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전통 건축과 현대적 사찰 건축에 관한 불교계나 건축계의 관심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전통적 원형이나 규범은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의 건축이나 공간에 어떠한 방식으로 접목될 수 있으며 또 투영될 수 있는가 등의 전통 건축에 대한 논의와 함께 미약하나마 일부의 관심으로 이어져왔다. 이러한 논의는 7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모더니즘 건축은 여전히 우리의 삶과 동질화되지 못하고, 이 시대 이 땅의 문화적 배경과도 결부되지 못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70∼80년대 논의의 한계는 형식과 공간 등의 물리적 조형 이해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한국의 전통사상에 영향을 받고 그 정신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현대 건축 작가들의 일반 건축 작품을 살펴보아도 양식의 인용이나 모방 혹은 부분적 조형의 원리나 개념들을 차용한 모더니즘적 표현방식이 유형의 주류를 이루었다.

90년대에 이르러 그러한 논의는 기존의 한계를 벗어나 전통사상의 내용이나 삶에 대한 선험적 노력과 한국적 보편성에 대한 탐구와 한국성의 미학에 대한 특질을 탐구하려는 관련 학계의 학문적 노력과 함께 사상적 원류를 밝혀보려는 시도로 이어지게 되며,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동국대 법당 대각전·능인선원·도피안사·담양 정토사·문사수법회 등의 시대성을 탐구하기 위한 현대적 사찰 건축에 관한 시도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한 시도는 다중적 관계의 주변 학문인 풍수사상이나 음양설·도교·유교·불교 등의 철학과 종교사상, 그리고 인문·지리·역사 등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려는 일부의 노력들과 함께 수반되어 왔다. 그리고 ‘전통사상’과 ‘한국성’의 고유한 요소에 대한 규정과, 자연과의 조화·완성적 미완성·비질서적 질서 등의 몇몇 규범적 질서의 모범 답안 등을 작품에 반영하려는 노력들도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단지 몇 가지 개념들로만 규정한 원리는 진실의 원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의 일부만을 알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개념적 원리로 적용된 건축들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건축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문명의 중요한 힘과는 유리되어 단지 특이한 한국적 요소를 지닌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되기 쉽다.

그러나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이란 그 시대적 인간과 문화의 본질과 접촉된 사실의 관계로서, 종교적 감동과 함께 보편적이며 진실된 삶의 영역을 확장시켜 주며 문명의 발전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그러한 사찰 건축은 동시에 이 땅에 극락세계의 정토를 이룩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극락세계의 실현,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찰 건축이 추구하였고, 또한 불국사와 부석사 등 전통 사찰의 일부는 그러한 불국정토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전에서는 극락세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정토에는 7종의 난순(欄楯), 7종의 나망(羅網), 7종의 행수(行樹)가 있고 사보(四寶)로 장식되어 있으며 칠보의 연못이 있어 8공덕을 갖춘 물이 흐르고 있다.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 있고, 청색의 연꽃은 청색의 빛을 방광(放光)하고 황색의 연꽃은 황색을 방광하고 있다. 또한 하늘에는 천음악(天音樂)의 연주가 그칠 사이 없고 백곡(白鵠), 공작(孔雀), 가릉빈가(迦陵頻伽) 등의 여러 가지 새들이 주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 소리는 부처님(佛)의 가르침을 전하는 소리가 되어 중생은 이 소리를 듣고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法)을 생각하고 승가(僧)를 생각한다. 그리고 미풍이 불면 사보로 된 수목이 움직여 소리를 내는데, 이는 아름다운 교향곡과 같은 것이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등에서 묘사된 극락세계의 가시적 묘사는 실재의 세계라기보다는 관념적 세계의 상징적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 일견 극락세계는 장엄하고 화려한 듯이 느껴지나 극락세계의 궁극적 지향점은 법을 전하는 소리가 되어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8공덕의 물은 《구사론》에 의하면 정토에는 달고 차고 부드럽고 가볍고 깨끗하고 냄새 없고 몸을 보호하고 배탈이 나지 않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한 공덕의 물에서 자란 연꽃에서 빛이 나와 천지와 참의하는 경지를 이룩할 때 하늘에서는 천음악(天音樂)의 연주가 그칠 사이 없고 그 소리는 법문이 되어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미풍과 함께 수목으로 대변되는 자연이 움직여 아름다운 교향곡을 내는 것이 정토라고 하는 상징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사찰 건축을 통해 그러한 관념적 이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는 정토의 경지를 이룩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을 극락세계를 이룩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정토를 바탕으로 이 예토(穢土)의 세계를 청정한 정토로 구현하는 것이 사찰 건축의 서원이요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는 것은 쉽지는 않겠지만 전혀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전통 사찰에서 그러한 경지를 이룩한 많은 실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실례를 통해 그 사상의 이해를 실현시킬 수 있는 현대적 표현방법들을 찾기만 하면 될 것이다. 빛이 현현하여 자연과 함께 법문을 설하고 천음(天音)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경지를 구현한 불국정토의 법당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사상에 대한 깊고 넓은 이해와 함께 일상의 삶을 통해 그 사상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의 이해 없이 형식적 전통만을 추구하다 보니 이제는 ‘전통사상’이나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논제만 나와도 ‘왜 다시 한국성인가’ 하는 반문을 하게 되고, 보편적인 한국적 원형을 찾고 규정하려는 노력 자체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근세 100여 년 간 전통의 지속이 단절된 경험을 한 우리에게는 삶의 일상이 전통의 사상, 공간과 공유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삶의 미시적 수준에서부터 전통사상을 이해하려는 지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를 통해 현대적 공간을 이해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려는 노력으로 나아가 새로운 현대적 패러다임의 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진보적 역사의 가치가 될 수 없는 한국성에 매달린 표현의 추구는 의미가 없다. 그러한 표현의 추구는 마치 불국사 석가탑의 양식을 인용한 수백 개의 탑이 무영탑(無影塔)으로서의 석가탑을 능가하지 못하고 과거의 시간에 안주해 있는 그림자가 있는 유영탑(有影塔)의 수준이 되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근대건축계의 거장이었던 르 꼬르뷔제(Le Corbusier)는 “나는 바다의 수평선과 같은 구부릴 수 없는 직선을 추구하였다.”라고 말년에 얘기하였으며, “직선은 곡선 속에 있고 곡선은 직선 속에 있다.”는 불교의 화두 중 하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작가의 작품이란 자아를 실현해 가는 자기완성의 지적 산물이자 독창적 지혜이며, 사실적 관계가 창의적으로 표현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작가관에 의해 창조된 건축은 인간의 삶을 가치 있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되고 시대정신이 담겨 있는 동시에 그 시대적 삶의 표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통 건축과 현대적 사찰에 대한 접근은 그 사상의 포괄적 이해와 함께 문화와 삶, 그리고 시대에 대한 고찰과 그 역사적 의미와 가치의 내용과 기준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요구된다. 그리고 선행된 제반 연구의 이해와 삶 속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될 때 현대적 리얼리티(reality)를 갖는 창의적이며 진보적인 사찰 건축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2. 현대 사찰 건축의 특성

고구려 국내성에 건축된 이불란사와 초문사로부터 시작된 한국 사찰건축의 역사는 1,6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찰들이 지어지고 명멸해 갔다. 현재 전통 사찰이 보존되어 있거나 사지(寺址)로만 남아 있는 많은 사찰들이 있다. 사지까지를 포함한 그 많은 사찰들의 가치는 우리 역사 문화의 물리적 표현인 동시에 체계적 사상의 집약으로써 우리 민족의 의식구조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새로운 세기의 창조적 역량의 잠재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많은 전통의 사찰들은 대개 임진왜란 이후에 복원되거나 지어졌던 것들이다.

임진왜란 이후는 전쟁으로 인해 국가경제가 극도로 황폐할 때였다. 당연히 사원 경제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후 두 번에 걸친 청(淸)의 침략으로 전국토는 피폐할 대로 피폐하였으나 18세기 중반인 영정조 때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복구의 노력으로 그나마 그 어려웠던 시기에 이루기 힘든 문화적 업적을 이룩해 놓은 것이다. 만약 그러한 건축적 성과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1,600여 년이라는 많은 시간의 불교문화뿐 아니라 역사와 시대의 정신 문화적 가치들을 상당부분 잃어버렸을 것이다.

이 땅의 4,300여 년의 역사를 통틀어 오늘날만큼 일반 대중의 삶이 풍요로웠던 때도 드물 것이다. 풍요로웠던 통일신라 시기의 문화는 그 완벽한 비례미와 절제와 장엄의 미들을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석가탑 등의 많은 문화 유산을 통해 이룩해 놓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역사적 생명력이 이어져 내려와 현재의 삶과 문화에도 지대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찬란했던 불교문화의 지나간 시간에만 안주해 있는다면 그것은 고여 있는 물과 같다. 다음의 세기에는 그 역사의 문화적 창조력이 약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번 약화된 문화적 복원력은 1, 2백 년에 이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왕족사회와 귀족사회 그리고 지식인 사회에서 민주적 사회 그리고 개인과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창조적 문화에 대한 요구는 다음 세기로 나아가는 데 있어 시금석이 되는 중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전통의 단절과 맹목적인 서구화의 추종으로 인한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 이 시대는 잃어버린 전통의 복원과 함께 한국성을 잇는 창조적이며 현대적인 문화들이 요구된다.

동시에 아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탈(脫)자연의 거대화·산업화·정보화 시대에 사찰은 어떤 방향으로 계획되어야 하는지 그 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요구되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사회적 억압과 수행 방법 등의 이유로 산지에서만 지어졌던 불교사원의 건축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와 같이 도시지역에 진출하여 이 시대와 도시에 맞는 현대적 사찰로서 수행과 불법 홍포의 센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건립되는 현대 사찰들은 여러 가지 건축적 문제에 봉착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 논고는 그러한 기존의 현대적 사찰의 문제점에 대한 고찰과 지향해야 될 공간적 특성과 불교적 조형의 방향을 제시해 보려는 한 시도이다.
1913년 만해(萬海) 스님은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하여 산중불교를 도시로 끌어내려 민중포교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고, 현대에 들어서도 시대의 조류에 맞춰 불교의 현실화와 대중화 그리고 생활화1)를 실행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1998년 동국대 법당 대각전 개원과 함께 현대 도시 사찰 건축의 개발방향에 관한 세미나를 필두로 현대적 사찰 건축에 대한 논의의 장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현대적 도시 사찰은 수행의 기능과 함께 예불과 법회의 장소인 동시에 “대중의 교화와 교육의 장소, 지역사회를 위한 공공시설의 제공, 지역 커뮤니티와 문화 예술의 장소” 등의 기능도 새로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건축된 도시 사찰들을 살펴보면 그 대부분이 산지(山地) 사찰의 형태를 답습함으로써 현대 도시적 맥락에 맞는 공간과 형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김봉렬 교수는 현대 도시 사찰의 건축계획과 구성요소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도시 사찰의 평균 대지면적은 평균 370평 정도이고, 몇몇 대형 사찰을 제외하면 최소 45.5평에서 보통 150평 정도이다. 주거지역의 법정 건폐율 50%에 맞추다 보니 평균 건폐율이 47%에 달하지만, 실제 건축면적은 150평에 불과하다. 따라서 법당이나 회관 등 하나의 공간만으로 한 층을 이룰 수밖에 없어서, 매우 단조로운 구성을 하게 된다. 지상 3개층의 평균 높이는 고밀도화에도 실패하여 평균 용적율이 144%에 불과하다.

좁은 대지와 높은 건폐율, 낮은 용적율의 조건은 여러 가지 건축적 제약을 수반한다. 첫째, 다양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내부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층별로 기능군을 배열하는 단조로운 구성을 할 수밖에 없다. 둘째, 대지 안에 여유 있는 외부공간을 구성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또한 최대 건축면적을 손쉽게 확보하기 위해 단일건물을 선호하게 된다. 분동형(分棟型)으로 게획된 예는 비교적 대지가 넓고 시외곽 지역에 위치한 소수뿐이다. 셋째, 결과적으로 단순하고 획일적인 도시 사찰의 유형이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중략)

구조는 예외 없이 철근 콘크리트조이다. 물론 소규모의 건물들에 적합한 경제적인 구조라 할 수 있지만, 조적조나 철골조 등 다른 구조법과 재료가 시도되지 않아 획일적이고 안이한 발상이라는 부정적 측면도 내포한다. 또 절반 정도가 목조 기와집의 형태를 콘크리트 구조로 재현하고 있어서 구조적 합리성보다는 외부형태를 위해 채택된 구조방식임을 보여준다.”2)

이러한 건축계획구성 특성과 함께 외부의 형태는 전통적 형태의 직설적 수용 또는 전통적 요소의 차용이나 유추, 심지어는 똑같이 모방하여 과거의 목조건축과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공간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대부분의 경우 중층이나 다층 구조를 하고 있으나 전통적 형태나 색채 등을 차용하여 전통적 양식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노력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러한 건축은 전통적 양식의 계승과 함께 한층 승화된 법당을 이룩하기보다는 오히려 전통 건축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과는 동떨어지고 단지 형태의 일부만이 비슷하게 보일 뿐이다.

통일시대의 신라인은 일찍이 이 땅에 존재하지 않던 형식인 불경의 만다라를 이룩한 불국사를 건축하였고, 중국 석굴의 모방이 아닌 석굴 건축의 완성으로 평가받는 석굴암을 이룩하였다. 고려인은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수덕사 대웅전, 그리고 조선은 법당 건축의 완형을 이룩한 통도사의 건축 등 기존의 시대와는 다른, 하나도 똑같은 건물이 없을 정도의 풍요롭고 다양한 전통 건축의 아름다운 유산을 이 시대에 남겨두었다. 이 시대 역시 항상 새로운 의미와 가치로서 평가받을 수 있는 기존의 시대와는 다른 창조적 문화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존재의 유한성과 현실의 구속성을 극복하려는 불교의 정신은 사찰 건축에서도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서의 해방은 극락의 세계를 사찰 건축을 통해서도 이룩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서방 십만억의 불국토를 지나서 정토세계가 있다(過十萬億佛土有世界)3)는 것은 거리만 멀리 있을 뿐 요단강 같은 특별한 경계를 넘어가야 불국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공간과 시간을 확장시키기만 하면 ‘현재 자리가 곧 정토세계’라는 말과 다를 바 없는 영혼조차 넘어서는 득의(得意)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가 극락세계인 불교적 이상은 사찰의 건축을 불국토의 세계로 이룩하려는 염원을 낳게 되었고, 그러한 불교적 상상력은 《금강경》의 모든 상(相)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는 공(空)의 실천으로까지 연결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무(無)와 공(空)의 실천을 통하여 통도사의 대웅전, 해인사의 장경각, 거조암의 영산전 등과 같이 불법승(佛法僧)의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현실공간 속의 공간을 관계적 실체로서 무한공간으로 확장한 것같이 느끼게 만들고 또한 본적(本寂)의 공간을 이룩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주 속에 부처성(佛性)으로 가득하게 만든 법당 즉 부처의 마음과 부합되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 대웅전은 영산회상불국(靈山會上佛國)을 이룩하고, 극락전은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를 실현하고, 약사전은 동방유리광정토(東方琉璃光淨土)를, 미륵전은 용화세계(龍華世界)를 이 땅에 실현한 건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그러한 사찰 건축을 다음의 전통 사찰과 현대적 사찰 등의 실례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3. 전통 사찰 건축과 현대 사찰 건축의 사례 연구

1) 염화미소의 실현, 통도사 대웅전

불보사찰로 널리 알려진 영축산 통도사는 불교적 우주관과 자연관의 표현이 잘 드러나고 있는 동시에 특히 다양하게 이루어진 건축들과 함께 관계지어지는 외부공간의 연속, 공유, 변이 등의 복합적 구성체계는 참으로 치밀하여 높이 평가되어야 할 건축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인 600년대에 지어지고 18세기 초에 중건된 대웅전은 통도사의 많은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외부공간과 건물들과 함께 유기적 연관성과 연속적 공간체계 속에 그 정점의 승화공간을 이룩하고 있다.

“대웅전 주변의 외부공간 중 남쪽마당은 약 27m 내의 요철형 공간을 하고 있고 북측의 구룡지(九龍池)가 있는 약 20m 각(角)정도의 작은 공간과 궁자형(呂字形)으로 구성되어 있는 동시에 대웅전 동측의 약 20m×35m의 넓은 뜰로서 꺾여진 모퉁이가 교차하는 우교형(툉絞形)으로 구성”되어 있는데,4) 그것은 북측의 금강계단의 영역과 주변건물과 합해져서 만자형(卍字型) 배치영역을 구성하여 건축과 외부공간은 하나가 되어 정적인 동시에, 동적인 공간을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만(卍)자가 공간과 시간이 한점에서 만나는 십자가 형태의 완성된 극점에 운동감이 덧붙여져서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여 시간과 공간이 비고정적이며 동시적으로 만나는 공간을 이룩한 법당 영역이 되는 것이다.

또한 대웅전 내부로 들어오면 수미단측의 열려 있는 창을 통해 일견 비어 있는 공간이 느껴지는 동시에 푸른 숲을 배경으로 갓 피어오른 듯한 연꽃 한 송이가 보이는 것은 불교의 상징으로 당연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이 장소는 석가여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이기에 그것은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는 진신사리를 상징하는 어떠한 형태나 진신사리를 상징하는 부도의 탑파형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흔한 연꽃 한 송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시대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설계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도에서 부처님의 열반 후 진신사리를 모셔서 탑을 세웠던 것처럼 아마도 화려하게 치장되고 높이 우뚝 솟은 9층탑 정도의 건축을 하여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것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그 상징성을 빼고 나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진신사리로 상징되는 부처님의 형상보다는 불상(佛像)의 산스크리트인 붓다 프라미타(Buddha Pratima)의 뜻인 부처님 모습을 재현한다는 원래의 의미와 같이 그것은 단지 불신(佛身)의 재현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라고 대웅전을 설계한 건축가는 생각한 것 같다. 그는 이곳을 찾는 참배객에게 부처님의 진신사리나 불신(佛身)의 재현이 아닌 실제의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불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법신(法身)과 화신(化身) 그리고 보신(報身)의 삼신(三身)을 실현시킨 건축적 희구인 것이다.

부처님의 몸이 아닌 법을 상징하는 석등 위에 마치 손가락 같은 일지(一指)가 연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석등을 설치하여 법신(法身)과 화신(化身)을 이룩하였으며, 그 뒤에 안치되어 있는, 진신사리는 미래의 불신인 보신(報身)의 상징인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불신(佛身)을 이룩한 부처님은 그 수미단 뒤의 열려 있는 창을 통한 비어 있는 공간을 통해(그것은 배경인 숲으로 인하여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영산회상에서 부처님께서 연꽃 한 송이만을 손에 들고 설법 대신에 대중에게 말없이 보여주니 제자 가섭만이 미소를 지었다는 염화미소의 순간을 삼세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재현이 아니라 실현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갖는 그 상징성의 의미가 그 실현을 더욱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불상이 없는 대웅전의 빈 공간은 부처님이 과거와 같이 현재에도 살아 계시고 또한 미래에도 살아 계시게 실현하여 그곳을 찾는 참배객들에게 연꽃을 들고 있는 이 뜻을 그대는 아는가?라고 순간순간 묻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 부처님께서 앉아 계셔서 친견하는 것보다 더 극적인 공(空)의 실재하는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법문까지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통도사의 법당 내 수미단 위의 그 문은 관리상의 이유로(?) 거의 닫혀 있다. 당분간 우리는 통도사를 가더라도 연꽃으로 재현되는 부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진신사리 앞에서 절을 하고 올 뿐 진신사리를 이용하여 만(卍)자의 외부공간으로 천중(天中)의 공간을 이룩한 금당과,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들을 수 있도록 실현되어진 내부공간에서 부처님을 친견할 수 없는 것이다. 통도사의 대웅전 그곳은 건물의 이름 그대로 불상이 없음으로 부처님이 계신 전각 대웅전을 실현한 것이며, 영산회상불국에서 이루어진 염화미소의 순간을 이 시간에도 현실의 세계로 실현하여 부처님을 친견하게 하는 것이다.

2) 비어 있는 바람의 집, 해인사 장경각

법보사찰로 알려지게 만든 해인사의 장격각은 조선 초인 1488년경에 세워졌으리라 추정하고 있는 바, 여러 차례의 부분적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장경각의 입구에 진입하려면 높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이것은 불법을 만나기 위해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팔만대장경을 원융의 둥근 문을 지나야 한다는 상징성 혹은 대적광전의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법보인 팔만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국을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 이유보다 더 중요한 건축적 요구는 빛과 바람 때문일 것이라 여겨진다.

장경각이 서 있는 땅은 주변의 자연적인 대지와는 달리 성토를 하여 인위적으로 넓고 높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한 것도 단지 팔만대장판각을 배치하기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존의 지면에서 벗어나야 땅의 습기로부터 경판을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햇빛이 잘 들어서 습기를 말려야 하고 통풍이 잘되어 습도조절을 원활히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이 올라가 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대지를 들어올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해결된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부처님의 법을 만나게 되고 대장경 판각을 만져볼 수 있는 그래서 법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되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법을 모신 건축은 너무나 평범한 맞배지붕의 초익공계 일자 건물들로서 남쪽의 수다라전과 북쪽의 법보전 그리고 사간판 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2동의 작은 건물이 만나 직사각형의 중정(中庭)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달 밝은 밤 그곳에서 보는 달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그곳에서는 달뿐만 아니라 구름의 하늘과 사각의 우주까지도 아름답게 보이게 하지만 그곳에선 아무것도 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건축가는 아무것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치를 알고 그 달을 보아도 보아야 할 것이며, 우주를 얘기해도 해야 할 것이며, 건축을 얘기해도 얘기해야 할 것이다.

그 일자의 긴 벽은 아무 색채나 장식 없이 평범한 창살로만 이루어져 있고 사간판 대장경이 모셔진 작은 2동의 건축 역시 창살로만 이루어진 작고 역시 비어 있는 건축이다. 외부의 벽은 없고 창살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내부 역시 판각들이 수직으로만 세워져 있고, 아무것도 막고 있는 것이 없는 비어 있는 판각들로만 이루어진 건축, 비어 있는 건축인 것이다. 그리하여 바람이 자유자재로 통과하는 비어 있음으로 비어 있음을 한정하는 형태만이 존재하는 바람의 집인 것이다. 이와 함께 아무 장식이 없는 범범(凡凡)의 외관형태는 건축가로 하여금 내가 설계하였다고 말하지도 않으며, 또한 누가 설계하였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익명과 무명성의 건축이 이룩되어 법을 품고 있는 것이다.

무명성의 건축, 그것은 건축 스스로가 자연과 같이 원래부터 스스로 존재하는 생명성을 이룬 것이 되며, 건축 스스로 예경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을 획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치 국가가 위급할 때, 울거나 땀을 흘린다는 농(籠) 다리나 무열왕릉의 돌비석과 같이 혹은 종묘의 평범한 돌이 이룩한 구름의 세계와 같이 스스로 이룩한 살아 있는 생명성은 신의 경지를 이루게 되어 법을 보존하고 나라를 지키기까지 하는 전설적 신성을 이룩한 건축 공간이 되는 것이다.

또한 남쪽벽의 윗 창은 작고 밑의 창은 면적이 3배나 큰 창이며, 북쪽창은 그 반대인데 이것은 통풍과 습도가 자연 조절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물론 그러한 이유는 사실이지만 그와 같은 이유라면 굳이 그렇게 반대로 하지 않더라도 통풍은 잘 조절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창의 모습이 그러한 이유는 바람과 함께 빛에 있다고 생각된다. 위의 창이 작은 이유는 바람과 함께 빛이 작게 들게 하고, 밑으로 빛이 풍부하고 안쪽까지 깊게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사진과 같이 밑의 창으로 들어온 빛은 경판 부분에는 비치지 않고 땅 바닥만 비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땅을 마르게 하는 동시에 땅을 데워 그 온기가 다시 바람을 데워 외내부의 기온과 온습도 차이를 조절하게 만드는 비법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앞쪽에 세워진 경판보관대는 보관된 경판이 직접 햇빛을 받게 되므로 철거되어 원상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법을 만나러 장경각 공간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평범하고 평범한 땅을 밟는 동시에 빛의 융단을 밟으며 법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법은 통로의 측면에 있어 대장경의 내용은 직접 보이지 않는다. 법을 보기 위해 들어왔으나 법은 없고 길게 침묵하는 묵언(默言)의 공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 묵언(默言)의 판각과 조선의 막사발 도자기였던 이도다완과 같은 평범한 땅은 빛의 바닥과 문자로 이루어진 묵언(默言)의 바닥과 벽이 되어 비어 있음도 없는 비유비무(非有非無)의 건축 공간과 함께 침묵하는 침묵이 아닌 밝은 침묵, 즉 명묵(明默)의 공간으로 부처님의 원음(圓音)을 듣는 법의 건축적 희열을 이룩한 것이다.

3) 無無無 無無無의 공간 거조암 영산전

팔공산 거조암의 영산전을 생각하게 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무문어록》에서 남송 스님은 생사의 경지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경지에서 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법은 “無無無無無 無無無無無 無無無無無”라고 노래하였다. 국보 14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산전은 게송과 같은 절대 무(無)의 건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곳에선 기둥의 배흘림 수법이나 맞배지붕의 장중함 같은 형태적 미나 노출된 구조의 솔직 담대한 공간이나, 비례의 미 등 일체의 전형적 아름다움에 대한 얘기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영산전은 일체의 유위적(有爲的)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멀리 떠나 있는 빛과 그림자만 존재하는 비어 있음조차도 없는 무공(無空)의 침묵(沈默)을 추구한 건축이기 때문이다.

그 무공의 적묵은 중국선이 이룩한 평상심에서 나아가 평상심이 다시 지극한 신성(神性)으로 회향되는 건축적 철학과 불교적 공간을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창고나 강당 등의 용도로 지어졌으리라 추정되는 영산전은 리노베이션을 통해 재창조된 것이기에 본래의 건물배치와 용도와는 다른 창조적 금당(金堂)의 공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추앙하고 있는 스님 중의 한 분인 지눌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쓰시고 수행과 실천을 하셨던 도량이기도 한 곳이다.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조사당,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몇 안 되는 고려시대 맞배지붕 건축 중 하나인 영산전은 남아 있는 동시대 다른 건축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건축적 공간을 성취하고 있으나 그 표현방법은 너무나 평범하게 보여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삼면이 흙의 둔덕에 묻혀 있어 화려하고 웅장한 측면과 배면을 일부러 숨겨서 보여주지 않았다. 오로지 작은 마당을 통한 정면의 일부만을 느끼게 되어 있는데 그 정면이라는 것도 창고와 같이 허술하고 밋밋하기 그지없다. 특히 건물 앞의 작은 삼층석탑과 함께 양옆으로 2칸짜리 작고 초라한 건물과 또 다른 요사채가 있었는데 그 건물들은 상대적 크기의 차이로 일견 상관없는 별개의 건물로서 하수의 건축가가 특별한 이유 없이 배치한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건물이라고 하면 훌륭한 외관과 장엄하고 멋들어진 공간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산전은 아무것도 이루려고 하지 않았다. 건물을 둔덕 위에 숨기고 큰 금당의 비례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왜소한 건축을 배치하고 작은 마당과 작은 탑을 세웠다. 그리하여 이 절에 진입하게 되면 처음 대하는 것은 작은 석탑과 함께 영산전의 작고 평범한 출입문뿐 주변의 작은 건물과 함께 큰 법당 역시 오히려 줄어들어 모든 것이 작고 왜소하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거조암의 마당을 통과하여 영산전에 진입하게 되면 역시 작은 부처님과 함께 526분의 작은 나한성중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작은 나한들이 이제는 작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둑어둑한 장대한 공간에 여기저기 절제되어 들어오는 빛은 다양한 어둠의 깊이와 함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의 적묵(寂默)을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간과 시간은 적묵(寂默) 아래 정지되어 있으나, 그 건축적인 공간은 조사들과 함께 일합(一合)을 이루고 정지한 듯 움직이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영원한 공간으로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고 무채색의 건축과 흰색 하나로만 가지가지 색을 연출하고 있는 나한이 통시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500나한을 만나게 되어 있는 내부의 만(卍)자와 같은 길들은, 그러나 길이 아니다. 한 분 한 분께 예(禮)를 올리는 일보일례(一步一禮)의 멈추는 장소도 아니고 동중정(動中靜)인 동시에 정중동(靜中動)의 길도 아니다. 공간과 시간이 함께 만나서 운동을 하는 멈춤과 움직임이 동시에 무화(無化)되어 버린 움직인 바 없이 걷는 길인 것이다. 그리하여 500나한에게 예를 다한 후에도 묵묵(默默)하여, 그 본적의 묵묵(默默)함으로 다시 예를 대신하는 예묵(禮默)의 공간을 통해 건축은 없고 조사(祖師)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승보사찰의 본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거조암은 더 이상 조사들이 거(居)하는 공간이 아니다. 지극히 작게 움츠러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러나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와 같은 500나한들이 우주 속에 부처성(佛性)으로 가득하였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젠 모든 것이 세월과 함께 변해 버려 넓은 마당만 있을 뿐. 그리고 옛것을 복원한다는 명분 아래 새롭게 색이 칠해진 색색의 나한들만 있을 뿐, 그곳에서 이제 나는 더 이상 조사를 만날 수가 없다. 어쩌면 애시당초 아무것도 보이려고 하지 않았던 무(無)의 건축이었던 것처럼 원래 자리로 돌아가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묵(禮默)의 공간 ‘거조암 영산전’. 이젠 내 마음속에만 남아 있는 공간인 것이다.

4) 본복사, 물의 절

물의 절이라 불려지는 이 사찰은 일본 아와지시마의 북동쪽에 위치하는 섬에 지어진 본복사라는 사찰로서 기존의 낡은 전통적 사찰과 납골당 옆에 새롭게 법당을 신축하여 전통과 현대가 한 장소에서 잘 조화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 건축의 중요한 요소로 여겨져왔던 벽과 지붕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건축은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땅 속에 묻혀 있고 수련이 활짝 핀 연못만이 있는 공(空)의 건축이다.

흰 모래를 밟으며 올라간 언덕에는 긴 콘크리트 벽이 가로막고 있으며 두벽으로 이루어진 좁은 길을 통과하면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과 함께 연꽃이 점점이 피어 있는 수련의 연못만이 눈앞에 펼쳐지고 법당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법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연못을 가르면서 연못 속으로 진입하는 듯한 느낌으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사각형의 법당은 원형의 방에 담겨 있는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본식 격자그릴의 중첩과 나눔으로 그 공간적 깊이를 수평적, 수직적으로 유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영일 선생은 “주홍빛으로 칠해진 법당으로는 석양이 흘러 들어와 실내를 온통 타는 듯한 붉은 빛으로 물들인다. 늘어선 기둥들이 드리우는 그늘과 붉은 빛이 대조를 이루며 자아내는 광경은 사람들에게 일상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경험이 된다. 여기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신만의 진실을 돌아볼 수 있게 된다.”5)고 현대적 법당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안도는 평면적이고 중첩적이고 복합적인 일본 전통 건축의 평면적 구성방법과 20세기 모더니즘이 이룩한 무(無)의 미학(美學)을 입체적 공간구성과 시간적 확장으로 건축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기존의 사찰이 이룩하지 못한 공간의 풍요로움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아가 공(空)의 건축을 이룩하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건축적 도(道)는 이곳을 찾는 불자들에게 불교적 해탈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게 하고 있는 것이다.

5) 무공(無空)의 공간, 담양 정토사

절제되고 단순한 형태와 비어 있는 내부공간인 동시에 빛과 그림자와 산으로 가득 차 있는 담양의 정토사는 필자가 기존의 장엄한 전통 법당 공간과는 달리 단순한 형태로서 형태 있음으로 비어 있음까지도 이룩한 일획의 건축을 이룩하고자 설계하였던 것이다. 창문은 때로는 벽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빛의 벽으로 변하기도 하며 때로는 산이 그림자로 비치는 그림자의 벽이 되기도 하며 그 벽은 모두 움직여 사라지기도 하는 벽을 가진 건축으로서 그것은 무획으로서 일획을 이룩하려는 불경의 정신과도 일견 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근대건축이 이룩하였던 ‘Less is More’의 성과에서 나아가 ‘Emptiness is Fullness’로서 비어 있음으로 충만한 공간, 즉 근대의 무(無)에서 나아가 비어 있음도 비어 있는 비유비공(非有非空)의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한 공간의 경계는 무경계의 건축으로서 전통 건축의 일부 법당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공간의 경계를 외부, 준외부, 준내부, 내부 등의 단계적으로 중첩하여 연속되는 경계를 말하는 공간의 전이와 변이도 아니며 동시에 경계를 애매하게 하여 실상과 허상을 혼재하게 하여 변화무쌍하게 보이는 모습들을 담는 현대 건축의 탈경계 건축(Cutting Edge Architecture)과도 다른 것이다.

정토사의 경계 없음은 경계는 존재하나 때로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음을 이룩하고 또한 경계 자체가 탈공간적으로 뒤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탈경계가 아닌 무경계의 건축인 것이다. 즉 건축 공간이 자연의 공간이 되며 자연의 공간이 건축의 공간으로 치환되기도 하는 경계, 그것은 자연과의 일합(一合)으로 빛이 그림자가 되고 그림자가 빛이 되기도 하는, 건축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 자연이 되고 물에 비친 천공(天空)의 하늘까지도 포함한 자연이 곧 건축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대적 유한의 공간과 형태가 아닌 절대적 무한경계의 공간을 통해 선(禪)의 세계를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다.

서울대 권영걸 교수는 정토사 비평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외(敬畏)가 있어야 할 이 공간은 앉으면 더욱 편안한 공간이 된다. 앉은 눈높이에서 앞으로는 아미타불을 올려보고(仰視), 옆으로는 연못 저편의 울창한 산을 바라보며, 못은 내려보게(俯視) 되어 있다. 때마침 길게 연립한 격자문들을 통해 아침 햇살이 들어오자, 격자문은 빛이 되는가 하다가, 그림자가 되기도 하며, 자연의 경(景)을 걸러 실루엣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정토사 법당에서는 종일 그림자도 쉬지 않는다. 그와 함께 조금 전까지 정관(靜觀)적이던 공간 이미지가 스님의 말씀이 시작되면서 공간이 꽉 차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그럴까? 부처님(佛)이 있고, 경전(法)의 가르침을 펴는 스님(僧)의 법어가 있으므로 공간과 함께 완성의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

17세기 중국의 스님이자 위대한 화가인 스타오(石濤)는 일획(一劃)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완성이라고 하였다. 일획이라는 것은 글씨나 그림이 있기 이전의 뿌리가 되는 혼돈의 경지이자, 자연의 경지다. 글씨나 그림은 그 일획(One Stroke)이 생겨난 연후에 전개된, 인간에게 있어서는 하늘의 지속이요 변화다. 오늘날 그 지속과 변화만을 알고, 예술적 테크닉에만 탐닉하는 설계가들이 득세하는 세태 속에서, 나는 공간에 대한 사색과 실천을 통해 그 일획의 뿌리를 찾아가는 구도자(求道者)의 모습을 정토사의 법당을 통해 보았다.6)

그리하여 일획으로 천공(天空)을 추구하려고 노력한 정토사 법당이나 시대적 진실을 담고자 하는 현대적 사찰 공간 등은 전통 사찰의 건축적 희열을 이룩한 조형사상을 이 시대에도 계승하여 건축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 함께 만들어내는, 미풍만 불어도 천음(天音)의 자연교향곡이 울려퍼지게 하는 정토의 세계까지 이룩할 수 있는 것이며 무상상(無想常)의 감동을 주는 건축적 희구의 실현인 것이다.

4. 현대 사찰 건축의 설계 방향

현대적 사찰 건축은 전통 사찰 건축과 마찬가지로 불교적 정신과 세계관의 물리적 표현인 동시에 예불, 수행, 포교의 기능이 함께 공유되어 불교적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화하고 종교건축으로서의 시대성을 함께 나타내어야 한다. 그와 함께 도시 사찰은 도시적 입지성에 따라 건축물의 대형 복합화와 중층화가 요구되며, 예식·장례·강연·지역봉사활동 등의 사회적 활동 등 변화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야 한다. 특히 불교 의식의 변화 등은 건축물의 기능, 형태 및 공간에 있어 여러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특히 실내 공간적 변화 요구는 더욱 크다고 할 것이다.

이에 현대 사찰 건축은 외형적 전통의 모방 및 차용이나 전통과 현대의 도식적 해석을 적당히 혼합한 형태적 현대성을 추구하는 것을 지양하고 전통의 사찰 건축에서 전달되는 상징적 의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계획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의 현대적 시도가 요구되는 동시에 그러한 시도를 통해 현대 사찰이 지향해야 하는 공간적 특성을 추출할 수 있겠으나 본 논고에서는 특히, 불교적 상징성을 해석하고 계획하는 측면에서 기존 전통 사찰의 사례를 분석하였고, 이제 결론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현대 사찰 계획에서 고려해야 할 특성을 한국적 전통의 공간, 생명 중심주의 공간, 문화로서의 공간, 불교적 조형관념의 공간, 현대성의 공간 의 다섯 가지 특성으로 분류하였다.

1) 한국적 전통의 공간

사찰은 법을 설하는 강(법)당과 부처님을 모신 예불 공간인 금당의 기능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 동안 변화하여 왔다. 현대 도시 지역에 건축된 능인선원, 한마음선원, 구룡사, 여래사, 구인사 등의 도시 사찰도 예외는 아니며 일반적으로 법당과 금당의 기능이 통합된 예불과 법회의 공간과 함께 승려 공간과 관리 공간 그리고 신도와 사회봉사의 공간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는 평면 구성을 하고 있다.

형태적으로는 전통의 차용과 전통과 현대의 혼합형 혹은 현대적 표현의 사찰로 대별할 수 있으며, 앞으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여겨지나 내부공간은 대부분 공간의 기능과 형태 그리고 그 의미가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후불 탱화와 닫집, 불단 그리고 단청의 사용 등이 순화되지 못한 채 전통 사찰의 모방적 차용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전통이란 과거에서 이어온 것을 객관화하고 그것의 비판을 통해 현재의 문화창조에 이바지할 수 있는 창조적 계승으로 연결되고, 미래의 삶에도 의미와 효용으로 결부될 수 있을 때 그것을 전통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국사의 석가탑이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으로 이 시대에도 소중한 이유는 그 단순한 장엄함이 마치 부처님의 광배와 같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경지를 신라시대나 이 시대에서나 동시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며 그것으로 하여금 스스로 빛이 나는 또 다른 경지의 위업을 이 시대에도 이룩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빛을 발하는 부처님의 절대 추상인 석가탑의 조형은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 석가탑, 다보탑, 석굴암 등 똑같은 모습의 조형물을 복제한다고 해서 원본의 가치와 동일한 가치가 복제되는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복제품들은 역사 문화적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새로운 창조로서의 전통의 복원이 아닌 모조품의 양산은 오히려 그 시대 문화적 창의력을 저하시킬 뿐이다. 과거의 시간 속에 안주해 있을 때는 이미 전통이라 하기 힘든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규범만을 좇는 전통의 개념이 아니라 오늘의 시점에서 소급되는 시간성과 생활로서 체험되고 공감되는 공간성이 동시에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찰 건축 문화의 정체성 문제는 전통 건축의 형태적 모방을 통해서 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건축을 구성하고 있는 공간 개념을 우리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현실적인 문제로 설정하고 해결하려는 시도들을 병행해 나감으로써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2) 전일적 생명으로서의 생명 중심주의 공간

인간을 신으로부터 해방시킨 근대의 휴머니즘적 인본주의는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물신화(物神化) 경향에 이르렀고 끝없이 소모적인 문화는 타인과 자연을 파괴하여 끝없는 생산을 추구하게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는 모든 것이 요구되고 충족되는 세계가 극락이라는 환상을 벗어나 이미 충족되어 있어 인간과 자연이 일체인 하나의 생명관과 인간관으로 대체되고 구현되어야 한다. 현대 도시 사찰의 공간은 ‘만법을 통해 일심을 밝히고 일심을 통해 만법을 밝힌다(通萬法明一心 明一心通萬法)’는 화엄의 원리를 통해 볼 수 있는 자연의 구성원리와 순환원리를 디자인을 통해 구현하고, 자연과 단절되는 공간이 아닌 자연과 일합(一合)한 건축 공간 즉 공간과 시간의 시작 기점이 당초에 없는 것으로 생각되는 ‘시작도 없고 끝이 없다(無始無終)’는 불교의 시공간적 인식 아래 우리가 위치한 이 자리가 곧 공간적 기점이며 시간적 기점으로서 시공간을 확장시켜 인간과 자연 그리고 건축까지도 합일되는 건축 사상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것은 대상으로 인해 공간의 비어 있음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며, 비어 있음과 차 있음의 반복, 허와 실의 반복으로 형성되는 공간적 켜(Spatial Layer)의 형성에서 나아가 비어 있음으로 비어 있음을 한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 건축이고 건축이 자연이 되는 경지로 일회적 감동이 아닌 여여한 일상상의 감동이 늘 존재하도록 공간을 계획함으로써, 어떤 예술적 성취도 이룩하기 힘들었던 자연 그대로의 경지를 이룩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건축을 통해 건강하며 자재로운 인간적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 기(氣)를 생성하게 하고, 변화하는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고 순천(順天)함을 통해, 무한의 소비와 소유를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자재무애하는 삶을 창조해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이 더 이상 첨가하거나 비울 것도 없는 완성의 경지를 추구하는 설계가 아니라 채우지도 비우지도 않는 디자인을 통해 역설적으로 일체를 이룩하고자 하는 공간 계획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찰의 설계에 있어서도 이러한 동양사상의 개별성과 전체성이 교합작용을 하는 생명원리로서의 변화와 생성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무앙수(無央數)의 과거·현재·미래, 시간과 공간에 관계되는 점이면서 전체이고, 전체이면서 부분인 무극(無極)의 생명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공간 계획이 요구되는 것이다.

3) 문화로서의 공간

인간이 창조해 온 자연과 대비되는 모든 문화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우리는 그 문화에 내포된 시대의 사회적 모습들을 읽을 수 있다. 문화는 그 시대와 사회의 신념, 사건의 기록으로, 따라서 문화적 행위의 하나인 건축은 인간 행태를 구성하고 그 의미를 전달하는 문화적 메시지이자 인간과 공간 사이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의미 전달의 매개체로 존재한다.

팔만대장경만이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적 조형과 공간을 통해서도 존재의 실상은 공(空)으로써 하나라는 대승의 이치를 깨닫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언어적 전달 체계만이 법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체계를 떠나 선문답(禪問答)으로서 이심전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모든 진실이 담겨 있는 문화는 그 법을 보존하고 널리 펼 수 있는 생명적 힘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 마치 스님과 함께 승단의 조직과 계율이 필요하며, 그릇이 없으면 물을 담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는 법을 유지하며 만들며 재해석하게 하는 형식인 것이다. 법을 깨닫고 전하기 위해서 1칸 짜리 방만 있으면 된다는 사고 방식은 수행의 방편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방도는 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건축은 “문화의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체계의 방편으로써 여러 사회 문화적인 요구와 시대정신 등을 창조적인 조형언어를 수단으로 삼아 외연적 공간 형태로 나타내고, 동시에 창출된 공간이 다른 문화들과의 관계적 맥락 속에서 파악되는 총체적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찰 공간 역시 다양하며 복합적인 요소와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 산물인 동시에 사상과 창조적 사유를 통해 실현된 전일적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사찰 공간이 그러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는 복합적 표현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작품과는 구별되는 그 공간은 문명의 중요한 힘과는 유리되어 시대의 본질, 즉 진실을 담기 어려울 것이다.

4) 불교적 조형 관념의 공간

서구 근대주의 운동의 시작인 문예부흥 시기를 거쳐 20세기 초에 태동된 근대적 서구 문화는 음악에 있어서는 대위법이 아닌 무주조의 음악의 탄생을 보게 되었고, 회화에서는 대상의 순수 본질은 형태가 아니라 선과 면의 추상을 통해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몬드리안 회화를, 건축에서는 ‘Less is More’라는 슬로건을 통해 근대 국제주의 건축양식을 꽃피우게 되었다. 이러한 철학에서는 존재나 현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공간과 형태가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기존 유위의 조형보다는 무(無)라는 개념을 그 기저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주의가 이룩한 성과가 갖는 한계로 인하여 최근에는 동양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무위법(無爲法)의 창의적인 디자인이 제안되고 있다. 불교선사 도혜 화상과 운문 스님은 이를 각각 “청산은 움직여 걸어가고” “산이 물 위로 간다(東山水下行).”고 하였는데,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무한히 초월하는 소식(消息)에 대한 사유로서 일반적인 인식과 경계로서는 헤아릴 수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선가귀감》에서는 “여기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 지을 길이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다. 서양이 20세기 초에 이룩한 무(無)의 조형 정신은 이미 일찍이 불교에서 이룩한 것으로, 부처가 이룩한 인간성과 신성의 일치는 대승불교에 이르러 보편적 신성을 획득하게 되었고 그것은 중국선에 이르러 평상심지도(平常心之道)라는 평범한 일상심으로까지 진보될 수 있었다.

평상심의 신성(神性)으로부터 지극함으로 나아가야 할 진보된 사상과 표현이 요구되는 21세기 오늘날의 사찰 건축은 전통에서 답습되는 형태를 벗어남은 물론 형태를 초월한 형태를 이룩하는 것이 불교의 마땅한 도리인 것이다.

현대 도시 사찰에서 불교적 조형 관념의 상징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단지 건축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 정신의 문제이며, 건축이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축가의 정신은 그러한 공간을 이루어내는 근간인 것이다. 우리는 영산전 거조암의 형태를 벗어난 지극하고 평범한 형태의 건축 속에서 오백나한과 함께 침묵을 초월한 빛의 공간을 볼 수 있으며, 통도사나 해인사의 장경각에서 ‘안과 밖’, ‘차 있음과 비어 있음’, ‘빛과 그림자’ 등의 대조적인 개념들이 일승을 이루고 있는 형태를 볼 수도 있다. 또한 안도의 물의절, 담양의 정토사 등을 통해 ‘형태 없는 공(空)의 건축’과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며, 절대유(有)와 절대무(無)가 공존하는 법당’을 만날 수도 있다.

이러한 전통적 사찰에 이룩한 불교적 조형 정신은 오늘날에도 그 의미와 생명적 효용을 가질 수 있는 가치이다. 그러할 때에 현대적 도심 사찰은 객관적 실체가 따로 없는 관계적 실체로서 무한한 실체를 만들어내며, 동시적 시간과 공간성을 이룩한 무한 생명을 위한 무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예토의 세계를 청정한 극락(極樂)의 세계로 구현한 불교적 조형 정신이 구현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현대성의 공간

전통의 문화는 현대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결부되어져 새로운 현대적 가치(reality)를 지닐 때 미래의 삶에도 의미와 효율을 지니는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사찰 건축 문화는 앞선 개념들과 더불어 현대적 공간개념을 이 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상황 속에서 해석함으로써 현대성과 국제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들을 동시에 이룩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신기술로 대변되는 네트워크화된 정보화 사회에서 기술의 진보가 만능은 아니더라도 적절한 디지털 테크놀러지의 접목과 함께 독자성과 국제성 그리고 현대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만, 우리의 현대 사찰은 독자성의 구별을 통해 세계적 보편성으로의 동화를 이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랜 세월 전에 지어진 고건축에서 현대성을 발견하기도 하며 오히려 지금 시대에 지어진 건물에서 현대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현대성이란 이 시대의 불교와 불교문화가 어떻게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조형화되어 물리적 존재로 구현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불교 사찰을 건축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물려받은 고건축의 유산으로 지금 시대의 힘만으로는 누리기 힘든 문화적 풍요로움을 맛보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라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시대를 누리고 마는 것으로 우리의 역할이 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 건축된 사찰들보다 오히려 더욱 당당한 모습과 가치를 드러내 보이는 과거의 사찰들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을 이 시기의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전함으로써 더욱 풍부한 역사적 경험과 가치를 전하고 그들의 문화적 경험이 풍부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소통할 뿐 아니라 이 시대를 올바로 반영하고 유추하는 사찰 공간이 계획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 사찰 건축에 있어 전통적인 불교 사찰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사찰의 외형을 모방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 역사의 각 시기마다 이루어진 불사의 기저에 존재했던 불교의 사상이 있고, 그로부터 해석되는 인간의 의식과 사상 그리고 신념과 사회상의 반영이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우리가 이어가고자 하는 우리 시대의 불교적 삶과 문화가 있는 것이다. 일찍이 육조 혜능은 《법보단경》을 통해 모든 세인의 묘성(妙性)은 마치 허공과 같이 광대하여 가와 끝이 없으며, 각지고 둥글고 크고 작음이 없고, 청황적백도 상하 장단도 없으며, 좋고 성냄, 선과 악도 없이 본래부터 공(空)하여 한 법도 얻을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 자성진공(自性眞空)도 이와 같다고 하였다.

법의 모습이 이러하다면 그 법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사찰 공간을 어떻게 건축할 것인가는 자명한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를 움직이기는 힘든 것처럼, 종교로서의 불교가 일반대중과 더욱 가까워지고 그 삶의 방식이 거대한 흐름으로서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종교로서의 맥을 이어나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성한 유산으로서 남을 건축 문화를 창조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우리에게 던져진 몫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개천
이도건축연구소 대표,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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