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열 스님 지음 《고따마 붓다》(문화문고, 2008)

《고따마 붓다》
성열 스님 지음 (문화문고, 2008)
한국불교의 위기를 교주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진단한 저저는 ‘고따마 붓다, 그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으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역사와 설화라는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초인적으로 신격화되고 설화를 통해 각색된 화려한 붓다의 모습보다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간적인 붓다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붓다의 전기는 붓다의 열반 이후 곧바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초기경전에서 붓다의 일생은 몇몇 일화들에 대한 단편적인 회상과 중요한 주제를 중심으로 한 몇몇 기록들로서 남겨져 있을 뿐이다. 전자의 경우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 행했던 고행들을 회상하는 붓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중아함경의 몇몇 경전들이라면, 후자의 경우는 붓다의 첫 설법과 교화를 주제로 한 《율장》 〈대품〉과 붓다의 마지막 3개월을 주제로 한 〈대반열반경〉과 같은 초기불교 문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경장과 율장 등에 흩어져 있던 붓다의 일생에 대한 단편들은 마치 구슬을 꿰듯이 점차적으로 연결되고 엮어지면서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붓다의 일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서술한 마명의 《불소행찬》이 나오기까지는 약 700여 년의 장구한 세월이 필요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붓다의 모습은 이러한 장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때로는 초인적으로 때로는 설화적으로 화려하게 묘사되었고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붓다의 인간적이고 사실적인 측면들과는 점차적으로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붓다의 일생에 관한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이렇게 만들어진 붓다의 전기는 과거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불교의 가르침과 이상을 일반 대중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각각의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특성과 불교를 전파하는 교단의 이상이 투영되면서 붓다의 전기는 다양하게 변형되고 지역적 특색에 맞춰 토착화되고 초현실적으로 발전되게 된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붓다의 전기는 한 인간에 대한 사실적인 기술이라기보다는 친근하고 효과적으로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각색된 하나의 이야기란 측면이 더욱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후대의 가감이 제거된 한 인간으로서의 붓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서 초기경전에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붓다의 일생에 대한 단편들을 수집하고 붓다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상들을 재검토 할 뿐만 아니라 서구의 현대불교학의 학문적인 성과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사실상 서구의 학계에서도 1900년대 초반에 붓다의 역사성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1860년대 유진 뷔르누프(Eugene Burnouf)의 《법화경(Lotus de la bonne foi)》 번역을 통해 불교에 점차적으로 접하게 된 프랑스 학계는 붓다를 실존 인물이 아니라 태양신의 신화를 차용해서 만들어낸 신화적 인물로 보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올덴베르그(Hermann Oldenberg)의 《붓다, 그의 일생, 교리, 교단(Buddha, his life, his doctrine, his order)》이란 유명한 책을 통해서 반박되었고, 역사적으로 실존했었던 붓다의 인간적인 모습을 되살려내는 작업들이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언급된 토마스(E.J. Thomas)의 《붓다의 일생, 전설과 역사(The Life of Buddha as Legend and History)》와 슈만(H.W. Schumann)의 《역사적인 붓다(The Historical Buddha)》는 이러한 서구의 학문적인 경향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 저서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고따마 붓다》는 전체가 11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 〈붓다가 태어난 인도〉에서는 붓다 당시의 사회상과 불교 탄생의 사상적 배경을 다루고 있다. 제2장 〈탄생과 전설〉에서는 붓다의 탄생을 둘러싼 전설과 설화들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전설과 신화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의의를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다. 제3장에서 6장까지는 비교적 잘 알려진 붓다의 유년시절과 출가수행 그리고 성도와 첫설법을 다루고 있다.

붓다의 일생에서 출가로부터 교단의 토대를 형성하는 부분까지는 《율장》 〈대품〉의 여러 이역본들을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붓다가 깟사빠 삼형제의 귀의를 통해 많은 제자들을 얻고, 빔비사라 왕의 보시를 통해 죽림정사를 얻은 후,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귀의를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실천할 수 있는 교단의 굳건한 토대가 얻어지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사실상 붓다의 일생에서 가장 재구성하기 어려운 부분은 성도 후 40여 년에 걸친 교화시기이다. 붓다의 마지막 3개월과 열반에 대한 기록은 《대반열반경》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으며 제8장에서 10장까지 다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있었던 붓다의 전도과정은 붓다의 전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연결하기 힘든 부분으로 가장 후대에 완성되었다.

제7장 〈전도의 발자취〉는 이 부분들을 초기경전과 《불소행찬》 등과 같은 전기에 최대한 입각하여 다루고 있다. 물론 이 시기를 붓다의 안거를 중심으로 시기적으로 정리한 여러 가지 목록들이 있지만, 다분히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역사성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붓다의 생애에서 이 부분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라자가하, 까삘라왓투, 웨살리, 꼬삼비, 사왓티란 중요한 지역별로 에피소드들을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다. 비록 붓다가 깨달음을 얻는 부분이나 마지막 열반에 드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열정과 장엄함을 느낄 수는 없지만, 여러 에피소드들에 녹아있는 붓다의 고민과 헌신 그리고 붓다 주변 인물들의 번민과 결단 등을 통해서 붓다의 인간적인 면모에 접근해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11장 〈그 밖의 이야기들〉은 가장 보수적이었던 테라와다 교단에서조차도 적극적으로 수용된 붓다의 세가지 신통력이야기를 시작으로 붓다의 외호자들, 시런, 그리고 불교의 전파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저자는 신격화된 붓다와 역사적인 붓다 사이에서 고민하고 문제를 제기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이러한 고민은 포교 일선의 몫이라기보다는 불교학계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경전에 기초하여 생생한 붓다의 말씀을 독자들에게 전달했던 《부처님의 말씀》의 저자이기도 한 성열 스님은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이라기보다는 포교 일선에 서있는 분이라는 점에서 학계의 많은 분발을 요구하는 촉매제 역할을 이 책이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저자는 우리가 ‘바른 신심으로 중생의 현실을 떠나 피안에 안주하는 신격화된 붓다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붓다가 살았던 시대의 선각자로서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나섰던 고따마 붓다의 참모습을 통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간적인 붓다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을 통해 불교의 교주에 대한 이미지를 올바로 세우는 것이 한국불교를 새롭게 정립하는 길이란 성열 스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붓다의 사후 붓다가 점차적으로 신격화·전설화되는 과정 또한 불교의 일부분이란 생각 역시 지울 수가 없다.

붓다의 초인적인 면모와 신격화는 아마도 불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현상이었던 것 같다. 초기불교의 사성제와 팔정도는 일반 대중보다는 출가수행자들을 위한 가르침이었다. 제가신자들에게는 ‘보시를 많이 하고 계율을 지키면 하늘나라에 태어난다.’는 행위(業) 이론에 입각한 가르침이 주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따까》 등과 같은 설화 문헌들을 통해서 초월적이고 신화적으로 각색된 붓다를 만나게 된다.

초기경전이 보수적인 승원의 학승들을 중심으로 주로 출가수행자들을 위해서 구전되고 전승된 문헌들이라면, 《자따까》는 다양한 신도들과 접하면서 이들을 불교로 이끄는 포교의 일선에 있는 승려들을 중심으로 주로 일반 대중을 위해서 구전되고 전승된 문헌들이다. 따라서 《자따까》에서 나타나는 붓다는 깨달음과 열반을 향해 열심히 수행 정진하는 출가수행자의 모습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일반인들과 똑같이 고민하고 똑같이 갈등하지만 일반인들이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뛰어난 거의 초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초인으로서의 붓다의 모습은 붓다와 거의 동등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아라한의 지위가 점차적으로 격하되면서 교리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라한의 지위를 둘러싼 상좌부와 대중부의 논쟁 그리고 초인적인 붓다를 둘러싼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대립이 이러한 교리적인 발전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인간으로서의 붓다가 점차적으로 신화화되고 초인화되면서, 붓다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수도자의 모습보다는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구세자의 모습으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이러한 불타관의 변화를 옹호하고 싶은 의도는 없지만, 붓다의 초인적인 모습 또한 장구한 역사의 산물로서 불교의 한 일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초월적인 붓다에 대한 신앙에 기초한 신학적인 불교에 안주하면서 스스로의 역할을 출가수행자라기보다는 인도의 브라만 사제와 같은 것으로 제한하고 안주하는 오늘날 한국불교 승려사회의 현실에 경고의 매시지를 보내려고 하는 듯하다.

오늘날 일반 대중에게 있어서 불교는 더 이상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떠나가기 위한 방편으로서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구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교는 현대 사회의 첨예한 문제들에 노출된 현대인들이 불교의 명상과 자비 정신 등을 통해서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 보다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교육을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받아 온 현대인들에게 초월적이고 신적인 존재로서의 붓다는 너무도 머나먼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 이시대가 필요로 하는 붓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여든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임종의 날을 향해 천리길을 걸으면서 자비에 가득 찬 말씀을 나누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자신을 뵙고자 하는 이면 그가 누구이든 가리지 않고 가르침을 주었던 존재’, ‘자신의 시대가 안고 있는 온갖 모순과 불합리를 깊이 통찰하고 그것을 일깨우고 개선하는 데 앞장섰던 역사적인 존재’로서의 붓다가 바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붓다의 모습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아마도 붓다 또한 자기 스스로가 초역사적이고 생로병사를 초월한 신학적인 존재로서 기억되기보다는 이렇게 인간적이고 다정하며 자비심이 넘치는 이웃으로서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황순일 동국대 인도철학과(학사, 석사), 영국 옥스포드대(박사). 충북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조교수. 2008년 불교연구부문 불이상 수상. 저서로 Metaphor and Literalism in Buddhism(RoutledgeCurzon)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 〈무기설을 통해본 무여열반의 의미〉, 〈설일체유부(Sarva­stiva­da)에서 개념과 명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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