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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가 불교운동의 사적 개관 / 최연
[ 기획 ] 재가 불교운동의 현황과 전망
[13호] 2002년 12월 10일 (화) 최연 ychoi59@hotmail.com

1. 서론

1. 들어가는 말

한국 재가불교운동은 그 성과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불교의 출가자 중심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재가’란 개념은 객체요, 주변이며, 보조자일 뿐이다. 재산의 권리 행사와 운영 관리는 물론 종교의식까지 모든 부분에 있어서 출가자가 독점하고 있어 재가자는 철저하게 소외되어 주체로서의 역할은 방기되고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재가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수행과 교육에 있어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이로 인해 재가자가 불교발전을 위한 인적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는 원초적으로 상실되고 그 결과로 양질의 전문인력을 불교계에서 배출시키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법과 제도도 출가자 중심으로 제정되어 있어 재가자는 수행과 교육 그리고 법계와 의제 등에서도 상대적으로 종단의 지원과 배려가 열악한 현실이다. 이런 결과로 재가자는 종단적인 정체성과 일체감을 갖지 못하고 개인적 기복신앙의 대상으로만 사찰과 종단을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게 하고 말았다. 이러한 현상은 종단의 한 중심축이 되어야 할 많은 재가역량을 고양시켜 불교발전에 활용하지 못하고 그 역동적인 에너지를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나마 간헐적으로 재가자들의 참신하고 혁신적인 움직임이 있어도 축적되고 계승될 수 있는 바탕이 전무하여 그 성과는 일회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로 폄하되어 불교발전을 위해 활용되지는 못하고 용도폐기되고 마는 악순환을 거듭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의 지난한 역사의 이면에는 불교 정신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한 재가불교운동의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재가불교운동의 전통은 그 시대의 질곡을 당당하게 극복하려는 다양한 방법론으로 실천되어 왔고 지금 이 시간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러한 노력의 이면에는 재가자들의 일방적인 희생만이 강요되어 왔지 불교계의 기득된 물적, 인적자원이 활용된 적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현재 출가 중심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조계종에서도 종헌상에는 사대부중으로 종단을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교단의 재산권, 관리권, 운영권이 출가자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한국불교의 일정 부분은 도도한 재가불교운동의 경험과 역량이 축적되어 재가자 중심의 종단도 생겼고, 출가와 재가가 함께 어울려 화합하여 종단을 운영하는 곳도 있듯이 재가불교운동의 영역과 지평은 확대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하여 천착하고 있는 것은 이 땅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형성된 불교의 유산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불교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이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국불교와 조계종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자칫 잘못하면 출가와 재가의 세속적인 다툼으로 보여질 수도 있어 조심스러운 접근과 지혜로운 방법들이 모색돼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 글에서는 초기불교교단 형성과정에 있어 출가와 재가의 지위와 역할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를 살펴보고, 다음으로 한국불교에 있어 재가불교운동의 흐름을 해방 전시기까지는 거칠게나마 일별해 보고, 해방 후부터 최근에 이르는 시기는 그것을 유형별로 정리해 보고, 나아가서 재가불교운동이 극복해야 할 과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짚어보고자 한다.

필자는 학문을 전업으로 하는 학자가 아니기에 학술적인 근거와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필자의 능력 밖이므로 이는 학자들의 몫으로 돌리고, 필자가 재가불교운동의 도도한 흐름에 잠시 말석에 몸을 담았던 아주 작은 경험을 바탕으로 평소 고민했던 바들을 정리해 보는 좋은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이 글에서 논의의 시발점으로 삼은 불교교단의 구조와 출가와 재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국불교연구원이 주최한 제18회 불교학술회의(주제: 미래불교의 향방 2000. 12. 1)에서 발표한 홍사성의 〈출가와 재가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한 시론〉이라는 논문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필요에 따라 일정부분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2. 초기불교교단의 형성에 있어 출가·재가의 역할과 관계

초기불교교단이 어떤 구조로 성립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출가와 재가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도 매우 필요한 일이다.부처님 당시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로 형성된 교단을 상가(僧伽, samgha)라고 했다. 상가는 사성계급의 우두머리인 바라문과 달리 카스트 또는 출신성분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신분의 수행자인 사문(沙門, samana)을 쫓아 형성된 제자들의 집단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상가는 불교교단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고대 인도사회의 일종의 수행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수행 공동체로서의 상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구성요건이 갖추어져야 했을 것이다.

첫째 바라문이 아닌 사문과 같은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 둘째 구성원은 출가(出家, pravrajita)를 통해 세속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신분이어야 하고, 셋째 만장일치로 공동체의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상호 화합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고, 넷째 해탈이라는 한 목적을 향해서 운영되어야 한다.

불교의 상가도 이러한 일반적인 원칙에 크게 위배되지 않고 형성되었을 것이다. 불교에서 최초의 원시적인 형태의 수행 공동체가 성립된 계기는 ‘초전법륜(初轉法輪)’에 의해서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고 녹야원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최초의 설법을 하고 설법을 들은 다섯 수행자가 부처님께 귀의함으로써 이른바 삼보가 성립되었다.

삼보는 진리를 깨달은 스승(佛寶), 스승이 깨달은 진리(法寶), 스승을 따르는 수행자(僧寶)로서 이중에 승보는 출가 공동체인 상가를 말한다. 여기서는 재가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재가자는 출가하지 않고 세속에 머물기 때문에 출가 수행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고 규제의 방법도 없었다. 그러므로 출가자는 개인적인 금계(戒)와 공동의 규율(律)을 모두 지켜야 하지만 재가자는 계(戒)만 수지하고 율(律)은 적용받지 않았다.
이렇듯이 불교교단이 출가자 중심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처님 당시의 인도사회는 바라문과 사문 모두가 출가수행을 하는 전통이 있어 신흥종교로서의 불교가 이러한 전통을 쫓는 것과, 세속적인 욕망의 극복을 통해 깨달음에 이른다는 불교교리의 출가 지향적인 특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출가 중심으로 형성된 불교 상가의 유일한 구성원인 출가자는 상가에 포함되지 않은 재가자와는 다르게 계와 율이 적용되었다. 출가자가 지켜야 할 계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이 되는 것이 바라이법(波羅夷法)과 승잔법(僧殘法)이다. 바라이법은 승무잔법(僧無殘法)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죄를 범하면 승가로부터 영원히 추방되는 중죄이고, 승잔법은 이를 범하였을 때 참회하고 속죄의 법을 이행하면 그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바라이법보다는 가벼운 벌이다.

바라이법은 제1계는 음계(淫戒)로서 음행하지 말라, 제2계는 도계(盜戒)로서 도둑질하지 말라, 제3계는 살인계(殺人戒)로서 사람을 죽이지 말라, 제4계는 대망어계(大妄語戒)로서 큰 거짓말을 하지 말라이다. 이와 같이 네 가지 계를 지키지 못하면 바라이가 되어 상가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머물지 못하고 상가로부터 추방되어 다시는 상가의 구성원이 될 수가 없었다. 비구는 네 가지 바라이법만 지키면 되는데 비구니는 여기에 다시 네 가지를 보태 여덟 가지 바라이를 지켜야 했다.

다음으로 율(律)은 출가자가 지켜야 하는 출가생활의 원칙으로서 사의법(四依法)이 있다. 율장에 의하면 상가에 들어와 비구가 되는 자에게 반드시 다음과 같은 사의법을 설해 주도록 되어 있다.

첫째, 출가자는 걸식(乞食)으로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승차식(僧次食), 별청식(別請食), 청식(請食), 행주식(行籌食), 십오일식(十五日食), 월초일식(月初日食)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둘째, 출가자는 분소의(糞掃衣)에 의지하여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아마의(亞麻衣), 금의(錦衣), 야잠의(野蠶衣), 갈의(褐衣), 저의(紵衣)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셋째, 출가자는 수하좌(樹下坐)에 의하여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정사(精舍), 평복옥(平覆屋), 전루(殿樓), 누방(樓房), 땅굴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넷째, 출가자는 진기약(陳棄藥)에 의해서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숙소(熟蘇), 생소(生蘇), 유(油), 밀(蜜), 당(糖)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식생활(食生活)은 걸식에 의지하고 의복은 쓰고 버린 헝겊조각을 주워서 만든 분소의로 해결하고, 집안에 눕지 않고 나무 밑이나 바위 위에서 좌선하고 잠을 자고, 소의 배설물로 약을 만들어 쓰는 것이 출가생활의 원칙이었다. 초기 상가에서는 이 사의법이 지켜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원칙에 어긋난 예외 규정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원칙대로 지켜졌던 것은 아닌 듯 싶다.

한편 불교교단인 상가에서 배제된 재가자는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지키고 능력에 따라서 상가에 보시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오계를 지키고 보시를 하는 것은 재가자의 의무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할 뿐이다. 재가자가 오계를 지키지 않고 정사(精舍)에 나가 보시를 행하지 않더라도 그것 때문에 상가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상가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가자의 보시행위는 비록 깨달음에 이르는 정통의 수행법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러한 재가자의 보시행위로 마련된 시혜물을 기초로 해서 교단이 유지·존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기에 재가자는 보시행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초기불교시대의 출가와 재가는 상호보완적이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공양받는 자와 공양하는 자로서 유기적인 관계를 가졌고, 종교적 측면에서는 설법하는 자와 설법듣는 자라는 불가분의 관계였고, 진리적 측면에서는 법의 상속자와 외호자라는 상호보완 관계였다. 즉 수행과 설법과 같은 종교적인 행위에서는 출가자가 지도자이고 재가자가 추종자였지만, 진리를 전파하고 교단을 외호하는 데는 재가자가 보다 중심적이고 출가자는 피보호적 입장에 서 있었다.

이러한 출가·재가의 지위와 역할은 교단이 확대되면서 그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초기불교시대에는 출가자의 경제적 소유는 욕망의 억제라는 수행의 목적과도 관계가 있어 엄격히 제한되었다.

그러나 승원제도가 정착되고 사회경제적 변화가 생기면서 출가자의 경제적 소유가 일상화됨으로써 계율문제가 느슨해지고 이로 인해 출가자의 재가자에 대한 도덕적 권위도 조금씩 무너져 갔다. 출가자의 위상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대승불교 시대가 열리면서부터다. 불탑을 중심으로 한 재가법사의 출현은 ‘법’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해 왔던 출가자에게 결정적인 타격이 되었고 더욱이 대승불교의 새로운 종교지도자인 보살들은 불탑에 놓인 공양물을 경제적인 바탕으로 삼아 ‘보살가나’, 즉 재가교단을 형성했다. 재가자가 그 신분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교단의 구성원이 됐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불교교단에 재가 이부중도 포함된다는 관념이 생긴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한편 중국으로 건너간 불교는 인도에서 이미 정착된 승원제도를 중국적 특성에 맞게 수정 보완하며 발전해 갔다. 특히 종파불교의 확립에 따른 제도종교로서의 정착은 사찰운영방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와 재가자의 몫이던 사원경제의 관리를 출가자가 담당함으로써 불교의 세속화를 부채질하게 된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중국불교가 한국으로 전래되면서 제도와 그 장·단점까지도 그대로 수용되어 한국불교는 그 성격이 중국불교의 특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배태하게 되었다.

3. 한국 재가불교운동의 사적 개관 : 불교 전래기에서 일제 시대까지

1) 한국불교의 특성
한국의 재가불교운동은 한국불교의 특수성에 의해 방향과 내용이 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논의는 한국불교의 특성을 올바르게 고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불교의 특징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규정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주제에 걸맞게 출가·재가의 위상의 변화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한다.

첫째, 출가자 중심의 불교이다. 중국불교의 영향을 받아 종파불교의 확립과 이에 따른 제도불교의 정착으로 사찰재산관리와 종교의식과 포교 교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할을 출가자가 독점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행과 교육에 있어서도 출가자만이 그 혜택을 받아 왔기 때문에 불교발전을 위해 일익을 담당해야 할 양질의 인적자원의 재생산 구조에서 재가자는 원초적으로 배제되었다. 그 결과 출가·재가로 하여금 물적, 인적으로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어 급기야는 출가·재가가 계급적 관계로까지 규정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둘째, 왕실불교이다. 왕권의 유지·존속을 위해 불교사상이 원용되었고 왕릉의 제사와 관리를 위해 소위 원찰을 두어 왕가의 안녕과 번성을 빌었다. 그 혜택으로 많은 토지와 진귀한 물품들을 하사받고 백성들의 피땀어린 노동의 대가로 엄청난 불교 건축물과 조형물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정치권력이 그들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불교계를 이용하는 나쁜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그에 따른 반대급부는 대형불사에 대한 예산지원이라는 정치적 배려로 결론이 난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논의와 결정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는 다수의 재가자의 뜻과는 관계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반대급부를 수혜 받는 과정에 있어서도 소수 담당자들의 (물론 시혜자측은 권력 실세일 것이고 수혜자측은 종단의 실세인 출가자일 것이다.) 밀실거래에 의하기 때문에 그 명징성이 결여되어 한국불교의 암적인 존재로 자리잡게 된다.

한국불교는 이렇듯이 스스로의 노력과 관계없이 왕권, 또는 정권의 배려로 본원적으로 축척된 엄청난 물적자원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이렇게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이 한국불교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되었다.

셋째, 기복불교이다. 불교가 왕권과 정권에 이용당하며 지배자 논리에 복무하고자 함은 국민과 백성들을 무지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므로 백성들의 관심을 현실과 현세보다는 미래와 내세로 돌려 세워야 했다면, 개인과 가족의 안위만을 빌게 하고 나아가서는 내세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각을 철저하게 마비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왜곡된 신행형태는 스스로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어야 하는 불교의 본질적인 신행관이 무너져 버리고 재가자가 복을 구하기 때문에 출가자는 복을 빌어줄 수밖에 없는 왜곡된 출가·재가의 관계가 형성된다. 마치 중세 암흑시대에 신도들에게 천국행 티켓을 판매한 신부들과 같이…….

한국불교의 이와 같은 세 가지 특징은 난마처럼 얽혀 있는 한국불교의 문제들을 풀어 가는 중요한 키워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한국불교의 특성에 유의하면서 한국불교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되어 왔던 것들을 무작위로 나열해 보면 산중불교, 치마불교, 어용불교, 기복불교, 노인불교, 제사불교, 귀족불교, 박물관불교, 호국불교(호국불교는 역사적으로 긍정적인 기여를 한 불교만의 독특한 현실참여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국불교가 부정적인 개념으로 자리잡은 이유는 군사독재정권시절에 호국불교를 어용불교로 이용하기 위해서 날조한 것이기에 그 본래적인 의미와는 상관없이 어용불교의 대명사인 듯이 인식되어 왔다) 등이다. 한국불교의 부정적인 면을 반영한 이와 같은 특징들은 그 원인을 규명해 보면 근본적인 원인이 앞에서 지적한 세 가지 한국불교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왕실과 정권에 아부해야 하기에 어용이 될 수밖에 없고, 어용이기에 왕권과 정권의 우민화 정책에 앞장서 현실문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배제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기복적이고 호국적(실제로는 호정권적)일 수밖에 없고, 기복적이고 호국적이기 때문에 올바른 비판의식을 가진 식자층들이 외면하게 되고,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현실문제에 관심이 적은 여성과 노인들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고, 현실문제로부터 동떨어져 있기에 산중일 수밖에 없고, 산중에만 있으니 역동적인 삶과 유리되어 박제화될 수밖에 없고, 박제화됐으니 박물관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이러한 한국불교의 왜곡된 현실조건들을 극복해 가고 또한 좌절당하기도 하는 재가자들의 모든 노력들이 한국에서의 재가불교운동인 것이다.

2) 한국 재가불교운동의 정의
한국 재가불교운동의 개념 정립을 위해서는 몇 가지 충분조건을 필요로 한다.
첫째, 운동의 방향은 이 땅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널리 폄과 아울러 왜곡된 한국불교의 현실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한국사회의 질곡을 극복하려는 데 모아져야 한다. 운동이란 연기적 존재의 사회적 실천 행위이기 때문이다.

둘째, 운동의 방법은 불교정신과 불교사상에 입각하여야 한다. 불교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자아와 세계가 동시에 완성되는 불국토의 건설이다. 불국토의 성취를 위해서는 지금, 여기, 이곳으로부터 변혁을 시작하여야 한다. 사회변혁을 실현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될 수 있으나 마땅히 불교적인 방법이 채택되어야만 한다.

셋째, 운동의 주체는 재가자들이어야 하며 개인과 집단 모두가 가능하다. 물론 대부분의 재가자들 중에 몇몇의 출가자가 포함되었을 경우에는 그 출가자가 재가자의 입장에 서 있다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와 같은 조건들을 충분히 갖추었다면 한국 재가불교운동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재가불교운동’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폄에 있어 한국사회의 질곡을 극복하고 이 땅에 불국토를 건설하기 위해서 불교정신과 불교사상에 입각한 불교적인 방식에 의해서 재가자와 재가자의 입장에 서서 뜻을 같이하는 출가자가 함께 사회적 실천을 하는 것을 말한다.

3) 한국 재가불교운동의 전개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는 단재 사관에 동의한다면 비아(非我)적인 요인에 해당되는 한국불교의 질곡과 한국사회의 모순들을 극복해 나가는 실천적 행위를 통하여 아(我)인 재가불교운동은 그 내용성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재가불교운동은 한국사회의 질곡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한국불교의 전개과정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 재가불교운동에 있어서 한국불교는 극복되어야 할 비아(非我)인 동시에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할 아(我)의 모태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 재가불교운동의 시대적 흐름을 거칠게 나마 일별해 보기로 한다.

신라의 불교 공인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이차돈의 순교를 최초의 재가불교운동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되어 백성들 사이에는 신앙생활이 자리잡아 가고 있는데 나라에서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아 백성들은 위험부담을 안고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 이유는 귀족들의 반대 때문이다. 진흥왕 시대만 하더라도 고대국가로서의 기틀을 잡기 전이라서 왕권이 허약해 귀족들의 발언권이 강하게 작용하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통찰한 말단 관료인 청년불자 이차돈이 정치적인 승부수를 띄웠다. 왕권강화를 위한 새로운 지배이념으로서 불교사상이 필요했던 법흥왕과 불교를 공식적으로 자유롭게 신앙할 수 있기를 바라는 청년불자 이차돈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양자의 목표달성을 위해 이차돈이 정치적 희생양이자 종교적 순교자가 된 것이다. 이로써 찬란한 신라의 불교사상과 불교문화는 꽃을 피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 전까지는 불교사상이 지배이념으로 자리잡아 불교는 왕권에 의탁해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고 그 역할을 주로 승려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재가불교운동의 역할은 위축되고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재가불교운동은 몇몇 지식인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귀족화되어 가는 신라의 왕실불교에 환멸을 느끼고 비승비속으로 독신생활을 한 혜숙, 혜공, 대안, 사복, 원효 스님과 환속하여 가정생활을 했던 부설거사, 이들은 스스로의 몸을 철저히 낮추어 억압받는 신라 민중들과 어울려 그들의 벗이 되어 주었고 당대의 최고 석학 고운 최치원은 사찰의 사적기와 고승대덕들의 사상과 업적을 빼어난 문장으로 비석에 기록하여 후대에 남겨 한국불교금석문화를 꽃피웠고, 미륵사상으로 이 땅에 용화세계를 건설하고자 했던 신라 왕족 출신의 궁예 등은 대부분 지배계층 출신으로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기득권을 버리고 호화로운 왕실이 아니라 민중들이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현실에 몸을 나툰 것이다.

조선시대는 불교가 그 동안 누렸던 모든 특권이 사라지고 이미 형성된 찬란한 불교문화도 철저히 파괴되는 시기였다. 그러므로 이 시기는 권력의 압박을 피해 억압받는 민중 속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는 재가불교운동도 불교탄압의 영향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핍박받고 탄압을 받기 때문에 역사의 전면에는 나서지 못하였지만 오히려 사회의 변화가 요구되는 모든 현장에 불교는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굶어 죽을 수는 없기에 곡괭이와 낫을 들고 분연히 떨쳐 일어난 민란의 현장에도 그 모습이 보이고, 외적의 침입에 선봉에 나가 싸워 장렬히 쓰러져 가는 안타까운 모습으로도 보이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병들어 신음하는 현장에 도인처럼 나타나 구휼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철저하게 민중이 되어 민중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오히려 불교가 기록되지 않은 한 시대의 역사에 충실하게 복무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역사가 모든 사실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조선시대 후기로 가면, 불교사상으로 새로운 세상을 가꾸기 위해 지배계층에 있는 개화파 김옥균, 박영효 등에게 개화사상을 일깨워 준 유대치, 꽃다운 나이에 구중궁궐에 들어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틈틈이 모은 재물로 사찰에 불사금과 양식을 대주었던 상궁들이 암울했던 조선시대 불교의 명맥을 잇게 한 주인공들이다.

일제 식민지 체제에서는 민족의 해방과 독립이 제일의 과제였다. 그러므로 모든 운동의 역량이 일제 식민지 체제의 타파를 위한 항일 운동으로 모아진다. 불교계도 다양한 방법들로 항일 운동의 대열에 동참한다.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자는 이종욱, 사회주의 운동으로 접근하는 김성숙, 독립을 위한 것이라면 모든 방법이 다 괜찮다는 한용운, 최범술 등이 그 주요 인물들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한국불교가 일제에 의해 승려가 취처를 하게 돼 재가불교운동의 주요한 동력이 대처승들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대처승이 재가불교운동의 주요동력으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승려로서 불교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고 사회적 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식견까지 넓혀 그 자질이 충분히 지도자로서의 조건들을 구비하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해방 후 소위 정화운동으로 불교의 중심부에서 대처승들이 축출당하기 전까지 계속된다. 이후에도 대처승들은 독립하여 대처종단을 만들어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일제 식민지배 시절에 강제로 도입된 대처제도가 역설적으로 출가와 재가의 역할을 분명하게 분담해 주었다. 그런데 정권의 힘을 빌린 정화운동으로 불교계의 모든 권리를 출가자들이 다시 독점하게 되었다. 그 결과 비대해진 출가자 중심의 조계종단과 재가 또는 출가·재가 공동으로 구성된 여러 종단으로 양극화의 길을 치닫고 있다.

정화운동이 최근의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화운동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4. 정화운동 이후 재가불교운동의 유형별 분류와 개괄

정화운동은 명분은 좋았는데 그 방법이 잘못되어 향후 불교계의 분규의 불씨로 남게 된다. 대처승을 포용하여 역경과 포교 등 그들의 전문 식견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고 마녀사냥식의 싹쓸이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폭력과 소송이 난무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기간 정화라는 미명 아래 폭력은 정당화되고 절대적으로 수적 열세에 있는 비구측의 인원수를 늘리기 위해 출가가 권장되고 이후 출가자로서의 교육과 수행은 뒷전으로 물리치고 소송과 완력으로 절 뺏는 일들만 능사로 일삼았다. 이러한 관행이 종권도 대중 세몰이식 완력으로 불법적으로 쟁취하는 여러 차례의 선례를 남기고, 그때마다 불교계는 폭력으로 얼룩진 처참한 모습을 매체를 통해 온 국민의 가슴속 깊이 각인시키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의식 있는 재가자는 많은 수가 불교계를 떠나고, 남아 있는 자들도 출가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제도권 불교계와 무관하게 수행과 불교활동들을 나름대로 전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폭되어 급기야 출가·재가의 심각한 갈등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렇듯이 정화운동 이후 출가자 중심의 제도권 불교에 등을 돌리고 독자적인 활동을 한 것이 역설적으로 재가불교운동이 다양해지고 자립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재가불교운동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하여 재가법사가 운영하는 포교당과 불교대학에서부터 생명 환경운동, 북한과 북한난민을 돕는 운동까지 그 지평이 크게 확대되었다. 여기서는 다양한 재가불교단체를 운동 유형별로 분류하여 개략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고 각각의 성과와 평가는 아쉽지만 후일을 기약하기로 한다.

1) 불교사회운동
불교사회운동은 한국사회의 모순을 불교이념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여러 방식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한국사회의 모순은 무엇인가?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근본적인 것은 민족주체성 문제, 계급갈등, 그리고 분단의 문제이다. 이러한 세 가지 모순을 극복하려는 불교계의 사회적 실천운동으로서의 불교사회운동은 다음의 몇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 민중불교운동이다. 계급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피압박 계급인 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운동으로 묘각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불교노동야학 운동과 반민중적 권력집단과 비민주적 제도의 혁파를 통해 불교의 민중화를 이룩하고자 한 초종단적인 사대부중의 결집체인 ‘민중불교운동연합’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대학생불교연합회 출신의 많은 활동가들이 민중들의 권익을 되찾고자 노동현장에 투신했지만 이는 논외 사항이라 본다.

둘째, 통일운동이다. 분단의 극복은 분단의 원인인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고 민족간의 평화적인 통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목표로 불교 대중들을 통일운동의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활동한 단체는 90년대를 전후하여 불교계의 통일운동의 단일 대오였던 민족자주통일불교협의회, 최근 사리원에 국수공장을 지어 북한 주민에게 국수를 배급해 주고 있는 평화통일불교협의회, 조계종에서 추진하는 불교운동을 전담하고 있는 민족공동체추진위원회, 북한돕기와 최근에는 북한난민돕기까지 추진하고 있는 좋은벗들 등이 있다.

셋째, 불교시민운동이다. 새로운 세기의 화두인 생명, 환경, 경제정의 등의 문제를 불교사상에 근거하여 이념적 방향을 설정하여 불교단체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통해서도 실현하려는 운동이다. 여기에 속하는 환경운동단체는 불교환경연대와 불교환경교육원 등이 있고 생명운동과 대안운동단체로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와 생명나눔실천회가 있으며 경제정의실현을 지향하는 단체로는 경제정의불교시민연합이 있다.

이상과 같은 불교사회운동단체의 특징은 출가·재가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출가자는 소수에 불과하지만 주로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물적인 기반의 상당부분을 출가자 대표에 의존하고 있다.

2) 거사불교운동
한국의 재가불교운동 중에 연륜이 가장 깊은 것이 거사불교운동이다. 거사불교운동은 재가자의 특징을 충분히 활용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거사란 개념은 어원적으로는 귀족의 가문에 속한 가족장(kula-pati)을 뜻하며 불교적으로 설명하면 출신가문이 훌륭하고 상당한 자산도 있으며 고등교육도 받고 재가생활을 하면서 수행 정진하는 남자신도를 말한다.

이와 같이 거사란 어느 정도의 자산도 있고 지식도 있으므로 출가자가 독점하고 있는 교단의 물질적 지원 없이 스스로의 재력과 학식으로 불교대중을 교육하고 포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거사불교운동은 출가자가 독점해 온 역경과 교육과 포교에 있어서의 지도력을 일정부분 재가자가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거사불교운동은 다음의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지식인 불교운동이다. 거사의 특성 중의 하나인 학문을 전업으로 하는 식자층들이 주를 이루며 불교사상의 현대적 해석, 새로운 시대의 대안 제시, 불교계에 대한 사회의 바람직한 여론 조성,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 등 불교계의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활동하는 단체는 불교 지식인 운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재가회의와 재가회의의 해산 이후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재가연대, 새로운 불교의 대안모색을 위한 토론의 광장인 불교포럼, 불자교수들로 구성된 교수불자회 등이 있다.

둘째, 재가법사운동이다. 재가법사들이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하여 신행을 지도하고 교리를 교육하고 대(對) 사회적인 포교도 함께 하는 활동으로 7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원각회, 지금까지도 존속하며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된 금강경독송회, 재가자들에게 차원 높은 교리학습을 불교교양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하여 많은 전문적인 포교사를 양성한 동산반야회, 불교출판사업을 통하여 불교대중에게 보다 쉬운 불교를 접할 수 있게 하고 재가자 중심의 신행결사운동인 대중불교운동을 전개한 대원회, 재가법사에 의해 신행지도가 이루어지고 신행의 내용이 생활불교로서 대중에게 쉽게 이해되어 지역법당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문사수법당 등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 제도불교운동이다. 제도불교운동이란 그 개념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재력이 풍부한 재가자가 재산을 불교포교의 목적으로 희사하여 그 재력을 기반으로 법인을 설립하여 불교발전에 이바지하는 경우와 기존의 제도권 재가조직을 통하여 재가불교운동을 전개한 경우를 말한다. 전자는 군 포교와 수련시설 확충, 불교방송과 재가 단체의 지원을 하고 있는 대한불교진흥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후자는 해방정국에서 정화운동에 동참하면서 조계종의 신도대표조직으로 자리잡은 조계종 전국신도회가 대표적인 예로 신도계몽과 신도조직의 건설, 종단의 외호 등 제도권 조직으로서 특성을 갖고 활동을 해 왔다.

3) 몇 가지 과제
이상과 같이 재가불교운동의 흐름을 몇 가지 유형별로 나누어 보았다. 이러한 분류 자체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다양하고 난삽하기도 한 재가불교운동을 어느 정도 합리성을 띤 원칙과 기준에 의해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현재 진행되는 재가불교운동의 올바른 평가와 향후 바람직한 전망을 도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가지 과제는 남는다.

첫째, 물적자원을 재가자들의 방식으로 어떻게 창출해 내느냐의 문제이다. 지금 재가자의 보시행위는 대부분 물적자원을 출가자가 독점하고 있는 전통적인 체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보시형태를 재가불교운동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물적자원 확보 체계로 빠른 전환이 요구된다.

둘째, 협소한 인적자원의 배출 통로를 어떻게 다양화하는가의 문제이다. 재가불교운동의 인적자원은 불교계에서 상대적으로 전문적인 불교교육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받은 재가법사, 종립불교대학 출신,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출신 등 그 배출통로가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협소한 인적 자원의 재생산 구조를 다양화하고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출가자와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운동방식을 계발해 내는 문제이다. 출가와 재가의 명확한 역할분담을 통하여 새로운 세기의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사상으로 불교가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출가자의 도덕성과 재가자의 전문성이 조화롭게 합쳐져야만 한다.

5. 나오는 말

한국사회에 있어서 재가불교운동은 한국불교를 위해서 기여한 바는 적고 한국사회의 질곡들을 극복해 가는 데 오히려 더 많은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그만큼 한국불교에 있어서 재가자는 아직까지도 많은 부분 국외자요 대상일 뿐이라는 반증이다. 지금부터라도 출가·재가의 합리적인 역할분담을 통해 불교가 한국사회를 계도해 갈 수 있는 능력들을 준비해 가야 한다.

불교계가 실추된 도덕성을 회복하고 출·재가 할 것 없이 모두 겸허한 반성을 통해서 대승적으로 화합하여 경쟁 상대가 아니라 함께 하는 진정한 사부대중 공동체로서 거듭날 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시대적 책무를 다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최연
한국 대학생 불교연합회 회장(1976) 및 사무총장(1984~1985년) 역임.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신도회 사무총장으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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