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쟁점 ] 제 3의 수행법 어떻게 볼 것인가

1. 제3수행법이 관심을 끄는 이유

요즈음 제3수행법(혹은 대안 수행법)에 대해 논란이 많다. 어떤 이들은 직접 체험해 보지도 않고서 불교의 수행법이 아니고 그것으로는 당연히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법으로 공부를 했지만 소득을 보지 못하다가 흔히 말하는 제3수행법을 통해 불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다. 제3수행법을 접한 사람들 중에도 효과를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어떤 이는 오히려 얻은 소득은 없고 자존심만 상하고서 제3수행법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관심을 갖는 것조차 말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일한 사태를 접하고서도 이렇듯 다양한 관점들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택시 안에서 라디오를 듣고 가던 중에 어느 대학교수가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이 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물학자들 사이에 생물학 이외의 다른 학문방법론을 접목하거나 채택하면 생물학자로 취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기존의 생물학적 방법만 고집하는 사람들도 없지만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매도당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요컨대 독립된 하나의 학문은 없다, 모든 학문과 학문이 연결되어 있으며 생물학도 전체 속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생물학이 발전하여 유전 생물학·유전공학·생명공학이 탄생하였으며, 얼마 전에는 신(神)의 발견에 견줄 만한 획기적인 사건으로 표현되는 게놈이라는 유전자 지도까지 발견하는 그런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모든 분야는 다양화·전문화의 길을 걸어왔다. 앞에서 생물학의 예를 들었지만 이런 경향은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초등학교 때의 자연이라는 과목이 중고등학교에 가면 물리, 생물, 지구과학 등으로 세분화되고, 다시 대학에 가면 더욱 전문화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를 한번 보자. 70, 80년대만 해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포니라는 차가 10년 이상을 독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모델이 개발되면 얼마 안 있어 곧바로 또 다른 성능과 디자인으로 무장한 신차가 출시된다. 그것도 단순히 기존의 소비자의 기호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호 자체를 창출해낸다. 신차에 의해 생겨난 기호는 또다시 신차 생산을 유발하고 자동차는 그만큼 빠른 속도로 다양하게 모습을 바꿔간다.

세상은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물질세계에 국한하지 않는다. 정신세계 또한 날로 변해간다. 사실 물질과 마음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물질, 현상세계의 변화는 의식, 정신세계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의식의 변화 또한 현상세계의 변화를 초래한다. 현재 우리의 의식이 과거 50년대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아무런 원인도 없이 의식 스스로가 변했는가. 그렇지 않다. 경제, 사회의 변화가 의식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일례로 시집살이라는 것을 보자. 예전에는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에게 호되게 시집살이를 했으나 이제는 반대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당한다.

의식의 변화는 각종 문제를 야기한다. 과거 의식이 단순하고 순수했던 때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의식, 마음의 문제를 다루는 수행 방편 또한 보완되고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전통적인 방편 하나만을 고집하는 것은 옛날의 현대 자동차가 70년대에 개발한 포니가 아직도 경쟁력이 있는 차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요즈음 현대인들의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 건강상의 문제, 원인 모를(원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병고로 시달린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 심리적·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방편들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매우 구체적이고 과학적이다. 실제적인 삶에서 일어난 실질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체험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어 일상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불교계 밖에서는 실제로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루어 삶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가려운 부분을 실질적으로 긁어주는 그런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미 상당한 성과를 보고 있다.

대부분 절을 찾아오는 불자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이나 당면한 문제들을 가지고 절에 온다.(물론 개중에는 스님들과 같이 해탈이라는 큰 원을 세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사찰에서는, 스님들은 불자들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충족시켜 주고 있는가.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거의 제로(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른바 제3수행법에 불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열광하는 것도 그 동안 불교가 중생들의 현실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변화의 시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이의 생활필수품들이 되어 버렸다. 옛날 같으면 스님 등 수행자들에게나 가능했던 고귀하고 신성했던 수행도 이제는 상품화되어 일반인도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우리의 김치를 세계인들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여 이제는 일본의 기무치가 세계시장에서 활개치고 있다. 수행 방편도 마찬가지다. 우리들이 지난날의 우수성에만 매달리어 연구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불교의 수행 방편도 김치의 신세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2. 제3수행법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불교가 무한한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옛날과 같이 세상을 이끌어 가지 못한 것은 지난날의 방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집착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방편들이 잘못되거나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그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시대가 발전하고 다양화·전문화되어 가는 시대에 지난날의 방편들은 지금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정신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의식 수준이 확장되어감에 따라 더 큰 새로운 세계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그것은 마치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보여지는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지는 것과 같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나라 갔을 때 지구를 보는 것과 더 멀리 떨어진 금성이나 화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은 엄연히 시야가 다르다.

옛날의 단조로운 사고방식과 순수했던 마음을 지닌 시대의 방편과 복잡다단한 현대의 방편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시야가 넓어짐에 따라 또 다른 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 홀연히 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좁은 시야 때문에 우리가 미쳐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이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써 우리들의 확장된 또 다른 모습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흔히 말하는 제3수행법이라고 하는 것들도 사실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부분들로 이루어진 또 다른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적어도 무턱대고 배척하거나 멀리할 것이 아니라 한번쯤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부분들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 재세 당시에 기바 선인이라는 부처님 주치의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의 풍병과 부처님의 제자들의 병을 고친 명의로 유명하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이 세상에 있는 풀 중에서 약초가 아닌 풀을 찾아오라는 말을 듣고 몇 날 며칠 간을 산야를 떠돌았지만 약초 아닌 풀이 없어서 그냥 되돌아왔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 ‘세살 먹은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쓸모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 어떤 것이든 우리들에게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발명가들이나 작가들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생각을 해본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어떤 물건이나 사물 그리고 사고까지도 좋은 작업 소재가 된다고 한다. 실제의 삶에서는 하찮게 보이는 것에서 오히려 훌륭한 발명이나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러한 사고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 제3수행법의 방법은 방편이 다양화되어 있지 못한 우리들의 현실에서는 정말 귀중한 자료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한 소재들을 불교의 스님들이나 불교계에서 생산하지 않은 것이라고 멀리한다면, 그리하여 불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강남의 어느 사찰은 제3수행법의 범주에 속하는 프로그램들을 잘 활용하여 활기차게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제3수행법이 불교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유용하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발명가나 작가에게 소재가 많을수록 좋듯이 우리들에게는 설령 제4수행법이 나오더라도 의식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수용하고 받아들일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어떤 것에서도 수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3. 제3수행법의 효능 사례

지금의 시대는 다양화와 전문화가 동시에 요구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추어 제3수행법이라고 하는 방편들이 등장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즈음 말하는 제3수행법들은 대부분 불교의 수행들을 근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행중이나 삶에서 해결되지 못한 부분들을 보다 쉽고 구체적으로 접근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불자들은 많은 비용을 치르고라도 체험해보고자 한다.

그러나 자칫 중심을 잡지 못하는 불자들에게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불교계에서 염려하는 것도 바로 이런 부분들일 것이다. 무슨 방편이든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경계심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차가 무질서하게 다니는 거리에 어린애를 내보내는 심정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린애들이 거리에 나갈 때마다 항상 지키고 서 있을 수도 없지 않는가.

시대는 항상 요구되는 쪽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변화를 주도하거나 적응하는 쪽은 살아남는다. 수행 방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요즈음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찰들을 잘 살펴보면 그곳은 지도 방법이나 아니면 무엇인가 다른 힘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무엇인가 분명히 기존의 불교에서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다. 그 무엇 중에 제3수행법과 비슷한 것들이 많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의 문제점들을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실제적으로 접근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들은 뭔가를 직접적으로 다루게 되고 체험을 하여 확신을 얻어간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 하듯이 그들은 몸소 체험하도록 지도하거나, 연습을 통해서 스스로 체득을 해나가도록 한다. 그리고 그러한 체험은 곧 몸과 마음에 변화를 이루게 한다. 타테우스 골라스라는 수행자는 그의 저서 《게으른 사람이 깨닫는 법》에서 “신은 기도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자리에 임한다.”고 했듯이 기도나 수행에 있어서 체험은 매우 중요하다. 그곳에서는 무엇보다도 체험을 통하여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면 거의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나 역시 불교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은 불교 밖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접하면서 아! 우리 불교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런 후부터 불교를 보다 더 알기 쉽도록 체계화시키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그래서 발명가나 작가에게는 보이는 모든 것들이 그들의 소재가 되듯이 나에게는 언제부터인가 모든 프로그램들이 하나의 귀중한 소재거리가 되었다. 내가 접근하는 모든 것은 프로그램의 대상이 된다. 남들이 하찮은 것이라고 보는 것들조차도 나에게는 귀중한 것이 되곤 한다.

내가 만약 다양한 수행방편들을 국내외에서 접하지 않고 전통적인 불교의 방편들만 접했다면 신도들에게 이해하기 쉽고 또 체험을 하여 신심을 일으켜 세우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제3수행법이라고 하는 프로그램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어려운 삶에서 벗어나거나 뭔가를 이루고자 하는 이들에게, 즉 어떤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매우 유익한 부분이 분명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제3수행법을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몇 년 전에 최면을 활용하면서 진언(다라니)의 위력을 실감한 적이 있다. 흔히 매스컴에서 최면을 흥미 위주로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면은 잘 활용하면 우리들이 겪는 어려움에서 벗어나거나 수행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최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시키는 것이다. 이 이완은 어떤 미묘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이 기도를 하거나 참선을 하면 이완이 된다. 편안하면서도 고요한 상태가 된다. 최면에서도 이와 같은 상태가 되면 우리들이 지난날 알아채지 못한 응어리나 또 몸속에 숨어 있었던 빙의(憑依)된 영가들이 드러나게 된다. 그럴 때 쉽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영가와 대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을 풀고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대상자는 전에 TV에서 어떤 프로에 자주 등장한 여성이었는데 최면상태에 들어가니 전에 낙태를 시켰던 유산아 영가가 나왔다. 그는 천도도 몇 번 지내주고 했는데도 아직 가지 못하고 그곳에 있었다. 그가 언제 들어 왔는지 그가 있어서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그와의 대화를 통해 소상히 알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간도 거의 2시간 정도나 흘렀을까. 이제는 그를 보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러면서 광명진언을 아느냐고 물으니 잘 알고 있었다. 전에 어머니가 광명진언을 가끔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때 아주 좋았는데 스님이 108편을 해준다니 아주 기뻐하였다. 그래서 요령을 흔들면서 광명진언 108편을 해주니 눈앞에서 빛이 나타나더니 온통 빛으로 가득 채우더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휘황 찬란한 빛이 나타나더니 그 빛을 따라서 그 영가가 따라가더라는 것이다. 광명이라는 것이 그냥이 아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그 후로도 그와 같은 것을 많이 보아 왔다. 그러면서 나갈 때 몸에서 어떤 기운이 발을 통해서 쑥 빠져나가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 후 어려움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최면을 시도했으며 그로써 많은 사람들이 영가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광명진언의 위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리고 영가들도 다양한 형태의 영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금 말한 영가와 같이 순수한 영가가 있기도 했지만 까다롭고 질긴 영가들도 있었다. 어떤 영가들은 곧장 숨어 버리기도 하고 신통도 부리고 또는 최면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방해도 하는 영가, 또 무서움을 주어 절에 못나가게 하는 영가들까지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의 영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영가들이 함께 각각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기도 한다는 것도 발견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광명진언의 위력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영가가 있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도 어떤 문제가 있다. 그것과 함께 병행을 해나가면서 다뤄나가야 된다.)

나는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최면을 하면서 진언의 위력을 체험을 하였다.(그러면서 최면뿐 아니라 다양한 방편을 동원하여 영가로 인해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가 천도 프로그램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현재 상당하게 진척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영역을 넓혀 더 많은 임상을 통해서 스님들에게 체계화된 프로그램을 보급시킬 계획이다.)

광명진언의 위력을 체험한 나는 다른 진언도 그냥이 아니겠구나 생각하여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독송하는 기도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서 100일 기도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참가자가 몇 명 되지 않았다. 절에서 기도를 하면 기도만 부쳐 놓고 나오지를 않듯이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번에는 무언가를 하나하나 체험을 하면서 재미들을 붙여 가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내가 전에 배운 것들을 동원하였다. 먼저 우리들의 생각에는 어떤 힘을 동반한다는 것을 실험을 통하여 체험하도록 하였다. 우리들이 일으키는 한 생각은 어떤 에너지를 동반한다. 우리가 갖는 부정적인 생각은 나와 다른 사람을 막히게 하고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은 나와 내 주위를 밝게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체험을 하게 하였다. 모두들 우리들이 쓰는 한 생각이 우리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체험을 하면 전보다 마음 자세가 달라진다.

그러나 그것도 습이 있기에 하루 이틀에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몰랐던 사실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우리가 쓰는 말이나 글이나 행동, 그리고 생각에는 힘이 있다. 인삼에는 인삼의 기운이, 산삼에는 산삼의 기운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가 쓰는 말이나 글이나 생각에도 기운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신묘장구 대다라니’의 힘을 느끼도록 해주는 데 몇 가지 방법들을 사용하면서 그들이 체험하도록 하였다. 사람마다 한두 번에 다 체험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끝나고 나서는 반드시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체험들을 하였다. 물론 처음에 못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체험담을 들으면서 또 다른 사람들은 간접 체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믿음이 생기게 되자 수는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고 그들은 하루를 빠지면 뭔가 남에게 뒤쳐지는 것 같고 하여 열심히 하였다.

사실 체험은 우리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주게 된다. 나 역시 그런 체험에 대한 믿음으로 내가 배운 것들을 보다 더 쉽게 접근하도록 하는 데 많은 도움들이 되었고 거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크고 작은 체험을 하였다. 뭔가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본인들 스스로 체험들을 하니 지금 100일 기도가 며칠 남아 있지 않지만 거의 모두가 또다시 바로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기도 중에 힘들고 어려웠던 부분들이 풀리기도 하고 뭔가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기뻤고 힘과 보람을 느낀다. 체험은 살아 있는 신심을 일으킨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였다.

4. 맺는말:‘방편 개발 연구원’ 설립을 제안하며

나는 불교 밖에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접하면서 우리 불교를 지금보다 더 활성화하는 일은 보다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근기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서 보급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 한국불교는 너무 개인적이고 문중적이다.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못하다.

큰 사찰들은 그들대로의 세를 형성하고 있다. 전체 불교를 함께 살려가면 그만큼 효과적일 텐데……. 종단에는 능력도 있고 법력도 있고 좋은 인재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적재 적소에 활용하지 못하여 쓸모 있는 능력들이 소장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지금의 불교는 어떻게 보면 흩어진 모래와 같다. 자연 힘도 분산되어 있다. 그러나 힘없는 모래일지라도 시멘트와 물을 적당히 섞으면 원하는 모형으로 변형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듯이 만약 우리 불교가 보다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수행방법을 체계화시키는 데 눈만 뜬다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한다. 전국의 사찰이나 전 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방편과 큰스님들의 지혜와 안목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어린애에서 남녀노소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불교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리라 믿으면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본다.

먼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분들과 선(禪)을 하는 분, 그리고 교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분들을 모아서 ‘방편 개발 연구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에서는 첫째, 전국의 사찰과 수행단체, 제3수행법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수집을 한다. 둘째로 수집한 것을 근기에 따라 남녀노소와 계층에 따라 체계적으로 다양하게 재프로그래밍화하여 나간다. 셋째, 그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지도자를 양성하여 간다. 넷째, 불자들은 물론 수행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 나간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①불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조계종에 등록된 사찰에 한하여 회원제로써 보급을 함으로써 개인 사찰 등록을 유도할 수 있다.)

②불교 전체를 활성화할 수 있다.(능력이 있거나 큰스님이 계신 곳이 잘 되어 가는 것은 그곳에 가면 뭔가 경험을 얻고 몸과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고 또 든든함이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체계화된 프로그램들을 보급함으로써 불교 전체를 고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

③개인적으로는 어려운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여러 사찰에 동시에 보급시킬 수 있어 주지 스님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다른 큰일들을 해나갈 수 있다.

④불자들이 매일 절에 와서 수행이나 신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진행함으로써 하루에도 각자에 맞는 시간을 선택하여 절에 와서 부처님께 의지하고 수행을 겸해 나갈 수 있게 된다.

⑤절에서 하는 수행이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접함으로써 뭔가 체험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주 절에 찾아오게 되고 절은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가정과 더불어 우리들의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공간이 된다.

⑥프로그램화를 시켜 평준화를 시킴으로써 불자들은 어느 절이거나 가까운 곳을 찾게 될 것이므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스님들은 개인 사찰을 갖기 위해 비용을 마련할 필요도 없어진다.

⑦불자들이 절에 가면 어떤 어려움도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어 해결할 수 있으므로 불자들에게는 항상 편안하고 든든한 백이 되어 줄 것이다.

천재와 둔재는 공부 방법 차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선생님은 실력은 있으면서도 가르치는 데 실력 발휘를 못하는 선생님들도 있는 반면 어떤 선생님은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가르쳐서 학습능률을 높이는 경우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안다. 흑연과 다이아몬드는 모두 탄소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배열구조 차이라는 것이다. 배열에 따라 그렇게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듯이 수행이나 삶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큰 차이를 가져옴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배열이라는 것이 바로 시대에 따라, 근기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방편 개발 연구원을 설립하여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전국의 사찰에서 활용하도록 한다면 한국불교는 거듭 태어날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들은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변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모두가 공감을 한다. 뭔가를 새롭게 시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니,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요즘 용성 스님의 용기와 지혜와 앞을 내다보는 안목에 새삼 놀라곤 한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봉건시대라고 할 수 있는 일제시대에 법당에서 풍금을 치고 찬불가를 부른다는 것은 그때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리라. 거룩하고 신성한 법당에서 악기를 다루고 또 독경도 아닌 노래(그 당시에 생각하기를)를 부른다는 것이 경망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서는 성스러운 독경 못지 않게 찬불가도 불교의식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큰스님의 지혜와 용기와 안목이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진가를 발휘하듯이 지금의 낙후된 한국불교를 활성화하는 데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불교를 좀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체계화를 시켜서 프로그램화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이 가면서 시행착오도 거치면서 연약했던 사다리들(프로그램들)도 더욱더 견고하게 될 것이고 어린애에서부터 남녀노소 누구나가 오를 수 있는 훌륭한 사다리들로 변화를 이루어 갈 것이다.

몇 년 전 미국의 어느 프로그램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에서 지나가던 분이 지갑을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 사람 10여 명이 손가락으로 지갑을 가리키며 ‘지갑’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당연히 한국말을 몰라서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지나간다. 그때 영국 사람이 더 먼 거리에 있었는데도 얼른 달려와 지갑을 주워서 손에 쥐어주었다. 말보다는 행이 중요한 것이다.

종단에서 해나간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뜻 있는 몇 사람이라도 모아서 지금부터라도 체계화된 프로그램화를 시키기 위해 방편 개발 연구원을 설립하여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아주 소중한 불사가 될 것이 틀림없다. 지금부터라도 한 걸음 한 걸음을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의 불교 현실을 해결해 나가는 데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동준
전남대 농경제학과 졸.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 태안사·용주사·광덕사 등에서 안거수행. 아봐타 마스터·위저드. 최면심리상담, 최면을 통한 영가천도 전문가. 국내외에서 다양한 수행 프로그램 섭렵. 현재 목포 길상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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