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첫 밀교 학자·수행자 최연철 박사

천국과 하느님도 있고 아미타불 세계도 존재한다

천국과 하느님도 있고 아미타불 세계도 존재한다

티베트불교가 대승불교나 근본(상좌부·남방)불교와 다른 독특한 점은 밀교다. 밀교란 ‘준비된 제자’에게만 스승이 전해주는 비밀스런 가르침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그 세계를 들여다보기 어렵다. 통상 어린시절 출가하는 티베트의 승려들도 13년 과정의 강원에서도 밀교는 고학년이 되어야 배울 수 있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수행으로 여겨지고 있다.

 

티베트사찰에 가면 밀교의 ‘깨달음의 세계’를 형상화한 만달라가 내걸려 있다. 하지만 눈으로는 보여도 그 뜻을 알기 어렵다. 그런데 그 비밀스런 세계의 일단이나마 엿볼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불교평론>이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마련한 ‘만달라와 밀교수행’ 열린논단 강좌를 통해서였다.

강사는 <티벳불교의 향기>의 저자 최연철(41) 박사. 티베트 불명 로덴을 붙여 최로덴으로 불리는 밀교 학자이자 수행자다. 인도 델리 박물관연구소(NMI)에서 ‘티베트불교 칼라챠크라 탄트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히말라야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의 지도로 밀교 수행을 하면서 11년을 인도에서 보내고 지난 2007년 귀국해 동국대 불교대학 인도철학전공분야에서 티베트불교를 강의하고 있다.

수행하면 이성을 성적 욕망 대상 아닌 자기 자신으로 여겨

기자가 최 박사에 대해 들었던 것은 오래 전부터였다. 달라이라마의 지도로 20년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불교를 수행해온 청전스님으로부터였다. 기자가 5년전 다람살라에 잠시 머물 때 청전 스님은 “티베트 밀교를 건실하게 공부하고 있는 청년이 있다”며 최 박사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청전 스님은 ”달라이라마 존자께서도 한국인 가운데 티베트 밀교를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 나와 흡족해 하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때는 최 박사가 델리에 머물러서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5년 만인 이번에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최 박사도 청전 스님으로부터 기자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듣고 있어서 익히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전남 고흥 금산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와 대원외고 1회로 입학했지만 일찍부터 가출 아닌 가출을 하며 입산하는 방랑벽을 겪었다는 최 박사는 어느 출가자 못지않은 청순하고 순수한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최 박사는 강의에서 밀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쾌락을 누리면서 수행도 할 수 있는 방중술(성교를 통한 수행기술)에 관심이 많기에 (성교를 통한 합일에 의해 수행하는) 성적인 게 밀교의 전부인 양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에게만 통용되는 한 방편일 뿐 그게 밀교 수행의 본질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밀교는 남녀의 구분까지도 없는 미세한 차원의 의식을 다루기 때문에 남녀의 성적 결합이 (깨달음의 길로 가는) 본질이 될 수 없으며, 밀교 수행을 하게 되면 이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과 다름이 없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최 박사는 “이미 30여년 전 밀교를 받아들였던 타이완에서도 성적 합일에 대한 관심만이 팽배하다가 이것이 밀교의 요체가 아님을 깨닫고 오랜 시행착오 끝에 다시 기초수행부터 시작하는 풍토가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만달라란 ‘부처의 마음’ 형상화한 것…의욕과 욕심 앞서면 몸 상해

그렇다면 만달라란 무엇일까.

“지도다.”

최 박사의 답은 간단 명료하다. 만달라란 이미 깨달은 이들이 ‘보신(報身)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형상화한 것이란다. 법신(法身·붓다의 청정한 본래 마음 그 자체), 응신(應身·중생들에게 나타나는 붓다의 모습)과 함께 삼불신(三佛身)의 하나인 보신은 ‘높은 단계의 보살들에게 나타나는 붓다의 마음 세계’이다.

밀교 수행을 하려면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현존하는 스승들이 이끄는 관정식(灌頂式)에서 입문의식을 치러야하는데, 이 때 스승은 만달라를 통해 입문자가 가야할 궁극의 길을 미리 보여준다고 한다. 이때 입문자는 ‘꿈속에서 몸을 체험’하는 것과 같이 보신의 세계를 경험한다고 한다. 그런 다음 곧바로 만달라를 해체하는데, 결국 입문자가 내면에 만달라의 세계를 구축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관정식은 지난 2002년 오스트리아 그리즈니에서 8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달라이라마가 직접 이끌었다고 한다. 이 관정식은 주로 달이 중천에 떠있는 보름날 행하는데, 참가자들의 ‘제3의 눈’(미간)을 잠시 닫아두었다가 전날 꿈자리들을 점검해 가장 적절한 수행을 파악한 뒤 스승이 직접 만달라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한다. 이렇게 관정을 받으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밀교 수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잘 아는 티베트인들은 오히려 관정을 잘 받으려 하지 않지만, 한국인들은 수행을 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받고 보자는 풍토가 많다고 최박사는 지적했다.

밀교는 스승의 지도 아래 체계적으로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현교(밀교와 달리 공개된 가르침)를 배운 뒤 현상계와 내면을 조작된 세계로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밀교 수행을 시작하도록 한다. 그런데도 의욕과 욕심이 앞서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은 채 밀교 수행을 하다가 몸을 크게 상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 최 박사는 “한 한국계 미국인이 다람살라의 고층 건물에서 떨어진 일이 있었는데, 그의 방에 들어가보니 온갖 빨간 형형색색의 만달라들이 걸려 있었다”면서 “후에 이탈리아의 한 병원에서 뇌를 촬영해보니 두개골이 깨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과욕으로 수행할 경우 큰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의식의 변형’에서 보면 기독교-불교 함부로 개종 불필요

최 박사는 “밀교 수행은 대승적 보살도를 실현하는 마지막 서원단계를 제외하고는 인도 요가의 쿤달리니 경험과 유사하지만, 한국에서 쿤달리니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전혀 쿤달리니와는 관계가 없는 체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자리에서 팔정도와 오온, 심이처, 12연기를 확고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면서 밀교 수행으로 인한 불교의 근본 지식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해탈이란 공간을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유스러워지는 것”이라면서 “그래서 깨달음은 평면적이 아니라 입체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다른 수행에서 보기 어려운 밀교 수행을 통해 나타난 현상의 일단을 알려주었다. 만달라는 죽어가는 과정을 역으로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빛으로 표현되어 있다. 죽음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빛에 대해 최 박사는 “존재가 나고 죽는 곳이 (척추 앞에 뻥 뚫린 관인) 중앙맥관인데 빛은 맥관이 붕괴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최 박사는 이와 관련해 “숨이 끊어진 사람이 몸의 윗쪽부터 차가워지면 바람직하지 않은 과정으로 가고 있으며, 아래쪽부터 차가워지면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로 그 과정을 잘 가고 있는 증거”라고 귀띰하기도 했다.

최 박사는 “(석가모니 당시 일천 부처가 동시에 눈앞에 출현한) ‘천불화현’의 신통도 신화로만 여겨지지만 (밀교적) ‘의식의 변형’ 차원에선 관정의식 중 눈앞에서 이를 보는 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최 박사는 또 “달라이라마가 ‘평생 그리스도교를 믿어온 이들이 불교로 함부로 개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인들의 의식에서 보신(천국)과 하느님이 존재하며, 불자들에겐 서원에 의해 아미타불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면서 “‘의식의 변형’을 이해할 때 이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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