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왜 종교 다원주의 인가

1. 종교다원주의: 이중적 의미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란 무엇인가? 문자적 의미로 풀어본다면 종교다원주의란 여러 다양한 종교들에 대한 주의, 주장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종교들에 대해 무엇을 주장하는 것인가?

20세기 후반기 이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이 용어는 대부분 유행어들이 그러하듯 쓰는 사람들 편리한 대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는 이 말을 들으면서 여러 종교간의 화해와 관용을 연상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자기가 믿는 종교의 변질과 굴절을 염려하기도 한다.

해체철학자 쟈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즐겨 지적하는 것처럼 무릇 많은 단어는 이중적 의미를 감추고 있다. 예를 들어 ‘약(pharmarcon)’이라는 말은 동시에 ‘독’을 의미하기도 하며, ‘순결’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음란’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종교다원주의’라는 단어야말로 데리다가 말하는 의미의 이중성이 은폐되어 있는 좋은 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각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종교다원주의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어떤 이에게는 종교다원주의가 종교들의 가장 순수하고 평화로운 상태를 지칭한다고 받아들여지는 반면, 다른 이에게는 자기 종교의 타락과 음란을 상징하는 단어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교다원주의는 보는 관점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이중성을 인식하는 것이 이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글의 목적은 종교다원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글의 초점을 대부분 ‘문제’로서의 종교다원주의에 맞추려고 한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종교다원주의는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로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종교다원주의를 예견했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여러 종교들과의 올바른 관계정립이야말로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중요한 숙제라고 역설한 바 있다.1) 과연 종교다원주의가 던지는 문제는 무엇이며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형성된 것인가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2. 종교다원주의의 문제

종교다원주의 문제는 20세기 후반기 이후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의제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종교다원주의 문제란 여러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는 현상에 대한 논의를 의미한다. 물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종교들이 등장하였고 많은 시간 동안 어떤 의미로든 공존하여 왔다. 그렇다면 왜 새삼스럽게 종교의 다양성이 새로운 논쟁의 주제로 등장하게 된 것인가?

첫째, 우리는 먼저 종교다원주의 문제가 ‘누구의 문제(Whose problem?)’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오늘날의 후기구조주의와 후기분석철학이 공통적으로 일깨워주는 점은 이성·합리성·진리 등 절대적이고 유일하다고 생각되어졌던 것들이 모두 개별적이고 상황적이라는 것, 곧 어느 특정한 시대 혹은 집단의 진리와 이성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흔히 말하는 ‘문제’들의 경우에도 반드시 ‘누구의 문제’인가 하는 구체적 성격을 이해할 때 보다 정확히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종교다원주의의 문제’라고 표현되는 논제는 일차적으로 서구적, 기독교적 시각을 담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면서도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려되었던 시대와 문화도 많았음을 볼 수 있다. 가령 유교, 불교, 도교의 가르침이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이른바 삼교일치(三敎一致, san-chiao) 사상은 중국 당(唐) 시대 이후로 동양에서 꾸준히 이어져 왔다.2) 서양에서도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는 수많은 외래종교들이 다투어 수입되고 또 적극적으로 권장되었던 역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처음 시작부터 타종교들에 대한 배타적 입장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던 종교였다. 기독교의 공개된 비밀은 바로 ‘하나(one)’라는 암호였다. 한 분이신 유일신(唯一神) 및 그 신의 하나뿐인 독생자(獨生子)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유일한 교회(Catholic Church)가 바로 기독교 교리의 핵심사항인 것이다. 특별히 나사렛 예수만이 독생자이며 유일한 구세주가 된다는 이른바 ‘특수성의 스캔들(scandal of particularity)’은 다른 종교와 전통에 대해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해야 될 당위성을 지시하였다. 따라서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 타종교들은 본질적으로 ‘문제’로 간주될 수밖에 없으며 현대의 종교적 다양성 역시 필연적으로 문제로 인식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왜 지금 이 시간에(Why now?)’ 종교다원주의가 문제로 등장하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세계사의 전체 문맥에서 볼 때 다양한 종교들이 서로 공존해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유독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해 두드러지게 배타적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 것 없는 상식에 속한다.3) 그런데 왜 갑자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종교적 다양함에 대한 서구적, 기독교적 문제의식이 새삼스럽게 심각한 논란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종교다원주의 논쟁이 서구적, 기독교 신학적 배경 이외에 특별히 후기근대적 배경에서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후기근대적(postmodern)’이라는 단어는 종교다원주의 논쟁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배경을 제공한다. 이른바 후기근대 혹은 포스트모던이란 ‘백인 이후, 남성 이후, 기독교 이후’를 지시한다는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종교다원주의 논쟁은 바로 이처럼 서구사회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는 환경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 이후(After Christianity)’ 혹은 ‘후기 기독교(Post Christianity)’라는 서구사회의 새로운 상황과 종교다원주의 논쟁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상 두 가지 배경, 곧 기독교적 문제의식과 후기근대적 문제의식이 우리 시대에 있어 종교다원주의 논의를 형성하는 근간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차례대로 이 두 가지를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기독교 역사와 후기근대의 형성을 폭넓게 개괄하는 다소 무모한 노력을 시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3. 기독교와 타종교의 문제: 제3의 만남

바로 얼마 전 우리는 벅찬 감격과 흥분으로 21세기의 시작을 자축한 바 있다. 국적과 문화를 망라해서 전세계 지구인들이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21세기를 맞이하는 데 동참한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라는 시간 단위는 두말할 필요 없이 서양적 시간개념이다. 그래서 21세기의 출범은 누구보다도 서구인들에게 더욱 뜻깊게 각인되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서구문화에서 21세기란 단순히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역사의 출발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서구 전통이 ‘천년(千年, millenium)’이라는 독특한 시간 단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년’ 곧 ‘밀레니엄’은 신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종말과 재림이 완성된다는 신학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 개념이다. 따라서 21세기는 이른바 ‘제3 천년(the Third Millenium)’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인지라 서구인들에게 더욱 큰 기대와 긴장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종교가 삶의 궁극적 권위이던 중세 때 ‘천 년’이 지녔던 신학적 무게는 대단한 것이었다고 한다. 제2 천 년, 곧 11세기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날 모든 유럽 사람들이 임박한 종말과 재림을 당연시하여 교황을 비롯한 수많은 군중들이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하였다는 역사적 에피소드가 이를 웅변하여 준다. 이제 철저히 세속사회로 변모하게 된 서구에서 제3 천 년이라는 말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종말론적 중량감을 지니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이라는 코드는 여전히 21세기를 맞이하는 서구인들의 의식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중요한 해법을 제시하여 주고 있다. 종교다원주의에 관한 중요 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하버드 대학의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가 말하는 ‘제3의 만남’이 그 좋은 예가 된다.4)

저명한 종교학자였던 스미스 교수는 역사가의 눈으로 기독교 역사를 세 번에 걸친 ‘만남’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첫번째 만남은 희랍문명과의 만남이다. 2천년 전 로마의 속국이던 유대 나라의 변두리 지방이던 갈릴리에서 출발하였던 이른바 ‘예수 운동(Jesus Movement)’은 불과 2세기 만에 전 로마제국에 최대 종교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성공의 비결은 여러 가지로 분석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당시 주도적 문화였던 희랍문화를 과감히 수용하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선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성경(New Testament)》 자체가 희랍어로 쓰여졌다는 사실이 가지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이다. 나아가 희랍철학을 받아들여 신에 대한 체계적 사유를 의미하는 ‘신학(theology: theos + logos)’을 발달시킨 것도 기독교만이 지니는 독특함이다. 그 결과 서양철학과 기독교 신학은 이후 2천 년 동안 시대에 따라 애증이 엇갈리는 동반자로 공존하여 오는 역사를 창출하여 왔다.

스미스가 말하는 기독교의 두번째 만남은 중세가 끝난 후 근대문명과의 만남이다. 문예부흥(Renaissance)과 종교개혁(Reformation)을 거쳐 정치혁명, 산업혁명, 과학혁명 등 수많은 혁명들(Revolutions)을 통해 근대세계가 형성되어 왔음은 잘 알려져 있다. 중세 천년 동안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면서 소위 ‘기독교 제국(Christendom)’을 자랑하여 왔던 기독교는 근대에 들어서서 새로운 위상정립을 요구받게 되었다. 끊임없이 민주화, 산업화, 기계화, 세속화되어 가는 근대사회에서 교황과 교회의 권위는 부단히 추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근대와의 만남은 기독교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남겨서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였고 근대신학, 성서비평학 등의 학문을 발달시켰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자유주의 신학과 보수-근본주의 신학의 갈등이라는 상흔도 근대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상 두 번에 걸친 역사적 만남은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던 만남이었다. 이제 스미스는 기독교가 세번째 만남의 광장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 역사적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예언한다. 그것은 곧 기독교와 세계종교와의 만남이다. 여기서 스미스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만남’의 상호적 의미이다. 진정한 만남이란 일방적이거나 강압적일 수 없다. 과거에도 기독교가 많은 다양한 종교들과 접할 기회를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타종교들은 단지 기독교가 정복하거나 선교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제3 천년을 맞이하는 기독교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의 여러 종교들과 동등한 자격의 ‘만남’을 시작하고 있다고 스미스 교수는 강조한다.

종교다원주의의 전도사로 일컬어지는 스미스의 ‘제3의 만남’ 분석은 간략하지만 명쾌하게 종교다원주의의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종교다원주의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기독교적 사건’이다. 즉 서구 기독교가 역사적 전개과정에서 마주치게 된 제3의 충격적인 사건이다. 첫번째 만남을 통해 기독교에 철학이 도입되고 두번째 만남을 통해 과학 등 근대학문이 신학에 접목하게 되었던 역사를 상기시키면서, 스미스는 이제 세계종교들을 연구하는 종교학이 기독교 신학에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등장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과 우주의 은하수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이해하게 된 서구 기독교인들은 이제 인도인들이 왜 《우파니샤드》를 즐겨 애송하는지를 이해하여야만 되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4. 근대와 후기근대

이미 언급한 것처럼 ‘제3’이라는 코드는 세속화된 서구인들에게 아직도 어떤 주술적 힘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 암호는 서구 역사 전체를 조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만약 서양사를 3등분할 수 있다면 고대와 중세(pre-modern), 근대(modern), 그리고 후기근대(post-modern)라는 도식이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이런 시대구분은 자연스럽게 스미스가 말하는 세 번의 만남과 겹쳐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제3의 만남으로서의 종교다원주의는 후기근대적 시대구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다원주의가 나타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후기근대의 기원과 전개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후기근대(postmodern)란 근대 이후(after modern) 혹은 근대를 넘어서서(beyond modern)라는 문자적 의미를 지닌다. 포스트모던의 ‘포스트(post)’가 해석하기에 따라 ‘이후(after)’ 또는 ‘넘어서서(beyond)’를 뜻하기 때문이다. 과연 포스트모던의 성격을 후기근대(後期近代)로 규정할 것인지 탈근대(脫近代)로 규정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국내에서도 첨예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어떤 해석을 따르든 간에 기본적인 사실은 모던이라는 시대를 파악하지 않고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근대의 무엇을 넘어서고 무엇 다음에 나오는지를 알아야만 포스트모던 사회의 성격을 정확히 규정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근대와 후기근대의 관계에 관해서는 이미 필요 이상으로 많은 보고서들이 소개된 바 있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특별히 종교다원주의와 연관하여 간단하게 몇 가지 요인을 거론하고 있는 리차드 플란팅가의 논의를 소개하려고 한다. 그는 근대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종교다원주의 상황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한 7개의 변수들을 간결하게 지적한다.5)

첫째는 ‘콜롬버스 변수(Columbus factor)’로서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통해 신대륙과 타문화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둘째는 ‘종교개혁 변수(Reformation factor)’로서 천년을 넘게 유럽을 지배해 왔던 가톨릭 교회가 붕괴되고 개개인이 신앙의 자유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는 ‘계몽주의 변수(Enlightenment factor)’로서 전통적으로 절대복종을 강요했던 신앙과 신학의 권위에 대해 이성의 준엄한 심판이 시작된 것을 의미한다. 네번째는 ‘학문적 변수(scholarship factor)’로서 근대에 들어서서 여러 학문들의 출현, 특별히 종교학이라는 학문이 출현하게 된 사건을 가르킨다. 다섯번째는 ‘서구 위기 변수(Western crisis factor)’로서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서구에 밀어닥친 정치적·실존적·사상적 혼란을 지칭한다. 여섯번째는 ‘아시아 부흥 변수(Asian renewal factor)’로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비서구권 국가들이 대거 독립하게 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일곱번째는 ‘세계화 변수(globalization factor)’로서 세계가 하나의 마을이 되어 가는 현재의 추세를 일컫는다.

이외에도 많은 요인들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이상 일곱 가지 변수들은 특별히 종교적 측면에서 근대로부터 후기근대로의 역사적 이행을 잘 지적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서구 근대시대는 기독교가 자신의 영향력을 급격히 상실해 갔던 시대였다. 교황의 권위가 고딕 성당의 첨탑만큼 높게 빛나던 중세라는 화려한 계절이 끝나면서 안팎으로 위기에 봉착하게 된 시기가 곧 근대였다. 삶의 모든 분야에서 정보가 증가하고 다원화가 시작되면서 기독교가 자랑하던 ‘하나(one)’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우선 서구인들은 유럽대륙을 떠나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되면서 자신들 이외에도 수많은 ‘타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눈뜨게 되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타문화와 타민족의 ‘발견’은 서구인들에게 있어 문자 그대로 ‘위기’ 즉 위험스러운 기회를 제공하였다. 타종족에게 기독교복음을 전도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는 생각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선교사로 ‘땅끝까지’ 파송되는 선교운동이 불길처럼 번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현지에서 보고 듣게 된 많은 정보들은 모르는 사이에 기독교의 기반을 조금씩 약화시키는 부식제가 되기도 하였다.

가령 타문화에도 대단한 철학과 사상이 발달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중국에 왔던 유명한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만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접한 선교사들도 이들이 이미 ‘지고신(至高神, High God)’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실에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6) 또 타종족의 발견은 자기들만이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라고 믿던 유럽인들에게 신학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른바 ‘제2의 아담’ 이론이 당시 항간에 은밀히 유행하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7)

그러나 기독교에 닥친 더 큰 위기의 진원지는 외부가 아니라 바로 내부에 놓여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믿는’ 보편적(catholic) 가르침을 자랑하던 교회와 교황의 권위는 마르틴 루터가 교황칙서를 불에 던져버리는 항명과 더불어 녹아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수많은 기독교 종파들은 끊임없이 신앙과 교회와 《성경》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저항하는 사람들(Protestants)’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기존 가톨릭 교회에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저항했던 신교도들은 결과적으로 ‘종교’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한 공과(功過)를 세우게 되었다. 일반적인 ‘믿음, 고백’을 의미하던 중세의 ‘종교(religio)’라는 단어가 어느 특정한 집단의 특별한 제도와 교리를 의미하는 오늘날의 ‘종교’개념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8) 수많은 개신교 ‘종교들’의 출현이야말로 현대 종교다원주의의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후기근대의 종교다원화 상황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종교적 측면에서 근대로부터 후기근대로의 이행은 점차 증가하는 다원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외부적으로 다양한 타문화와 타종족에 대한 정보가 넘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기독교 내의 다양한 종파들이 왕성한 핵분열 현상을 계속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20세기에 펼쳐질 본격적인 종교다원주의의 전조가 되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들이 19세기말을 장식하게 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사건은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World’s Parliament of Religions)’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콜럼버스 박람회’의 일환으로 열렸던 세계종교의회는 인도의 비베카난다(Vivekenanda)를 위시한 아시아 대표들과 서구 기독교 대표들이 모여 연출한 종교박람회 한 마당이었다. 어떤 실질적인 효과보다도 그 상징성 때문에 이 모임은 ‘종교다원주의의 여명’이라는 명예를 차지할 만하다.9)

또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은 종교학의 시작이다. 날로 증가하는 종교적 다원성에 대한 체계적 정리가 필요해서 등장하게 된 학문이 바로 종교학이었다. 1870년에 《종교학 입문》을 출판하여 종교학의 시조가 되는 영예를 안게 된 막스 뮐러(Max Mu촯ler)는 종교학의 존재근거를 그의 유명한 경구에 요약하였다: “한 종교만 아는 사람은 아무 종교도 알지 못한다(He who knows one religion, knows none.) .”

20세기 전반부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던 종교학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종교학의 융성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전쟁의 종식은 세계질서의 재편성을 의미하였고 이는 나아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각 방면에서 폭발적인 다양성의 증가로 이어지게 되었다. 특히 종교의 다원화는 더욱 괄목할 만한 현상이어서 종교학의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동기를 제공하였다. 종교다원화 현상과 종교학의 발전은 후기근대시대의 뚜렷한 사건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10)

후기근대, 종교다원주의, 종교학, 이 셋의 밀접한 관계를 극명하게 볼 수 있는 나라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후기근대의 양상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는 나라가 서구 국가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미국사회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 사조는 미국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누군가가 말했다는 것처럼 ‘미국인은 모두 다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의 사회구조는 후기근대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다소 과장되게 말한다면 미국문화, 특히 그 대중소비문화가 곧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인 것이다.

나아가 미국 내의 활발한 종교다원주의 현상도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의 좋은 예가 된다. 현재 전세계에서 미국만큼 종교다원주의를 잘 보여주고 있는 나라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나라이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이민왔던 사람들이 세운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언제나 정교분리 원칙을 준수하려고 힘써 왔고 개인의 종교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건국이념인 청교도 정신의 결과가 오늘날 종교다원주의 천국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 내리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5분 안에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살아 움직이는 교과서를 읽을 수 있다. 온갖 인종들이 섞여 있는 이곳에서 별의별 종교인들이 각자의 종교를 활기차게 포교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캅파를 쓴 유대인 랍비, 터번을 두른 이슬람 이만, 샤프론 법의를 입은 남방 스님들, 회색 장삼을 걸친 동양 스님들, 머리를 삭발한 헤어 크리슈나(Hare Krishna) 신자들이 기독교인들과 함께 잘 살아가고 있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인은 모두 다 종교다원주의자이다’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미국사회에서 종교다원주의는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물론 미국인 모두가 종교다원주의를 이론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실천적 의미에서 종교다원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11)

보스톤 대학의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는 미국의 종교다원화 현상을 가리켜 ‘종교시장상황(religious market situation)’이라고 부른다.12) 마치 백화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고르듯 자기 취향대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다른 종교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의 ‘디즈니랜드 현상(Disneyfication)’이라는 더 충격적인 용어를 사용한다.13)

마치 디즈니랜드에 가면 수많은 놀이기구와 캐릭터 인형들이 있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고를 수 있듯이 미국 내 종교들은 철저히 소비자 중심의 산업이 되어간다는 지적이다.

종교다원주의가 당연한 일상의 풍경이 되어버린 나라답게 현재 종교학이 가장 왕성하게 움직이는 곳도 역시 미국이다. 전국의 종교학과가 1,200여 개에 이른다는 말을 들으면 불과 4, 5개 종교학과가 있는 우리 나라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정말 부러운 것은 대학 내의 종교학과 숫자가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미치고 있는 종교학의 영향력이다.

서점마다 가보면 의례 ‘종교’ 코너가 설정되어 있고 놀랍게도 힌두 베다 경전, 불경, 티베트 경전, 이슬람 수피 시집, 유대교 카발라 문서, 주자와 퇴계, 일본 선승의 서간집 등이 번역되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국에서 ‘종교다원주의’를 경험하는 것은 동네 슈퍼마켓 찾는 것만큼이나 손쉬운 일이다.

6. 세 가지 가능성

지금까지 우리는 종교다원주의가 나타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현재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제 종교다원주의 논의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간단히 살펴보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에 앞서 약간의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주의 깊은 독자라면 지금까지 설명해 오는 가운데 ‘종교다원주의’가 종교다원화 현상을 의미하기도 하고 종교다원화 주장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종교다원주의를 논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렵고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이 두 가지를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즉 후기근대사회에 나타난 종교다원화 현상을 인식하는 작업이 그 하나이고 그런 종교적 다원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진작시키자는 주장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가 사회학적 상황분석이라면 후자는 이런 상황에 대한 신학적 대안모색의 성격을 가진다.

이와 같이 사회적 상황인식과 신학적 대응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분명히 구분될 수 있기 때문에 각각 ‘종교다원화 상황(religious plurality)’과 ‘종교다원주의 주장(religious pluralism)’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개념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14) 곧 종교다원화 상황이란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적 삶의 지평에서 진행되고 있는 종교적 다양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이고 종교다원주의 주장이란 이러한 종교적 현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신학을 갱신해야 한다는 일부 기독교 신학자들의 주장을 지시하는 용어이다. 이런 용어의 구분을 통해 종교다원주의 논쟁에 얽힌 많은 혼란을 일단 정리할 수 있으리라고 보여진다.

실제로 종교다원주의 문제에 관해 치열한 논박을 펼치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 진영과 보수주의 신학 진영 모두 똑같이 이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는 인상을 줄 때가 많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종교다원화 상황 인식이 곧바로 자신들의 종교다원주의 주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반면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종교다원주의 주장을 거부하기 위해 아예 종교다원화 상황 그 자체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게 된 오늘날의 상황 그 자체가 어떤 이에게는 무조건 선(善)으로, 다른 이에게는 무조건 악(惡)으로 받아들여지는 단순 논리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종교다원주의 논의가 시작된 지도 어느덧 거의 반세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 동안 치열했던 논의의 성과를 든다면 종교다원화 상황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정립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듯한 인상을 주던 보수주의 신학자들도 종교다원화 상황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실상 최근 들어 종교다원주의 논의에 새로운 변화가 있다면 바로 보수주의 신학자들이 종교다원화 상황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저술을 활발하게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15)

물론 이들은 타종교에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백한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반해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종교다원주의에 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시들해진 느낌이다. 윌프레드 스미스, 존 힉, 폴 니터 등 주요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 이후로 이 문제에 대해 열정적으로 발표하는 학자를 만나기 힘든 것 같다.

흔히 종교다원주의에 관한 입장을 배타주의·포용주의·다원주의 세 가지로 나누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구분은 신학적 기준에 따른 것이므로 여기서는 다른 각도에서 대화·진리·구원의 세 가지 가능성을 구분해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대화 가능성
먼저 세계종교간의 대화 가능성으로서 종교다원주의를 말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서 살펴볼 수 있었듯이 타종교인들과 바로 이웃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상호간의 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나아가 중요한 사실은 이제 전세계가 점점 더 미국과 같은 종교다원화 상황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촌(world village)’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세계는 나날이 하나의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 단일민족국가로 동질성을 자랑하던 우리 사회에도 이미 낯설은 이방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또 반대로 지구 어느 곳에서도 우리 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하여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 바로 대화이다.

처음으로 종교다원주의를 제창하였던 선구자들은 거의 모두 대화 가능성으로서의 종교다원주의를 강조한 바 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아놀드 토인비는 세계종교들의 대화에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지적하였다. 나아가 그는 원자폭탄의 발명이 아니라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이야말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과감한 예언도 남겨 놓았다.

세계종교간의 대화 필요성에 대한 서적 및 기독교와 각 개별 종교와의 대화 가능성에 대한 저서들은 이미 많이 쌓여져 있다.16)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는 윌프레드 스미스를 거론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하버드 대학의 ‘세계종교연구센터(CSWR)’ 소장으로 역임하면서 그는 이 연구소를 세계적인 종교간 대화의 광장으로 이끌었던 공로를 가지고 있다. 이른바 ‘Gods’ Motel’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이 연구소의 정신은 스미스의 표현처럼 “우리 모두가 서로 함께 우리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라고 할 수 있다.17)
대화 가능성으로서의 종교다원주의는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도 대화 자체를 금기시하는 일부 종교들의 과격종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대화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실 대화는 유독 상생(相生)의 필요에 의해 요청되는 것만은 아니다. 존 던이 지적하듯 대화는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마치 여행을 떠나는 진정한 목적이 고향의 의미를 바로 깨닫기 위함이듯이 타종교인과의 대화는 우리 자신을 떠나게 했다가(passing over) 다시 돌아오도록(coming back) 도와준다.18)

2) 진리 가능성
종교다원주의의 두번째 가능성은 진리에 관한 것이다. 근대철학과 후기근대철학의 큰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진리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근대철학자들은 가장 확실한 진리, 모든 지식의 기초가 되는 굳건한 진리를 당연시하고 추구하였다. 따라서 진리는 언제나 대문자로 표현되는 유일한 진리(The Truth)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진리에 대한 거창한 기대감이 거대한 환상이었다고 단언한다. 이른바 ‘거대담론’을 거부하고 ‘반기초주의’를 역설하는 이들에게 진리는 복수형, 소문자로 표현되는 진리들(truths)로서만 가능할 뿐이다.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이 말하는 새로운 진리관은 종교다원주의의 중요한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전통적으로 각 종교는 진리에 대한 최고의 가르침을 제공한다고 생각되어져 왔다. 그리고 진리는 당연히 유일한 것이라고 간주하였기에 오직 자신의 종교만이 그 진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확신하여 왔다. 그러나 만약 진리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이라면 진리는 독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어느 한 종교의 가르침이 유독 진리라고 말하기보다는 여러 종교들이 다양한 진리들에 대한 가르침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후기근대와 종교학의 관련성을 잠시 언급한 바 있는데 이제 이러한 포스트모던적 진리관에 대한 좋은 예를 제공하는 학문이 곧 종교학이다. 종교학자들은 세계 여러 종교들이 간직해 왔던 많은 ‘진리들’을 열심히 연구해서 발표해 주고 있다. 힌두교의 논리학, 불교의 심리철학, 기독교의 종교철학, 도교의 양생학, 이슬람의 신비철학, 유교의 윤리학 등 세계종교들은 수많은 진리들을 간직하고 있다. 종교학자의 임무는 진리창고를 열심히 뒤져서 숨겨진 진실의 보물들을 세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이다.

현재 진리 가능성으로서의 종교다원주의에 공감하는 기독교 신학자들이 꾸준히 늘어가고 있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종교학이 신학의 적이 아니라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 유명한 개신교 신학자였던 폴 틸리히가 그 좋은 예가 된다. 말년에 일본을 방문하여 문화충격을 받은 다음 그는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종교학자 머치아 엘리아데와 공동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었다. 그의 결론은 앞으로 기독교 신학자들이 세계종교에 대한 지식이 없이 신학을 계속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었다.19)

20세기 최대의 가톨릭 신학자였던 칼 라너의 경우도 좋은 시사를 준다. 유명한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 개념의 창안자인 라너 신부 역시 세계종교가 제시하는 여러 진실들을 섭렵한 뒤 새로운 신학을 창출할 것을 권장한다. 인간은 무한과 신비 앞에서 겸손하여야 하며 인간에 관한 많은 종교학적 진리들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20)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입장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적어도 심정적인 이유에서라도 진리는 유일하다고 믿기 때문에 선뜻 타종교의 진리 가능성을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복음주의 계열의 신학자들이 포스트모던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종교다원주의의 진리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는 느낌이 있다.21)

3) 구원 가능성
종교다원주의의 마지막 측면은 구원 가능성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종교다원주의 주장의 핵심은 바로 타종교에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보수주의 신학자들은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타종교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못박는다. 이 문제야말로 신학자들간에 가장 치열하고 감정적인 논쟁 주제가 되고 있다.22)

구원 가능성에 관한 논의는 지난 반세기 동안 별반 새롭게 진전된 것이 없다. 그 어느 쪽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팽팽한 평행선을 그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양쪽 모두 고장난 레코드처럼 반복해 왔던 각자의 주장을 중단하고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재고할 필요성이 요청된다.

현재 종교다원주의의 구원에 관한 논쟁을 보면 일반명사로서의 구원과 기독교 고유명사로서의 구원 개념이 혼동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구원’의 외연과 내포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과연 기독교만의 독특한 구원체험은 무엇이며 바로 그러한 독특한 구원체험이 타종교인들에게도 가능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구원이 모든 종교를 통해 가능하다는 말인가? 가령 득도(得道)와 구원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불교인이 득도와 더불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기독교인도 천국과 열반에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가?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그 동안 가장 열띤 논란을 거듭해 왔던 구원 가능성 문제는 가장 빈약한 정보에 의거한 논의를 진행시켜 온 셈이다.23) 바로 이 점에서 앞으로 종교학이 신학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게 된다. 다시 말해 세계종교에 나타난 ‘구원’을 분류하고 분석하는 종교현상학적 작업을 통해 ‘구원의 현상학’을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보는 것이다.

일반명사로서의 구원에 관해 행해진 이런 세밀한 결과를 앞에 놓고 종교지도자들은 보다 책임 있는 교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필요한 구원의 신학은 이러한 종교학적 반성을 통해서만 제대로 정립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오로지 참된 구원의 신학만이 진정한 신학의 구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오직 참 사랑의 종교만이 모든 종교를 사랑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진정한 깨달음의 종교만이 모든 종교를 참으로 깨닫게 할 수 있는 것처럼. ■

배국원
침례신학대, 종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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