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철 〈동아일보〉 전문기자

살아오면서 참 많은 분들한테 은혜를 입었다.

낳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은혜야 일러 무엇하겠는가. 가르치고 훈육해 주신 스승의 은혜도 잊을 수 없다.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끝없는 이해와 사랑으로 감싸 준 친구들의 우정과, 지인들의 후의(厚意) 또한 잊지 못한다. 정숙한 아내를 내게 보내 주신 처가의 은혜 역시 빠뜨릴 수 없다.

아비 된 기쁨과 보람을 안겨 준 자식들은 또 어떠한가. 사회적 성취와 가족 부양을 가능케 해 준 직장, 그리고 선후배의 보살핌과 격려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나’라는 인간은 결국 수많은 타인들의 은혜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인심이 각박하다는 얘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은 내게 늘 다정했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베푼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내게 되돌려 주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이다.

몇 해 전 어느 수도자한테 들은 얘기다. ‘마땅히 갚아야 할 은혜를 갚지 않으면 내 자식한테라도 빼앗아 가는 게 인과(因果)의 법칙이며, 우주의 운행이 빨라져 과거 3세대 안에만 갚으면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바로 다음 세대에 길흉이 나타난다’는 말씀이다.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불러 놓고 이 말씀을 가감 없이 전했다. 요즘도 아이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신세 갚기’를 강조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예기치 않은 좋은 일이 생긴다면 순전히 본인의 복일 것이고, 혹시라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이는 전적으로 아비가 갚아야 할 신세를 제대로 갚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신세를 질 줄 알아야 갚을 줄도 알게 된다’고 확신한다. 어려울 때 거리낌 없이 도움을 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예기치 않은 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펼쳐진다. 그러므로, 누군가 내미는 손길을 흔쾌히 잡는 것도 인생의 지혜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언젠가 반드시 보은의 기회가 온다’는 사실이다. 돈 많고 권세 있는 사람일지라도 곤경에 처할 때가 있고, 나락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대에 신세를 갚지 못했다면 2대, 3대 후손에게라도 갚을 기회가 반드시 온다.

석가모니께서는 일찌감치 ‘은혜의 인과’를 설파하셨다. 음미할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늘 내가 빈천하거든 베풀지 않았음을 알며,
자식이 나를 돌보지 않거든 내 부모를 내가 편히 모시지 않았음을 알라.
남의 고통 외면하고 악착스레 재물을 모아 자식 주려 하였거든,
일시에 재가 되어 허망할 때 있을 것을 각오하라.
상대는 내 거울이니 그를 통해 나를 봐라.
빈천자 보이거든 나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을 알고 보시하며,
부자를 만났거든 베풀어야 그같이 될 것을 알아라.
가진 자 보고 질투하지 마라, 베풀어서 그렇고
없는 자 비웃지 마라, 베풀지 않으면 너 또한 그러리라.
현세의 고통은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 뿌리지 않고 어찌 거두랴.
뿌리는 부모, 줄기는 남편, 열매는 자식, 부모에게 거름하면 남편 자식 절로 되고
뿌리가 썩어지면 남편 자식 함께 없다.
단출하다 좋다 마라 다음 생에 어디 가나 첩첩산골 외딴곳에 외로워서 어찌 살며
오순도순 화목한 집 서로 도와 만났느니라.
오래 살며 고통 보면 부모지천 원인이고, 불구자식 안았거든 부모 불효 과보니라.
내 몸이다 내 입이다 마음대로 하였느냐 네 몸이 도끼 되고 네 말이 비수 되어 한 맺고 원수 맞아
죽어 다시 만난 곳이 이 세상 너의 부부 너의 자식 알겠느냐.
누굴 원망하고 누굴 탓하느냐, 지은 자도 너였고 받은 자도 너이니라.
오는 고통 달게 받고 좋은 종자 다시 심어 이 몸 받았을 때 즐겁게 가꾸어라.
짜증내고 원망하면 그게 바로 지옥이고 감사하게 받아내면 서방정토 예 있으니
마음 두고 어디 가서 무얼 찾아 헤매는가.
열심히 정진하여 우리 모두 성불하세.’ ■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