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중 경희대 철학과 교수

필자가 불교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된 것은 대학교 때부터이다. 그때 한국에서 불교 입문서로 가장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었으니 원효의 《대승기신론소》, 보조의《보조법어》가 그것이다. 전자는 대승불교의 기본 교리를 잘 요약해 주는 ‘조직신학’과 같은 책이고, 후자는 한국 전통의 ‘선불교’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입문서이다. 이후 필자는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지금도 한국불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이 두 가지를 제일 우선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철학을 공부하다가 《장자》를 읽으면서 그 철학 기반에 원효와 매우 유사한 공동 구조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물론 불교와 도가는 근본적으로 일치하지는 않지만 그 철학적 논리구조가 흡사한 면이 놀라울 정도였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이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첫째, 이들은 언어와 시비분별을 넘어서고자 한 점에서 일치한다.

원효(元曉; 617~686)가 살던 시대에는 이미 불교의 여러 가지 종파와 사상이 도입되어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서로 다른 교설들의 대립’이나 ‘세속과 종교의 대립’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효는 언어와 교리에 집착하지 않으면 대립을 넘어선 회통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니, 이것이 그의 유명한 ‘화쟁사상’이다. 원효는 다방면에 걸쳐 독서를 하고 저술을 하였지만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일심(一心)과 화쟁(和諍) 두 개념으로 요약된다. 여러 가지 언설의 시비(是非)를 넘어서 일심에 귀의할 것을 원효는 주장했던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그의 변증법적 관점에서 잘 나타난다.

“비판함이 없으되 비판하지 않음이 없고, 주장함이 없으되 주장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치 없음에 큰 이치가 있고(無理之至理) 그렇지 않은 것 속에 크게 그러함이 있다(不然之大然)고 할 것이다.”(《金剛三昧經論》)
장자(莊子)가 살던 시대에도 많은 제자백가들이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다른 입장을 비판하고 있었다. 장자는 언어의 시비분별을 넘서서 자연의 도리(天道)에 돌아갈 것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물은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저것은 이것에서 생기고 이것은 저것에서 생긴다. 긍정(是) 때문에 부정(非)이 있고 부정 때문에 긍정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은 시비에 의존하지 않고 천도에 비추어 본다”(《莊子》, 〈齊物論〉)

결과적으로 원효가 화쟁론(和諍論)을 통하여 일심에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논리는, 장자가 제물론(齊物論)을 통하여 천도에 돌아갈 것을 내세우는 이론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둘째, 원효와 장자는 해방과 달관을 추구한 점에서 일치한다.

먼저 장자의 경우를 보자. 장자 철학의 핵심은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과 달관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장자가 추구한 진인(眞人)은 일체 세속의 욕망과 제도에 구속되지 않는다. 또 모든 지식과 언어로부터 자유롭고자 한다. 그가 살아가는 방식은 마치 이 세상에 소풍 온 것처럼 자유롭게 사는 것(逍遙遊)이다.

초나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장자를 정승으로 삼으려 하자 그는 말했다: “당신은 제사에 쓰이는 소를 보지 못했습니까? 여러 해 동안 잘 먹고 잘 살다가 어느 날 제물로 태묘에 보내지는데 그제서야 평범한 돼지를 부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는 한평생 벼슬하지 않고 내 맘대로 살겠습니다”. 그는 심지어 생사의 구속도 벗어났으니, 그의 부인이 죽었을 때 장자는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원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모든 지식과 선입견, 욕망과 제도로부터 자유롭고자 했으니 그래서 《삼국유사》에서는 원효 항목의 제목을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다(元曉不羈)’라고 했던 것이다. 그가 추구한 화쟁은 일체의 언어적, 사회적 구속을 넘어서 세상을 달관하는 것이었다.

실제 생활에서 그는 과부였던 요석 공주와 결혼하여 파계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머리를 기르고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 칭하며, 광대들의 큰 박을 가지고 무애무(無碍舞)라는 춤을 추고 노래하며 다녔다. 이렇게 행함으로써 귀족사회와 상류층에서만 신앙되던 신라의 불교를 널리 대중화시킬 수 있었으니, 방편행으로 실천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삶에는 아무런 구속과 장애가 없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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