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8일 미디어붓다 보도

‘기독교의 약인가 독인가’
종교인들, 도마복음을 겨루다

오 교수 “도마복음은 기독교의 위기 극복 열쇠”
1945년 나가사키 원폭에 버금가는 사건 ‘도마복음’ 발견

예수가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했다는 결정적 증거로, 나아가 극단적으로는 예수교는 불교에 깊이 영향을 받은 한 종파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요한 근거로 불교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도마복음’에 대한 토론회가 지난 5월 8일 오후 신사동 불교평론 <열린논단>에서 저명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를 초청한 가운데 열렸다.

미묘한 주제인 관계로 당연히 많은 지식인들이 신사동 세미나실로 모여들었다. ‘예수의 가르침이 불교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준 도마복음에 대해 기독교 신자인 오강남 교수는 어떤 입장을 보일까? 자칫 그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내용일 수도 있을 것인데 어떤 논리로 그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있을까? 등등의 호기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도마복음은 공관복음(3복음·마태 마가 누가)에 포함되지 않는 복음으로 지난 1945년 12월 이집트에서 농부가 땅을 파던 중 항아리에 담겨진 채 발견된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토마스(도마)에 의해 기록된 복음서다.

1945년에 이집트의 낙 하마디(Nag Hammadi)에서 100년 전 발견됐던 Oxyrhynchus Papyrus의 내용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완벽한 콥틱(Coptic) 번역본이 발견됐다. 이 사본은 서기 340년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콥틱 사본의 서두에 기록된 “이것들은 살아계신 예수께서 이르셨던 비밀의 말씀들이며 디두모라하는 유다 도마가 기록한 것이라”는 글에 근거하여 이글은 도마복음(The Gospel of Thomas)라고 불리게 됐다. 그러나 그 내용이 다른 복음서와는 판이하게 달라서 외경 또는 위경으로 불리며 배척받아왔다. 도마복음서의 기록 연대는 대체적으로 서기 150-200년 경으로 추정한다. 도마복음서는 영지주의적 문서다.

당시(1945년) 이를 발견한 농부들은 혹시 항아리 안에 귀신이나 금이 들어있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다가 용기를 내어 열어본 결과 종이 묶음 책 13뭉치가 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 책자의 가치를 몰랐던 그들은 일부는 불쏘시개 등으로 사용했다. 이 뭉치가 돌고 돌다가 나중에 학자들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곧 금보다 수천 배는 더 귀한 가치를 지닌 복음서임이 밝혀졌다.

도마복음을 통해 1600만에 기독교의 밀의적 전통 찾다

4복음 이외에 거의 모든 복음서들이 폐기 된 후 무려 1천6백년만의 일이다. 아마도 이 도마복음은 이집트의 오래된 수도원 관계자들이 폐기하는 것이 너무나 아깝고 가슴이 아파 항아리에 묻어 후대에 전하고자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복음서가 발견되자 당시 학자들은 같은 해에 일어났던 일본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에 버금가는 일대사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도마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은 공관복음에서처럼 ‘나를 따르라, 믿으라’고 하는 분이 아닙니다. ‘깨쳐라, 깨달아라, 하나님(천국)은 너의 가슴에 있다는 것을 알라’는 분이지요. 도마복음 전체 114절 가운데 90회 이상 깨침(깨달음)에 대한 언급이 나올 정도입니다. 사실 이런 가르침은 불교의 가르침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돕니다.”

오강남 교수는 도마복음이 하나님과 사람의 차별성을 강조한 공관복음과는 달리, 하나님과 사람의 동일성을 강조한 밀의적(密意的) 복음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현교적(엑소테릭·exoteric)인 부분과 밀교적(에소테릭·esoteric)인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도마복음은 그 가운데 밀의적, 심원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부분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마복음의 출현은 표피적이고 대중적인 현교적 가르침에만 치우쳐 있었던 기독교에 밀의적 부분도 있었음을 보여준 획기적인 사건이며, 발견이라는 것이다. 결국 오 교수는 “도마복음의 발견으로 기독교는 표피적이고 물질적이고 기복적이며 신은 나와 다른 존재라는 낮은 단계의 신앙에서 보다 높은 단계의 신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도마복음의 출현에 의미를 부여했다.

오 교수는 불교에도 현교와 밀교가 있고, 힌두에도 우파니사드와 같은 에소테릭(밀의적)한 가르침이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기독교에도 밀의적 레벨이 본래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1600년간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며, 기독교가 그동안 현교적 종교로 만 내려오며 기독교내에서 신비주의적 전통이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교와 상통되는 부분 다수…그러나 텍스트 해석이 중요

그렇다면, 기독교의 밀교적 교의를 담고 있는 도마복음 속에는 불교와 유사한 혹은 불교와 소통할 수 있는 비밀이 정말로 숨겨져 있는 것일까.

오 교수는 예수가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했다는 주장들, 또 예수는 역사적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들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예수가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오 교수는 “중요한 것은 텍스트(복음서)이고, 그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라며 “예수의 실존 여부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도 실존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이 주는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심청전에서 그 가르침이 중요한 것이지 심청이 실제인물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주장했다.

“도마복음은 살아계신 예수님의 말씀이고 도마가 받아 적은 비밀의 말씀”이라고 밝힌 오 교수는 “이제부터라도 기독교는 하나님의 능력과 인자하심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마복음은 기독교가 불교 등 깨달음의 종교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이자 맹목적인 신앙만을 강조하는 현대 기독교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오 교수의 판단이다.

도마복음은 현대기독교의 부족한 부분 채워줄 수 있는 열쇠

오 교수는 “원래부터 기독교에는 신비주의적 전통이 있었고, 이는 현대 기독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즉 신과 나를 차별적인 대상으로 보는 낮은 단계의 신앙을 극복하고 신과 나의 동질적 전통을 되찾을 수 있는 키워드가 바로 도마복음 속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유럽 등 서구에서 기독교가 쇠퇴하고 있는 것은 표피적 신앙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역설한 오 교수는 “일본 스즈키 순류 선사 밑에서 선을 수행한 미국인 리처드 베이커(샌프란시스코 선원 주지)가 도마복음을 전문으로 하는 프린스턴 대학교 일레인 페이젤스 교수와 도마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제가 도마복음을 미리 알았더라면 구태여 불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고백에 한국 기독교계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또 “20세기 가톨릭 최고의 신학자 칼 라너도 ‘21세기 그리스도교는 신비주의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면서 “신비주의의 민주화, 신비주의의 대중화·일상화·생활화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오강남 교수는 “종교의 구분은 동서(東西)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신앙의 깊고 얕음(深淺)의 문제이며, 어느 종교에서든 깊이 들어가면 종교의 이름이 점차 의미가 없어지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고 역설했다. 도마복음은 바로 이런 점을 잘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는 것이다.

오강남 교수는 한국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 것은 ‘나를 믿고 따르라’는 가르침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여기서의 ‘나’는 초월된 나, 불교의 불성에 비교되는 나 또는 천상천하유아독존에서의 나, 동학의 시천주나 인내천 사상에서의 나를 의미한다는 것을 한국 기독교가 받아들일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국 등 교포사회에서 한국 교민들 중 기독교를 믿는 분포가 너무 많은 것은 수치”라면서 “다른 종교와는 달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열심히 믿으면 믿을수록 한국적인 것과 멀어지는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이브한 믿음 존중하지만 더 중요한 것 믿음도 자라야 한다는 것

오 교수는 ‘모든 종교를 하나의 원리로 환원시키는 것은 왠지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이정배), ‘현교와 밀의적 종교를 우열의 문제로 제시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김상일), ’어린아이나 시골 할머니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믿음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한 젊은 목사)는 등의 지적에 대해 “나는 오랜 전통을 가진 큰 종교들을 나는 백화점에 비유하고, 신흥종교를 전문점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큰 종교는 그때그때 그 사람의 수준에 맞는 가르침을 골라서 제시해줄 수 있는 다양성의 강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린 아이의 나이브한 믿음도 존중돼야 하지만 그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분명한 것은 믿음도 자라나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세계적인 비교종교학자로 명성이 높은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학 명예교수의 발제라서 그런지 ‘도마복음과 동양철학’이란 주제의 이날 토론회에는 저명한 신학자들 및 불교학자, 불교계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기독교계에서는 드물게 종교다원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김경재 목사, 오강남 교수와는 반세기에 걸쳐 학연을 맺고 있는 한신대 철학과 김상일 명예교수, 기독자교수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다석 유영모 선생 전문가’ 이정배 감리교신학대 교수 등 내로라하는 기독교계 학자와 현직 소장목사들이 동참했다.

불교계에서는 허우성(경희대), 이도흠(한양대), 김기수(전남대), 김광식(부천대), 석길암(금강대), 윤창화(민족사 대표), 김나미(종교학자), 유자효(국제펜클럽 한국지부장), 홍사성(불교평론 주간), 백이운(시인)씨 등이 눈에 띠었다. 그밖에도 민족종교 관계자, 고등학교 교사, 대학원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토론회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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