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아 역편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민족사, 2008)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
일아 역편,(민족사, 2008)
1.

불교에 관심이 있어서 불교 공부를 한번 해 보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곧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선(禪)은 물론이고 중관(中觀)이나 유식(唯識), 밀교(密敎)와 아함(阿含) 등 너무나 방대한 가르침이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피를 잡으려는 입문자들이 소위 불교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아함경이나 니까야로써 가닥을 잡아 나가라고 권한다. 하지만 4가지나 5가지 종류로 각각 대별되는 아함경과 니까야 또한 그 방대함과 마주하게 될 때 다시 한 번 망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불교를 담고 있는 대장경 역시 그야말로 울창한 숲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붓다의 심오한 가르침 이후 2,50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후학들이 다양한 관점의 주석을 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은 그들이 내놓은 견해는 모두 초기불교 경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위 대승불교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관사상도, 중관사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유식사상도 모두 불교교리사의 맥락에서 보면 초기경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처음 불교를 배우려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공부를 했어도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한 사람들도 초기불교로 돌아가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래야 불교라는 울창한 숲속에서 길을 잃어 미아가 되지 않고 원만하게 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에 간행된 일아(一雅)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민족사)은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은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2.

아함경(阿含經)은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전인 아가마(A죚gama)의 내용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전해 오는 가르침’이란 의미를 가진 (한역) 아함경 또한 빠알리 경전과 함께 초기 경전에 해당된다. 그런데 아함경은 곧 중관이나 유식 계통의 대승경전을 중요시하는 중국불교계의 주류들에 의해 소승불교도들이나 보는 저열한 경전으로 치부되어 등한시되었고 중국불교의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아함경은 그 존재조차 희미해져 있었다.

그런 초기불교의 아함경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첫 번째 경로는 1963년부터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시작된 고려대장경의 한글 번역 작업을 통해서이고 두 번째 경로는 1970년 〈아함법상의 체계성 연구〉란 논문을 통해 아함경에 있는 붓다의 가르침들을 체계화한 다음에 이를 강단에서 적극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의 고익진 교수를 통해서이다.

이후 고익진 교수는 학위논문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는 최초로 초기불교 경전인 아함경을 편집한 《한글 아함경》을 세상에 내놓았다. 실로 방대한 한글 아함경을 정선(精選)하여 대학의 학자는 물론 일반인이 초기불교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이러한 성과물을 통해 여러 종류의 정선 아함경이 계속해서 선을 보였다. 그중에 하나가 학담 스님의 《아함경》(조계종 출판부) 이다.

하지만 고익진 교수의 책은 동국역경원의 역자들이 다수인 결과로 나타나는 여러 번역어를 통일시키지 못한 점을 알 수 있다. 동국역경원에서 번역한 《한글 아함경》을 번역상의 검토를 생략한 채 거의 그대로 취합 정리한 것이다. 이에 비해 학담 스님은 고익진 교수와 비슷한 교리 체계에 따른 경전 배열을 보여 주고 있지만 일관된 번역이 시도된 장점이 있다.

더 나아가 전자가 한문 원문을 싣지 않은 데 반해 후자는 한문 원문까지 싣고 있다. 고익진 교수와 학담 스님 이외에도 여기서 일일이 다 언급할 수 없지만 여러 편저자에 의해 초기불교 가르침인 아함경을 정선하여 일반인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

3.

빠알리 경전이 여러 역자들에 의해 출간되었지만 한역에 따른 여러 정선 아함경과 같이 한 권으로 일괄되게 묶이지 못한 상황에서 최근에 국내에 선보인 일아 스님의 책은 빠알리 경전으로는 국내 최초로 한 권으로 묶음이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이 편역서는 빠알리의 삼장 가운데 경장만을 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로 소개하고 있는 경전은 경장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사실 일반인들이 접하려하면 경장의 양만 하더라도 방대하다. 경장은 Pan~ca Nika죚ya(五部)로 네 개의 Nikaa죚ya는 한역이 사아함(四阿含)에 상응되는 데 반해 안타깝게도 중국에서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초기불교 경전인 쿳닷까(Kuddhaka)의 15개 경전 전체가 그 번역을 마치지 못하고 끝났다.

빠알리와 한역 아함의 경전의 수를 비교해 보면 디가 니까야(D1죚gha Nikaa죚ya)는 34경인 데 반해 장아함은 30경이며, 맛지마(Majjhima)는 154경인 데 반해 중아함은 222경, 쌍윳따(Sam·yutta)는 2,872경인 데 반해 잡아함은 1,362경, 그리고 앙굿따라(An ˙guttara)는 2,308경인 데 반해 증일아함은 471경가량의 경전을 담고 있다. 또한 빠알리 경전이 단일한 언어와 부파의 경전이라면 한역 아함은 법장부와 설일체유부 등의 인도불교의 여러 부파 소속의 경전이 중국에 소개되어 한역된 것이다. 물론 언어적으로도 한역 아함의 경우 단일한 인도어에서 옮겨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현대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이처럼 초기불교 경전의 수는 방대한데 이를 교리적인 맥락에서 다시 취사선택하여 정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외국의 경우, 예를 들면 영어권에서는 1986년 미국인 워런(H. C. Warren)에 의해 이같이 방대한 양의 빠알리 경전이 Buddhism in Translation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

이로써 일반인들이든 학자이든 빠알리로 된 초기불교의 전체 윤곽을 영어를 통해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워런 또한 불법승 삼보(三寶)를 중심으로 부처님 생애에서부터 중심 교리와 실천 수행법, 그리고 교단과 관련한 경전을 편역하여 한 권으로 묶고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이제는 초기경전인 아함경을 넘어 다시 빠알리 경전으로 관심이 고조되어 가고 있는 시기에 일아 스님이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을 통해 초기불교 전체를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 주고 있다.

한글 빠알리 경전이 한글 아함경보다 붓다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보다 유용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한글 아함경이 산스크리트에서 한문으로 그리고 다시 한글이라는 삼중역인 데 반해 한글 빠알리 경전은 한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우리말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직역이라는 점 자체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같은 초기경전이라도 아함경보다 빠알리 경전이 붓다의 원음에 보다 근접한 가르침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독자들 역시 이 편역서를 통해 서로 상응한 한역 아함과 비교해 보면 나름의 판단이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한역 아함과 빠알리 경전을 비교해 보면 공통되는 점이 많지만 세세하게 비교 검토해 보면 상당한 차이 또한 발견된다. 필자는 초기불교가 전공인 만큼 오랫동안 양전(兩典)을 서로 비교 검토해 오고 있는데 앞으로 초기불교 연구의 중요 과제는 바로 이러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전통적으로 아함경에 익숙한 국내의 독자들도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을 통해 양전의 비교를 자연스럽게 해 볼 수 있는 분위기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4.

이처럼 붓다의 원음에 보다 근접한 빠알리 경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친화력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의 방대함으로 인해 생긴 거리감을 일관된 체계를 가진 구성을 통해 극복하게 해 주는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이 큰 가치를 지니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독자들을 위한 그의 배려가 어떠한지는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의 목차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독자들은 제1편 부처님의 생애, 제2편 부처님은 누구신가, 제3편 부처님의 가르침, 제4편 빠알리 대장경의 역사로 구성된 목차의 제목들만 보더라도 한눈에 경전의 전체 내용이 무엇인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부처님의 생애 부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율장 등의 경전을 통해 ‘초기교단의 성립과 발전’을 다룸으로써 교단을 형성한 붓다의 의도에 대해 숙고해 볼 수 있도록 한 점이 돋보인다. 붓다는 과연 어떤 존재이었을까? 제2편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경전에 나오는 붓다는 사색을 좋아하는 침착한 성격을 가졌으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이 몸에 배어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신격화된 붓다의 모습과는 다른 인간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여기서 소개된 도입부의 몇 개 경전이 《붓다짜리따(佛所行讚)》의 것들이므로 이들은 빠알리 경전에서의 역출이 아니라 산스크리트 경전에서의 역출이라는 점이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빠알리 《자타카》의 서론 부분인 Nidaa죚nakathaa죚를 소개해주었더라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빠알리 대장경의 역사를 다루는 제4편의 경우, 인도불교사에 있어 흔히 4차 결집은 카니시카 왕의 쿠샤나 시대(C.E. 1세기 또는 2세기)로 보는 데 반해, 스리랑카 알루비하르에서 문자로 최초 결집했다는 남방불교의 전통을 따른 것도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또, 제3차 결집을 설명하는데 있어 고고학적 결과물을 싣고 있는 점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제4편은 빠알리 대장경의 성립과 전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나아가 붓다의 활동 지역과 아쇼까 왕의 국제포교 사절단의 파견 지역을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지도도 넣어 경전을 통해 불교의 역사성을 더욱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에 출간된 서적들과 차별을 갖는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붓다의 교설을 담고 있는 제3편의 경우는 ‘자비 실천’ ‘수행’ ‘평등’ ‘현실 직시’ 등의 주제를 정함으로써 독자들이 보다 쉽게 개념을 잡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위빠싸나를 ‘수행의 가르침’이라는 주제로 독립시켜 다른 수행법들과 대비해 볼 수 있게 한 점이나 교설을 서술할 때 간과하기 쉬운 계율에 대한 가르침을 ‘중요한 계율’이란 주제를 설정해 다룬 점 등은 참신한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은 교조, 교리, 교단의 불법승 삼보(三寶)와 계정혜 삼학(三學)이 골고루 잘 안배되어 있어 빠알리 경전의 면모는 물론 불교 전체의 대요를 파악하려는 독자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주의를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한 가지 지적을 한다면 번역상에 있어 빠알리 경전을 편리하게 접할 수 있도록 번역의 묘를 살렸기 때문에 원전의 세밀한 검증을 요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다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빠알리 경전의 대중화를 위해 방대한 빠알리 경전을 일관된 체계로 구성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학문적 엄밀성을 따지는 전문가들의 안목으로는 이 책의 내용들을 논문에 인용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5.

그동안의 언론을 통해 볼 때 편역자의 이력이 이채롭다. 일아 스님은 대학 시절에 독신수도 생활을 동경하여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녀가 되었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 불문에 귀의해 비구니가 되었다. 운문승가대학에서 불교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었지만 ‘부처님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가르쳤는지 확실하게 알고 싶었던’ 그는 미얀마와 태국에서 수년 동안 수행을 한 다음 미국에 유학하여 초기 불교경전인 니까야를 공부함으로써 비로소 오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니까야의 전문가가 된 그가 굳이 책의 제목에 ‘한 권으로 읽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도 자신과 같은 의문을 품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몇 쇄에 거듭한 출간의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수녀 신분에서 다시 비구니로 그리고 학승이라는 신분의 매력적 요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경전 자체가 갖고 있는 친화감, 편의성 그리고 원음을 전한다는 것이 맞아떨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더 나아가 대승불교권인 한국에서 불교를 접근하는 경향에 있어 대승경전보다는 초기경전에 관심이 옮겨 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과정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인은 물론 일반인에게까지도 빠알리 경전을 통해 부처님이 무엇을 말씀했는가를 알아보려는 층이 많이 형성되었음을 또한 알 수 있다.

한문 경전도 그러하지만 빠알리 경전 또한 그 양의 방대함에 바쁜 현대인들이 모두 섭렵하기는 어렵다. 또한 무엇보다도 경전 간에 비슷한 내용의 반복을 정리해 줄 필요가 있다. 빠알리 경전에 나타나는 그러한 현상은 구전이라는 전승 방법에 있어 체계를 갖추어 전승시키려는 목적으로 인해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중복이다. 그래서 니까야 전체를 섭렵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아 스님이 번역하고 편집한 《한 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잘 하고 있다. 축약이 잘된 이 다이제스트판은 독자들을 니까야의 세계로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5부 니까야 전부에 대한 완독으로 이끌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