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ㆍ본지 주간)

가정형편으로 자식을 친척집에 맡겼다. 그러나 그 친척마저 어렵게 되자 그 자식을 다시 다른 데로 보내게 되었다. 고아원에 맡길까, 아니면 또 다시 친척의 친척 집으로 보낼까 망설이고 있었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자식의 어미는 같이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키우겠다며 다시 자식을 찾아 갔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가 아니다. 본보 계간 『불교평론』의 근황을 빗댄 이야기이다. 이번 가을ㆍ겨울 합본을 끝으로 『불교평론』은 ‘창간멤버’들의 손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2005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한 ‘창간멤버’들은 이 잡지를 맡아 키워줄 인수자를 찾았고 이에 현대불교신문사가 나섰다. 당시 김광삼 사장은 『불교평론』의 창간정신에 동감하였고 비평문화가 부재한 한국불교계의 현실을 타파하고, 불교지식인들의 견인차 역할을 하겠노라고 적극적인 육성과 지원을 약속하였으나, 1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을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또 다시 여기저기 『불교평론』을 맡아줄 인수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창간멤버들이 다시 뭉쳤다. 『불교평론』이 마치 천덕꾸러기 ‘의붓자식’처럼 되어 가는 것을 방관할 수 없는 어미의 심정으로.

『불교평론』은 1999년 ‘불교의 현대적 해석’ ‘불교를 통한 사회비판’ ‘사회 속에서의 불교 이해’ 라는 세 가지 창간 모토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꾸준히 이를 실천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불교평론』은 그간 현대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에 대한 불교적 비판은 물론 불교의 현대적 해석을 통한 대안 제시 등 불교 지식인의 공론의 장을 열어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보람과 성장의 가운데, 제작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말 못할 애환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유료독자가 확보되지 않아 밑도 끝도 없는 제작비 지원, 전담 편집인이 없이 끝없이 강요되는 개인의 희생과 자원봉사, 제한된 불교계의 필진 등으로 제작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매호마다 어려움을 겪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작년 여름 현대불교신문사가 인수하겠다고 했을 때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았으나, 지지 못할 짐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한 마음도 있었다. 이제 좀 더 안정된 환경에서 편하게 책을 낼 수 있겠거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역시 현대불교신문사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신문제작 인원도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신문사 영업망을 잘 활용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던 유료독자 확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1년 만에 다시 손을 든 것이다. 현대불교 신문사정도 규모의 신문사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면, 개인들의 자원 봉사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창단멤버’들이 겪을 어려움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과 비평을 통해 불교계의 소통과 열림의 장을 열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그 어려움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창간 당시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 더 알차고 내용 있는 잡지를 만든다는 다짐을 위해 여기 다시 1999년 당시 창간사를 옮겨본다.

계간 『불교평론』은 우리 시대 불교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전위적 비판정신으로 극복하고 해결하려는 의욕으로 출발한 잡지입니다. 우리는 이 잡지를 통해 중생과 세계를 아우르는 참다운 구원의 진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교리해석이나 문화적 전통을 무조건 배척할 이유는 없지만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인간의 삶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적절하다면 거침없이 비판의 칼을 들이댈 생각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불교는 과거의 권위에 억압받지 않는 비판 정신과 도전 정신에 의해 열려져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계가 불교를 향해 끊임없이 던져오는 새로운 질문에 응답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인구, 환경, 생명복제, 핵전쟁의 위협과 같은 새롭고 충격적인 문제들이 인류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경전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해답이나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붓다의 관심이 인간에 관한 모든 문제, 특히 괴로움으로부터 해탈을 추구하는 데 있다면 거기에는 어떤 해결의 실마리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 창조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카오스적 혼돈으로 치닫는 현대사회에 제시할 것입니다.

지난 일 년 간 사내 조직의 변화 가운데서 묵묵히 잡지를 만들어 주신 현대불교신문사 기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창단멤버’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구성될 편집위원들과 함께 만들어 갈 2007년 봄호부터 다시 출발선에 서서 창간의 정신을 구현한다는 마음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찾아 뵐 것을 약속드린다. <주간>

2006년 가을 겨울

조성택
고려대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석사 : 인도철학), 미국 UC버클리대학원 졸업(박사 : 불교학), 전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 교수. 「현대불교학의 합리주의적 경향」「무아 : 불교의 정의관을 향하여」 등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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