대인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다람살라를 방문하는 이스라엘 국민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예수도 부정한 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나라도 없이 민족을 유지해 온 유대인이라고 생각해 온 관점에서 본다면 놀랄 만한 이야기이지만 정작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달라이 라마에게 열광하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임 페리 박사는 “우리는 침략당하고 박해받은 민족들이라는 면에서 하나의 공동체이니까요. 고난을 함께한 사람들은 뭉치는 법 아니겠어요?”라고 설명했다.

로널드 B. 소벨 박사는 “달라이 라마 추종자로 일컬어지는 유대계 미국인 30% 대부분은 본능적인 연민에 의해 움직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선조의 망명 역사를 그리 완전히 알지 못하는 유대계 미국인들조차도 연민에 이끌렸을 것입니다. 피, 문화적·역사적 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일종의 동질성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설명한다.6)

유대인 학자들은 달라이 라마에게 ‘동병상련’을 느꼈기 때문에 그에게 열광한다고 분석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이유에 불과하다. 많은 이들이 달라이 라마에게 느끼는 공감대는 본능적 연민, 그리고 위로이다.

만일 티베트가 중국 침입을 받지 않았고, 부탄처럼 독립된 국가로 남아 있었다면 어쩌면 오늘의 달라이 라마는 없을지도 모른다. 나라를 잃어버린 망명정부의 수장으로, 인구의 6분의 1을 중국인들의 참혹한 살상으로 잃어버린 정치 지도자로서, 1,300여 년간 이어져 온 승가의 대표자로서 그는 항상 고뇌하고 아파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고, 그는 그때마다 가장 불교적인 행동을 스스로 실천해 왔다.

그의 고통, 그가 보여 준 지혜로운 선택, 고통으로 단련된 고매한 인품은 직간접적으로 많은 이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람을 잘 이해하는 사람: 대중적 흡인력

달라이 라마에게는 분명 대중들을 끄는 ‘힘’이 있다. 그를 만나는 순간 특별한 무언가를 느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아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다.

뉴욕 티베트오피스 대표 애니 워너는 “그를 만나고도 감정이 격해지지 않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멍한 표정을 짓거나 울음을 터뜨리거나 눈물을 흘리며 큰절을 하기도 한다.”라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인으로서, 그리고 대중적 스타로서의 요건을 아주 많이 갖추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중에 대한 흡인력’이다.

달라이 라마를 직접 만난 이들이 이야기하는 달라이 라마의 힘을 들어보기로 하자.

그는 사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때로는 상당히 복잡한 지적 토론을 벌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선의를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사람을 가려 가며 대화하지 않는다. 어떤 이름표를 달고 다니든,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든, 재산이 얼마든 상관 않고 모두와 이야기한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 대화하든 간에 자신과 상대가 똑같은 존재라는 느낌을 준다. 몇 년에 걸쳐 알면서 느낀 점은 식당 웨이터를 대할 때에도 대통령이나 수상을 대할 때와 똑같은 존경심과 친절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저자 하워드 커틀러

내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사람들은 진작 밖으로 나가 버렸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13차원을 넘나들며 요란하게 하는 연설이 아니면 먹혀들지 않는다. 달라이 라마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얼마나 단순한지, 영성학 개론 첫 수업에 와 있는 줄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30분 정도 듣다 보면 정말로 난해한 주제를 줄이고 또 줄여서 간결하고 정제돼 명료한 윤리 강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 말에 반응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련되고 싶은 욕망을 벗어 던지고 그의 여행길에 함께 오른다.

―캘리포니아 감독교단 윌리엄 E. 스윙 주교

지적 웅대함, 학식의 깊이, 이해의 너비로 혼까지 빼어놓을 만한 위대한 자료들은 세계 도처의 도서관에 깔렸습니다. 하지만 혼을 빼놓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알고 싶어 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근본적인 선으로써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방식으로 그들 의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깊이요? 사랑과 자비. 그가 이 성전에서 연설했을 때 주제가 21세기의 사랑과 자비였습니다. 기초적인 주제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기본적이고 단순한 주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일상과 사회의 한 귀퉁이에 밀어넣은 채 잊고 사는 그 기본적이고 단순한 주제를 1차, 2차, 3차 들으면서 계속해서 재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7)

―뉴욕 에마뉴엘 유대교 성전의 랍비 로널드 B. 소벨 박사

성하는 제대로 숙달된 거인이기 때문에 정말로 어려운 것들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배우 리처드 기어

윌리엄 주교의 말대로 달라이 라마는 대부분의 법문에서 약간은 지루한 목소리로 아주 쉬운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다. 하지만 그의 법문을 자세히 들어 보면 아주 쉬운 언어 속에 화엄, 중관, 유식, 밀교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펼친다. 수십 년간 승려로서 습득한 불교학적 지식은 서양의 철학이나 과학기술, 그리고 다른 전통을 지닌 사람들과 만나도 충돌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그들의 문화적 전통과 지식을 다른 것들과 연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서양인들에게 생소한 불교를 ‘티베트’라는 요소를 통해 연결시키듯이 말이다.

그의 지식이 다른 문화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달라이 라마 개인이 아주 깊은 지식의 소유자임을 드러내는 측면이기도 하다. 달라이 라마에게는 서양인 친구들이 아주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과학자, 의학자, 심리학자들은 매년 세계 각지에서 ‘마음과 생명 심포지엄’을 열고 30년째 달라이 라마와 마음에 관한 토론을 전개해 오고 있다. 이는 달라이 라마가 불교적 교리를 넘어 인간에 관한 여러 정보와 지식에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달라이 라마의 깊이는 물론 티베트 승가에서 받은 훈련에서 비롯된다. 달라이 라마는 아비달마, 프라즈나파라미타, 마드야미카, 비나야, 프라마나 등 기본적인 불교 철학 외에도, 시, 음악과 연극, 천문학, 율문과 문장, 의학 등 전공 과목과 부전공 과목을 어린 시절부터 이수했다.8)

하지만 여기서 달라이 라마 개인의 노력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는 스스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포탈라궁에서 시계, 자동차 등 자신이 지닌 얼마 안 되는 기계를 모두 해부해 볼 정도로 그는 서양 기계문명에 관심이 많았다.

장성한 이후에도 그 호기심은 계속 이어져 최근에는 뇌 연구를 하는 서구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스스로 뇌파 연구의 실험 대상이 돼 줄 정도로 과학기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양의 문화와 역사, 심리학 등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같은 박학다식이 달라이 라마로 하여금 다양한 전통을 가진 수많은 이들에게 대기설법을 하는 데 풍부한 토양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자비로운 미소를 지닌 친절한 친구

그분을 직접 뵙고 당신께서 가르치시는 그대로 수행하고 사시는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본 바로는 성하는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끊임없이 자비로 대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로 어려울 것 같은 상황에서도요. 수년 동안 티베트인들에게 티베트어로 말씀하시는 자리에 갔는데 처음 참석할 때부터 성하는 한 번도 빠짐없이 “중국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우리의 조국을 파괴했을지라도 그들이 우리를 고문했지라도 그들을 미워하지는 마십시오. 폭력도 행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의 젊은 세대 중 다수가 그런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성하는 계속해서 같은 메시지를 전하십니다.9)

유대교에서 불교로 개종한 유대인 승려 툽텐 최된 스님의 이야기는 왜 서구인들이 달라이 라마에게 열광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 준다.

언행일치의 삶, 원수마저도 끌어안는 자비심,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 이 같은 요소들이 달라이 라마를 존경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달라이 라마를 직접 만난 사람들은 이 외에도 또 한 가지를 꼽는다. 그들은 “(달라이 라마가) 한 개인을 우주 전체와 같이 대한다.”라고 설명한다.

한국에서 티베트불교를 전공한 최초의 불교학자로 꼽을 수 있는 주민황 박사는 달라이 라마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빛, 타인에 대한 그의 태도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주민황 박사가 처음으로 친견한 자리에서 한국에서 온 불교학자라고 소개하자 달라이 라마는 “나는 한국과 티베트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나라라고 확신한다.”라고 깊은 호감을 표시하며 “티베트의 이야기를 한국에 해 달라.”라고 부탁했다.

“너무도 자애롭고 친절한 눈빛으로 성하는 저의 손을 꼭 잡으며 부탁하셨어요. 누구를 만나든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그 사람에게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십니다. 저는 지금도 그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번역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황 박사처럼 달라이 라마와의 특별한 만남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사실 한둘이 아니다. 미국계 유대인이자 서양불교스승네트워크의 창립자인 수랴 다스 라마는 “그분께 느끼던 유대감은 정말 깊었습니다. 제게 정말 많은 관심을 보이던 분이었고요. 함께 있을 때만큼은 세상 그 무엇도 저보다 중요하지 않은 듯한 굉장한 느낌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비록 한순간이라 해도, 다른 중요한 일이 많다고 해도 말입니다.”10)라고 말한다.

전 캔터베리 대주교 조지 캐리 경은 “전 인류를 끌어안는 따뜻함이야말로 우리 시대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 중에서도 달라이 라마를 단연 돋보이게 하는 가치일 것이다. 그리스도교 지도자로서 그를 여러 차례 만난 사람으로서 그의 놀라운 구도의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라고 격찬했다.

톰 랜토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의 부인이자 ‘강아지를 안고 다니는 인권할머니’로 유명한 아네트 랜토스는 “악수를 청하고 묵례를 합니다. 그가 시선을 맞출 때에는 마치 영혼의 저 뒤편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라고 달라이 라마를 설명한다.

달라이 라마가 가진 또 한 가지 장점은 그가 상당히 유머러스하다는 것이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 일부러 옆구리를 쿡 찔러 친구를 웃긴다든지, 법문을 할 때 농담을 던져 청중을 깜짝 놀라게 한다든지 하는 일화들은 매우 유명하다.

그런 달라이 라마의 모습에 서양인들은 “교황에게서는 수천 년간 볼 수 없었던 친근한 모습”이라며 열광한다.

달라이 라마는 “나의 종교는 단순합니다. 나의 종교는 친절입니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다. 그런 사람이 사랑받는 일은 사실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인류의 스승: 보편적 책임감

달라이 라마는 자주 대중 강연을 한다. 외국에서 대중 강연을 할 때면 그의 이야기는 주로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보편적 책임감, 두 번째는 종교들 간의 조화, 세 번째는 티베트 문제이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적인 조화와 보편적 책임감. 이 두 가지 목표를 나는 달라이 라마로서가 아니라 인간이자 불교 승려로서 추종한다.”라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의 철학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보편적 책임감’이다. 보편적 책임은 인간 모두가 서로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중생에 대해서, 더 나아가 자연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달라이 라마는 그의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 폭력적인 대립, 자연 파괴, 가난, 굶주림 등―은 주로 인간들이 만들어 낸 문제들이다. 그런 문제들은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오직 인간의 노력과 이해, 그리고 동포애의 발현에 의해서만 해결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지구와 서로에 대한 선의와 깨달음에 기초한 보편적인 책임의식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내가 믿고 있는 불교가 사랑과 자비심을 길러 주는 데 유익하다고 느껴 왔지만 이러한 속성들은 종교를 믿건 믿지 않건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발전될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또 모든 종교는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고 믿는다. 선을 장려하고 모든 인간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모든 종교의 목적이라고 믿는다. 비록은 방법은 달라 보일지 모르지만 목적은 다 같다고 본다.11)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티베트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티베트를 통해 인류의 미래와 인류의 사명을 이야기한다. 그는 불교를 알리는 대신 각자가 지닌 종교를 환기시킨다. 자신의 전통적 종교를 통해 스스로의 영성을 관찰하라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유대인들 그리고 서양인들이 불교로 개종하겠다는 의향을 밝히면 극구 말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신 당신의 종교에 충실하라고, 어설픈 불교신자가 되기보다 자신의 종교적 전통 속에서 깨달음을 얻으라고 당부한다.

“남의 사정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라고 믿는 것을 덮어놓고 계속 찾다 보니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는 것”은 달라이 라마가 가장 경계하는 대상이다.12)

기독교인들과 불교인들은 근본적으로 같은 가르침과 같은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상대방의 생활양식, 생각, 서로 다른 철학과 믿음들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면 그것이 상호 간의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된 조화와 함께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나는 언제나 이러한 특별한 내면의 발전이 인류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3)

이 같은 태도는 달라이 라마의 대중국 외교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인과 중국인들이 서로 번뇌를 극복하고 상대에 대해 품고 있는 혐오를 억누르지 못한다면 티베트도 중국도 진정한 평화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행자 달라이 라마에게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류 전체의 행복과 그것을 실현하는 부처의 가르침이며, 이에 비하면 자신이 군주의 지위에 복귀하는 것, 티베트가 완전히 독립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달라이 라마가 강조하는 보편적 책임감은 불교인들을 위한 윤리가 아니다. 티베트인들만을 위한 윤리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바람직한 이상향을 제시한다. 그것이 세계인들로 하여금 그를 스승으로 받들 수 있도록 하는 가장 명백한 이유이다.

룸비니에서 석가모니가 탄생한 이후 한 승려의 사상이 세계를 이토록 감동시키고 이처럼 큰 파급력을 지녔던 적이 있었을까.

에필로그

필자는 이 글을 쓰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한국에서만 해도 수십여 명의 기자들이 달라이 라마를 직접 인터뷰했고, 수만에 달하는 이들이 직접 달라이 라마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지만, 필자는 단 한 번도 달라이 라마를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 글을 감히 쓸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본 사람이든, 그를 보지 않은 사람이든 달라이 라마가 몸소 보여 준 보편적 책임감, 인간에 대한 자비로운 태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신 필자는 수년간 불교계 신문사에서 외국 불교를 취재하면서 느낀 것 한 가지를 쓰고자 한다. 그것은 달라이 라마, 혹은 티베트불교의 빛이 한국불교의 그림자와 대부분 일치한다는 점이다.

달라이 라마는 쉽고 평이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수많은 교리와 수행 체계를 모두 아우르는 다양한 수행법을 전달한다. 그리고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 그의 행동은 철저히 불교적이고, 수행자답다. 비불교적인 사사로운 것에 의탁하는 대신 최신 학문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신학문을 배우는 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보통의 인간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지를 몸소 보여 준다.

붓다가 설법한 팔만사천 법문을 오늘에 맞는 대기설법으로 풀어 놓고 몸소 행하는 일이 현대의 승려들이 해야 할 과제이다. 달라이 라마는 그것을 가장 많은 이들에게, 가장 훌륭하게 실천하는 승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 위에는 달라이 라마의 아주 어렸을 적 사진이 놓여 있다. 오래전 알랭 베르디에라는 프랑스 친구가 준 것인데, 평소에는 눈에 잘 들어오질 않다가도 마음이 아주 무거울 때면 그 사진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그때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어린 소년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기까지 살아온 과정과 그 힘과 그가 들려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지구 위에 그 같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를 직접 만날 수도, 또 아주 먼 훗날이 될 언젠가는 나 또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아마 알랭 베르디에 또한 그런 이유에서 그 사진을 준 것이라 믿는다. 그 사진을 받아 보고서 어설픈 영어로 기쁨을 전하자, 알랭 베르디에가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씩 웃음을 지어 보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인간을 향한 애정,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역할 모델로서 달라이 라마만 한 인물이 있을까. 그것이 바로 세계인들이 달라이 라마에게 열광하는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티베트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 전설에 의하면 외부로부터의 침략에 의해 티베트가 무참하게 짓밟히고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목숨을 잃게 되지만 그와 더불어 티베트의 불법이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리라는 것이다.

티베트인들은 그 전설이 현재 티베트의 처지를 예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자신의 고통이 스스로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며, 오늘은 선업을 쌓아 다음 생에는 더 행복하고 고귀한 삶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매일 매일을 십만 겁의 일부로 살아가는 티베트불교,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에게는 하루아침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한국불교에 없는 그 무언가가 분명 있다.

오래되고, 느리며, 두터운 그 무언가를 추구하는 이들, 그리고 그 길을 인도해 줄 훌륭한 스승이 있다는 점이다.■

 

탁효정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역사 전공 석사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석사논문으로 〈조선후기 왕실원당의 유형과 기능〉을 썼다. 현재 〈미디어붓다〉 기자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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