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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철학 포함하면서 한계 넘어선 '종교' / 이학종
2009년 4월 14일 미디어붓다 보도
[0호] 2009년 04월 14일 (화) 이학종 미디어붓다 대표

   
열린논단 ‘불교는 철학인가, 종교인가’ 토론
박병기교수 “먼저 철학의 역할 수행을”

열린논단 ‘불교는 철학인가, 종교인가’ 토론 박병기교수 “먼저 철학의 역할 수행을”

‘불교는 철학인가, 종교인가’라는 어쩌면 해묵은 주제에 대한 토론이 열렸다. 지난 4월 10일 강남 신사동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열린 토론회는 이 주제가 여전히 불교계 안팎에서 개운하게 해결되지 않은 테마임을 재삼 확인해주었다.

이날 발제를 한 박병기 교수(한국교원대)의 말마따나 ‘불교는 철학인가?’라는 제목은 사실 식상한 느낌을 주는 주제일지도 모른다.

“서양 철학이 세계 철학계의 주도권을 확보한 이래로 오랜 시간동안 ‘불교는 철학인가, 아니면 종교인가’ 라는 주제가 계속적으로 다루어져 왔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관점에 따라 철학 또는 종교 한 분야로 기울거나 ‘철학이기도 하고 종교이기도 하다.’는 두루뭉실한 답변에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박 교수가 이 주제를 화두(話頭)로 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당연히 그런 답변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쉽게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라 이 시대 화두로서의 성격을 간직하고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불교에 대한 철학 또는 종교 논쟁은 최소한 두 가지 개념에 관한 논의를 요청한다고 밝힌다. 불교에 대해서는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비교적 명쾌한 정의가 가능하지만, 이 붓다가 고대 인도사회에 존재했던 역사적 존재자인 고타마 붓다에 한정되는지, 아니면 대승 불교권에서 일정한 신격화의 과정을 거친 상징적 존재자로서의 붓다를 가리키는지에 따라 각각 다른 외연(外延)뿐만 아니라 내포(內包)를 달리하게 될 수도 있으므로 문제가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그 가르침의 성격이 이른바 철학적인 것인지 아니면 한 종교 지도자의 종교적인 것인지 하는 초점에 따라 각각 다른 답변 또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의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불교에서 자주 인용하는 ‘자신과 가르침을 등불로 삼고 수행하면 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불교적 믿음의 본질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과연 서구적 종교의 개념 속으로 쉽게 포함시킬 수 있겠는가를 반문했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서구종교들은 유일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되는 종교들인데, 불교는 창립자인 고타마 붓다의 신격성(神格性)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하지 않아도 성립될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한다면 최소한 그러한 종교의 범주에는 쉽게 넣기 어렵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4월 10일 열린 열린논단. 이날 '불교는 철학인가, 종교인가'를 주제로 참석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박 교수는 이 대목에서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철학인가?”리라고. 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도 두 가지 정도의 논의가 추가되어야만 답을 모색해갈 수 있다며, 우리는 먼저 종교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물어야 하고, 두 번째는 과연 초기불교만을 불교의 외연으로 삼을 수 있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축이 자력(自力)에서 타력(他力)으로 옮겨왔고, 우리 불교에서도 이미 원효부터 타력적인 신앙의 세계를 열어놓는데 기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그런 불교들을 제외한 초기불교만을 온전한 의미의 불교라고 주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박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타력신앙을 받아들인 대승불교 이후의 흐름은 종교이고, 그 이전의 초기불교는 철학인가?”

“이쯤해서 우리는 다시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더 이상 뒷전에 놓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불편함을 느낀다”고 고백한 박 교수는 “‘도대체 우리에게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철학이 어떤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그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와 같은 학문적 차원의 논의와 함께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묻는 다층적 성격의 질문”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일차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정의한 불교는 고타마 붓다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서 시작해서 그것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반성적 성찰의 과정이라고 해석하는데 무리가 따르지 않으므로 불교는 당연히 철학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세계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허용되는가 하는 점에서 생긴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초기 불교적 연기관의 경우에는 그러한 성찰을 허용하는 전제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윤회를 바탕으로 삼아 다음 생에서의 태어남을 믿는 종교적 세계관도 분명히 불교적 세계관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과연 불교가 철학적 성찰의 과정을 온전히 허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지는 생각해볼 문제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한국 불교의 현실 속에서 신행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는 기복행위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불교가 아니라고, 아니면 진정한 불교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결론적으로 “불교가 고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들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또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일정한 믿음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철학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온전한 철학이라면 의미와 가치의 문제를 배제할 수 없고 그것은 곧 고유한 세계관에의 지향과 그 세계관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는 우리의 철학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불교는 철학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그 철학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한다는 명제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불교는 자신의 고유한 세계관을 넓은 범위와 의미에서 포기하지 않는, ‘철학을 포함하면서 동시에 넘어서는 종교’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박 교수는 불교는 일차적으로 철학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일상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의 계기와 과정을 제공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강하게 견지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비판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게 하는 것이 우리 불교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후에는 불교적 세계관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도 그 세계관 자체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는 자세를 보여줄 때 우리 불교는 비로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지향성(指向性)을 제시하는 철학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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