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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선도하는 화엄적 기술문명 / 김성철
김성철 (본지 편집위원 동국대 교수)
[23호] 2005년 06월 12일 (일) 김성철 본지 편집위원 동국대 교수

   

김성철
(본지 편집위원 동국대 교수)

'근대화', 또는 '현대화'란 원래 시간과 관계된 말이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이를 공간적, 지리적 개념으로 사용해 왔다. 우리에게 근대화와 현대화는 곧 '서구화'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서구 풍의 복장과 두발만이 현대적인 것이다. 서구적인 건축물만이 곧 현대적인 건축물이다.

현대적 기술은 서구의 기술을 의미한다. 현대의 교육제도나 행정제도 역시 서구의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서구에서 수입된 학문과 이론만을 최첨단의 현대적 지식인 줄 안다. 근대화 이후 10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렇게 서구의 문물과 사회제도를 추종해 왔고 서구의 기술을 수용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이런 우리나라에서 최근 들어 이상한 조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보통신과 생명공학이라는 두 가지 첨단 분야에서 우리의 기술이 세계의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기술의 개발과 실용화가 그것이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이라고 명명했을 정도로 정보통신문명의 대두는 인류의 역사에서 획을 긋는 사건이다.

또 생명공학기술 역시 미래의 산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핵심 기술로 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두 분야에서 '현대적인 것'은 서구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기술에 대해 특히 우리 불교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이 모두가 '한 점 속에 담긴 무한의 정보'를 취급하는 화엄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다.

{화엄경}의 신화에서는 비로자나부처님의 전신(前身)인 대위광(大威光)태자가 무량한 세월 동안 보살행을 쌓은 후 그 공덕의 힘으로 몸을 변화시켜 만들어낸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라고 가르친다. 비로자나부처님의 몸이 그대로 이 세계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비로자나부처님의 털구멍 속에 살고 있다. 화엄신화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곳이 물리적 시공간을 의미하는 기세간(器世間)과, 인간과 축생과 아귀와 천신 등 갖가지 생명체를 의미하는 중생세간(衆生世間), 그리고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르친다.

기세간과 중생세간의 일부는 범인(凡人)의 눈에도 보이는 곳이지만, 이 두 세간들과 오버랩 되어 있는 지정각세간은 깨달은 불보살만이 알 수 있는 화장장엄의 청정 불국토이다. 의상스님은 법성게를 통해 화엄신화에서 가르치는 이러한 지정각세간의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 있고(一中一切), 전체 속에 하나가 들어 있으며(多中一), 하나가 곧 전체요(一卽一切) 전체가 곧 하나이며(多卽一), 티끌만한 공간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있고(一微塵中含十方), 낱낱의 티끌의 경우도 역시 그러하다(一切塵中亦如是) …' 이 세상의 어떤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충만해 있는 불국정토이다. 그리고 이런 성격을 갖는 공간에서 세상과 만나는 우리 역시 아무 부족한 것이 없는 부처님들이란 말이다.

정보통신문화를 뒷받침하는 문명의 이기는 컴퓨터와 핸드폰 등이다. 내 앞에 놓인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나는 전 세계의 모든 컴퓨터와 만날 수 있다. 내 손에 들린 핸드폰을 통해 나는 전 세계의 모든 핸드폰과 교신할 수 있다. 여기에 앉은 나는 누구와도 만날 수 있고,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다. 나의 핸드폰과 컴퓨터가 놓인 작은 공간 속에 온 세계가 모두 들어온다. 정보통신사회는 화엄의 화장장엄세계와 구조를 닮아간다.

우리 눈동자에 뚫린 작은 조리개 구멍으로 온 세상의 모습이 들어오고, 우리 머리의 양 옆에 뚫린 귓구멍으로 온 세상의 소리가 들어오는 것 역시 소리와 빛깔이 편재한다는 화엄의 이치로 인해 가능한 현상이지만, 지금의 정보통신기술이 만들어낸 세계는 이런 외부세계를 우리가 능동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일상적 지각의 세계와 차이가 있다. 정보통신기술은 기세간을 다루는 화엄적 기술이다.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활용과 개발에서 우리가 단연 앞서가고 있다. 인터넷 통신망의 보급과 활용, 핸드폰의 보급과 활용 등만 앞선 것이 아니라, 메모리 칩과 DMB 등 그 기술에서도 이제 우리는 단연 선두에 서 있다.

유전자라고 번역되는 DNA는 생명체의 몸을 이루는 기초단위이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정자가 깨알보다 작은 난자와 결합하면 수정란이 된다. 수정란 속에는 나의 몸 전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들어 있다. '하나의 점에 불과하던 수정란'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다가, 어느 단계가 지나면 피부, 근육, 뼈, 심장, 신경 등 우리 몸을 이루는 갖가지 장기로 분화하게 되고 열 달이 지나면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성장하여 모체의 몸 밖으로 배출된다.

나의 외모에 대한 정보, 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장기들에 대한 정보가 한 점 속에 농축되어 있다가 우리의 몸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나의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을 이루는 정보가 깨알보다 작은 수정란 속의 DNA에 모두 들어있다. 티끌만한 공간 속에 모든 것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이 역시 화엄의 이치와 관계된다. 지금의 나의 이목구비는 모두 티끌만한 한 점의 DNA 속에 들어있던 정보가 만들어낸 것들이다.

이런 DNA를 다루는 기술이 생명공학기술이다. 앞으로 생명공학이 나아갈 방향은 무궁무진하겠지만, '줄기세포'의 의학적 효용이 알려지면서 '질병이나 사고로 손상된 장기'를 치료하고 복원하고 교체하는 기술에 대해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줄기세포란 신경, 혈관, 심근, 뼈, 피부 등 갖가지 장기로 분화 가능한 '기초세포'로 식물의 줄기(Stem)에서 수많은 가지가 나오는 것에 비유하여 줄기세포(Stem cell)라고 명명되었다. 줄기세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성체(成體)줄기세포이고 다른 하나는 배아(胚芽)줄기세포이다.

성체줄기세포는 지금도 우리 몸에서 계속 생산되고 있는데, 질병이나 사고로 손상된 장기가 있을 경우 그것을 아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줄기세포는 손상된 장기가 어떤 종류의 것이든 그것을 이루는 세포로 변신하여 분화할 수 있는 '만능의 치료 세포'이다. 탯줄 속의 혈액인 '제대혈(臍帶血)'이나 혈액 생성기관인 '골수(骨髓)'에 비교적 많다고 한다.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이 분열을 시작한 이후 7일 정도 되었을 때 형성되는 균일한 세포괴(細胞塊)를 가리키는데 생체 밖 시험용기에서 무한배양이 가능하며, 적절한 물리화학적 조건이 주어질 경우 시험용기에서 신경이나, 심장, 간, 피부, 뼈 등 갖가지 장기세포로 분화한다. 배아줄기세포는 성체줄기세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채취하기가 용이하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끈다.

최근 발표된 황우석 교수의 연구 성과가 전 세계 생명공학자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난자의 외피에 체세포 핵을 주입시켜서 이런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불교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에서도 수정란을 생명의 시작으로 간주하는데, 수정되기 이전의 난자를 사용하는 황우석 교수의 이번 기술은 윤리적인 면에서 기존의 기술보다 한 층 향상된 기술이다. 또 이렇게 해서 만들어 낸 '유사 수정란'에는 태반을 이루는 부분 이 없기에 자궁에 착상되지도 않고 성체로 자라날 수도 없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일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한다.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 이 가운데 십팔계 이론에서는, 지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등의 육근(六根)이 지각대상인 색(色), 성(聲), 향(香), 미(味) 등의 육경(六境)과 만나면 지각내용인 육식(六識)을 발생시킨다고 가르친다.

이 분류법에 대응시키면, 정보통신기술의 경우 우리의 지각대상인 '육경과 관계된 화엄적 기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고, 생명공학기술의 경우 우리의 지각기관인 '육근과 관계된 화엄적 기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눈'으로 '풍경'을 바라볼 때 안근(眼根)인 나의 눈은 '생명체'에 속하고 색경(色境)인 풍경은 '정보'에 속한다.

또 정보통신기술은 '1'과 '0'이라는 두 가지 수자의 조합에 근거한 디지털의 기술이다. 생명공학기술의 재료가 되는 DNA 역시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이라는 네 가지 염기(鹽基)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적이다. 대립 쌍들의 조합으로 구축되는 디지털 세계는 연기(緣起)적 세계이다.

생명공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은 디지털적이고 화엄적이란 점에서 그 원리가 너무나 흡사하다. 또 생명공학기술은 우리의 육근의 건강을 담당하고 정보통신기술은 육근의 대상인 육경의 행복을 제공하기에 그 쓰임이 중첩된다. 이 두 가지 기술이 앞으로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생명공학기술로 인해 우리는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우리의 인지는 '미신적 생명관'을 넘어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와 공(空)과 연기(緣起)의 진리'에 접근한다. 또, 정보통신기술이 만들어낸 가상공간 속에서 모두가 평등해지고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상세계는 이 두 가지 기술이 그 방향을 올바로 잡을 때에만 실현 가능하다. 체세포복제기술은 그것이 일반 사기업(私企業)에까지 허용될 경우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장기(臟器)'를 손쉽게 얻기 위해 복제인간을 만드는 데 악용될 수도 있다. 기업의 목적은 '도덕'이 아니라 '이윤'이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의 경우 정보의 독점적 소유는 빈부의 차이를 보다 심화시킨다. 탐, 진, 치의 삼독심에 의해서 과학기술이 이끌려질 경우 모든 기술은 인류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악의 기술이 되고 만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과학자들로 하여금 정보통신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의 개발에 몰두하게 만드는 동인(動因)은 '개인적이거나 국가적인 탐욕'일 것이다.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열어 줄 두 가지 첨단 기술을 선점한 우리민족만은 소위 '선진국'들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기치를 걸고 비서구권을 향해 과거에 저질렀고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탐욕의 죄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빈곤국을 옭죄는 국제적 노비문서인 현재의 '지적소유권제도'의 개선 또는 철폐를 위해 우리 모두 힘써야 할 것이다.

또 '자비의 기술이어야 하는 생명공학기술'이 '탐욕의 생체실험기술'로 나아가지 않도록 공적인 시스템 하에서 모든 연구와 개발을 관리해야 할 것이다. 황우석 교수가 말하듯이 '고통 받는 환자를 치료해 주는 것'만이 생명공학기술의 진정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여는 화엄적 기술을 선점한 우리는 앞으로 '선진국'이 아니라 '모범국'을 지향하며 빈곤국을 이끌고 선진국을 계도해야 할 것이다.

2005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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