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26일 미디어붓다 보도

'마음은 뇌의 기능' 주장에 自由意志는 어떻게 설명하나?
뇌과학 결과에 대한 선불교의 응답 ‘주목’

 

'마음은 뇌의 기능' 주장에 自由意志는 어떻게 설명하나? 뇌과학 결과에 대한 선불교의 응답 ‘주목’

강병조 교수.

종교가 과학의 우의에 있던 시대가 지난 지는 오래다. 이의 상징적 사건이 기독교가 천동설을 포기하고 지동설을 받아들인 것이다. 나아가 지난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창조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진화론을 수용했다. 과학에 종교가 굴복한 좋은 예이다.

과학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불교라고 예외일 수 없다. 아직까지 불교는 가장 과학적 교리를 가진 종교의 자리를 굳건히 해왔다. 과학의 발전이 곧 불교의 과학성을 입증한다는 믿음을 불자들은 가지고 있다.

한국불교의 특징은 선불교(禪佛敎)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뇌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 전통적인 선불교가 과학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도전의 핵심은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마음을 뇌의 기능’이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그들의 말대로 마음이 뇌의 기능이라면 산중에서 불철주야 ‘이 육체를 움직이는 주인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들고 참선수행을 하는 것이 헛고생일 수도 있다. 뇌의 기능이 마음이라는 뇌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사실로 입증된다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이런 민감한 주제를 놓고 발제자 강병조 의대 교수를 포함, 교수 등 불교학자, 불교계 지식인들 20여 명이 24일 저녁 강남 신사동 열린논단에 모여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강 교수는 이전에도 ‘마음이 뇌의 기능’이라는 주장을 뇌과학 연구 결과를 통해 주장한 바 있다. 그의 발제는 이날도 예상대로 부처님이 그토록 경계했던 단멸론이나 유물론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호된 비판을 받았다.

강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마음은 뇌와 몸의 통합적 활동을 통해 발현된다”고 거듭 주장했다. 의식, 정서, 욕구, 기억 등의 영향하에 바깥 환경의 외적 자극과 신체 내부의 내적 자극을 받아들인 다음, 뇌의 인지활동을 거쳐 행동으로 표출하는 일종의 ‘정보처리 과정이 마음’이라는 것이다. 유물론적 입장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그는 “이러한 과정으로서의 마음은 실체를 가진 물질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거침이 없었다. 현대과학에 대한 확신, 현대과학과 불교의 전통적 교리해석이 차이가 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해온 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소신으로, 그는 얼굴을 붉힐 정도의 거친 논박에도 초지일관한 자세를 견지했다.

그가 주장 몇 부분을 더 살펴보자.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영혼을 아뢰야식(제8식)이라고도 한다. 《해심밀경》에서는 마음 중에서도 잠재의식이고 무의식인 제8식 아뢰야식만이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이며 마음이라는 유일한 실재를 차츰 절대화시켜 나간다. 그리하여 인간에게는 초자연적이고 영원한 절대정신인 불성(佛性)이나 여래장(如來藏)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상에는 오직 마음(정신, 영혼)만이 유일한 실재다. 그리고 그 밖의 물질적 대상은 공(空)’이라는 유식학파의 사상은 관념론이고 유심론(唯心論)이다. 이 사상은 붓다 탄생 수백 년 전부터 고대 인도 사회를 지배해 온 철학이며 절대적 관념론인 《우파니샤드》의 사상에 현혹된 후대의 대승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강 교수는 영혼의 문제는 수천 년 전부터 철학의 주제가 되어 왔으나, 뇌의 기능을 간접적이나마 볼 수 있게 된 최근 20~30년 사이에 사실상 결론이 내려졌다고 단언한다. 현대의학(특히 정신의학) 뿐만 아니라 현대철학에서도 마음이니 정신이니 영혼이니 하는 것은 뇌의 기능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현대의학의 연구결과가 2,600년 전 석가모니에 의해 파악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통찰”이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강 교수의 주장을 조금 더 들어보자.

“무아와 윤회는 모순이 아닌가? 이 윤회를 현대 과학에 맞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윤회는 실체로서 파악해서는 안 되고 기능으로 파악해야 한다. 윤회는 심리적 윤회로 파악해야 한다. 죄를 지으면 이 세상에서도 마음이 괴롭다. 그것이 지옥이고 그 삶이 짐승 같은 삶이다. 이것이 심리적 육도윤회이다. 실체로서 윤회를 파악하려면 에너지의 흐름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던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로 변한다. 인간의 시체를 개가 먹으면 개의 에너지로 변하여 개가 된다. 사과 밭에 거름으로 주면 사과 에너지로 변하여 사과가 된다. 우주 전체로 보면 에너지의 증감은 없다. 즉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다만 에너지의 흐름만 있을 뿐이다.”

제임스 오스틴의 논문(1998년 MIT출판사가 《선(禪)과 뇌(Zen and the Brain)》라는 책으로 출간) 등, 서구 현대의학의 성과들을 인용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간 그는 독특한 불교관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을 우리 불자들이 다시 깨달아야 한다. 즉 욕심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없애려면, 자연이 기능하는 원리(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원리)를 깨달아 욕심을 적게 부리며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된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의 진리를 미리 알고 바르게 살아서, 편안히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열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불교는 종교인 동시에 철학이요, 과학이며, 심리학이고 정신수양의 도(道)다.”

강 교수는 “인간 싯다르타는 생존 당시 연기(緣起), 무아(無我), 사성제(四聖諦), 삼법인(三法印), 팔정도(八正道), 공(空)사상, 중도(中道) 등 아주 과학적인 깨달음을 얻었다”며 “원래의 석가모니의 과학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한국불교 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며, 한국불교는 이제 비불교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석가모니의 깨침과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참석자들의 격한 반론이 터져 나왔고, 강 교수는 간단하게 답했다. “부처님을 인정하지 않는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되는 발제”라는 감정적인 비판(전종식 대승기신론연구회장)으로부터, 강 교수의 주장이 부처님이 경계했던 유물론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등의 교리적 지적(참석자 다수)이 잇따랐다.

“마음이 뇌의 기능이라면 각자(覺者)든 불각자(不覺者)든 죽으면 끝이므로 차이가 없다는 말인가?”(방경일)

“마음이 시냅스의 과학적인 작용에 불가하다면, 붓다가 굳이 출가교단을 만들면서까지 교단을 유지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방경일)

“사람이 죽으면 에너지가 흐른다니, 도대체 무엇이 흐른다는 말인가?”(이제열)

“유체 이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동국대 대학원생)

“불교를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노력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그렇다면 마음 중에서 ‘자유 의지’와 ‘동기’는 보통의 마음과 신경회로에서 어떻게 다른가?”(허우성)

“뇌과학과 불교의 마음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뇌가 마음의 산실이라면 ‘자유의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지 않나?”(허우성)

“발제자는 윤회를 부정하고 있는데, 의식의 흐름이 세포와 세포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바로 윤회가 가능하다. 자유의지가 있다면 윤회는 가능하지 않은가?”(김성철)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강 교수는 의학자답게 간단하게 답변했다.

“각자든 불각자든 죽으면 같다. 왜? 물질이 죽으면 정신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뇌의 기능이 마음이라는 현대의학의 결과를 유물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해다. 뇌는 자주 바뀐다. 살아있는 뇌는 물질만이 아니고 새로운 것이 생기는 창발적 존재다. 부분의 합이 전체는 아니다. 뇌세포를 다 모았다고 뇌가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뇌과학은 유심론도 유물론도 아니다.”

“사후에 흐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에너지의 흐름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유체이탈은 거짓말이라고 본다.”

“자유의지를 담당하고 있는 신경회로가 따로 있다. 대뇌피질 밑에 있는 신경회로가 그것이다. 이 신경회로를 차단하면 자유의지는 생길 수 없다.”

“철학에서 말하는 자유의지를 뇌과학에서 어떻게 설명하는냐는 참 어려운 문제다.”

한편, 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다. 윤창화 민족사 사장은 “강 교수의 뇌과학을 통해 불교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자체가 불교학계에 대단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불교학계가 언제까지 옛 문헌에만 따지고 있을 것인가? 옛 불교문헌들 가운데 오류가 얼마나 많은가. 또 ‘윤회를 인정하지 않으면 불교가 아니다’라는 것이 어떻게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윤회는 불교이다, 아니다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윤회는 불교 이전 힌두에서 다 나온 것이 아닌가?”라며 강 교수의 시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

‘열린논단’을 주관하고 있는 월간 <불교평론>의 홍사성 편집인은 “현대과학에서 혹시라도 불교의 기존 교학적 해석과 다른 부분이 제기된다면,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이 호교적(護敎的) 입장에 서고자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그러나 ‘열린논단’은 모든 것을 열어놓고 고정관념 없이 토론을 벌이는 장이며, 어떤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 자리도 아니”라고 말했다. 홍 편집인은 “호교적 입장이 지나치면 비불교적인 것이 된다”며 “광대무변한 불교의 특성답게 모든 것을 열어놓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문화를 열린논단이 선도해 정착시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병조 교수는?

1968년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1973년 신경정신과 전문의. 1975년 의학박사(경북의대). 1976년부터 경북대학교 의학대학원 정신과 교수(현). 1983~1984년 미국 뉴욕 앨버트 아인슈타인의대 정신과 방문교수. 1995~1997년 대한정신약물학회장, 1998~2000년, 대한생물치료정신의학회장, 2007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회장 등 역임. 의대 재학 시절 불교학생회를 창립하고 1998년 경북대학교병원 불자회와 종교 간화합을 위한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연구논문으로 Can the expression of histocompatibility antigen be changed by lithium? 외 130여 편과 《뇌 과학과 마음의 정체》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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