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레고리 쇼펜의 학문 세계

1

전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변화’를 구호로 내건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를 선택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예고하고 있다. 변화란 본질적으로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였던 기존의 가치와 관념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성취한 모든 업적과 결과물들은 한편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평가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그레고리 쇼펜(Gregory Schopen)은 불교학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기존의 관념과 연구 결과들에 대한 재고와 연구 범위와 방법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학자이다. 아직도 종이와 펜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컴퓨터 자판이 익숙하지 않은 이른바 컴맹으로 분류된다는 믿기지 않는 그에 대한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그가 불교학계에 외치는 ‘변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그레고리 쇼펜의 학문 세계는 불교학 연구에서 교리나 교학을 위한 문헌학 연구가 주류를 이루는 불교학계의 한계에서 출발한다. 발표하는 논문마다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새로운 시각을제시하는 그는, 인도불교사를 연구해 온 기존의 학자들이 유지해 왔던 일정한 연구 형태를 비판한다.

특정한 연구 자료 문헌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만 집중하고 그에 따라 도출되는 결과만을 수용하는 기존의 연구 형태는 불교가 인도 역사에서 종교로서 일상생활에서 실천되었던 모습을 표현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연구 방향은 논리적 근거가 불충분하며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경도된 불교학 연구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쇼펜은 인도불교사의 지나간 역사의 흔적으로만 치부되어 왔던 다양한 불교 유물들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단편으로 여러 곳에 부분적으로 산재하고, 때로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유물들이 불교학 연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해석함으로써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쇼펜은 고고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긴 역사 속에서 특정한 지역에 부분적으로 존재하였던 구체적인 자료들을 해석함으로써 문헌 연구에서 도출된 일반화된 기존 관념의 허구성을 지적한다. 일상에서 실천되었던 불교가 문헌에 기록되었던 불교와는 어떻게 다른지 그 간극을 지속적으로 증명한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쇼펜을 불교학 연구에서 단순히 연구 범위의 외연을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연구 방향을 전환시킨 의미 있는 학자라는 평가를 받게 한다.

쇼펜은 지금까지 《뼈, 돌 그리고 불교 승려(Bones, Stones and Buddhist Monks: Collected Papers on the Archaeology, Epigraphy and Texts of Monastic Buddhism in India)》와 《불교 승려와 경제 문제(Buddhist Monks and Business Matters: Still More Papers on Monastic Buddhism in India)》 그리고 《인도 대승 불교에 대한 허상과 단상(Figments And Fragments Of Mahayana Buddhism In India: More Collected Papers)》 등 세 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쇼펜의 책들은 하나같이 결코 읽기가 쉽지 않다. 모든 책들이 그동안 발표되었던 50편에 가까운 논문들을 연구의 시대와 주제에 따라서 재분류하고 첨삭한 것이다.

 그의 논문 한 편을 읽기 위해서는 수많은 각주의 터널을 지나야 하고 풍부하게 인용되는 일차 문헌의 언어들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만 한다. 그는 지금까지 발표된 논문들을 통해서 산스크리트, 티베트어, 팔리어는 물론이고 한문 경전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도 탁월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더욱이 현재까지 서구 불교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가장 뛰어난 학자 중의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는 쇼펜의 학문 세계는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거장의 걸작들에 다가가려는 초학자(初學者)들에게는 각고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2

1997년에 처음 출간 된 책 《Bones, Stones, And Buddhist Monks》는 1984년부터 1992년까지 그동안 발표되었던 12편의 논문들을 묶어 낸 것이다. 이 책은 이후에도 전개되는 쇼펜의 학문적인 성향을 잘 파악할 수 있다. ‘뼈와 돌과 불교 승려’라고 번역될 법한, 무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제목만큼이나 그의 논문들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의 핵심 주제어인 ‘승려’ 또는 ‘승가의 생활’을 고고학적 자료와 비문들과 문헌들을 통하여 고찰하고 있다. 이 책에서 쇼펜의 대부분의 논문들은 일정한 형식에 따라서 전개된다. 먼저 그는 불교학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수많은 현대 학자들의 주장을 재진술한다.

베허르트(Heinz Bechert), 곰브리치(Richard Gombrich), 바로(Andre Bareau), 데 종(J.W. de Jong), 라모트(Etienne Lamotte), 푸생 (Louis de la Valle Possin), 레비(Sylvain Levy), 데이비스(T.W. Rhys Daivds), 올덴버그(Oldenberg) 등 저명한 불교학자들의 연구의 성과와 주장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리고 각각의 주장에 대하여 고고학과 연구에 바탕한 다양한 문헌 외적인 자료들을 통하여 구체적이고 적절한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기존 연구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첫 장의 ‘인도불교 연구에서 고고학과 기독교적 가정들(Archaeology and Protestant Presuppositions in the Study of Indian Buddhism)’은 기존의 인도불교학 연구의 문제점이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쇼펜은 새롭고 독특한 시각으로 잘 드러낸다. 초기에 인도불교를 연구하는 서구의 학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연구 자료는 두 가지가 있었다.

비교적 접근하기도 쉽고 인도불교에서 출가자와 재가자의 생활양식과 믿음의 형태를 부분적일지라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고고학 자료와 다양한 비문 자료들이다. 또 다른 형태는 대부분 연대 미상이며 오직 사본 형태로만 존재하는 문헌 자료들이다. 편집되고 경전으로 간주되어 신성하게 여겨진 이 자료들은 작고 일상적인 불교 사회가 믿고 실천하기를 소원했던 것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곧 불교도들에게 이상적인 사상을 주입시키려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와 같은 두 종류의 연구 자료들이 거의 동시에 서구의 학자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러나 초창기 불교 학자들의 자료 선택 기준은 역사적인 증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선입견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것은 인도 불교 연구에서 비문이나 고고학 자료의 위치를 결정지었고, 반면 문헌 자료들은 초기부터 불교 연구 과정에서 중심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쇼펜은 저명한 불교 역사학 연구가인 데 종(De Jong)이 19세기 불교학 연구에서 빛나는 선구자라고 평가한 뷔르누프(Burnouf)의 주장을 재 서술한다. 뷔르누프는 인도 불교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네팔의 산스크리트 문헌들과 스리랑카의 팔리 문헌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데 종은 뷔르누프는 불교학 연구에서 문헌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고 평가하면서 기존의 연구 방법론을 계승하였다. 뷔르누프의 저서의 서문에 소개된 부처님 당시의 인도 사회, 붓다의 교리와 그 이후의 전개 과정, 그리고 카스트 제도와 불교와의 관계 등은 모두 문헌 연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증명한다고 데 종은 평가한다.

그들은 소승과 대승불교가 생산한 풍부한 문헌 자료만이 불교 연구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불교 예술이나 비문 그리고 동전들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어디까지나 문헌적 근거가 뒷받침해 줄 때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므로 불교 연구의 토대는 문헌 연구에 있다. 데 종의 이와 같은 주장은 상징적이기도 하지만, 그 내부에 내재되어 있는 불교학자로서의 시각과 선입견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주기도 한다. 일단 그는 고고학이 ‘역사의 부수적인 것’이라는 기본 관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고고학 자료들은 오직 문헌을 통해서만 온전히 이해되고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고고학은 문헌을 뒷받침하고 확대하는 것에 의미가 있으며, 문헌에 의해서 지지를 받고 그 의미가 확충되어야만 한다. 고고학 자료는 독립적인 증거물이 될 수 없으며, 문헌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디까지나 무용한 자료일 뿐이다. 쇼펜은 전체적으로 19세기 초의 뷔르누프의 불교사 연구에 대한 견해와 20세기 후반의 데 종의 연구 관점이 동일 선상에 있다고 한다.

문헌 자료를 불교 연구에서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견해는 불교 문헌들이 실질적으로 불교 승려뿐만 아니라 재가자들에게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한 시각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 문헌들은 대중에게 널리 유포되어 학습되었을 것이며,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염두에 둔 시각이다. 그러나 쇼펜은 이와 같은 가정을 지지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나 논증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문헌들이 경전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인도에서 다양한 형태의 구술 문헌들은 항상 특정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 목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 처럼 ‘역사’적이지 않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형태의 문헌들에서 드러나는 주장들은 그럴 듯한 사실들을 여러 각도에서 필요에 따라서 퍼즐을 맞추듯이 조합하여 분석하고 이상적으로 추상화된 역사적 사실을 성립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인도 불교학자들은 문헌들을 통해서 승가의 법도와 이상적인 불교의 모습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그것만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이러한 연구 행위는 고고학과 비문들의 자료에 대한 연구 가치나 의미를 모호하게 한다. 다시 말해서 불교의 다양한 유물들은 오직 문자로 기록되어 남겨진 ‘역사’의 범위 내에서만 이해되어야 하고, 또 존재하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한 문헌들을 ‘지지하고 뒷받침’하여야 한다는 논리 구조이다.

쇼펜은 이와 같은 연구 경향이 불교학 연구의 초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승려들이 사유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대한 학자들을 연구는 이와 같은 경향을 잘 보여 준다. ‘탁월한 출세간의 종교’로 표현되는 불교와 승가의 제도와 무소유는 불교의 특성을 보여 주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쇼펜은 출가와 무소유로 상징되는 불교의 승려들이 금전과 물질적의 기부자였음을 산치 대탑의 비문을 통해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비구 비구니가 주요한 기부자로 이름이 명시된 산치의 비문들은 승려에게는 사유재산의 소유를 금지했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뵐러(Buhler)는 기원전 1~2세기 전후의 ‘산치의 보시가 기록된 비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다르다.

그는 비구와 비구니들이 보시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해 놓은 비문을 분석함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엄청난 액수의 보시의 양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교 승려들은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보시의 전부를 시주를 통해서 얻었을지라도 보시의 목적은 재가자들이 신실한 불교신자가 되는 것이므로 그 행위는 정당하다고 분석한다.

산치 비문보다 역사적으로 앞서 제작된 바르후트 비문에 대해서 루더스(Luders)도 동일한 시각을 전개한다. 그는 승려는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구 비구니들이 보시를 하였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지만, 아마도 그것들은 친지나 가족들에게서 시주받은 돈이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유사한 예는 또 있다. 나가르주나 콘다의 롱후스트(Longhust)가 발굴한 사원의 주변에는 2세기 남인도에서 사용하였던 작은 동전들이 발견되었다. 이와 함께 납 덩어리와 동전들과 같은 크기의 동전을 주조하는 틀도 함께 발굴되었다. 그러나 롱후스트는는 단순히 승려들이 직접 동전을 주조하여 사용하였다고만 언급한다. 그러나 그는 당시 인도 사회에서 동전 주조는 국가와 국가의 힘을 빌린 길드(guild)들만 관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쇼펜은 나가르주나 콘다 사원의 승려들은 국가의 임명을 받고 무역이나 상업에 관여하였거나, 혹은 화폐를 위조하는 것에 관여하였을 두 가지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있는지 아직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어느 경우라도 불교 승가의 역사에 매우 독특한 경우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기원전 1~2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산치와 바르후트(Bharhut)의 탑들에 새겨진 비문들은 보시자의 이름을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문들은 단 하나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순히 누구 누구의 보시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즉 보시자의 종교상 직책과 이름만을 기록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보시라는 구체적인 이유는 서술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라모트(Lamotte)는 이 시기에는 엄격하게 붓다의 정신을 따르고자 하는 정통 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보시자들은 그들의 행위를 통하여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증지부 아함경(Anguttara)에 기록된 다섯 가지 복덕을 받고자 하였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쇼펜은 수많은 비문들 중에서 단 하나를 제외하고는 어느 곳에도 보시의 동기나 목적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산치와 바르후트나 산치 주변에 증지부 아함경이 유포되었다는 증거도 없음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라모트는 비문의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보시자들의 의도와 그 스스로도 확인할 수 없는 경전의 증거를 연결시킨다. 이와 같은 시각은 경전에 등장하는 구절들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진실이라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그러나 만약 라모트의 가정이 증거의 부재로 인하여 가능한 주장이라면, 이는 논리적으로 상반되는 증거의 현존에 의해서도 번복될 수 있다고 쇼펜은 반박한다. 라모트는 계속하여 보시의 공덕과 행위의 결과에 대한 확신, 즉 업설에 대해서 의심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곧 실재 생활에서 보시자들의 행위가 문헌에서 서술하고 있는 불교 교리와 일치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쇼펜은 불교 공동체나 힌두교 공동체에 대한 최근의 인류학 연구 자료들을 살펴보면 이와는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 있음을 서술한다.

업설이 유포된 곳에서 사람들의 행위는 매우 제한적이며 구체적인 상황에 따른다. 사람들의 행위와 동기는 고전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업설과는 동일하지 않으며, 경전적 교리와는 다른 형태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쇼펜은 고고학적인 자료들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계속되어 왔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라모트가 지적한 바루흐트와 산치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수많은 비문들 중에서 단 하나 예외적으로 유일하게 비문에 보시자의 보시의 이유를 서술한 경우도 있다. 사하라키타(Sagharakhita)는 그의 보시의 동기를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하여라고 서술하고 있다. 사하라키타의 보시의 동기는 라모트가 지적하듯이, 선한 행위에 대한 결과를 바란다는 경전에 기술되어 있는 불교 교리와는 거리가 있다. 고고학적 자료인 비문의 증거는 기원전 3세기 전후의 불교의 업설과 보시의 교리가 어떻게 실행되었는가를 추적할 수 있다. 라모트의 경전 해석을 바탕으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즉 보시자는 자신의 보시의 공덕이 부모나 다른 이를, 더 나아가 모든 중생에게 전이되기를 소원하였다.

라모트를 비롯한 기존의 불교학자들의 시각은 오직 문헌을 통해서 이해되는 불교만이 참된 불교이고 이상적인 불교라는 전제를 내포한다. 오직 문자로 쓰인 경전을 통해서만 불교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으며, 출가자와 재가자들 사이에서 행해졌던 다양한 행위와 대화 등은 참된 불교가 아니라는 시각이다. 실질적으로 행해졌던 행위의 관찰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인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현실에서 구체적인 종교적 행위들이 우리에게 종교적으로 바른 인식을 줄 수 없다는 이러한 시각은 고고학의 위치를 함축한다. 고고학적 증거와 자료들은 불교도들이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설명하지만, 참된 종교나 이상적인 종교가 무엇인지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쇼펜은 서구의 불교 연구자들이 경전 이외에도 다양한 자료들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고 연구할 수 있었음에도, 외면하였던 사실에 주목한다. 어떠한 이유로 무엇 때문에 서구 불교학자들은 오직 문헌의 이해와 해석을 통해서만 인도불교를 연구하였는가.

왜 그들은 불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되고 실천되었는지 주목하지 않았는가. 쇼펜은 현실과 괴리된 이러한 시각과 연구 방법론은 서구 사회를 지배하는 기독교, 기독교 연구 방법론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불교학 연구에 흔히 청교도적 정신이라고도 불리우는 ‘기독교적 가정(Protestant presupposition)’들이 내재된 병폐라고 지적한다.

쇼펜은 널리 알려져 왔던 사실, 즉 초기의 불교학 연구자들은 기독교 선교사였음을 상기시킨다. 그들이 유지하고자 하였던 참된 종교에 대한 선입견이 인도불교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분명하게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인 찰스 토머스(Charles Thomas)는 그의 《북쪽 지방의 초기 기독교의 고고학(The early Christian archaeology of North Britain)》이라는 책에서 학자들이 연구하는 종교가 어디에 어떻게 위치하는가의 선입견에 따라서 유적이나 인간의 행위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

그는 발굴된 다양한 유적들은 성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에 기독교 묘지 등을 비롯한 영국 북부 지방의 초기 기독교 고고학적 자료는 역설적이게도 역사적으로 본질적인 기독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그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추상적인 개념의 ‘종교인’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스나이더(Snyder)는 〈콘스탄틴 앞에서 행해진 기독교적인 삶의 고고학적 증거(The archaeological evidence of church life before Constantine)〉라는 논문에서 기독교 연구에서 고고학의 위치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그는 비록 신약 성서 이전의 초기 기독교로부터 유래하는 고고학적 자료는 있을지라도, 그것이 신약성서 연구에는 무용지물이라고 한다. 스나이더는 기독교 유적들과 고고학 자료들은 어디까지나 ‘대중적인 종교 행위’라는 범위 내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자료들은 초기의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행하였는지 설명하지만, 그들의 믿음과 행위가 성서의 문헌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는 성서 연구자나 역사학자들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 오직 종교 사회학자들이 관여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견해는 불교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오직 문헌 내에서만 존재한다.

토머스와 스나이더에게 영향을 미친 저명한 종교학자 엘리아데(Eliade)는 《유럽 농민들의 풍습과 삶(the customs and beliefs of European peasants)》에서 이러한 시각을 잘 보여 준다. 그는 유럽의 농촌 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기독교화되었지만 그들은 비기독교적인 다른 요소들을 함께 계승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종교가 정형화된 기독교의 역사적 형태와는 조화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엘리아데는 기독교인들의 ‘풍습과 믿음’을 ‘정형화된 역사의 기독교’에서 분리하여 ‘역사성이 결여된 기독교(ahistorical Christianity)’라고 이름 한다. 쇼펜은 이것은 곧 기독교의 역사성은 실제의 기독교를 포괄하지 못하는 모순을 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각기 다른 시대와 지역 그리고 다른 증거들을 인용하였지만 토머스, 스나이더, 엘리아데는 모두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은 기독교 역사에서 실제로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행하여졌던 행위와 믿음을 기독교 역사에서 배제하려고 한다. 토머스는 ‘종교적인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스나이더는 ‘대중이 실천한 종교’, 엘리아데는 ‘비역사적인 기독교’라고 규정하여, 실질적으로 행하여졌던 기독교 역사의 흔적들을 기독교 연구에서 제외하였다.

쇼펜은 이들의 공통점은 기독교의 역사를 구체적인 사실로서 인정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본질적이고 정형화된 참된 기독교가 어디에 있는가를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쇼펜은 불교학자, 고고학자, 그리고 역사학자들은 스스로는 부인하고 싶을지라도 그들의 시각은 참된 종교를 주창하였던 기독교 개혁자들의 가치에서 유래한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은 오직 성서 안에서만 종교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직 성령만이 생명이며, 성령은 오직 성서를 통하여 행해진다고 주장한다. 신의 말씀만이 영적이며 이것만이 기독교인들에게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칼뱅(Calvin)은 기독교의 다양한 문화가 표현된 물질적 자료들과 유물들은 종교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며, 참된 종교를 전복할 수도 있는 수많은 가짜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므로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뱅에 따르면 그것들은 신의 말씀에 의해서 영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다양한 지역들에서 믿어져 왔고 실천되어져 왔던 기독교의 유물들은 아주 소중한 역사를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의 입장에서 이것들은 현실에서 잘못 실행된 기독교의 흔적이며, 곧 개혁과 청산의 대상이었다. 당시의 부패하고 잘못된 기독교의 모습을 지적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성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16세기 기독교 개혁자들은 기독교의 형상들, 신전들, 성지와 같은 다양한 유물적 자료의 흔적들의 가치를 폄하하였다.

쇼펜은 현대의 역사학적 고고학적 연구에서 문헌 자료에 대한 가치 부여와 참된 종교라는 관념에 대한 기독교 개혁자들의 주장은 매우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즉 기독교 개혁자들의 신학적 가치가 기독교 연구학자들이 끊임없이 추구하였던 ‘참된 종교’라는 추상화된 관념에 집착하게 하였으며 이것이 불교학자 연구자들에게도 그대로 수용되었음을 지적한다.

신의 말씀이 곧 경전이고 그것만이 오직 기독교인들에게 의미가 있을 뿐이라는 전제들이 불교학 연구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었음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16세기 기독교 개혁자들에 의해서 제기된 ‘신의 말씀만이 최우선의 가치임을 재확인’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현대 불교학자들이 답습하고 있다고 쇼펜은 주장한다.

3

쇼펜의 두 번째 책 《불교 승려와 경제 문제(Buddhist Monks and Business Matters: Still More Papers on Monastic Buddhism in India)》는 2004년에 출간되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발표되었던 14편의 논문들을 재구성하여 편집한 이 책은 지속적으로 인도 불교의 승가 연구라는 주제를 탐구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앞의 책과는 다르게 역사적 배경 지식을 제공하고 기존 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하여, 다양한 율장과 그에 따른 주석의 문헌 자료들이 풍부하게 제시된다. 특히 그가 책 전체를 통하여 논쟁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은 설일체유부의 율장(Mu-lasarva-stiva-da-vinaya)이다.

그는 율장이란 기본적으로 당시의 인도 사회의 세속적 법률을 규정한 ‘다르마사스트라(Dharmasastra)’의 역할을 승가에서 수행한다고 분석한다. 율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규범들에 대한 이해를 다르마사스트라와 비교하면서, 불교 승단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인도 사회 전체 속에서 조명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은 쇼펜의 학문적 깊이와 넓이뿐만 아니라 진지함도 읽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각각의 주제에 따라서 그는 사찰의 재정적인 문제, 승려 개인의 사유재산 소유 문제 등을 조명한다. 비록 문헌에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건축 되고 출가 수행자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곳으로 서술되고 있는 사찰이지만 그 내부는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승려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공존하는 현실의 일상이 전개되었음을 적절한 증거를 제기하면서 끊임없이 묘사하고 논증한다.

구체적으로, 승려 개인이나, 사찰은 어떤 경우에 어느 정도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는가, 승려나 사찰의 부채는 어떤 경우에 허락될 수 있었는가, 또한 어떤 경우에 돈을 빌려 주고 그리고 그에 따른 이율은 어떻게 정해졌는지, 그리고 부채를 해결하지 않은 승려의 사후에 그 부채는 누구에게 어떠한 형태로 책임을 부가할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또한 보시의 종교적인 기능과 역할은 어떻게 이해되고 설득되어 왔는지를 서술한다. 그리고 쇼펜은 승려들이 일상적인 의례나 장례의 문제들에 대해서 각기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행동하였는지도 끊임없이 탐구한다.

출가자로 구성된 승가는 세속적인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았을 것으로 간주하기 쉬운 선입견들에 대해서 쇼펜은 승가도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회이며 그 내부에는 수많은 일상생활이 펼쳐져 왔음을 역설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하여 문헌에 기술되어 있는 것과, 고고학적 자료나 다양한 비문들의 자료 사이에 나타나는 간극도 잘 보여 주고 있다.

4

가장 최근인 2005년에 출간된 《인도 대승 불교에 대한 허상과 단상(Figments And Fragments Of Mahayana Buddhism In India: More Collected Papers)》은 16편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책 두 권이 인도불교사의 시대 구분에 따르고 있고 쇼펜의 연구 연도를 따라서 구성되어 있는 반면, 이 책은 스스로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30년 동안 학자로서 쇼펜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여 허상과 단상이라는 두 범주 아래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흥미로운 논문은 첫 번째 책의 첫 장과 동일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재미있는 논문이 있다. 마지막 장을 구성하고 있는 〈탑과 성지(Stupa and Tirtha: Tibetan Mortuary Practices and an Unrecognized Form of Burial Ad Sanctos at Buddhist Sites in India)〉는 인도불교에서 성지순례에서 불탑 숭배가 지니는 의의를 고찰한다. 불탑을 이동 가능한 형태로 소유하였던 사실을 기독교에서 성자의 묘지 주변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던 부수적인 현상들과 단순하게 비교하는 종전의 견해를 반박한다.

그는 여전히 서구 불교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어 온 인도불교의 승가에 대한 연구는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서 왜곡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수도원을 연구한 그 시각 그대로 불교 승가를 이해하고 이러한 현상은 율장에 대한 이해나 인도불교 승가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왜곡시켜 왔다고 주장한다.

이 책뿐만 아니라 쇼펜의 학문 세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제시하는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한 주장이다. 금강경의 한 구절을 재해석하면서 제시하는 이 학설은 논문 〈The Phrase sa pthiviprades as caityabhuto bhavet in the Vajracchedika: Notes on the Cult of the Book in Mahayana〉에서 잘 드러난다. 히라카와(Hirakawa)로 대표되고 가장 보편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져 왔던 ‘불탑 숭배로 인한 대승 불교 기원설’을 그는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대승불교의 기원은 ‘경전에 대한 숭배’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쇼펜은 초기 대승불교의 경전들은 탑 숭배에 대해서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법신(dharmakaya)이라는 개념과 결합하여 경전 그 자체에 대한 숭배가 더욱 중요시되어 왔음을 주장한다. 초기 대승불교는 다양한 경전들에 집중하고 있으며, 대승불교 주창자들은 특정한 경전을 연구하고 숭배하였다고 주장한다.

경전 그 자체가 법신으로서 숭배의 대상이며 이것은 구체적으로 탑을 숭배하는 것과는 대조된다고 주장한다. 더욱 중요한 요소는 많은 대승경전들이 경전에 대한 공부나, 암송, 혹은 단지 경전을 소유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한량 없는 복덕을 얻을 수 있음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사실과 논리적 구조가 일치한다고 논증한다. 이러한 사실은 특정한 책이 일정한 숭배의 형태를 취한 곳에서 대승불교가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전을 숭배하는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탑의 숭배도 함께 진행되었음을 역설한다. 따라서 특정한 집단이 특정한 경전을 숭배하는 것에서 다양한 대승불교의 기원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쇼펜은 기존에 이해되어 왔던 견해들과는 대조적으로 재가자나 일반인들이 대승불교 기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주장한다.

비단 불교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 사회에서 모든 종교들의 변화와 개혁을 주도했던 집단이 브라흐만으로 대표되는 엘리트층임을 제시한다. 새로운 경전 편찬에 재가자가 직접적으로 관여하였다는 역사적 증거가 부족함을 밝히고 있는 윌리엄스(Paul Williams)의 주장도 이러한 논조와 견해를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초기 대승불교 경전들은 ‘보살’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많은 재가자를 포섭하고 있으나, 경전 편찬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승려의 몫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었음을 주장한다.

5

쇼펜은 기존의 서구 불교학자들이 승려 중심의 엘리트들에 의해서 생산된 경전적인 문헌들을 통하여서만 불교를 이해하려고 하였으며, 그 이외의 다양한 유물들과 고고학적 자료들은 배타적으로 애써 무시하여 왔다고 주장한다. ‘과도한 문헌에 대한 집착, 경도’는 불교학 연구자들로 하여금 오직 불교 교리, 불교 교학 연구만이 참된 불교를 연구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고 순환적으로 한정된 연구 방법론에 머물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이해하는 불교란 가장 추상화된 형태로 내재된 것이며 실제로 불교가 종교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매 순간 구체적으로 믿어지고 실천되어 왔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모순을 초래한다. 쇼펜은 인도불교의 승가나 종교로서의 불교가 일상생활에 구체적으로 전개되어 왔던 측면들에 대해서 서구의 불교학계는 너무나 쉽게 일반화시켜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난 세기 동안 문헌을 통한 불교학 연구는 불교학자들로 하여금 너무도 쉽게 출가자로 구성된 승가의 생활 양상들을 지나치게 이상화하였다고 분석한다.

불교 문헌, 특히 불교 경전들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불교학자들은 불교도들이 역사적으로 구축한 의미 있는 구체적인 현실의 모습들에 주목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불교학 연구사에서 지속적으로 행하여져 왔던 이러한 일반화 경향에 대해서 쇼펜은 ‘계승된 전통(received tradition)’에 대한 집착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준화 일반화하려는 연구 경향의 한계점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노력은 역설적으로 계승된 전통에 익숙한 기존의 많은 불교학자들에게는 필연적으로 불편을 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주장에 많은 논란거리가 생산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의 논문에서 표출되는 논쟁적이고 도전적인 많은 주장들은 기존 불교학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들이며, 쇼펜의 논문이 난해하다고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쇼펜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가장 많은 논쟁거리를 생산해 왔던 불교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논리 전개 구조는 작고 구체적인 증거를 통하여 전체의 흐름을 읽고 이해하면서 기존의 학설들에 대해서 반론을 제시한다. 작은 나무 하나에 집착하여 숲을 보지 못한다는 우려는 쇼펜의 학문 세계에서는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그가 한 편 한 편의 논문들을 통하여 잘 드러내고 있는 주장들은 지루할 정도로 반복적으로 제시하는 구체적인 자료들을 통하여 논리적 타당성을 획득한다.

쇼펜은 불교학 연구자들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요소들을 모두 다 갖춘 듯한 학자이다. 첫째 그는 불교학 연구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다양한 원전어들에 대한 훈련이 잘 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비록 과도한 문헌 연구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쇼펜 그 자신이 다양한 언어로 구성된 불교 문헌의 해석과 이해에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였음을 잘 보여 준다.

이를 바탕으로 고고학적 자료와 다양한 비문들의 해석과 이해를 통하여 불교학 연구 방법론이나 연구 주제와 범위가 폭 넓게 확장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연구 노력들은 결코 기존의 불교학 연구자들의 주장을 반복하거나 재생산하지 않는다. 기존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의 정점에서 그의 논문은 출발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주장과 시각을 도출한다.

문헌은 어떤 일정한 형식으로 인간 사유를 추상화시키고 보편화시킨다. 문헌을 통한 불교의 이해는 핵심 교리와 그 속에 내재된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규범화되고 익숙한 기존의 관념들이 필연적으로 내재할 수 밖에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역사 속에서 행해졌던 개별적 사실들을 간과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생동감 또한 잃어버린 박제화된 불교학 연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쇼펜의 주장들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다양한 반론이 제기되어 왔으며,  여러 가지 논쟁적인 요소들 함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교학계가 쇼펜의 학문 세계를 여전히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는 지금까지의 불교학계의 연구 성과를 되돌아보게 하고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변화하여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주장하기 때문이다.  ■

 

성청환 /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를 졸업. 현재 플로리다대학 종교학과에 재학 중.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