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모토 시로 지음, 이태승 외 옮김 《티베트 불교철학》 (불교시대사, 2008)

《티베트 불교철학》
마츠모토 시로 지음, 이태승 외 옮김 ,(불교시대사, 2008)
《티베트 불교철학》은 저자 마츠모토 시로(松本史郞)가 티베트불교를 연구하면서 가지게 된 몇 가지 문제를 해명한 논문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서장을 포함해서 모두 11장으로 되어 있다.

서장에서는 일반적인 측면에서 티베트불교사를 설명하고, 나머지 1장에서 10장까지는 몇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논술하고 있다. 각 장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완전히 별개의 주제는 아니다. 1~3장에서는 종의문헌(Grub mtha')이라고 하는 각 종파의 교의 체계를 설명하는 저작을 중심으로 중관학파의 명칭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4~10장까지는 티베트의 중관학을 다양한 각도에서 해명하고 있다.

일반적인 서평과 달리 필자는 저자가 제기한 몇 가지 점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서평을 대신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필자가 보기에는 저자가 제기한 문제들이 그렇게 타당한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고, 너무 일방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1. 중관학파의 명칭에 대해

티베트불교는 인도불교에서 성립한 문헌과 수행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발전하였다. 인도불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도에서 성립하여 티베트어로 번역된 많은 문헌들을 교의 체계 속에서 이해하고, 그 교의의 우열을 비교하여 정리한 것이 종의문헌이다. 이런 예가 인도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실로 다양한 종류의 종의문헌이 성립한다는 점에서 티베트의 독특한 불교철학이 잘 반영된 문헌군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의문헌은 티베트불교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저술되고, 읽히고 있다. 이들 종의문헌에서는 인도에서 성립한 여러 학파를 구분하고 있다. 그중에서 중관학파(dBu ma pa)를 자립파(自立派, Rang rgyud pa)와 귀류파(歸謬派, Thal 'gyur pa)로 구분하고, 특히 자립파를 경량행(輕量行, mDo sde spyod pa)중관학파와 유가행(瑜伽行, rNal 'byor spyod pa)중관학파로 구분한다. 티베트불교에서 자립파를 ‘경량행’과 ‘유가행’이라고 구분할 때, 이것은 각각 ‘경량부’와 ‘유가행파’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는 ‘mDo sde’는 ‘경량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야경(般若經)》의 ‘경’을 의미하기 때문에 ‘경중관학파’라고 해야 하고, ‘유가행’은 ‘유가행파’가 아니라 《유가론(瑜伽論)》의 ‘유가’를 의미하는 ‘유가행중관학파’라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법성(法城)의 《대승도간경수청소(大乘稻竿經隨廳疏)》에서 대승의 종견이 크게 의경중종(依經中宗), 유식중종(唯識中宗), 의론중종(依論中宗)을 근거로 성립한다는 것을 든다. 따라서 경량행중관학파는 의경중종을 근거로 한 ‘경중관학파’, 유가행중관학파는 의론중종을 근거로 한 유가행중관학파라고 주장한다.

《수청소》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용수와 제바의 중관학이 《반야경》을 근거로 성립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중관학파 전체가 주장하는 승의제의 토대가 《반야경》 등의 대승경전에 있기 때문에 중관학파는 《반야경》을 의지한다. 그렇지만 경량행중관학파와 유가행중관학파를 구분하는 것은 승의제가 아니라 세속제이다. 《수청소》에서도 유가행중관학파는 세속에서 유식을 설명한다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량행중관학파도 세속제에서 경량부 논서를 근거로 성립할 수 있지 않은가.

또 샨타락시타(《S、ntaraks .ita)를 무착보살의 제자라고 설명하고, 삼성(三性)과 삼무자성(三無自性)을 중관학의 종견으로 설명하는 《수청소》의 설명만을 근거로 ‘경중관학파’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예쎄데(Ye shes lde)의 《견해의 구별(lTa ba'i khyad par)》에서도 유가행중관학파에 이어 경량행중관학파를 설명하는 것은 외계 실재론이라는 경량부의 철학을 바탕으로 경량행중관학파의 기본적인 실재론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유가행중관학파에 대해

예쎄데는 《견해의 구별》에서 유가행중관학파의 세속유를 외경(外境)을 부정하는 유식학파의 견해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티베트의 대학승 쫑카빠(Tshong kha pa)에게 계승되었고, 그의 주저 중의 하나인 《선설심수(善說心隨)》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전승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유가행중관학파의 세속유는 여타의 중관학파와 다르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외경을 부정하는 유식학파의 견해를 세속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종의문헌에서는 유가행중관학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샨타락시타와 그의 제자 까말라쉴라(Kamalas、1죚la)를 언급하지만, 이들의 저술에서 유가행파의 세속유설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샨따락씨따의 주저인 《중관장엄론(中觀莊嚴論)》을 통해 세속유식설을 비판한다. 《중관장엄론》에서 세속유식설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일반적으로는 게송 64와 91을 든다.

고찰되지 않는 한 매력적인(ma brtags gcig bu nyams dga'), 생과 멸의 성질을 가진, 과를 낳는 능력을 가진 것이 세속적인 것이라고 인정된다.(64)

인과 과의 관계로서 있는 것도 인식뿐이다. 즉 스스로 성립하고 있는 것은 인식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91)

그러나 저자는 이 두 게송 중에서 64게송만 세속제를 설명하고 있고, 91게송은 세속제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관장엄론》을 잘 읽어 보면 64송과 91송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64송에서 세속제를 정의한 것 중에서 ‘고찰되지 않는 한 매력적인 것’ 하나만으로 세속제를 정의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관장엄론》의 저자가 65송에서 설명하는 ‘과를 낳는 능력을 가진 것’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저자는 중관학파에서 말하는 세속제의 정의는 자립파와 귀류파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티베트 종의문헌의 저자인 꾄촉직메왕보(Kon mchog 'jig med bdang po)는 유가행중관학파의 세속제를 ‘자체를 현증(顯證)하는 현량(現量)으로 둘로 현현하는 것을 가진 방식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65송의 《자주》에서 “고찰할 수 없지만, 결과를 낳는 능력을 가진 실사가 올바른 세속이다.”라고 하는 것과 64송의 《자주》에서 “중생세간과 기세간은 지각되는 것과 지각하는 것을 본성으로 하는 것에서 세간의 언설을 염두에 두는 것이고, 행위하여 증득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기 때문에 저자의 세속제보다는 후대의 종의문헌에서 정의하는 유가행중관학파의 세속제와 훨씬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저자가 91송이 세속제를 설명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를 91송의 도입부에 “세속의 제법이란 무엇인가를 ‘고찰(?)’해야만 한다.”라고 한 것을 인용하여, 91송이 64송과 다른 입장이고 세속유식설이 아니라 순수한 유식설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91송의 도입부에서 저자가 ‘고찰’이라고 번역한 것은 ‘dpyad pa’이고, 64송에서 ‘고찰’이라고 번역한 것은 ‘brtag pa’이기 때문에 원어가 분명 다르다.

이 둘을 동일하게 ‘고찰’이라고 번역하여 91송이 64송과 다르다고 주장한 것은 《중관장엄론》에서 이 두 단어를 조심스럽게 구분하고 있는 의도를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결과이다. 또 앞에서 인용한 91송의 도입부는 90송의 결론부이지 91송의 도입부가 아니다. 이 역시 저자는 논의를 전개하면서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91송이 순수한 유식설의 설명일까? 저자도 충분히 본 적이 있음직한 까말라쉴라의 《수습차제초편》에서는 “먼저 유가사(rnal 'byor pa)는 색법을 색 등 외경(外境)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고찰하는 것에 대해 ‘이것이 어떻게 식과 다른 것이겠는가, 식이 그와 같은 것으로 현현한다. 꿈속의 순간 그대로가 아닌가’라고 분석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 유심도 외경이 없으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능취와 소취를 벗어나는 무이상(無二相)의 무이지(無理智), 궁극적으로는 무이지도 보지 않는 불현지(不現智)에 머물러야 한다는 차제로 설명한다.

만약 이런 차제로 수습의 과정을 설명한다면 《중관장엄론》 92송이 승의제를 설명하고 있으니, 당연히 91송은 세속제를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꿈속의 비유도 91송 《자주》에 그대로 언급되고 있다. 그것이 《수습차제》에서 그대로 언급되고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설명이 아닌가. 더욱이 《수습차제》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례로 ‘유가사(rnal 'byor pa)’를 언급하고 있다면, 유가행중관학파의 명칭이 《유가론》을 근거한다고 주장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3. 쫑카빠의 자립논증(自立論證) 비판

쫑카빠의 자립논증 비판은 그의 주저인 《보리도차제광론(菩提道次第廣論)》 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귀류논증 중관학파를 불교 교학의 정점으로 보는 쫑카빠로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립논증 중관학파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비판은 양 학파의 존재론적인 시각과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비판은 자립논증을 대표하는 청변(淸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청변은 《반야등론(般若燈論)》에서 불호(佛號)가 “실사는 자체에서 생기는 것은 없다. 그와 같은 발생은 무의미하기 때문이고, 큰 오류가 되기 때문에”라는 자생(自生)을 부정하는 논증식을 비판하면서 “승의로서 [안(眼) 등의] 모든 내처(內處)는 스스로 생겨[난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알려진다.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순수정신과 같이”라는 자립논증식을 제시한다. 수론파(數論派)에게 제시한 이 논증식에 대해 월칭(月稱)은 수론파는 안(眼) 등의 모든 내처(內處)를 실질유(實質有)일 뿐 가설유(假設有)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유법불성립(有法不成立)의 오류가 성립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월칭의 비판에 대해 청변은 “예를 들면 ‘소리는 무상하다’라고 하는 것에서, 법(法)과 유법(有法)의 일반성만 취해지고 특수성은 취해지지 않는다. 특수성이 취해지면 비량과 비량 대상의 언설은 없다.”고 반박하면서 월칭이 제기한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청변이 이상과 같이 주장하면서 유법불성립의 오류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귀류논증파에서는 청변이 여전히 ‘일치현현으로 성립하는 것’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공격한다. 즉 청변의 반박처럼 특수성을 버리고 일반성을 취하여 논증식을 세우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면, 이것은 스스로 모순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청변도 승의에서 자생이 없음을 자립논증으로 논증하고 있으면서 유법은 일반성인 세속제를 취한다면 전도된 인식을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논의를 진행하면서 등장하는 ‘일치현현’을 ‘단순히 쌍방의 논자의 지(知)에 일치하여 현현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양(量)의 일치현현’으로 설명한다고 쫑카빠를 비판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수론파에서 내처를 실질유로 보는가, 아니면 가설유로 보는가 하는 것은 입론자와 대론자가 궁극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달려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히 하나의 주제가 논자에게 인지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립논증파의 비판이 언설에서 자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자립논증파의 존재론에 대한 비판이라고 몰아가는 것도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다. 
 
마츠모토 시로의 《티베트 불교철학》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티베트불교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일련의 논문에서 보여 주는 편협된 시각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티베트 불교철학》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티베트불교관은 사꺄빠(Sa skya pa)의 불교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인상을 준다. 이 책에서 제기된 문제도 사실상 저자의 새로운 시각이라기보다는 사꺄빠의 학승들이 겔룩빠(dGe lugs pa)를 비판할 때 제기한 그 방식 그대로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러한 비판은 뒤이은 겔룩빠 학승들의 혹독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일 필요가 있다. 너무 한쪽에 치우친 생각은 오히려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양승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원 연구교수와 중앙승가대학 강사로 재직 중. 역서로 《보리도차제역론》 《티베트 금강경》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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