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만해사상 실천선양회 Home
불교평론 소개 l 지난호 보기
 
 인기키워드 : 사색과 성찰, 청규, ,
> 뉴스 > 서평
     
사상사를 통해 재조명한 근대 중국 / 윤영도
- 천 샤오밍 외 지음 <근대 중국사상과 약론>
[37호] 2008년 12월 10일 (수) 윤영도 ycyyd75@nate.com

   

근대 중국사상사 약론
천 샤오밍 외 지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2008년이 저물고 2009년의 해가 떠오르게 될 것이다. 9로 끝나는 해인 내년은 중국인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9라는 숫자 자체를 길하게 여기는 중국인의 전통적인 관념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어에서 '九'가 '久'와 같이 '지우'라고 읽히기 때문에 9는 중국인에게 있어 '장수'를 의미하는 길한 수로 여겨져 왔다. 또는 '꽉 찬 수', 즉 '끝'을 의미하는 10의 바로 앞 수라는 점에서 '끝나기 직전의 가장 높은 수', '영원'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인에게 9로 끝나는 해가 지니는 특별한 의미는 사실 중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까운 과거부터 거슬러 올라가자면, 전면적인 개혁 개방과 서구식 민주화를 요구하며 일어났던 천안문 사건이 바로 1989년에 일어났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것이 1949년 일이었고, 중국 신민주주의 혁명의 기원이 된 5·4운동이 1919년에 일어났으며, 청 왕조하의 마지막 대규모 반외세운동이었던 의화단 사건이 1899년에 일어났다. 또한 무엇보다 중국이 서구 중심의 근대적 세계체제로 편입되는 시발점이 되었던 아편전쟁이 바로 1839년에 시작되었다. 이처럼 중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가장 굵직한 사건들이 바로 9로 끝나는 해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중국의 근현대사는 9와 매우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하겠다.

이 때문에 9로 끝나는 해가 되면 중국의 학계에서는 여러 학술회의를 개최한다거나 기념행사를 열어 중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고 정리하는 기회를 삼곤 한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 공산당은 현 정부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제2, 제3의 천안문 사건, 혹은 5·4운동으로 터져 나올까 우려하여 각종 통제 수단을 동원해 입막음과 민심 무마에 노심초사하는 해이기도 하다. 근대 중국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이런 9자 해가 될 때마다, 중국의 근대를 다시 한 번쯤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근대 중국, 특히 사상사의 관점에서 근대 중국을 재조명해 보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최근에 번역 출간되었다. 천샤오밍(陳少明), 단스롄(單世聯), 장융이(張永義) 등의 소장학자들이 함께 저술한 󰡔근대 중국 사상사 약론(近代中国思想史略論)󰡕(이하 󰡔약론󰡕)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책 역시 9자 해와 묘한 인연을 지니고 있다. 중국에서 이 출간된 것 역시 1999년인 것이다(사실 이 책의 원래 판본인 󰡔해석된 전통: 근대사상사 신론(被解釋的傳統:近代思想史新論)󰡕이 출간된 것은 1995년이기는 하지만). 1999년은 5·4운동 80주년이 되는 해이자,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또한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이 책을 1999년에 출간하게 된 것이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기념해서 이루어졌던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언뜻 이 책의 내용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역사적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을 굳이 이처럼 연결 지어 이야기하는 것은 이 책 역시 이러한 시대사적 맥락과 밀접히 연결된, 하나의 시대적 산물이라는 점을 곱씹어 보기 위함이다.

이 책의 저자들(천샤오밍은 1958년생, 단스롄은 1962년생, 장융이는 1966년생이다)은 대체로 문화대혁명 세대의 마지막과 개혁개방 세대의 처음에 걸쳐 있는 세대들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보자면 우리나라의 빠른 386세대 정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어린 시절에 문화대혁명을 겪었던 이들은 청년 시기에 1980년대의 '문화열(文化熱)' 현상의 세례를 받았던 세대이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수많은 지식인은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철저히 파괴하고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붙였던 과거의 수많은 전통을 새롭게 재해석하게 되는데, 이를 일컬어 '문화열'이라 한다. 문혁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공격 대상이었던 유학이나 불학, 서학 등이 새롭게 재조명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전근대 사상을 계승하여 새로운 사상 전통을 만들어 나갔던 캉유웨이를 비롯해 현대 신유가(新儒家)에 이르는 수많은 학자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시대적 사조는 󰡔약론󰡕을 저술하게 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주저자인 천샤오밍은 이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사실 유학의 현대 운명을 논한 것은 내가 시작한 자각적 선택은 아닙니다. 그리고 내 이후의 관심 대상 역시 유학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 시대가 이른바 '문화열'이라 불리게 된 것은 사람들마다 모두 문화를 이야기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량수밍(梁漱溟), 펑여우란(冯友兰), 리쩌허우(李澤厚), ……, 두웨이밍(杜维明), 위잉스(余英时), ……, 간양(甘阳), ……, 진관타오(金观涛)와 리우칭펑(刘青峰) 등의 시각이나 입장은 달랐지만, 이들 몇 세대의 사람들 모두가 함께 문화에 대해 논했습니다. 󰡔중국고대사상사론(中国古代思想史论)󰡕, 󰡔구원과 소요(拯救與逍遥)󰡕, 󰡔흥성과 위기(兴盛與危机)󰡕 등의 책은 한때 유행했죠. 여러 동년배들과 마찬가지로 내 관심은 분명 당시 사조에 의해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유학의 현대 전환(儒学的现代转折)󰡕과 󰡔해석된 전통󰡕은 서로 관련되어 있는데, 전자는 현대 신유가를 논하였고, 후자는 그 배경을 추적했습니다. 이 덕분에 경학 문화의 현대 의식 형태와 복잡한 관계에 주의하게 되었습니다. 󰡔한·송대 학술과 현대사상(汉宋学术與现代思想)󰡕(1995년) 속에 일부 문장들 역시 관련 주제들을 둘러싸고 풀어나간 것입니다.

결국 1990년대에 들어와서 저자들이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의 근대 사상사에 대한 정리를 시도하게 된 데에는 1980년대의 '문화열'이라는 시대적 사조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약론󰡕에서 다뤄지고 있는 사상가들 대부분이 리쩌허우 같은 선행 연구자들에 의해 이미 다뤄졌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리쩌허우 등의 선행 연구자들의 연구가 각 사상가를 인물 중심으로 개괄하는 데서 그쳤다고 한다면, 󰡔약론󰡕은 사상의 사조와 그 핵심적 개념들을 중심으로 개괄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저자들은 서론에서 자신들의 사상사 저술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의 연구는 상세하고 완전한 사상사 저술이 아니라 단지 후대 사상에 영향을 미친 사상사의 인물이나 현상을 주목한다. 그래서 사조를 중심으로 했지, 인물을 중심으로 하지 않았다. 또한 완전히 시간 순서로 서술한 것도 아니다. ……특정한 분석과 개괄을 통해서 배경으로서 구(舊)전통을 보여 줄 것이다.

이들의 저술 의도는 바로 각 사상가의 사상을 사조라는 강줄기 속에 풀어놓고 “특정한 분석과 개괄을 통해” 재해석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 근대 시기 사상 전통을 재구성해내고자 하는 󰡔약론󰡕의 이른바 “특정한 분석과 개괄”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9라는 숫자와의 묘한 인연을 발견할 수 있다. 󰡔약론󰡕의 저자들은 삼분법을 통해 중국 근대 사상사 전체를 구성해 내고 있는데 이러한 삼분법이 거듭되면서 전체적인 구성 자체가 크게 아홉 개의 장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다시 말해, 󰡔약론󰡕은 우선 사상 전통의 흐름을 크게 유학과 불학, 그리고 서학이라는 세 가지 층위로 나누고, 이를 다시 각각 세 가지의 하위 층위를 재구성해 냄으로써 전체적으로 아홉 개의 주요 사상적 조류를 개괄해 내고 있다. 󰡔약론󰡕의 목차가 모두 열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갑자기 아홉 개로 개괄되고 있다고 하니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학, 불학, 서학의 세 층위를 다루고 있는 각 부의 첫 장은 모두 근대 이전의 전사(前史)를 다루고 있고, 또한 마지막의 제13장은 근대 사상사의 총괄이자 1949년 이후의 당대 사상사로 이어지는 과도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 사상사의 이해를 위한 배경 지식을 설명하는 것이지 근대 사상사 자체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아홉 개로 개괄되고 있다고 한 것이다.

우선 유학의 경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약론󰡕은 전근대 시기의 유학을 금문학(今文學), 고문학(古文學), 그리고 송학(宋學)의 세 층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들은 각기 '경세(經世)''훈고(訓詁)' '의리(義理)' 또는 '언어-역사학으로서 경전 해석학', '정치-사회학으로서 경전 해석학', 그리고 '종교-철학으로서 경전 해석학'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 같은 전근대 시기의 경학 전통들은 근대에 들어오면, 각기 '정치' 지향성이 강한 금문학파였던 캉유웨이와 량치차오(梁啓超), '고증 및 훈고'적 경향이 강했던 장타이옌(章太炎)과 고사변파(古史辨派), 그리고 '철학'으로서 유학에 주목하였던 량슈밍(梁漱溟)과 슝스리(熊十力) 같은 현대 신유가 등의 사상들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유신경학', '역사이성', '포스트경학'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이들 세 개의 사조들은 모두 유학의 근대적 전환이 만들어 낸 대표적 결과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불학의 경우, 전근대 시기 동안 한·당(漢唐)대와 송·명(宋明)대에는 유학과, 그리고 청(淸)대에는 서학과 서로 어우러지거나 대립하면서 적응하고 변용되어 왔던 불학의 세 가지 주된 양상들을 개괄하고, 또한 근대에 접어든 이후로 불학이 '입세를 통한 대승적 보살행을 실천하고자 하였던 탄스퉁(譚嗣同)의 응용불학', '혁명 종교로 세우고자 하였던 장타이옌의 무신교', '불학을 통해 유학을 철학적으로 보완한 슝스리의 본체론' 등의 세 가지 형태로 그 사상적 흐름을 이어나가게 된다고 정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학의 경우,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차원에서 서학을 세계관으로 받아들였던 옌푸(嚴復)와 후스(胡適), 그리고 정치와 도덕의 계몽이라는 차원에서 서학을 수용하거나 비판하였던 량치차오·천두슈(陳獨秀)·루쉰(魯迅), 마지막으로 가치이성을 내세우는 현학파와 도구이성을 내세우는 과학파, 그리고 역사이성을 내세우는 유물사관파 등으로 신념체계의 분열을 낳게 한 과현논쟁 등의 세 가지 사례들을 통해 서학이 근대 중국의 사상계에 미친 영향을 개괄하고 있다.

이처럼 󰡔약론󰡕은 유학, 불학, 서학이라는 세 가지 사상 전통을 가지고 중국 근대 사상사를 개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이를 다시 각기 세 가지 하위 범주, 혹은 층위로 나누어 분석·개괄함으로써 복잡다단한 사상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내고 있다. 이처럼 기존의 사상가 중심 연구에서 벗어나, 사조와 주요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론󰡕은 매우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삼분법을 이용한 분류 방식이 자칫 단순화, 혹은 도식화로 빠질 위험을 지니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낳게 하기도 한다. 사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사상가에 의해 형성되어 온 중국의 사상 전통을 세 가지 층위로만 분류하는 것부터가 일단 반론의 여지가 있을뿐더러, 하위 범주에서도 수많은 다양한 사상가들을 세 가지 부류로만 정리하는 것이 설득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또한 전통 사상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사상적 계승의 서술에서도 사실상 서로 복잡하게 착종·교착되어 있는 사상의 흐름을 단순한 직선적 영향 관계로 환치하는 듯한 부분도 없지 않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약론󰡕은 이러한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단점들은 '약론'이라는 형식 자체가 지닌 한계 때문으로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할지 모르겠다. 어차피 저자들도 서론에서 이미 '완전한 사상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듯이, 이는 다소의 단순화나 도식화의 위험을 안고서 중국 사상사의 커다란 물줄기를 한눈에 체계적으로 볼 수 있게 정리한 하나의 '약론'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약론󰡕은 이미 '약론'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고 하겠다. 사상사의 관점에서 근대 중국을 재조명해 보고자 하는 이들이나, 전체적인 상을 그려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있어 󰡔약론󰡕은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달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수(0)  
전체기사의견(0)
불교평론 소개독자투고불편신고구독신청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135-887]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2-9번지 MG타워빌딩 3층 | Tel 02-739-5781 | Fax 02-739-5782 | 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사성
Copyright 2007 불교평론.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review@hanmail.net
불교평론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