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머리말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형벌의 방법으로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도 되는가? 이러한 논쟁은 법학계, 종교계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드디어 우리 정치권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지난해 10월 30일 여야 의원 154명이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을 계기로 사형제도의 폐지와 존치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사형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사형은 국가권력에 의한 계획적인 법적 살인이다. 일반적으로 살인은 개인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범죄이지만, 조직체에 의한 경우도 많다. 가장 강력한 조직체인 국가는 형사 사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여 왔다.

이 세상의 어떠한 가치보다도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존엄하다. 인간의 이성은 화이트헤드(Whitehead)가 말했듯이 ‘살아가는 기술을 촉진하고 연마하는 기능’을 말한다. 이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생명가치를 실현하고 보존할 수 있다. 또한 생존을 통해 행복을 구가하며 살아갈 줄을 안다.

인간은 육체와 감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감각적이며 영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영혼은 영원을 지향하는 생명력과 정신활동의 주체이다. 인간의 영혼은 단순한 생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을 구현하고 생존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생존 이상의 가치란 사랑, 행복, 평화, 정의, 자유, 진실, 선 등이다. 인간의 자기 표현은 죽을 때까지 생존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생명활동을 의미한다.

러시아의 문호 토스토예프스키는 28세가 되던 나이에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직전에 니콜라스 황제의 감형장이 도착하여 극적으로 사형의 변을 당하지 않고 살아 남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소설 《죽음의 집》에서 총살형 직전의 절체절명의 상황을 회고하면서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범죄 그 자체보다 훨씬 더 가공할 처벌이다’라고 사형제도를 비판하였다. 또한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는 1829년 쓴 소설 《사형수의 최후의 날》에서 단두대 앞에 서 있는 사형수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절망을 잘 묘사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무서운 것이며, 공포에 떨게 된다. 자연적인 죽음이 아닌 국가권력에 의한 인위적이고 계획적인 사형을 통한 죽음은 너무나 가혹한 행위이다. 인간의 생명권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침해하거나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은 불자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5계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살생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생명권을 영원히 박탈하는 사형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반 불교적인 형벌인가를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형은 범죄자에 대한 복수심을 해소함과 동시에 그 범죄인을 완전히 사회에서 축출함으로써 또 다른 희생자를 없앤다는 범죄 예방적인 효과를 기대해 왔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존귀한 생명을 잃게 하는 사형은 반인륜적 범죄를 억제하는데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불교는 왜 사형을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불교의 교리사상적 근거를 제시하고 경전에 나타난 사형 부정론을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는 사형폐지론에 대한 역사와 세계적 추세를 살펴보고 법사상적 기초를 알아보는 것이 독자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기독교적 논거들을 비교 검토하기로 한다.

2. 사형폐지론의 역사와 세계적 동향

1) 사형의 역사
사형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응보주의의 형식이 흔히 사형제도의 관행으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탈리오 법(Lex Talionis)의 사상은 고대의 법률집인 에쉬눈나의 법전,1) 함무라비 법전,2) 중기 앗시리아 법률3)과 힛타이드 법4)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그리스와 로마의 법전 및 구약성서5)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고대 원시사회의 풍습에서 사형제도가 생겼다고 할 수도 있다. 대부분 문화권의 사람들은 그들의 과거 역사 속에서 잡신들의 분노를 방지하기 위해서 깨끗한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예식을 거행하였다.6) 이러한 근거로 볼 때 원시고대 사회의 구조 속에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공동선을 위해서 필수적이고, 또한 잡신의 분노에 대해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했다.7)

옛 아테네에서는 이러한 관습이 실제로 실행되었다.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사람 둘을―가능한 남자와 여자―추수감사제 직전에 거행되는 속죄의 제사(Thargelien)를 위해 한 해 동안 국비로 양육시킨다. 이 두 사람은 무화과나무로 장식되었고 ‘무화과나무 채찍’8)으로 때리며 축제 음악과 함께 도시의 거리를 끌고 다녔다. ‘이는 모든 죄, 모든 부정, 그리고 모든 전염성이 있는 재앙들을 아테네 시민들을 대신하여 속죄의 희생제물이 됨을 의미하였다. 이 제물들을 도시 밖으로 끌어내 절벽에서 떨어뜨리거나 불에 태워서 죽였는데 시신은 불에 태워서 그 재를 바다에 뿌렸다.’9)

이러한 고대 아테네의 관습은 고대 이스라엘의 속죄양 예식과 비슷하다. 구약시대의 유태민족들은 응보주의에 의한 보복을 허용하였다. 유태인들에게 사형에 해당되는 범죄로는 이신(異神)숭배, 살인죄, 독성죄(瀆聖罪), 설독(褻瀆), 마술, 마법, 우상숭배, 간음, 수간, 존속상해, 중대 사실에 관한 허위 증언10)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중죄로 규정하고 사형으로 다스린 의도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재범을 방지하려는 데 있었다.

기독교 교리사상적 측면에서 볼 때 사형제도는 당연시 되었던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구약성서에서 사형제도는 당연시되었고, 신약성서에서는 부분적으로 언급되었다.

구약성서에서 사형제도는 거의 관습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른바 피의 보복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창세기 4, 10b∼11에 의하면 살해된 자의 친척들은 흘린 피에 대한 보복을 하는 것이 의무로 규정되어 있다.
신명기는 형벌제도에 있어서 법률개념의 발전에 관한 여러 가지 실례(實例)들을 보여준다. 창세기 9, 5∼6에 이미 나타나 있는 고의적인 살인에 대한 보복은 사형에 처해진다. 그밖에 사형에 처해지는 범죄로서는 잡신숭배와 신성모독, 안식일 계명의 위배, 부모에 대한 불손, 여인의 간음, 또한 근친상간, 수간(獸姦) 등이 있다.11)

신약성서에는 로마서 13장을 제외하고는 사형제도의 존재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12) 로마서 13장은 사형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커다란 문제점을 지닌 것처럼 보여진다. 왜냐하면 로마서 13장은 마치 법을 어기는 모든 사람의 죽음과 삶에 대한 세속적 공권력의 권한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왕권신수설의 근거로 삼는 로마서 13장의 다음 문구의 해석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다.

통치자는 결국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는 공연히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느님의 벌을 대신 주는 사람입니다.13)

유럽에서는 중세 이후부터 게르만 민족 등이 사형죄의 범위를 확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영국, 프랑스 등 라틴계 민족은 중세부터 사형죄를 확대했다. 특히 영국에서는 16∼18세기에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이 200여 가지에 이르렀다.

우리 고조선의 ‘8조 금법(禁法)’에도 탈리오 정신이 담겨 있다. ‘한서지리지’에 8개 조목 중 3개 조목이 전해지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되어있다. 그 후 우리나라 역사속에서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참혹한 처형인 사형은 끊이지 않았다. 가마솥을 걸고 죄인을 삶아 죽인다는 팽살(烹殺)은 실행되지 않았으나 몸을 토막쳐 죽이는 능지처참(陵遲處斬)이나 죽은 시체를 다시 목 베는 육시형(戮屍刑)은 행해졌다. 처형 뒤 들개가 뛰어 이르지 못하는 높이로 죽은이의 머리를 매단다는 효수(梟首)도 빈번했다.

사형의 집행수단도 화형 십자가형, 익사형, 참수형, 총살형, 교수형 등 다양하게 시행되었다. 18세기까지 사형은 사회적 갈등기와 전쟁시기에 사회통제의 1차적 수단으로 남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서양사에서는 종교적 독선과 광기로 인하여 사형이 핵심적인 형벌의 지위를 누렸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십자가형으로,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는 참수형으로, 나치하에서 히틀러에 항거한 본헤퍼는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기독교 박해사를 통하여 우리는 잘못된 수많은 사형집행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2) 사형폐지론의 등장
역사적으로는 기독교적 광기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사형폐지론이 등장하게 되었다.14)
‘살인하지 말라’15)라는 계율로부터 사형의 불가론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늘어 났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자살에 대해서도 살인의 금지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하느님이 자기 생명의 주인이시므로 자기 생명을 아무도 살상하지 못한다.”16) 살인을 목적으로 남을 죽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나 자살을 목적으로 자신을 죽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는 살인죄에 해당된다. 살인행위는 사랑을 부인하는 행위이며, 인명을 파괴하는 생명경시 행위이며, 창조주의 권위를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죽일 수는 없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는 가르침에서 사형불가론을 주장하기 시작 하였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17)

타인이 나를 아무리 미워하고 학대하고 악의를 품고 대하며 증오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며 선의와 사랑으로 대할 것이며 복수심을 버리라는 것을 가르친다. 사랑의 이상을 따라 사형제도가 없어지고 보복의 악순환이 없는 사회에서만이 사형제도가 합법화된 사회보다 생명의 존엄성이 더욱 보장될 것이다.
1764년 베카리아(C. Beccaria)는 《범죄와 형벌》18)이란 책에서 사형제도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러한 베카리아의 사상은 법학적 관점에서뿐만이 아니라, 신학적 관점에서도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떼르뚤리안(Tertullian)과 락탄시오(Lactantius)는 하느님의 법에 있어서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예외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us)는 그의 저서 Conta-mencacium과 Ⅱ. Ethics에서 말하기를 “그 자체가 악인 것을 따르는 것은 어떠한 선한 목적을 가졌다 할지라도 옳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자체로서 악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권위와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중죄인일지라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신국론〉에서 로마서 13장 1∼7절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국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형에 대한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몽테스큐(Montesquieu)와 리프만(Liebmann)은 베까리아의 이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사형제도는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불가한 것이며 오판으로 사형이 집행된 경우에는 절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사형의 위혁적 결핍 및 피해자의 구제에도 사형은 무용한 것이라는 점 등을 들어 사형 폐지론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아르젠트레(Argentre)는 그의 저서 Collectio de Novis erroribus에서 사형의 합법성을 부인하면서 배척한 윌드네스(Waldness)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반박하였다. 아르젠트레가 가장 많이 인용한 이론적인 근거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학설이다. 그가 사형의 합법성을 주장한 이유는 사형제도가 있음으로써 범죄의 예방으로 사회질서가 보전되며, 그 제도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양심 형성의 최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19)

미국의 요셉 브루니 주교와 윌리엄 후크 주교는 현재 미시시피주가 실행하고 있는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성명서를 통해 의견을 밝혔다. 그는 성명서에서 미시시피주가 1964년 이래 사형제도를 실시해 오고 있음을 지적하고 34세의 ‘지미·리 그래이’씨가 그해 6월 6일 가스독방에서 사형에 처해진 사실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현재의 사회 상황에서 “형벌을 합법화하기 위해 사형을 부과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형제도가 희생자나 그이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영국 하원이 교수형 제도를 부활하는데 관한 안건을 토론하기 5일 전인 1983년 7월 8일 잉글랜드와 웨일즈 주교단은 성명서를 발표하여 가톨릭의 전통적인 도덕적 가르침은 사형판결이나 집행에 가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원일치의 집약된 의견으로 사형제도를 반대한 이 주교단의 성명서는 “사형제도의 부활은 우리 사회 전체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기독교에서는 20세기초까지는 사형제도를 지지하였으나 최근에는 반대하는 입장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김수환 추기경이 사형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

3) 사형폐지론의 세계적 동향
오늘날 사형제도를 폐지하거나 사형집행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현재 120여개국이 사형제도를 폐지하였고, 72개국이 아직도 사형제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유럽연합 15개국은 모두 사형제도를 폐지하였고, 독일은 가장 먼저 사형을 금지하는 헌법 규정을 두었다. 라틴 아메리카는 19세기 말경에 벌써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이스라엘과 이탈리아에서는 1940년대에 사형제도가 폐지되었고, 캐나다에서는 1976년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에서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이 두 나라의 대다수 국민들은 테러리즘에 대한 응징으로 사형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는 1965년에 사형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뒤 아일랜드의 내분과 테러분자들에 의해 2,300여 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 후 영국의회에서는 살인죄에 대한 사형제도의 부활을 둘러싸고 찬반 양론이 비등하였다. 그러나 영국 하원은 교수형 부활 안을 368 대 223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부결시켰다.
프랑스 국민들은 늘어나는 살인범에 대한 응징으로 59퍼센트가 사형제도 부활을 원하는 것으로 IFOP 전국 여론조사 결과 밝혀졌다. 81년도에 기요턴에 의한 사형제도가 폐지된 후 살인사건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하지만 뒤늦게 폐지된 사형제도가 부활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1973년 사형에 대한 위헌결정이 내려졌으나, 1976년 다시 합헌이 선언되어 1977년부터 사형제도가 부활되었다. 현재 50개 주가운데 38개 주가 법률상 사형을 인정하고 있으나 사형집행율은 저조한 편이다. 사형제도가 없어지지 않은 다른 나라들도 사형집행 건수는 아주 적다.

중국이 전세계의 사형집행 건수 중 70% 이상을 차지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등 사회주의국가였던 나라들이 뒤를 잇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등 회교국가들도 연간 100여 건 이상 사형집행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종교적인 탄압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사형제도가 남아있는 터키 등 29개 국가는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한 사례가 없고, 이스라엘, 알바니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등 13개국은 사형집행에 특별한 제한규정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5년 이후 1634명에게 사형을 집행하였으며, 현재 사형선고가 내려져 사형이 확정되고 아직 집행되지 않은 사형수는 51명이라고 한다.

3. 사형폐지론의 법사상적 기초

1) 사형존치론에 대한 비판
사형제도는 인류역사상 18세기 중엽까지는 거의 당연시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20)
첫째로 국가 경제력이 미약한 탓이었다. 사형수를 종신 자유형으로 대처할 만큼 국가의 경제력이 없었다. 18세기 중엽 이전까지만 해도 서양이나 동양이나 농경 사회이었기 때문에 범죄자들을 감옥에 가두어 부양할 정도의 재정규모을 갖지 못했다. 그 때문에 중대한 범죄자를 재판의 형식이 끝나자 곧바로 처형하는 것이 거의 관습이었다.

둘째로 국가는 범죄자를 수용할 인적·물적 시설을 가지지 못했다. 교정시설과 이 시설의 운영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물적 장비 및 감시·감독할 인적 장비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다.
셋째로 그 때문에 도망간 범인은 다시금 복수할 가능성이 아주 많게 된다. 그러한 복수 가능성을 미리 차단시키기 위하여 아예 범인 본인뿐만 아니라, 소위 연좌제를 도입하여 범인의 친인척까지 사형으로 처벌하는 경우가 동서양을 불문하고 다반사로 일어났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인 배경에 의해 사형제도가 합법화 되었고 지지자들도 다수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형은 고대에서 중세까지는 기독교와 신학의 문제였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법철학의 문제로 논의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법학, 특히 형법학의 연구과제로 되었다. 20세기에 와서는 다시 이 문제가 법학의 독점물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의 사상에 관한 문제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사형제도의 존치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응보적·보복적 심리와 범죄에 대한 위하력(威?力)에서 주로 그 근거를 찾는다. 우리의 헌법재판소나 대법원도 이러한 견해를 내세웠다.21)
물론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일정한 보상심리를 가져다 준다. 그런데 형벌은 사회평화를 달성하려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사회평화는 과거의 잘못된 행위를 범한 행위자에게 동일한 고통을 줌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며, 과거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비난을 통해서 현재나 미래에 야기될 수 있는 잘못된 행위를 방지 내지 억제하려는 데서 더 큰 실현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한 사형은 범죄예방에 위하력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사형을 집행한 직후, 반인륜적 범죄가 다소 줄어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형선고나 사형집행이 가져다주는 위하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사건 등 반인륜적 범죄는 대부분은 계획적으로 일어나기 보다는 우발적인 경우가 많다. 독일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순수 살인사건의 약 75% 정도가 음주 후 사소한 말다툼에서부터 시작하여 폭행과 상해의 과정을 거쳐 생명을 잃게 한다고 한다. 나머지 25% 정도는 행위시에 자기 통제력을 제어할 수 없거나 미약한 상태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계획적 살인사건의 경우는 오히려 피해자가 못된 짓을 한 경우도 다소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형이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방지하는데 위하력이 있다고 볼 수 있는가? 또한 계획적 범죄에 대한 범죄억지력도 기껏해야 한 두 달을 넘기지 못한다고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사형존치론자들은 우리 헌법 제110조 4항 단서에 군사법원에서 예외적으로 사형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에 규정한 기본적의 일반적 제한원칙에 따라 생명권도 제한할 수 있다고 하였다.22) 그러나 이러한 헌법해석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위반된다고 볼 수 있다. 이 헌법 제10조는 헌법의 최고 근본 규범이며, 다른 기본권들에 대한 해석 지침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보호 가치성은 형사법의 입법·집행·적용의 지도원리인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주체인 생명은 다른 무엇보다 높은 가치에 두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110조 4항 단서는 전쟁과 같은 비상사태라는 특수한 사정 아래서의 사형제도를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지 일반적인 사형제도의 근거는 아니다.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생명권을 박탈하는 사형제도는 아무런 정당성도 합리성도 없으며, 분명히 헌법 제10조와 제37조 제2항에 위반된다.

2) 사형폐지론의 형사법학적 당위성

(1) 사형폐지론자들의 등장
사형폐지론이 본격적으로 형사법학계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764년 이탈리아의 베카리아가 《범죄와 형벌》을 출판하면서 부터였다.23) 베카리아는 사회계약설의 입장에서 사형폐지론의 근거를 제시하였다.24)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칼라쉐의 소송 때문이다. 이 소송 때문에 볼테르 역시 사형제도에 대해서 다루게 되었다.25) 두번째는 베카리아의 부인에게 오기로 했던 여의사에게 노상 강도를 한 사르토렐로의 체포와 고문이었다. 그 당시 종교 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베카리아는 자신의 책을 감히 출판할 수 없었고, 시간이 꽤 지난 후에 이 책을 무명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은 4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6장에서 사형제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다른 장에서도 비인간적인 형법의 구조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지를 받는 사형제도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고문과 마녀 재판, 종교 재판의 기록 속에 나타난 야만성을 비판하고 있다.

베카리아는 이 책에서 사회계약설에 입각하여 법률, 법의 근원, 법의 해석과 법의 적용에 관하여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사회적인 안전을 위해 서로 간의 평화적 공동 생활을 지향하는 근본 이념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법제도와 형벌 안에서 불의, 부자유, 가혹함과 무자비함을 스스로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여러 가지 형태의 범죄들을 다루면서 무자비하고 가혹한 형벌 대신에 정당하고 관대한 형벌을 주장하였다. 즉, “사회조직은 구성원 모두의 총의로 움직인다. 그러나 사회를 조직하는 사람들이 생명을 탈취할 권능까지 부여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형은 하나의 권리가 아니고 또 권리일 수도 없다. 사형은 한 국민에 대하여 국가가 이 국민의 생명을 파멸시키는 선전포고” 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의미는 사형제도를 처음으로 신랄하게 비난하고 근본적으로 거부한 책이었다. 그래서 뒤싱(B. Dusing)은 다음과 같이 베카리아의 영향력에 대하여 “종교 개혁의 역사를 마르틴 루터와 분리하여 이야기 할 수 없듯이,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투쟁은 베카리아를 제외하고는 말할 수 없다.”26)

베카리아가 사형폐지를 주장한 이유는 단순한 인도주의나 감정적 차원에서가 아니다. 범죄인이나 국민들에게 필수적인 위하력을 주려면 형의 잔혹과 엄격성이 아니라, 그 확실성(필요성)에 있다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 베카리아의 사형폐지론은 당시 유럽의 형사학계에 비상한 자극을 주었다. 영국의 감옥개량가 존·하워드(John Howard)는 저서 《감옥의 상태(The State of the Prisons)》(1777)에서 베카리아의 이론을 지지하면서 당시 감옥상태를 비판하였다. 또한 그 당시의 유명한 교육학자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는 1783년에 쓴 《입법과 교화》에서 사형의 가치가 적고 사형의 집행으로 오히려 민심을 나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형폐지를 강조하였다. 그는 당시 스위스에서 남용된 길로틴형의 잔혹성을 밝히면서에 “사형은 민중에게 고상한 감정을 유발시켜 범죄의 예방보다 오히려 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사형폐지론은 19세기에 이르러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많은 문인들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빅톨 유고(Victor Hugo)는 1829년 《사형수 최후의 날》이라는 책에서 “사형은 죄인의 머리하나만을 절단하는 것이 아니고 죄없는 가족들의 머리까지 절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하면서 사형폐지를 주장하였다.
또한 톨스토이는 저서 《나는 침묵할 수 없다(Ich kann nicht schweigen)》(1908)에서 사형을 폐지할 것을 강력히 호소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정치범으로서 사형되는 최후의 순간에 사면된 자로서 그의 저서 《백치(Idiot)》에서 무이슈킨의 이름으로 자기의 사형반대론을 말하고 있다.

형사법학에서 신파사상 내지 주관주의 형법사상이 대두된 19세기말 이후에 있어서는 많은 법학자들이 사형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게 되었다. 1912년 9월 열린 제31회 독일법조인대회(Deutschen Juristentag)에서 사형존폐론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 대회에서 베를린대학교수 칼(Kahl)이 사형존치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사형은 다수민족의 법률적 확신이다”라고 결론내렸다. 이에 대하여 교육형론자로 유명한 키일대학교수 리프만(Liepmann)은 이론적·경험적 측면에서 사형에 위하작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질서가 다시 악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각적으로 설명하였다. 여러 나라의 통계를 제시하면서, 특히 오판에 의하여 사형에 처해진 경우에 그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결점을 가진 사형을 폐지해야 할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2) 사형폐지론의 논거
형사사법적·법사상적 측면에서 사형폐지의 근거를 종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사형은 야만적이며 잔혹하므로 용인될 수 없다. 특히 기독교사상에서 출발하여 ‘신의 이름으로 사람이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악이다’라는 사상이 사형을 부정하게 되는 것인데 톨스토이, 도스토엡스키의 문학작품에는 이러한 사상이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다.
② 오판의 경우에 회복할 방법이 없다. 재판이 인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이상 오판은 피할 수 없다. 만일 오판에 의하여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되는 경우 그 인명은 회복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오판 사건 중에서도 특히 쟝 칼라(Jean Calas) 사건(각주12)은 베카리아가 《범죄와 형벌》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6·25 당시 한강교 폭파사건으로 사형집행된 최창식 대령이 14년이 지난 후 재심에 의하여 무죄가 선고된 일이 있다.
③ 사형에는 범죄억제력이나 위하력이 거의 없다. 사형으로 대처해야 할 범죄로서 대표적인 살인범에 있어서 범인은 격정적 상태에 있거나, 병적인 인간의 소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신병자, 마약이나 알콜중독자 등 책임무능력자의 경우가 많다. 계획적 살인범에 있어서는 자기의 범행이 절대로 발각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범하는 것이다. 또 정치범의 경우 범인은 자기일신을 국가사회에 바친다는 대의명분과 비상한 각오아래 실행하며, 오히려 죽음을 명예로 생각하기까지 하는 자들이다. 범죄의 발생은 형벌의 경중과 큰 관계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또한 헨리8세 통치시에 소매치기들은 절도범들의 교수형을 구경하려고 모인 군중들속에서 가장 활발하게 날뛰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④ 사형은 당한 당사자에는 비인간적이고 야만스러운 잔인한 형벌이다. 그 당사자의 가족들에게도 일생 동안 고통을 준다. 일반인에게도 반항심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⑤ 사형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시범을 국민에게 보이고 그들로 하여금 모방케 한다.
⑥ 사형은 문화국가의 형사정책이념에 위배된다. 사람들이 범죄행위를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교육과 보호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결과인데, 그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외면하고 범인을 사형에 처함은 부당하다.
⑦ 사형은 피해자에게 아무런 손해배상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행사형제도는 범죄인을 살해하는 이외에 피해자 구제는 고려치 않고 있다. 가해자에게 사형을 행하는 것이 피해자의 감정과 응보적 만족을 얻을 것이나, 가해자가 사형에 처하여져서 생명이 단절되면 국가사회에 궁핍한 자만 양산할 뿐 범죄방지의 효력은 없다. 국가가 사형을 유지하려면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무기형으로 대체하여 가해자로 하여금 피해자의 가족을 구제케 함이 타당하다.

3) 사형폐지론의 사회윤리적 당위성
사형이란 범죄 피해자 측에는 일시적인 보상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형을 당한 당사자에게는 비인간적이고 야만스럽기 짝이 없는 잔인한 형벌이며, 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다. 그 당사자의 직계 존비속에게도 일생 동안 가슴에 못박는 일이다.

형벌은 죄를 범한 그 자신에게만 미쳐야지 사형처럼 사형수의 부모에게 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은 또 다른 사형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 직계 존비속의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초토화시키는 것이 된다. 자식이 부모에게 범한 가장 큰 불효는 자식이 부모 앞에서 죽는 일이다. 사형수들의 거의 대부분은 사회활동이 한창인 젊은이들이란 점을 생각할 때 가혹한 형벌이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사람을 고의로 살해케 하여 부모의 가슴에 못박는 일은 유교적 전통을 가진 우리 국민의식에 반한다고 보여진다.

형벌이란 오직 죄를 범한 만큼 받게 되는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범한 죄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란 응답을 치름으로써 장래에 일반인에 대한 범죄예방 뿐만 아니라, 범인 당사자도 다시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다. 즉 어떤 범죄에 대해서도 범인이 교화되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직 응보적 관점이나 일반 예방적 관점에서만 형벌을 내려서는 안된다. 책임형벌, 일반예방형벌 및 재사회화를 위한 형벌이라는 3요소는 형벌을 과하는 데에 있어서 불가피하게 참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범죄를 범하게 되는 것은 오직 개인의 책임만이 아니며, 정상적인 개인도 위급시에는 동물적인 속성을 극복하기 힘들며, 모든 인간은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언제나 성숙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형제도가 사회적으로 비윤리적 제도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는 오판으로 인한 회복불능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6·25 당시에 있었던 한강철교 폭파사건의 오판은 무고한 자의 희생을 강요하였다. 사형이 집행된 후에 오판으로 밝혀졌지만, 그 오판으로 희생된 자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 없었다. 비슷한 사례가 그 이외에도 가끔 있다. 더구나 한국에서 오판의 가능성은 적지 않다. 국제인권옹호 한국연맹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법관 중 35%가 한 번 이상의 오판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제아무리 법관이 신중을 기한다 해도 우리 나라에서 오판으로 판명된 사건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사형제도의 존치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위해 악용되어 왔다. 일본제국주의가 지배하던 식민지 시대와 5·16 구테타 이후 개발독재 체제에서 권위주의적 정부가 권력강화를 위해 사소한 사건을 조작하여 사형을 선고하여 정치적으로 이용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정권 시대의 이른바 “민청학련사건”이나 인혁당사건이 대표적이다. 또한 민주적 인사나 정권의 반대자를 제거하여 장기집권을 위해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나 조봉암사건 등이 이에 속할 수 있다.

4. 사형폐지론의 불교사상적 근거

1) 불살생의 계율과 생명윤리
불교가 사형을 반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어떤 생명체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불살생의 계율 때문일 것이다. 불교는 생명의 가치를 어느 것보다 우선한다,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 싣다르타는 왕자로 태어났지만, 부귀영화를 버리고 온갖 고행을 한 후 깨달음을 얻었다. 출가는 곧 생명의 본질을 찾기 위해 마갈타국으로 향한 것이다. 나이 35세에 보리수 아래서 얻은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 중에는 우선 모든 생명체에는 불성이 있으며, 생명의 존엄과 평등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불살생계(不殺生戒)를 불자가 지켜야 할 첫 번째 덕목으로 가르치신다. 이는 불자들의 생활실천 윤리규범인 동시에 불교의 근본사상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생명존중사상은 두가지 역사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27) 하나는 그 당시 인도 힌두교의 무자비한 살생을 보고 인간의 존엄과 생명체의 고귀함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 당시 힌두교는 베다를 숭배하면서 제사만능주의에 빠져 있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많은 살생을 자행하였고, 생명경시의 사회풍조가 팽배해 있었다. 둘째는 그 당시 인도의 사성계급제도(카스트제도)에 따른 잘못된 생명관의 타파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 제도는 지배계급인 아리안족(흰색 피부를 가진 종족)은 우월하고 선하며, 피지배계급인 문다족과 드라비다족(까만색 피부를 가진 종족)은 천하며 악하다고 믿게 하였다. 흑백의 차별과 선악의 구별을 통하여 왜곡된 인생관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고 있었다. 부처님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존재의 평등함과 생명의 존귀함을 선언하였다.28) 카스트제도의 타파와 인간해방을 설파한 것이다.

우리의 생명이란 말할 수 없이 귀중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기에 불교는 생명을 빼앗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지한다.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무생물까지도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살생을 금한다. 계율에서는 살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말고 그러한 행위를 멀리하라고 가르친다.29)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는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의 신비를 말한다, 생명이 신비하기 때문에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도 지극히 인간적이며 불교적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의 불살생계는 팔리어로 된 것을 번역하면 “살생을 떠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라고 한다.30) 이는 단순히 생명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차원을 넘어서 자발적으로 생명을 죽이는 악을 떠날 것을 결심하고 서원하는 것이다. 또한 남이 살생하는 것을 보고만 있으면 아니 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국가의 제도로 살생을 하는 사형제도는 허용될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사형제도를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인정하고 있는 기독교와 가톨릭에서도 교리사상적 해석을 통하여 사형폐지론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근거로 ‘살인하지 말라’31)는 계율을 근거로 제시한다. 살인은 하느님의 절대적 금지명령이며, 생명은 하느님이 준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32) 어떠한 살인행위라도 인명을 파괴하는 생명견시 행위이며, 창조주의 권위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2) 연기론적 세계관과 중도사상
국가권력에 의한 계획적인 합법적 살인행위인 사형제도는 부처님의 연기론적 세계관과 중도사상에 어긋나는 반불교적 행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와 이웃, 그리고 자연은 하나’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곧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6년 동안 뼈를 깍는 수행을 한 후 보리수 아래서 깨달으셨다. 그 깨달으신 내용은 말과 생각으로 다 미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상적으로 연기적 세계관에 입각한 ‘하나’인 세계의 체험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나’라는 아집과 벽을 깨고 나와 남,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깨달음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바로 하는 슬기의 원천을 발견한 것이다. 생명의 원천인 ‘나’는 나와 이웃이 하나인 ‘나’이며, 나와 우주가 둘이 아닌 ‘큰 나’를 찾은 것이다. 이러한 연기론적 세계관은 현상세계의 법칙이며 부처님이 깨달으신 내용의 핵심이다. 그 내용을 알아듣기 쉽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십이인연 등의 근본교설이다. 이러한 근본교리는 불교경전에 여러가지 방편으로 수록되어 있다.

부처님은 모든 생명체가 서로 유기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연기론적 세계관을 가르쳐 주셨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은 서로 함께 살아가는 원리가 불교의 존재론인 연기론이다.33)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에 저것이 사라진다.

이 구절은 《잡아함경》에 나오는 존재의 발생과 소멸에 관한 연기(緣起)의 이치를 쉽게 표현한 것이다.34) 모든 존재는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만 생성되고 소멸하는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떠한 존재도 우연히 생겨났거나 혼자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은 시간과 공간속에서 서로 상생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론은 올바른 인식의 가르침이고, 올바른 실천의 측면은 ‘중도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중도는 극단적인 사고를 거부하고 고통과 즐거움의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한쪽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실천적인 가르침이다. 이러한 입장을 우리의 삶속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팔정도와 육바라밀이다. 이렇게 보면 연기와 중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중도는 공(空)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텅빈’의 의미는 ‘집착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일체를 남김없이 부정한다는 말인데, 이는 현실을 끊임없이 비판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진실을 찾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사상이다.

공의 세계는 하나의 세계요, 대평등의 사회이다. 사람, 나무, 물, 산 등의 삼라만상을 차별적으로 보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텅빈 것이기 때문이다. 사형제도는 인간의 이기심과 경쟁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불교의 상생원리인 연기의 법칙과 중도사상을 깨닫지 못한 국가제도인 것이다.

3) 비폭력 자비사상(아힘사)
다음으로 사형에 반대하는 이유는 부처님의 비폭력 자비사상인 아힘사 정신이다. 불교의 비폭력원칙은 사회 실천윤리로서 평등·평화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사회·경제·정치·문화 등 모든 영역의 폭력구조에 반대하며, 그 병든 구조의 개혁을 요구하게 된다. 억압과 폭력구조로 부터 인간과 사회를 해방시키는데 그 목표가 주어져야 한다.

“이 세상에 고통받는 중생이 단 하나라도 남아 있는 한 나는 홀로 해탈을 거부한다”는 지장보살의 서원은 사회적 실천윤리로서 비폭력원칙의 정수임을 바로 알 필요가 있다. 결국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은 ‘연기’, ‘중도’, ‘공’ 등이며,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행동강령으로 ‘자비의 실천’을 들 수 있다.

이 자비의 실천은 부처님의 깨우침이 필요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삼라만상이 ‘하나’인 존재실상을 모르는 우리 중생들은 나와 이웃, 나와 자연을 나누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간다. 모든 것에 욕심내고 성내고 싸운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산업사회속에서 사는 우리는 ‘자유경쟁원리’가 합법화되어 있기 때문에 탐욕과 이기심은 더욱 많아진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대립과 갈등이요, 괴로움과 아픔이다. 이러한 인간의 고통, 사회의 고통, 국가의 고통, 민족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삶의 길을 부처님은 ‘자비의 실천’으로 가능함을 역설하셨다. 즉, 동체대자대비사상(同體大慈大悲思想)에 입각한 하나의 세계를 사는 가르침을 주셨다. “나와 이웃, 나와 자연이 둘이 아니다”라는 벽이 깨지는 순간 비로소 삶의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다.
자비의 정신은 곧 보살의 정신이다. 깨달음을 향한 쉬지 않고 정진하는 실천이다. 이 시대의 온전한 등불이 되는 사상적 기반이다. 여기서 부처님은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라(自燈明, 法燈明)”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베푼 마지막 설법에서 남긴 메시지이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깨달음을 향한 정진을 할 때 불국정토는 구현될 것이며, 깨달음의 사회화는 실현된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는 살생과 전쟁의 위험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살생과 전쟁은 삼독심(三毒心)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탐냄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의 종합적인 표현이 바로 전쟁이다. 애국 애족 정의로써 위장된 집단적인 탐욕이 전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근대에서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쟁에서 우리는 이런 위장된 집단적 탐욕을 알게 되었다. 우리처럼 동족상잔이란 비극을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에는 한과 원한, 증오와 제도 운영에 따른 탄압과 그에 따른 인간적 불신, 마음속에 응어리진 상처가 남아 있다.

부처님은 아힘사 정신에서 평화사상을 정립하였다. 비폭력 평화운동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은 화합과 협동의 공동체 건설을 사섭법에 의해 가르쳐 준다. 평화운동의 내용에는 사형폐지운동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계획적인 살인행위에 대한 공포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운동이 필요하다. 사형제도가 증오와 불신, 경쟁과 지배의 논리에서 탄생된 것이다. 지금 세계는 사형제도 폐지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나라들은 이 제도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불교의 평화사상을 심어주고 연원한 평화주의운동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증오와 경쟁을 자제하고 진정한 인류복지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불국정토에는 사형제도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5. 불교경전에 나타난 사형불가론

불교경전에는 사형제도에 관하여 직접 언급한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율장에도 기독교의 구약성서와 신약성서(특히 로마서 13장)와 같은 사형제도를 인정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바라이죄를 범한 자에 대하여는 교단에서 추방하는 처벌법(不共住, Asamvasa)이 있다.35) 〈사분율〉에 다음과 같은 계율이 있다.36)

만약 비구가 고의로 사람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칼을 가지고 남에게 주어 죽음을 칭찬하고 죽음을 권한다. 슬프다. 남아여! 이 나쁜 삶을 살아서 무엇하리오. 차라리 죽되 살지 아니하리. 이와 같이 마음에 사유를 짓게 하여 여러 방편으로 죽음의 즐거움을 상찬하고 죽음을 권하면 이는 비구의 바라이로서 함께 머물 수 없다.

이 계는 비구 수행자가 직접 살인을 하거나 여러 가지 수단을 사용하여 살인하게 하거나 자살하게 하려는 의도로 남에게 칼을 주는 행위에 대한 처벌방법이다. 이 처벌법은 비구의 자격을 잃고 교단을 떠나게 되지만, 기독교의 왕권신수설의 기초가 된 사형제도와는 다르다.
여기서는 불교경전에 나타난 생명존중과 자비정신의 가르침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형제도를 부정하는 기록들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1) 아함경전
불교경전 가운데에서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앙굴리마라경》37)이다. 이 경은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어머니 마저 죽이려는 살인마 앙굴리마라를 부처님이 찾아가 교화하여 장차 부처가 될 제자로 삼기까지의 내용을 상세히 담고 있다.

앙굴리마라는 원래 착한 청년이었다. 외모도 준수했으며 이름도 아힘사였다. 아힘사란 자비를 나타내는 말이다.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가난한 브라만의 여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용모가 준수하고 총명하였다. 어느 날 스승의 집에서 베다를 배우고 있는데 스승은 왕의 초청으로 외출한 사이에 스승의 부인이 유혹을 해왔다. 그녀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스승의 아내는 일부러 옷을 찢고 아힘사가 자신을 능욕하려 하였다고 누명을 씌워 남편에게 알렸다. 스승은 그를 벌주고자 했으나 젊은 아힘사를 힘으로는 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스승은 아힘사를 다음과 같이 꾀를 냈다.

“이 칼로 천 명의 사람을 죽여서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오면, 너는 수행을 완성하고 해탈을 얻게 되리라.”
아힘사는 그의 스승이 시키는 대로 사람을 해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두려워서 벌벌 떨며 그를 앙굴리마라라고 불렀다. 앙굴리는 손가락, 말라는 목걸이란 뜻으로 이는 그가 사람을 죽여 손가락목걸이를 만든 데서 붙인 이름이다.38) 이렇게 999명을 죽인 앙굴리마라는 마지막 한 명을 더 채우기 위해 아들 걱정을 하여 음식을 가져온 자기 어머니를 살해 하려고 칼을 빼어 들었다.
그때 부처님은 일체지(一切智)로 이 사실을 알고 알굴리마라에게 갔다. 부처님을 보자마자 어머니 대신 부처님을 죽이려고 달려갔다.

앙굴리마라 : “멈춰라. 거기서라!”
부처님: “나는 언제나 멈춰 있는데 네가 멈추지 않는구나.”
앙굴리마라: “너는 걸어가면서 쫓아가는 나보고 멈추지 않는다니 무슨 헛소리냐?”
부처님: “나는 일체 중생을 해칠 생각을 멈췄는데, 너는 사람을 죽임으로써 나쁜 업을 멈추지 않는구나. 나는 벌레까지도 칼이나 막대기로 해치지 않는데, 너는 언제나 핍박하고 두렵게 하는 짓을 멈추지 않는구나.”
이 말을 들은 앙굴리말라는 부끄러운 마음에 통곡하며 잘못을 깨닫고 칼을 버렸다. 그리고 부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참회하고 출가하기를 원했다. 부처님은 그를 가엾이 여겨 기꺼이 출가를 허락했다. 그 후 그는 열심히 정진하여 거룩한 아라한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심경을 게송으로 읊었다.39)

소를 길들이려면 채찍을 쓰고
코끼리를 다루려면 쇠갈퀴를 쓰지만
하늘이나 사람을 길들이려면
칼이나 막대기는 쓰지 않나니 칼을 갈 때는 숫돌을 쓰고
화살을 바루려면 불을 쓰고
제목을 다룰 때는 도끼를 쓰고
자기를 다룰 때는 지혜로 하네.

사람들 속에서 방탕하게 놀다가도
이내 스스로 마음을 거둬 잡으면
그는 곧 세간을 밝게 비추기를
구름 걷히고 나온 달같이 하리.

얼마 뒤 파사닉왕이 군대를 동원해 아굴리마라를 잡으러 부처님 처소를 찾아왔다. 부처님은 왕에게 앙굴리마라가 이미 조복(調伏)하여 남방의 일체보장엄 세계에 있는 여래임을 설명하였다. 왕은 기뻐하며 그냥 돌아갔다. 하지만 그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아힘사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가 나중에 길거리에 나가자 사람들은 ‘살인마’라고 핍박했다. 그러나 그는 ‘나쁜 업의 갚음을 받은 것이니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으리라’며 꿋꿋하게 수행자의 길을 걸어갔다고 한다.

앙굴리마라 같은 살인마를 제자로 교화하는 부처님의 자비와, 잘못을 뉘우치는 살인마의 참회와 수행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사형제도가 불필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게 된다.

이러한 《앙굴리마라경》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아함경전에서 사형제도의 부당성을 발견할 수 있다.40)
《잡아함경》 제40권 : 1107경에는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는 부처님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부처님께서 베살리성에 계실 때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원망하지 말라. 남이 나에게 원망하여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악을 보더라도 악한 마음을 내지 말고 마땅히 교만한 마음을 꺾어야 한다. 원망하지도 않고 해치지도 않으면 성인의 지위에 이른다 하리라. 나쁜 마음으로 화를 내더라도 큰 바위처럼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하라. 유능한 마부가 달리는 말을 멈추게 하듯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 자기 마음을 잘 참아 이겨야 한다.”41)

또한 《잡아함경》 제40권 : 1110경에는 ‘자기보다 약한 자를 용서하라’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날에 천인과 아수라가 서로 싸우려 할 때 석제환인이 천인에게 싸움에 이기거든 아수라왕을 포박하여 오라고 하였고, 아수라왕도 아수라들에게 싸움에 이기거든 석제환인을 묶어서 끌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싸움은 천인들이 승리하였기 때문에 아수라왕은 석제환인의 궁전 앞에 묶여 있었다. 그는 묶여있는 몸이면서도 석제환인이 드나들 때마다 성질을 내고 욕을 하였다. 이것을 본 신하가 석제환인에게 물었다. ‘대왕은 아수라왕이 두렵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힘이 모자라기 때문입니까?

어찌 아수라왕이 대왕의 면전에서 성내고 욕하는 것을 참습니까?” 석제환인이 말했다. ‘두려워서 참는 것도 아니요, 힘이 모자라 참는 것도 아니다. 어찌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을 상대하여 싸우겠는가?’ ‘무조건 참기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보면 두려워하기 때문에 참는다고 말할 것이오니, 참는 것만이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나이다. 마땅히 호되게 다스리고 지혜로서 어리석음을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 ‘나는 항상 이치를 살펴 어리석음을 다스리나니 어리석은 사람이 성내고 화를 내더라도 침묵으로 항복 받는다. 힘이 없으면서 멀리 벗어나니 그것은 진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약한 사람을 용서하고 그 어리석음을 참는 것은 훌륭한 참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남에게 모욕을 당할지라도 힘있는 사람은 애써 참아야 하느니 스스로 참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들을 잘 보호하며 불같이 성내는 사람 앞에서 침묵으로 대항하여 이겨내면 스스로 이롭고 남도 이로우니라. 강한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은 두렵기 때문에 참는 것이요. 자기와 같은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은 싸우기 싫어서 참는 것이지만 자기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기꺼이 참는 것이야말로 으뜸가는 참음이라 할 수 있느니라.”42)

한편 《잡아함경》 제12권 : 288경에는 ‘태어남이 있으니 죽음이 있느니라’고 부처님은 설하였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죽림정사에 계실 때 어느 날 사리불존자가 마하 구치라존자에게 물었다.
“마하구치라존자여, 늙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사리불존자여.”
“죽음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마하구치라존자여, 어떻습니까? 늙음과 죽음은 자기가 지은 것입니까? 남이 지은 것입니까? 자기와 남이 지은 것입니까? 혹은 자기도 아니요, 남도 아니며 원인도 없이 지어지는 것입니까?”
“사리불존자여, 늙음과 죽음은 자기가 지은 것도 아니요, 남이 짓는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짓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원인 없이 지어진 것도 아닙니다. 다만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은 있는 것입니다.”43)

다음으로 《별역잡아함경》 제14권 : 297경에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내용 다음과 같이 들어 있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 한 천인이 문안드리고 여쭈었다.
“어떠한 계행을 닦아야 하고 어떤 위의(威儀)를 갖추며 어떠한 공덕을 지녀야 하고 어떠한 업을 지어야 하며 어떠한 법을 갖추어야만 천상에 태어나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천상에 태어나고자 하면 먼저 살생을 끊고
금계(禁戒)를 잘 지켜 모든 감관을 잘 다스리며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지 말라.
남의 재물을 훔치지 않고 남들이 베풀면 기쁨으로 받아서
도적질할 마음을 끊으면 천상에 태어나리.
남의 아녀자와 간음하지 말고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라.
자기를 이익되게 하고 남들에게도 이롭게 하며
거짓없이 진실만을 말하고,
이간질을 멀리하여 남들을 싸움 붙이지 않으며
서로 등지고 있는 사이를
화합시키는 인연으로 천상에 태어나리라.
남을 모함하여 괴롭히는 추하고 험악한 말하지 않고
자비로운 말을 하여 듣는 사람마다 기쁘게 하며
아무런 이득없는 허풍을 떨리 않고 때에 적절한 말만을 하라.
남의 재물에 탐욕심을 일으키지 않고
자비로 생명을 해치지 않으며
미움이나 증오심을 품지 않으면 천상에 태어나리라.
업과 그 과보를 믿으며 믿음으로 보시행을 닦으면서
바른 소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리라.”44)

《법구경》에도 불살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모든 것은 폭력을 두려워 하고 죽음을 두려워 한다.
이 이치를 자기의 몸에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죽게 하지 말라45)

2) 범망경
《범망경》은 10중계의 첫째로서 ‘살생하지 마라’는 불살생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들아! 직접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이거나, 방편을 써서 주이거나, 칭찬을 해서 죽게 하거나, 죽이는 것을 보고 기뻐하거나, 주문을 외서 죽이는 따위이니 죽이는 인(因)이나, 죽이는 연(緣)이나, 죽이는 방법이나, 죽이는 업을 지어서 온갖 생명 있는 것을 짐짓 죽이지 말아야 하느니라. 보살은 항상 자비로운 마음과 효순하는 마음을 내어 모든 중생들을 방편을 다해 구호해야 할 터인데 도리어 제멋대로 하여 거치없이 산 것을 죽이는 것은 보살의 바라이죄가 된다.”46)

불살생계의 실천을 위해서 육식을 하지 않는 계율을 제정하였다.

불자들이여, 일체의 칼·몽둥이·활·화살·창·도끼 등 싸움하는 기구를 쌓아 두지 말 것이며, 짐승을 잡는 그물·망·덫 등의 살생도구 일체를 비축하지 말지니라. 보살은 부모를 죽인 이에게도 오히려 원수를 같지 말아야 하거늘, 하물며 다른 중생을 죽이겠는가. 만일 일부러 일체의 칼·몽둥이 등을 쌓아 두는 자는 경구죄를 범한 것이다.47)

《범망경》은 전반에 걸쳐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여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까지도 생명은 보호하여야 하며 나아가 적극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상은 불교경전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3) 그 밖의 경전
그 밖에도 능가경, 능엄경, 열반경 등에서 불살생과 보살의 자비사상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발견할 수 있다. 금강경, 반야심경에도 그 내용 전부가 반야와 공 사상을 중심으로 생명의 외경심과 상호관련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를 비롯한 일체의 존재는 모두가 연기(緣起)로 돌아가는 법(다르마)이므로 고정되거나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고 본다. 《능가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고기먹는 것을 살생으로 보아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대혜여! 일체의 모든 고기는 한량없이 많은 인연이 있으므로 보살은 그 중에서도 마땅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고 응당 먹지 말라. 내가 지금 너를 위해 조금만 말하리라.
대혜여! 일체중생들은 예부터 내려 온 생사 중에서 윤회하여 쉬지 않으면서 일찍부터 부모, 형제, 남녀권속 내지 친구, 친애, 모시는이, 부리는 이가 없었는데 생을 바꾸면서 새, 짐승들의 몸을 받았거늘 어찌하여 그 중에서 취하여 먹겠는가?

대혜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을 관찰하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하고, 고기는 모두 생명 있는 것에서 온 것임을 생각하거늘 어떻게 하겠는가. 대혜여! 모든 나찰 따위도 나의 이 말을 듣고 오히려 고기를 끊거늘 하물며 법을 좋아하는 사람이랴.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거주하는 곳이나, 나는 곳마다, 모든 중생들이 모두 친속이라 보고, 또 외동아들을 생각하듯이 사랑스럽게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일체의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48)

《열반경》에서는 모든 유정은 불성을 지닌 가치있는 존재이기에 이러한 존재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불식계를 밝히고 있다.

“이때 가섭보살이 붓다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고기 먹는 사람에게는 고기를 베풀어서는 안된다. 왜인가.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 자가 대공덕이 있음을 보았다. 붓다는 가섭을 칭찬하였다. 착하고 착하도다. 너희들은 이제 나의 뜻을 잘 알았다. 호법보살도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선남자여! 오늘부터 성무제자는 고기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만약 단월신시를 받을 때 고기가 있다면 자식의 살과 같이 생각하여야 한다. 가섭보살이 다시 붓다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릇 고기를 먹는 자는 큰 자비의 종자를 끊는 것이다. 가섭은 다시 말했다. 여래는 왜인가. 먼저 비구가 3종정육을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 가섭이여!이 3종정육은 일에 따라 점차 제정한 것이다. 가섭보살이 다시 붓다에게 여쭈었다.

세존이여! 어떤 인연 때문인가?
10종부정 내지 9종청정을 다시 허락하지 않았다. 붓다가 다시 가섭에게 고하였다. 또한 일에 따라 점차로 제정한 것이다. 마땅히 현재 고기를 끊으라는 뜻을 알아라. 다시 가섭보살이 여쭈었다. 여래께서는 어떠한가. 어륙을 미식이라 칭찬하지 않았는가. 선남자여! 나 또한 어육에 속하는 것을 미식이라고 설하지 않았다.”49)

《자비경(慈悲經)》에서 이러한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모든 존재자들을 행복하게 안전하게 하소서.
그들의 마음을 건강하게 하소서,
살아 있는 것 모두와 그들이 약하든 강하든 크든지 작든지 간에, 또는 그 중간이든 간 에, 작고 약하거나 크거나 간에 모두 예외 없이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멀리 혹 은 가까이 있는 것이거나, 이미 태어났거나 혹은 태어나려 하는 것이거나 모든 존재하는 것들로 하여금 행복하게 하소서.50)
또한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살생하지 말아야 하는가. 혹 길을 가다가 개미, 지렁이, 두꺼비, 기타 곤충을 보더라도 그것들을 피해 멀리 돌아서 간다. 그것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들을 보호하려 하기 때문이다.51)

《대살자니건자경(大殺遮尼乾子經)》에서는 생명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여 설하고 있다.

도시나 촌락, 산림, 그리고 개울이나 동산, 궁전이나 누각 모든 도로와 교량, 자연적인 동굴과 일체의 농작물, 꽃들과 열매, 초목과 숲을 태워서는 안되며 파괴해서도 안된다. 물을 빼지 말아야 하며 식물을 자르거나 베어서는 안된다. 그 모든 것에는 다 생명을 가진 짐승들과 곤충들이 살고 있으므로 그 죄 없는 뭇 생명들을 상해하거나 그 목숨을 해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52)

《화엄경》에서도 부처가 곧 생명이라고 본다.53) 생명은 우주에 충만하고 한 생명이 삼라만상을 아름답게 이끌어가는 원력과 업력이 있다는 것이다. 《화엄경》의 세계에서는 한 생명이 만물을 살리는 존엄성과 평등성을 보여주고 있다.

6. 맺음말: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형은 국가권력에 의한 계획된 살인행위이다. 불교의 교리사상적 측면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죽일 수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불살생의 생명윤리와 연기론적 세계관에서 생명의 외경심과 평등성을 발견할 수 있다.

생명은 삶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삶 자체는 생명의 본질이다. 생명은 인생의 목적을 추구하며 생명의 완성에로 나아가는 인간존재 그 자체이다. 인간에게 가장 불행한 일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생명이 있음으로써 인간존재의 목적과 가치를 추구하며 자기완성을 향한 인간적인 활동의 지속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생명의 본질 때문에 부단히 자기 완성의 이상을 실현하고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 생명을 끊는 행위는 모든 인간에게 금지되어야 마땅하다.

사형은 국가제도이지만 우리 국민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형은 국가기관이 관여하여 이루어지지만 이를 방치한다면 국민들이 간접적으로 이를 묵인하는 결과가 된다. 우리 불자들은 사형폐지운동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도에 종교계, 법조계, 언론계의 지도자들이 ‘사형폐지운동협의회’를 결성하였다. 이 단체는 사형폐지의 필요성을 계몽하면서 헌법재판소에 사형수들의 헌법소원을 내고 서명운동을 벌인 바 있다. 그 동안 불교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몇몇 지도자들이 이 운동에 동참해 왔지만 다른 종교계에 비하면 대단히 미흡한 실정이다. 기독교와 가톨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사형은 참혹하며, 야만시대의 유산이다. 세계 제2차 대전 후에 유엔에서 채택된 〈국제인권규약〉과 〈세계인권선언〉의 기본정신에서 “모든 인간은 생명에 대한 고유한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는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며, 누구도 자의적으로 그 생명을 박탈하지 않는다”고 천명하였다. 아울러 1989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사형폐지조약〉이 채택되어 세계적으로 사형폐지를 권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형폐지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이다. 사형제도는 한 나라의 법문화와 인권의 수준을 가름하는 잣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보살의 참다운 길을 생각해 본다. 보살은 깨우침을 향한 쉼없는 노력과 함께 일체의 모든 생명을 구하려는 이념에 입각해서 산다. 이 보살의 실천방법을 부처님은 여섯 가지로 가르쳐 주셨다.

육바라밀이라고 하는데 피안의 세계로 가는 길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바라밀이 바로 보시(布施)이다. 보시는 나눔이요 베푸는 것이다. 돈이나 물건 재물 등을 많이 가진 사람은 더불어 사는 이웃과 자연의 모든 생명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바로 재보시(財布施)이다. 또한 지혜가 많은 사람들은 그 지혜와 진리를 이웃에게 가르쳐 주고 나누어 주는 것을 법보시(法布施)라고 한다. 그 밖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무외시(無畏施)도 있다. 남을 대할 때 친절하며 말과 행동을 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보살의 자비와 보시의 정신으로 사형수의 고통이 없는 정토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우리 불교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하여 사형폐지운동에 좀더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때임을 강조한다. ■

연기영
국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그와 괴팅겐에서 법학을 연구한후 괴팅겐대학에서 법학박사(Dr.jur.)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법학개론(공저)><민법원론><생산물 손해배상책임법><21세기 도전과 전략>등이 있으며 불교와 사회문제에 대한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교와 독일 괴팅겐 대학교 객원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학교 법과대학장, 한국 교수불자연합회 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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