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만해사상 실천선양회 Home
불교평론 소개 l 지난호 보기
 
 인기키워드 : 사색과 성찰, 청규, ,
> 뉴스 > 서평
     
이론으로 체계화한 간화선 / 김호귀
-월암(月庵) 지음, 《간화정로(看話正路)》 (현대북스, 2006)
[38호] 2009년 03월 10일 (화) 김호귀 kimhogui@hanmail.net

   

월암(月庵) 지음
《간화정로(看話正路)》
(현대북스, 2006)

1. 《간화정로》의 의의


본 《간화정로》는 월암 스님(현 벽송선원장)이 그동안 연마했던 수행과 학업의 결과물로 2006년도에 출간된 책이다. 햇수로는 벌써 4년째 되는 동안 간화선에 대하여 체계적이고 종합적이며 실참을 하는 사람에게 많은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음은 충분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사상의 탐구 및 실수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평자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먼저 지난 2008년 여름에 벽송사를 찾았다가 떠났을 때 저자가 일행을 통해서 건네준 《간화정로》와 《돈오선》에 대하여 아직 고마움도 표하지 못하였는데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처음 《간화정로》라는 제목을 대했을 때 그 의미가 ‘간화선의 바른 길’뿐만 아니라 ‘간화선만이 최고의 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것은 아마 근래에 조계종의 교육원 및 포교원에서 간화선을 대중화하고 체계화시키려는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종의 독단적인 간화선의 주장 내지 옹호가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일독하고 난 후에 그것은 기우였음을 알았다. 그것은 전체적으로 일반적인 선수행에 대한 교학의 위상 및 그 역할에 대하여 대단히 객관적인 입장으로 접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이 아무리 불립문자를 표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용상의 문제이다. 그 형성과 전승에 대해서는 언어문자가 아니면 선은 온전한 선이 될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선은 언어문자와 함께한다. 언어를 여읜 선은 선이 아니다. 선이 올바른 선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와 만나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간화정로》는 그와 같은 언어를 충실하게 활용한 선의 입장이었다.

아울러 간화선이 성립되기 이전에 전개되었던 중국 선사상에서의 중요한 개념 및 그 배경과 원인 등에 대한 세밀한 분석은 간화선의 위상에 대한 이해를 한층 제고시켜주기에 좋은 것들이었다. 특히 무념(無念)과 무상(無相)과 무주(無住)에 대한 개념의 정립은 당대(唐代)에 형성된 조사선(祖師禪)의 이해에 반드시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들 개념이 간화선의 수행에서 심리적으로 어떻게 수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코멘트이다.

또한 선지식이 구비해야 하는 여러 가지 기본적인 조건 등은 간화선의 수행에 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간화선 수행을 지도하는 입장의 사람에게 꼭 필요한 제안이기도 하다.


2. 《간화정로》의 내용

이 책은 총 5장의 본문과 기타 부록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저자는 먼저 제1장 선종의 수증론 부분에서는 초기 선종으로부터 시작하여 남북종 및 조사선의 수증론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다. 초기 선종의 경우 동산법문의 수증론을 들고 점수돈오(漸修頓悟)를 강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남북종에 대해서는 북종의 경우에는 이념(離念)에 근거한 삼취정계(三聚淨戒)와 육파라밀(六波羅蜜)의 수행이라면 남종의 경우에는 돈오돈수(頓悟頓修)로 파악하고 있다. 나아가서 조사선의 경우에 대해서는 조사선풍의 형성과 그 기본적인 개념으로 바탕으로 본래성불에 철저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입장에서 도불용수(道不用修) 및 돈오본성(頓悟本性)을 제시한다.

제2장 간화선의 성립 배경에서는 문자선(文字禪)과 무사선(無事禪)과 묵조선(默照禪)에 대하여 언급한다. 우선 이들 세 가지 측면을 세밀하게 점검하고 그 본래적인 의미를 파악하여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문자선의 경우는 교학의 바탕이 뒷받침되지 못하여 무지선(無知禪)과 암증선(暗證禪)으로 빠져 버린 폐해를 언급한다. 무사선의 경우는 현실의 긍정만 강조하고 공망무기(空亡無記)에 떨어지는 평실선(平實禪)의 폐해를 언급한다.

묵조선의 경우는 수행의 방식보다는 눈먼 종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폐해를 언급한다. 이들에 대한 극복의 대안이 곧 후에 간화선이 출현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3장 간화선의 성립 부분에서는 무자화두의 실질적인 시작을 오조법연(五祖法演)으로부터라고 간주한다. 또한 간화수행의 직접적인 방식은 오조의 법사인 불안청원은 신심의 강조와 화두에 대한 의심의 강조를 말하고, 원오극근은 공안어구에 대한 일체의 지성적인 이해를 부정하고 공안언구로써 바른 길을 열도록 하는 것을 언급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혜종고는 그 수행 방식을 정립한다. 곧 일상의 삶을 벗어나지 않는 입장에서 공안어록을 중심으로 하는 이론과 화두 참구를 중심으로 하는 실천을 강조한다. 결국 대혜는 간화선의 성립 배경으로 언급했던 문자선과 무사선과 묵조선의 병폐를 극복한 토대에서 기존의 간화 종지를 계승 발전시킨다.

제4장 간화선의 이론과 수행 부분에서는 일반 전제와 특별 전제로 나눈다. 일반 전제에서는 반야와 불성의 중도정관(中道正觀)의 확립을 바탕으로 하여 삼학(三學)의 등지(等持), 인과와 자비관의 정립, 선교의 겸수 이외에 화두 참구에 필요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의 삼요(三要)를 언급한다. 특별 전제로는 화두를 통하여 견성하려는 굳은 결심을 언급하여 화두 참구에 대한 대사일번(大死一番)의 자세를 언급한다.
기타 공안의 의미와 역할에 대하여 갖가지로 언급하고 공안과 화두를 굳이 구별하기도 한다. 그 고칙공안을 시설한 의의는 공안 화두를 간택하여 그 화두에 의심을 다해 참구하는 것이라 말한다. 또한 공안의 역할에 대해서는 깨침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고, 노파친절한 자비심으로 이끌어 주며, 잘못된 방식을 질책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에 간화선의 특성에 대하여 말한다.

첫째는 일상의 삶에서 실천 가능한 수행 방식으로 생활선(生活禪)임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대혜의 간화선은 문자선이 지니고 있는 교학적인 성과, 무사선이 성립시킨 무사무위의 임운자재한 선지, 묵조선의 좌선 수행의 방법 등의 긍정적인 측면을 받아들이고, 그 역기능의 측면인 지해와 안일과 좌선에 대한 집착 등을 극복하였다고 말한다.

둘째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수선에 관심을 지닌 사람이면 사부대중이 모두 가능한 사중선(四衆禪)을 언급하고 일례로 방거사에 대하여 말한다. 셋째는 간화선은 깨침을 법칙으로 삼는 증오선(證悟禪)임을 말하여 당시에 역기능으로 등장한 문자선과 무사선과 묵조선 등의 병폐에 대하여 언급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자화두가 필요하다는 것도 언급한다.

더욱이 실제적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에 대하여 발보리심할 것, 선지식을 참문할 것,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간택할 것, 실참에서 활구를 참구할 것 등의 순서를 언급한다. 특히 선지식의 참문 부분에서는 선지식이 구비해야 하는 조건에 대해서도 13가지로 분류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이에 대혜가 제시한 화두 참구의 구체적인 방식에 대하여 말한다.

첫째는 시시때때로 화두를 안고 살아야 할 것을 제시한 시시제시(時時提?)로서 간절함을 말한다.

둘째는 생사사대(生死事大)를 각성하고 화두일념의 자세를 유지할 것을 말한다.

셋째는 간단(間斷)이 없이 화두를 참구하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을 유지하여 순일무잡하게 참구할 것을 말한다.

넷째는 동정(動靜)과 어묵(語默)에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객과 능소가 민절된 화두삼매에 대하여 말한다.

다섯째는 대사일번(大死一番)의 경험으로 나타나는 절후소생(絶後蘇生)의 구경의 경지를 경험할 것을 말한다.

더불어 간화선 수행에서 나타날 수 있는 선병(禪病)에 대하여 언급한다. 혼침, 망회, 묵조, 도거, 관대, 착의 등을 성성과 적적으로 다스릴 것을 말한다. 이어서 무자화두의 십종병에 대하여 언급한다.

제5장은 현재 간화선풍에 대한 반성에 대하여 말한다. 첫째는 이론과 실참의 양극화에 대하여 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관겸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둘째는 안빈낙도의 승풍이 아쉽다고 진단한다. 이를 위하여 출가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셋째는 동중수행의 필요성을 말한다. 넷째는 보청의 필요성이고, 다섯째는 청규에 따른 수행의 철저와 그에 따른 인격의 도야 등에 대하여 언급한다.
부록으로 총 4칙의 화두에 대한 설명과 대혜종고의 행장을 싣고 있다.

3. 《간화정로》로 가는 길

이처럼 《간화정로》는 간화선의 발생 배경과 원류와 형성과 특징과 실천 방식과 적용 방법 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언어의 불완전성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간화선에 대한 개개인의 견해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에 본 《간화정로》가 이후로 더욱 구체적이고 활성화된 간화선 수행의 지침서가 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몇 가지 제안을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대혜 간화선의 형성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불안청원과 원오극근의 간화적인 수행 방식 이외에 달리 당나라 때 형성된 조사선의 순수한 정신을 중생의 현실적인 입장으로부터 회복하려는 운동의 일환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간접적인 원인으로 제시된 문자선의 경론에 대한 안목과 무사선의 임운자재한 선지와 묵조선의 지속적인 좌선 수행 등은 반드시 그 모두가 포함한 결과로서 제시된 것이 간화선이기 때문에 만일 이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결여된다면 그것은 간화사선(看話邪禪)이요, 대오선(待悟禪)이며 제자선(梯子禪)에 빠질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중도정관과 삼학의 수행과 팔정도 및 육바라밀은 비단 간화선만의 예비 조건이 아닌 모든 수행의 일반적인 기초이기 때문이다.

둘째, 실제적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에서 발심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발심이 저절로 가능한가 아니면 누가 발심을 시켜 주는 것인가. 또는 발심에 상응하는 오랜 행위나 필연적인 계기의 결과 발심이 가능한가. 발심에는 반드시 그에 필요한 일종의 행위와 기연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은 우연적인 발심에는 언제든지 퇴굴심이 일어난다.

때문에 발심에는 먼저 열 가지 덕이 갖추어져야 가능하다.

첫째는 선우를 가까이하고, 둘째는 제불께 공양하며, 셋째는 선근을 모아서 닦고, 넷째는 마음에 뛰어난 법을 추구하며, 다섯째는 마음을 항상 유화(柔和)하게 지니고, 여섯째는 괴로움을 마주해도 참으며, 일곱째는 자비심으로 순후(淳厚)하게 하고, 여덟째는 심심(深心)으로 평등케 하며, 아홉째는 대승법을 믿고 좋아하고, 열째는 부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다.

셋째, 간화선의 생명은 화두 수행을 통한 깨침이다. 그 수행과 깨침은 99%가 되어도 아직 어림도 없다. 전체의 100%가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간화선의 수행은 모 아니면 도이다.

이런 점에서 출가 수행자가 아니라면 참으로 어려운 수행이다. 이와 같은 난해성을 조금이라도 제거하려면 적어도 간화선의 수행자는 모두 출가자 내지 출가자의 마음으로 덤벼들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출가자의 태도만이 간화선 수행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디 그런가. 화두 수행에 임하는 숱한 사람들이 간화선의 수행을 너무 안이하게 간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적어도 화두의 참구의 진정한 자세는 대사일번(大死一番)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곧 깨침이란 결국 나를 잊는 수행으로서 나아가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상을 죽이고 의심을 죽이며 기타 갖가지 번뇌를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도 간화선의 특징을 일반화시켜 생활선(生活禪)이요 사중선(四衆禪)이라 말할 경우 그것은 간화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을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프로그램의 개발 필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실제적인 프로그램의 개발에 대한 언급이 요구된다.

넷째, 경론을 통한 분별지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곧 화두에 대한 안목이다. 분별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깨침의 본래적인 측면에서나 하는 말이다. 따라서 깨침을 향한 과정에 해당하는 화두의 수행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번뇌와 보리 및 선지식과 악지식을 가름하는 지해분별이 없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화수행의 참구 과정에서 본래적인 의미를 끌어들여 망상 피우지 마라, 분별심을 갖지 마라, 집착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시작과 끝만 강조하고 중간 과정을 전혀 무시해 버리는 꼴이다. 수행이 그대로 깨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행은 온갖 번뇌와 부단히 부딪치고 극복하며 초월하는 행위가 없어서는 안된다.

간화선의 수행이 불교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출현한 것은 12세기였다. 단적인 이유는 당대에 형성되고 전개된 조사선이 수백 년이 지나자 그 순수한 성격을 상실해 버리고 점차 도그마화 되고 형식에 빠지는 부정적인 모습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려는 것에 있었다.

그런 만큼 간화선의 출현은 기존의 수행 방식과는 다른 어떤 모습을 필요로 하였다. 이에 화두를 창출하고 전개시켜서 그것을 참구하는 방식과 그를 통한 깨침의 인가와 전승의 방식은 선종사에서 보아도 대단히 특징적인 방식임에는 틀림없었다. 그 기본은 발심과 수행과 깨침과 인가와 전법과 교화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누구나 함부로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간화선 그 자체를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참구하며 어떻게 전승시켜야 할 것인가를 단적으로 논한 글은 많지 않았으며 그것도 비교적 최근래에 시도되어 왔다. 이런 점에서 《간화정로》는 참으로 그와 같은 간화선의 성격과 특징 및 실참의 이론을 전개시킨 책으로 높이 간주된다. ■

 

김호귀 /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선학과 , 동 대학원 선학과 석사, 박사 졸업.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선학과 강사,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저서로 《묵조선 연구》, 《선과 수행》, 《금강경 찬술》 등 다수.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달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수(0)  
전체기사의견(0)
불교평론 소개독자투고불편신고구독신청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135-887]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2-9번지 MG타워빌딩 3층 | Tel 02-739-5781 | Fax 02-739-5782 | 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사성
Copyright 2007 불교평론.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review@hanmail.net
불교평론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