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있는 원칙, 아름다운 원칙

편집자 주

한국불교는 지금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오늘의 현실 사이에서 참된 불교정신을 지향하고 있는가? 급변하는 시대와 함께 한국불교는 본래의 자리를 벗어나 방편적, 신비적인 면에 치우친 채 잘못된 불교를 전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신적 권위로부터 해방을 선언한 불교가 잣대를 딴 데 두고서 돌아올 때, 신불(神佛)에 빌며 현실을 놓치고 있을 때, 희론(戱論)에 매달려 갑론을박할 때, 원칙 하나라도 분명하다면 이것이 바로 밝은 빛이지 않겠는가! 본지는 20년 동안 강남포교원을 이끈 성열 스님을 만나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이 무엇이며, 한국불교가 지향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별을 보고 가는 사람은 행복하다, 가다가 웅덩이에 빠지더라도. 별빛을 보며 길을 찾는 사람은 더 행복하다, 가다가 웅덩이도 볼 것이므로.

한국불교는 지금 무엇을 보고 가고 있는가? 부처님의 본래 가르침과 오늘의 불교현실 사이에 그 틈이 너무 벌어져 있다고도 말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변해야 산다는 외침은 불교계의 위기의식으로도 대변될 것이다.

그런데 변화한다며 비불교적이고 서양종교식으로 되어가거나 길이 아닌데도 방편이라고 끌어대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곡해해서 정법인 양 덮어씌우기라도 한다면 이 또한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말법 시대 혼돈을 헤치고 나갈 길을 묻는다. 스스로 부정하는 질문을 던져 근본적 문제를 찾는다. 불교가 중흥하고 불교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고민한다. 그래서 이 시대에 불교가 정신적·사상적으로 힘있는 대안이 되려면, 분명 양적 팽창과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강남포교원의 성열 스님을 찾아뵙고 그 동안 남다른 노력을 들어보고 새로운 길과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전법의 날에

낙엽도 길을 떠난다. 나무들 일생에서 한 해를 짊어졌던 이파리들이 뿌리와 몸통이 있는 집을 버리고, 왜 떠나는가? 해마다 반복되는 생노병사, 그 계절의 타성을 벗어나고자 낙엽도 말하고 싶은가?
불교계에 풀잠자리 알 ‘우담바라’ 우상화가 심심찮게 반복되고, 초대형불사에 대한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방생법회, 천도재, 예수재가 불교의 모습을 대변하듯 행해진다. 한국불교의 그런 일상의 모습을 박차고, 20년 전인 1982년 9월 성열 스님은 다른 길을 간다고 선언하고 포교원을 열었다.

처음 성열 스님을 뵙던 날은 10월 13일이었다. 말씀 중에 이 날이 바로 음력 9월 8일 전법의 날이라 특별히 기념하는 법회가 있었다는 것이다.

“현장 번역의 〈아비달마대비바사론〉에 보면, 카르디칼 반백(半白) 8일에 부처님이 설법하여 교진녀가 눈을 떴습니다. 이 날을 환산하여 우리 포교원에서 전법일로 기념합니다.”

종단의 중요 역할 중에 하나가 포교인데 전법일도 없다며, 어디서도 이 날을 기념하지 않는다며, 스님은 안타까운 듯이 지적했다. 처음 들어보는 불교명절이라 귀가 쫑긋해졌다. 강남포교원 입구 벽에 박혀 있던 전도의 선언문 동판이 떠올랐다. 이유가 있구나….

“전도의 선언: 나는 이미 천상과 인간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이제 너희들 역시 천상과 인간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너희들은 마땅히 중생 속으로 나아가 법을 전하라. 법을 전하러 갈 때 짝지어 다니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씩 흩어져 다녀라. 나도 우루벨라로 가서 중생들에게 법을 전하리라.”(마하바가)

우리가 갖고 있는 무수한 편견·오만·오류를 생각한다면, 인간사회와 신성(神性)의 권위로부터 오는 모든 굴레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는 얼마나 간절한가! 부처님 당시, 엄격한 계급사회 질서나 그것을 진리로 믿게 하는 바라문들의 신학은 도전할 수 없는 권위였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법과 제도, 그럼에도 그것이 고통을 낳는 굴레가 되는 현실을 부처님은 근본에서부터 의심했다. 부처님은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는 모든 권위를 부정했다. 해방, 해탈은 바로 가장 현실적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부처님이 무엇에서 해방되었는지, 부처님의 문제의식과 우리의 문제의식이 출발에서 얼마나 다르고 멀리 있는지, 우리는 확연하게 모른다. 우리가 있는 지점을 정확히 보기 위해 부처님을 좌표로 해서 물어야 하지 않을까? 흔히 말한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많아서 오늘 이런 일이 있는지…. 그처럼 업보와 전생은 불교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불행을 당하여, 현실의 고통 문제를 인식하고 풀어 가는 방식을 알 수도 없는 과거 전생에서 찾는다는 말이다.

- 부처님은 전생을 말하지 말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어디까지나 경전에 의해서 말할 수밖에 없지요. 부처님은 10가지 무기라 하고, 용수는 13가지 무기라 해서 《대지도론》에서 밝힙니다. 무기에 속하는 것은 우리 인식이나 경험의 영역을 벗어난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판단 유보합니다. 오늘날 불교를 말하는 사람 중에 부처님보다 더 깊이 깨달았는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침묵한 것을 ‘이렇다’고 언급합니다. 가르침에 혼란이 오게 하지요. 전생이나 내생은 우리 경험 영역이 아닙니다. 그런 얘기를 한 사람은 납득이 안 됩니다. 불교공부를 한 것인지, 이미 깨달음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것인지, 점쟁이인지….

- 부처님이 말씀하지 않았다고 없다고 봐야 하나요?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이므로 침묵한 것은 아닌가요?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고 열반에 가는 길도 아니며, 수행자의 자세도 아닙니다. 소위 칸트로 비유하자면 전생을 말하는 것은 실천이성비판에서 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을 요청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인식의 영역과 방편적 요소를 구분해서 봐야지요.

‘있는 그대로 보는’ 깨달음에 이르는 입장에서 침묵할 것을 침묵했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당시 인도에 보편적 신앙을 도입합니다. 물론 그것을 재해석했지요. 당시 많은 용어들을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에서 두루 썼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침묵한 부분은 현대과학에서도 여전히 같습니다. 부처님의 인식방법은 현대과학과 다를 바 없습니다.

스님의 이런 강조는 부파불교, 대승불교, 중국불교 등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의 현실 속에 들어와 있는 비불교적 요소들을 가려서 봐야 한다는 말이다. 즉 초점을 잃어버린 불교의 근본문제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생·업보·윤회·하늘사람(天人)·지옥… 이런 말들은 당시 세계관·우주관을 담고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세계 인식을 반영한다. 부처님은 그런 개념을 방편으로 빌려 썼지만 부처님의 인식 내용과 깨달음 자체와는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다시 말해 지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지옥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생각을 징검다리 방편으로 삼아서 깨달음으로 건너가게 한 것이다. 스님의 입장은 그런 점에서 아주 단호했다. 여기서 전법의 길을 다시 묻는다. 무엇을 가르치고 전할 것이냐고, 새롭게 볼 눈이 있냐고…….
정법, 어디에 근거를 두는가

- 사실과 방편을 혼동하고, 불교 속에 깊숙이 파고든 힌두교의 만신(萬神)들, 온갖 토착신앙의 요소들을 용납한 것까지 모두 불교라 할 수 있습니까? 이 문제는 정법과 사법의 선택을 요구하는 것 같은데, 그 근거를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는지가 근본 문제지요. 《불교평론》에서도 대승불교의 불설·비불설 문제를 다룬 적이 있지요. 우리 나라에서 불교 공부한 사람들은 대부분 대승경전을 통해서 합니다. 그것은 여러 면으로 힌두교적 영향을 받고, 인식의 측면에서 석가모니의 입장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법과 사법의 판단은 적어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을 생생하게 전하는 초기경전에 근거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 대승경전과 초기경전의 인식이 다르다는 말씀이군요.
많은 부분에서 다릅니다.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내용을 대비하면, 전자는 경험론적이고 후자는 관념론적입니다. 붓다관에서는 역사적 실존자로서 깨달은 자로 보느냐, 역사적 의미보다 신격화한 부처로 보느냐는 차이가 있습니다.

- 신격화라뇨? 《금강경》에 모습으로는 여래를 못 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경전을 석가가 일생에 실제로 설했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입니다. 대승경전은 그것을 편집할 역사적 당위와 현실적 요건이 있었습니다. 그 점을 살펴봐야 하지요. 《금강경》이 등장한 때는 불상신앙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이후였습니다. 석가 멸후 수백 년 동안 무불상시대였는데, 불상신앙을 받아들임으로써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것을 경계하여 《금강경》에 그렇게 말한 것이죠.
또 하나, 《금강경》에 부처님과 수보리를 등장시킨 것에도 이유가 있죠. 《증일아함경》에 보면 부처님이 쌍까사 지방에 계실 때, 당시 비구·재가자들이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모두 그곳으로 갔습니다. 수보리는 그 당시 왕사성에 있었는데, 부처님을 찾아가려고 하다가 그만둡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뭐냐, 결국 육신이라는 것은 무상한 것이다, 그렇게 법을 모습에서 찾지 않은 겁니다. 이러한 수보리의 깨달음이 부처님과 다르지 않으므로 훗날 질문자로 등장시킨 겁니다. 《금강경》을 읽을 때, 이와 같은 문맥은 초기경전을 공부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차이에 대한 스님의 말씀은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구별해야 한다는 강조였다. 픽션이란,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필요에 따라 부처님 가르침을 ‘해석’하여 재구성했다는 뜻이다. 스님은 많은 사례를 들어 비교하며, 결국 직시해야 할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했다.

부처님이 “이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은 오로지 고통에 가득찬 인생을 직시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말할 뿐이다.”(《이라타경》 ; 성열 엮음, 《부처님 말씀》, 현암사, 2002, 18쪽)고 했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경험을 떠난 관념적 세계(극락세계)로 흘러가면 대중들에게 어려워지고, 불법을 실질적인 문제로 접근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스님의 선택은 분명했다. 강남포교원에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상, 탱화 등은 찾아볼 수 없다. 불상은 오직 석가모니 부처님상뿐이다. 정근 역시 석가모니불만 한다. 가르침의 중심을 석가모니 부처님에 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 묻는다

오늘 우리 불교는 결국 인간 고타마 붓다에 대한 연구여야 합니다. 우리가 대승불교를 하다 보니까 고타마 붓다가 없어져 버렸지요. 그래서 불교는 역사성도, 현실성도 잃어버렸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심리학적, 사회학적 문제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전자는 부처님 당시 인간이나 지금 인간이나 달라진 것은 없지요. 그러나 사회학적 문제는 사회가 달라졌으니, 오늘의 현실에 대입해 잘 파악해서 봐야 합니다. 부처가 여기 왔다면 뭐라 할 것인지, 싯달타가 당대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실천했는지, 우리는 우리 시대 사회적 문제를 잘 봐야 우리 시대 붓다의 메시지를 얻습니다.

불교공부를 바르게 하기 위해 스님은 3가지를 내세웠다. 첫째, 붓다시대의 역사를 정확히 봐야 한다. 위대한 인간이라도 그는 시대반영이다. 둘째, 붓다가 일생을 어떻게 살았느냐를 살펴야 한다. 셋째, 설법은 그 시대 구체적 인물에게 한 것이다. 일자무식자, 지식인, 노예, 정치가 등 각기 질문자 입장이 다른 것이고, 대답은 그 배경에 따라 나온다. 그래서 경전마다 첫머리에 사실에 근거하는 6성취가 있다.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를 말하는 이런 자세는 불교를 철저히 역사와 현실 속에 놓고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 불교가 시대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고, 오늘은 우리 시대, 자신의 현실에서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용수의 시대대로, 세친의 시대대로 각기 다른 눈으로 해석하는 사회적 환경이 있었지요. 그것을 무시하면 잘못 이해하게 되죠. 한용운 스님은 일제강점기를 이해하지 않고는 잘 알 수 없죠?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러면 역사 공부하다가 내 공부는 언제 하죠?
일반신도도 그렇게 공부하란 뜻은 아닙니다. 불교를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그렇게 세세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결국 처음도 끝도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느냐는 문제입니다.

- 깨달음과 그것을 지향하는 수행에서 교학과 선학이 종종 다르게 보는 것 같아 그 차이를 물었다.
글쎄, 그것을 다르게 보는데, 그것은 선종의 영향입니다. 불립문자 언어도단, 이런 메시지 역시 그 시대의 반영입니다. 상황이 바뀌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지요. 왜 중국 선종은 그와 같은 슬로건을 걸고 나왔느냐, 이것을 물어야지, 지금도 같은 방식과 같은 질문을 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 한국불교 선종의 무지는 답습에 있습니다. 역사적 문맥을 배제한 채 부처님 말씀을 경시하는 풍토에서 불교라는 잣대는 전혀 다른 데로 가 있게 되었지요.

한국불교의 문제

불교의 잣대가 다른 데로 갔다는 것은 그대로 한국불교의 난맥상을 말한다. 어떤 방편이라도 좋다. 묏자리, 꿈자리 때문에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고 나니 편안하더라, 이고득락(離苦得樂)이니…, 이런 문제를 스님은 종교의 심리학적인 효용론으로서는 동의했다. 하지만 잘못된 불교를 전해 사람을 괴롭히는 일도 많으며, 깨달음은 그것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 오늘날 정법의 포교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첫 메시지는 ‘귀 있는 자 들으라. 자신의 낡은 믿음을 버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낡은 믿음을 버리고 있습니까? 과거 우리 할머니 시대에는 성황당을 지나다가 돌을 던지고 절하는 것이 위안이 되었지요. 당시는 보편적이라 누가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것은 민속적 차원에서 민속이라 하고, 깨달음의 경지에서 보면 어리석음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등정각·여래·정변지라 하는데, 등정각은 보편타당하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불교는 이 절 저 절 다 그렇게 하는 것이라 보편성은 있지만, 타당성에서는 많은 의심을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재는 보편적이지만 우리 인식에서 타당한가를 의심해 보고 질문을 해야 합니다.

스님은 일관성 있게 보편타당한 과학적 인식 가운데서 깨달음의 문제를 보았다. 신비적, 초월적, 관념적, 형이상학적 문제는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우리 인식이 현상적인 것과 관련이 있으므로 물리학이 주는 타당성을 무시하는 불교는 미신으로 취급당할 것이란 말이다.

- 과학적 진리가 완전히 정복된 것이 아닌데 어떻게 믿죠?
《금강경》에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즉 오늘날 우리는 늘 새로운 인식으로 새롭게 구명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완전 정복된 진리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것이다’라고 단정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불교란 깨달은 자의 지혜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불교를 부디즘(buddhism)이라고 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데, 어떤 카테고리를 설정하고 거기에 가두어 넣어버리는 ‘이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깨달음은 파알리어로 야타부탐빠사나티, 즉 있는 그대로 직관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마다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 깨달음은 그것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목표입니다. 부처님은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그 후에도 계속 정진하여 깨달음을 유지했습니다. 수학자 목갈라나가 수학에서는 덧셈, 곱셈, 나눗셈을 단계별로 가르친다며, 부처님은 어떻게 하는지 물었습니다. 부처님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사다리를 놓고 차례 차례 올라가듯, 목표를 향해 하나하나 나아갑니다.

- 스님이 부처님을 대신해 가르칠 수 있는 위치란 무엇을 말합니까? 부처님처럼 가는 것은 깨달음의 경지를 얻어야 하고 교화 방편의 역할을 해야 하는, 수행과 포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 당시에도 비구가 할 일은 두 가지, 즉 자기 수행과 포교라고 했어요. 오늘날 비구는 수행자가 아니고 사제의 역할로 전락한 것이 문제입니다. 엄격하게 보면 부처님 시대에 없는 일이지요. 불공의식은 부처님이 살아있을 때와 같은 정신을 이어가는 역사적 관계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제도와 형식적 의식만 남았어요. 불사란 ?다짜리아라 하는데, 부처님을 섬기는 일, 부처님이 하시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불사는 목수를 모아 짓는 일에만 주력하고, 가장 중요한 법의 전파에는 무관심합니다.

- 불공, 불사가 이뤄지고 있는 오늘날 관행들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먼저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느냐, 이것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세상을 보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 이것이 불교수행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자체를 모르니 문제입니다. 《천수경》으로 예불을 하고 있듯이 관음신앙이 일반화해 있었는데, 요즘 보니 지장보살을 앞세워 영가천도를 일반화하고 있지요. 불교를 앞세운 상업주의가 발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영혼주식회사’라고 했더군요.

- 불교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대승불교는 힌두교가 국교가 된 굽타왕조시대 이후 일입니다. 대승불교는 자구책으로 힌두이즘을 마구 받아들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이 쳐들어온 것 때문이라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힌두교를 비판한 불교가 힌두교의 논리로 다시 들어갔으니, 불교의 설자리가 어디 있었겠어요?

- 그렇더라도 오늘 현실에서 낙태아(수자) 천도 같은 일은 생명 존엄성을 이해하는 방편이지 않습니까?
그건 일본불교에서 따온 것이지요. 불살생은 모두 안 죽여야 한다, 절대로 안 죽인다, 그 뜻이 아니고 그 또한 연기로 보아야 합니다. 낙태 현상은 살인이지만 지구란 측면에서 항상 타당하냐고요. 모두 다 낳으면 지구는 어떻게 합니까? 오늘날 우리 시대 문제는 서로 연계된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 생명문제, 낙태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 자연과학적 진실은 실험으로 검증이 되고, 가치의 문제는 많은 사람의 공감대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답은 유보되고 있습니다. 현실 문제는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부처님과 산자야의 차이에서 드러납니다. 산자야라는 외도는 윤리적 명제까지도 판단불가능하다고 했지요. 부처님은 선악을 윤리적 문제로 답합니다. 오늘날 우리 전체 삶에서 그것이 바람직한지 물어야지요. 이것이 선의 문제입니다.

- 바람직함이란 도덕적으로는 선악으로, 미학적으로는 미추로 나눠지고, 절대적 기준이 없다면 무엇이, 누구에게 바람직한가, 발전 성장이냐, 환경과 삶의 질이냐, 재벌이냐, 노동자냐, 대중이냐 등 어느 입장에 서느냐가 문제이지 않습니까?
오늘날은 이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이 우리 삶을 결정합니다. 문제는 정치하는 사람은 정치만 보고, 각각 자기 분야만 보지요. 그것이 어울려진 것이 삶인데, 종합적인 사고를 하지 않지요. 불교는 그런 삶의 관계 속에서 바람직한 길을 찾는, 결국 인간문제이고 인간학이지 않겠습니까?

- 불교 안의 내용만으로도 길을 못 열고 있는데, 사회문제에 눈 돌릴 겨를이 있습니까?
책임을 묻자면 고승에게, 불교학자에게 있습니다. 불교학자는 ‘제품’을 좀 내놓아라, 우리는 저 시장바닥의 소매상이다, 현실문제에 대해 불교를 이끌어 가는 고승이 원로회의를 하든, 거기서 답을 줘야 합니다. 그게 안 되니… 일반 신도한테는 자기가 다니는 절의 스님 얘기가 불교입니다. 산신기도처는 산신기도가 불교이고, 입춘기도처는 입춘기도가 불교입니다.

법사, 출가자의 역할

- 스님은 하실 일이 많습니다. 제품도 만들고, 팔기도 하고…… (웃음).
불교학자는 가방 끈 긴 분들이 할 일이죠. 그런데 그들이 해야 할 일, 이를테면 예수재가 불교교리에 맞는지, 안 맞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은 현실문제로 돌아가서 이해관계입니다. 저게 정법이 아니라면서 자기 절에서는 합니다. 신중기도 안 하면 사람들이 헷갈리죠. 한번 그 고비를 넘어설 생각을 안 합니다. 안티조선하면서 조선일보를 보죠. 검소하게 살자면서 호텔에서 만찬을 하죠. 소위 말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내는 모습입니다. 80년대, 대학생들에게 말했지요. 사회정의를 세우는 일을 평생한다면 정말 존경하겠다고. 그런데 아니더군요.

- 지속적으로 실천할 힘이 있어야지요? 그 힘이 어떻게 나옵니까?
현실문제를 바르게 인식하는 깨달음이 힘이라면 힘이지요. 부처님처럼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우리 법당은 처음부터 탱화도 없고, 선방에는 사유상, 설법전에는 설법상, 대웅전에는 항마상 부처님만 모셨지요. 부처님을 기리는 4대명절과 전법기념일, 수요일·일요일 법회를 중심으로 공부합니다. 관음재일, 지장재일, 칠석 기도, 방생법회, 가사불사 등은 아예 해 본 적도 없습니다.

- 법회는 법사인 스님이, 재정관리는 재가자가, 그 역할을 엄격히 분리했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재가법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한국불교가 바로 서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스님이 바로 법사인데, 법사 따로 있고, 중 따로 있으니… 출가자가 그 역할을 다하면 그런 문제가 나올 이유가 없지요.

-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불교가 현실문제 속에서 실천하려면,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고 스님만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전문분야 재가법사가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양보할 생각이 없습니다. 법사의 최고 자리는 부처님이죠. 재가자가 법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출가자가 왜 독신의 삶을 요구받겠어요. 불교를 연구 수행하는 데만 매달려야 하는 사람입니다.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자기 역사 안에서 대리자로 나선 자입니다. 그래서 현성의 표시로 가사를 입습니다.

- 오늘날처럼 복잡한 시대에 어떻게 현실문제에 다 답할 수 있겠습니까?
불교의 정체성은 부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분석하며 대안을 내놓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세속적 이해와 상치되는 의견이라 하더라도 부처님 말씀에 의거해야 합니다. 설법을 하면서 내가 무슨 경에서 인용한다고 일일이 밝히는 것은, 법관이 법조문에 의거해 판결하듯 부처님 말씀에 근거를 두기 때문입니다. 선거가 문제되면 스님이 법학, 정치학을 공부할 수 없지요. 내 전공에서는 1인자란 자부심을 갖고 그 외의 분야에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되지요. 그러나 그것을 법사 문제와 섞어서 말해서는 안 됩니다.

- 스님이 생각하시는 우리 시대 출가자의 원칙과 의미는 무엇입니까?
스님은 단지 머리 깎은 일로 존경받을 수는 없습니다. 스님으로서의 권위 중에 지적 권위는 현실문제를 부처님 말씀을 통해서 진단하는 것에서 나오고, 도덕적 권위는 불교적 양심에서 어떤 경우나 권력·부 앞에서도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자신감에서 나옵니다. 불교 중흥을 부르짖으면서 승가교육은 제대로 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정예화가 절실합니다. 캄캄한 밤에는 별 하나도 밝은 법입니다.

별 하나의 의미

‘별 하나’의 의미가 무소의 뿔같이, 외로운 듯하지만 가야 할 길은 선명하게 가리키는 것처럼 다가왔다. 강남포교원이, 성열 스님이 독특한 길을 간다고 막연하게 알고 있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들었을 때 받았던 그런 느낌이었다. 또한 부처님과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불자들의 결택(決擇), 우리 시대의 지계(持戒)가 화두로 떠올랐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곳이 불교집안이라는 어슴푸레한 빛깔, 깨달음이 목표라고 하면서 당당히 말할 깨달음이 없는 더듬거림, 그런 속에서 부처님의 실존을 지금 여기 인간으로 불러내 물어보자고….

오늘날 사부대중이 이루는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지, 이것은 우리 시대의 계율이 될 터이다. 이 점에서 강남포교원은 사례연구가 되면 좋을 것 같았다. 이 지면은 일종의 탐색이라는 한계가 있으므로, 물어본 내용만 간략하게 요약·정리할 수밖에 없겠다.
우선 스님을 속사(速寫)하듯이 그려보자.

승가는 곧 부처님 분신인 정신적 지도자이자 교육자이다. 붓다의 생생한 모습과 가르침을 전하는 《아함경》은 꼭 공부해야 한다. 법회는 꼭 지키며, 그 내용은 부처님처럼 보고 생각하며 실천하는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게 활자로 남겨 객관적 검증을 받게 한다. 법을 올바르게 전하지 못하는 ‘유사 불교’, 관행만 답습하는 불교는 하지 않는다. 현세이익을 구하는 기복 의례는 없다. 입시기도는 부모의 불안한 마음을 공부하게 하고, 수험생에게 간섭을 덜하라고 한다. 지혜를 밝히는 의미로 스님도 보시하고 연등도 달며 24시간 꺼지지 않는 인등도 단다. 사찰의 주지이면서 스스로는 하지 않고 신도에게만 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신도나 승려나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데서는 동등하다. 재정 관리는 재가자에게 맡기고 월급이 아니라 판공비를 받아 쓴다.

포교방편의 핵심은 교육이다. 무지는 악의 뿌리이고 그 극복은 교육뿐이다. 포교원에 오라고 전단지를 돌리거나 광고를 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변화를 통해 가족과 이웃에 법을 전한다. 사회 변화는 자기 변화에서 나오는 것이지, 거리로 뛰쳐나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수준에서 민주사회변혁이 온다. 스님은 사회문제를 바르게 보고 실천하도록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조선일보는 80년대에 끊었는데, 동아일보는 탈세 사건 때 끊었다. 삶의 진정한 의미에 눈뜨고 세계의 흐름을 보는 게 불교다.

신도의 집에는 환자가 있거나, 시달림을 가야 하거나, 정식 초청이 있어야만 간다. 절 일에 속가의 인연을 끌어오지 않는다. 인간적이면서 진솔하고 법답게 사는 것, 결국 불교는 인간학이다. 불교는 세속학문이 추구하는 지식에서 더 나아가 죽음까지 아우르는 자기 성찰과 실천이다. 보편타당한 길을 가고자 하는 원칙이 서면, 어떠한 관행의 권위도 버리고 머뭇거리지 않고 간다. 뜻과 행동을 같이 한다. 이 시대 포교에서 기본으로 삼을 책은 첫째 《부처님 말씀》(출간), 둘째 《붓다의 생애》, 셋째 《불교의 교리》로 정리한다.
스님은 소탈하면서도 법사의 권위에 대해서, 실천에서, 정말 원칙이 확고했다.

강남포교원 소묘

1982년, “바르게 배우고 용기 있게 실천하여 밝은 등불이 되자”는 기치 아래 서울교대 근처 상가 일부를 임대하여 개원했다. 장차 교육에 앞장설 대학생과 서울의과대학생이 포교 대상이었다. 어린이와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라도 불교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출발은 한국불교를 위기상황이라고 보고 그 활로를 부처님의 근본사상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부처님 근본사상을 철학적 토대로 삼고 신대중불교운동을 폈다.
현재 역삼동 포교원은 모두 신도들의 자발적 힘으로 세웠다. 법회는 교육과 포교의 기본적 장이 되고, 신도는 매주 정기법회에 참석한다. 참불자는 한글경전읽기를 생활화한다. 또한 사주, 관상, 점을 보는 행위 등 일체의 비불교적 관행을 단호히 거부한다.

사회봉사, 강남포교원에 구애받지 말고 하라. 그냥 가서 하라. 이름을 내지 말라. 수입이 많거나 적거나 평생 후원하는 곳을 정해 일정하게 기부한다(신도의 의무이다).

봉사와 후원, 사회변화를 위한 시민운동, 이런 실천은 거리로 나가는 데모와 같은 방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무지에서 깨어나 자기변화가 있음으로써 시작된다. 민주시민의식이 깨어있고, 현실의 고통과 모순을 직시하는 근본적인 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회 참여는 자기 삶 속에 스며든 수행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의미여야 한다. 이름과 모습의 어떤 편견도, 이념과 종교의 차별도, 지연과 혈연에 끌림도 없이, 어떠한 벽도 없이,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게 바른 믿음으로 가는 불자의 길!

그 길이 어렵다 하겠지만, 최소한, 평생 일정한 후원을 하는 정신이라면, 이것이라도 왜 하는지 알고, 그렇게 끝까지 가는 힘이 있다면 전도의 선언에서 “짝지어 다니지 말고 한 사람씩 흩어져 다녀라”는 의미가 희미하게나마 잡힌다. 사람들 삶 속에 스며든 수행이고 포교의 길이라면, 짝지어 집단의 세력을 만드는 일과는 처음부터 다르다. 인터뷰 중 스님께 직설적으로 사회변혁을 어떻게 이루겠느냐고 물었다.

부처님은 중생의 고통을 파헤치고, 현실을 보는 눈을 열어주었다. 또 정토는 현실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철학적 기초에서 볼 때, 환경문제·통일문제·여성문제 등 정치적 이해관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실천적 대안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점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가정은 신대중불교운동의 기반이다, 가족이 잘 서야 사회가 건강하다, 이런 뜻은 전적으로 부인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 가족중심의 생활이 사회적 과제들을 배제시키고, 여성을 가족중심 영역에 묶어 결과적으로 편협한 세계 속에 머무르게 할 수 있지 않은가?
부처님 가르침에서 윤리적 실천, 사회적 실천의 문제가 중요한 만큼, 강남포교원의 ‘포교의 질적 전환’에 대해, 교계에서 높이 평가를 한 바도 있었다. 즉 강남포교원은 기존 불교포교가 범한 잘못된 관행들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신대중불교운동으로 가는, 정법으로 사법을 척결하는 정법불교의 확산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크기로나 숫자로 보면 강남포교원은 정말 역부족이다. 또한 오늘날 한국불교에서의 영향력과 파장에서 볼 때, 너무 일각에서 독불장군처럼 가는 예외적 불교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신적 권위로부터 해방을 선언한 불교가 잣대를 딴 데 두고서 돌아올 길을 잃었을 때, 신불(神佛)에 빌며 현실은 놓치고 있을 때, 원칙 하나라도 참으로 분명하다면, 이것이 바로 밝은 빛이지 않겠는가! 무정법(無定法)이 부처님의 뿌리를 잃어버리면, 그 법은 아무 원칙도 세울 수 없이 입에서 입으로 여기저기 떠돌기만 할 것이다. 희론(戱論)이 된 말을 붙잡아 현실에 뿌리를 내린 삶의 모범을 보인 부처님, 그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삼은 힘,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보편적인 몫으로 따라야 할 것이다. 지금 여기 사는 우리 문제이므로. 그래서 바르게 선 원칙은 용기있고 아름답다.

설법전에서

철불로 된 부처님상은 별로 꾸민 데 없이, 녹이 난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지하이기 때문에 습기에 뒤틀림이 생기지 않도록 철불을 모셨단다. 과학적 현상대로 판단한 것뿐이라는 말에 거창한(?) 의미를 붙이려는 머리는 잠시 실망했다.

11월 10일, 시계 종처럼 딱 11시에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추어 일요법회가 시작되었다. 처음 참여한 법회였는데, 저마다 제자리가 있어 보였다. 미리 갔기 때문에 옆에 계신 노(老)보살님과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7, 8년 동안 법회에 꼭 참여한다고 했다. 어떻게 공부하는지 궁금했다.

“공부랄 게 없지. 처음 1년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다녔어. 어슴푸레 알 것 같더군요. 나는 성격이 괄괄해 싸워서 지는 것을 싫어했어. 게다가 우리 집 영감이 너무 속을 썩였는데, 많이 미워했지. 2년을 다니니까 그런 일들이 개의치 않게 되고, 그 중생이 불쌍해서 미운 마음이 없어졌어. 스님 법문을 들으니까 마음에 와 닿으면서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고. 누가 나에게 시비를 걸어와도, 나는 부처님 씨앗이다, 부처님 법에서 벗어나지 말아야지, 그러면 아무렇지도 않아. 공부라는 게 그거예요. 난 무식해서 배운 것도 없어서 잘 몰라. 공부는 《부처님 말씀》 가까이 두고 날마다 읽지. 그밖에 특별한 것은 없어.”

보살님은 가족들도 절에 오게 해서 온가족이 불자였다. 《천수경》이 없는 독송집을 처음 온 불자라고 유마회에서 선물로 주었다. “부처님을 생각하고/ 한량없는 기쁨으로/ 처자 권속 다 데리고/ 부처님을 뵈러가자”(《화엄경》 〈노사나불품〉에서)는 글귀가 뒤표지에 적혀 있었다. 특별히 눈길을 끈 것은 《반야심경》이 일깨우고자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우리말로 재구성해 실은 《우리말 반야심경》이다.

쉽게 바로 접할 수 있는 한글 《부처님 말씀》에서 대중주의가 펼쳐질 것이다. 부처님이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쉽고 가깝게 대화의 상대처럼 진짜 느낄 수 있다면! 《부처님 말씀》을 읽고 내용을 설명한 스님 설법이 너무 진지하게 공부하는 분위기여서, 법회에서 첫 느낌은 엘리트 불교 같았다. 그런데 보살님과 대화한 녹음을 들으면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한글로 날마다 부처님 말씀을 읽고 있는 노보살님을 상상하니, 그야말로 실제적인 자기 힘이 나는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노보살님한테도 가능한 일이다.

다 본 것도, 다 들은 것도 아닌데, 뭔가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20년이란 세월동안 쌓아온 포교사업을 평가자의 안목으로 파헤쳐 본다는 것이…. 스님과 두 번째 만남에서 궤도에 올라 안정적 느낌을 주는 포교원에서 떠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시비조(?)로 말했다. 신도들의 존경과 찬사가 “우리 절” 스님으로 붙잡고 있지 않겠지만,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했던 서초동에서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개척해야 할 황무지가 많지 않은가! 하지만 스님은 ‘방송 법당’을 통한 법음도 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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