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는 말

“석양을 향해 걷는 나그네의 그림자는 노을을 등지고 길어진다. 이내 어둠이 오고, 잠시 길 떠났던 그림자는 떠오르는 달 아래 선명한 제 모습을 찾는다. …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나그네가 되어 황량한 사막을 헤매던 선구자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리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기도의 응답은 당신의 아들인 나그네의 본성을 일깨웠고 나그네는 사랑과 자비로 중생을 위해 육신의 몸을 버린 위대한 선지자(先知者)가 되었다. … 선지자의 고독한 외침은 잔잔한 파문(波紋)이 되어 많은 사람을 당신의 안식 속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선지자는 돌아갔다. … 선지자를 따랐던 많은 이들은 선지자의 간절한 기도와 충만했던 안식에 대한 그리움을 모아 하나의 형식을 만들었다. 가능한 모든 장엄(莊嚴)을 갖추고 선지자의 가르침을 담았다. … 그러나 가끔은 형식에 너무 집착하여 선지자의 본 뜻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 선지자가 돌아가고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오, 너무나 그립고 닮고 싶은 나의 영웅 선지자여. …”**

라틴어의 ‘렐리지오(Religio)’는 원죄(原罪)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신(神)을 ‘다시 읽기(relegere)’ ‘다시 묶음(re-eligio)’ 또는 성(聖) 아우구스티노의 주장처럼 ‘다시 선택(re-eligrio)’을 뜻한다. 이는 신과의 재결합을 의미하며 ‘Religion’의 어원이기도 하다. 또 ‘宗敎’는 ‘근본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Religion을 동양적으로 해석한 한자의 조합어이다. 즉 宗敎와 Religion은 ‘근본된 가르침에 대한 신앙’이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로 둘 다 ‘종교’라는 이름이다.

종교의 요소에는 보통 가르침과 계율 또는 계명 그리고 행하여야 할 의식 등이 있는데, 이런 종교의 주요한 요소와 함께 오랜 역사와 경전 그리고 기록된 전승(傳承, transmission)을 가진 종교를 좀 더 발달되었다는 의미에서 고등(高等) 종교 또는 세계 종교로 구분하기도 한다. 종교를 문화권 별로 살펴보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중심으로 한 유태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 유일신 계시 종교가 있고 인도-아리안 계열의 힌두교와 불교 그리고 중국의 도교와 유교 등이 있다.1) 물론 이외에도 여러 형태의 종교가 있지만 종교의 요소나 가르침의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고등 종교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 종교를 학문의 대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종교에 대한 이런 분류와 정의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종교 현상(문화로서의 종교)을 경험한 사람들은 종교의 차별성이나 우열에 따른 교학적·신학적 구분보다는 종교가 가진 본래의 목적 또는 종교적 인간으로서의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대중 매체와 여행 문화의 발달로 다양한 종교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쉽게 습득하는 요즘 사람들은 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종교 간의 유사점을 지적하곤 한다. 예를 들면 히말라야의 산악지대를 여행하던 사람이 어느 날 불교 승원에서 들려오는 웅장한 염불 소리를 들으며 가톨릭 미사곡을 들을 때와 비슷한 감흥을 받았다거나 불교 의례에서 불·보살의 가피를 받기 위해 향을 피우고 길을 인도하는 의식인 인로분향(引路焚香)의 모습을 보고 가톨릭의 장엄 미사나 의식 행렬 등에서 본 분향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들이 경험한 종교는 신을 향한 기도나 내면을 향한 자기 수행으로 대변되는 종교의 교학적 방향성과는 달리 종교 의례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영성(靈性) 체험이나 후련함 같은 개인적 체험이다. 즉 이들에게 종교는 종교적 행위(종교 의식, 기도 등)가 주는 카타르시스(Katharsis: 淨化)를 경험할 수 있는 문화적 사건이며, 특정한 이름의 종교가 아니라 종교 행위를 통해서 느끼는 종교 체험이다.

종교 연구나 의례 연구는 먼저 역사학·현상학·사회학·인류학·심리학 등의 연구 경향을 검토한 후에 기원·기능·구조주의적 방법론을 적절히 적용하여 연구하는 것이 기존의 관행이지만 본고에서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적용하지 않았다.2) 왜냐하면 본고의 목적이 가톨릭과 티베트 불교의 의례에 관한 간단한 비교를 통해 종교 의례의 본질적인 가치를 조금이라도 드러내고자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특히 두 종교의 의례를 모두 경험해본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느끼는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Gregorianus, Gregorian Chant)와 티베트 염송(念誦 또는 念佛) 그리고 의례 중에 행하는 분향(焚香) 의식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가톨릭의 고해성사(告解聖事)와 티베트 불교의 칠지작법(七支作法)3)의 수행적 의미가 담고 있는 선(善)과 행복 지향성(志向性)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2. 의례: 자기 완성의 방법을 가진 전승 체계

인류가 종교적 행위를 시작한 원인은 외경(畏敬)의 대상(절대적 유일신에서부터 정령에 이르기까지)에 대한 두려움이나 언젠가는 소멸할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자기 인식과 맞물려 있으며, 인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인류는 군집을 이루어 자기 보존을 위한 공동의 체계를 만들고 자기 정체성(seif-identity)을 효과적으로 전승하기 위한 다양한 형식을 만들어 냈다. 한편 좀더 사색적이었던 유형의 인간은 단지 눈에 보이는 물리적 몸에 의지한 존재 의식으로부터 내적 혹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전환하기 시작했으며 인간의 속성과 현상계에 대한 속성을 하나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불완전하고 영원하지 않은 현상계의 본성을 이해하고 체험함으로써 본래의 자리(本性)를 찾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 시기는 분명 자각의 시대였다.
자각의 시대에 인류가 발견했던 자기 완성의 프로그램을 재구(再構)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유산 가운데 하나는 의례였다. 의례는 마치 생물의 진화처럼, 형식화되기 시작하던 초기부터 종교적 완성의 의미를 담아왔으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당대의 현실에 적응해 왔다. 그러므로 의례 형식에 담긴 의미를 읽고 실행하는 일은 각 종교가 가진 특정한 종교적 완성 체계를 이해하고 현재에 그 본래의 의미를 재구성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다.

이렇게 선지자의 경험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체계화된 종교적 형식 가운데 하나가 종교 의례이다. 즉 종교 의례는 선지자의 완전(完全)에 대한 경험과 신도(信徒)를 인도하기 위한 효율적인 전승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종교 의례는 각각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자각의 체계를 재발견하여 자기 완성의 차원으로 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 의례를 가지고 있는 종교 간의 공통 분모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수행이라는 형식(儀軌)으로 체계화되었으며, 가톨릭에서 신에 이르는 성사(聖事), 즉 전례(典例)로 체계화 된 의례(儀禮, ritual)는 ‘의식(儀式, rite)을 차리는 예법(禮法)’을 말하는데 가톨릭(Catholic)의 전례(典例, liturgia: 민중에 대한 봉사)나 불교의 의궤(儀軌: 의식의 作法이나 儀式書)에 해당하는 용어이다.

1) 가톨릭의 전례
가톨릭의 전례4)는 그리스어 리투르지아(Liturgia)에서 유래한 말로 가톨릭의 ‘가장 성대하고 엄숙하며 거룩하고 존엄한 고유의식’인 미사(Missa)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9세기 이래 지금까지 동방교회(東方敎會: 서방교회인 로마 가톨릭에 대한 지리적 의미의 상대적 용어로 정교회의 대부분을 가키는 말)5)에서 성찬(聖餐: 奉獻儀式)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해 온 전례는 교회가 성서나 성전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의식이다.

전례에는 미사 성제(聖祭: 최후 만찬에서 기원한 하느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성사(聖事: 하느님의 ‘표징(票徵) 또는 상징(象徵)’을 통해 은총을 풍부히 받는 의식으로 세례(洗禮)·견진(堅振)·성체(聖體)·고해(告解) 혼인(婚姻)·성품(聖品)·병자(病者)의 일곱 가지 성사(七聖事)가 있다)·준성사(準聖事: 축복·축원·봉헌·구마(驅魔) 등으로 언제나 기도가 포함되며 보통 안수(按手)·십자성호·성수 뿌림 같은 표징과 함께 진행된다)·성무일도(聖務日禱: 하루에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께 올리는 기도 의식)·행렬(行列)·강복(降福)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역시 미사전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희생한 이유를 끊임없이 반복 재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머물고자 하는 참여의 의식이다.

가톨릭의 전례는 그리스도의 최후 만찬에서 시작하여 오늘날의 복잡한 미사 의식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거쳐왔다. 처음에는 의례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가르침(말씀)과 의식(빵과 잔 예식)이 전부였으나 점차 말씀을 공유하는 말씀전례(독서, 강론, 신앙고백 등)와 성찬전례 등으로 발달하였으며, 395년 로마가 동서로 분리된 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전례가 조금씩 다르게 발전 해오다, 1963년과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례헌장〉을 통해 미사전례를 비롯한 전례 전반에 관한 개혁 원칙과 지침을 제시6)함에 따라 전례의 통합적 기준을 마련하게 되었다.

전례는 가톨릭의 교회 활동의 정점이다. 〈전례헌장〉 10항에 보면7) “전례는 교회 활동의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 나오는 원천이다. 왜냐하면 사도적 활동의 목표는 모든 이가 신앙과 성세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한 데 모이고 교회 가운데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제사에 참여하고 또한 주의 만찬을 먹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과의 계약이 미사 성제(聖祭) 중에 갱신(更新)됨으로써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충동적인 사랑으로 이끌고 불타오르게 한다. 이런 이유로 전례 특히 미사 성제에서 흡사 샘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은총이 흐르고 또한 여기서 성 교회의 모든 활동의 목적인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현행의 전례는 미사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전례의 구조는 미사의 구조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미사 거행에 필요한 제반 요소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8)

① 전례 집회와 그 구성원: 성직자·전례 봉사자·신자 공동체로 구성

② 언어: 사제·봉사자·교우들의 기도·대화·훈화 등 공동체의 말로 주례의 말(기도·인사·대화·권고·강론·훈화·해설 등)과 신자 공동체의 말(환호·기도·성가 등)으로 구분

③ 성가: 성가는 전례가 가진 본래의 의미를 더욱 완전하게 표현하는 데 있으며 단순한 기도 보다는 운율에 따라 기도함으로서 천상 예루살렘을 미리 맛보게 함으로 성가는 전례의 필수불가결의 요소(pars necessaria et integralis litrugiae solemis, 〈전례헌장〉 112항)이다. 성가는 기도를 더욱 감미롭고 뜨겁게 하며 예식을 성대하고 고상하게 하며(〈전례헌장〉 113항) 천상 전례를 반영한다. 성가는 미사 성가 지침과 미사 성가 선택 지침에 따라 구성된다.

④ 동작과 자세: 공동체의 정신과 내적 태도 그리고 집회 공동체의 특성과 일치의 표징이며 각 예식의 의미와 기능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로(〈미사 총지침〉 20∼22항 참조) 존경·기도·독서와 화답 시편·강론·예물 기도·부활·기쁨·깨어있음·활동준비·감사·종말준비 등을 표시하는 서 있는 자세와 예물 준비 예식·영성체 후 침묵 등은 앉아 있는 자세를 하며 경배·존경·기도·겸손·속죄의 의미로 무릎을 꿇는다.

⑤ 침묵: 기도·성가·동작 등과 같이 예식의 한 부분이며 전례의 영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전례헌장〉 30항, 〈미사 총지침〉 23항 참조) 침묵은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하느님과의 내적 내화를 하는 통로이다. 침묵의 성격은 예식에 따라 다르다.(〈미사 총지침〉 23항 참조)

⑥ 집전 장소와 설비: 집전 장소는 성당(ecclesia)과 경당(oratorium)을 말하며 장소의 크기·구조·설비 등은 집회와 성사에 불편이 없으면 되고 제대 칸과 신자석과 성가대석이 마련되어야 한다. 제대(祭臺)는 십자가의 제사를 재현하는 곳으로 미사의 중심 장소로 촛불과 십자가가 놓인다.

⑦ 그밖의 요소: 미사에 필요한 요구들로 미사의 기본 음식인 빵과 포도주 그리고 전례 용구로 성합·성반·성작·성체포·성작수건·성작덮개·포도주와 물을 담아 두는 주수병·손씻는 그릇·수건·종 등이 있다. 또 전례 복장에는 장백의·영대·제의 등이 있으며 백색·홍색·녹색·자색·흑색·장미색 등 색깔에 따라 전례복의 쓰임새가 다르다.

미사를 집전하는 형태는 공동 집전 미사·본당 미사·수도원 미사·단체 미사·소공체 미사·어린이 미사 같이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 전례”와 사제가 봉사자 한 사람만을 데리고 드리는 “회중없는 미사 전례” 두 가지가 있으며, 미사의 구조는 1970년에 나온 현행 미사의 형태에 따른 구조로 ‘시작 예식-말씀 전례-성찬 전례-마침 예식’으로 구성되어 있다.9)

① 시작 예식: 입당(入堂)-인사-참회(懺悔) 및 자비송(慈悲誦)-대영광송(大榮光誦)을 하며 곧 거행될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를 합당하게 거행하도록 인도하고 준비시킨다.

② 말씀 전례: 독서-독서 사이의 노래-강론-신앙고백-보편 지향 기도를 하는 가르침의 전승 예식이다.

③ 성찬 전례: 그리스도의 최후 만찬을 재현하는 의식으로 빵과 포도주를 상징하는 제물봉헌(祭物奉獻)-사제의 봉헌-손 씻음-봉헌 기도 및 감사송-손 얹음-성찬 제정 및 축성문(聖化)-기도-영성체 등으로 구성된 의식이다.

④ 마침 예식: 성찬이 끝난 후 하느님의 복을 비는 강복과 가르침(복음)을 선포하거나 실천하기 위해 떠나는 파견으로 미사를 끝맺는다.

2) 티베트 불교의 의궤(儀軌: 의례 차제)
티베트 밀교(딴뜨라) 의식은 수행의 과정이면서 의례를 통한 전승 방식이기도 하다. 딴뜨라(tantra)는 밀교 수행 전통을 뜻하는 산스끄리뜨어 용어이다. 대부분의 딴뜨라(밀교 경전 또는 밀교 수행 전통)는 서로 다른 수행 방식을 체계화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딴뜨라를 대표하는 하나의 경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딴뜨라의 수행 체계에 맞는 경전과 전승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비록 수많은 딴뜨라의 전통이 있다고 하더라도 딴뜨라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딴뜨라를 전해준 성취자(Siddhi)들의 기본적인 가르침이 다른 것이 아니라, 번뇌(Klesha)와 업(Karma)으로 일어난(生起) 오대(五大)의 조건이 서로 다른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가르침의 내용과 전승 방식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한 티베트 불교의 의례도 기본적인 구조로 도식화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티베트 불교의 기본적인 의례 절차를 만주고샤(Majugosha)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10)

“첫째 깨끗이 씻은 후 대승계(大乘戒)를 수지하고 복덕 자량을 청하여 예경 등을 행하며, 잘못된 행위를 정화하고 청정 계율을 따르며 진언(眞言: Matra)을 염송한다. 이것이 다섯 가지 예비 수습(修習: 닦고 익힘)이다.”

자수생기(自手生起)를 관(觀)하고 본존(本尊)11) 진언을 염송한 후 헌공과 찬탄하는 것이 근본 수습이다.

“회향(回向)하고 보궐(補闕: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며 두 가지 관정(灌頂: empowerment)을 받은 후 상황에 따라 존상(尊像)들께서 머무르거나 돌아가시기를 청하며 이 모든 것을 행한 후에 만다라(Mandala)를 정리한다. 이것이 다섯 가지 회향 수습이다.”

이 16가지 수습은 “십육수습(十六修習)”이라고 부르며 기본적인 구성은 예비 수습·근본 수습·회향 수습으로 되어 있다.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티베트 불교 딴뜨라의 가장 일반적인 구조를 담고 있는 끄리야(Kriya, 作部) 계열의 제7대 달라이 라마께서 제정한 성 천수천안 십일면 관세음보살 관정 입문 딴뜨라(원제: 聖 千手千眼 十一面 觀世音菩薩 뺄모傳統 幀畵 曼茶羅 略禮 入門輯)의 과목(科目)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12)

① 예비 수습: 귀의 발심-법계청사-법계기도문-찰나생기-칠지복덕자량(칠지작법: 頂禮支·供養支·懺悔支·隨喜支·勸請法支·所請住世支·回向支)-지계보유-지계다라니

② 근본 수습: 자수생기(절대본존·소리본존·글자 본존·색신본존·밀인본존·유상본존)-헌공찬탄-진언염송-환본 관상

③ 회향 수습: 보궐게-발원문-서원게-연화 법계 찬탄송

이 딴뜨라의 구조가 지닌 의미를 우리에게 익숙한 《대일경(大日經)》의 간단한 분석을 통해 정리해 볼 수 있다.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大毗盧遮那成佛神變加持經)》의 약칭인 《대일경》의 제1권 〈입진언문주심품(入眞言門住心品)〉에는 다음과 같이 말이 있다.13)

“비밀주여, 이와 같은 아분(我分)은 옛날부터 분별과 상응하여 순리적인 해탈을 희구한다. 비밀주여, 우동범부(愚童凡夫)와 같은 류(類)는 저 양(암수 羊)과 같아 언젠가 일법(一法)의 상(想)이 생할 때가 있다. 말하자면 지제(持齊)이다. 그 소분(小分)을 사유하여 환희를 일으켜서 하나 하나 수습해야 한다.”

여기서 읽을 수 있는 ‘재(齊)’는 유상(有相)의 훈련을 통해 본존의 성스러운 속성을 하나씩 일으켜, 궁극에는 본존 그 자체가 되기 위하여 먼저 해야할 것이 상을 일으키는 것인데 이것은 재를 지키고 지닌다는 의미이다. 이 단계는 정화의 단계로 딴뜨라 예비 수행 단계의 핵심이다. 계속해서,

“비밀주여, 이것이 처음 종자의 선업(善業)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을 가지고 인(因)으로 하여 육재일(六齊日)에 부모·남녀·친척에게 베풀면 이것이 제2의 아종(芽種)이다. 또한 이 보시를 가지고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베풀면 이것이 제3의 아종이다. … 또 다시 비밀주여, 그 계(戒)를 호지(護持)하여 하늘에 생하는 것은 제7의 수용종자(受用種子)이다.”

여기서 계를 호지 하는 것은 ‘재(齊)’의 힘을 통하여 선업이 발생하고 여섯 가지의 보시행으로 탐·진·치 삼독의 장애를 극복하여 계를 지킬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성숙해 간다는 말이다. 정화의 힘을 통해 마치 식물의 열매가 여물어 가듯 계행(戒行)의 생명력을 부여 받기 때문에 하늘에 생(生)하는 씨앗인 수용종자인 것이다. 또,

“그 말한 바에 따라 훌륭하게 안주해서 해탈을 구하면 혜(慧)를 생하는 데 소위 상(常)·무상(無常)·공(空)이다. 이와 같은 말을 따른다면 비밀주여, 그 ‘공’과 ‘비공(非空)’을 알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상(常)과 단(斷)이다. 그는 열반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공’을 요지(了知)하여 단과 상을 떠나야 한다.”

계행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면 본래의 것이 없음을 인식하고 이를 ‘공’한 것으로 알게 된다. 그러나 공을 단지 이해만 하는 수준에서는 다시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 머물러 ‘진공(眞空)’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과 상의 오류를 계속해서 범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놓고 바로 공성(空性)과 결합하여 체득하면 그때 비로서 ‘공’을 체득한 것이다. 그래서,

“또 다시 비밀주여, 영(影)의 예를 가지고 진언의 실지(悉地, Siddhi)를 잘 발휘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얼굴은 거울에 의해서 얼굴 모습이 나타나는 것과 같이 그 진언의 실지도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이미 ‘공’을 체득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가현(假現)된 것임을 알 뿐만 아니라 심상(心想)의 힘을 공고(功高)히 하여 물질적인 모습과 정신적 모습이 똑같이 자유로워 걸림이 없어지고 마침내는 정광명(淨光明)이나 무지개 몸(Rainbow-body) 또는 마하무드라(Mahamudra)와 둘이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는 원만차제(圓滿次第)14)에 의한 대 합일의 경지를 완수하는 것으로 결국 모든 중생을 위해 회향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한다는 등식이 성립되는 딴드라 수행의 근본 원리이다. 이를 다시 정리해 보면, 정화-지계-체공-발현-합일-회향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이 도식은 티베트 불교의 의례가 단순한 종교 의식(儀式)의 조합이 아닌 수행의 정교한 체계임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실제 딴뜨라의 의례의 구조도 이러한 도식을 바탕으로 짜여져 있다.

《대일경》은 또한 〈입만다라구연진언품(入漫茶羅具緣眞言品)〉의 대지(大地) 수습에서부터 〈공양차제법중진언행학처품(供養次第法中眞言行學處品)〉·〈증익수호청정행품(增益守護淸淨行品)〉·〈공양의식품(供養儀式品)〉·〈지송법칙품(持誦法則品)〉을 잘 구성해 놓은 듯한 예비 수습과 근본 수습의 차제(순서)들 그리고 〈진언사업품(眞言事業品)〉의 회향 수습에 이르기까지 형식적인 면에서도 딴뜨라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처럼, 가톨릭과 티베트 불교는 각각의 가르침을 전승하기 위한 정교한 체계를 가지고 있고, 의례라는 형식을 통해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톨릭과 티베트 불교에 나타나는 유사점은 무엇일까? 여기서 의례를 구성하고 있는 몇 가지 요소에 대한 비교를 해 봄으로서 이러한 의문을 풀어 보고자 한다.

3.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Gregorianus)와 티베트 염송(念誦)

“가톨릭 교회가 이미 중세 초기부터 불러오던 그레고리오 성가는 비록 현대인들에게 다소 생소하고 그 가사가 라틴어로 되어 있어 불편한 점이 많지만 예술적 가치로 보나 가사와 가락의 조화 등으로 보아 여전히 가장 좋은 전례 성가이다.(〈전례헌장〉 116항 참조) 비록 음악적으로 보아서는 그레고리오 성가보다 더 훌룡한 것도 있지만 기도문을 전례 의미에 맞게 잘 표현하는 면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아직도 단연 윗자리를 차지한다. 특히 “신앙고백”과 “주의 기도”는 라틴어 기도문에 그레고리오 가락이나 다른 쉬운 가락을 붙인 라틴어 성가를 자주 부르는 것이 좋다. (〈미사 총지침〉 19항 참조)”15)

그레고리오 성가(Cantus Gregorianus)에 있어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그레고리오 대교황(St. Gregorius Magnus, 540년경∼604)에 의하여 체계화된 가톨릭의 전례 음악은 미사를 비롯한 7성사와 성무일도 등 모든 경신행위(敬身行爲)에 사용되고 있다. 물론 그레고리오 교황 이전에도 성가로 불리는 전례 성가가 있었는데, 이 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다성음악(多聲音樂, Polyphoony)의 테마로 사용될 때 부르는 용어인 라틴어 ‘깐뚜스(Cantus)’의 뜻에서 그 기원을 살펴볼 수 있다.

즉 영어 ‘Chant (詩唱)’의 어원인 ‘깐뚜스(Cantus)’는 성경(聖經)의 시적(詩的) 구절을 단조로운 리듬을 타고 기억하기 쉬우며 그 뜻을 잘 음미할 수 있도록 영창(詠唱)하는 소리와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현대 서구의 학자들은 티베트 불교 의식이나 일상에서 경문(經文)을 암송(暗誦)하는 승려를 보고 ‘챈팅(Chanting)’이라는 용어로 묘사한다. ‘챈팅(Chanting)’은 불교 발전의 역사와 함께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모습의 불교 음악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불교 음악이 의례의 형식 속에서 정교해진 것을 불교에서는 ‘범패(梵唄)’, 즉 ‘석가 여래의 공덕을 찬미하는 노래’ 또는 ‘불경(佛經)을 읽을 때 곡조에 맞게 읊는 소리’라고 한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는 그레고리오 대교황 시대 이후의 서방 가톨릭 교회 음악으로 단순한 음율의 ‘깐뚜스(Cantus)’가 복잡한 선율과 엄격한 박자를 지키는 정규 음악으로 발달한 것이다. 그래서 그레고리오 성가는 현대의 다른 복음 성가들 보다 단조롭지만 웅장하고 감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들 한다. 전문가들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성을16) 전례 성가로서 단선율·무반주·전음계(全音階, diatonic)적 음악으로 인공적인 반음요소(chromatic semitone)는 없고 자연적인 반음만으로 구성된 단순하고 고전적인 정감을 주는 음악이라고 한다.

또 그레고리오 성가가 현대 음악처럼 규칙적이고 기계적인 리듬이 아닌 자유로운 리듬을 가지고 있으며 라틴어로만 사용하기 때문에 라틴어 악센트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평온한 느낌을 준다고 한다. 이런 단순함과 평안함은 기도와 전례의 목적에 잘 부합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11세기까지 전성기를 보냈던 그레고리오 성가는 다성음악(多聲音樂)의 태동과 그레고리오 7세(St. Gregorius VII, 1073∼1085 재위)의 개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성경의 원문이 주는 느낌에 충실했던 그레고리오 성가가 르네상스(Renaissance, 문예부흥)시기의 도래로 나타난 세속화(Secularization) 때문에 신(神) 중심의 음악이 당대의 세속 음악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종교 수행에 있어 세속화(Secularization)는 절대 진리에 이르는 방법을 세속적 진리와 타협하는 것과 같다. 종교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이익이나 목적에 의해 변질되거나 가르침의 근본 뜻을 전해줄 스승이 없을 때 세속화(Secularization)는 급속도로 진행된다. 세속화가 심화되면 종교는 선지자의 화신(化身)을 기다리거나 근본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교황 비오 9세(Pius IX, 1846∼1878 재위)가 프랑스의 솔렘(Solesmes) 지방에 있는 성 베드로 수도원(L’Abbaye St. Pierre)에 명한 그레고리오 성가의 복구 작업은 그런 움직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1975년 《로마응송집(Graduale Romanum)》의 출판과 더불어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연구는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가 지닌 명상적 가치는 가톨릭에서 성가를 부르는 본래의 이유―신과의 대화―와 맞물려 있다. 그런 면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는 티베트 불교의 경전 독송(讀誦)과 비슷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티베트 불교의 범패가 가지는 특성도 역시 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성인 자연스럽고 웅장한 소리와 가깝다. 하지만 티베트 범패는 서양적 의미의 음악적 변화나 세속 음악과 섞이는 과정이 없었다. 범패 소리의 전승 방식도 승원을 중심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구전되었다.

티베트 불교의 범패는 5∼6세기에 꽃을 피우고 11세기까지 번성했으며 불교 역사상 최고의 승원대학이었던 인도 나란다 대학으로부터 이어지는 오랜 전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명상 기도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티베트 불교 의례서에는 범패의 가락이 채보(採譜)되어 있는 문헌이 있어서 승원 교육 기간에 범패를 일정한 음율에 맞추어 염송(念誦)하는 교과서로 쓰이고 있기도 하다.

티베트 범패에는 진언 염송과 기도문(請師, 由致, 獻供, 懺悔, 請法, 讚嘆, 勸請, 所請, 回向 등)을 합창할 수 있는 일정한 음율이 있으며 이를 장엄하기 위해 법라(法螺)·바라·요령·북 등의 여러 가지 악기가 사용된다. 범패의 목적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전의 내용을 보다 분명히 전달하고 기억하기 쉽게 하는데 있으므로 승려들이 육성(肉聲)으로 하는 염불(念佛) 소리가 중심을 이룬다. 이에 따른 악기와 장식(裝飾)은 성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기 위한 보조적인 기능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티베트 범패와 유사한 기능과 느낌을 주는 가톨릭의 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라기 보다 오히려 시편(詩篇) 위주로 되어있는 성무일도(聖務日禱)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성무일도(聖務日禱)는 하루에 다섯 번씩(독서의 기도(새벽 기도)-아침 기도-낮 기도-저녁 기도-끝 기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공적(公的)이고 공통적인 기도이다. 초대 교회때부터 함께 모여 기도하던 풍습이 일정한 시간과 의식을 가진 형태로 발전하였으며, 지역에 따라 다르게 행하던 것이 1568년 교황 비오 5세에 의해 《로마 성무일도서(Braviarium Romanum)》가 편찬됨으로써 통일작업이 이루어진 이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 지시에 따라 전면적으로 개정된 교황 바오로 6세의 《시간들의 전례(Liturgia Horarum)》라는 이름의 최신 성무일도서를 출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용한 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수도사들의 엄숙하고 고요한 기도 소리는 마치 히말라야 고원에 있는 승원의 엄숙한 새벽 염불 소리처럼 들린다.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하는 기도 소리는 미사때 사용하는 음악처럼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한 대중의 음악이라기 보다는 하느님의 참 뜻을 깨우치기 위한 수행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수행의 소리라는 점에서 가톨릭의 시창(詩唱: 그레고리오 성가의 엄숙함을 포함한)과 티베트 불교의 장엄한 염불 소리의 유사성이 있는 것이다.

성무일도의 구조는 성무일도가 지닌 수행적 기능을 잘 말해주고 있다. 성무일도는 시간대마다 약간의 내용 차이는 있지만 구조는 거의 차이가 없다. 다음은 아침 기도의 구조를 중심으로 살펴본 성무일도의 구조이다.17)

    ① 도입부(Inclusio): 독서의 기도나 아침 기도에서는 초대송 시편(150편으로된 聖詠)으로 대치되는 기도
    ② 찬미가(Hymnus)
    ③ 시편(Psalmodia): 3편으로 이루어 지며, 끝 기도만 1∼2편으로 구성
    ④ 성경소구(Lectio Brevis): 긴 독서 2개를 포함한 짧은 성경 구절 낭독
    ⑤ 응송(Responsorium): 성경 소구에 대한 응답의 노래
    ⑥ 찬가(Canticum Evangelicum): 복음의 노래들(즈가리야 마리야 시메온의 노래)
    ⑦ 청원기도(Preces): 신자들의 기도와 비슷
    ⑧ 주의기도(Pater Noster): 아침과 저녁에만 하는 기도
    ⑨ 본기도(Oratio): 성무일도의 마침 기도
    ⑩ 강복 또는 결구(Conclusio): 성무일도를 끝맺는 기도

시간대 별로 되어있는 성무일도의 기도는 티베트 불교에서 수행의 시간을 하루에 4번(四分精進, Four Session Yoga) 또는 6번(六分精進, Six Session Yoga)으로 나누어 정진하는 구조와도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4. 분향(焚香) 의식

현대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향(香)은 주로 장엄 미사·장엄 축복·의식(儀式) 행렬·공동 성무일도 그리고 죽은 이를 위한 사도(赦禱) 예절 등에 사용되며 그리스도나 성인(聖人)들의 유물 또는 십자가·제단·성경·관·유해·무덤 등에 향을 태워 올리는 행위인 ‘분향(焚香)’을 할 때 사용한다.

가톨릭에서의 제단 분향은 하느님의 절대성 앞에 흠숭의 예를 드림을 말한다. 교회 예절에서의 분향은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제헌(祭獻)의 신비를 담고 있으며 하늘에 사뢰는 기도, 즉 하느님의 절대권 앞에 분향으로 승복하고 은혜를 간구함을 말한다.18) 이러한 분향의 의미는 티베트 탕카(tankha, 탱화)에 나타나는 구름이나 향로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본존불(本尊佛)과 연결되도록 묘사하여 깨달음과 중생구제를 염원하는 상징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의 분향 방법은 오른손 가슴 높이에서 향로(香爐)의 덮개 근처의 줄을 쥐고 왼손은 향로 줄의 맨끝을 잡고 가슴에 놓는다.

다음에 눈 높이 정도 위로 올려 바깥쪽으로 흔들면서 자연스럽게 분향 대상에게 향하게 한다. 이것을 반복함으로서 분향이 이루어 진다. 분향은 사람의 지위와 물건의 품위에 따라 횟수를 결정하며 몇번 흔드느냐도 결정한다. 이런 예식의 경우 향로는 고정 향로가 아니라 향로잡이가 있는 이동식 향로이다.

이렇게 이동식 향로를 사용하여 분향하는 의식은 티베트 불교 딴뜨라의 관정 의식에서도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달라이 라마가 거행하는 관정 입문식때 먼저 보관(寶冠)·경전·헌공 예물 등의 관정 상징물을 스승에게 올리고 그 상징물을 관정이 진행되는 동안 보관할 곳으로 인도하는 분향 의식은 가톨릭에서 행하는 이동식 분향과 거의 흡사하다. 물론 불교에서는 고정식 향로에 분향함으로써 삼보(三寶)에 예를 올리는 일은 아주 보편화된 의식이다. 헌공 예물 등에 분향하는 의식은 가톨릭과 티베트 불교의 의례에서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이다.

가톨릭에서 첫번째로 하는 분향인 빵과 포도주의 예물에 십자가 형으로 세 번 드리고 원을 세 번 그리는 것19)과 티베트 불교에서 관정 예물을 만달라의 세계로 인도(引道)하는 분향 의식은 거룩함과의 연결을 의미하는 의미나 이동식 향로를 사용하는 형식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외에도 가톨릭에서 묵주나 십자가 성상(聖像) 등의 성물을 축복한 후에 사용하는 것은 불상이나 염주 등을 스승의 가피를 받은 후에 사용하는 티베트 불교의 전통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종교 의례가 일상에 적용된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종교 의례에 사용하는 의례 용구는 의례의 발달과 상징성의 변화에 따라 당대의 문화와 영향을 주고 받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최후 만찬에 사용했던 제구(祭具)와 제의(祭衣)를 그 시대에서 사용하던 식기와 의복을 택했다는 것은20) 의례 용품 사용의 유연성을 말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유연성은 전례 형식의 변화나 상징물의 다양화에 따라 당시의 고급 문화로부터 의례 용구를 차용했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대 전례(典禮)의 원형에 더 가까운 모습을 전승하고 있다는 동방 교회의 전례복은 거의가 흰색이었는데 지금은 전례의 용도에 따라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는 것이나, 최후 만찬에 유일하게 언급되는 전례 도구인 성작(聖爵, calix)이 초기에는 유리잔을 썼는데 아우구스띠노 이후에 고급 금속잔을 쓴 것 등을 들 수 있다. 향로나 분향 의식이 전례에 도입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분향 의식은 아소카(Ashoka)왕의 14번째 석주의 기록에 의하면, 고대 그레꼬-로만(Greco-Roman)의 문화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왕 프톨레미 2세(Ptolemy II)가 고대 인도와 인적·물적 교류를 했다고 한다.21) 이것은 고대 로마 시대의 동방 원정기에 양 문명이 교류했던 흔적으로 볼 수 있다.

가톨릭과 티베트 불교의 의례에서 향을 이용한 분향(焚香) 의식의 공통점은 의례 의식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과 향을 피움으로서 탁한 것을 정화(淨化)하며 선지자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표한다는 것이다. 특히 향을 피워서 나오는 향연(香煙)은 절대 존재 또는 절대 의식과의 합일성(合一性)을 내포하고 있다.

5. 칠지작법(七支作法)과 고해성사(告解聖事)의 수행적 의미

티베트 불교에서 칠지작법(七支作法)은 일상의 기도 의식이나 딴뜨라 수행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칠지작법(七支作法: Yan Lag bDun)은 정례지(頂禮支)-공양지(供養支)-참회지(懺悔支)-수희지(隨喜支)-권청법지(勸請法支)-소청주세지(所請住世支)-회향지(回向支)의 구조로 되어 있다. 각각의 지(支)는 간단한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22)

    ① 정례지(頂禮支): 법계(法系)의 스승들께 절을 올리며 예경(禮經)
    ② 공양지(供養支): 향·꽃·등불·산개(傘蓋) 등을 공양 올림
    ③ 참회지(懺悔支): 신·구·의 삼업으로 지은 탐·진·치 삼독에 대한 참회
    ④ 수희지(隨喜支): 시방에 계신 스승의 공덕에 수희 동참
    ⑤ 권청법지(勸請法支):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께 법을 청함
    ⑥ 소청주세지(所請住世支): 항상 중생과 같이하기를 바람
    ⑦ 회향지(回向支): 이 수행 기도 공덕으로 쌓은 복덕을 중생에게 회향

물론 티베트 불교의 딴뜨라 수행은 만뜨라(진언)·만달라·본존 등을 관(觀)하는 정교한 수행 차제(순서)와 함께 해야 하지만, 이 기도문이 가지는 심오한 의미인 전환(transformation)의 원리를 하나씩 깨쳐 간다면 간단한 게송만을 가지고도 수행의 핵심적인 결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기도문은 일상적으로도 행해지지만 딴드라를 수행하는 이들은 관정(灌頂) 의식을 치른 후 수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칠지작법(七支作法)은 가톨릭의 기도 형식 가운데 하나인 고해성사(告解聖事)와 아주 비슷한 구조와 내용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의식에는 일곱 가지 성사(七聖事)가 있는데, 그 가운데 세례성사는 딴뜨라 입문 의식인 관정과 비슷한 의미인 가톨릭의 입문(入門) 의식이다. 가톨릭 신자가 세례를 받은 이후에 신앙 생활을 하면서 지은 죄를 하느님께 용서 구하고, 교회와 화해하도록 하는 성사를 고해성사(告解聖事)라고 한다. 물론 가톨릭에서는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분을 대신한 사제가 죄를 뉘우치는 자의 말을 들어주고 용서하는 것이다.

이로서 신도는 영적으로 죄를 지은 상태(은총의 지위를 상실한 상태)에서 은총의 지위를 회복한다. 그래서 고해성사는 다시 시작하는 세례 성사의 의미와 같다. 즉 고해성사는 세례와 같이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며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신비체(神秘體)에 다시 결합할 수 있다. 고해성사는 보통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23)

    ① 성찰(省察): 고해성사를 보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잘 살피는 것
    ② 통회(痛悔): 성찰을 통해 알아낸 죄를 뉘우침
    ③ 정개(定改): 다시는 죄 짓지 않을 것을 결심
    ④ 고백(告白): 알아낸 죄를 겸손히 고해 사제 앞에서 밝히는 것
    ⑤ 보속(補贖): 죄를 사해 주는 고해 사제가 죄의 고백을 들은 다음 정해 주는 기도나 선행 또는 희생 등을 말하며 이를 이행함으로서 죄의 사함이 확실해 진다.

고해성사는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보호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항상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것으로 티베트 불교의 칠지작법(七支作法)이 가지고 있는 수행적 형식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러한 고해성사의 형식이 티베트 불교와 다른점이 있다면 티베트 불교는 딴뜨라의 수행을 통해 수행자 스스로를 본존의 모습으로 전환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행성사와 함께 가톨릭 전례의 핵심인 미사의 순서에 나타난 미사곡의 구성도 칠지작법(七支作法)의 구성과 유사한 면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사는 ‘시작 예식-말씀 전례-성찬 전례-마침 예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 각각은 시편과 성경의 구절을 가사로 만든 것이다. 내용을 살펴 보면 주께 귀의하고 찬미하며 은총을 구하고 정화(聖水禮節)를 하며 대영광의 노래를 부른다. 또 천국을 맞이하여 믿는자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며(본기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의미를 되새기는 말씀의 의식(말씀 전례)을 하고 최후만찬의 성스러움을 재현하며(성찬 전례) 다시 한번 주의 영광을 찬미하고 강복을 구하며 복음을 전하러 떠남으로서 끝을 맺는다.

이와 같은 미사 전례의 기본 구성은 결국 신에게로의 귀의를 통한 평화를 일상에 끊임없이 재현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티베트 불교의 칠지작법과 마찬가지로 가톨릭의 미사와 성사도 성스러움과 마음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수행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6. 맺는 말

가톨릭과 티베트 불교 의례의 몇 가지 비교를 통해 본 것처럼 형식상의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수행의 원리가 가진 방향성은 조금 다르다. 가톨릭이 처음부터 절대 유일신에게로의 귀의라는 대상 지향적이고 신 안에서의 평화를 구하는 종속적인 기도 형식을 가지고 있다면, 티베트 불교는 내면의 자각을 통해 공성을 체득하고 중생 구제를 위해 선지자가 되려는 깨달음 지향적 수행 방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방향성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과 티베트 불교는 종교라는 큰 범주에 속한 문화 현상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이 공통점은 인류가 발전 시킨 의례라는 전승 방식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본문에서 우리는 가톨릭과 티베트 불교의 의례를 접해 본 사람들이 느끼는 유사점을 살펴 보았다. 이 비교에 나타난 것은 두 종교의 의례가 선지자에 대한 흠모를 의례의 형식 속에 담고자 했던 의도에 있어 유사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고요한 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수도사들의 엄숙하고 고요한 기도 소리가 마치 히말라야 고원에 있는 승원의 엄숙한 새벽 염불 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가톨릭의 시창(詩唱: 그레고리오 성가의 엄숙함을 포함)과 티베트 불교의 장엄한 염불 소리가 모두 수행 음악이라는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가톨릭과 티베트 불교의 의례에서 향을 이용한 분향(焚香) 의식을 하는 이유가 정화(淨化)와 절대 존재 또는 절대 의식과의 합일성(合一性)을 내포하는 신앙을 표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과 역사 속에서 향과 분향의 의식이 근동에서 남아시아까지 오랜 세월 동안 공유해 왔던 종교 의식 가운데 하나라는 것도 두 종교의 유사성을 느끼게 하는 이유로 보인다. 그리고 티베트 불교의 칠지작법과 가톨릭의 미사나 고해성사의 구조가 성스러움과 마음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는 수행의 성격에서 두 종교 의례·의식의 유사성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종교와 종교 의례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데는 수많은 현대의 분과(department) 학문적 방법론이 있다. 하지만 ‘종교적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을 우선 순위에 두고 종교나 종교 의례를 파악한다면, 인류의 수행적 본능이 종교와 종교 의례 속에 담겨져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본능이 각 종교의 토대에 맞도록 종교 의례라는 형식을 만들어 냈고 이 형식이 선지자의 근본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정교한 전승체계(Trans-mission-System)로 발달한 것이다. 이는 결국 인간의 본성을 선(善)과 행복 지향성(志向性)을 가진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경계해야 할 것은 종교가 조직을 가지고 발달해 온 이면에는 항상 부패와 타락의 연계고리가 있었으며, 그 한가운데 종교 의례가 있었다는 점이다. 종교 의례가 종교 조직이나 종교를 이끄는 지도층의 이익을 위해 너무 화려해졌을 때는 타락으로 흘렀고, 종교 의례를 도외시 한 채 현학적 탐구에만 몰두하면 종교 자체가 쇠락하곤 했다. 그래서 종교에 있어 종교 의례는 항상 적절한 수위를 유지하면서 종교를 일으켰던 선지자에 대한 그리움을 잘 담아낼 때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 ■

최로덴
동국대 인도철학과 졸업. 현재 인도 국립박물관 연구소 박사과정. 티베트학-박물관학 전공. 논저서로 <An introduction to kalachakra, Tantra A Collective Symbolism of Kalachak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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