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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시주 현황과 용도 / 이학종
이학종 미디어붓다 대표
[38호] 2009년 03월 10일 (화) 이학종 urubella@hanmail.net

들어가는 말

지난 설 즈음에 한 스님을 만났다. 그 스님은 조계종의 중진 스님으로 꽤 큰 절의 주지를 맡고 있는 분이다. 두어 시간의 대화를 통해 그 스님으로부터 한국불교의 제반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한국불교의 미래가 아주 어둡지는 않다는 실낱 희망을 보았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말 그대로 아쉬울 게 없는 기득권에 속한 스님의 입에서 터져 나온 종단 현실에 대한 진솔한 고민은, 어떤 계기만 주어진다면 한국불교가 새로운 희망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지금처럼 문화재 관람료에 의지하는 한 한국불교의 미래는 없다는 것, 관람료 징수 사찰 가운데 어지간한 절들은 실제로 관람료를 받지 않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것, 부자 절, 가난한 절, 부자 중, 가난한 중이 버젓이 존재하는 출가 승단의 잘못된 구조를 혁파해 내야 하고, 자정 능력이 상실된 현재의 시점에서 이런 일들은 지난 1994년 종단개혁불사처럼 사부대중의 힘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 등이 이 스님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문제는 사찰 또는 종단, 교단의 재정적 흐름의 왜곡에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출가 승단이 재가불자의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제3의 재정에 의존하고 있을 때, 재가불자들이 시주의 본래적 의미와 정신을 망각하고 구복과 영험, 또는 자신 드러내는 것을 위해 시주를 할 때 불교 교단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불교가 건강하게, 바르게 살아가는 필요충분조건은 시주 정신의 회복이다. 시주, 이것은 간단하게, 만만히 볼 대상이 아니다.

1. 시주(施主)의 뜻

시주는 ‘보시를 행하는 주인(주체자)’을 뜻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재물이나 법을 베푸는 사람이란 뜻이다. 불교에서의 시주는 이런 면에서 스님이기도 하고, 재가불자이기도 하다. 법, 즉 부처님이 가르친 진리를 전하는 시주자(法施)는 출가한 스님이고, 불법을 공부하고 전승해 가는 승단에 재물을 제공하는 시주(財施)는 재가의 불자들이다.

그러므로 시주라는 개념은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의 개념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다만 오랜 세월 동안 재가의 불자들이 절에 재물을 올리는 것을 시주라고 불러왔으므로 시주라고 하면 스님이나 승단에 올리는 재가자의 기부 행위를 뜻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인과의 법칙을 크게 강조하는 불교에서 시주가 쌍방향의 개념을 갖고 있다는 점을 경시해서는 곤란하다. 시주와 관련하여 옛 스님들은 시은(施恩·시주의 은혜)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가장 두려운 것이 시은(施恩)”, “시주물 받는 것을 화살 받듯이 하라”는 등의 말은 20세기를 살아갔던 대부분의 큰스님들로부터 듣는 공통적인 말이었다.

 큰스님들은 그 높은 수행력과 감화로 수많은 불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음에도 늘 시주의 은혜에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범망경(梵網經)》1)에는 “파계(破戒)한 몸으로 신심 있는 사람이 바치는 갖가지 공양이나 물건을 받지 마라. 보살이 만약 이러한 서원을 세우지 않으면 경구죄(輕垢罪)를 짓게 된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밥값도 못하고 있다.”라거나 “나는 밥만 축내는 못난 사람(식충이)” 등의 말을 역대 큰스님들이 토로한 것은 재가불자들의 시주에 대해 수행의 결실을 이뤄 보답하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의 뜻이 담겨 있다.

2. 경전에 나타난 시주의 개념과 정신

초기경전에는 시주(재가자의 보시)와 관련된 내용이 적지 않다. 출가승단의 운영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이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시주의 개념과 원칙을 잘 보여 주는 경이 쌍윳다니까야에 나와 있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쌍윳다니까야 7 《브라흐마나 쌍윳다》 2: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브라흐민 마을인 에까날라에서 가까운 마가다 사람들이 사는 곳인 닥키나기리에 계셨다. 그때 브라흐민 까시 바라드와자는 파종할 때가 되어 오백 개의 쟁기를 멍에에 실었다. 이때 부처님은 탁발하기 위해 까시 바라드와자가 마침 음식을 분배하고 있는 곳으로 가셨다. 브라흐민 까시 바라드와자는 부처님을 보고 말하였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그대도 또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드십시오.”
“브라흐민이여, 나 또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고따마 존자님의 멍에나 쟁기, 밭가는 연장, 소몰이 막대, 황소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고따마 존자님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는다고 하십니다.”

브라흐민 까시 바라드와자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는 밭 가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대의 밭 가는 것을 보지 못했네.
그대가 밭 가는 사람이라면, 말해 주시오
그대의 밭 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이에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믿음은 씨앗이며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나의 멍에와 쟁기이며,
마음은 멍에의 끈이며, 부끄러움은 막대기이며,
마음챙김은 보습과 소몰이 막대일세.

몸을 단속하고, 말을 조심하고, 음식을 알맞게 먹습니다.
진실은 나의 제초기이며, 온화함은 멍에를 벗음일세.
정진은 나의 짐을 진 소이며,
속박으로부터 안온함으로 이끈다네.

쉼 없는 정진으로 슬픔 없는 곳에 이르네.
이렇게 밭갈이가 끝나면 불사의 열매를 거두며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네.

부처님은 이 경을 통해 수행자가 재가의 신자들로부터 밥을 빌고, 승단의 운영에 대한 재정적 뒷받침을 받는 이유에 대해 당당하게 설명했다. 불사의 열매를 이룬 수행자들이 체득한 무상의 진리를 펼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과 행복, 궁극적으로는 해탈로 이끄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므로 승가가 곧 복전(福田)2)임을 강조한 것이다. 어디에도 꿀리는 대목이 없다. 시주의 대상으로서 추호의 부끄러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시에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은 보시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보시하는 자와 받는 자, 그리고 보시물이 모두 청정할 때 그 공덕이 으뜸이고, 보시하는 자와 받는 자, 보시물이 다 청정하지 못하면 공덕은 없다고 가르쳤다.

*네 가지 종류의 보시의 청정(맛지마니까야 142 《닥키나위방가경》 9-14)

이어서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에게 보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아난다, 보시의 청정에 네 가지 종류가 있다.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고 받는 자는 청정하지 못한 보시.
보시하는 자는 청정하지 못하지만 받는 자는 청정한 보시.
보시하는 자도 받는 자도 모두 청정하지 못한 보시.
보시하는 자도 받는 자도 모두 청정한 보시.

계행을 지키는 사람이 계행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얻은 것을 보시하면
보시하는 사람의 계행이 보시를 청정하게 하네.

계행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계행을 지키는 사람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이 없이
바르지 못하게 얻은 것을 마지못해 보시하면
받는 사람이 계행이 보시를 청정하게 하네.

계행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계행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도 없이
바르지 못하게 얻은 것을 마지못해 보시하면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둘 다 보시를 청정하게 하지 못하네.

계행을 지키는 사람이 계행을 지키는 사람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얻은 것을 기꺼이 보시하면
그 보시는 커다란 과보를 가져온다고 나는 말하네.

탐욕을 떠난 사람이 탐욕을 떠난 사람에게
행위의 과보가 크다는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얻은 것을 기꺼이 보시하면
그 보시는 이 세상의 보시 중 최상의 보시라고 나는 말하네.

3. 시주에 깃든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

그런데 시주는 반드시 조건 없이 주고 그 결과를 따지지 않는 것만이 절대적인 원칙은 아니다. 시주의 의미에는 승단에 대한 조건 없는 공양이라는 것도 있지만, 승단이 건강하게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때에 시주의 의미가 있다는 점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만일 재가불자들이 올리는 시주가 승단의 갈등이나 부패, 부조리를 지속시키거나 확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이뤄진 시주라고 하더라도 시주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불전(佛典) 가운데 꼬삼비 비구들의 논쟁(율장 《마하박가》 10편 1:1-2:20, 4:6-5:14)에 나오는 내용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실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꼬삼비 비구들의 논쟁이란 부처님께서 꼬삼비의 고시따 승원에 계실 때, 그곳의 비구들은 어떤 비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여 징계를 하고, 징계를 당한 비구는 이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에게 동조하는 무리들과 함께 심하게 반목을 한 사건을 말한다.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논쟁을 중단하고 화해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해결하겠다며 다툼과 논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 부처님은 ‘원한은 원한에 의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당부를 디가우 왕자의 이야기를 예를 들어 말씀하시고는, 끝내 비구들이 뉘우치는 기색이 없자 발우와 가사를 꾸려 꼬삼비를 떠났다. 부처님 당시에 있던 이 이야기의 일부를 살펴보기로 하자.

부처님은 빠릴레야에 도착하셔서 락키타 숲의 훌륭한 살라 나무 아래 계셨다. 부처님은 명상하는 동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 나는 꼬삼비 비구들의 논쟁으로 괴로웠다. 그들은 승단에서 싸우고 논쟁하고 계율적인 문제를 제기하여 나는 편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홀로 있다. 다투고 논쟁하는 비구들로부터 떠나 있으니 내 마음은 편안하구나.’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로 가셨다. 한편 꼬삼비의 신도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꼬삼비의 비구들은 우리에게 많은 손실을 가져왔다. 부처님은 이 비구들의 괴롭힘으로 말미암아 여기를 떠나셨다. 꼬삼비의 비구들에게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서지도 말고, 합장하지도 말고, 신자가 할 일을 하지 말자. 존경하지도 말고, 공경하지도 말고, 그들이 걸식 나와도 공양을 올리지 말자. 이와 같이 그들이 신도들로부터 존경도 받지 못하고 공경도 받지 못하면 그들은 승단을 떠나든지 아니면 부처님께 나아가 화해할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로부터 존경과 공경도 받지 못하고 공양도 얻을 수 없게 되자 비구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들이여, 사왓티로 가서 부처님을 뵙고 이 계율적인 문제를 해결합시다.”
그래서 정권3)된 비구의 무리들과 정권시킨 비구의 무리들은 모두 부처님께 나아가, 잘못한 비구는 참회하고 자신이 잘못했음을 고백하고 정권이 타당하다고 고백하였다. 그래서 그의 정권은 복권되었고 상대방 비구들에게도 잘못을 고백하고 모두 서로 화해하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런 복권 예식 직후에 우뽀사타4) 예식을 행하고 빠띠목차5)를 암송하라고 말씀하셨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경에는 매우 주목할 만한 교훈이 담겨 있다. 부처님의 간곡한 당부도 귀담아 듣지 않았던 비구들이 신도들의 공양 거부, 존경 거부라는 압박에 백기를 들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올바른 시주가 무조건적 공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승단을 온전하게 기능하게 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사실 이 경이 주는 이 교훈은 이번 글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4. 한국 불교(조계종)의 시주 문화 현황과 대안 모색

오늘날의 한국불교 시주 문화는 갖가지 복잡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부처님 당시처럼 승단이 결코 재가불자들의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출가 승단이 시주에 의존하지 않다 보니, 시주의 은혜에 대한 개념이 무너지고, 결과적으로 승단이 부패하고, 빈부의 문제를 노정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조계종의 일반회계 예산안(<표1>)은 한국불교가 얼마나 재가불자들의 시주에서 벗어나 운영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올 조계종의 총예산 197억 4천5백만 원 가운데, 각 사찰의 분담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164억 7천8백만 원이다. 그러나 문제는 사찰 분담금이 곧 재가불자들이 각 사찰에 시주한 시주금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체 예산의 83.5%에 이르는 분담금 중에서 특별 분담금이나 관람료 분담금, 직영 분담금 등 문화재 관람료 사찰이나 유명 기도처 등에서 거둬들인 비중이 60%에 육박하는 것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같은 추세는 지난해(2009년도) 세입예산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데, 대표 종단 조계종의 살림살이가 보통의 재가불자들에 의한 일반적인 시주가 아닌 특별하게 얻어지는 재원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시 말해 재가불자들의 직접적인 시주에 의존하지 않고 있으므로, 존속 여부가 불투명한 관람료 수입이나, 기복에 치중된 한국불교의 오랜 관습이 남방불교 수행법의 확산 및 미국 등 서구 불교의 역수입으로 흔들릴 경우에는 특별·직영 분담금의 감소가 불가피해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또한 일반 사찰의 분담금도 대개가 불공이나 기도, 각종 재(齋) 등의 특별 수입에 의존한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조계종도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종단 재정 기반 확대를 올 9대 핵심과제 중의 하나로 정하고, 수익사업의 효율적 운영과 다양한 수익구조 마련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종단이 제시하고 있는 방안은 청정한 승가의 회복과 청정한 재시의 부활이라는 좀 더 근원적이 해결책과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주로 사업에 의한 수입이나 신도 교무금이 기타 수입에 해당하는데, 종단이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한 효용성이나 타당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분분하다. 특히 종단의 조직력을 가늠 해볼 수 있는 연간 2억 3천만 원 수준의 신도 교무금의 경우는 1천만이 넘는 신자를 보유한 한국불교의 대표 종단으로서는 부끄러울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해마다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한국불교 개(個) 사찰의 신도 조직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종단의 골격을 가장 잘 갖추고 있다는 장자(長子)종단 조계종조차 소속 사찰의 시주 현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종단에서 사찰 재정 현황을 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가도 절반 미만(약 40%)의 사찰만이 지극히 형식적인 답변을 하고 있을 정도다. 다만 봉은사만이 지난 2007년부터 재정 공개를 해 세간의 화제를 모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불교 사찰들의 재정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의 반증이다. 그 밖에 신설된 도심 포교당 등에서 일부 재정 공개를 하고 있지만, 미미한 실정이다.

조계종을 지탱하는 재정 수입은 이처럼 문화재 관람료와 석굴암, 낙산사 등과 같은 특별히 많은 재정 수입을 올리는 절을 상대로 한 특별 분담금, 갓바위 등 총무원 직영 사찰에서 거둬들이는 직영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든 올 조계종의 특별회계 세입 예산안 총괄표(<표2>)에 따르면, 시설 특별회계나, 교육불사기금 특별회계 등이 사찰 토지 처분금이나 관람료 분담금, 희사금, 사업 수입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재정적 기반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제도의 변화, 재가불자들의 의식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근본 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사찰 유형별 재정 수입 현황을 개괄해 살펴보기로 하자.

1) 문화재 관람료 징수 사찰
다 아는 것이지만, 국보(國寶)와 보물(寶物) 등 국가지정 문화재6)를 소장하고 있는 고찰들은 재정의 상당 부분을 사찰 입장객들로부터 징수하는 문화재 관람료에 의지하고 있다. 문화재 관람료의 징수는 대략 1960년 말경부터 시작되었는데, 전쟁 이후 민둥산이 대부분이던 당시 휴양지로서 자연적 조건을 갖춘 곳이 명산대찰 외에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문화재 관람료의 징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관광객을 상대로 밥장사 등을 하면서 궁핍하게 절의 살림을 이어 가던 사찰과 국가지정 문화재의 보존 관리 비용을 관광객들의 입장료에서 일정 부분 부담시키려는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가능했다.

그러나 사찰의 입구를 막고 관람료를 징수하면서 문화재 관람료 징수 사찰들은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 우선 지역 주민과의 자연스러운 소통이 줄어들어 소원한 관계가 되었고, 사찰 운영의 대부분을 관람료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관람료 수입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이 거듭되면서 여가를 즐기려는 관광객의 증가와 비례해 규모가 확대되어 왔고, 자연스럽게 사찰 수입의 근간이 되었다. 나아가 관람료 사찰 특별 분담금이란 명목으로 중앙종무기관의 재정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문화재 관람료 징수 이후 관람료 사찰들은 이른바 힘 있고 영악한 승려들의 각축장이 되어 종단 분규의 원인이 되었다. 물 좋은 사찰을 차지하기 위해 종단정치가 생겨났고, 정치승 권력승 따위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는 시주를 무섭게 여기던 과거 절집의 시주 정신을 희미하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왜곡된 교단 운영을 하게 하는 단초가 되었다.

2) 유명 기도 도량들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는 기도 도량, 소원성취 도량, 무슨 무슨 기도처, 무슨 무슨 성지 등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전법 도량이 아니라 불보살이 가지고 있는 위신력에 기대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선전하는 기도 사찰은 기도를 하려는 불자들로 늘 북적댄다.

이런 유명 기도처들이 전국적으로 수십 개소가 산재해 있다. 이런 절들은 기도를 하려는 불자들이 몰려들어 재정적으로 풍족한 편이다. 몇몇 기도처는 어지간한 문화재 관람료 사찰들보다 훨씬 더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기도 도량들은 재가불자들의 시주금으로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개가 전국에서 온 불자들로 참배객이 이뤄져 있어 재가신도의 조직화는 기대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보다는 영험에 의한 개인적 발원성취에 치우친 불자들이 대다수여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시주의 원칙적 개념과 정신을 적용하기 어렵다. 이런 기도 도량도 형식적으로는 재가신도의 시주에 의해 운영되지만, 그 개념이 철저히 영험가피를 바라는 소아적 욕망에 근거하고 있어, 건강한 사찰 운영의 기능 회복을 위한 견제 장치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3) 천도재 전문 도량
사실 보통 사찰에서 천도재7)를 봉행하는 것은 그리 오래된 전통은 아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절집에서는 주로 49재나 백중날의 우란분재8)를 지내는 정도가 재의 대부분이었다. 천도재라는 개념은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 사찰보다는 무속인들의 당집이나 그들과의 구분이 모호한 군소 종단들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천도재가 절집의 주된 수입원으로 급속히 자리매김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것으로, 철저한 수행의 모습으로 재가불자들로부터 시주 공양을 받는 절은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아예 내놓고 방편에 의존하는 절들이 늘어났다.

조불조탑(造佛造塔)이 시들해질 즈음 신도들의 시주를 유도하기 위해 많은 방편들이 양산됐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천도재다. 이런 의미에서 사찰 천도재의 성행은 우리나라 재가불자들의 왜곡된 시주 문화의 한 표징인 셈이다. 서울이나 수도권, 지방 대도시의 대찰들 중에서 급성장한 사찰들의 상당수는 천도재에 의존한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한국불교 총본산을 자처하는 절에서도 아예 내놓고 천도재와 구병시식을 지내고 있어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재가불자들의 열띤 호응 속에서 성과를 거둬들이고 있다는 소식이니, 절만 탓할 일도 아니다. 재가자로부터 방편이라는 이름으로 시주를 유도하고, 개인적 욕망의 성취를 위해 이에 호응하는 시명(是名)불자들이 함께 만든 공업(共業)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찰들에게 천도재 도량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도 이들 사찰이 법보다는 방편에 의지하는 한국불교의 모습을 잘 드러내 보여 주기 때문이다. 천도재는 사실 역사성과 정통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조계종 이전에 증산 계통의 유사 불교 교단이나, 불교 종단을 표방한 군소 종단(단체)들에서 먼저 유행한 것이다.

천도재에 대한 호응이 예상 밖으로 크자 조계종의 사찰들도 천도재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천도재를 본격적으로 한 사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찰들은 49재를 7×7재로 나눠 재의 수를 늘렸고, 백중 ·100일기도 등 다양한 재를 도입하면서 천도재를 확산시켜 나갔다.

절마다 봉행했던 물고기 방생의 빈도가 크게 줄어든 것도, 물론 환경단체 등의 반대 등도 있었지만, 효용 면에서 천도재에 밀린 영향이 없지 않다. 중앙승가대 류승무 교수는 조계종 중앙종회 재정분과위원회의 의뢰에 몇몇 표본사찰의 사찰 재정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정확한 계량화는 어렵지만 재(齋)로 인한 수입이 전체 수입의 80%가량을 차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고정적 수입인 인등비 수입이나 불전 수입 등 기타 수입은 20%선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종류의 재화도 물론 절에 올리는 시주이기는 하지만, 조건 없이 승단을 위해 수행하는 청정한 스님들을 위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천도, 영험, 소원 성취, 치료 등의 구체적인 대가를 전제한 시주이기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시주의 본래 정신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교육된, 올바른 시주에 깃든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불자들의 시주물에 의해 한국의 불교 승단이 유지되고 운영되지 않고 있으므로, 출가 승단 스스로 자정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한 건강한 출가 승단을 유지시키기 위한 뾰족한 대책이 없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불교 교단이 일탈된 모습을 보일 때면 접하곤 하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오신다고 해도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탄식은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다.

5. 희망을 보여 준 강남 봉은사

2007년 예·결산을 공개해 주목을 받았던 봉은사는 올해부터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종무회의에 신도들의 참여를 대폭 확대했다. 사부대중 공의에 의한 사찰 운영을 선언한 것이다. 지난 1월 22일 열린 봉은사 종무회의에는 주지 스님과 총무 스님 등 소임자 스님, 종무실장 등 종무소 팀장급 이상의 재가 소임자, 신도회 회장과 부회장 등 회장단 그리고 사무총장과 4명의 부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올해 사업 계획과 예산안 심의를 주요 안건으로 다뤘다. 종무소 소임자들의 설명을 듣고 2시간이 넘는 토론을 거쳐 사업 계획과 예산을 확정했다. 이런 장면은 불교계에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던 일이다. 신선한 충격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봉은사의 사찰 재정 공개와 사찰 운영에 신도 참여는 사실 지난 1994년 조계종 종단개혁불사 이후 10월에 제정된 ‘사찰운영위원회법’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른바 종단 개혁을 이룬 주체들조차 개혁의 성과로 자신들이 만든 종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총무원도 사부대중 공의에 의한 사찰 운영을 적극적으로 독려하지 않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사찰운영위원회법이 현실적으로 이상적인 법에 불과하다는 인식과 관행이 도사리고 있다. 봉은사의 재정 공개는 이런 현실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봉은사는 재정 공개를 시행한 지난 2년 동안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봉은사를 통해 한국불교가 달라질 것이다. 이는 앞으로의 변화도 지켜봐 달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허언이 아닌 이유다. 재정 공개와 재가신도들의 사찰 운영 참여는 사찰의 변화로 이어졌다.

봉은사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우선 자원봉사를 하는 신도들이 부쩍 늘었다. 현재 400여 명의 신도들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이 가운데 반수 이상이 매일 사찰에 나와 화장실 청소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봉은사 신도라는 자부심이 불러온 결과다. 자연 등록신도 수도 늘었다. 2007년에 3,700가구, 작년에 4,100가구 등 2년 동안 무려 7,800가구의 신도가 늘어났다. 현재 신도는 20만을 넘는다.

 놀라운 증가율이다. 재정 규모도 2007년에 전년에 비해 3%, 2008년에는 12% 증가해 100억 원을 넘어섰다. 봉은사의 올해 예산은 114억 원이다. 이 가운데 22억 1천5백만 원을 사회복지사업에 쓴다. 전체 예산의 19.4%에 이르는 액수이다. 지난해 사회복지 예산은 15억 원이었다.

조계종의 발전적 변화는 모든 사찰이 봉은사 모델을 얼마나 빨리 도입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태종이나 진각종 등은 비교적 체계적인 재정 관리를 하고 있지만 완전한 공개나 재가자의 운영 참여는 요원한 실정이다.

물론 사찰 재정 문제에 관한 논의가 불교계에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간헐적으로 사찰 재정과 관련한 세미나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논의가 제안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실천불교승가회가 주관한 ‘사찰경영연구 세미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2006년 11월 30일 실천승가회는 ‘사찰 재정 위기, 해법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었다.

이 세미나는 ‘불교의 교화력과 리더십의 회복’, ‘재정 투명성과 인사 공정성의 확보’, ‘승려 신분의 불안정성 해소’, ‘승가의 청정성 회복’, ‘모범 사례 따라 배우기 위한 인센티브제의 도입’ 등을 결론으로 도출했다. 이 자리에는 종단 및 종회의 주요 인물들이 참석했지만 세미나의 결과가 종단 정책에 반영되거나 하는 결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 세미나에서 당시 봉은사 연구위원으로 일했던 김관태 씨는 발제를 통해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에 따라 예상되는 문화재 관람료의 급감, 신도 수의 실질적 감소, 낮은 정기적 신행 비율 등이 사찰 재정 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안정적인 사찰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 찾기의 절박성을 강조했다. 또 당시 조계종 총무원의 현직 재무부장도 참석해 약 3억 평에 이르는 종단 소유 토지 관리를 통한 재정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공원 구역으로 편입된 토지의 권리 찾기 계획도 마련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나온 여러 의견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정웅기 사찰경영연구소 부소장의 발언이었다. 정 부소장은 불교계(조계종)의 재정 확보는 주로 건축불사(조불조탑) 등을 통해 큰돈을 쉽게 확보하는 구조였지만, 앞으로는 적은 돈을 꼼꼼하게 모으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찰이 하루 빨리 재가신도들의 시주에 의존하는 사찰 운영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 부소장은 이와 관련해 정신적 공허감을 채워 주는 프로그램의 개발, 신도 중심으로 종무행정 조직의 변화, 공동체성의 회복을 주장했다.

지난해(2008년) 2월 18일 열린 실천불교승가회 산하 불교미래사회연구소(소장 법안 스님)의 세미나에서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사찰 재정 운영 방안으로 ‘자금관리서비스(CMS: Cash Management Service) 도입’이 제안되기도 했다. 사찰 수입 중 정기적이고 정액으로 발생하는 불공 수입인 초하루, 보름, 지장, 관음재일 기도비와 인등비 등에 CMS제도를 도입해 예측 가능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재가불자들의 공양을 정례화하는 방안으로 의미 있는 것이었다. 이 세미나에서는 용인의 좋은절, 수미산 불국사, 부산 미타선원 등 사찰CMS제도를 운영하는 사찰이 소개되기도 했다.

6. 시주 문화 정상화, 조짐은 보인다

정상적인 시주 문화의 회복은 온전하고 건강한 한국불교의 정립과 직결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불교 승단의 모습은 올바른 시주 문화의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렇게 되기에는 대외적인 여건도 여건이지만 출가 승단과 재가불자들의 인식이나 의식 수준의 한계가 더 커 보인다. 그러나 절망할 때는 아니다. 앞서 소개한 한 종회의원 스님의 말씀처럼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이 과연 불교계에 좋은 것인가에 대한 반문들이 교계 바깥은 물론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문화재 관람료 징수에 대한 일반 국민의 비판 여론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300억 안팎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 과정에서 불교가 입는 부정적 이미지의 비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문화재 관람료 징수로 인해 불교계가 안는 부정적 이미지를 돈으로 환산하면 그 액수가 300억을 훨씬 넘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확산 중이다.

또한 교육받은 불자들이 많아지는 것도 시주 문화 변화의 한 축이 될 전망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원찰을 정해 놓지 않거나 아예 사찰을 다니지 않는 경우도 많다. 불교를 공부했고 부처님께 귀의했지만 절에는 가지 않는다. 등산길에서, 혹은 여행길에서 만나는 절에 들어가 조용히 참배를 하지만 소속 사찰은 없다. 절에 나가지 않으면 불자라고 할 수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문제는 이런 숫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사찰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방편 도량이 아니라 정법 도량이라는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사찰 수입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천도재의 유행도 차츰 그 끝을 보이고 있다. 천정을 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천도재란 의미상 매우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 의식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유행하다 보니 그 부작용이 공영 텔레비전에 방영되는가 하면, 심각한 말썽을 빚는 경우가 도처에서 늘고 있다. 천도재의 극성에 대해 ‘천도재 효과가 다 떨어지면 이제 무엇으로 절을 운영할 것이냐’고 일갈한 저명한 불교 칼럼니스트 윤청광 선생은 사찰들이 부처님의 정법으로 돌아갈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해 시비가 일기도 했다.

절에 국가지정 문화재가 즐비하면서도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지 않는 고찰들도 드물긴 하지만 존재한다.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 미황사에는 보물과 지정문화재가 많지만 관람료를 받지 않는 대표적 사찰이다. 관람료를 징수하기 위해 일주문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매표소를 설치하는 순간 절은 지역 주민과 유리된 공간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람료를 받기 위해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 그리고 지역민과의 단절과 부정적 이미지를 고려하면 절문을 활짝 열고, 다양한 불교 프로그램 운영으로 지역민과 또 전국의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미황사는 잘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꼬삼비의 논쟁’이 보여 준, 교단을 바르게 가도록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승단에 시주(공양)를 하는 재가의 불자들이라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승단이 이런저런 문제점을 자주 내보이면서도 스스로 자정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새삼스러워 할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은 부처님 재세 당시에도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므로 좌절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을 짧은 경전을 통해 제시한 부처님 가르침의 의미를 되새기고, 시주의 주체인 재가불자들부터 건강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강남 봉은사의 재정 공개와 재가불자들의 사찰 운영 참여확대 결정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봉은사가 보여 준 성과는 화계사 등 다른 사찰로 확산될 조짐이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한국불교가 다시금 건강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의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나가는 글

한국불교의 시주 문화는 크게 왜곡되어 있다. 시주자의 청정성, 시주 받는 자의 청정성, 시주물의 청정성 등 삼륜청정9)의 정신은 물론이고, 승단 자체가 재가불자의 시주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지 않다는 한국적 특수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사찰(교단) 운영의 재정적 기반은 순수한 시주→농사 또는 밥장사 등의 자업자득→문화재 관람료 및 기도처 기도비 수입→방생·천도재 등 방편에 의한 시주금 유도(쥐어짜기) 순으로 갈수록 본질에서 멀어졌다.

시주 문화의 왜곡은 원칙적으로 일의일발(一衣一鉢)만을 인정하는 승단 내부에서조차 빈부 격차를 발생시켰다. 이런 문제는 결국 승려 간 위화감 조성, 종단 분규, 승려의 타락으로 이어졌다. 승려 개인은 부자지만, 사찰이나 종단은 가난한 비틀린 현상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화마가 휩쓸고 간 강원도의 잿더미 산간에서 새로운 생명의 싹이 틔듯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단 곳곳에서 자성과 함께 변화를 향한 원력이 확산되는 중이다. 이런 변화의 조짐이 가야할 방향은 교단 운영의 공공성 확보와 시주 문화의 올바른 정착이다. 변화의 조짐을 건강한 교단 건설로 이어 가는 것은 우리 시대의 사부대중 앞에 놓인 공업이다.

견제가 없으면 어떤 집단이든 타락할 수밖에 없다. 노력 없이 살 수 있다면 게을러질 수밖에 없다. 21세기 한국불교계에 타락과 게으름이 만연하는 것은 천민자본주의가 절집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지난 세기의 뒤틀린 시주 문화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출가 승단은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시주의 정신으로, 역대 고승들이 일생을 통해 강조했던 시은(施恩)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재가불자들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조건을 내세우지 않는 삼륜청정의 시주 정신으로, 또 결국에는 건강한 출가 교단 유지를 위한 마지막 견제 수단으로 시주를 생각해야 한다. 어느 것도 개인의 이익이나 이해를 우선에 놓아서는 한국불교를 살릴 수 없다. 부처님께서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을 설해 놓으셨다고 해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다. 부처님께서는 《담마빠다》10)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울지라도
그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은
남의 소만 세고 있는 목동과 같아
깨달음의 대열에 들어갈 수 없다.

시주의 올바른 정신을 부처님이 아무리 강조한들, 불자들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무주상 보시, 삼륜청정 보시의 중요성을 부처님께서 간곡히 말씀하셨지만, 이를 그 제자들이 가벼이 여기고 지키지 않는다면 경전의 가르침처럼 남의 소만 세고 있는 목동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올바른 시주 문화의 정착, 이것은 한국불교를 다시 살리는 길이다. ■

이학종 /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했으며,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에서 불교학을 전공했다. 1988년 〈법보신문〉 창간과 함께 입사하여 편집데스크를 거쳐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08년 4월부터 불교 인터넷 언론인 〈미디어붓다〉를 창간, 대표기자를 맡고 있다. 저서로 《산승의 향기》 《가정법회》 《선을 찾아서》 《돌에 새긴 희망》 《인도에 가면 누구나 붓다가 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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