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신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원효의 삶과 생각"을 동아시아 불교라는 넓은 시야에서 조망하려는 시도

올해는 저의 첫 논문이 발간된 지 꼬박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저 자신의 그동안 학문적인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모색하는 한 해로 삼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뜻하지 않게 '올해의 논문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보니,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엄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먼저 뜻 깊은 상을 제정하신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제게 수상의 영광을 허락하신 불교평론의 심사위원 여러분께 두 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저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한국불교사를 전공하게 되면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원효(元曉)의 삶과 생각'을 필생의 연구 주제로 삼았습니다. “한국불교란 무엇이며,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원효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저 이전에 이미 적지 않은 선학들이 뛰어난 연구 성과를 거둔 바 있습니다만, 저는 기왕의 연구 성과에 작은 벽돌 하나를 얹고자 하였을 따름입니다.

원효를 연구하면서 제가 생각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원효를 이해하자는 것이며, 또 하나는 원효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효에만 머물지 말고 불교사의 핵심 문제를 아울러 연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후자와 관련하여 저는 끊임없이 연구 주제를 확장시켰습니다.

그동안 제가 발표한 대략 60편의 글 가운데 4분의 1 정도만 '원효의 삶과 생각'을 다룬 것이며, 나머지는 '불교와 국가(혹은 국왕)의 관계', '한국의 가짜 경전(僞經, Apocrypha)', '불교와 유교의 소통', '한국불교 사학사와 방법론 및 자료'의 네 분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분야가 바로 '7세기의 동아시아 불교'로서, 원효를 동아시아 불교라는 넓은 시야에서 조망하려는 시도입니다.

사실 원효 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의 하나가 화쟁(和諍)인데, 이 화쟁의 역사적 의의를 밝히기 위해서는, 7세기 동아시아 불교계의 동향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이번에 발표한 〈현장상의 인도 구법과 현장상(玄奘像)의 추이〉는 명목상 현장이 주인공이지만, 실은 원효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관문인 셈입니다.

7세기 현장의 구법 여행과 역경 활동으로 촉발된 동아시아 불교계의 지각변동이야말로, 원효가 극복하고자 도전하였던 불교계의 현실이었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원효가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불교적 이상은, 이후 수많은 동아시아불교 승려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멀리는 고려 중기의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원효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해동교학(海東敎學)을 재건하고자 하였으며, 가까이는 20세기 초에 만해 한용운이 침체된 조선불교를 혁신하고자 하였을 때조차, 그는 주저 없이 원효를 역할 모델로 설정하였습니다. 의천과 만해의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한국불교사를 연구하는 저의 기본적인 입장이기도 합니다.

저보다 뛰어난 연구 업적을 발표한 학자가 없지 않음에도, 만해사상실천선양회와 불교평론이 '올해의 논문상'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데 대하여,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상 제정의 숭고한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2008. 11.

남동신  / 1961년생 . 1984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문학학사) 졸업. 1988년 동 대학원 석사(문학석사), 1995년 동 대학원 박사(문학박사) . 박사논문: 원효의 대중교화와 사상체계” . 2001년 한국사상사학회 제정 '올해의 논문상' 수상 . 2000년 ~ 현재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 현재 한국사상사학회, 한국불교학회 이사와 원효학연구원 이사, 한국인도학회 정회원. .  대표 논문으로 「慈藏의 佛敎思想과 佛敎治國策」,「羅末麗初 전환기의 지식인 崔致 遠, 「목은 이색과 불교 승려의 詩文 교유,「여말선초기 懶翁 현창운동」 등이 있으며, 저서로 『원효』(1999, 새누리)와 역서로 공역『慧能』(1993, 玄音社) 공역『역주 나말 여초금석문』(1996, 혜안)외 여러 편.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