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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수치로 살펴본 동물 희생 / 우희종
특집: 불살생 선택인가 당위인가
[37호] 2009년 01월 04일 (일) 우희종 hjwoo@snu.ac.kr

1. 들어가는 말

한국은 경제 발전에 따라 이제는 국제사회의 OECD(국제 경제협력 개발기구) 일원으로서 선진국에 해당된다. 한국의 육류 소비량은 경제 발전과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러한 육류 소비의 증가는 그 어느 나라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육류 소비에 대한 선호도에 따른 목축산업의 비대화 및 생산량 증가를 위한 업자들의 노력도 동물의 생명을 바탕으로 기업화된 산업 구조를 더욱더 가속하고 강화하고 있다.

현재 66억으로 추정되는 세계 인구와 더불어 후기 산업 시대의 대량 소비문화는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의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높이고 있다. 정확한 수치를 얻는 것은 어렵겠지만 추정해 본다면 우리의 예상이나 실제 통계 자료보다 훨씬 높은 수치일 것임은 분명하다. 전체적 규모를 구체적인 통계를 통해 알아봄으로써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잡식성인 사람의 식습관을 고려할 때, 다양한 동물이 식용으로 희생되겠지만, 현실적으로 조사가 가능한 대표적인 일부 가축만 해도 연간 100억 마리 이상이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지구의 식량 편재 상황을 고려할 때 육류 소비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현실과 더불어 앞으로 인간의 육류 소비문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함을 말해 주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한 줌의 먹을거리가 없어 기아로 사망하는 상황에서 엄청난 곡물이 육류 생산을 위해 소비되는 현실도 문제인 것이다. 식용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용으로, 혹은 스포츠 등을 위해 사망하는 수치를 고려하면 인간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동물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끊임없는 인간의 육류 소비와 이를 위한 축산 산업의 비대화는 인구 증가에 따른 지구의 식량 위기를 조장하는 것으로서 석유라는 화석연료의 고갈에 따라 현실화된 에너지 문제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의 육류 소비가 동시대의 기아 문제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육류 문화에 대한 대안 문화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인간은 조만간 지구 식량 자원의 고갈을 통해 스스로의 목을 조르게 될 것이 충분히 예견된다.

인간의 육식에 대한 끝없는 욕망은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많은 동물의 희생을 요구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욕망은 동물의 생명권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굳이 생태적 관점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며, 결국 인간의 생존과 동물의 생존은 서로 연계되어 있어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다행히 이러한 문제점 제시와 문화 사상적 전환에 대한 논의가 세계 여러 곳에서 생태적 관심 및 동물 생명 존중에 대한 의식 함양에 따라 비교적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인간의 육식 문화에 따른 동물의 희생 정도를 파악하는 것에 한정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논의와 이에 대한 의식화 운동이야말로 불가(佛家)의 생명 존중과 소욕지족(所欲知足) 관점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물론 대량 소비를 통한 욕망의 만족이 가장 좋은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논리를 앞에 두고 이러한 논의가 현실적으로 얼마만 한 효과를 나타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일단 얼마나 많은 동물이 희생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2. 국내의 희생 규모

1) 사육 현황

 국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대표적인 축종별 두수를 확인함으로써 식용으로 사육되어 희생되는 전체적인 동물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표1>의 통계에서 보듯이 소는 국내에서 연평균 250만~270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으며, 돼지는 9백만~9백50만 마리, 닭은 1억~1억 3천만 마리 규모의 사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규모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5년간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볼 때, 매년 10% 정도의 범위에서 변동은 있으나 비교적 안정된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2) 도축 현황
2007년도에 도축된 가축의 통계를 보면 <표2>에서 보다시피 소는 60~70만 마리가 매년 도축되고 있으며, 돼지는 1천3백만 마리 내외, 닭은 6억~6억 5천만 마리, 그리고 오리는 3천만~4천만 마리의 규모로 도축이 시행되고 있다. 돼지와 닭은 사육되는 숫자보다 도축되는 숫자가 많은 사실을 보면, 태어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고 신속히 도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사료 효율 및 육질 등을 고려하여 생산성을 포함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돼지는 생후 5개월 전후, 닭은 부화 후 3~4개월이면 식용으로 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 수입 현황
2007년 12월에 잠정적으로 계산된 농림부의 ‘축산물 수입 검역 통계 순기 보고('07년 12월)’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육되어 도축됨으로써 희생되는 가축 외에도 국내 육류 소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막대한 양의 육류가 다양한 나라에서 수입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표3). 이 2007년도 수치를 보면, 미국 쇠고기의 수입이 전면 재개된 2008년 올해 상황과는 달리, 당시에는 미국 쇠고기의 수입 물량이 매우 적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 국민의 육류 소비량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자료에서 보듯이 육류 수입국의 분포가 다양함을 볼 때 육류 소비 문제는 전 세계적 내지 전 지구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5) 어류
쇠고기, 돼지고기와 닭고기와 같은 전통적인 육류 외에도 국내에서 소비되는 대표적 육류 중에서 어패류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희생되는 어류의 숫자 통계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해양수산부의 자료를 통해 전체적 규모를 짐작해 보면, 매년 250만~300만 톤의 규모의 어류가 인간을 위해 포획 또는 양식을 통해 희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 4>).

이상과 같이 국내 식용 동물의 규모는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며, 이러한 통계 수치 외에도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오리, 토끼 등 여러 동물의 숫자는 물론, 몸에 좋다는 이유로 선호되어 식용으로 대량 사육되고 있는 개나 사슴, 뱀 등의 동물들의 숫자를 고려하면 이 수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3. 세계의 희생 규모

1) 사육 현황

국제적인 가축의 사육 규모는 국제식량기구(FAO)의 2008년도 통계를 바탕으로 추정할 때, 지난 3년간 소가 연평균 13억~14억 두의 사육 규모를 나타내고 있고, 돼지는 연평균 9억 4천만~9억 9천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한편 양은 비록 국내 사육은 미미하지만 국제적으로 연평균 약 10억~11억 마리의 사육 현황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닭은 연평균 164억~169억 마리가 사육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내의 사육 및 도축 현황에서 보았듯이 돼지와 닭은 1년 미만 상태에서 도축되기에 현실적으로 식육으로 희생되는 돼지와 닭의 숫자는 사육 두수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류의 경우, 포획량만으로 바다 생물의 희생을 보수적으로 추정해 볼 때 전 세계적 포획량은 연 1억 5천만~1억 6천만 톤의 규모를 보이고 있다(구체적인 국가별, 연도별 사육 및 포획 규모는 부록 참조).

2) 미국 사례
미국의 도축량은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규모가 큰데, 어류 등의 해양 동물을 제외한 지상 동물만으로도 100억 마리 가까운 도축량을 보이고 있으며 그 과정에 사망하는 동물의 수를 포함하면 100억 마리 이상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표5>). 또한 미국에서는 이러한 수치에 더해서 생명공학 발전을 위한 실험동물로 2천5백만 마리의 동물이 사용되고 있고, 스포츠 목적으로 사망하는 동물의 숫자도 1억 3천5백만 마리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현황 속에서 많은 동물 권익 보호론자들의 활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육식에 따른 성인병 증가라는 면에서도 결코 권장되지 않는 육식은 대안으로서 채식문화 전개의 발단이 되기도 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의 불교에 대한 관심과 궤를 같이하는 측면도 있다.

4. 맺는 말

이 글에서 검토된 대부분의 통계는 국제기구나 정부의 공식 자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통계가 미비한 국가나 소규모의 국가 및 지역의 자료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 동일한 추정치에서도 기관이나 국가 간의 통계 수치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러한 통계상의 오류를 고려한다 해도 전체적인 동물 희생의 규모를 추정하는 데에는 결코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 제시되고 있는 수치 외에도 지구상의 다양한 문화권의 독특한 취향으로 인한 도축이나 동물 살육 수치는 반영되지 않았음을 고려할 때 인간을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동물의 숫자는 가히 천문학적 숫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또한 단순한 식용 목적 외에도 과학 연구를 위해 사용되고 버려지는 많은 실험동물들, 사람들의 여가나 재미를 위해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 경우에 따라서는 주술적 행위나 개발 목적으로 자연을 파괴함에 따라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 역시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간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지구에서 끊임없이 죽이고 있는지, 사라지게 하고 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단순히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의 생명권 문제뿐만 아니라, 가축이나 동물의 사육 환경에 대한 자각도 매우 필요한 현실이다.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지만, 인간의 이기심과 더불어 경제성을 위한 생산성 및 효율성 제고의 이름으로 동물의 생명을 생명이 아니라 그저 물건과 같이 취급하는 것은 오만과 독선에 가득 찬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동일한 생명체로서 생존을 위한 욕망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동물의 생존 욕망은 환경에 의해 조절되지만, 인간은 환경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에 억압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적 욕망에 다시금 억압되는 욕망의 재생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욕망이 욕망을 낳는 강박적인 인간의 중독된 욕망은 반복을 거쳐 스스로를 욕망의 굴레 속에 넣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더 나아가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게 될 뿐이다. 과연 인간이 인간을 위해 자행하는 이 거대한 업은 장차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사실 인간이 자행하는 살상과 동물 학대의 업은 이미 우리 코앞에 닥쳐 있다. 새로운 돌연변이의 출현으로 인간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지 모르는 조류독감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확산 추세인 광우병이나 사스(SARS) 등의 신종 인수공통질병도 결국 경제와 실용 논리로 무장한 인간 욕망의 산물이다.

또 육식에 대한 인간의 욕망으로 동물 사육에 사용되는 곡물은 지구 생산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지구 저편, 아프리카에서 단 한 줌의 먹을거리가 없어 죽어 가는 이들을 생각할 때 너무도 잘못된 인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5초마다 한 명씩 어린이가 기아와 관련된 원인으로 죽음에 이르고 있으며, 3.6초마다 한 사람이 기아로 죽어가는데 이 중 75%가 어린이라는 국제기구의 보고도 있다. 인간에 대한 이런 직접적인 영향과 더불어 대규모의 가축 산업에 의한 생태계 파괴 역시 우리가 직접 느끼지는 못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축이 만들어 내는 배설물의 환경오염 및 동물이 배출하는 메탄가스도 지구 온난화의 한 원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작은 양의 고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소비되는 곡물의 양이 지나치게 많음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당장의 감각적 만족을 위해, 내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육식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사람과 동물의 유전자 수준의 차이는 놀라울 정도로 낮다. 사람의 유전자를 밝히고자 수행되었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에 의해 밝혀진 사람의 유전자는 침팬지와 1% 미만의 차이밖에 없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 차이가 큰 것도 아니었으며, 또 예상했던 인간의 유전자 수도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는데, 곤충보다 두 배도 많지 않은 숫자였다.

현대 과학적으로 보아도 부처님 말씀처럼 동물과 인간, 우리 모두 인과의 고리로 인드라 망의 구조를 지니고 어우러져 있을 뿐이지 결코 인간만이 다른 생명체를 그토록 힘들게 하고 죽일 그 어떤 특권도 있을 수 없다. 일부에서 보듯 이러한 사안을 과격하고도 극단적인 폭력적 형태로 해법을 찾을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는 일반 대중의 자각을 통한 문화운동 형태로 풀어 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끝으로 수많은 동물의 죽음을 이렇게 단순히 통계 수치로 정리하면서 법성게에 있는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라는 구절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모든 생명체 하나하나가 전 우주를 담고 있음에도, 우리는 너무도 가볍게 생명을 다루는 것이고, 또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그 수많은 생명의 고통과 죽음을 단순한 통계 수치 속에 담아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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