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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면세특권, 그 기원과 현황 / 정웅기
정웅기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사무처장
[38호] 2009년 03월 10일 (화) 정웅기 ilovekundun@empal.com

1. 세금과 종교, 그 얼키고 설킨 역사

세금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주요 종교보다 오랜 역사를 가졌다. 서양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인 BC 2500년경 과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로마는 서양사에서 과세표준이 된 십일조를 거뒀다.

중국에서는 BC 12세기경 세워진 주(周)의 정전법1)을 조세제도의 효시로 본다. 고조선은 수확량의 20분의 1을 거둬 중국에 비해 매우 관대한 세제를 유지하였고,2) 조선 세종 때도 이 정도였으니 태평성대의 세율은 5% 정도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근대 들어 대부분의 국가가 조세법률주의를 채택하면서,3) 세금은 학정과 수탈의 도구에서, 나눔과 복지의 수단으로 변모하였다. 2005년 한국인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20.3%로 OECD국가의 평균 27.4%보다 낮은 편이다. 스웨덴, 덴마크, 벨기에 등 북유럽 나라들의 경우는 조세부담률이 아예 50%에 육박할 정도다. 이렇게 선진국들이 높은 세율을 채택하면서, 세금은 점차 ‘공적 부조’의 공동체적 의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종교단체에 대한 면세 기록은 동서양 모두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99년 알렉산드리아 북동쪽에서 발견된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은 나일강 중부에 있는 멤피스의 사제들이 조성한 것으로,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5세(BC 205~180 재위)가 신전과 신관들에게 세금을 전액 감면해 준 것을 칭송하며 조성되었다.4) 이 비문을 통해 고대 이집트 왕국에서도 종교단체에 대한 면세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보다 조금 앞서 동양에서는 인도 아쇼카 왕(BC 265경~238 재위)이 세운 석주에 면세 기록이 남아 있다. 1896년 룸비니 유적에서 발굴된 아쇼카 왕의 석주에는 “왕의 관정 20년을 기념하여 불적 성지순례를 하던 왕이 당시 룸비니 마을에 들러 토지에 대한 세금을 6분의 1에서 8분의 1로 감면해 주었다.”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5)

1) 기독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마태복음 22장 21절》는 기독교 초기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말해 주는 유명한 구절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한 바리새인을 매수하여 ‘당시 로마 황제(카이사르)가 부과한 인두세를 내야 하는지 거부하는 것이 옳은지’ 예수에 질문을 던지게 하였다. 만약 ‘인두세’를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 총독에 고발하여 체포케 하고, 반대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면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에게서 영향력을 깍아내리려 한 의도였다. 이때 예수의 답이 바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였다. 과세할 수 있는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또 다른 여지를 남겨 두었던 것이다.

이 외에도 예수는 베드로와 함께 국세를 납부하거나, 신도들에게 국세를 바치는 의무를 다하라고 말했다.6) 비단 로마의 세금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거두었던 적지 않은 유대교 성전세(일종의 종교세)도 예수는 물의를 일으키기 싫어 바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7)

이와 같은 여러 차례의 공개적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산헤드린이라는 유대인은 예수를 빌라도 총독에게 고발하면서 “이 사람이 황제에게 바치는 조세의 의무를 방해하고 스스로를 메시아요 왕이라 주창함으로써 유대 백성을 호도한 반로마적 반란자”(《누가복음》 23장 2절)라고 고발하였다.8)

이런 늘상적인 위협 때문이었는지 베드로는 세금 납부에서 한발 나아가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라고 하여 세속제도는 물론 왕과 총독에게 잘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하였다.(《베드로전서》 2:13~14)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AD 306~337 재위)가 313년 밀라노의 칙령을 발표하면서 기독교는 면세 특권을 누리기 시작하였다. 콘스탄티누스는 ‘담세 및 부역의 면제’에 대한 법률을 공포하여 신앙의 자유를 공식화하는 한편 성직자의 병역·세금 등 의무의 면제, 세속 법정에서 재판을 받지 않게 하는 치외법권도 보장하였다. 또한 그는 313년 아프리카 속주 총독에게 보낸 서신에서 “기독교 성직자는 신에게 최고의 봉사를 자유롭게 바칠 수 있을 때 국가에 큰 이익을 가져다 주기에 세속 관리들이 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라고 언급하였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콘스탄티누스 이후 교회는 짧은 시간에 크게 발전하였고, 더불어 세속화되었다. 각종 특권을 누리려는 이들이 교회에 몰리고, 성직을 사고 파는 매매까지 성행할 정도로 타락하였다. 그 뒤 5세기 말 서로마제국이 멸망할 즈음 전면에 등장한 교회는 16세기까지 기독교 문명을 이끌면서 면세 특혜를 누리는 한편 과세의 주체로 나서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1095~1270)은 기독교가 아예 세금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교황은 교서를 발표하여 전쟁 참가자들에게 모든 세금을 면제받게 했고, 고리대금 행위에 관한 벌도 사면해 주었다. 또한 모든 채무가 정지되고 토지는 교회의 이름으로 보호받았다. 이러한 면세 특혜는 십자군에 여비와 물자를 대주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다.9)

십자군 전쟁을 위해 교황이 당시 전 유럽의 성직자들에게 5%의 세금을 부과하였던 것은 후일 교회가 왕정으로부터 과세의 대상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3차 십자군 원정 이후(1195년) 프랑스 왕이 영국 침공 계획을 세우자 영국의 리처드 왕(1189~1199년 재위)은 국민들에게 전체 수입의 4분의 1을 과세하면서, 교회도 토지액의 10%를 납부하도록 하였다.

프랑스의 필립 4세(1285~1314년 재위)는 십자군 전쟁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하여 1288년과 1294년 사이 43회에 걸쳐 프랑스 내 교회에 성직자세를 부과하면서 수입의 반을 직접 징수하였다. 로마의 교황 보니파키우스 13세는 이에 대해 모든 인간은 교황에 종속되는 것이며, 성직자에게 과세한 이나 이에 응하는 성직자 모두 파문하겠다고 밝혔지만 필립 4세는 교황 퇴위를 주장하며 맞섰다.

이에 자극 받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루이 4세는 교황의 승인 없이 독립적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할 수 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1503년 교황에 오른 율리오 2세는 미켈란젤로, 라파엘 등의 성화를 후원한 이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대성당을 건축해서 하나님께 바치겠다며, 1506년 로마에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시작했다.

뒤를 이은 교황 레오 10세가 베드로 대성당 건축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발행하면서, 이제 교회의 권력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촉발되었다. 인류는 중세교회의 사례를 통해 종교가 권력화되었을 시 종교 스스로의 파멸은 물론 얼마나 큰 인류의 희생과 대립을 가져오는지 경험하게 되었다. 십자군 전쟁으로 교회가 오랫동안 누려 온 십일조, 면세특권 등이 허물어졌고 유럽은 공화주의로 이행하게 되었다.

프랑스대혁명 기간 국민의회는 ‘성직자공민헌장’을 제정하여 교회 토지를 몰수하여 국유화하였고, 교회 재산에 대한 세제 혜택을 폐지하였다. 대신 성직자에게 보수를 주어 국가가 생계를 책임지게 하는 한편 선거권을 가진 시민들이 주교와 사제들을 선출하게 했다.

 1790년에는 수도원 재산의 관리권을 박탈하여 전 국토의 5분의 1을 차지하던 교회 재산 대부분을 국고로 귀속시켰다. 이 시기 국가와 교회의 대립은 1801년 나폴레옹과 교황 피우스 7세가 정교분리를 골자로 하는 ‘종교협약’을 합의하면서 끝났다.

독일에서는 교회 재산을 매각하여 프랑스에 전쟁배상금을 지불한 이후 1826년부터 교회세를 걷어 주는 제도가 생겨났다. 지금까지도 독일 정부는 등록 종교인들에게 소득세의 8~10%를 징수하여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등에 배분한다. 그 규모는 종교마다 연간 수조 원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 들어 탈퇴 신자가 급증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국가와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독일에서 종교는 아직 공공기관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가와 교회의 분리 작업이 가속화되어 이탈리아의 십일조 폐지(1887년), 아일랜드의 십일조 폐지 및 성공회 국교 금지(1871년), 영국의 십일조 폐지(1936년) 등이 이어졌다.

2) 불교
인도 고대 바라문교의 경전인 《보다야나(baudhayana)》란 책에는 ‘국왕은 개인 수확물의 6분의 1의 세금과 벌금 등으로 백성에게 고용되어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10) 아쇼카 왕 석주에도 같은 세율이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 인도 사회는 고대 이후 오랫동안 6분세를 걷었던 것 같다. 이같이 높은 세율은 종종 가혹한 수탈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붓다는 왕을 교화할 때 세금 이야기를 종종 언급하였다. 마명보살의 《불소행찬(佛所行讚, Buddhacarita)》에는 붓다가 코살라국 왕 프라세나지트를 교화할 때 “법에 정해진 외에 세금을 받지 않아야 한다.”라고 가르치신 장면이 나온다. 《수타니파타》 등 다른 초기경전에도 잘못된 세금에 대한 비판이 종종 언급되어 있다.

붓다와 제자들이 직접 세금을 냈다는 기록은 없다. 당시 인도가 서양식 인두세 대신 토지 수확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거두었던 데다, 이를 유랑 걸식에 분소의를 입으며 나무 밑에서 잠을 청했던 초기의 출가 수행자들에게 징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초로 기증된 죽림정사의 경우도 60채의 규모였다지만, 일인용 오두막 수준이어서 과세 대상이 아니었다.

몇 개의 방, 헛간, 수행처, 주방 등이 있었던 기원정사의 경우에도 승원 내에서 식품을 저장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을 가섭 존자가 배척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통상의 집은 아니었으니11) 이로 미루어 붓다 당시부터 입멸 후 얼마간은 불교 승원에 세금이 징수될 일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서 세금과 관련된 역사 기록은 앞서 말한 아쇼카 왕 대에 이어, 유명한 데칸 석굴을 조성한 사타바하나 왕조의 제4대 샤타카르니 왕(106~130경 재위) 대에 보인다. 왕은 데칸고원의 나시크 석굴을 조성하면서, 승원에 전답을 보시하고 세금을 면제해 주며, 관리가 이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특별한 기록을 남겼다. 이 사실이 나시크 3굴에 현재까지 명문으로 남아 있다.12) 관리의 개입 배제를 특별히 언급할 정도로 사원에 대한 면세는 당시에도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원의 규모가 점차 대형화되면서 이제 사원경제는 초기불교와는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아쇼카 왕의 기부로 건립되었던 나란다 사에는 후일 유명한 나란다 불교대학이 세워졌는데, 5세기 굽타 왕조 시대 이 대학에는 학인만 1만여 명에다, 교수가 1천5백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이 정도 규모의 인원이면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막대한 돈이 소요되었을 것이고, 사원은 부정기적인 기부에만 의지할 수 없어 적극적인 경제생활에 나서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오늘날 티베트의 사원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티베트인들이 인도 망명 후 남인도에 복원한 3대 사원은 매우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이 중 하나인 드레풍(Drepung) 사원의 경우는 거주하는 스님들만 5천여 명이어서 스님들의 의식주와 기본적인 생활만 해결하는 데도 한 해 수십억 원 이상의 돈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티베트 사원에 가면 토지를 경작하고, 상점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스님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면세 혜택이 없었다면 사원이 이런 정도의 대규모로 발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면세를 통해 성장한 대규모 사원은 불교사상이 꽃피는 구심점 역할을 했지만, 불행하게도 집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인도불교를 진흥시켰던 마우리야 왕조를 찬탈한 슝가 왕조는 곧장 브라만교를 우대하면서 불교를 탄압하였고, 나란다대학을 후원하였던 굽타 왕조가 훈족(흉노)의 침입으로 6세기에 멸망하자 인도 서부 지역의 불교는 불상과 사원이 파괴되고 승려들이 대규모로 학살되는 등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13)

중국불교사에서 사찰의 면세에 대한 기록은 후한 말 황건적을 무찔렀던 관원 착융이 지은 부도사(浮屠寺)에서 시작한다. 진수가 지은 《삼국지》에는 “AD 189년에서 193년 사이에 건립된 부도사는 착융이 지었는데, 3천명이나 수용할 수 있었다. (중략) 주위의 군 사람 중에서 부처를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기타의 부역을 면제하여 절로 불러들였다. 이로 인하여 각처에서 모여든 자가 5천여 명이나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14) 이 절은 착융이 조조에 쫓기어 도망치면서 사라졌는데, 이때 절에 있던 불도들을 데리고 갔다고 하니, 사원이 권력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당나라 역시 처음에는 봉불에 적극 나서다가, 사찰과 승려의 수가 급증하자 나중에는 양세법을 시행하여 조정에서 특허해 준 사원을 제외하고 모두 세금을 내게 하였다. 단 스님들 개인에 대한 병역을 면제해 주는 혜택은 남겨 놓았다. 그러다 당의 무종 때는 최대의 폐불 사건이 발생하여(842~845년) 4,600여 곳의 사원과 40,000여 곳 이상의 사찰 및 암자가 소실되거나 몰수되었다. 당시 강압에 의해 환속한 비구와 비구니가 260,500여 명에 달했다고 하는데, 무종은 이들 대부분을 생산 활동에 종사토록 했다.

전래 초부터 매우 강한 국가 불교적 색채를 띠었던 중국불교의 성격은 한국과 일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신라의 경우 법흥왕 대의 공인 이후 국가적인 불사가 자주 행해졌다. 불교는 진흥왕 대에 국가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매김 되었지만, 왕과 귀족들이 교단을 지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대형화된 사찰들은 왕실이나 귀족의 경제 기반이 되었고, 사원은 면세 특권을 통해 더욱 많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 정도가 오죽 심하였던지, 문무왕 때는 왕명으로 “사람들이 함부로 사찰에 재물이나 토지를 보시하는 것을 금한다.”라고 할 정도였다.15)

한국의 사원 역시 국왕의 비호 속에 대형화되어 불교가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는 근간이 되었지만, 이는 인도 중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자생력을 잃고, 타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광대한 토지와 노비 등의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 사원들이 장사는 물론, 고리대금업까지 하는 등 심하게 타락하였고, 이로 인해 결국 여말선초의 배불, 훼불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

배불은 조선 중종 11년(1516), 승려의 출가를 규정한 《경국대전》 도승조(度僧條)마저 삭제하면서 극에 달해 사원은 지방 관료나 양반들로부터 심한 착취에 시달려야 했다. 승려 개인에게 어김없이 부과된 공납을 메우기 위해 승려들은 종이나 미투리를 만들고 농사를 지어야 했고, 군역과 산성 축조 등에 끊임없이 동원되었다.

속초 지방의 관리들이 설악산 울산바위에 대한 세금을 속초 신흥사에 내게 하였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니 징세가 얼마나 가혹했는지 짐작기 어렵지 않다. 신라·고려대 국가로부터 받은 면세특권 때문에 성장했던 불교가 조선시대에는 외려 가혹한 세금과 부역 때문에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던 것이니 인과응보라는 말 외에 이를 설명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3) 이슬람
12세기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유럽 기독교에 맞서 범이슬람권 군대를 조직하였던 시리아의 누레딘(Nured-Din, 1118~1174)은 지즈야와 자카트라고 하는 세금 제도를 완성하여 이슬람이 중동을 지배하는 데 기초를 다졌다. ‘지즈야(Jizyah)’는 피지배 지역의 이교도들이 자신들의 고유 신앙을 유지하는 대신 지불하여야 했던 인두세이다. 지즈야는 세율이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그전까지 지배하였던 교황이나 국왕이 매긴 세금(통상 십일조)보다 훨씬 낮아 적지 않은 피지배층들에게까지 환영 받았다고 한다.

자카트(Zakat)는 이슬람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냈던 종교세다. 이슬람 신자들은 곡물, 과일, 가축, 금·은, 동산(動産) 등을 소유한 지 1년 뒤부터 매년 한 차례씩 40분의 1(2.5%) 이상을 종교 시설이나 사회복지 시설, 어려운 이웃, 여행 중 경비가 떨어진 사람 등 꾸란에 근거한 8가지 경우에 처한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내어야 한다. 이슬람 왕조들은 이것으로 과세를 대신하게 하였다.

꾸란에 근거하여 제정된 자카트는 재물을 깨끗이 정화하여 정당하고 합법적인 재산을 만든다는 교리적 의미와 결합되었기에 이슬람 사회에서 금방 정착되었다. 이렇게 관대한 이슬람의 세금 정책은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었던 일부 시기를 제외하고는 내내 유지되었고(1188년,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리단이 한때 십일조를 도입하였던 적이 있다.) 이러한 조세 정책과 타 종교를 용인한 관용적 정책으로 이슬람은 중동과 유럽 남부에서 빠른 속도로 전파되어 주도적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슬람에서 예배는 평신도 중 연장자나 존경받는 이가 예배를 주도하는데 이를 이맘이라고 부른다. 따로 성직자가 없기 때문에, 종교인의 면세 문제가 대두된 적은 없다. 성직자가 없기에 종교단체의 재산은 이슬람 공동체 전체의 공유재산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면세 여부도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관대하고 자발적인 세금 체계를 유지해 온 이슬람도 현대 들어 많이 변했다.

왕족이 석유 사업의 대부분을 쥐고 있는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나라가 아직도 세금을 걷지 않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소득세, 법인세 등 현대 세제를 도입하였다. 특별히 별다른 국법 없이 아직도 사리야(이슬람법)를 국가 운영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만이 전통적인 종교세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3대 종교를 중심으로 면세의 기원과 주요 역사, 그리고 그것이 교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대략 살펴보았다. 역사 속에서 종교단체에 대한 면세는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하였다. 국가권력의 주체들은 종교를 제 손안에 넣는 수단으로 늘 기부와 면세 제도를 활용하였고, 종교단체 입장에서 면세는 선(포)교와 운영의 측면에서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이렇게 면세를 시작으로 얻은 특권은 단기적으로는 종교가 성장하는 자양분이 되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예외 없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무엇보다 교단의 권력 의존이 심화되었고, 특권을 노린 부적격자들이 교단에 들어오면서 교단의 뿌리가 흔들리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안팎의 신망을 잃은 교단이 또 다른 권력의 탄압에 변변히 맞서지 못하고 무너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2. 한국 종교단체가 누리는 면세 특권 현황

국세청(2009년)에 따르면, 올해 국민 1인당 근로소득세 부담액은 약 212만 원 가량이다. 여기에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각종 세금을 합치면 1인당 평균 세액은 467만 원에 달한다. 그런데 2008년 현재 소득 신고 의무가 없는 종교 교직자의 수는 363,816명이다.16) 36만 명의 종교인들이 국민 평균 근로소득세 212만원을 낸다면 그 액수는 연간 7천7백억 원에 이르게 된다.

2007년 통계청은 가구당 종교 헌금이 평균 39만여 원이라고 발표하였는데, 국내 한 일간지가 이를 가구 수에 곱해 종교단체의 한 해 헌금 수입이 총 6조 2천1백억 원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17) 여기에 비교해도 한 해 종교인들에게 최소 7천7백억 원의 소득세가 면세되고 있다는 추정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법인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08년 국세청이 발간한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 351,284개(2008년) 법인이 부담하는 법인세는 총 39조 3천억원이다. 이 가운데 상위 426개 법인이 전체 법인세의 56.4%를 부담하고 매출액 100억 원 이하 350,858개(94.3%) 법인이 내는 법인세는 3조4천억 원(11.4%)이다.

기업 1곳당 연평균 1억2천만 원의 법인세를 내고 있으며, 상위 기업 4백여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기업의 평균 부담만 해도 연간 9백70여만 원이다. 그런데 한국의 종교 교당 수는 2008년 현재 90,300개로 모두 법인세를 면제받는다. 이들 교당들이 전체 법인의 평균 금액을 법인세로 납부한다면 11조 원의 막대한 규모에 달한다. 상위 기업을 제외한 평균 9백70만 원의 기준으로만 해도 면세액은 연간 8천7백억 원이 된다.

종교단체가 누리는 세제 혜택은 소득세, 법인세 이외에도 많다. 한 시민단체에서는 종교단체가 현행 세법에서 누리는 면세 혜택이 19가지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18) 이 가운데는 교육, 사회복지 등 다른 공익법인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것도 있고, 종교단체만 더 특별히 누리는 것도 있다.

함께 누리는 혜택으로는 법인세 감면, 기부금 손비 처리, 이자소득 과세표준 신고특례 외에 특별부가세·취득세·등록세·면허세·주민세·재산세·농지세·종합토지세·사업소세 등 각종 세금의 비과세이다. 여기에 다른 비영리단체들은 부분적으로만 누리거나 아예 없는 혜택을 종교단체가 누리는 것으로는 국세징수법에 의한 재산압류 금지(31조), 관세 감면, 지방세 용도 구분에 의한 비과세 등이 있다.

사실 종교단체의 면세 혜택 대부분은 공익법인에서도 누리고 있는 것들이지만, 형평성에 있어 특별히 문제될 소지가 있다. 복지법인이나 학교법인 등 다른 공익법인들은 ‘공익법인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지원과 면세 혜택을 받는 대신 임원의 승인, 예결산 공개 의무 등을 이행해야 하지만, 종교단체는 이 법이 열거한 공익법인에서 빠져 있어 별도의 의무 조항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19)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없는 격이다. 더구나 여타 공익법인의 경우는 매우 까다로운 요건과 설립 절차가 필요하지만, 종교단체의 경우는 사단, 재단 법인이 아니라도 손쉽게 민법상 ‘법인으로 보는 단체’로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고, 간단한 등록 후면 종교단체로서의 모든 면세 혜택을 받게 된다. 이것은 의무와 책임이 균등하게 적용되고 투명성이 높아지는 사회 전체의 흐름에 부응치 않는 것이어서 양식 있는 이들의 날 선 비판을 면할 재간이 없다.

2006년 5월 종교비판자유실현국민연대(종비련)는 “종교인에 대한 근로소득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국세청의 직무유기”라면서 국세청장을 검찰에 고발하였다. 이 사건이 이슈화되자 〈한겨레신문〉, 〈동아일보〉 등 주요 언론사와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들이 일제히 종교인 소득세 과세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80% 이상의 국민들이 성직자들도 과세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20)

그러나 정부의 태도는 이런 국민 정서와 많이 떨어져 있다. 국세청장이 고발되자 마지못해 여론을 타진하는 듯하더니만 결국 종교단체의 눈치를 보며 유야무야시켰다. 검찰도 이 해 8월 “고의적인 직무태만이라 보기는 어렵다.”라며 국세청장을 무혐의 판결하였다.

다음해인 2007년 7월 권오규 당시 경제부총리는 종교인 과세를 당분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공식 발표함으로써 정부의 최종적인 입장을 확인하였다. 현 정부 들어서 종교인 과세를 둘러싼 논의는 더 진전되기 어려울 것 같다. 과세 문제에 매우 민감한 개신교 대형 교회들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하에서 국세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3. 종교단체 과세를 둘러싼 몇가지 쟁점

1) 교직자의 소득에 대한 과세
교직자에게 소득세를 과세하자는 여론에 대해 불교와 가톨릭은 대체로 찬성하는 편이고, 개신교는 대체로 반대하는 편이다. 불교의 경우 종단에서 소임을 맡고 있는 분들 절대다수는 면세점 이하이기에 세금을 과세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가톨릭은 이미 2004년 주교회의에서 교구별 자율 납부를 결의하였고, 일부 교구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는 진보와 중도 측 일부에서 찬성 의견이 있는 반면, 교단을 주도하는 보수 쪽은 대부분 반대 입장을 표하고 있다.

교직자의 소득세 과세에 대해 찬성하는 측은 △조세의 공평성 △국민 여론 △특수한 계급을 인정 않는 헌법 정신 △소득세법에 종교인에 대한 면세 조항이 없다는 것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이미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종교인에 대해 소득세를 과세하고 있고, 대부분의 교직자들이 면세점 이하의 소득이기 때문에 굳이 국민의 지탄을 받아 가며 면세를 고집할 명분도 실익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측은 △목사는 근로자가 아니다. △기부금 성격의 헌금에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이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성직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 교회의 세속화가 우려된다는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성직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례에 근거하여 목사를 근로자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반대의 주된 명분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조차 직접 세금을 납부했으며, 또한 신도들에게 과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자주 언급한 바 있어 과세를 거부할 교리적 명분은 없다. 또한 ‘이중과세’라는 주장은 기부에 의존하는 다양한 비영리단체들의 구성원들이나 국민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들이 이미 세금을 내고 있기에 설득력이 약하다.

 ‘성직자는 근로자가 아니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근로소득세의 근로 개념을 너무 협소화하였거나 특권적인 발상이 깔려 있다. 그 논리대로라면 대통령도 근로자가 아니기에 면세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세 반대의 명분이 약하다는 점 때문에 개신교 일각에서는 ‘종교인 소득세’를 별도로 신설하자는 일종의 타협안이 주장되기도 했다.21) 세금에 근로자란 이름이 붙지 않는다면 굳이 안 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부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내의 주류는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여의도순 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는 “35년 전부터 (세금을) 내 왔다.

내라고 해서 낸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 존재하고 수입이 있다면 당연히 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라며 “결국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정확한 원천징수를 알기 위해선 교회 재정과 세무 사찰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교회 행정에 목을 틀어쥐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22)

조 목사의 말을 통해 우리는 결국 문제의 핵심은 세금을 내는 그 자체보다 교회의 재정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거부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어쩌면 종교인들에게 소득세를 꼭 과세해야 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과세를 한다면, 과연 어느 항목까지 하느냐도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고정적으로 나오는 급여야 아무 이견이 없겠지만, 강의비 원고료 등의 부정기 수입(연간 수입이 1,500만 원 이상이면 과세 대상이다.)이나 신도들이 주는 희사금까지 과세할 것인가가 논란이 될 것이다. 미국식으로 하자면 당연히 이 소득들도 과세 대상이 되는 것이지만, 이것까지 과세한다면 아마 목사님뿐만 아니라 스님, 신부님들까지도 반대에 나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금이라는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철저하게 징수되는 특성이 있음을 감안했을 때 종교인 과세가 도입된다면, 매우 엄격하게 과세하는 미국식으로 갈 확률이 높다. 또 그것이 종교 본연의 가르침에도 맞다.

2) 종교단체 재산에 대한 과세
여론의 지지가 분명한 종교인 소득세 과세도 어려운 현실에서 종교단체 재산에 대한 과세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세금을 내야 할 종교단체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아마 모든 종교단체들이 연대하여 강력한 조세저항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종교인 소득세 납부를 찬성하는 종교인들, NGO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물론 종교인에 대한 소득세를 과세하고 있는 대부분의 현대 국가에서도 종교단체는 비과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종교를 갖지 않은 우리 국민의 50%, 아니 일반 종교 신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볼 수만은 없다.

종교단체 내에 비리, 횡령, 부패 사건이 늘상 발생하고 있는 데다, 이 부패가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조직화된 부패’ 수준에 이르렀다23)고 보는 종교인, 국민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음의 세 가지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 사회에서도 종교단체에 대한 과세 논의가 본격화되리라 본다.

첫째, 종교단체 면세의 헌법적 기반이 되고 있는 ‘정교분리’를 종교단체 스스로가 계속 허물어 갈 경우이다. 조세법률주의와 정교분리를 채택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종교단체에 대해 비과세하는 이유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다는 헌법 정신이 근거가 된다. 정치가 종교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반대로 억압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이 제도는 그러나 최근 들어 종교단체의 과도한 정치 개입으로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교 정당의 출현이다. 지난 18대 총선에 출마한 ‘기독사랑실천당(기독당)’, ‘평화통일가정당’은 각각 개신교와 통일교가 만든 정당이다. 이 가운데 기독당은 17대 총선에 이어 18대에는 3명의 지역구 후보와 10명의 전국구 후보를 입후보시켜 2.59%의 전국 득표율을 기록했다.

기독당은 정강정책 1항에 “기독교 정신으로 천본주의 정치를 실현하겠다.”라고 밝히고 있으며,24) 그 구성원 역시 성시화운동의 제창자인 김준곤 목사,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등 보수 개신교를 대표하는 목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인적, 물적, 이념적으로 분명한 종교 정당인 것이다.

기독당을 주도한 인사들이 사학법 개정 삭발 시위 등 워낙 정치적 행보를 많이 한 탓에 별다른 논란이 생략되었지만, 종교 정당은 정교분리 위반의 소지가 매우 크다. 이들은 독일의 기민당, 일본의 공명당 등을 전거로 들고 있지만, 독일은 아직도 정부가 종교세를 거두어 주는 기독교국가의 전통이 확연한 나라여서, 엄격한 미국식 정교분리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아예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일본의 공명당은 ‘창가학회’라는 재가불교단체가 창립한 정당이긴 하지만, 1970년 정교분리를 선언하고 창가학회와 분리되었다. 비록 인적자원이야 중복될 여지가 있다지만, 기독당처럼 면세 혜택을 받는 성직자들이 만든 정당도 아니고, 종교 이념을 정강정책으로 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일본은 1951년 제정된 종교법인법에 의해 국가가 종교단체를 사실상 관리하고 있는 나라다. 국가의 종교개입을 최소화한 미국형 정교분리 제도를 따르고 있는 한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조건인 것이다. 이런 차이들을 애써 눈감으면서 전후 일본의 국가 체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1962년 창당된, 그것도 이미 종교 이념이 탈각된 공명당을 이유로 대는 것은 너무 궁색하다 않을 수 없다.

비단 종교 정당뿐만 아니라, 성시화 운동 등을 통해 정치와 종교의 일치를 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한국사회에 커지고 있다. 이런 정교분리를 허무는 행위들이 종교단체와 일부 정치인들에 의해 늘어날수록 면세특혜가 철회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둘째, 종교단체들이 지금처럼 불투명한 회계 관행, 교직자의 사사로운 예산 남용과 전횡을 내부에서 개선하지 못할 때 과세 압력은 증대될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종교단체는 공익법인으로서 막대한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사회 일반에 비추어 매우 폐쇄적이고 전근대적인 재정 운영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부 사찰과 교회 등이 신도들에게 수입 내역을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전문가들의 회계감사를 받는 등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세상이 변하여 이런 문제를 지속적으로 눈감아 줄 국민들은 별로 없다. 과세가 되었든, 그동안 부여했던 면세 특혜 폐지가 되었든, 종교단체들이 지금처럼 돈관리를 해서는 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종교단체들이 지금처럼 막대한 수입의 대부분을 운영 및 선(포)교 예산으로만 사용하고, 이웃과 사회를 돌보는 데 인색하다면 그때도 과세 압력은 증대될 것이다. 개신교 내 교단 개혁 단체인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윤리실천 등이 구성한 ‘건강한 교회재정 확립네트워크’는 지난 2006년 교회 재정 운용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교회들이 사회에 베푸는 ‘구제비’는 평균 3.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97%는 종교단체 스스로의 운영과 확장, 선교 등을 위해 썼다.

다른 종교단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국민은 물론 신자들의 바람과도 어긋난다. 2004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71.3%의 종교인들은 헌금이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쓰이기를 바랬다.25) 종교단체가 앞으로도 자신들만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사용한다면, 면세 혜택을 계속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종교 내부에서도 줄어들 것이다.

정부도 국민 정서를 감안하여 최근 들어 종교단체의 과세를 점차 엄격히 하는 추세다. 2006년 국세청은 한 종교단체가 취득하여 목회자 자녀들의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는 부동산에 대해 “종교 목적에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취득세와 등록세를 내야 한다.”라고 결정하였다.26)

같은 해 서울의 한 사찰이 지어 놓은 요사채가 순수 종교시설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역시 재산세와 종토세 등 지방세 2억여 원을 부과하였다. 자녀들을 위해 바깥에 마련한 기숙사와 스님들이 경내에 머무르는 요사채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에는 이의가 있을 수 있지만, 종교단체의 재산이라도 직접적인 종교 활동에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되도록 과세하는 추세인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또 정부는 지난 2007년 말 비영리 공익단체의 기부금 공제 한도를 20%로 상향 조정하면서, 종교단체는 10%에 그대로 묶어 두었다. 이것이 종교단체의 불투명한 재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불신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국민 대다수가 종교단체의 돈에 의구심을 갖는 한 정부도 더 엄격한 잣대를 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3) 종교재산기본법 vs 종교법인법
1990년대 초반 종교단체 과세가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1990년 정부는 토지 공개념의 일환으로 땅값 상승률이 전국 평균의 1.5배를 넘는 개인·법인의 비업무용 토지에 대해 1년마다 상승분의 50%를 중과세하는 토지초과이득세(토초세) 제도를 실시하였다. 1992년 8월 이것이 종교단체의 토지에도 어김없이 부과되자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단체들이 거세게 항의하였다.

그러나 국민 여론을 의식하였던지 1992년 9월 27개 개신교 교단의 대표들이 결국 토초세를 내겠다고 선언하였다.27) 토초세 자체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아 징수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종교단체의 재산에도 중과세 될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 준 사례였다.

이를 계기로 개신교계 내에서는 교회나 목회자들이 소유한 임야가 사찰 임야와 달리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고, 또한 목회자들의 사택, 가옥 등이 과세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을 문제 삼으며 1993년 ‘기독교재산보호법’을 국회에 청원하였다. 이 법안을 발의한 임춘원 의원은 “기독교 재산에 대한 차별이 있으므로, 추후 종교재산관리 전반에 대한 법이 마련되기 전까지, 일단 특별법으로 기독교 재산을 보호하자.”라고 주장하였다.28) 이렇게 마련된 기독교재산관리법은 2002년까지 모두 세 번 이름을 바꿔 국회에 상정됐지만, 그때마다 부결되었다.

전사법과 같은 국가통제 조항이 없이, 재산 보호에만 비중을 둔 이 법안이 법리적으로 불합리한 데다 또한 정치권이 법 제정으로 인한 여러 파장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10년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자 개신교계는 2002년 대선에서 ‘종교재산기본법’의 제정을 들고 나왔지만 이는 불교, 천주교 등으로부터도 동의를 얻지 못했다.

개신교가 교회재산 보호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종교재산관련법의 취지와는 반대로 종교단체 재산의 투명한 관리와 운영을 위해 종교법인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종비련은 2006년 발기 제안서에서 △성직자들이 억대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도 소득세 한 푼 내지 않으면서 세무사찰을 하지 않는 현실 △교회의 재산이 총유(구성원 모두의 재산이라는 의미)라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당회 명의로 재산이 등기되어 사실상 명의신탁을 하고 있는 문제 △종교단체가 영리사업을 하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 문제 등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성직자와 종교단체의 세금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그동안 종교법인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종종 제기되었으나 이렇게 종교인, 종교단체의 재산에 대한 특혜를 전면적으로 문제 삼은 경험은 없었다.

최소한 재정투명성 부분에는 종교단체가 성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이 늘어났음을 보여 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쪽은 더한 특혜를 요구하고, 다른 한쪽은 더 이상의 특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니, 이 정도로 종교단체와 시민들의 의식 차가 상반된 현실이야말로 어쩌면 한국 종교가 맞고 있는 진짜 위기라 할 것이다.

4. 결론을 대신하여

종교가 국가와 국민 생활에 기여하는 바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만큼 큰 것이 사실이다. 또 면세점 이하의 소득으로 어렵게 사는 교직자들, 월세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형편의 종교단체들이 적지 않기에 무작정 과세하자는 것도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인들 스스로가 지금처럼 막대한 면세 혜택을 당연시하는 태도는 곤란하다. 역사적으로 봐도 종교단체가 꼭 면세 혜택을 누렸던 적도 없는 데다, 종교단체 역시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막대한 사회자본의 혜택을 항상 누리기에 공적 책무에서 무조건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들 대부분이 종교단체에 비과세하는 이유는 정교 유착 혹은 투쟁의 아픈 과거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지, 그것이 무슨 신성불가침의 권리여서가 아니다. 정교분리를 지키는 대가로 면세를 해 주고 있는 것이고, 그 관계가 유지되도록 시민들이 종교단체가 내야 할 비용을 대신 부담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 특혜가 유지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종교단체 내부에 달려있다. 종교단체들이 현행 면세 특혜조차 모자라 더 특혜를 달라고 떼를 쓰거나, 갈수록 가난한 이웃의 삶을 외면하면서 자신만은 여전히 불투명한 돈의 성역으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 이 특혜는 결코 오래갈 수 없을 것이다. 더 많이 누리려 할수록 더 빨리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종교사가 준 교훈이 아니었던가. ■

정웅기 / 동국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불교신문〉 기자를 거쳐 2000년부터 참여불교재가연대에서 일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방한준비위원회 사무국장, 티베트 평화연대 대변인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사무처장이자 불교아카데미 상임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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