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동남아 불교의 힘을 말한다

1. 시작하는 말

김영애 교수
한국외대 태국어과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동티모르 등 11개국이 있는 동남아지역은 지리적으로 태평양, 인도양 및 중국과 인도에 둘러싸여 있고, 문화적으로는 예전부터 인도문화와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다.

이 지역은 크게 대륙부와 도서부로 나눌 수 있는데, 대체로 도서부 국가의 국민들은 힌두교와 가톨릭, 이슬람교 및 기독교를 믿고, 대륙부에 있는 나라인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베트남의 국민들은 불교를 믿는다, 베트남은 대승불교를 믿고 나머지 국가들은 상좌부불교를 믿는다. 베트남의 대승불교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상좌부불교의 교리와 상카, 그리고 상좌부불교 국가 주민의 삶과 불교 간의 관계를 살피고저 한다.

동남아지역이 문화적으로 중국문화와 인도문화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지만 대륙부에서 베트남을 제외한 나라들-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주요 종족인 버마족, 몬족, 타이족, 라오족, 크메르족은 역사적으로 기원전 3-2세기경부터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이어 불교가 전래되며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힌두교와 불교는 이 지역 토착민들이 예로부터 신봉하고 있던 정령숭배(애니미즘)와 조상숭배, 주술 등 다양한 토착신앙과 융합하면서 나라마다 독특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신앙형태는 불교와 힌두교, 또는 이슬람과 더불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문화의 토대를 이루며 양파껍질 같은 중층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동남아 각국의 불교는 우리나라의 불교와 상이한 점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의 불교를 대승불교(Mahayana Buddhism)의 범주 안에 넣는다면 나머지 지역의 불교는 상좌부 불교(Theravada Buddhism, 上座部佛敎)이다. 우리는 이 지역의 불교를 흔히 대승불교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승불교(Hinayana Buddhism)라 부르고 있는데, 소승불교라는 단어 외에 남방불교, 원시불교, 초기불교 등등의 어휘로도 표현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소승불교라는 단어를 가급적 삼가고 상좌부불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아울러 이후 동남아지역이라 함은 바로 대륙부 동남아를 지칭하는 것으로 한다.

상좌부불교의 ‘상좌’ 또는 ‘상좌부’는 팔리어 ‘테라바다’의 한역(漢譯)이다. 테라바다불교의 ‘테라(Thera)’는 ‘상좌(상좌)’ 또는 ‘고승(장로승)’을 의미하고 '바다(vada)'는 ‘말(語)’ 또는 ‘설(說)’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종합하면 ‘테라바다’는 ‘장로 즉 상좌의 논설에 대한 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상좌부불교는 불타의 생애와 수행을 강조하며 재가불자와 승려는 불타와 같은 행위를 통해 수행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개개인의 수도와 해탈을 중시한다. 승려에 대한 호칭을 보면, 태국이나 라오스, 캄보디아에서는 신이나 태양, 달 또는 천체와 같이 유일한 존재의 이름 앞에 붙이는 접두사나 ‘신’이라는 의미를 갖는 ‘프라’(Phra)라고 부른다. 미얀마에서는 ‘퐁기(Pongyi)'라 하는데, 그 뜻은 ’위대한 영광’이라는 뜻이라 한다.

동남아에는 약 45,000여 곳의 사원이 있고 약 60만의 승려가 있다. 태국의 경우 사원은약 24,000 곳, 승려의 수가 26만 정도이며 미얀마에는 17,000여 곳과 25만 명가량, 캄보디아에는 약 3,000곳과 95,000여명, 라오스에는 약 2,000곳의 사원과 20,000명 가량의 승려가 있다. 위 승려의 수는 평생 수행하는 출가자의 수에 일시적인 출가자의 수도 포함되어 있다. 보통 약 40%가량이 평생 수행을 한다.

상좌부불교는 불타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며 또한 유일한 존재도 아님을 가르치며 누구나 불타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한다. 많은 고전문학이 불타의 본생담(Jataka)에 근거하여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으며 발전한 것은 다 이런 연유이다. 대승불교가 싼스크리트어를, 상좌부불교가 팔리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불타의 일반서민대중에 대한 사랑과 평등의식을 인식할 수 있다.

상좌부불교는 사원의 건축 양식이나 승려의 복식, 사원의 분위기, 탁발승의 모습과 식사 습관, 재가신도의 보시행위 및 실천사항 등등 여러 면에서 대승불교와 다르지만 석가모니라는 같은 뿌리에서 시작되어 각국의 문화나 기후, 그리고 생활관습에 맞게 변하면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2. 상좌부불교의 동남아 전래와 발전

상좌부불교가 동남아에 언제 어떤 경로로 전래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불타의 생존 시에 동남아에 불교가 전파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그 당시보다는 불타 입멸 후에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더 유력하다. 그 시기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지만 대개 4시기로 나누고 있다.

제1기는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이나 육지를 여행하는 대상과 하께 여행하면서 불교를 전파한 시기를 가리키는데, 불타 입멸 후 약 200년경이다. 아쇼카왕(Asoka, B.C. 268-232)이 BC 3세기경에 불교에 귀의하고 백성에게도 불교를 전파함을 물론 해외로 전파하는데도 앞장섰던 시기이다. 왕은 포교사를 인근지역은 물론 이집트까지 파견하였다. 아쇼카 왕의 아들(동생이라는 설도 있음)인 마힌다 장로가 스리랑카로 건너가 포교하였다.

제2기는 BC 1세기 경 서역과 중국에 불교가 전파된 시기이다. 이때는 카니시카 왕 이후의 여러 왕들이 포교에 힘썼는데, 대승불교의 색체가 강하다. 제3기는 7-8세기 이후 티베트와 네팔 등으로 밀교가 전래된 시기이다. 제4기는 11-12세기 이후 동남아에 불교가 전파된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는 동남아지역 여러 나라에 각기 다른 경로로 시대를 달리하며 전파되었다. 그리고 이 불교는 토착민의 정령숭배 사상과 접합되어 신봉되다가 그 나라의 흥망성쇠와 맥을 같이 하였다. 그러나 스리랑카의 불교 포교가 본격화되면서 동남아 여러 나라에 다시 상좌부불교 즉 랑까웡이 전파되었고, 각 나라는 상카의 상좌 즉 장로승에 의해 현재까지 전수되고 유지되어 왔다.

스리랑카의 상좌부불교는 BC 3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대사파 승려에 의해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아쇼카왕은 포교의 일환으로 고승 마힌다를 다른 승려와 함께 스리랑카에 파견하였는데, 그 후 상좌부불교는 스리랑카 왕의 비호를 받으며 크게 발전하였다. 그 결과 불교의식이 단순화되고 교리가 쉽게 정리된 스리랑카불교는 청정한 상카라는 명성을 얻었고, 이웃 나라로부터 유학승들이 몰려들어 상좌부불교학의 중심지이자 포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쇼카 왕 당시 인도의 불교는 인도차이나반도의 중앙부 나컨빠톰을 중심으로 번성하였던 타와라와디 왕국에도 전파되었다고 전하는데, 그 근거로 나컨빠톰 중앙에 서있는 프라빠톰쩨디를 든다. 그러나 타와라와디 왕국의 멸망 이후에는 인도차이나 반도는 몬제국과 크메르제국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11세기경 이후 고대 크메르제국은 인도차이나 지역 전역에 그 세력을 넓혔는데, 서쪽으로는 태국의 롭부리와 쑤코타이에 이르렀다. 크메르제국은 대승불교와 힌두교를 융합하여 크메르문명을 낳았고 그 영향이 동남아지역에 미쳤다. 특히 태국의 중앙부와 동부지역은 크게 영향을 받았다.

12세기에 들어서서 남부미얀마의 몬족(Mons)을 정복하면서 패권을 차지한 버강(미얀마) 왕국의 어노라타 왕은 상좌부불교를 비호하며 동남아 지역에 포교하였는데, 이 불교는 현재까지 버마인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19세기에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까지 불교는 전제군주국가의 통치원리로서, 역대 왕의 정체성을 지지해주는 이념으로서 그 역할을 했다.

 버강 왕국과 인접한 태국 서북부 지역에는 미얀마식 상좌부불교가 전래되었다. 원나라가 서진정책을 펴며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에 타이족들은 중국의 서남부지역에서 인도차이나 반도로 남하하여 정착하기 시작했다. 특히 란나타이 왕국(현재의 치앙마이 지역)과 란창 왕국(현재의 라오스 지역)의 정착한 타이족들은 상좌부불교를 신봉하였다.

13세기에 스리랑카에서 파견된 포교승이 태국 남부의 나컨씨탐마랏(Ligor)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즈음 쑤코타이 왕국의 람캄행 왕(1279-1317)은 남부지역으로 원정을 갔다가 그 포교승을 쑤코타이로 모셔와 종정승으로 추대하고 포교를 시작하였는데, 이때부터 태국은 상좌부불교국가가 되었다.

람캄행 왕은 상좌부불교를 직접 전파함으로써 크메르제국의 문화와는 차별성이 있는 타이족 고유의 문화 창조를 도모하였다. 리타이왕(1354-1376)왕때에 상좌부불교가 크게 발달했는데, 왕은 직접 출가함으로써 태국남성의 출가풍습이 비롯되었다. 18세기 초 태국의 불교는 황금시기를 맞이하여 수도인 아유타야 부근에만 약 5만 명의 승려가 있을 정도로 번성하였다.

1730년경에는 팔리어로 기독교 책을 저술하지 못하게 했으며 불법을 공공연하게 비난하거나 불교도에게 기독교를 가르치는 행위도 금지하였다. 버롬마꼿왕 때(1733-1758)에는 출가하지 않은 남성은 관직에 오르지 못하였다. 당시 아유타야 왕국은 동남아 최대 불교국가라는 명성을 누렸다. 국내문제로 불교가 쇠퇴한 스리랑카에 우팔리 승을 비롯하여 25명의 승려를 황금불상 및 경전과 함께 1753년에 파견하여 스리랑카의 불교를 중흥하는데 한 몫을 했다. 그런 이유로 태국의 불교가 랑카웡인데 반해 스라랑카의 불교는 싸얌 종파 또는 우팔리 종파라고 한다.

태국의 랑까웡은 계속 발전하였으나 19세기 초 라마 2세 때에 몽꿋왕자(후에 라마 4세)에 의해 새로운 탐마윳 종파가 창시되었다. 몽꿋왕자는 출가한 후 당시 종정승(쌍카랏)이 상주하던 왓마하탓에서 정진하여 팔리어에 능통하게 되었다. 몽꿋왕자는 태국어가 아닌 팔리어 경전(삼장)을 읽으며 기존의 불교가 형식에 치우치고 불타 재세시의 불교와 그 수행 방법이 다른 것을 깨닫고 회의를 품었다.

마침 율장에 조예가 깊은 몬(미얀마) 승려 싸이(풋타왕쏘)가 톤부리의 한 사원에서 수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그 수행법을 보았는데, 그 수행법이 불타 재세시의 수행법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왕자는 다시 몬식으로 수계를 받고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승려들과 함께 불타 재세시의 엄격한 수행을 시작하였다.

정진 끝에 왕자는 1833년에 랑까웡을 개혁하기에 이르렀다. 율장을 강조한 탐마윳 종파를 창시한 것이다. 일부 서양학자들은 이를 두고 ‘태국의 불교개혁’이라고 한다. 그 후 태국의 불교는 랑까웡과 탐마윳이라는 두 종파가 존재하는데, 왕족이나 지식인들은 보통 탐마윳 종파로 출가하여 수행한다. 랑까웡 종파의 승려교육을 위한 고등교육기관은 ‘마하쭐라롱껀라차위타야라이’이며, 탐마윳 종파 승려교육기관은 ‘마하마꿋라차위타야라이’이다.

라오스에 상좌부불교가 도입된 시기는 란창 또는 란상(Lan Xang)왕국이 성립된 14세기경이나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신봉하고 있었다. 라오스의 불교가 미얀마나 태국의 불교와 마찬가지로 13세기경 스리랑카에서 파견된 포교사에 의해 대륙부로 전래되었기 때문이다. 라오스의 불교는 라오스 사회의 질서와 규범 등 총체적인 면에서 사회구조를 체계화시키는 주역이며 문화의 정체성은 물론 영속성을 부여하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라오스인의 도덕적 가치관은 물론 그들의 사고와 행동방식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상카는 가장 존경받는 조직이다. 라오스의 상좌부불교는 정령(Phi)숭배신앙과 접합되어 기능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동남아 상좌부불교는 16-18세기에 서구열강의 침략과 식민지정책으로 가톨릭 및 기독교와 대결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불교는 박해를 받았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이 동남아 불교의 총본산격인 스리랑카를 16세기 초에 공격하면서 불교사원을 가톨릭사원으로 바꾸었으며 1560년에는 불치(佛齒)를 갈아 가루로 만들기까지 했다, 이 외에 내란이 겹쳐 18세기경에는 팔리어를 아는 승려가 전국에 단 한 명일 정도가 되었다. 이때 아유타야의 지원을 받아 다시 부흥하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포르투갈이 미얀마에서도 불탑을 무너뜨리고 종을 녹여 총을 만들자 왕은 불교정화운동을 통해 대항했다. 이러한 미얀마의 이러한 노력은 영국의식민지로 전락한 후에도 지속되었다. 불교는 왕의 폭정에 대립하여 만중불교로도 발전하였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미얀마, 태국, 라오스 그리고 캄보디아는 동남아 4대 상좌부불교국가이나 의식이나 교리면에서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승려들의 정치적 역할이나 성향이 다르고 사회봉사에 대한 개념도 조금씩 다르다. 북부 미얀마 샨족의 불교는 그 의식이나 교리 면에서 미얀마의 불교와 차이가 있으나 태국북부의 불교와 유사하다. 태국 동북부의 불교는 라오스의 불교와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미얀마의 불교는 태국보다 그 교세가 강하여 국민들은 불교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사원에서 보내는 시간도 더 많다.

3. 상좌부불교의 교리와 전통

상좌부불교 또는 테라바다 불교는 삼보 즉 불타(Buddha, 佛), 탐마(Dhamma, Dhamma, 法), 그리고 상카(Sangha, 僧)를 강조한다. 불타는 석가무니를 의미하며, 탐마는 불타가 가르친 내용과 말로 바로 인간이 취하고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바, 인간이 갖는 생각, 느낌, 언어 및 행위의 방향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자기 수행의 방법으로 명상을 택하기도 한다. 상카는 교단을 의미하며 불법과 함께 불교신앙의 근본지표의 하나이다. 상가는 상카의 음역으로, 뜻은 중(衆), 무리, 모임, 단체를 가리킨다. 동남아 국가에서는 역사적으로 왕(국가)과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발전하였으므로 불교는 종교적, 정치적으로 왕실과 평행적이고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상좌부불교의 교단은 비구승단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두고 있는데, 교단은 출가한 남성 승려인 비구(Bhikkhu, Samanera), 출가한 여성 승려, 비구니(Bhikkhuni, Samaneri), 재가 남성불자인 우바새(Upasaka) 및 재가 여성불자인 우바이(Upasika)로 구성되어 있다. 힌두교와는 달리 천민과 노예인 수드라계급에게도 출가의 문이 열려져 있다. 예를 들어, 노예라 해도 상전의 허락을 얻은 경우에는 출가할 수 있었고, 환속한 후에는 자유인이 되었다. 상좌부불교는 사회 계급상의 고하나 인종의 차별이 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 승려도 무소유의 삶을 살므로 상카에 들어오는 공양물이나 물건은 똑같이 분배하며 공유하는 삶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여러 줄기의 물이 흘러 들어와 하나를 이루는 바다에 상좌부불교의 상카를 비유한다.

불타는 재세시 수기설법을 하였으므로 불타 입멸 후 제자들은 입멸 3개월 후 제1결집, 즉 칠엽굴에서 500명의 비구가 모여 다문제일의 아난타와 지계제일의 우팔리 두 승려를 송출자로 선정하고 교법을 정리하였다. 불타의 가르침인 경전과 생활규범인 경(經)과 율(律)을 편집하였다. 그러나 불멸 100년 후 평소 불타가 말한 ‘소소한 계율’을 정의하는 문제를 두고 대립되다가 교단은 크게 두 파로 나뉘어 발전하였다. 그러므로 불교의 계율(Sila와 Vinaya)은 상카에 따라 다르다. 재가자와 출가자, 비구와 비구니가 다르고 대승부와 상좌부가 다르다.

상좌부불교의 근본사상은 제행무상(諸法無常, Aniccca), 제법무아(諸法無我, Anatta), 열반적정(涅槃寂靜, Nirvana), 일체개고(一切皆苦, Dukkha)이다. 이 입장을 사성제(四聖諦) 즉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인 고성제(苦聖諦), 현실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원인을 설명하는 집성제(集聖諦), 이상세계의 설정인 멸성제(滅聖諦), 이상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나타낸 도성제(道聖諦)로 나타냈다. 그리고 행고(行苦)를 없애는 방법으로 8정도(八正道),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념(正念),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정(正定)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정념의 수행을 ‘위빠싸나’ 선(禪)이라고 한다.

불타 재세시에 승려는 집이 없이 삼림 속에서 방랑하는 사문의 생활을 했다. 승려들은 걸식으로 음식을 먹으며 분소의나 남이 버린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 밑에서 명상하고 지붕이 없는 건물에서 잠을 잤다. 혹 병이 났을 때는 소의 오줌을 발효시켜 만든 진기약이나 부란약을 사용하였을 뿐 한마디로 수행자로서, 검소와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불타가 되는 길은 극단적인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자기 수련과 속세인의 생활에서 비롯되는 모든 걱정, 애착, 유혹 등 탐(貪), 진(瞋), 치(치)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가르친다. 불타는 출가하여 삼보에 귀의할 때 머리와 수염을 및 눈썹을 깎고 흰색 사미의를 입고 비구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경배하며 꿇어앉아 합장하고 불(佛), 법(法), 승(僧)에 귀의한다는 것을 세 번 암송하게 했다.

 이 의식은 제도화되어 남성들의 출가제가 되었다. 출가하는 남성은 질병이나 부채가 없어야 하고 자유인이어야 하며 공무원은 안 된다. 부채가 있거나 공무원 또는 기혼남이나 약혼녀가 있는 남성은 반드시 채권자와 나라 및 배우자로부터 승낙을 먼저 얻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출가 기간에 사용해야할 발우와 의복 및 꼭 필요한 물품은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 계를 받으면 남성은 비구가 된다. 비구는 227계를 지키나 비구니(또는 매치)는 348계 또는 500계를 지켜야 한다. 사미승으로 출가한 경우는 10계를 지킨다.

남성의 출가는 온 집안은 물론 온 동네의 잔치였다. 출가자는 미리 출가를 위해 사원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준비를 하고 동네 어른을 찾아 인사드리며 출가한다는 사실을 알려 필요한 경우에는 승낙을 받아둔다. 부모들은 출가에 필요한 음식과 물건을 준비한다. 출가 전날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를 삭발시키고 흰 사미의를 입힌다. 미얀마의 경우는 왕자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비단옷을 입히는 등 성장을 한다. 바이씨(Baisri)라는 제물을 중심으로 음식을 차려놓고 정령을 불러 고하고 터주신(Sanchao)에게 아들의 출가를 고한다. 출가하기로 한 날 사미의를 입은 출가자(Naga)는 친구의 무등을 타거나 걸어서 사원으로 간다.

미얀마에서는 동네 총각들이 단체로 출가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동네 악단이 앞을 서서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며 길게 줄을 서서 사원으로 행하는데, 사원에 도착한 출가자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원의 경계 표시인 씨마(Sema, 쎄마)에 경배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법당에서 수계를 받는데, 이때 승려들은 출가자에게 팔리어로 질문을 하여 통과해야만 승려로서 계를 받을 수 있다. 수계의식에서 출가자는 ‘그대는 인간인가?’, ‘간질병 등 질환이 없는가?’, ‘폐결핵을 앓고 있는가?’, ‘부모나 아내의 허락을 받았는가?’, ‘빚은 없는가?’ 등등 11개의 질문을 팔리어로 받는데 역시 팔리어로 ‘예’, ‘아니오’를 정확하게 답해야 한다.

불교 교리 시험을 통과한 출가자는 계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 승복으로 갈아입는데, 이때부터는 부모도 깍듯하게 승려의 대우를 해야 한다. 라오스와 태국, 캄보디아에서는 이러한 출가의식을 ‘부엇 뻰 낙’이라고 하고 미얀마에서는 신뷰(Shinbyu)라고 한다. 미얀마도 역시 제물을 준비하여 터주신인(Min Mahagiri), 조상신 나트(Nat, Mizang-hapazaing Nats)),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지낸다. 이때 부모는 승려로서의 삶에 필요한 8가지 필수품-하의(thinbain), 상의(eikathi), 가사(dugou), 발우(dhabei), 면도칼(thindounda), 바느질 도구, 허리끈(gabangjou), 물여과천(jeisi)를 준비해 준다.

환속은 출가와 달리 간단하다. 보통 우안거의 종료일 또는 출가기간이 끝난 후 계사승려에게 환속의 뜻을 고하고 가르침을 받은 다음 사미의로 갈아입는다. 집으로 와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면 그는 재가불자로 신분이 바뀐다.

출가자와 계사승의 관계는 계속 지속되며 출가자 평생 동안 아버지, 스승, 자문의 역할을 한다. 라오스나 태국의 승려는, 특히 덕망이 높고 오래 수행을 한 승려는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고 복을 빌어주기도 하고,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실로 된 호신부(法絲)를 아기의 손목에 감아준다.

여성이 출가할 때는 아무런 행사가 없다. 삭발도 하고 눈썹도 밀고 흰색 사미의를 입지만 수계식도 계를 지키겠다는 선서식도 없다. 그러나 태국이나 미얀마에서 비구니는 승려로서 그 권리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불교의식도 담당하지도 못한다. 태국에서는 매치라고 부른다. 그러나 매치는 선과 불경을 공부하고 사회봉사활동도 한다. 매치는 사원에 거주하며 수행하고 정진하는 외에 청소 등 사원의 살림살이를 맡아 한다. 불타 재세시에는 비구니가 있었으나 아쇼카왕 이후에는 비구니제도가 사라졌다.

불타 재세시 출가자의 수가 늘어나자 뜨거운 햇볕이나 비를 피할 장소가 필요하게 되자 재가불자들이 승원을 지어 헌납했고 후에는 사원(미얀마에서는 Kyaung,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에서는 Wat)을 짓게 되었다. 승려의 거처는 사원 한쪽에 한 사람이 비나 햇볕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오두막이다. 현재는 절의 형편에 따라 혼자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방이 연이어 있는 2-3층의 건물로 바뀐 곳이 많다. 승려들은 건기에는 유행(遊行)생활을 하며 수행을 하나 우기에는 한 곳에 약 3개월간 정주하며 수행한다. 이 시기를 우안거(雨安居, Vassa)라고 한다.

우안거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보통 건기가 끝나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무렵인 6-7월경에 시작된다. 우안거시기에는 가능하면 외출을 삼간다. 걸을 때도 풀이 아닌 돌이나 시멘트 길을 조심해서 미물이라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걷는다. 이때는 탁발을 나가지도 않는다. 재가불자들도 아침에 절 문 앞에 공양물을 놓고 돌아가는 등 승려의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승려의 생활은 수행생활이고 금욕의 생활이다. 보통 4-5시경에 기상하여 심심을 경건히 한 후 의복을 갖추고 마을로 탁발을 나간다. 탁발을 나가는 등 사원 밖으로 나갈 때 승려는 여성을 바라보지 않고 약 2m 앞의 땅바닥에 눈길을 주며 천천히 걷는다. 탁발해 온 음식으로 하루 2식 승려는 아침과 점심(11시 30분경)을, 하루 일식 승려는 11-12시 사이에 먹는다. 이 과정이 지나면 가르침을 듣거나 수행 및 선정에 든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 가량 포살, 즉 청정을 지키는 참회의식을 하고 재가불자에게 설법도 한다. 현재는 마을 구성원의 장례나 혼례 등을 비롯한 각종 의식에 동참하기도 한다.

승려의 복장은 검소하다. 현재는 승복의 색깔이 다소 나라와 종파에 따라 다르고 옷을 입는 방식 즉 어깨를 한쪽만 가리고 오른쪽 어깨를 내놓느냐(편단파)? 아니면 양 어깨를 다 가리느냐(통견파)?, 발우를 드는 방법, 신을 신느냐 아니냐 여부, 그리고 식사법과 그 회수 등등이 종파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태국의 랑까웡 종파는 황색 법의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 어깨에 멘 멜빵 가운데에 발우를 담고, 집집마다 아침에 탁발을 한다. 통견파인 미얀마의 경우 쑷탐마(Sudhamma)는 태국의 랑까웡과 유사하며 개혁불교인 쉐진(Shwegin)파는 태국의 탐마윳종파와 맥을 같이 한다.

4. 생활종교로서의 상좌부불교

  동남아지역에서 불교는 종교이면서도 생활 그 자체이다. 이러한 표현은 인간이 먹고 자는 행우처럼 불교의식이나 교리의 수행은 일상생활의 한 과정으로 간주되며 생활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정체성의 표상이자 문화적 영속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가정, 마을, 국가의 문화적 일체성은 불교적 가치관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 상례이며 반드시 그렇지 않다 해도 깊은 관계에 있다.

  동남아지역 주민의 생활은 불교의 교리 및 의식과 하나가 되어 일상화되어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불교를 떠나서는 설명될 수 없다. 승려, 사원, 그리고 재가불자는 현세에서 제 각기 역할이 있고, 그 셋의 관계는 독특하다. 불타는 자기 수행의 형태로 공덕을 설하고, 승려는 불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덕의 대상이 되며  불자는 공덕을 쌓는 주체가 된다.

  승려는 불타의 가르침을 전하고 가르치는 스승으로 세상을 구제하는 기초적 기관이자 주민의 일상생활에서 정신적인 지주이다. 승려의 모임체인 쌍카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사회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승려는 종교학자로서, 교육자와 상담자로서 종교적 역할을 담당한다.

레스터(Robert C. Lester)는 승려는 가장 이성적인 생활의 현신, 불타의 영향력, 자비, 지혜를 중생에게 가르치고 전달하고 전파하는 주체, 젊은이의 스승, 병든 사람의 치료자, 인류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인생의 상담자, 사회봉사자, 성직자, 퇴마사, 정치적 조정 등 다양한 역할을 갖는다.

이처럼 불타가 재세 시에 그랬듯이 왕의 존경을 받는 유일한 존재로 분쟁을 조정하고 종식시키고 병자를 치료한다. 승려가 거주하며 수도하는 사원은 마을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그 사회의 중심이 된다. 사원은 승려의 역할이 다양하듯이 그 사회의 학교, 병원, 숙박소, 회의장, 양로원, 사회복지기관, 박물관, 장례식장 등등 다양한 기능을 한다.

  재가불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5계나 8계를 지킨다. 5계는 생명이 있는 것은 죽이지 마라(不殺生),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不偸盜), 음행하지 마라(不邪淫), 거짓말하지 마라(不妄語), 술이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을 취하지 마라(不飮酒) 등이며 나머지 3계는 크고 높은 훌륭한 침상에서 자지 않는다, 과도한 몸치장이나 지나체게 향락적인 생활은 멀리 한다, 그리고 정오부터 그 다음 날 아침까지는 음식물을 먹지 않는다 등이다. 재가불자는 업(業, Karma, Kamma)를 인정하고 믿는다.

현재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는 전생의 업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 믿으며 현세에서 공덕을 더 쌓아 내세에는 윤회에서 벗어나거나 더 나은 신분이나 지위에 있기를 바란다. 개개인의 업은 개개인의 공덕에 의해 결정되므로 현세에 사는 동안 그들도 불도에 정진하고 승려의 수행을 후원하며 되도록 많은 보시를 하려고 노력한다.  

  서양식 교육이 도입되기 전까지 태국 남성들은 보통 2번 출가하였다. 첫 번째 출가는 보통 5-6세(또는 10세?)경에 사미승(Samanera)으로 출가하는 경우인데, 사원에서 승려를 스승으로 모시고 여러 해 동안 일상생활에 필요한 공부를 한다.

불교공부를 위시하여 글을 읽고 쓰는 법, 시를 짓는 법, 셈하는 법 등을 공부한다. 소년이 되어 출가한 후 생업에 종사하다가 20세를 전후하여 다시 일정기간 동안 또는 평생 출가하는데(Bhikkhu), 이때의 출가는 우리나라의 관례와 그 사회적 의미가 통한다. 일시적인 출가의 경우는 입문과정을 공부하는데, 타이어로 된 경전을 공부하고 수행하지만, 평생 출가할 경우 즉 고급과정은 팔리어 공부도 하고 시험도 보아야 한다. 1910년에 제정된 기준은 경전과정은 3급, 2급, 1급의 3 과정이 있다.

이 고급과정을 끝낸 사람은 낙탐(Nak Dhamma)라고 했다. 팔리어과정은 7과정을 두었는데, 이 모든 과정을 끝내는 보통 7-10년이 소요된다. 마을의 어린이나 다 자란 아들이 그 마을의 사원에서 출가한다는 사실에서 재가불자인 부모들이 아침마디 음식을 만들어 탁발 나온 승려들에게 보시하는 사실의 원인과 결과도 유추해낼 수 있다.
  상좌부불교국가에서 출가기간이 짧고 긴 것과는 상관없이 젊은이의 출가는 보편화되어 있다. 보통 결혼 전에 출가하여 심신을 닦고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배운다.

윈스턴 킹은 <불교:높고 낮고 그리고 중도>에서 동남아 불교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승려로서 행하는 서너 단계의 행위는 서로 일련의 연속을 이룬다. 산에 비교한다면, 산의 밑 즉 저변에서는 민족(민중)종교로 존재하며 그 정상은 열반의 경지이다.

산 밑에서 정상에 이르는 험준하고 구불구불한 길은 바로 승려와 불자의 수행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산 밑과 정상 사이에는 사원 중심의 불교(Pagoda Religion), 불경 중심의 불교(Orthodoxy), 상카, 명상, 부처되기(Budhisthood)의 과정이 있다. 이렇게 상부지향적이고 내부지향적인 단계는 하나의 단계에서 불타 재세시에 제시된 또 다른 더 높은 단계로 옮길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행의 진보로 표현된다’며 불자가 걸어야 할 각 단계의 깨달음과 그 행위는 상호 기능적임을 설파했다.

  출가는 보통 우안거가 시작되는 시기에 행해진다. 사미승 출가는 교육이 주목적이었다. 현재는 학교가 보급되어 사미승 출가가 전처럼 많지 않다. 20세를 전후한 출가는 여러 가지 목적에 의해 행해진다. 장기간이건 단기간이건 출가의 공덕은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된다. 더 높은 교육을 받기 위해 출가하기도 하고 부모의 은공에 보답하여 자신의 공덕을 부모에게 돌리고자 하는 목적에서도 한다.

일가친척의 소망으로,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물질적 이유로, 정치적 이유로, 순수한 정신적 수양을 위해 등등 여러 이유로 출가한다. 혼인 전의 출가는 그 공덕이 부모에게 2/3, 자신에게 1/3이 가지만 혼인한 이후의 출가는 그 공덕이 배우자에게 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존경하는 분이나 왕, 부모 등이 사망하였을 때 장례식(다비식)장에서 삭발하고 출가하여 망인에게 그 복을 돌려 고인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상좌부불교 사회에서 불타의 상징으로 칭송되는 승려만을 따로 떼어 승려의 사회적 지위를 독특하다고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승려가 되는 출가의식은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일단 출가하면 그는 의복, 언어, 명칭, 생활양식 등에서 그 이전과 다르다. 같은 형제나 부모라 하더라도 스님이라고 불러야 하며 만날 때마다 예의를 갖추어 절을 해야 한다.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승려는 부모나 형제보다 높은 자리에 앉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여자 형제들은 그와 옷깃조차 스칠 수 없다. 승려는 정치권을 행사할 수 없다.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고 공식적인 의무도 면제 받는다. 병역의 의무나 납세의 의무도 없고 법적 증인도 될 수 없고 선서도 할 수 없다. 명백한 범죄행위를 했을 경우는 강제로라도 환속을 시킨 후 법적 처벌을 하거나 재판을 한다. 강제 환속의 여부는 승려회의를 통해 결정된다.

  불타는 승려와 재가불자와의 관계를 상호보완적 관계로 보고 인간은 모두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설법하였다. 그리고 승려가 무소유의 삶에서 수행에 전념하기 때문에 경제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음을 이유로 들어 재가불자에게 수행하는 승려에게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필품을 제공함으로써 재가불자도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승려는 재가불자에게 지고한 존재로 비친다고 볼 수 있다.

  재가불자들은 속세에 살면서 부, 명예, 장수, 극락왕생을 추구하는 존재로, 승려의 가르침을 받으며 윤리와 자비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그 일환으로 자신의 능력에 맞게 음식과 물건을 승려에게 보시하며 공덕을 쌓는다.

아침마다 음식을 만들어 탁발 나온 승려에게 바치는 행위도, 우안거가 지나 승려에게 의복을 보시하는 까틴제(kathina)에 삼의-Shang, Sanghati, Chipo-외에 욕의, 비옷, 그리고 발우를 넣어 어깨에 메는 멜빵 등을 보시하는 것도, 사원의 건설이나 증·개축, 승려의 학업이나 학술활동 및 유행 등등 사원과 승려에 관한 경제적 비용을 후원하는 것 등 크고 작은 자선행위나 보시행위는 모두 공덕 쌓기의 일환이다. 승려는 음식이나 물건을 받으며 전혀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 꿇어앉은 재가불자들에게 축복을 내릴 뿐이다. 이때 재가불자들은 자신이 공덕을 쌓을 기회를 준 데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린다.

  평상시 탁발의 경우, 태국의 승려들은 사동이나 사미승을 대동하고 단독으로 나가지만 라오스 승려들은 줄을 지어 같은 길을 가면서 불자의 시주를 받는다. 어느 경우든 한 집에서 한 사람의 한 끼 식사거리만 취한다. 상좌부불교의 승려들은 재가불자들이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취한다. 생선 음식이나 돼지고기나 쇠고기 음식도 받는 것이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다만 술이나 향신성 음료, 호랑이, 코끼리, 말, 개, 뱀 등등의 고기는 먹지 않는다.


5. 상좌부불교 및 사원의 사회적 역할

  상좌부불교의 전래 전에 이 지역은 정령숭배와 힌두교 등 원시신앙이나 민간신앙을 믿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 지역의 상좌부불교는 정령숭배나 힌두교 또는 토착신앙과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태국인들은 명절이나 통과의례에 불교적 색채가 짙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정령숭배와 힌두식의 의식이 혼재되어 있다. 승려를 초빙하여 독경 듣는 의식은 불교식이지만 성수(聖水)인 남몬을 사용하여 축복하거나 극락왕생을 비는 행위는 힌두의식이다. 태국뿐 아니라 동남아 전역의 민속적 새해인 4월 중순경의 새해(태국은 쏭끄란, 미얀마는 Thingyan)는 힌두의식이다.

  그래도 불교의 교리는 세속적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자신의 신분에 맞는 개개인의 책임의 한계를 인식시켜줄 뿐 아니라 현세에서 쌓은 개개인의 선업에 따라 내생에서 더 나은 신분으로 태어나거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 누구든 불심이 깊을수록 공덕을 더 많이 쌓을 수 있고, 그 만큼 내생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생전에 부지런히 사원에 시주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내세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면서 복을 지어 현세보다 나은 내세를 기대한다.

  고대 크메르제국의 힌두문화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는 이 지역에서 불교적 전통은 세속적 권위에 대해 도덕적으로 상호의존적이고 상호견제적이다. 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는 이미 정체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왕을 비롯한 국민의 지도자나 행정부의 수뇌에 대한 도덕성은 불교에서 말하는 마하쌈마타(Mahasammata)의 속성과 카띠야(Khattiya)속성, 그리고 라차(Raja)의 속성에서 찾는다.

 국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 10가지는 보시(布施, Dana), 지계(持戒, Sila), 희생(犧牲, Pariccaga), 공정(公正, Ajjava), 온화(穩和, Maddava), 노력(努力, Tapa), 불노(不怒, Akkodha), 불해(不害, Ahimsa), 인내(忍耐, Khanti), 불역(不逆, Avirodha)를 의미한다. 위의 덕목을 잘 지키는 왕은 정의로운 왕 탐마라차(Dhammaraja)라고 칭송하고 그렇지 못한 왕을 만라차(Mararaja)라고 하여 왕위 박탈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왕은 전생에 이룩한 자기 수행과 적선으로 인해 현세에서 부귀와 권세를 누리게 된 존재로서, 청정의 상징이고 자기희생의 상징이며 자비의 상징이다.

  예로부터 왕이나 승려들은 재가불자들에게 ‘선업은 선과를 낳고 악업은 악업을 낳는다’라는 인과응보적인 가르침을 강조하여 악을 멀리하고 선을 쌓을 것을 가르쳤다. 재가불자들은 교육, 경제, 통과의례, 사회복지 등의 일상생활에서 불교를 떠나서는 설명이 안 된다.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사망할 때까지 불교와 깊은 관계에 있다. 재가불자들은 결혼, 건물의 기공식이나 준공식, 집들이, 이사, 생일,  장례식, 개업 등등의 경사나 구진 일에 승려를 초빙하거나 사원에 찾아가 독경을 부탁하거나 듣는다.

  사원은 마을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며 마을에 한 곳 또는 두 세 곳의 사원이 있기도 하다. 현재도 사원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있는 것이 보통이고, 이러한 현상은 지방으로 갈수록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사실은 과거 교육의 중심이 사원이었고, 승려가 교사로서 팔리어를 비롯한 불교교육과 국어교육 및 산수교육을 가르쳐 올바른 국민을 양성해냈음을 시사함은 물론 신식교육이 도래하며 새로운 학교를 설립해야 할 때 나라에서는 사원에 신식학교를 세운 것을 의미한다. 현재도 지방에서 도시로 온 학생 중 마땅한 거주지가 없거나 고아 또는 가난한 부모들은 사원으로 자녀를 보내 그곳에 거주하며 학교에 다니게 하고 있기 때문에 사원에는 초중등학교 학생들이 사미승과는 다른 신분으로 사원에서 일을 도우며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불교는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비(悲, Metta)와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지 않는 자(慈, Karuna)를 강조하며 남을 도와주고 남을 위해 봉사할 것을 권한다. 이러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승려이고, 종교적 역할 외에 한 두 마디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기능을 하는 곳이 사원이다. 보건소이고 빈민구제소이며 복지센터이고 교육장, 고아원, 양노원, 노인대학, 그리고 경로당이다.

또한 정부를 대변하는 기관이 되기도 하고 마을 회의장, 명절 때 잔치가 벌어지는 곳, 놀이마당, 문화적 공간, 투표장, 군인징집을 위한 신체검사장, 예방 접종, 공판장, 농산물 수매장, 주차장, 박물관, 숙박소 등등 주민생활의 중심지이다. 승려는 마을의 지도자이고 상담자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의 대변기관 역할도 한다. 그리고 마을발전을 위한 마을 공동체의 공동계획을 세우고, 자문하고 운영하는 지도자이다.

여승 즉 매치들은 독자적인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활동 외에 사원에서 비구들이 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울러 틈틈이 재원마련을 위한 경제활동도 하고 난치병이나 불치병 환자들을 돌보고, 마약복용자를 위한 시설도 운영한다.

  다시 말하자면, 재가불자들은 사원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동고동락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을 자연스럽게 함양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 평생의 통과의례 또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어린이가 출생하면 승려에게 자녀의 이름을 부탁하는 것은 물론 생후 1개월과 1년에 탐콴의식을 승려에게 부탁한다. 라오스 사람들은 반드시 승려를 찾아가 아이의 생년월일을 말하고 이름을 짓는다.

  혼례의식에서 승려가 직접 의식을 주관하지는 않지만 새 생활을 시작하는 신랑신부에게 적선행위의 일환으로 결혼식 전 날 저녁이나 당일 아침에 짝수(8명 또는 10명)의 승려를 초빙하여 삼귀의문(三歸依文)과 5계를 암송하는 의식을 한 후 신랑신부는 하나의 주걱을 같이 잡고 공양을 퍼서 승려에게 바친다. 이 행위는 새로 시작한 부부의 첫 보시행위이며 협동과 조화로움의 시작이기도 하다.

  장례식장에서도 사망하기 직전에 불경을 외어 마음가짐을 하게 하고 반듯한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 망자를 목욕시키고 사원으로 시신을 옮긴다. 가족과 문상객들은 망자의 오른손 손바닥에 법수를 부으며 독송을 하며 명복을 빌어준다. 대체로 1주일간 문상을 받은 후 금요일이 아닌 날을 택해 화장식을 한다. 화장이 끝난 후 유골을 골라 유골함에 넣은 후 다시 승려의 독송을 하여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사람들은 승려를 통해 망자에게 음식과 물건을 선물할 수 있다고 믿는다. 

  라오스에서는 장례식에서 승려가 모든 과정을 주관하는데 화장을 원칙으로 한다. 승려의 독송은 망자가 더 나은 세상에 태어나는데 필수적이다. 힌두교의 여향을 예로부터 많이 받은 캄보디아인은 개개인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대한 구별이 분명하다.

6. 맺음말.

  동남아시아 상좌부불교 국가에서 불교가 국교로 정해져 있지 않고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어 있으나 불교는 국민 대부분의 생활에 영향을 주며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동남아의 불교는 12-13세기 경에 전래된 스리랑카의 대사파(Mahanikaya) 종파로 흔히 테라바다불교라 한다. 대승불교와 다른 점은 불타 재세시의 가르침과 수행법을 중시하고 팔리어에 대한 연구를 하며 경전대로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테라바다불교는 토착종교인 낫트(미얀마), 정령숭배와 힌두교(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토착종교와 혼합하여 발전하였다.

  힌두교나 불교, 이슬람교는 모두 내세를 강조하고 현세의 삶은 전생의 결과이므로 감수하고 순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현세에서 할 일은 선업을 쌓아 보다 나은 내세를 설계하는 것이다. 선업의 가장 대표적인 행위를 보통 적선행위, 공덕행위 또는 서양인들은 make-merit라고 한다. 이러한 적선행위는 상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내세는 현세에서 스스로 준비해야 되는 것이다.

  국민의 생활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불교의식과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사원에 자주 가서 기도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스스로 불교도라고 믿는다. 아침저녁으로 집에 모셔놓은 불단에 기도한다. 미얀마인은 동쪽에 불단을 모시고 기도한다. 사원과 승려, 상카는 재가불자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사원은 주민 생활의 중심지이며 승려는 정신적 지주이자 반려자이다. 그러므로 사원의 역할은 시대와 경우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하고 변한다.  

  승려는 자신의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기보다는 재가불자의 보시에 의존한다. 청정과 무소유의 삶을 사는 승려는 최소한의 삶을 살면서 수행에 전념한다. 승려는 더 나은 내생을 꿈꾸는 재가불자에게 구원의 장소가 된다. 그들은 늘 업을 생각하고 무명에서 벗어나 언젠가는 해탈할 수 있다는 희망을 오늘을 산다. 

한 마디로, 동남아지역의 상좌부불교국가에서 불교는 사회적으로 동질성을 갖게 하고 정치적으로는 국가통일의 의미이자 주요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불교는 바로 그 나라의 문화와 전통의 근원이며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바로 나라의 존재와 나라 나름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정체성의 뿌리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김영애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및 동대학원 아주지역과 졸업. 태국 쭐라롱껀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과 수료.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교수. 《태국사》《태국의 이해》(공저) 등의 저서와, <무지에 의한 단죄> <짬렁 내 삶의 이야기> 등의 역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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