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남아 불교의 힘을 말한다

말레이시아 불교문화의 특징과 그 의미: 멀라까(Melaka)의 사례

1. 들어가며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동남아시아의 불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베트남과 태국, 미얀마 불교에 대한 관심을 제외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을 포함하는 도서부 동남아시아의 불교에 대해서는 사실상 국내 불교학계뿐만 아니라 종교 관련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은 불교의 말레이시아 유입의 역사와 말레이시아 불교문화의 상호 관련성에 주목하여 말레이시아 불교의 문화적 특징과 그 의미를 역사적, 문화적 측면에서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말레이시아 불교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주요 대상 중 하나로 말레이시아 화인들(Malaysian Chinese)이 이주 초기부터 정착하여 오랜 기간 동안 살아 온 멀라까(Melaka)를 선정하여, 멀라까 화인들의 문화 형성 및 변모 과정에서 불교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역사적, 문화적 차원에서 조망해 보고자 한다.

말레이시아에서 불교를 신봉하는 주요 민족집단(ethnic group)이 화인임을 상기할 때, 화인들의 초기 정착지 중 대표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는 멀라까의 화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불교문화의 특징과 그 의미를 다각도로 고찰하는 학술적 작업은 그간 말레이시아의 불교와 불교문화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일천한 현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2. 말레이시아 불교문화의 일반적 특징

동남아시아 불교는 태국과 미얀마의 불교로 널리 알려진 테라바다 불교(Theravada Buddhism)로 대표된다. 그것은 불교의 분파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붓다의 역사적 가르침이나 생활방식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불교이기도 하다.

테라바다 불교는 히나야나 불교(Hinayana) 또는 소승불교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것은 테라바다 불교가 주로 승려를 위한 종교 또는 불법을 좁은 의미로 해석한 연유에서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테라바다 종교는 불교의 다른 종파가 그렇고, 모든 종교의 분파들이 그러하듯이 단일하고 통일된 실체라기보다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문화적 환경과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화적 의미를 보유하는 하나의 문화적 구성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말레이시아의 불교 역시 말레이시아에서 외부에서 유입된 불교문화가 어떠한 변화를 겪어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되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 불교의 역사와 문화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고정불변의 실체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말레이시아라는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일종의 부단한 변화과정 속의 역사적 구성물로 간주하는 것이 말레이시아 불교의 역사성과 문화적 특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불교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것이지만, 문화의 형성과 변화라는 관점에서 유의미한 시기는 주로 19세기 이후로 한정된다. 이는 말레이시아 화인을 위한 사원들의 역사에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말레이시아 화인 사원의 역사는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되는데, 하나가 19세기 비불교신자들의 시기이며, 다른 하나가 20세기 불교신자와 비불교신자의 시기이다. 19세기에 사원들은 주로 도교적 색채가 강한 것으로, 꽁시(kongsi)라 불리는 화인 회사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관제(關帝)와 같은 신앙의 대상이 신봉되었는데, 그것은 꽁시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종교적 신심의 독실성이나 다른 이들과의 우애와 친목이 주된 목적이었다. 우애에 대한 강조는 19세기에 말레이시아의 화인들의 남녀의 비율이 8:1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불교 사원은 화인 이주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주석광산노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불교사원들은 주석광산노동자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의 정신적, 정서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급속히 증가하게 되었다. 불교 사원은 개별 불교신자들을 위한 특별한 경전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주로 개인적인 구원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었다. 화인들은 불교에 대해 실용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 주로 불교의 실용적인 측면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불교를 대했으며, 불교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화인들의 정신세계와 세계관에 접근했다.

이 점은 도교와 조상숭배의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그들에게 종교는 중국의 문화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긴 했지만, 말레이시아라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이식되는 과정에서 이주자들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요구에 맞춰 변형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현재 말레이시아 화인들의 종교는 불교와 도교, 기독교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불교는 채식주의자 또는 채식주의의 승려에서부터 노모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사원을 찾아 향을 피우는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부모의 감정과 같은 일상적인 가치를 매우 중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 가족에 문제가 생기면 집에서 가까운 사원을 방문하여 향을 피우고 제를 올리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말레이시아에는 ‘토착’ 불교를 믿는 사원이 도처에 있는데, 화인들은 인간사의 특정 부분을 각각 책임지는 수많은 신이 신봉된다. 이는 중국의 동남부 지역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인들은 실용성을 준거로 삼아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강한 편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들은 현실적인 부귀와 복을 기원하기 위해 사원을 찾아 향을 피우고 꽃이나 과일을 가져와 고민에 대한 해답이나 소원을 빌기도 한다. 부자들은 오래된 사원을 보전하거나 새 사원을 지으라고 유산을 남기거나 기부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러한 행위가 사후에 복을 받고 자손이 번창한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사원에서 점을 치는 경우도 있다. 그곳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미래를 점치는 승려가 있다. 점을 보러 온 사람은 대나무 가지가 잔뜩 들어있는 통에서 몇 개가 빠져나올 때까지 통을 흔든다. 가지가 나오면 승려가 그 의미를 해석해주기도 한다. 어떤 승려는 예언을 하기도 한다.

사원의 축제는 그 사원이 모시는 신의 탄생일, 매달 보름, 또는 지방의 축제일 등에 열린다. 석가탄신일인 베삭데이(Wesak Day)에는 사원과 암자에서 거행되는 예배를 드리고 축하연을 성대히 거행한다. 이날에는 붓다의 탄생을 기리는 평신도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원래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의 동남아시아로의 유입의 역사는 불교문화의 이동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불교가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로 전파되는 동안 인도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났고.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모습의 불교가 만들어지는 토대가 되었다. 인도의 불교 승단은 국가 지원의 힌두교적 가치의 사회규범화로 인해 심한 탄압을 받게 되었다.

흔히 대승불교라 불리는 마하야나 불교(Mahayana Buddhism)는 인도에서 결국 무력화되어 인도 북부와 남부의 일부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쇠락의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형태의 불교가 요청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도 불교의 동남아시아로의 유입은 인도 내부의 사회문화적 상황의 변화에 대한 대안이었으며, 이는 새로운 형태의 불교에 대한 요청에 답하는 대응이었다고 풀이된다.

3. 사례연구: 멀라까(Melaka)의 역사적 의미와 멀라까의 불교문화

(1) 멀라까의 초기 역사와 불교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고찰해 보면, 인간은 한 곳에 정착하거나 조직과 집단을 형성하여 한 장소에 거주하기보다는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는 동물만이 갖고 있는 호모 모빌더스(homo mobildus), 즉 한 장소에 오래 머물지 않는 본성에 따라 이동을 하는 일반적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동과 교류가 갖는 동과 정이라는 서로 다른 성질이 공존과 교류의 역동성을 낳았으며 이동과 교류의 상호 작용 속에서 문화와 문명이 탄생하고 발전을 거듭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도 불교의 동남아시아로의 유입은 문화의 이동과 더불어 이루어졌으며, 동남아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불교의 유입과 같은 외래문화의 수용은 현지의 토착문화와의 끊임없는 접촉과정을 통해 형성, 변모되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멀라까 해협을 포함한 인도양 해역에서는 옛날부터 사람들이 이동하고 교류하면서 교통, 물자, 화폐, 문화가 하나가 된 네트워크, 이른바 넓은 의미의 ‘교통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으며, 그로 인해 멀라까 해협에는 여러 민족집단간 통혼을 통한 혈연적 유대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접촉 과정을 통해 다민족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고유하면서도 독특한 문화적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항구와 항구가 촘촘히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으며 거대한 권력을 형성하기보다는 해상 네트워크로 이어진 멀라까와 수마트라, 보르네오, 술루(Sulu) 왕국을 형성했다. 멀라까 해협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는 섬과 섬, 항구와 항구, 또는 항구의 해안과 강을 통해 내륙의 육지와 연결되는 해역의 세계였으며, 이를 통해 불교를 비롯한 세계의 다양한 종교가 유입되어 정착되었다. 특히 동남아시아 불교를 대표하는 테라바다 불교는 인도, 스리랑카를 거쳐 미얀마, 태국, 그리고 말레이 반도에 유입되어 현지의 다양한 종교적 유산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혼합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불교문화를 형성하였다.

멀라까의 초기 역사는 멀라까 불교문화의 형성과 변화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멀라까는 수세기가 넘는 역사를 지닌 여러 불교 사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문화와 관련된 독특한 역사를 지닌 도시이다. 멀라까가 불교와 관련된 역사적인 유물과 건축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멀라까 불교문화의 독특한 색채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멀라까 불교문화의 형성 초기의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멀라까 지역의 인구 구성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다양한 편이었다. 이는 멀라까가 항구도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안지대에 위치한 항구도시 멀라까는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중국 동남부 지역에서 이주해 온 화인들을 비롯하여 아랍인, 인도인 등이 집결하는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항구도시 멀라까는 사람과 물건, 정보가 집결되는 거점으로서, ‘만남과 교류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다양한 종교의 혼성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중국, 일본, 유라시아의 각 지역, 아메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중계무역항으로서의 멀라까는 오랜 기간 동안 마카오와 중국 남부의 광쩌우는 물론 일본뿐 아니라 필리핀의 마닐라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열도의 여러 항구를 연결하는 방대한 무역로의 중계항이었다.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동남아시아 최대의 국제적인 항구도시였던 멀라까는 무역 상인들로 붐볐으며, 해안과 내륙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해상 네트워크를 통한 교역로의 확보는 육로로 연결되어 내륙을 거쳐 동쪽 해안까지 물자를 운송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의 무역 상인들과 중국 대륙의 화인들이 수 세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유입되었다.

그들은 불교를 비롯한 종교들과 함께 고유의 생활방식도 들여왔다. 특히 불교는 문화적 유산과 각종 물품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생활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말레이시아 화인들의 다양한 의례에서 불교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화인들의 가치와 규범, 세계관을 포함한 행동방식이나 사고양식에 불교가 미친 영향은 실로 지대한 것이다 초기에 말레이시아 반도에 이주하기 시작한 화인들은 주로 이 지역의 생산품을 구입하기 위해 정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출신 역사학자들의 기록을 보면 이곳에서 거래된 물품의 목록과 가격, 그리고 말레이시아 반도에 살고 있던 현지인들의 행동방식과 생활의 일면뿐만 아니라 이곳에 이주한 화인들의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인도 동쪽의 최대 해양무역의 중심지였던 멀라까는 인도양과 남중국해를 연결하는 멀라까 해협을 통해 인도에서 멀라까를 거쳐 중국으로 재수출된 은을 비롯하여 정향, 육두구, 단향, 견직물, 사향, 도자기 등이 교역되었으며, 멀라까에서 생산된 쌀, 밀, 인디고, 버터, 기름, 그리고 각종 직물 등이 인도로 유출되었다. 이러한 교역을 위한 거래는 인도와 스리랑카 불교의 말라카로의 유입을 가능하게 하였다.

특히 인도 구자라트와 고아, 그리고 스리랑카의 콜롬보 지역의 불교는 멀라까 해협을 통해 멀라까에 유입되어 말레이 반도의 전통 신앙과 조우하면서 현지화되었다. 멀라까의 인도 교역망은 구자라트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그것은 동남아시아 불교의 역사와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인도-스리랑카-말레이 반도를 잇는 해역 네트워크는 동남아시아 불교의 유입과 정착, 그리고 문화적 변화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은 말레이시아 불교문화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한다.

동남아시아 무역의 핵심 거점으로서의 멀라카 해협은 말레이 반도의 인도인과 화인 문화의 거점이기도 했으며, 화인들의 종교 생활은 인도인들의 힌두문화와는 구분되는 나름대로의 고유하면서도 독특한 종교문화를 유지, 발전시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 변모시켜왔다고 말할 수 있다.

(2) 멀라까에서 불교의 문화적 의미

원래 말레이 반도의 작은 어촌이었던 멀라까는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고유한 문화적 상황의 영향으로 급속한 변화를 겪게 된다. 말레이 반도를 중심으로 수마트라, 자바, 그리고 보르네오로 이어지는 바닷길과 내륙을 통한 인도차이나 반도와의 연계는 멀라까의 새로운 문화변동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멀라까는 화인들의 이주와 중국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해 불교를 비롯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자신의 문화적 환경에 맞게 변조시키면서 자생적인 문화를 창출하였다.

멀라까의 불교문화는 이러한 문화요소의 이동과 교류가 갖는 이질적 특성을 용해하면서 문화적 공존과 교류의 역동성을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문화의 이동과 교류의 상호작용 속에서 멀라까만의 고유하면서도 독특한 불교문화가 형성, 변모해 온 것이다. 불교의 멀라까 유입의 핵심에 멀라까 해협이 존재했으며, 이곳은 동남아 불교 전래의 교두보 역할을 해 왔으며, 이런 의미에서 멀라까는 외래문화의 이동과 교류의 부단한 역사를 형성한 넓은 의미의 해상 ‘교통 네트워크’의 거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15세기 초반부터 중국 남부 복건성 출신 이주자들이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먼저 정착하여 공동체를 이룬 곳이 바로 멀라까였다. 그들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화인사회를 형성하였으며, 그것은 멀라까가 당시 동남아시아 최대의 국제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멀라까 최초의 화인사회는 주로 멀라까의 동북부 지역에 자리잡았다. 이곳이 말레이시아 화인들의 불교가 형성, 발전된 말레이시아 불교문화의 핵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멀라까 불교문화의 특징은 그 성격이 매우 독특하다는 점인데, 그것은 멀라까의 문화적 혼종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 지역을 왕래하던 승려들에 의해 건설된 멀라까의 불교의 특징을 대표하는 사원으로 쳉훙텡(靑雲亭) 사원이 있는데, 일명 차이나타운(Chinatown)이라 불리는 화인 거주지 중심에 위치해 있다. 이 사원의 처마에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다양한 형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이 사원의 중앙에서 참배객들은 종이돈과 향을 태운다. 사원 중심부에는 대웅전이 작은 규모로 설치되어 있으며, 부처를 비롯하여 관우, 보살 등 민간신앙의 특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신들이 혼합되어 있다. 이는 불교와 도교의 혼합을 엿보게 해 주며, 화인사회의 종교적 특성이 다양한 종교의 혼합주의를 특징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를 제시해 준다.

멀라까에 정착한 화인들은 이 사원을 비롯한 여러 불교사원을 찾아 향을 피우고 예배를 드리며, 때로는 희사를 하면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불교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나름대로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다른 문화와의 접촉과정에서 생겨난 문화적 혼종성을 형성, 변모시켰던 것이다.

멀라까 불교의 특성과 의미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문화적 요소는 멀라까의 민족 구성과 그로 인한 독특한 불교문화의 형성과 변화라는 역사적 과정이다. 멀라까에는 서구의 식민지 시대 이후 이곳에 본격적으로 정착하여 생활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뻐라나깐(peranakan) 또는 바바 화인(Baba Chinese)이라 불리는 독특한 민족집단이 있다.

이들은 화인과 말레이인의 문화적 요소들이 적절하게 결합되어 형성된 문화를 지니고 있다. 또한 주로 포르투갈인들과 말레이 혈통이 상호 혼합된 유럽인들이 존재하며, 인도네시아 출신말레이인과 말레이 반도 출신 말레이인이 통혼을 통해 만들어낸 자위 뻐라나깐 문화, 그리고 인도인과 말레이인 출신 조상들이 통혼을 통해 이룩한 인도 무슬림의 문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인도인 바바(Indian Baba) 또는 멀라까 씨띠(Melaka Chitty)라고 불리는 민족집단을 들 수 있는데, 그들은 힌두교 전통을 지닌 인도인 혈통을 지니고 있지만 토착 말레이 문화에 상당 분분 흡수, 통합된 ‘모자이크 문화’(cultural mosaic)라 불리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1403년에 구축된 멀라까 왕국은 오늘날 말레이시아 종교문화의 원형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문화의 요소들을 포함한 외래문화가 수용, 통합되는 과정에서 다종교의 혼합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되어 왔다. 멀라까 해협을 통해 항구로 밀려들어온 다채로운 외래문화는 토착문화와 접촉, 변용되어 멀라까 항구도시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멀라까는 동서문명의 교차로에서 중계무역항으로 성장하면서 독자적이면서도 고유한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냈다. ‘몬순’이라 불리는 계절풍을 이용하여 동서로 무역선이 왕래해 왔다. 멀라까는 그 천혜의 자연을 활용한 문화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해 왔고, ‘'바다의 실크로드’(maritime silk road)의 해상 거점으로서, 불교의 교류와 전파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동남아시아 불교문화의 교차로라고 불릴 만하다.

4. 나오며

앞서 여러 차례 지적한 바와 같이, 멀라까는 원래 말레이 반도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지만, 역사적으로 동서양의 중계무역을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부터 항구도시로서의 특성이 가미되어 세계에서 가장 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된 도시로 성장, 발전하였다. 16세기 초 멀라까에서 무역을 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출신지에 대해 언급한 한 저서에 따르면, “그 항구에서는 84개의 언어가 제각기 구사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당시 멀라까에서는 이집트인, 아라비아인, 이디오피아인, 페르시아인 등 62개국의 상인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멀라까의 항구도시지배자는 베네치아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당시 멀라까의 해상 무역에서의 영향력과 권한은 막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멀라까는 인도양과 멀라까 해협, 그리고 남중국해의 도서지역에서 다양한 지역 출신의 상인들이 모여 교역 거래가 이루어지고 부가 축적되었으며 불교를 비롯하여 이슬람, 힌두교, 도교, 유교 등의 각종 종교가 이곳을 통해 전래되었다. 멀라까의 불교문화는 이러한 다양한 문화와 정보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의 거점뿐만 아니라 해외 상인과 무역 디아스포라의 거점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형성, 변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문화가 상호 연결되는 중개지역으로서 외부세계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기능을 수행해 온 멀라까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국제교역항으로서, 말레이시아 화인의 불교문화의 특징과 변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역사문화적 유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멀라까의 현대 도시문화적 특성은 무엇보다도 불교문화의 포용성에 기반을 둔 다문화간 조화에서 쉽게 발견된다.

1992년 멀라까는 말레이시아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말레이시아의 역사도시로 명명된 곳이다. 다민족, 다종교사회로서의 특성이 잘 보전되어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진 멀라까의 도시문화는 고유하면서도 독자적인 종교문화를 형성, 변화시켜왔다. 멀라까 종교문화의 형성과 변모에 큰 영향을 미친 다민족, 다종교의 특성은 외래문화의 수용과 배척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그로 인한 멀라까 불교문화의 정체성 형성은 현재까지 진행중이다.

2007년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멀라까는 관광을 통해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판매하는 행위’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멀라까의 인구구성은 외국인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관광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쳉훙텡 사원과 같은 불교문화 유적들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에 의한 문화의 혼종성을 보여주는 멀라까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관광을 통해 600년의 살아있는 역사의 도시 멀라까의 도시문화가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멀라까가 말레이시아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로 변모하고 있는 것은 말레이 불교문화의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멀라까의 불교문화는 현대 말레이시아 불교문화의 근본 토대를 제공하는 문화적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 화인의 정체성은 고정되거나 동질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라기보다는 교섭이 가능하고 개방적인 성격을 지닌 것으로,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연방정부와 멀라까 주정부의 관광정책은 멀라까의 말레이 문화를 비롯한 여러 민족집단의 문화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그들의 민족정체성이 변화된 문화적 환경 속에서 적절하게 적응 또는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이 구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적 조건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조건은 멀라까 지역을 포함한 말레이시아 화인들의 문화적 혼종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홍석준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문화인류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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