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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 결사를 다시 생각한다 / 조성택
― 한국 근대불교사의 연속과 불연속 ―
[30호] 2007년 03월 12일 (월)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ㆍ본지 주간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ㆍ본지 주간

올해로 봉암사 결사 60주년을 맞는다. 교계 내외 언론들은 봉암사 결사의 역사적 의미를 다양한 기획 특집으로 소개하고 있다. 조계종에서도 올해 20대 핵심사업의 하나로 ‘봉암사 결사 60주년 사업’을 선정하였다. 봉암사 결사는 한국 근현대 불교사 기술에 있어 그 이전과 이후를 구분할 만큼 한국불교의 역사적 전기를 이루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조계종이 한국 최대의 종단이 되는 역사적 계기도 어떤 의미에서는 봉암사 결사에서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오랜 전통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신행문화나 사찰에서의 생활양식과 예불의식 등 소위 불교문화라 일컬어지는 대부분이 봉암사 결사를 통해 정리되고 확립된 것이다. 오늘의 조계종, 크게는 한국 현대불교의 원류가 봉암사 결사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봉암사 결사는 해방 이후 빚어진 불교계의 혼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전통복고의 길을 택하였다. 화두 참선의 수행 종풍을 확립하고 청정지계의 엄격한 생활양식을 실천했을 뿐 아니라 사찰에서의 비불교적 요소들을 과감히 척결함으로써 수행도량이라는 사찰 본래의 기능을 되살렸다.

그리고 승려의 의제를 정비, 통일하고 재가자와 출가자의 관계를 새로이 설정하여 출가수행자의 종교적 위의와 사회적 지위를 재정립하였다. 이 모두 당시 불교계로서는 절실한 과제였고 이러한 결단과 실천을 통해 지금의 한국불교의 모습이 가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봉암사 결사가 지금의 한국불교의 모습과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만큼 그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아쉬움도 적지 않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긍정적 평가와 비판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선택’에 대해 절대적 선이나 절대적 악을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쉬움’이란 것이다. 봉암사 결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어제는 오늘의 기억이다’라는 경구(警句)는 과거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제’란 지나가 버려 어찌할 수 없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오늘의 문제의식에 따라 다시금 평가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란 결국 승자(勝者)의 기록일 뿐이라는 상대주의적 역사관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현재의 노력에 의해 과거는 끊임없이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봉암사 결사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자 하는 것도 오늘 현재 우리가 어디에 서 있으며 장차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점검해보기 위해서다.

1945년 8월의 광복은 일제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쁨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사회 각 부문에서 혼란과 방황도 함께 초래하였다.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조 5백년간의 침체라는 오랜 공백기를 거쳐 식민지 공간에서 새로운 불교를 위한 방황과 모색이 채 결실을 맺기도 전에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당시 한국불교는 전통과 근대, 출가와 재가, 대중과 엘리트, 탈속 지향과 사회참여, 민족과 보편 등 온갖 모순이 혼효(混淆)한 가운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고 있었다. 실로 방황과 혼란이었으며 모색과 다양한 가능성의 기간이었다.

봉암사 결사는 ‘부처님 법대로’라는 원칙하에 전통 지향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혼란을 종식하고 한국불교의 좌표를 설정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처럼 마련된 근대불교의 다양한 모색과 가능성이 차단되고 배제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봉암사 결사가 비록 직접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출가승 중심의 수행 종풍 확립’ 노력은 결국 대처불교는 부처님의 법이 아니며, ‘왜색불교’이고 청산의 대상임을 선포한 결과가 된 것이다.

진실로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왜색불교’나 ‘대처불교’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협조한 ‘친일불교’였다. 그것은 민족의 이름 이전에 불법(佛法)의 이름으로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대처승만이 아니라 비구승 가운데도 친일부역자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해방 이후 전개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대처불교는 왜색불교이며 곧 친일불교라는 등식이 마련되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사회 엘리트이자 불교계의 훌륭한 인적 자원인 많은 대처승들이 불교계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라는 봉암사 결사의 대전제이자 원칙은 간결한 만큼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강력하였다. 불교인이 부처님 법대로 살고자 한다는 데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부처님 법대로’를 실천하는 데에는 한 가지 길만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을 수 있다. 봉암사 결사가 지향하는 전통적 불교의 출가 중심주의와 탈속화의 대척점에는 근대적 불교의 새로운 모습을 모색하던 많은 다른 가능성이 있었다. 대처불교는 그 모색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 법대로 살자’라는 봉암사 결사의 강력한 원칙은 한국불교가 장차 열어갈 여러 다른 가능성을 일거에 차단하고 봉암사 법이 곧 ‘부처님 법대로’의 유일 기준이라는 일반적 인식이 형성되는 계기를 초래하였다.

또한 여기에는 대처불교는 곧 ‘왜색불교’요 따라서 ‘친일불교’라는 우리의 편향된 역사인식이 한몫을 하였다. 대처불교가 곧 친일불교요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면 대처불교를 주장한 만해도 친일인사요 일제의 앞잡이인가? 대처론이 만해의 머릿속에서 나왔으면 괜찮고 당시 일본불교를 모델로 한 것이면 친일불교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어두운 길에서는 도적놈이 든 횃불이라도 뒤따라가야 한다.”는 지눌의 충고는 여기서도 유효하다. 대처불교가 오늘날 부처님의 법을 실현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이 일본불교이기 때문에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처불교의 비전통성, 그리고 왜색불교 시비 등 ‘근대불교’의 큰 흐름에 비한다면 지엽적일 수도 있는 문제들로 20세기 초 이래 모색되어 왔던 근대불교가 꽃필 수 있는 가능성들이 모두 차단된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근대불교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그 온전한 모습을 말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지만, 당시 불교잡지 등 1차 자료들을 통해 얼마간의 모습은 엿볼 수 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당시 한국 불교인들이 매우 폭넓은 사유를 전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일본, 중국을 통해 거의 유럽과 동시대적으로 근대적 가치와 이념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근대적 가치이자 지금 우리 삶의 기초가 되는 자유, 인권, 노동과 같은 일상적 가치 그리고 민족개념, 국가이념 등과 같은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과 종교에 대한 다원적 인식 등을 불교적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불교개혁을 통해 사회개혁을 이루겠다는 문제까지도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한마디로 지금의 현대 한국불교에서 고민하고 있는 전통과 근대적 가치의 접합이라는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자기비하가 아니라 이 문제에 관한 한 현재 우리는 20세기 전반의 한국 불교계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전문성이나 다양성 면에서도 그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한국불교의 미래가 출가불교가 아닌 대처불교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처불교는 재가불교의 한 모델일 뿐 논의의 중심은 한국불교의 다양성과 개방성에 있다. 그런 점에서 재가불교가 출가불교에 종속되어 있는 지금의 한국불교가 21세기의 바람직한 불교의 모습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굳이 서구불교의 예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현대 한국 사회에서 재가 불교인의 역할이 커지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란 점에서 이 문제를 마냥 비켜갈 수는 없다.

우리 모두가 각기 자신의 자리에서 반성하고 분발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입장에서 보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근대 한국불교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 데에는 ‘전통복고’를 통해 한국불교를 중흥하자는 봉암사 결사와 그에 맞닿은 정화운동에 상당한 원인이 있다. 봉암사 결사는 나름대로 필요한 일이었고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역사적 측면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근대불교사의 과제라는 점에서 볼 때 반쪽의 개혁이었고 미완의 결사인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다른 반쪽은 이제 우리의 몫이며 나머지 반쪽을 채울 때 한국불교를 중흥하고자 한 봉암사 결사의 진정한 정신이 완성될 것이다. ■

2007년 봄

조성택(본지 주간)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석사 : 인도철학), 미국 UC버클리대학원 졸업(박사 : 불교학), 전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 교수. 「현대불교학의 합리주의적 경향」「무아 : 불교의 정의관을 향하여」 등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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