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자타 아카데미와의 만남

우리들 중 누군가에게 한국불교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뛰어난 유산을 뽑아보라고 한다면 불자가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 등의 유적을 손쉽게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불교의 세계성을 고민해 본 불자라면 부처님의 차별 없는 정신의 면면을 계승한 ‘비구니 계단’의 존재 또한 내세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 한국불교의 갖은 모습들 중에서 후대인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그런 유산들이 있을까?

이 물음에 여러 생각이 교차할 수 있는 가운데 필자가 여기에 그런 것을 하나 추천해보려 한다. 그것은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세기 한국불교의 주요한 흐름의 하나가 될 ‘사회적 참여불교’라고 부를 만한 한국불교의 행동주의 정신이다. 이것은 곧 현존하는 여래(如來)의 사도들에 관한 얘기이다.

1998년 10월 동국대 예술극장에서 열렸던 정토회(대표 : 유수 스님, 지도법사 : 법륜) 10주년 기념식장에서 당시 인도불교회 회장이었던 ‘프라즈나난다’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도인들은 정토회를 굉장히 사랑합니다. 버려진 땅에서 기적적인 놀랄 만한 일을 했습니다. 거리에 빛을 주었습니다.”

같은 날 신오성 법사(미국불교협회 공동의장)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정토회 10주년에 대한 축사를 해주었다.

“정토회는 금생만은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남을 위해서 살겠다고 스스로 서약한 법우들이 100여 명이 있다고 합니다. (중략) 부처님 한 분이 깨달아서 말없이 많은 중생을 구했고 말없이 많은 사람의 눈을 뜨게 했는데 오늘날 스님을 도와서 남을 돕는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내 일이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일하시는 법우들이 그렇게 많은 걸 보고서 정말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0주년 기념식에 초청된 인사들이 공식석상에서 한 인사말이었으니 언제나 있을 수 있는 형식적인 축사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말속에는 다른 행사의 형식적 코멘트 속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한다’는 말과 ‘보았다’는 말이다.

우리 한국불교가 언제 이렇게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보여졌으며 누군가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았던가? 스스로 중생을 위해 지옥을 찾아가는 그런 살아 있는 불교. 이들은 그것을 보았고 거기에 감동했고 그래서 그대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서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은 연기의 세계관을 단지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만이 아닌 연기법의 긍정적인 발현인 것이다. 그 연기법의 실현처, 인도의 ‘수자타 아카데미’를 찾아 필자는 잠시 동안 독자들의 가이드가 되보고자 한다.

2. 인도와의 첫 만남

‘캘커타(Calcutta)!, 세계 최악의 주거환경’이라는 불명예와 ‘기쁨의 도시(City of joy)’라는 찬사를 동시에 받는 곳, 이 인도 동부의 최대 도시이자 동아시아에서 인도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 한 까마귀와 거지들의 천국 ‘캘커타’. 이곳이 우리 JTS 자원봉사자들에게 인도가 자신을 처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고 인도와 JTS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필자는 작년 8월, 〈중앙일보〉 산하 ‘세계청년봉사단(KOPION)’의 해외파견 자원봉사단원으로 선발되어 6개월 예정의 오지 자원봉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세계 각지 20여 군데의 NGO 단체 중 필자가 선택한 ‘JTS (Join Together Society)’는 ‘고타마 싯타르타(Gautama Siddhartha)’가 깨달음을 얻기 전 고행했던 전정각산(前正覺山) 아래에서 천민 구호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의 민간 해외원조단체였다. 필자는 KOPION을 통해 같이 파견된 3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비하르(Bihar) 주 둥게스와리(Dhungeshwari)의 JTS 사업장 ‘수자타 아카데미(Sujata Academy)’로 가기 전에 캘커타에서 1주일간의 오리엔테이션을 받게 되었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비현실적인 모순 공간 ‘인도’를 처음 이해하기에 캘커타는 인도 초짜들에게 적당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991년의 캘커타, 현 JTS 이사장인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法輪) 스님은 성지순례차 인도를 들렸다가 캘커타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다. 법륜 스님은 당시 우연히 스쳐가게 되었던 한 가난한 모녀에 대해 마음의 빚을 지게 되었고, 그 도와주지 못한 미안함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가난한 이들을 구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국제 구호단체의 설립을 시도하게 된다.1) 캘커타에서 이룬 인도와의 첫 만남과 빈민 구제에 대한 발원한 지 2년 후인 1993년 8월, 다시 캘커타로 돌아온 법륜 스님은 캘커타 근교 보탈라(Botalla) 지역에서 메디컬 캠프를 열게 되었고, 주 3회 가난한 사람들과 무료진료를 통해 지역의 빈민 5,000여 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었다. 당시 인도와 인도 사람들의 어려움을 바라보던 법륜 스님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에 대한 법륜 스님의 다음의 소감은 인도의 가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수 있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데 인도 전체를 여행하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학교도 못가고 영양실조 상태에서 거지가 되어 떠도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들에 대해서 조그마한 일이라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사회운동이라는 것은 정치가 바뀌고 경제가 좋아져야 된다는 이런 생각을 하였는데, 그런 생각만 하여서는 이 아이들을 다 놓치겠다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한 사람이라도 우선 먼저 도와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KBS2 정범구의 세상읽기〉 1999년 4월 18일 방영분 中

3. 부처님의 고행지로

그런 캘커타를 뒤로 하고 91년의 스님이나 2001년의 필자는 지금의 JTS 사업장 ‘둥게스와리’로 향한다. 캘커타 하우라(Howrah) 역에서 시궁창 냄새 나는 인도 기차를 타고서 8시간, 새벽 5시녘에 떨어진 곳은 ‘가야(Gaya)’역이었다. 석존의 성도지 ‘보드가야(Bodhgaya)’로부터 북쪽으로 13km지점에 떨어진 이 도시는 매년 30만의 순례객들이 찾아와 조상에게 공양을 올리는 힌두교의 7대 성지 중 하나이다. 기차역에서 빠져나와 지저분한 사람들과 너저분한 소, 오물 투성이의 시가지를 벗어나면 한적한 농촌길로 들어설 수 있다. 간간히 낮은 산 몇 개만 보일 뿐 지평선이 보일 만큼 널다란 평야 길을 달리다 보면 ‘농촌 풍경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구나’ 하고 첫 인상을 정리하게 된다. 차는 어느 덧 샛길로 빠져 저 멀리 보이는 황막한 산을 향해 깊게 깊게 들어가고,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을 서늘하게 하는 칼산의 연봉 아래 들어서 우리는 온통 붉은 황토길을 따라 수십 분, 드디어 황량하기 그지 없는 이 빈촌에서 꿈같이 서 있는 분홍색의 아담한 수자타 아카데미 건물을 만나게 된다.

수자타 아카데미 건물은 전정각산 중턱에 자리잡은 석존의 고행지 ‘유영굴(留影窟)’의 바로 밑에 위치해 있다. 둥게스와리 지역은 석존 당대에는 ‘시타림(屍陀林)’이라고 알려진 공동묘지였다. 근처 마을에 사는 천민들은 화장할 만한 여력이 없었기에 시체를 그대로 시타림에 내다버리곤 했다. 경전에 따르면 라즈길(Rajgir)에서 도반인 다섯 비구와 같이 가야에 이른 싯타르타는 인적이 드물고 황량한 이곳을 보시고 수행하기에 좋은 곳이라 생각하시며 고행지로 정하셨다고 한다. 현재도 이 지역은 천민들의 집단거주지로 문명의 혜택이 들어오지 않는 의도적으로 소외된 오지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인도 카스트(Caste) 제도에서 카스트의 일부분으로도 취급받지 못하는 카스트 제도 바깥의 카스트, 곧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할 만큼 미천하여 접촉하기만 해도 부정을 탄다고 믿어지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2)들이다. 불가촉천민들의 역사는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둥게스와리 천민들의 경우 이들 삶의 기록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으니 이들에겐 역사를 남길 만한 권한도 없었던 것이다. 법륜 스님이 처음 둥게스와리 지역을 보았을 때의 감상을 우리는 지금 같이 볼 수 있다.

인도에 처음 갔을 때 전정각산 밑에서 유영굴까지 올라오는데, 아이들이 썩어서 피고름 나는 다리를 그대로 내놓고 돈 달라고 빽빽하게 줄을 서서 앉아 있었다. 하루종일 땡볕 속에서 동전을 받아봐야 일이십 파이샤(인도의 최소 화폐 단위) 짜리 동전 몇 닢이 전부이다. 구걸하는 사람이 많으니 (순례객들이) 다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종일 구걸해 봐야 여자는 1∼3루피 번다. 그래도 우리 돈으로 백 원 정도는 벌 수 있으니 그들에게는 큰 재산이다. 가을, 겨울이 되어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병자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눈살이 찌푸려진다.― JTS 홈페이지, 활동 초기 기록 〈비스켓 한 개, 눈물 한 바가지〉에서 인용

남북으로 S자 모양으로 길게 뻗어 있는 둥게스와리 힐을 중심으로 16개 마을 1,500가구 1만여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의 대다수가 품팔이, 채석, 소작 등의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텃밭에서 채소 농사 등을 더러 짓기도 하나 농업용수가 부족하여 경제성 있는 작물을 생산하지는 못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신의 수입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으며 대략적인 추정에 따르면 이 지역 한 가구의 하루 생활비가 미화 1달러 미만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론 고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데다 수입이 저조하여 소득을 축적할 만한 구조도 없다.

4. 수자타 아카데미의 시작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있었던 자그만 사건을 되돌아 보자. 누구도 경험해보지 않은 극심한 고행을 하고 나서 몸이 쇠약해진 싯타르타는 전정각산을 내려온다. 지친 몸을 이끌고 네란자라(Niranjana) 강가에 와서 몸을 씻은 싯타르타는 강을 건너기 시작한다.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강물에 떠밀리다 강가에 쓰러진 싯타르타. 그에게 마을 촌장의 딸 ‘수자타(Sujata)’가 다가와 유미죽을 발우에 담아 이 미래의 붓다에게 바치며 기원한다.

“이 우유죽을 받아드시고 반드시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이루소서!”

부처님을 열반에 들게 한 ‘춘다’의 공양과 함께 이 수자타의 공양은 부처님 일생에 가장 중요한 두 번의 공양 중 첫번째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련의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둥게스와리에 JTS가 만든 학교 이름도 ‘수자타 아카데미(Sujata Academy)’이다. ‘수자타 아카데미’라는 이름 속에는 수자타가 석존께 공양하여 진리법을 지켰듯이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우리가 그들을 공양한다는 뜻이 있는 것이다.

1994년 1월, 법륜 스님 일행은 본격적인 개발구호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석존께서 전도기의 태반을 보내셨으면서도 현재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비하르 주를 둘러보게 되었다. 스님 일행은 당시까지 한국 사람들에게는 어디 있는지조차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전정각산까지 찾게 되었고, 둥게스와리를 처음 방문한 스님 일행을 맞은 것은 불교성지라기보다는 거대한 가난의 소굴이었다. 가난한 자 중의 가장 가난한 자들이라 불릴 만한 이들에게서 의식주, 교육, 보건 어느 하나 인간적인 삶의 구석이 찾아질 수가 없었다.3)
가지고 갔던 옷 50박스를 끌러 놓고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을 모아다 의논을 한다.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는가?’ 이렇게 시작된 JTS의 둥게스와리 개발구호사업은 학교를 짓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해 2월, 마을 사람들이 학교 부지로 10카타(약 450평)를 기증했고 학교 건물 신축공사에 들어갔다. 학교를 짓는 동시에 인도인 자원봉사자 청년들을 지도교사로 하여 120여 명의 마을 아이들을 모아다 노천에서 수업도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JTS의 인도 사업은 수자타 아카데미를 통해 시작되기 시작했다

5. 수자타 아카데미의 현재

둥게스와리의 여느 아침 길도 파란 반바지나 치마에 하얀 셔츠나 블라우스를 입은 학교 가는 동네 아이들이 채운다. “나마스떼, 브라더!”라고 꼭 찝어서 돌아가며 인사해대는 아이들과 마주치느라면 필자도 입이 지쳐올 때까지 연신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받아주어야 한다. 인도 JTS 사업장의 아침을 이렇게 밝게 밝히는 수자타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이 곳에서 일하는 자원활동가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인도 JTS 사업은 국내에서는 ‘수자타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4) JTS의 개발구호사업이 앞서 보았던 것처럼 수자타 아카데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상징과 역사성으로 인해 학교 외에 병원, 마을 개발 등의 여러 큰 사업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현지의 개발구호사업을 통틀어서 ‘JTS’라는 이름보다는 ‘수자타 아카데미’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뇌리에 더 잘 각인되어 있다.

인도 JTS는 1학년부터 10학년까지 운영되는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기관 ‘수자타 아카데미’ 외에 지역 내 질병 퇴치를 위한 ‘지바카 병원’, 그리고 전정각산 주위 16개 마을에 대한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마을개발센터’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수자타 아카데미는 우리 나라로 치면 초중등학교 과정을 개설한 것으로 일체의 학생들에게 학비를 면제해 주며 점심 급식을 무료로 실시하는 한편 학업에 필요한 일체의 문구류를 지원하는 JTS 개발구호사업의 출발점이었다. 학교의 커리큘럼은 다른 인도 학교 교과과정에 준하여 힌디, 영어, 수학, 과학, 상식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 수자타 아카데미만이 제공하는 커리큘럼으로 한국인 자원활동가들이 진행하는 문화, 체육활동과 인도인 사범이 가르치는 태권도 수업, 상급생들에게 전해지는 한국어 수업 등이 있다. 수자타 아카데미는 2002년 5월 현재 총 220명의 학생들을 9명의 인도인 자원봉사 교사들이 가르치고 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는 이 외에 네 곳의 직영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수자타 아카데미 초기에 학생들이 집에서 돌보아야 할 동생들마저 학교에 데리고 나옴으로써 이 아이들을 따로 보육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게 된 것이 직영 유치원 사업의 출발이었다. JTS 마을개발팀이 마을에서 선발된 자원활동교사로 운영하는 마을 유치원들과 달리 수자타 직영 유치원들은 둥게스와리 지역에서 가장 가난하다고 생각되는 수자타 아카데미 근처 마을들에 설치되어 있으며 수자타 아카데미의 상급생들이 자신들 무료교육에 대하여 자원봉사로써 매일 오전 직영 유치원에 가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직영 유치원 네 곳은 총 368명의 학생들을 17명의 자원봉사 상급생들이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 수자타 아카데미는 과외활동과 문화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 시험을 위한 공부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지에서도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는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풍조가 있고 우리 나라만큼 학교교육이 시험 위주로 돌아가는 면이 없지 않아 애초의 ‘문맹 퇴치’의 목적을 원활히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교육 내용의 질적 제고에 경주하게 된 것이다. 작년 후반기부터 문화활동을 위한 전문 자원봉사자가 파견되어 유치원 교사들과 상급생들을 교육시켰으며, 그 동안 문화활동의 결과들을 공연으로 구성하여 지난 1월 초 정토회 성지순례단이 방문했을 때 개최되었던 ‘수자타 아카데미 개교 8주년 기념식’이나 1월 말의 ‘리퍼블릭 데이(인도 공화국 선포일)’의 기념행사 그리고 석가탄신일(인도 사월 보름) ‘보드가야’에서의 문화공연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대중의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었다.

이 외에 수자타 아카데미에서는 작년 말부터 태권도 반이 운영되고 있는데 초기에 한국인 자원봉사자 중 유단자가 있어 과외활동으로 작게 시작했던 것이 현지 학생들의 호응이 크고 한국-인도 문화 교류 차원에서도 유의미하다고 판단되어 본격적으로 수업을 개설, 현재는 가야시내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인도인 사범을 초빙하여 역시 자원봉사로 아이들을 지도하게끔 하고 있다.

수자타 아카데미는 이 외에도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바 최근에 가장 우선적으로 기획되고 있는 것은 도서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대학교가 아니고서는 도서관을 찾아볼 수 없는 이 지역의 교육환경에서 학교 내에 도서관과 장서를 구비하는 계획은 수자타의 차별화된 교육을 보여주려는 의지이다. 학교 내 건물 중 일부를 이미 도서관 공간으로 확보했으며 장서 1,000여 권을 확보하기 위해 델리 등지로 조사작업을 나가는 등 도서관 체계를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둥게스와리 지역도 여느 빈민촌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이 가사 노동의 잡다한 일들을 맡아 하고 있는 현실이어서 집에서 밤에 공부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열이 전무하다시피 하던 이 지역에 도서관을 설치하는 것 또한 아동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확보하려는 인도 JTS의 세심한 배려이다.

6. 지바카 병원5)

목요일 오전, 인도 JTS의 지바카(Jivaks) 병원은 오전부터 몰려드는 환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요일을 제외한 평일에 매일 무료진료를 하고 있지만 목요일에 환자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목요일만 되면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접수대에 병원 스탭들이 모두 달라붙어야 한다. 목요일은 다른 날과 달리 의사 두 명이 같이 오는데 그 둘은 부부로 이 중 여의사는 지바카의 자원봉사 의사 중 유일한 여의사이기도 하다. 남자 의사들에게 선뜻 아픈 곳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곳 여성들의 관습 때문에 이 날 유난히 많은 부녀환자들이 찾아온다.

이렇게 인도 JTS의 사업 중 현지 주민들과 가장 폭넓게 접촉하고 있는 분야는 ‘지바카 병원’이다. JTS의 최대 사업권은 둥게스와리 주변 16개 마을인데 비해 현재 지바카 병원을 찾고 있는 환자들은 주위 80여 개 마을 이상이다. 작년 한 해의 진료기록들을 정리해 보니 290여 일 진료 일수에 15,688회의 진료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하루에 50여 명의 환자들이 찾는 셈인데 먼 마을의 사람들이라면 의료시설이 전무했던 둥게스와리 지역이 아니고서야 자그마한 동네의원 정도는 마을마다 하나씩 있게 마련인데 단지 무료병원이라는 이유로 좀 멀더라도 지바카까지 무리해서 오고 있는 것이다. 동네마다 날을 잡았는지 같은 마을 아픈 사람들끼리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도 이들에게는 의료비 지출을 생계비에서 따로 빼놓을 만한 여유가 없는 듯하다.

지바카 병원이 설립되게 된 계기는 1995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는 특별한 의료시설이 없이 간단한 상비약을 갖춘 수자타 아카데미 양호실만이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1995년 우기(雨期)가 닥쳐오면서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기 넉 달 사이에 1년 내릴 비의 80% 이상을 쏟아내는 열대 몬순 기후의 덕택으로 둥게스와리도 우기만 되면 우물이 넘치고 마을 곳곳이 침수된다. 그 덕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물고기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수자타 아카데미 바로 앞 마을인 ‘두르가푸르(Durgapur)’에서 그 물고기들을 잡아다 마을 사람들이 같이 먹었던 것이다. 수인성 전염병인 콜레라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급격하게 퍼져갔고 가진 것 없고 치료받을 동네의원 하나 없던 이곳에서 사람들이 갈데라고는 그저 수자타 아카데미밖에 없었다.

수자타 아카데미를 임시 휴교 조치하고 학교를 임시 병원으로 이용하면서 수자타 아카데미 부설 지바카 진료소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때부터 마을 보건을 책임질 메디컬 센터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정식으로 병원이 문을 열게 되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1년 1월, 지바카 병원은 학교 건물을 임시로 빌려 쓰던 신세를 벗어나 독립적인 병원 건물을 갖게 되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을 받아 짓게 된 현재의 지바카 병원 건물은 1층의 진료실, 조제실을 비롯 입원실과 방사선 촬영시설까지 갖추고 2층은 다목적 홀로 95년의 콜레라와 같이 급성 전염병에 대비하여 많은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게 넓직한 공간을 미리 조성해 두었다. 지바카 병원은 비하르 주에서도 큰 규모에 속하는 의료전문시설로 만들어져 개관식 때에는 비하르 주의 수상을 비롯 15,000여 명의 축하객들이 내방하는 성황을 이루기도 하였다.

지바카 병원의 일반 진료사업 외에 특별사업으로 ‘결핵퇴치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3종 법정 전염병에 속하여 국가에서 전적으로 관리하는 결핵이나, 인도는 세계 결핵 부담의 1/4을 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결핵 문제가 심각하고 그 관리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그 흔한 전기, 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이 소외 지역에 천민들의 건강을 위해 과감하게 돈이 투자되었을 리 없다. 행정력이 존재하지 않는 이 지역이므로 결핵 관리 또한 지바카의 자체 능력으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1인당 완치비용(6개월 치료)이 우리 돈 15만 원에 불과하지만 공사장 하루 일당이 1,300원 정도인 이곳 실정을 감안할 때 둥게스와리의 사람들에게 결핵은 사형선고와 다름없다. 현재 지바카 병원은 인도 JTS 이사 중 양의학을 전공한 의사 한 분이 자원봉사로 환자들을 진단하고 병원 스탭들이 환자 관리를 맡고 ‘대한결핵협회’가 스탭 교육과 프로그램 자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바카 병원은 이외에도 특별사업으로 마을개발팀과 합동으로 마을을 순회하며 ‘메디컬 캠프’를 열고 있다. 의사를 대동하고 각 마을 유치원을 돌며 유치원 학생들과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해오고 있다. 이 메디컬 캠프의 범위는 단지 JTS 개발권 마을에만 국한되지는 않고 비상사태 때에는 긴급구조단으로 화하여 구호 캠프를 열기도 한다. 작년 1월의 구자라트(Gujarat) 주에서 발생했던 대형 강진 때에 마을개발팀의 교사들에 지바카의 의사들이 합세하여 현장에 긴급구호단이 파견되었던 게 대표적인 경우이다.

7. 마을개발사업

수자타의 주요 사업 가운데 가장 근래에 시작된 것은 ‘마을개발사업’이다. 처음에는 수자타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주위의 자립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4개 마을에 수자타의 직영유치원을 세웠고, 유치원 주위에 비위생적인 우물을 대신하는 핸드펌프를 설치하고 국제워크캠프 기간에 화장실을 신축하여 보건위생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는 등 우회적인 마을개발사업을 하였었다. 이후 수자타 아카데미의 교장이었던 슈레스 찬드라 붓다(34) 씨가 다른 단체의 마을개발사업을 견학하고 나서 둥게스와리 주변 마을에 그를 모델로 한 마을개발사업을 조직하기 시작한 게 JTS 마을개발사업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JTS 마을개발사업의 모델은 스리랑카의 아리야라트네(A.T.Ariyaratne) 박사6)가 주도하는 ‘사르보다야 슈라마다나(Sarvodaya Shramadana Movement) 운동’7)이다. 사르보다야 운동은 스리랑카의 학생농촌계몽에서 시작되어 ‘지속 가능한 개발’, ‘환경 친화성’, ‘공조체계망 조성’ 등과 같은 원칙에 기반을 두고 비영리, 무종파, 비정치적인 입장에서 개인, 사회, 국가, 그리고 지구촌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개발모델을 체계화시키고 있는 대안적 사회개발운동이다. 이 운동의 창시자였던 아리야라트네 박사는 ‘한국 JTS’의 초청으로 1996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이때를 계기로 JTS 실무자들이 스리랑카 현지로 파견되어 마을개발사업 현장을 견학했고, 97년 9월에는 사르보다야의 마을개발 지도자들이 인도 둥게스와리를 직접 방문하여 현지 실태를 조사하고 마을개발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자문해 주었다.

JTS 마을개발사업의 핵심은 마을 유치원과 그를 뒷받침하는 부녀회 조직이다. 현재 24명의 교사들이 둥게스와리 주변 9개 마을, 9개 유치원에서 총 607명(2002년 5월 현재)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마을 유치원 선생님들은 현지 주민들 중에서 선발되어 교육받은 사람들이고, JTS는 남인도 마드라스에서 행해지고 있는 인도 사르보다야 운동지에 마을 리더들을 파견하여 교육받게 하는 등 인적 자원 개발에 우선적으로 투자하였다. 마을 유치원의 설립은 JTS의 지원 하에 이루어지나 유치원의 운영은 유치원 학부모들로 이루어진 부녀회에서 매월 일정한 회비를 내어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더불어 수자타 아카데미에서는 부녀회의 재정적인 자립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기술교육의 일환으로 매주 재봉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전체 부녀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수자타 아카데미에 모여 한 달 동안의 성과를 공유하고 마을 공동 현안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을 갖는다.

한편 각 마을별로는 부녀자들의 문맹을 퇴치하기 위한 힌디 문자 교실이 열리고 있으며 우리 나라의 두레에 해당하는 마을 쉬람단(Shramdan)을 부녀회와 청년회가 주기적으로 조직하여 유치원 건물의 신축, 증설이나 우물, 도로 정비 등 마을에서 필요로 하는 공동작업들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각 마을별로 보건전담요원을 지정하여 지바카 병원에서 교육을 받게 하고 마을 유치원마다 구급상자를 비치하여 초기 치료가 필요한 외상환자나 응급상황에 대비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마을개발사업은 JTS 인도 사업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개발사업이라는 것 자체가 어느 지역에서 행해지든지 간에 지원단체는 개발의 여건과 계몽의 조건, 발전의 동기부여를 하고 실상 개발의 주체는 마을 사람들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게 기본이다. 기존의 경제력 중심의 개발전략들은 마을 구성원들의 경쟁과 이윤동기를 자극함으로써 효과를 증대시켜 왔는데, 이에 반하여 JTS 마을개발사업이 추구하는 것은 기존의 소득증대나 주거환경 개선 등 경제개발 전략에서 탈피하여 스리랑카의 사르보다야가 추구했던 개개인의 정신적 각성과 그들의 집합체인 공동체 의식의 제고, 최종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무한 소비주의를 배격하는 검소한 삶의 양식을 지키고자 하는 사회개발운동의 한 형태이다.

개인의 이윤동기를 자극해야 하면서도 그에 제약을 가할 수도 있는 영적 깨달음의 문제를 근본 전제로 깔고 있는 이러한 지향점은 그 기본적 성격만으로도 한국식의 단기 성장전략과는 그 틀을 달리할 수밖에 없을 뿐더러, 가장 가난한 이들의 집합체인 인도 천민 마을에서 행하고 있다는 데에서 그 어려운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JTS의 마을개발전략이 둥게스와리에 관철되기 위해서는 JTS가 추구하려는 이념들이 마을사람들에게 정확하게 그리고 그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만큼 감동적으로 전달되야 한다는 핵심적인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 ‘행동’의 영역으로까지 참여해줄 수 있는 정신적인 각성이 필요하다.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이러한 일들은 현재도 둥게스와리 현지에서 물질적인 생존이 절박한 이들에게 한국인들의 ‘자원봉사’라는 개념이 이해되기 힘든 것만큼 어렵고 힘든 과제들이다.

현재까지도 인도 JTS에서의 사업 우선 순위는 ‘수자타 아카데미’나 ‘지바카 병원’이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마을개발사업의 성패가 곧 인도 JTS 사업이 현지에 성공적으로 뿌리 내렸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것이다.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후원자들의 끊임없는 지지로도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나 자립의 의지와 삶의 질적 향상에 대한 관심, 인간적인 권리들의 각성 등은 헌신이나 지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결코 쉽지 않은 ‘희망’을 짓는 일이기 때문이다.

8. JTS를 움직이는 힘, 볼런티어

해외 자원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면서 누구나 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뜻있는 지원자들이 노력만 한다면 활동의 기회를 많이 제공받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지에서 현지인들과 같이 지내야 하는 문화적, 심리적 부담감이 크며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통하여 현지인들이 실제적인 효과도 얻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어 자원봉사자들의 의지만큼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원봉사에의 지원 열기는 계속되고 있고, JTS는 국내의 그러한 해외 자원봉사에 대한 요청을 수용하고 있는 대표적 기구이기도 한다.

인도 JTS 지바카 병원에서 근무하는 안영민(31) 씨는 국내에서 성공회대 대학원 시민사회단체학과의 학생이었다. 대학원 교과과정 중에 ‘해외연수학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자신이 원하는 해외 NGO에서 일하면 그 학기 동안의 이수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안씨는 1년 기간을 휴학하고 JTS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해외연수학기를 보내고 있으며 평소 관심 있는 ‘국제연대’에 대한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다. JTS 기술중학교 교사 신축공사에 참가했던 심창섭(31) 씨의 경우는 한국에서 오랜 시간 고시공부를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계를 보기 위해 인도로 온 경우이다.

심씨는 다른 관광객들과 달리 인도의 ‘JTS’나 네팔의 ‘조이하우스’ 같은 한국 자원봉사단체들을 일부러 찾아가 지원하여 일하고 있는 이른바 ‘자원봉사 테마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역시 JTS 기술중학교 교사 신축공사에 참가하면서 현재 공사팀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정상민(24) 씨는 국민대 중어중문학과 학생으로 세계청년봉사단(KOPION)이라는 자원봉사자 파견단체를 통해 들어온 경우이다. 현재 JTS는 매년 9월부터 6개월 예정의 자원봉사자를 세계청년봉사단을 통해 받고 있으며, 정씨는 6개월의 예정 봉사 기간이 끝났음에도 중학교 공사를 마무리짓기 위하여 봉사기간을 연장하였다. 지난 2월말부터 수자타 아카데미로 자원봉사를 온 서원중(40) 씨는 원불교 교무이다. ‘사회불공’이라는 원불교의 참여 정신에 따라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원불교 교무들의 관심은 비교적 큰 편인데, 이들 사이에서도 JTS의 인도사업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서원중 교무는 JTS의 사업을 직접 배우고자 3개월간의 일정으로 수자타 아카데미에 방문했고 현지의 자원활동가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들 자원봉사자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특기할 만한 전문능력이 없다는 것과 모두 JTS나 정토회의 멤버가 아닐 뿐더러 불자는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JTS를 선택한 데에는 한국 해외원조단체들의 주류를 기독교 단체들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기독교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고, JTS는 현지에서 종교활동을 하지 않는 민간구호단체의 성격만을 유지함으로써 비신자들이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현실적으로 많은 무종교의 젊은이들을 수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불교에 대한 호감을 갖도록 하는 포교의 역할까지 부가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JTS는 이외에도 수차례의 집단적인 워크캠프(Work Camp)를 통해 한국의 단기 자원봉사단들을 유치하여 한국 해외자원봉사 사업의 중요한 창구역할을 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국제워크캠프기구(IWO)가 매년 1, 2월에 걸쳐 JTS와의 협조하에 둥게스와리에 상설캠프를 설치하고 있으며, 매년 7월에는 JTS 자체적으로 젊은이들을 모집하여 100여 명 정도의 인원이 2주 정도의 기간을 둥게스와리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계속 늘어나고 있는 워크캠프 요청으로 인해 JTS측은 단기캠프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예정이며 한국에서는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위한 8주 과정의 ‘국제자원봉사학교’를 개설하는 등 사전 작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9. 수자타 아카데미 사람들

오늘의 수자타 아카데미는 JTS의 실무자들의 헌신적인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둥게스와리를 헌신적으로 지키고 있는 이 실무자들은 또한 전원 자원활동가들이기도 하다. JTS의 모단체인 정토회는 1993년부터 1만일 결사를 시작하였으며 실무자들은 대략 3년의 기간에 해당하는 1,000일간을 단체 내에서의 일정한 자신의 소임을 갖게 된다.

인도 JTS의 실무자들도 역시 새로 소임을 맡게 되는 1,000일의 기간 동안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생활하게 된다. 2,000일 이상을 인도에서 근무했던 선주 법사(34, 이덕아)나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활동했던 슈레스(34), 금년 1월에 동료들을 보호하다 운명을 달리한 설성봉(46) 거사 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주목받을 만하다. 여기서는 짧게 두 명의 수자타 아카데미 사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인도 JTS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우선 인도 JTS를 만든 장본인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JTS를 만든 사람은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으로 이미 교계에도 잘 알려져 있다. JTS의 탄생 자체가 91년에 있었던 법륜 스님의 인도 성지순례가 계기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고, 금년 초의 정토회 총회를 통해 법륜 스님은 정토회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JTS의 인도사업을 총괄하는 책임자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업 초기 아무것도 없던 시절 둥게스와리의 천민마을에 들어가 그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일하며 구호사업을 시작했던 스님의 행적을 보았을때 JTS의 가장 큰 공헌자는 법륜 스님이 될 듯 하다. 여전히 국내와 미주, 유럽의 순회법회와 수행 상담으로 바쁜 중에도 인도 사업을 꼼꼼히 챙기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새삼 이곳에 대한 스님의 애정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법륜 스님은 실제 사업을 챙기는 일 외에도 현지 실무자들에게는 사실상의 정신적 지도자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편한 조건들을 버리고 기꺼이 행자가 되기를 서원한 이곳 실무자들에게조차 끊임없는 부침으로 다가오는 인도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어서 수많은 포기의 유혹과 현실과의 타협이 다가오는 곳이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법륜 스님의 존재는 확실히 그들이 기댈 만한 의지처가 되고 있다. 수자타 아카데미의 생명력은 이러한 헌신적인 실무자들과 그들을 뒷받침하는 정신적 스승의 관계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JTS는 해외사업인 만큼 내국인만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JTS 인도법인의 구성에서부터 인도인 이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현재까지 8년 사업의 전반기는 많은 부분 인도 현지인들이 담당해왔다. 마을 유치원 교사에서 시작하여 현재 수자타 아카데미의 교장을 맡고 있는 쁘리앙카 꾸마리(31) 역시 인도 JTS의 중요한 공로자이다. 쁘리앙카에게서 특기할 만한 점은, 수자타 아카데미의 일이 현지인들이 절대 접촉을 꺼리는 불가촉천민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녀 자신은 인도 최고 계급인 ‘브라만’의 신분이면서 이 사업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몸으로 그리고 상위 카스트의 신분으로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사람의 의지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많은 제약을 인도 사회는 그녀에게 주고 있다. 같은 계급과 가족 안에서 쁘리앙카의 활동은 이해되기가 힘들었고 방해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 또한 처절했으니 그 수난사(受難史) 하나만으로도 또 하나의 이야기 거리가 될 만하다. 허리띠로 후려치면서 학교에 나가는 걸 막았던 자신의 오빠나 교장이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학생들 앞에서 다른 남자 교사에게서 모욕을 당해야 했던 일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있었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이유 자체가 그녀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되었고 또한 계속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기도 하다.8)

그녀의 삶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JTS의 자원봉사자들로서는 쁘리앙카가 밖으로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또 한 명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그녀는 그만큼 우리에게 신뢰받는 동료이다.

10. 수자타 아카데미의 이념과 비전

수자타 아카데미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형식적인 문구야 JTS의 홍보 리플렛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그것뿐일까?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진 문구를 음미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 와서 직접 겪어보는 현실, 그리고 현장에서 봄으로써 다시 나름대로 재구성하게 되는 비전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수자타 아카데미의 비전을 보고자 했을 때 이곳이 단지 법륜 스님이나 JTS의 것이라면 홍보문안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름없는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에 헌신했으며 아직도 수많은 기대가 이곳에 있고 앞으로도 이름없이 봉사할 헌신자들이 있기에 수자타 아카데미가 이루고자 하는 것과 이루어야 하는 것, 그리고 이루게 될 것은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고민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질서의 비전이다. 단순히 길을 닦고, 건물을 세우고, 무료급식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살이에 대한 총체적 전망을 내오는 것이다. 자연과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는 형태, 여성과 아동을 착취하는 형태, 가난을 증대시키는 형태, 경제 불균형, 환경의 오염, 그리고 지역사회를 심리적 경제적으로 피폐케 하는 모든 형태의 생산방식에 반대하며 빈곤 없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 나눔과 평등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 ― 《나와 우리》 98년 여름 창간호 〈길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수자타 아카데미의 실무자가 무언가 거창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어떤 이는 위 글처럼 수자타 아카데미의 활동 속에서 자신들이 발견해낸 의미와 비전을 진술하곤 한다. 수자타 아카데미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이, 그것도 천민 마을로 들어왔다는 것이, 모두 자원봉사자로만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리고 행동 속에 진정한 애정이 보여짐으로써 말해지지 않아도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되는 비전들은 앞으로 수자타 아카데미가 지켜줘야 할 비전이기도 하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JTS가 시작된 것은 극히 단순한 이유에서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그것 하나뿐입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참으로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JTS 홈페이지에서

JTS의 얘기는 너무나 간단하다. 너무 간단하고 너무 진솔해서 오히려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곧 실무자들에게는 엄격한 지침이 요구되기도 한다.

이것은 단순히 어려우니까 도와주자는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자신의 주위를 새롭게 한 번 돌아보고, 또 이를 통해 수행이란 과연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하는 것일까 하는 문제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JTS 홈페이지에서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 정토회가 추구하는 ‘일과 수행의 통일’9)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장으로서의 ‘볼런티어’ 활동10) 그리고 그를 통해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대안모델의 창출11)이라는 독특한 JTS 존재방식이다. JTS가 바라보는 바는 다음과 같다. 현재 추진중인 수자타 아카데미는 인도사업의 중심지이며 아시아 개발구호사업의 본부로서 지도자 육성 및 교육의 중심지로 나아갈 것이고 그 첫번째로 인도 내 불교 8대 성지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바이샬리(Vaisali)’에 ‘암라팔리 여학교’를 세우고 ‘사르나트(Sarnath)’에 ‘야사 고아원’을 세우고 ‘쿠시나가라(Kushinagara)’에 ‘춘다 병원’을 세우고 ‘샹카시아(Sankasya)’에 ‘마야 양로원’을 세우는 등 각 성지의 특징에 맞는 독특한 아이템을 설정하고 수자타 아카데미를 통해 출가자적인 수행력을 갖춘 볼론티어 요원들과 그들이 축적한 노하우, 그리고 운영모델을 적용하여 사업권을 확장해 나갈 것이다.

인도 JTS가 이루려고 하는 것은 둥게스와리 지역에 대한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개발모델을 정립하여 다른 단체, 다른 지역에서도 실행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JTS는 둥게스와리 하나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도 보편화될 수 있는 개발모형을 끌어내고, 이후 JTS가 기획하는 인도 8대 성지사업 외에도 미얀마, 방글라데시 같은 기타 3세계에서의 사업에 실제 적용하며, 한국불교계의 후발단체들에게도 벤치마킹할 수 있는 개발모형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JTS가 하는 일이 그렇게 순탄하게만은 진행되지 않는다.
“워낙에 척박하니까요. 그런데 가끔 과연 이게 옳은 방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남의 나라 땅에서. 우리가 하는 이 일은 정말 옳은 일인가. 우리 땅에서 실패하고 남의 나라에 와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건 아닐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을. 자기 나라 정부는 손도 안 대는 이 황량하고 척박한 땅에서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진정 이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일인가. 무엇이 인간과 자연이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인가. 파괴나 일방적 수탈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자연을 바라본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가난은 숙명이고 계급은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난도 계급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는 건 때로 무서운 일이기도 해요.”
인도 JTS의 실무자 한 분이 피력하는 이런 이야기는 수자타 아카데미가 갖는 고민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11. 글을 마치며

수자타 아카데미가 8년을 통해 이루어낸 이곳 천민 마을의 변화는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결코 보이지 않는다. JTS 사업 8년이 지난 지금 오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곳 마을의 사정은 인도 평균에서 보더라도 한참 못나가기 때문이다. 8년 전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또는 인도 내 다른 천민 마을과 JTS가 있는 둥게스와리를 비교한다면 그 모습은 천양지차일 테지만 지금 처음 오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소외되어 있고 외진 이곳의 모습을 보고 변화라는 게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둥게스와리는 가장 악조건을 가진 곳 중의 하나였고 그런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진흙 속의 연꽃마냥 수자타 아카데미가 피어나가기에 그 향기로 연관된 세계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이다.

수자타 아카데미가 아니었다면 전정각산이라는 불교성지는 몇십 년 후 인도 정부가 관광지로 개발하고 나서 2,500여 년 전 석존시대의 한적함을 잃어버린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되었을 것이다. 수자타 아카데미가 아니었다면 그 몇십 년 후 관광지 전정각산에서 만나는 천민들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어딘지 모를 더 척박한 땅으로 쫓겨나지나 않았을까? 아니면 이 땅에 남아 있더라도 여전히 관광객들에게 손 내밀고 구걸하는 그런 모습으로만 남아 있지 않겠는가.

수자타 아카데미는 둥게스와리에 학교와 병원을 짓고 우물과 화장실을 쌓아올렸지만 사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일 뿐 사실은 인간적인 삶이라는 희망을 그들에게 지어준 것이다.

자신들의 지난 시간을 돌아볼 만큼 여유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곳 둥게스와리의 사람들도 JTS와 한국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 인도 사람들의 문화도 문제이겠거니와 고마워할 일도 미안해 할 일도 없었을 만큼 지난 몇 천 년 동안 그들 삶이 각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묻는다.
“수자타 아카데미가 잘 될 것 같은가?”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잘 되게 만들어야 한다.”12)
JOIN TOGETHER SOCIETY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때에 배워야 합니다.

한국에 본부를 둔 국제구호단체 J.T.S(Join Together Society : 국제기아질병문맹퇴치민간기구, 이사장 법륜 스님)의 홍보구호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최저 생존권을 지켜내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인 책임이지만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종, 국가, 민족, 종교, 계급, 성별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이 기본적인 권리들을 위해 JTS는 행동하려 합니다. 당신들의 선의지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전화를 걸어 JTS를 통해 당신들의 의지를 실현하시길 바랍니다.

▶1,000원이면 배고파 쓰러져 가는 어린이 7명에게 한끼의 식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5,000원이면 배우지 못한 어린이 1명에게 1년간 학용품과 교재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10,000원이면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어린이 20명에게 예방접종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따스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 국민은행 814-25- 0020-902 예금주: (사) 한국제이티에스

서울 서초구 서초 3동 1585-16 정토회관 2층 (사) 한국제이티에스
http://www.jts.or.kr/ E-mail : jts@jts.or.kr
Tel : 02 - 587 - 8756 / Fax : 02- 587 - 8998

김동훈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조계종 재무부에서 근무하다가 작년 9월부터 '세계청년 봉사단(KOPION)'의 단원으로 인도 JTS에 파견,지바카 병원에서 결핵퇴치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현재 조계사 대학생회 담당 포교사이며 격월간 <참여불교>의 편집위원과 <현대불교신문>인도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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