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동화작가

덥다, 너무 일찍 더워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 문제에 관심 없던 사람들의 피부에도 이 더위는 끈적이게 달라붙는다. 이른 무더위가 지구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불교 혼자 아무리 청정하게 살려고 해도 공업(共業)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정신 차리고 반성해야 한다.

숨 가쁘게 달려온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불교는 늘 옛날 것, 고루한 것, 뒤처진 것으로 인식되었다. 친미 기독교 세력이 한국사회의 주류를 잡고 있는 동안, 불교는 상대적으로 낡은 가치를 대변하는 양 비난받아야 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서 불교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솔직히 불교가 잘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뭐 잘한 게 있다고……. 다만 기존 주류 집단의 에러가 반복되다 보니까 상대적인 반사이익을 보는 것 같다. 또 먹고살기 바빠서 정신없이 살다가 문득 정신 차리고 문화적 가치에 눈을 돌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전통문화와 불교가 만나는 자리가 눈에 띄는 것이다.

당장 템플스테이 같은 사찰 문화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다. 실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수는 한정되어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사찰과 사찰이 자리한 자연환경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으로 절을 생각하며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의 우호적 분위기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문화재 관람료를 둘러싼 시민사회와의 갈등과 긴장은 우리 불교가 시급히 풀어야 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요자 부담원칙이라는 말로 쉽게 넘어가지 말자. 솔직히 절 구경이 아니라 등산하러 온 사람들에게 돈 받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다 알지 않는가. 백번 양보해도, 절에 온 사람들에게 돈 받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찾아가서 포교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돈까지 내라니 크게 잘못된 일 아닌가.
사원경제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사찰 임야를 국립공원에 강제로 집어넣고 사용료 한 푼 안 내는 정부에 대해서는 큰소리 한 번 못 내면서 애꿎은 국민을 상대로 돈 내라는 것은 너무 부끄럽지 않은가. 사원경제의 어려움도, 정상적 신앙 활동으로 풀어나가야 도덕적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문화재관람료 사찰은 70개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관람료와 무관한 전국 수천 개 사찰이 함께 싸잡아 욕을 먹는다. 문제는 얼마 안 되는 관람료 사찰이 본사와 수말사라는 힘 있는 절이고, 종단 정치에서 힘깨나 쓰는 이들이 주지로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합리적 대안도 논의 과정에서 좌초된다. 결국 관람료 수입이라는 짭짤한 수익을 쌈짓돈처럼 사용해 온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가 선결되지 않는다면 불교는 국민이 불교와 사찰에 대해 호감을 갖는 이 좋은 시절인연도 허공 중에 날려 버릴 공산이 크다.

그런데, 이제 생각을 바꾸어 보자. 왜 불교가 비굴하게 정부에 대해 지원금을 애걸하고, 문화재 보수비를 로비해야 하고, 그마저도 부족해서 국민을 삥뜯어야 하는가.

문화재는 불교만의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의 것이다. 그에 수반하는 관리와 보수 비용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불교는 그를 관리까지 해 준다. 그렇다면 문화재 유지 관리에 대한 개념을 넓혀서 유형문화재의 보수 유지만이 아니라 그를 관리하는 비용까지도 당당하게 청구하자.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인원이 거주할 공간과 시설에 대한 것도 문화재와 결합하여 요구하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어 있는 문화재가 아니라 이 시대에 살아 숨 쉬고 후대에까지 이어지게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에 대한 운영 비용까지도 청구하자. 특정 종교의 신앙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은 안 된다고 타 종교에서 떠들지라도, 문화와 관련한 프로그램이기에 특정 종교만의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라. 왜 우리 스스로 주눅이 들어 자기 권리를 찾지 못하는가.

연간 문화재 관람료 3백 몇십억, 문화재 보수비를 비롯해서 정부 지원금을 다 합해야 천억 정도에 불과하다. 국가 예산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연간 수천만 명의 국민이 이용하는 문화 향유권으로 볼 때 마땅히 국가예산에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불교는 이를 투명하고 생산적으로 활용한 방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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