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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대장경 완간의 의미와 과제 / 김용섭
[8호] 2001년 09월 10일 (월) 김용섭 동국역경원 편집위원.

1. 들어가는 말

“한국불교사의 새 전기를 마련한 대장경의 한글 번역 불사가 장장 37년이라는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완간을 보게 되었다.”

한글대장경의 완간을 두고 불교계, 혹은 일반 매스컴에서는 대체로 이러한 류의 표제 하에 논지를 전개하는 것 같다. 한글대장경의 완간이라는 것이 기념하고 기뻐할 만한 수고의 산물임에는 틀림없다. 인류의 지적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상을 담고 있는 불교의 총화를 우리 후학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기쁘고, 세계를 향하여 가슴을 활짝 펼 수 있는 업적이라는 면에서 기념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글대장경의 저본인 고려대장경이 어떤 것인가. 고려대장경은 불교를 크게 일으키려는 목적에서뿐만 아니라 문화국으로서의 위신력을 내외에 선양하고, 몽골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을 빌어 몰아내려는 국가적 염원으로 조성한 민족정신의 결집체가 아닌가. 그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이 한글대장경 완간이라는 사실은 고려대장경 조성 당시의 민족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그야말로 우리것화한 일대사(一大事)라 할 수 있겠다. 처음 고려대장경이 주조되던 11세기(고려 顯宗, 1010∼1031)로부터는 줄잡아 1,000년이 지난 세월이니 앞뒤를 따져보자면 너무도 늦게 영근 열매라 하겠다.

1964년 역경원(譯經院)의 현판이 선 이래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과 수다한 사람들의 노력으로 무려 318권(목록 포함 319권)에 달하는 한글대장경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장엄한 대열에 미력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는 것이 일면 송구하면서도 자랑스러움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실무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그렇게 막연히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기에는 미진하고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슴 벅차게 몇 칸의 책장을 가득 매우며 빼곡이 들어찬 한글대장경을 정작 꺼내어 펼쳐보았을 때, 이내 그 안에 튀어 나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설령 어쩔 수 없었던 현실이라든지 얽히고 설킨 구조적인 문제로 돌릴 수도 있겠으나,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문제이고 불교계의 현실임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은 이제 초벌구이를 마쳤다는 것. 과정은 그만두고 처음 실타래를 풀어 이제 맺음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불교계와 겨레의 자부심을 받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우리말 대장경으로 거듭나기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한 세대의 역사(役事)로서의 1차 번역사업을 마치고 부처님 전에 회향하는 이 시점에서, 그러한 기원의 마음으로 지나간 과정을 반추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업을 향한 발원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2. 역경(譯經)의 과정

1) 역경의 의미

본 한글대장경이 저본으로 삼고 있는 고려대장경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서는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으리라고 본다. 경판 하나하나, 글자 한 자 한 자에 담긴 국난 극복의 염원이라든지, 획 하나하나에 밴 절절한 불심 등은 역사를 통하여 익히 듣고 배워온 바다. 역경의 출발은 그 위대한 대장경이 순수 한자로 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는 데 있다.

역경(譯經)의 뜻을 그 한문 경전의 한글화에 국한한다면 역경의 역사는 조선조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좀더 확대하여 일반인을 위한 우리말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면 역경의 역사는 저 신라시대에까지 이르러야 할 것이다. 불교가 우리 나라의 자생적인 종교가 아닌 한 처음 유입될 때는 외국말로 되어 있었던 것이고, 그것을 우리 나라에 통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언어와 문자체계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정보에 빠른 일부 계층이나 지식인층이 아닌 일반 대중에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쉬운 언어, 간단한 문자를 지향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역경에는 이러한 전법(傳法)의 의지와 대중 지향의 성격이 담겨 있다.

2) 한글대장경이 완간되기까지

근현대에 이르러 역경불사의 시원(始原)을 논할 때는 1921년 용성 스님의 삼장역회(三藏譯會)를 말한다. 용성 스님은 그를 조직하여 《화엄경(華嚴經)》을 비롯한 여러 경전을 국역하였지만 일제 하에서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하고 우리말과 글을 빼앗기는 불운을 맞이했다. 해방 후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불교계에서도 불전의 한글화 작업이 시급하고, 이는 불교 대중화에 기여하고 불교학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에 1945년 12월 해동역경원(海東譯經院)이 종단 내에 설치되었고, 같은 해 적음(寂音) 스님이 주도하고 오상순(吳相淳)·성낙훈(成樂薰)·변영만(卞榮晩) 등이 참여하는 호국역경원(護國譯經院)이 설립되었다. 1947년에는 안명언(安明彦)·김동화(金東華) 등이 주관하는 홍법원역경회(弘法院譯經會)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해동역경원과 호국역경원, 홍법원역경회 모두 간판만 걸었을 뿐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고 활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몇몇 불전을 번역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재정 부담의 벽을 넘지 못하고 6·25 전란으로 그 맥이 사라지고 만다.

전쟁이 끝나자 역경의 필요성이 다시 고조되기 시작하는데, 당시의 열악한 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왕성하게 불전을 번역하여 후대 역경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은 운허(耘虛) 스님이었다. 스님은 《무량수경》(1956) 번역을 필두로 《금강경》(1958), 《정토삼부경》(1958), 《수능엄경》(1959) 등 많은 경을 번역하였다. 또한 스님은 개인적으로 역경사업을 펼치고자 석주(昔珠) 스님과 법보원(法寶院)을 설립하여 1961년 5월 《불교사전》을 간행하였다. 이로써 불교학과 역경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이후 운허 스님은 법보원에서 《승만경》(1962), 《화엄경》(1964), 《열반경》(1965) 등 많은 경전을 번역 출판하였다.

한편 종단은 1962년 한국불교 중흥을 위하여 종단의 사업으로 도제양성(徒弟養成)과 포교(布敎)와 역경의 3대 사업을 세우고, 1963년 2월, 사계의 권위자 17명을 역경위원에 임명하고, 역경위원장에 운허 스님, 역경부장에 석주 스님, 사업부장에 석정 스님을 임명, 역경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듬해에는 운허 스님이 역경원장에 취임하면서 동국대학교 김법린 총장과의 합의 하에 문교부의 승인을 받고 동국대학교 부설기관으로 동국역경원이 설립되었다.

이후 역경원은 국고보조와 총무원의 지원 및 대장경 판매수입 등 재원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역경 사업에 착수하였고, 1993년 11월 운허 스님의 상족인 월운(月雲) 스님이 역경원장에 취임하면서는 역경불사에 가속도가 붙게 되어 95년 28책, 96년 32책, 97년 30책 등 4년간 총 116책이 간행되었다. 이어 98년 33책, 99년과 2000년에 걸쳐 35책을 발간하여, 1965년 한글대장경 제1집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 출발한 대장경 번역사업이 36년간의 대장정을 거쳐 318책으로 완간되었다.

3. 역경 과정의 어려움

1) 재정적 어려움

우리는 대장경과 관련하여 북한이 남한보다 이른 1987년 4월 이미 팔만대장경 해제를 출간했으며, 대장경 전체도 이미 번역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 그들은 관(官) 주도로 사업이 진행되는 반면 우리는 민(民) 위주로 펼쳐나가다 보니 무엇보다 재정적 뒷받침이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동국역경원은 설립시부터 국가의 재정 지원을 근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국고 보조는 역경사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고 보조만으로는 사업을 진행해나가기가 턱없이 부족하였다. 이것은 운허 스님이 1966년도 사업을 결산하면서 “또 한 가지 문제는 역시 재정문제다. 앞으로 정부 보조는 계속될 것이지만, 그러나 50년이라는 장구하고 방대한 사업을 마냥 국고에만 의존할 순 없다. 역경원은 1970년까지 기본금 5천만 원을 적립하기를 희망하고 있다.(〈동대신문〉 1966. 11. 28)”고 한 데서도 볼 수 있다.

정부는 1966년 이후 1975년까지 매년 1천만 원 정도의 역경사업 보조비를 책정하였다. 거기다 종단의 지원, 동국대학교의 자체 사업비, 판매수입금 등으로 살림을 꾸려나갔으나 90년대 들어 한 해에 30여 권씩 쏟아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실정이었다. 한 예로, 번역료의 경우 다른 국책기관에서는 산문 서적의 번역료가 6,500원, 운문이나 다소 어려운 문집의 경우 8,000원의 번역료를 책정하고 있으며, 아주 쉬운 내용은 6,000원을 주고 있다. 그러나 역경원의 번역료는 공히 4,000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2) 인력의 어려움

이런 낮은 번역료로 양질의 번역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경을 번역할 사람들이 생계의 위협을 받지 않고 마음껏 역경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애초에 역경원에서는 시역고(試譯稿) 제도를 두어 능력 있는 역경사(譯經士)를 모집하고 그들의 번역 실력을 검증한 뒤 번역을 의뢰하였다. 그러나 한정되어 있는 불교 인구 속에서 그나마 많지 않은 역경사에게 그 엄청난 분량의 번역을 맡긴다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고려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전적(典籍)의 내용을 볼 때 그 속에 담겨 있는 매우 다양한 교리와 불교철학의 심오한 체계는 단순한 시역고 검증을 통한 역경사 제도로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검증을 거칠 시간적, 기술적 여건마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한문 경전을 다 읽고 소화해낼 수 있는 역경사를 양적으로 풍부하게 확보하고 있다면 역경은 많은 부분 질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빠듯한 예산으로 인재들을 차출하기에는 그들 소수의 희생이 너무 크고 노동의 강도가 너무 세다. 낮은 번역료는 차치하고라도 이런 엄청난 정신노동을 견디어 가면서 해마다 많은 양의 전적을 번역해야 한다는 현실은 충실한 번역을 기하기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경사들에게 보다 질 높은 번역을 주문하기란 이미 말이 안 되는 요구사항이 아닐 수 없다.

4. 역경불사의 반성

1) 역경예규는 완벽하게 적용되었는가

번역은 정신적인 작업이다. 번역하는 사람의 수준과 성향에 따라 하나의 외국어는 다양하게 옮겨지게 된다. 역경불사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표현법에 대한 통일된 표기가 언제나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표기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번역문제의 통일도 급선무다.

개인적으로 어떤 하나의 경론을 채택하여 번역을 한다면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공식기관에서 팔만대장경이라는 거대한 양의 서적을 번역해내는 작업에서는 이럴 때 의견의 일치를 쉽게 모을 수 있는 법칙이 필요한 것이다.

1964년 당시 한글대장경 1집을 출판에 앞서 원고 정리와 교정단계에서 야기될 수 있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그 해 10월 4일에 선학원에서 역경예규(譯經例規) 제정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그리고 1966년 8월 8일부터 13일에 해인사에서 역경용어심의회를 열어 우선 빈도가 높은 270개의 불교용어를 통일시켰다(1966년 9월 20일자 〈한글대장경월보〉). 또한 이 자리에서는 역경용어심의회를 상설기구로 설치하여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계획을 세웠다.

초창기의 열의에 가득찬 이런 움직임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제정적인 이유로 인하여 역경원의 위상이 축소되면서 자연히 역경예규와 관련된 크고 작은 모임은 지속되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다. 물론 고려대장경의 한글화 작업에 의한 우리말 사용 운동은 1974년 한글학회로부터 국어사랑 감사패를 받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미 언급하였듯이 번역이라는 작업은 역자 개인의 역량과 성향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으며, 나아가 60년대에 제정된 역경예규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현실적으로 적용되지 못한 채 지금은 그저 참고할 만한 사항으로만 남아 있을 뿐 역자가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쓰는 우리말은 1960년대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기 급급하다면 이 또한 책임 있는 번역작업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글은 그 시대의 자화상이다. 시대를 이끌어 나가고 시대를 그대로 비추어내는 거울이다. 더구나 앞으로 한글대장경을 읽을 세대들이 서양의 사고방식과 영어와 기계문명에 익숙해 있는 세대들임을 감안할 때 현실감 있는 역경예규가 빨리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자들에게도 역경예규에 대한 충분한 숙지가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2) 증의(證義) 작업은 꼼꼼하게 진행되었는가

번역을 하다 보면 참으로 어려운 문장을 볼 때가 참으로 많다. 하루종일 책상을 마주하여 이것저것 들춰볼 수 있는 사전이란 사전은 모두 찾아보고, 그와 관련된 참고 서적들까지도 일일이 찾아보아 어렵사리 우리말로 옮겨놓기는 하지만 그것이 과연 정확하고 타당하며 무리 없는 번역인가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마음에 꺼림칙하게 남는 것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의라는 단계가 마련되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되어 한역(漢譯)되어 가는 과정에서 당시 역경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고민도 이와 다를 바 없었다. A.D.401년에 구마라집(鳩摩羅什)이 중국에 와서 역경을 시작하면서 그가 얼마나 번역이라는 일에 신중을 기하였는가에 관한 일화는 여러 서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마라집은 중국 장안성 북쪽의 소요원(逍遙園)에서 《대품반야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인도어 원본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그 의미까지도 설명하였다.

그때 국왕인 요흥(姚興)도 몸소 그곳에 나아가서 이전부터 있던 같은 계통의 경전인 《방광반야경》이나 《광찬반야경》이 지금의 번역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밝히고 올바른 뜻을 물었다고 한다. 구마라집의 역장(譯場)에서는 당시의 고승 석학 500명이 참여하여 그의 번역을 일일이 검토하면서 그 취지가 올바로 드러나도록 문장을 다듬었다.

이 이야기는 번역을 비교적 쉬운 용돈벌이쯤으로 여기며 고민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번역서를 내놓고 있는 오늘날의 일부 번역가들이 한 번쯤 가슴에 새겨야 할 내용이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 당나라의 현장 삼장의 역장에는 범문(梵文)을 한문으로 옮기는 본인 외에 한역을 필기하는 필수자, 범어가 올바른지를 증명하는 증범어자, 역어가 올바른지를 살피는 정자자(正字者), 역문의 의미를 상세하게 검토하는 상증대의자(詳證大義者), 문장을 올바르게 다듬는 증문자(證文者), 이러한 일들을 모두 감독하는 감열자(監閱者) 등이 함께 역경불사에 참여하였다. 현장 이후 송대(宋代)에 들어와서는 역경원제도가 만들어졌으며, 그에 따라 9개의 번역관 직위까지 마련되었다.

첫째는 역주(譯主)다. 이 사람은 범본을 가지고 온 역경자다. 그는 역경장 중앙에 앉아 범본을 읽는다. 둘째는 필수자(筆受者)다. 구마라집이나 현장이 번역했던 경우와 같이 역자가 한역한 것을 받아쓰는 사람이 아니라 역주가 읽어가는 범문 그 자체를 받아쓰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도어자(度語者)다. 범문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을 역어자(譯語者), 전어자(傳語者)라고 부른다. 넷째는 증범어자다. 한역이 잘못되지 않았는지를 범본에 맞추어 검증하는 사람이다.

이 증범어자에도 범어의 의미가 잘못되지 않았는지를 검증하는 증범의자(證梵義者)와 선정(禪定)의 의미나 내용, 행법에 오류가 없는지를 검증하는 증선의자(證禪義者)가 있었다고 한다. 다섯번째는 윤문(潤文)이다. 한역 문장을 매만지고 읽기 쉽고 잘 들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문체로 다듬는 사람이다.

중국에서는 산문의 문장을 4자씩 구(句)를 나누어 박자가 맞도록 번역하는 것이 통례였다. 여섯번째는 증의(證義)다. 번역된 경문의 앞뒤가 모순되지 않고 의미가 잘 통하는지를 검토하는 역할이다. 일곱번째는 범패(梵唄)다. 인도어 경문에 곡조를 붙여서 읊는 역할이다. 이것은 역경이 시작되거나 법연이 열릴 때 제일 먼저 거행되는 일종의 의식적인 행사이다. 여덟번째는 교감(校勘)이다. 현재 번역하고 있는 경전과 같은 종류의 경전이 이미 한역된 경우, 먼저 번역된 경전을 현재의 역경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고 참조하는 역할이다. 아홉번째는 감호대사(監護大使)다. 번역사업 전체를 총감독하고 검교하여 역경이 차질없이 이루어지게 하는 역할이다.

이상의 과정은 역경이 국가적 사업으로 적극적인 호응을 얻은 경우다. 오늘날 정부기관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애써 국고를 타오고 그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종단의 원로 중진들을 찾아다니면서 재정을 보조받는 실정에서는 위와 같은 국가적 장치는 사치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번역이라는 일을 얼마나 신중하게 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어느 한 개인이 외국어로 이루어진 경전을 붙잡고서 단시일 내에 혼자서 번역해내는 오늘날의 사정과 비교해보면 토론하고 묻고 검열하고 해석하고 소리내어 읽어보기까지 한 옛 시대의 역경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지금 역경원에서도 번역의 다음 수순으로 증의와 윤문이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하지만 촉박한 일정에 방대한 양을 번역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증의는 그저 빠진 부분이 없는지를 살펴볼 뿐이고, 윤문은 원문을 도외시한 문장꾸미기로 흐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3) 번역자의 자세는 갖추어졌는가

번역이란 다른 나라의 글로 쓰여진 문헌을 내 나라의 글로, 또는 내 나라의 글로 쓰여진 문헌을 다른 나라의 글로 옮기는 작업이므로 창작에 비교해서 그다지 독창적이거나 창의적인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텍스트가 없어 그 어떤 선입관에서도 자유로운 창작과는 달리 숱한 감시자가 있다. 우선 원문이 존재하고, 사전이 있으며, 비슷한 다른 번역물이 존재하고, 역자보다 더 뛰어난 언어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비판이 분분하다. 따라서 번역은 언제라도 뜨거운 질타와 지적의 도마 위에 놓일 수 있는 작업이다.

특히 역경은 더욱 신중을 요구하는 일이다. 단순히 화려한 언어감각이나 문장구사력을 지녔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박한 불교교리에 대한 지식만을 지녀서도 안 된다. 자신이 번역하고 있는 경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함은 필수요, 무리 없이 현대어로 옮길 수 있는 문장구사력도 지녀야 한다.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경전에 대하여 단순히 글자만을 보지 말고 글자 속에 담긴 부처님이나 설주(說主)의 심정을 갈파해야 한다. 중국의 도안(道安) 스님은 경을 번역할 때 역자가 견지해야 할 태도를 ‘오실본삼불역(五失本三不譯)’이라고 하였다.

오실본(五失本)이란 인도의 원전을 중국말로 번역할 때 원본의 어순을 그대로 살리지 못하더라도 중국식으로 도치한다든지, 말꾸밈의 양식을 중국식을 따른다든지, 번쇄한 설명은 삭제한다든지, 계속되는 반복구는 생략한다든지, 같은 주제에 대해 중언부언한 것을 줄인다든지 하여 저본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지 않는 다섯 가지 경우를 말한다.

삼불역(三不譯)이란 시대의 풍속에 따라 문장을 고칠 수 없음과 성인의 말씀을 세속적인 데에 맞추어 고칠 수 없음, 말세의 천박한 사고로 부처님의 말씀을 고칠 수 없음 등 불설(佛說)의 근본정신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가져야 할 세 가지 번역태도다.

도안 스님의 경우처럼 옛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원전에 대한 외경심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는데, 오늘날의 우리는 너무나 소홀하게 원전을 대하고 있다. 그저 현대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간단하게 줄이고 생략하고 축소해 버리고 만다. 그에 대해서 그 어떤 설명을 달거나 깊은 사색을 거치지도 않고 쉽게 그런 오류를 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따금 자신의 번역만이 옳다고 여기며 다른 이의 지적에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보게도 된다.

4) 역경불사 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장치는 마련되었는가

역경은 왜 하는가? 읽히기 위해서다. 2천6백 년 전의 부처님 말씀을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에게 읽히려고 역경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경의 효과는 잘 나타나고 있는가? 일부 뜻있는 불자들은 번역된 경전을 읽음으로써 신심을 키운다. 그리고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간혹 펼쳐 보지만 그들은 한문 경전이나 범문 경전 등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많은 부분의 한글대장경이 한번 우리 글로 옮겨진 뒤에는 그것으로 수명을 다하고 만다. 읽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애써 번역된 불전들이 더 이상 생명의 불꽃을 피우지 못한 채 서가에서 먼지만 쓰고 있다면 이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의 심각성은 1950년대 율장(律藏)의 번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에서 그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운허 스님은 《사분계본(四分戒本)》 《사미율의요략》 《사미니율의요략》 《신산정사분승계본(新刪定四分僧戒本)》 《범망경》 등을 번역하였는데, 그다지 대중적인 관심이 모이지 않던 율장이 활발하게 번역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운 스님의 지계(持戒) 운동이 깔려 있었다.

자운 스님은 종단 3대 사업 가운데 하나인 도제양성의 바탕을 철저한 지계에 두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 출가하는 신참(新參)에게 우리말로 계를 설함으로써 계율의 사상을 철저히 주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역경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역경을 하기 위한 재정지원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번역된 경을 읽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강의하고 함께 토론하며, 현실생활에서 그 의의를 찾아내고 응용하려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번역만을 한 뒤에 묵혀둘 것이 아니라 그 불서가 시대에 적용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5. 해결해야 할 과제

지금까지의 역경이 ‘한글세대를 위한 한문경전의 한글화 작업’이었다면 이후로의 역경은 ‘새시대, 새 세대를 위한 한글경전의 재해석과 응용’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간행된 한글대장경을 검토해야 한다. 먼저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야기될 수밖에 없었던 오역(誤譯)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에게 의뢰하고 역자에게 재검토를 요구하여 정오표(正誤表)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증의작업이 치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경전의 경우는 원전과의 꼼꼼한 대조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나온 과정이 지난한 이상으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더 심도 있고 체계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구체적인 사안들인 만큼 더욱 우리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과업이 될 것이다.

1) 한글대장경의 편제 문제

한글대장경이 1차 저본을 고려대장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 한글대장경 안에는 고려대장경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경전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대장경은 수록 양에 있어 고려대장경보다 오히려 더 넓고 포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편제다. 고려대장경은 크게 대승삼장, 소승삼장 그리고 보유잡장(補遺雜藏)의 차례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 첫번째 경은 《대반야바라밀다경》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한글대장경은 체계적인 고유 순서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편의상 《장아함경》을 그 첫 권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이 아함부로 시작을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한글대장경이 신수장경의 편제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역경을 처음 시작할 때 대중들에게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경부터 번역하기 시작하였던 까닭에 고려대장경의 순서를 입안(立案)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의 한글대장경을 살펴보면 책표지에 권 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으며, 책 집에만 자그마하게 번호가 매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이후 한글대장졍의 재편을 염두에 두었던 까닭이었다.

편제란 단순히 경전의 일련번호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불서의 정리를 말한다. 이것은 그저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고 불서를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경전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시되고 있는지 하는 문제들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요컨대 그 경전이 집성되는 데 대한 기본 철학이 이미 그 편제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현대 한국불교의 입장과 체계적인 불교학습 등을 고려하여 한글대장경의 편제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불교학계와 유관 전문가들, 그리고 스님들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2) 불교용어의 개념정리 문제

한글대장경을 검토하면서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바로 불교용어의 통일이다. 1960년대 역경불사 초창기에 이루어진 불교용어 통일에 관한 여러 가지 작업들은 한문 용어에 대한 한글화가 급선무였다.

하지만 모든 불교 전적이 한글로 번역된 지금 다양한 불교용어를 한 가지 한글 번역으로 해결할 수 없다. 즉 단순한 하나의 불교용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설해진 경이 아함경인가, 부파 계통의 경론인가, 중관 계통인가, 유식 계통인가 또는 밀교 계통의 경론인가에 따라 그 해석은 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과연 불교용어의 통일이란 명제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하게 된다.

가령 일례를 들어, 색(色)을 번역함에 있어 어느 경전에서는 모습으로, 또 어느 경전에서는 빛깔로, 또는 물질로, 또 때로는 한자음 그대로 색으로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으나 그 각각의 경우를 모두 만족시킬 만한 적절한 용어가 한자음 그대로의 ‘색’ 이외에는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개념어들을 한자음대로 읽어준다면 우리말이란 부수적인 조사나 수식어 정도에 그칠 뿐이고, 온전한 의미에서의 번역이란 이루어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미나 등의 학술모임이 개최되어 전문가들의 치밀한 연구와 토의를 이끌어내어 완전한 통일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적어도 적절한 우리말 개념어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대단히 이상적일 것이다.

3) 번역의 대상 확립

현재 역경원에서는 1차 번역사업을 마치고 올해부터는 디지털 한글대장경을 만들기 위한 지반다지기로 개역(改譯) 작업에 들어갔다. 실상 개역 작업은 기왕의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이기도 하겠지만 1차 작업보다 어떤 면에서 더욱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전제한 여러 가지 선행 요건들이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개역 작업이란 똑같은 잘못을 그대로 되밟는 일일 수 있겠기에 말이다.

개역 작업이 디지털 한글대장경에 앞선 사업인 만큼 이 개역 불사의 잠정적 독자 대상은 디지털 세대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디지털 세대의 대표적 통신수단인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매개로 하고, 그것은 또한 검색을 기본 조건으로 하고 있는 만큼 여지없이 문제되는 것은 앞의 용어통일 문제다.

그와 더불어 이 세대는 기존의 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대단히 문명화된 세대라는 점이다. 기성세대가 불교를 알기 위해 경전을 펼치고, 마음을 쉬기 위해 애써 산사를 찾고, 출가자의 권위에 조건 없이 고개를 숙였던 반면 이들 21세기의 주인공이 될 세대는 그것을 가볍게 거부한다. 이들은 작은 글자로 빽빽이 들어차 있는 경전은 아예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힘들여 산사를 찾기보다는 사이버 법당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전국의 사찰을 유람하고, 고금의 고승들의 법문을 발췌한다. 기존의 시간과 공간 개념을 뒤엎은 인터넷 세대. 앞으로의 불교가 찾아가야 할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과연 이들에게 불교는 어떤 얼굴, 어떤 가슴으로 다가가야 할까? 지금의 개역 작업이 이들의 입맛에 얼마나 맛깔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 것인가?

4) 한글대장경 완간의 발전적 활용 문제

위의 문제는 곧 이 적용의 문제로 연결된다. 완간된 한글대장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어떻게 발전적으로 확대 보급할 것인가. 그것은 곧 어떻게 많이 읽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하지만 독서와는 더욱 거리가 멀어지기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일반의 흥밋거리 잡문도 아닌 경전을 어떻게 안길 수 있겠는가? 여기서 일차적으로 교단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불·법·승 삼보 가운데 현실을 떠맡아 나가야 할 승보로서 교단·종단의 솔선하는 모습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와불사·종불사·탑불사 여타의 외관을 다지는 각종 불사의 한 부분에 경전불사·불전 읽기 불사를 실시하여, 신도들로 하여금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의미를 확인할 장(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모든 불자들의 인식전환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가 신앙하는 부처님은 현실적으로 우리가 만나볼 수 없는 상징으로서 우리 내면의 주인인 것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부처님의 참 모습은 결국 그분이 남기신 말씀과 행적을 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임해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을 말씀하신 것이다. 가족의 평안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기와 한 장 바치는 간절함으로 부처님 말씀이 아로새겨진 불전(佛典) 한 장을 넘기는 마음. 그것이 바로 부처님을 감동시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마음이리라.

5) 한글대장경 영역(英譯)의 필요성

어떤 면에서 한글대장경의 영어로의 번역은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과거 범문이 한자어 체계로 모습을 바꾸었고, 그 한문경전이 이 땅에 들어와 다시 우리에게 맞는 우리말 대장경으로 탄생한 만큼 현대의 국제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로 다시금 번역되어 이제 세계화의 길을 모색해봄직도 하다 하겠다. 물론 모든 여건이 미미한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거론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당장은 어려울 수 있어도 그 과제는 멀지 않은 미래에 젊은 불교인들이 수행해야 할 과업이 될 것이다.

6. 맺는 말

우리는 참으로 오랜 시간을 역경의 길속에서 걸어왔다. 오늘 한글대장경이 이런저런 상처를 안고라도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역경(譯經)의 역경(逆境) 속에서 큰 서원을 세우고 용맹정진한 큰스님들과 마땅한 보수를 바라지 않고 신심(信心)을 바친 많은 선지식들의 노고 덕분이었다.

우리 역경(譯經)의 환경이란 일본의 국역일체경이나 북한의 팔만대장경 번역 환경에 비해 대단히 열악했던 것이 사실이다. 초기에 역경원(譯經院)이란 간판을 내건 단체들이 아무런 실적 없이 사라지고, 종단은 분규에 휩쓸려 불경 번역의 여력이 없는 와중에서도 한 사람의 걸출한 학승이 나와 혼자 힘으로 하나씩 불경의 한글 번역을 추진해 나갔다. 또한 분규가 가라앉고 나서도 처음 수원의 용주사에 두었던 역경도량은 불암사, 봉은사로 옮겨 다니다가 동국대학교 내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렇게 해서 명명된 동국역경원은 기실 사업비의 국고 지원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의 의미가 컸다. 다른 종교단체와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조계종단이 운영하는 역경원에 국고를 지원하기란 정부로서도 개운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업은 1979년 운허 스님이 건강 악화로 역경사업에서 손을 떼고 이듬해 타개하면서 사업 자체가 추진력을 잃고 소강상태로 들었다. 2대 원장으로 취임한 박영암 스님도 1987년 돌아가고, 3대 자운 스님이 맡았으나 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하여 팔만대장경의 절반도 번역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1992년 자운 스님이 하세하자 뒤를 이어 운허 스님의 법제자인 월운 스님이 4대 역경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이 사업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여 취임 이후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 동안 185권의 책을 간행하여 드디어 완간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역경사업은 공공기관이나 어떤 공적인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뜻 높은 한두 스님의 개인적 발원에 의해 축조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아무에게도 그 축조된 성의 벽이 행여 금가거나 한 모퉁이가 무너졌다고 흠잡거나 비난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인터넷 불경 사업이 확정되고, 1차 번역작업의 보완 및 개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기왕의 역경불사가 안고 온 많은 문제점들과 한계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용어의 개념화 문제라든지, 새로운 한글대장경의 편제 문제라든지, 보다 세심한 번역·증의 과정의 검토 등 그 문제 하나하나가 서로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고,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아니라는 데 커다란 부담이 있다.

그러나 그에 선행하여 확립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재정문제다. 재원이라는 것이 모든 문제점의 귀결은 될 수 없으나 일에 있어 선행해야 하는 조건임에는 틀림없다. 과거 운허 스님이 불철주야 뛰어다녀야 했던 것도, 한 세대에 걸치도록 역경사업이 지지부진하게 끌려오게 된 것도 모두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에 이르러서도 물론 인력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으나 그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또한 이 재정문제에 있는 것이다.

재정이 역경불사를 담아내는 그릇이라면 역경에 참여한 인력의 자질은 안의 내용물이 될 것이다. 애당초 종단에서 3대 사업으로 내걸었던 것 가운데 역경과 포교와 도제양성이 있었던 바, 오늘날에도 도제양성을 위한 노력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개인적이고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총력으로 결집되지 않는다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가장 확실한 것은 공적인 구조 속에서 그러한 도제양성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자세대가 점차 저물어가고, 앞으로의 세대는 난해한 한자와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것은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문자가 없던 시대에 성립된 경전은 본래 구송(口誦)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구송이란 마치 노래처럼 우리 인간의 두뇌 구조에 가장 명확하고 오래도록 각인될 수 있는 장르다. 그만큼 내용이 알기 쉬워야 하고, 구조가 단순해야 하며, 가락이 재미있어야 한다. 이것은 오늘날 역경사업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서술방법일 것이다. 역경의 목적은 전법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인류는 더 이상 지고한 정신의 힘을 믿지 않게 되었으며, 따라서 종교는 점점 기득권을 잃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를 포함한 종교의 힘은 인류의 역사에서 사라지기는커녕 새로운 화두와 방편으로 물질문명에 탐닉해 있는 인류에게 다가서고 있다. 기원전 5세기 인도 북부에서 태어나 인도 땅을 벗어나지 못하고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같은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흠을 잡기로 한다면 한없을 것이지만 이 시대에 한글대장경은 319권의 방대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앞에서 초벌구이란 말을 했다. 거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상감을 새기거나 유약을 바르고 다시금 마침구이를 하는 일은 지금부터의 몫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이 현대 우리말로 환생했다는 것은 분명 역사적으로 일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한국불교사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지성사(知性史)는 크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더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터넷 불전불사가 실제적으로 사이버 공간을 점유하게 된다면 그 파장은 훨씬 크고 다양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다만 이미 거론한 여러 가지 난제(難題)들이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개선될 것인가가 관건이라 하겠다.■

김용섭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현재 동국역경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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