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에게 우주적인 세계관을 열어준 불교는 나에게 보약과 같은 것

김경재 목사는?

1940년 전남 광주 출생, 유학자 가풍의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광주 서중, 광주고를 졸업하고 한신대학교에 입학하였다. 한신대 졸업 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였다. 미국 듀북대학교와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현대신학과 종교학을 연구한 후 네덜란드 유트레이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35년간 한신대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임 후 서울 대신동의 삭개오 작은 교회에서 목회 중이다. 기장의 대표적인 진보신학자로서 종교 간 대화에 관한 논문 다수가 있으며 생명평화결사 종교위원,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로 있다. 지은 책으로 <해석학과 종교신학>, <폴 틸리히 신학연구><영과 진리안에서>등이 있다.

필자와 대담중인 김경재 목사


김나미:
목사님, 안녕하셨어요. 목사님께서 한신대 은퇴 후 작은 목회를 하신다고 들어 직접 가 보았습니다. 무척 색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목회를 하고 계신 삭개오 작은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요?

김경재:
반갑습니다. 삭개오 작은 교회는 말처럼 아주 작은 교회입니다. 이화여대 후문 김옥길 기념관 지하 10여 평 되는 공간을 주일에만 빌려서 쓰고 있는데 교인은 40여 명 남짓 됩니다. 우리 교회는 자체 소유한 공간이 없고 노회(老會)에 등록되지 않은 개척교회라 제도권에서 독립되어 있어 자유롭습니다. 이 교회에서 하는 목회는 지난 35년간 재직한 한신대를 퇴임하고 제 기독교 인생 50년 하느님 소명의 마무리라 여기는 작은 목회 봉사입니다.

김나미:
교회를 가보고 무척 파격적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예배 후 공부반에 스님을 모셔서 반야심경을 듣고 목사님은 교인들과 사찰을 방문하기도 하시더군요. 50년 전 신학생으로 시작, 신학자로, 교수로, 목사로, 신앙인으로 사셨지만, 마음만은 오래전 이미 종교를 초월한 구도자 같으십니다. 목사님께서는 처음 불교를 어떻게 접하셨는지요. 목사님께서는 불교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부처님 얼굴 같아지십니다.

김경재:
평소 학교에서도 부처님 얼굴을 닮았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나 자신의 가정환경을 보면 일가친척이나 주변에도 불교인이 없었기에 불교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18세쯤, 자신도 모르게 뭔가에 이끌려 화엄사 계곡을 찾아 물에 몸을 담그고 신비 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왜 사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저도 모르게 사찰 가람이 자리한 거룩한 공간으로 저절로 이끌려 간 것 같은데, 화엄사로 간 이유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체험으로 신학대학을 지원했던 것이지요. 신학생 때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녔는데 미아리 근처 한 포교원 벽에 붙어 있는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중생의 병은 무명에서 오고 보살의 병은 대비에서 온다.”

불교를 전혀 모르던 당시, 이게 무슨 소리인 줄도 몰랐지만 이 글귀가 나를 사로잡았는데 저것이 바로 기독교의 아가페적인 사랑이구나 하며 무척 친숙하게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불교와 첫사랑인데 무조건 호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 뒤로 《유마경》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30세 넘으며 신학 공부가 좀 되어 가니 불교를 알고 싶은 갈증이 깊어져 저 혼자 서점에 가서 불교 책을 사 와서 열심히 탐독했습니다.

스승이 될 만한 스님과 인연이 없다 보니, 혼자 더듬어 가며 깊이 읽었지요. 김동화의 《불교학개론》, 《원효사상》, 《용수의 중론》, 당시에 샀던 이 세 권의 책은 나에게 불교가 참으로 위대하고 또 우주적인 종교임을 확인시켜 준 문헌이었습니다. 그 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읽었는데 이 책은 불교에 바른 이해를 하게 해 주고 불교의 틀을 잡아 준 보약이었어요.

전체적으로 불교는 나로 하여금 우주적인 패러다임에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불교의 포용과 관용이 나 자신의 신학과 결합, 창조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해석학적으로 소통 가능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정립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러고 나서 진리의 관법마저 통섭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기독교가 인간의 죄를 말하는 것에 반해 불교는 여래장 사상을 말하더군요.

인연 생기(生起)하는 연기적인 실재, 이것은 과정신학의 과정적 실재관과 80% 같은 것입니다. 저에겐 무엇보다도 대승의 보살도가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상구보리하며 중생과 같이하는 보살도는 아가페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신학자로서 불교의 가장 부러운 점은 정과 혜가 같이 한다는 점인데 정혜쌍수야말로 불교의 최대 매력입니다.

김나미:
비록 글로서 불교를 만났지만 불교 덕분에 목사님 세계관은 우주를 다 품을 수 있는 확장을 가져왔나 봅니다. 그래서 한신대 신학과 교수로 재직 시에도 다시 철학과에 학생으로 입학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고려대 철학과에서 당대의 대가들에게 노장(老莊)과 불교를 공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학문에 관한 한 신학, 종교학, 철학 등, 이미 섭렵을 마치셨는데도 항상 그리해 오신 것처럼 여전히 열린 마음으로 배움에 대한 끈을 놓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김경재:
진리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누구는 사과 하나를 놓고 한 사람은 이쪽에서 보고 말하고 한 사람은 저쪽 면을 보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진리를 놓고 내 것만을 고집하는 건 서귀포를 보고 전국을 보았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의 삶은 진리와 진리가 만남으로써 창조적으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지요.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배워 나가며 삶이 성숙하고 깊어집니다. 신학만 하던 좁은 세계에서 내가 불교의 우주적인 시각 덕분에 눈뜨게 되고 세계관의 폭이 넓어진 만큼 한국 개신교도 이웃 종교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합니다.

김나미: 
배워야 하기에 목사님께서 쓰신 글마다 다른 종교에 대한 열린 자세를 갖게 하나 봅니다. 저는 목사님께서 쓰신 "참 종교의 진리는 서로 통한다.”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읽었는데 종교 다원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기독교와 이웃 종교의 바른 관계 정립을 역설했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글을 보고 개신교에 이런 목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반성을 촉구하고 종교 간 대화의 불가능이 개신교의 배타성에 기인한 것이라는 몇몇 기사는 저로 하여금 개신교도 접근 가능하다는 반가운 마음을 들게 했습니다. 1996년에 일어난 화계사 사건은 우리나라 종교 간 대화에서 역사에 남을 사건으로 기록되어도 좋을 만한 것이라 보이는데 이것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김경재:
1996년 봄, 한신대 수유리 캠퍼스 길 건너 이웃인 화계사에 방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서로 이웃인데 종교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이런 일을 우연히 나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목사인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학생 20여 명과 함께 금일봉을 거둬 화계사를 방문 위로했지요.

이 인연을 계기로 해서 화계사는 그해부터 “축 성탄절” 플래카드를 내걸고 한신대 학생회는 이에 대한 화답으로 초파일마다 “축 부처님오신날” 플래카드를 내거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 일이 당시 매스컴을 타지 않아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저 개인에게도 참으로 흐뭇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난 그것 때문에 그만 수난을 당하기도 했지요.

 보수 교단과 교인들로부터 우상 종교를 어찌 축하하느냐며 당장 플래카드를 내리라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당시 교단과 교인들로부터 받은 압력과 항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어요. 비교적 진보 교단이라는 기장마저도 이렇게 된 것이 가슴 저미도록 아팠습니다. 기장의 진보성이란 것은 밖을 향해서일 뿐, 기본 도그마에서는 보수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건드리면 정말 무섭습니다.

 보수파들에 의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왕따’가 되었지만 한국 개신교가 대승적이 되지 않고는 안 된다는 점을 절감하기 때문에 할 말은 합니다. '내 종교만이 진리', '내 종교만이 구원'이라는 개신교의 독선과 배타를 두고 볼 수 없으니까요. 오로지 내 것만이 구원이고 참 진리라 하니 교리적인 선입관이 팽배해 독단적인 우월주의에 빠졌습니다.

작금의 개신교회는 갈릴리 나사렛 예수의 교회가 아닌, 은혜 배급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엔 인간에 대한 애정도, 따스한 눈길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한 인간의 본성은 이미 변질되어 마치 썩은 사과를 보는듯합니다.

김나미: 목사님은 개신교 교파 중 기장 내에서 불교에 처음 손을 내밀게 된 선구자이셨다고 봅니다. 독선으로 무장한 배타적인 교인들과 목회자들로 말미암아 자극을 받으니 목사님의 외침의 소리가 더욱 커지셨나 봅니다.

제가 알기에 항의 수난을 당하시던 가운데서도 뒤이어 일간지에 법정 스님 앞으로 '부처님 오신 날'에 축하 메시지를 내보냈고 또다시 중앙일보의 <석가탄신일 기념 세 종교지도자 대담>에 스님, 신부님과 자리를 같이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쉬지 않고 교회를 향해 할 말은 하며 질타해 오셨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사랑하는 자식에게 매를 들어야 하는 어버이 심정과 같으리라 생각됩니다. 같은 소속인 기장으로부터도 이런 일을 당하시는 것을 보면 목사님 혼자서 참으로 외로운 길을 걸으시는 것 같습니다.

김경재:
교파를 넘어 우리 개신교는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종교개혁 정신, 개신교 정신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놀이라는 근본적인 축제, 기쁨, 감사 요소가 교회 안에서 이미 죽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개신교의 선교 사명 의식 때문입니다. 종교에서 사명감, 의무감은 하나님 복음 전파 열정이 오히려 독이 되어 광기를 띠고 있습니다. 개신교 전체가 걸려 있는 질병 속에 나사렛 예수의 원초적인 복음은 그만둔 것이지요. 기독교 핵심은 은총의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으로 그 근본은 원래 might가 나온 다음 should가 뒤따르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should가 먼저 나와 뒤바뀌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인간이다 하는 은총의 선언이 나오고 스스로 자증하고 증언하고자 하나님 뜻에 맞는 삶을 살고 경건하고 선행을 하는 것 등등은 모두 might가 먼저 있은 다음 should가 뒤따라서 자발적인 기쁨으로 해야 하는데, 이것이 뒤집혀 should가 먼저 나오니 복음의 왜곡이 왔습니다.

작금의 한국 개신교는 기독교의 근본 원리를 배신하고 있는 겁니다. 은총에 대한 감격은 교리로만 있지 현실적으론 없어졌어요. 그러나 장사는 잘되고 있으니 교회 확장이라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선교 사명이란 것도 인간이 진정한 의미의 신, 절대자, 진리를 안 믿으니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존재론적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일 중독에 걸린 듯,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듯해야 하기에 선교라는 이름엔 일종의 도피적인 성격도 있습니다.

김나미:
가끔 참여 관찰을 위해 교회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를 가 봅니다. 문밖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교인들을 보면 진통제 한 방 씩 맞고 나오는 환자들처럼 보였습니다. 약발 떨어지면 가서 또 한 방 맞고 하는 게 아닐까요. 사람이 종교에 위로받기도 하지만 종교 때문에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한국 개신교회의 행태 중 이번 종교편향차별 사태에 대해 한 마디 주십시오.

김경재:
이번 일어난 종교편향차별 사태의 핵심은 두 가지에 있습니다. 첫째는 개신교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무지, 그리고 권력 지향적 독선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권력화된 개신교가 ‘권력 지향’적인 오만한 행동의 결과로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개신교의 독선을 드러내 보여 주는 경우는 성경을 계시경전이라고 절대 권위를 부여해 절대시하는 도그마 때문입니다.

개신교만이 구원의 종교라는 독단적 절대화를 강요하는 도그마 우월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의 치유는 성서의 문자주의 극복에 있습니다. 열심당원으로 훈련된 개신교인의 행동에 대신 죄송한 말씀 전합니다. 연민으로 봐 주십시오.

김나미:
불자들이 화가 날 만큼 개신교인들의 열성은 누구도 못 따라갈 것 같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종교가 오히려 해악이 되고 갈등의 원인 제공자 같아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김경재:
이 사진을 좀 보십시오. 우주 공간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우주 공간에서 지구라는 별을 보는 스케일과 시야가 얼마나 다릅니까. 난 아침저녁으로 저 사진을 봅니다. 수도원이나 기도원에서 명상하는 것보다 더욱 리얼하게 다가옵니다.

지구의 한구석에서 사는 좁쌀만도 못한 우리가 집착 때문에 잘 못 삽니다. 명예욕, 뭔가 남겨야 하겠다고 하고, 아옹다옹하고 싸우는 것, 모두 다 집착에서 오는 이런 것들이 이 사진 앞에서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인생의 근원과 목적, 그리고 의미에 일찍이 고뇌했던 50년 전에 청년으로서 느꼈던 그 경지로 돌아갑니다.

김나미:
이렇게 늘 초심으로 돌아가시니 작은 숫자이나마 눈 밝은 몇몇 개신교인들에겐 횃불 같은 존재가 되어 주십니다. 그간 뵈어 온 목사님은 저에게 또 다른 예수보살님으로 보입니다. 목사님께서 보아 오신 한국불교에 대해서도 한 말씀 주십시오.

김경재:
1,700년 한국불교는 처음 왕조 시대 국가권력에 기울어졌고 ‘호국’이란 미명하에 왕권이나 상층부와 결탁, 위대한 핵심 진리가 중생에게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으로 중생을 돌 봐주셨으면 합니다. 기복적인 성격만 강조된 불교는 기독교와 다르지 않지요.

이런 점에서 불교를 창조적으로 편승시키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보입니다. 불교계 지도자들은 중생으로 하여금 수행과 내적인 사색의 깊이를 더 하도록 해 줘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비불교도인, 모든 중생의 종교적인 심성을 돌보아 주시고, 바다처럼 넓고 깊은 부처님 가르침을 배고픈 중생에게 배불리 먹여 주시길 바랍니다.

김나미:
불교계를 향한 조언 역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중생의 아픔을 돌봐 달라는 것이시네요. 불교 지도자들이 연민을 갖고 보살도를 향해 가라는 쓴소리는 단지 불교계만을 향한 말이 아닌, 교회를 포함한 이 세상을 향한 깨침의 외침으로 들립니다. 목사님의 외로운 광야의 외침은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생의 병은 무명에서 오고 보살의 병은 대비에서 온다.”라는 유마거사의 말처럼 아픔이 크시더라도 질타를 멈추지 말아 주십시오. 50년간 신학의 마무리에서 나오는 죽비 같은 깨침의 소리에 감사합니다. 오늘 긴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경재: 오늘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저도 감사합니다.

김나미
주요 일간신문에 종교 칼럼을 연재했으며 종교전문작가로 활동 중이다. 종교 현장을 다니며 종교의 벽을 넘어 도인, 성자, 스님, 신부, 수녀, 목사, 교무 등의 성직자들을 만난 이야기와 신앙 공동체를 글로 옮겼다. 저서로 『그림으로 만나는 달마』,『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 하네』『이름이 다른 그들의 신을 만나다』『환속』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동아시아학과, 동국대학교 선학과 대학원, 연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이수, 미국 스탠퍼드 대학 종교학과 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종교학을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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