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제 기술, 꿈과 재앙

1) 인간의 꿈
한 일란성 쌍둥이 남자 형제가 생후 4주 만에 전혀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둘은 성장 환경도 아주 달랐고 상호관계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39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만난 이들의 인생은 놀랍게도 너무나 비슷했다.

이들은 둘 다 소방 계통에서 일을 했고, GM에서 만든 시보레 차를 몰고 있었다. 개를 길렀는데 이름이 똑같이 토이였다.

두 사람 다 이혼 후 재혼했으며 첫 아내와 둘째 아내의 이름이 린다와 베티였다. 아들 이름은 각각 ‘알렌’과 ‘알란’이었다.

또 둘 다 손톱을 바싹 깎고 흡연과 음주를 했으며 취미로 목수 일을 즐겼다. 생애 중 비슷한 시기에 4.5kg 정도 체중이 증가한 것마저 같았다.1) 1)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302/200302120380.html
물론 이 형제는 극단적인 경우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란성 쌍둥이 형제들도 우연으로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성이 높게 나타난다. 이에 따라 “유전자가 같은 형제들은 유사한 환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가설까지 제기된다. 즉 일란성 쌍둥이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더라도 같은 환경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있어 이들은 결국 서로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이상은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 쌍둥이 연구소의 연구보고다.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서 모두 이처럼 되지는 않는다. 이 경우는 일란성 쌍둥이 중에서도 아주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대개의 경우 “유전자가 같아도 환경이 다르면 아주 다르게 성장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히틀러를 복제하더라도 반드시 히틀러처럼 된다는 법은 없다. 아인슈타인을 복제해도 위대한 과학자와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네소타 보고서의 경우, 아무리 극단적인 경우라 하더라도 이를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해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란성 쌍둥이는 일단 유전적으로 100% 동일하다. 다시 말하면 일란성 쌍둥이는 인간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자연적 완전 복제품이다. 생물학적 의미의 복제란 ‘양성(兩性)결합을 통하지 않고 무성생식으로써 유전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개체를 생성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남녀 양성결합으로 태어난 쌍둥이는 복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복제 인간은 ‘출생시기가 다른 일란성 쌍둥이’인 셈이다.

의도적으로 복제 인간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자신의 털을 뽑아 숨을 불어넣어 자신을 대신해 싸울 전사로서 대량 복제한다. 《옹고집전》에서도 인간복제의 꿈이 드러난다. 옹진골 옹당촌의 옹고집은 불도를 능멸하여 스님들을 자주 골린다. 월출봉 취암사의 학대사가 옹고집을 찾아가 시주를 부탁하자, 그는 ‘중은 부모를 배신하고 부처의 제자 행세로 헛된 공부나 하고, 어른을 보면 시주나 부탁하고 아이를 보면 출가하라고 하니, 불효하고 불충하다’며 비난한다.

관상을 보아 달라기에 스님이 “오래 살지 못 하겠다”고 하자, 옹고집은 학대사를 곤장을 쳐서 내쫓는다. 학대사는 지푸라기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가짜 옹고집으로 변신하게 한 뒤 진짜 옹고집을 혼내고 결국 개과천선 시킨다. 복제 인간을 상상한 이 두 경우 모두 불교적 모티브를 가진 것이 흥미롭다.

어쨌든 모두 상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꿈은 모두 현실로 이뤄진다”고 했던가? 단지 상상의 차원에 그쳤던 이런 일들이 21세기를 시작하자마자 현실적 사건으로 터져 나왔다. 1997년 2월 23일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 이언 윌무트 박사가 성장한 양을 복제하여 아기 양 ‘돌리’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하자 세계는 놀람에 휩싸였다.2) 2) 돌리의 탄생이 충격적인 것은 돌리가 성체 양의 체세포에서 핵을 추출하고 그것을 수정난의 핵과 치환하는 핵이식 기술을 썼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인간 개체의 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채 5년도 안돼 드디어 인간을 복제하기에 이른 것이다. 상상이나 이론적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인간복제가 새 세기 벽두에 인류의 역사에 핵폭발보다도 더 큰 충격적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2002년 12월 27일 미국의 신종교단체인 ‘라엘리언 무브먼트’와 관련된 인간복제 회사 클로네이드는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 최초의 복제 아기 출생’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전 세계 미디어들은 이를 인류 역사의 가장 충격적 사건으로 묘사했다.

클로네이드의 회장 브리지트 부아셀리에 박사는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할리우드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생 장소나 복제 성공을 확증할 만한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으나 “복제 아기가 지난 26일 오전 11시55분 무사히 출생했다”며 아기의 이름은 ‘이브(Eve)’라고 전했다. 아울러 부아셀리에는 ‘이브’ 이외에 4명의 복제 아기가 내년 2월 초 더 탄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복제 아기를 임신한 나머지 4쌍의 커플들은 북유럽의 레즈비언과 사망한 자녀의 세포를 복제한 아시아와 북미의 커플 및 다른 아시아 커플”이라고 소개하며 지금까지 10명의 여성이 배아를 착상했으나 5명은 3주 내에 유산했다고 발표했다.

부아셀리에 회장은 이와 함께 “이들 5명의 커플은 복제와 관련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으나 일부는 클로네이드에 투자함으로써 현재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 상태”라며 “그러나 복제 서비스가 상품이 됐을 때의 가격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3) 3) http://news.empas.com/ show.tsp/ 20021229n03633 /?s=485&e=663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인간복제를 실행하는 목적이다. 그들은 “인류의 구원이란 결국 영생이며 그 수단은 인간 복제뿐이다. 인간복제로 예수, 석가모니, 무함마드가 이루지 못한 일을 창시자 라엘이 현실화하고 있다”4)고 말한다. 그들은 인간복제를 인류의 영원한 꿈인 생노병사의 초월을 위한 방법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5) 4) http://news.empas.com/show.tsp/20030108n03030 /?s=187&e=364 5) 영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이면적 목적과 함께 상업적 이윤추구가 이면적 목적

뿐만 아니라, 아직은 불가능하지만 유전공학자들은 생식세포에다가 유용한 유전자는 집어넣고 원치 않는 유전자는 제거해버리는 기술이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만일 이러한 가설이 현실로 입증된다면 영생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인간의 삶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한 가지만 예를 들자면, 쥐라기나 백악기의 호박(琥珀) 속에 갇힌 모기를 채집하여 그 뱃속에 들어있는 익룡(翼龍)의 날개 유전자를 인간의 유전자에 결합시키면 인간은 날개를 가지고 날게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소설 속에서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아니 상상조차 못했던 인간의 꿈들이 유전자 공학과 복제 기술에 의해 현실화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꿈들은 비윤리적 결과와 함께 엄청난 종말적 재앙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우리는 단순하게 꿈과 희망만을 갖고 기다릴 수 없다. 인간복제는 물론 모든 유전공학적 결과에 대한 신중하고 사려 깊은 논의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2) 복제 기술
인간복제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복제 기술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다. 인간복제 기술은 이미 널리 알려져 이제 상식에 가깝다. 따라서 복제 기술에 대한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이해를 여기서 다시 도모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최소한의 기본적 이해의 공유를 확인해야 할 필요는 충분하다.

넓게 말하자면 복제 기술은 유전공학의 한 분야이다. 유전자를 이용한 새로운 식물의 개발은 오래 전부터 시도되었다. 감자와 토마토가 한 그루에 열리는 토감도 순박한 형태의 유전공학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 복제 기술도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 전에 이루어졌다. 성장한 동물의 개체복제는 1996년(1997년 발표) 돌리가 처음이지만 동물의 태아를 이용한 복제는 100년이나 앞선 1896년 스위스의 스페만에 의해 이루어졌다. 도롱뇽의 수정란이 두 개의 세포로 난할(卵割)되는 순간 갓난 아기의 머리카락으로 둘을 인위적으로 갈라놓자 유전적으로 똑같은 두 마리의 도롱뇽으로 자라난 것이다. 이로부터 50년 뒤 미국의 브릭스가 개구리 수정난의 핵을 제거하고 개구리 태아에서 추출한 핵을 이 수정란에 집어넣었더니 올챙이로 자라났다.

드디어 1996년에는 수정된 양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완전히 성장한 양의 세포, 즉 성체세포의 핵을 치환함으로써 성체와 유전적으로 100% 똑같은 양이 복제된 것이다. 복제 양 돌리의 탄생은 인간복제를 가능하게 한 기술인 핵이식 기법을 성공시켰다는 데 있다.6) 6) 인간 개체 복제 기술은 수정난 분할과 체세포핵이식(핵치환)의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수정란이 4-8개의 세포로 분열한 상태에서 각각의 할구세포들을 물리, 화학, 생물학적인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분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갈라진 세포들을 따로 자궁에 착상시키면 다시 완전한 개체로 분화하여 각각의 개체로 성장하므로 일란성 다태아의 복제인간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는 성체의 체세포에서 핵을 분리해 내어 다른 개체의 난자와 수정시켜 새로 분화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이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키면 핵을 떼어냈던 원래의 개체와 유전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새로운 개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자신을 복제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 체세포 중에서 핵을 추출하여 핵을 제거한 다른 난자에 끼워 넣어 성장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과 유전적으로 100% 똑같은 제2의 자신이 생겨나는 것이다.

유전자공학이나 인간복제를 논하기 위해서는 이 핵이식 기술과 함께 줄기세포와 배아에 대한 개념의 이해도 필수적이다.

배아(Embryo: 胚芽)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형성된 수정난이 세포분열을 시작한 직후부터 자궁에 착상돼 태아가 되기 전까지 8∼9주의 수정난’을 말하며, 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 幹細胞)는 ‘장차 간(肝)이나 폐 등 각종 장기로 자라날 수 있는 전능세포’로 보통 초기 단계 배아에서 추출한 세포를 배양해 만들어진다. 즉 줄기세포는 세포 생산의 기초가 되는 세포를 말한다.7) 7) Leland G. Johnson, 《존슨 생물학》 1, 생물편찬회 역(전남대 생물교재편찬회, 1997) 참조.

줄기세포는 배아에서 채취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하나의 생명이 될 배아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점에 가장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종교계나 생명윤리 단체들이 복제 연구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을 생명체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다.8) 8) 박영서, 《인간복제의 몇 가지 고유한 쟁점들》(고려대학교, 1998) 참조.

2001년 8월 초, 미국에서 반대측의 반발을 줄이는 차원에서 이미 배아를 파괴해 추출 배양해 놓은 60여 가지의 배아 줄기 세포주(細胞株) 연구에 한해 연방기금을 지원하기로 함으로써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였다.

한국에서도 이미 마리아병원 박세필 박사팀이 실험관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해 심장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하였고, 전 세계적으로도 뇌신경세포·췌장세포·조혈세포·근육세포 등 5∼6종의 줄기세포가 이미 만들어진 상태다.

즉 배아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진행되는 복제 기술은 결국 생명을 해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 가장 큰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3) 논란
복제 기술 찬성론자들의 희망대로라면 유전공학을 이용한 식물이나 동물의 복제는 인류의 삶에 엄청난 편리와 풍요를 가져올 것이다. 그렇기만 하다면 아무런 걱정도 필요 없다. 그러나 그 풍요와 편의의 꿈속에는 그것이 우리의 생존마저 위협할 가공의 재앙이 도사리고 있다.

그 동안 상상과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인간복제가 기정 사실로 드러나면서 세계의 지성들은 이에 대한 찬반의 논쟁을 뜨겁게 벌이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의학기술과 인류사회의 복지를 위해서는 다양한 동식물의 복제 기술은 물론 인간복제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반대 의견은 종교계를 필두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도 클로네이드사가 과학적인 안정성이나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고 비난하고 전 세계 차원에서 모든 형태의 인간 복제 금지 조치를 서두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대부분의 국민들과 같이 인간복제가 아주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믿고 있으며 인간복제 금지법안이 조속히 의회에서 통과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인간복제를 위한 모든 형태의 연구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 인간복제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인간복제를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인간복제 아기 1호가 탄생했다는 외신이 전해지자 “지난 2002년 10월14일 입법 예고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안’을 조속한 시일 안에 관계 부처 및 국회 등과 협의,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과학기술부 등 관계 부처, 학계, 시민 단체 등과의 이견이 워낙 커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 법안의 핵심은 인간복제는 전면 금지하고 인간복제 및 치료 복제의 전 단계인 체세포 핵이식 연구는 전문가·시민·종교계 등으로 구성된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서 연구를 허용할 때까지 잠정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과기부는 위원회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명공학 발전을 위해 위원회 결정전까지 우선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내용만을 담아 법제화해 인간복제 이외의 연구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9) 9) 〈오마이뉴스〉(2002. 12. 29).

한국에서도 이미 1월 22일 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교의 성직자와 수도자 및 평신자 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생명, 평화, 환경을 위한 범종교인 기도회”를 가지고 인간복제 반대선언을 한 바 있다

최근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되어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생명윤리법’에 관한 과기부가 제출한 안은 배아복제를 정당화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업계의 산업적 측면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있고, 복지부안도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치료 목적의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고 있어 전면 금지를 주장하고 있는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10) 10) 〈문화일보〉(2003. 01. 29).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들은 아직 인간복제는 물론 배아복제도 금지하고 있다. 배아복제는 바로 인간 개체 복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 실험실의 커튼 뒤에서는 암암리에 불법적으로 밤을 새는 경쟁 속에서 복제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그만큼의 절실한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 병원 생명공학연구소장인 박세필 박사는 “지금 이 시간에도 난치병 환자가 죽음의 고통에서 신음하고 있는데, 이들을 제쳐놓은 채 생명윤리만을 내세워 치료 목적 연구까지 금지하려는 것은 건강한 자들의 횡포”라고 주장한다.

과학계는 수정란이 만들어진 후 14일까지의 배아는 원시선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인간체가 아닌 세포덩어리일 뿐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체세포를 이용해 배아를 만들고 여기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은 “지금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25년 전 체외수정(IVF)에도 반대했다.

그들은 체외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저질렀던 실수를 인정하지 않은 채 또다시 인간복제를 가로막기 위해 법석을 떨고 있다. 현재까지 체외수정으로 태어난 20만 명의 아이들은 그들의 주장대로 ‘상품’도 아니며 정체성의 혼돈을 겪지도 않았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일부 사회는 지나치게 종교적이거나 보수적이다. 남성의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 기술은 1869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됐을 때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100년 뒤 불임부부에게 희망을 주는 과학적 위업으로 재평가 됐다. 신념적 편견이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11)며 복제 기술 금지 주장을 반박한다. 11) http://bric.postech.ac.kr/bbs/daily/krnews/tin0014-2/034.html

2. 인간복제를 주장하는 이유

1) 생식 목적의 인간복제
모든 존재의 제 1 본능은 존재하는 것 자체이다. 존재하는 것, 즉 생명은 모든 어떠한 가치보다 우선한다. 따라서 생노병사의 실존적 한계를 초월하는 것은 인간의 영원한 희망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인간은 생명을 영원히 부지할 수 없기에 후손을 남김으로써 이 욕구충족을 대신한다. 복제 기술은 인간의 이 제 1 본능인 존재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욕구마저 충족시킬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현대에는 불임부부들이 많다. 만일 불임부부들이 자신들의 형질을 상속한 후손을 가질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이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자손을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는 누구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불교 역시 이러한 인간의 욕구충족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동성애 부부는 이제 인간의 한 문화현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실정법으로써 동성부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권장할 이유도 없겠지만 동성부부를 인정하면 안 되는 불교적 이유는 무엇인가? 동성부부를 선택 가능한 인간의 한 생활양식으로서 굳이 강제로 막아야 할 불교적 필요는 없다면, 이들에게도 자손을 가질 권리를 줘야 한다. 이들이 자신들의 형질을 상속한 자손을 갖는 행복을 막을 불교적 이유는 없다.

셋째,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사람이 복제 기술을 이용한다면 그 자식과 유전적으로 100% 동일한 아기를 다시 가질 수 있다. 사랑하는 자식을 가슴에 묻어본 사람이라면 이 기술을 포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넷째, 부부 중 한 사람이 심각한 유전병을 앓고 있을 때, 그 병을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자손을 잇게 할 수 있다. 인간복제는 유전병이 자손에게 이어지는 것을 막는 합리적인 수단이 될 수도 있다.

2) 치료 목적의 인간복제
복제 기술은 새로운 생명의 창조뿐만 아니라 생명의 연장을 위해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복제 기술로 개별 장기를 생산하고 이를 이용해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복제 배아에서 얻을 수 있는 분화된 세포들을 이용해 손상세포를 대치하고 정상세포를 주입함으로써 죽음에 당면한 수백만 명의 불치병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다.

뇌세포의 손상에서 발생하는 파킨슨씨병, 알츠하이머병, 췌장의 링게르한스 섬 세포의 이상에서 발생하는 당뇨병,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척추손상, 혈액이나 골수 세포에서 발생하는 다발성 경화증, 류마티즘성 관절염 같은 자기면역 불능증, 암 등 수많은 불치병과 난치병들을 고치고, 나아가 인공장기 생산으로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생명을 복제 기술로 구할 수 있다. 현재의 장기 기증은 턱없이 부족하여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은 엄두도 낼 수 없지만 복제 기술은 이를 포함한 매매, 강제적출, 면역 거부반응 등 장기이식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한다.

최근 로슬린 연구소는 미국 제론사와 특허기술 상업화 계약을 체결하고 이식용 세포 복제 기술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이는 인간을 복제하되 완전한 성체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장기의 일부만을 키워 이용한다. 줄기세포의 단계에서 원하는 장기에 해당하는 세포를 다른 동물에 이식시켜 성장시킨다든가 인간의 성체와 똑같은 기능을 하는 기계에 이식해 성장시켜 이용한다는 이론이다.

3) 상업 목적의 복제
모든 복제 기술은 결국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될 것이다. 인간의 제 1 본능은 생존자체이고 또한 건강한 생존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복제 기술만큼 결정적인 수단은 드물다. 따라서 상업적 목적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제 기술과 그로 인해 생산된 인간이나 장기는 그 어떤 기술이나 상품보다도 부가가치가 크다.

출생할 개체의 유전자 구성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 즉 복제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은 곧장 복제 인간에 대한 대상화와 상품화를 의미한다. 앞으로 복제 기술로 생산된 모든 것들은 품질에 따라 상품으로서 매매될 것이다. 이미 많은 제약회사들이 복제 기술의 특허권을 신청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복제 양 돌리를 만들어낸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로슬린 연구소 연구진은 생명복제 분야에서 처음으로 특허권을 인정받았다.12) 12) http://bric.postech.ac.kr/bbs/daily/krnews/tin0014-2/034.html

이에 따라 체세포를 이용한 복제 기술로 인간에게 유익한 단백질이나 이식용 장기를 생산하기 위해 복제하는 경우에는 누구든 특허료를 내야 하게 됐다. 이는 생명복제 기술이 상업화의 길로 달려가는 신호탄인 것이다.

박세필 마리아병원 생명공학연구소장은 “국내 복제 및 간세포 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으므로 이를 잘 활용하면 의료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설 수 있다”면서 “냉동 잉여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는 물론 체세포 핵이식을 통한 배아복제도 허용해야 한다”고 말한다.13) 13) http://www.hani.co.kr/ section-021007000/2002/12/021007000200212260440049. html

앞으로 복제 기술을 포함한 유전공학의 주도권을 선점한 측이 세계 경제권은 물론 세계사의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문명비평가들의 예견에 두려움과 공감이 교차한다.

3.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이유

1) 인간존엄 훼손
우리는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이 그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는 우리 자신 자체로서 최종 목적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인간은 자율과 자유의 존재이고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존엄하다. 만일 인간을 그 스스로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만들거나 이용한다면 이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이다. 연구를 목적으로 인간을 복제한다거나 상업적 목적으로 인간을 이용하는 것은 분명히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비윤리적 행위이다.

인간을 특허의 대상으로 삼아 발명품 혹은 상업적 재산으로 삼게 될 때 인간에 대한 존엄을 지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상업적 이익이 유전적으로 인증된 판매용 복제 배아들이 시장에 품목으로 진열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유전적으로 우성과 열성으로 나뉘어 차별화된 인간사회가 될 것이고 그런 곳에서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은 온전하게 보장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인간 이외의 종간(種間) 교잡에 의한 인간복제도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핵이 제거된 소의 난자에 사람의 체세포 핵을 이식시키는 방법으로 사람의 유전형질을 99% 이상 가진 배아세포를 만들었다”는 연구발표는 충격적이다. 이는 멀지도 않은 우리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렇게 태어난 인간의 경우 그의 존엄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 이전에 그를 인간으로 보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부터가 문제가 될 것이다.

필요에 따라 태생적으로 굴종적인 시종으로 쓰기 위해서 인간 지능의 70% 정도의 지능만을 가진 저급 인간을 만들 수도 있다. 죽음의 두려움을 전혀 못 느껴 전쟁에만 유용한 전투용 인간을 대량 생산할 수도 있다. 기계적 로봇을 만드는 것보다 맞춤 복제인간을 만드는 것이 더 유리하고 쉬울지도 모른다.

한편, 인간복제가 몰고 올 정신적 피해도 심각하다. 복제된 인간이 원본인간에게 갖게 될 감정은 과연 어떨 것인가? 복제 인간은 원본 인간에 대한 아무런 종속감이나 귀속감 없이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 실제로 복제 인간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은 단지 추론에 불과하다. 따라서 환경결정론자들은 유전자 결정론자들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 쓸데없는 기우라고 무시한다. 그러나 이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우려이다.14) 14) Dan W. Brock, “인간복제 : 윤리적 찬반 논쟁의 평가”; Cloning And Cloning(2000).

또한 원본 인간이 불행한 인생을 살았을 경우 복제 인간에게 가중될 심리적 압박은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원본 인간의 삶을 통해 드러난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미리 알게 된 복제 인간의 심리적 상황을 상상해보라! 정상적으로 태어난 사람도 고아가 되면 심각한 정신적 불안을 느끼는 점을 감안하면 복제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이 느끼는 정체성과 회의와 고독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복제 인간 시대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 인간생명의 손상
일반적인 발생학의 관점에 의하면 인간의 수정란은 수정 후 대략 14일에 원시신경선(primitive streak)이 나타나면서 배아단계로 들어간다. 이때부터 8주째까지는 각종 기관이 형성되는데 이 시기를 배아기(embryonic period)라고 부르며 이후로는 이미 형성된 기관과 신체 부위가 성숙해는 태아기(fetal period)로 넘어간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배아기가 시작되기 전, 즉 수정란에 원시선이 나타나는 수정 후 14일까지의 수정란은 생명체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이때까지의 실험은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15) 15) Leland G. Johnson, 《존슨 생물학》 1, 생물편찬회 역(전남대 생물교재편찬회, 1997) 참조.

그러나 불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그 즉시 생명체가 된다고 본다. 인간복제의 실행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반적인 위험은 배아의 착상, 성장, 발달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의 실패는 바로 배아의 종말, 즉 죽음을 의미한다. 배아를 생명체로 본다면 이는 바로 다름 아닌 실험실 살인이다. 또한 하나의 배아를 만들거나 그것에서 하나의 줄기세포를 추출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잉여배아들이 희생된다. 수정 직후부터 생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 역시 모두 살인행위가 된다.

그러나 이런 해악은 명백하게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복제된 배아에게 나타날 또 다른 위험은 예기치 못한 수많은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 국립보건연구소의 소장인 해럴드 버무스(Herold Vermus)는 복제 인간에게 이식되는 핵은 원본의 몸속에 있었던 기간 만큼, 복제 배아에게 암이나 노화 관련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축적하고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주장에 의하면, 인간복제는 한 마디로 어떠한 경우에든 ‘연속되는 살인’ 없이는 진행될 수 없는 사악한 행위라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불치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복제 인간을 기르고 이를 희생시켜서라도 장기이식을 원하는 경우, 이 ‘장기이식용 인간’의 살상이 몰고 올 끔찍한 결과는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인다.
인간복제가 몰고 올 가장 심각한 병폐는 인간 생명의 경시에 따르는 인간 가치의 몰락인 것이다.

3) 기술 불안정
복제 양 돌리는 277개 복제 배아 가운데 온전히 태어난 단 1개의 배아다. 전문가들은 인간복제 기술 성공률이 높아야 평균 1%에 불과할 것으로 본다. 인간복제의 실패율은 99%인 것이다. 1명의 복제 인간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실험 과정에서 100여 개의 인간 배아와 태아가 희생되는 것이다. 지난 1999년 소 등 동물복제에 성공한 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소, 돼지 등 동물복제도 여러 차례 실험을 해야 하는 불완전한 기술”이라며 “사람을 상대로 실험을 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심지어 기술이 완벽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합의를 한 상태에서 영역을 제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16) 16) 〈여성신문〉(2003. 01. 16).

이처럼 복제 인간이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에 많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복제 인간이 다행히 성공적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성장 여부 역시 불투명하다. 이미 여러 복제 동물의 성장 과정에서 이상 증세가 나타나고 있으며 복제 인간 역시 이러한 부작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2002년 1월 14일 세계 최초의 복제 동물인 돌리가 폐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도축됐다고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가 밝혔다. 돌리는 6 세였다. 보통 양들이 11∼12세까지 살 수 있는 것에 비해 그 절반 정도를 산 셈이다. 이에 따라 돌리의 갑작스런 죽음은 복제 기술이 지니는 불안정성과 위험성을 보여 주는 생생한 증거라고 돌리의 탄생에 참여했던 한 과학자가 15일 밝혔다.

복제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이 불안정한 기술이 우리에게 희망이 아니라 어떠한 재앙을 몰고 올 지는 아무도 모른다.

4) 사회문화적 혼란
이미 언급한 대로 인간복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다시 물어야 할 만큼 인간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부를 것이다. 양성생식에 의존하던 인간의 출생이 무성생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기성의 인간관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만다.

복제 인간의 경우, 당장 법률상 문제를 검토해 볼 필요성이 생긴다. 유전자에 의해 복제된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이며, 어머니는 누구인가? 복제된 태아에게 자궁을 빌려준 사람이 어머니인가? 현행법상 대리모 계약이 무효라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혼란이 예상된다.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는 그 부모가 친권자가 되어(民法 제909조) 법률상 그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며 교육할 권리, 의무가 있다(민법 제913조). 현행법상으로는 자(子)를 낳은 사람이 어머니이고 그 어머니와 혼인하고 있는 남자가 아버지로 추정되도록 되어 있다(민법 제844조).17) 그러나 유전자의 복제에 의하여 태어난 아이에 대하여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들이 얽혀 있다. 17) 임경순, 〈인간복제, 과연 가능한가?〉(경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8).

한편,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수많은 복제 인간을 대량 생산하여 내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또한 유전적으로 개량된 우성인간의 출현으로 인간사회가 다양한 차별사회가 된다면 현재의 문화체제는 심각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또는 절제 없는 유전공학적 실험을 통해 예기치 못한 개체의 발생이 초래된다면 지구 전체가 생태학적인 파멸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1958년에 처음 만들어지고 1986년에 리메이크된 크로넨버그 감독의 ‘더 플라이’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나 문학작품들이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전자 조작의 실수에 뒤따를 유전자 오염의 위험은 곧장 인류의 파멸까지 부를 수 있다.

이미 다양한 실험단계에 들어간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태학적 무기의 개발 생산은 핵폭탄을 능가하는 가공할 파괴력을 갖는다. 불순한 권력독점가들이나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만이 해독제를 확보한 후 이러한 무기를 무차별 사용할 수도 있다.

한편, 서구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인간복제의 금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기독교 진영에서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된 인간 생명 그 자체를 인간이 자의적으로 조작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인간복제는 인간존재의 유일회성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셋째, 인간복제 행위는 남녀 양성에 의한 생명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어지럽히며 인간의 신성함을 손상시키는 행위이다. 넷째, 전통적 가족 관계를 붕괴시킬 것이다. 다섯째, 인간복제 시도는 특정 인종만을 선별해 번식시키려는 우생학의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으며 또한 아이를 공산품처럼 주문 생산하는 사회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이미 완전한 인간으로 발달할 수 있는 인간의 배아 세포를 도구화하여 쓰고 버리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18) 18) 구경국, 〈생명공학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입장〉, 《불교평론》 제2권 제3호(2000, 가을), p.103.

여기서 첫 번째 항목을 제외한 다른 항목들은 일반적인 윤리적 관점에서도 충분히 공감된다. 다만 첫 번째 항목은 순전히 기독교19)적 이념에 기초하고 있다. 19) 기독교라는 어휘는 한국에서 이중적 외연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종교학자들은 이 어휘를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Christianity)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은 이를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해당하는 개념으로 쓰며 자신을 개신교라 부르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한국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교라는 용어를 따로 쓰고 있다. 야훼를 가리키는 공식 표기의 경우에도 가톨릭은 하느님이고 개신교는 하나님이다.

기독교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대전제는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므로 인간은 항상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복제는 이 대전제를 파괴한다. 복제 인간은 인간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 조작되고 생산되므로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원천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인간복제는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신 힘을 서투르게 모방하려는 위험한 시도’20)일 뿐이다. 20) 교황청생명학술원, 〈인간복제에 관한 성찰〉,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제9호(1999), p. 281.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거나 조작하는 일은 오로지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 두어야 한다는 게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기독교의 제1 이유가 될 것이다.

4. 인간복제 기술, 불교적 조건

인간복제를 주장하는 입장에 관해 상업적 이유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불교 역시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기독교의 입장을 제외한다면 이 역시 불교도 동의할 것이다. 즉 인간복제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무조건적 반대거나 전적인 찬성일 수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복제 기술에 관해서 불교가 찬성할 수 있는 요소도 있고 반대해야만 할 요소도 있다는 뜻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찬성이든 반대든 각각 불교적 조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복제 기술에 대해 찬성도 할 수 있고 반대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불교가 복제 기술 자체를 악으로 보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일체의 존재와 현상을 무자성(無自性)으로 보는 점이 불교의 가장 중요한 기본적 세계관임을 상기하면 이는 아주 쉽게 분명해진다.

1) 동기주의
이러한 전제 위에서 복제 기술을 논하는 불교적 입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동기주의의 관점이다. 불교윤리를 동기주의(動機主義)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불교는 업의 종류를 크게 신구의(身口意) 삼업으로 나누며 이 중에서 의업을 가장 중시한다. 의업은 사업(思業)이라고도 하는데 나머지 둘은 사이업(思已業)이라고 해서 의업에 뒤따르는 업으로 간주한다.

의업의 요체는 의지이다. 즉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것을 일으키는 의지에 의해서 유발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결국 모든 행위에 대한 윤리적 결과는 의지의 선악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다. 칼이나 칼로 자르거나 찌르는 행위 자체에는 선악이 없다. 칼에도 행위에도 본래적 혹은 본질적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들려고 무를 자른다면 선이고 해치기 위해 사람을 찌른다면 악이다. 칼질을 하는 동기가 윤리적 결과를 초래한다. 심지어 선악의 의지적 동기가 없으면, 즉 의업이 없으면 신체적 행위가 일어나더라도 결과가 초래되지 않는다는 불교적 해석도 가능하다. 즉 의지가 게재되지 않은 행위는 과보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윤리적 결과의 기준이 될 의지의 선악을 판단할 근거는 무엇인가?

즉 불교에서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경우에는 인간복제를 찬성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반대해야만 하는가? 불교의 선은 ‘나와 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초래하기 위해 행하는 행위’라고 압축할 수 있다. 나에게나 남에게나 어느 한 쪽이라도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위해 하는 행위는 선이 아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악은 ‘나와 남 어느 쪽에라도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위해 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복제 기술 자체를 두고 선악을 논할 수는 없다. 복제 기술을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개발하고 이용하는가에 따라서 찬성과 반대를 결정해야 한다. 복제 기술을 나와 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초래하기 위해 개발하고 이용한다면 불교는 이를 찬성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그것이 나와 남 어느 쪽에든 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행시킨다면 이는 악이다.

복제 기술에 관해 구체적으로 논할 경우, 복제를 실행하는 수정란을 온전한 생명으로 보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불교는 틀림없이 이를 온전한 생명으로 본다. 불교는 인간의 경우21)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는 순간, 전생에 사망했던 중음신인 간다르바(gandharva: 健達縛, 香音身)가 이 수정란에 결합되어 생명체가 된다.22) 21) 인간은 기본적으로 중음신이 자궁 내의 태막에 붙어 생장하는 태생이지만, 수정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난생적 측면이 있고, 생장 과정에서 세포가 분열해야 한다는 점에서 습생적 측면도 있으며 중음신이라는 영적 존재가 순간적으로 자궁 내에 출현한다는 점에서 화생적 측면도 갖는다. 22) 계경에서 말하듯이 모태에 든 자는 세 가지 구체적인 요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는 이때 적절한 조건을 갖춘 모체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부모가 사랑으로 서로 합쳐야 하고, 셋째는 간다르바가 바로 나타나야 한다. “如契經言 入母胎者要由三事俱現在前 一者母身是時調適 二者父母交愛和合 三健達縛正現在前”(대정장 29, 《구사론》. p.44c). 김성철, 〈유전공학에 대한 불교윤리적 조망〉, 《불교문화연구》 제3집, p. 139 각주 12) 재인용. 번역 필자.

따라서 수정된 순간부터 온전한 생명이다. 생식목적이나 치료목적의 복제 기술의 실행은 자신에게는 좋은 결과를 초래하기 위한 행위이지만 남, 즉 수정란의 손상을 초래하는 행위이므로 불교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자면 불교에서 볼 때 복제 기술의 실행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이기적 동기에서 남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반대할 찬성할 수 없는 악이다.

불교는 복제 기술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만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도 생명을 창조하고 불치병을 치료하는 복제 기술을 실행할 수만 있다면 불교는 이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불교적 입장에서도 줄기세포 연구 등 배아 실험이 생명을 절대로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전제가 확보된다면 치료를 위한 복제 연구는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복제 기술이 이기적인 동기로 오용, 악용, 남용되지만 않을 수 있다면 그리고 생태학적이고 사회적인 모든 위험요소들이 충분히 방지될 수 있는 조건이라면 불교는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불교는 남의 생명을 해쳐가면서 까지 후손을 갖거나 생명을 연장할 것을 권면하지 않는다. 도리어 버려지는 생명들을 입양하거나 자신의 유한성을 수용하고 좀 더 향상된 다음 생을 기약할 것을 권장한다.

2) 생명주의
복제 기술을 논하는 불교의 두 번째 입장은 생명주의의 관점이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다. 그리고 자비행의 두 기둥은 방생과 보시다. 방생(不殺生)과 보시(不偸盜)가 불자들의 실천덕목 중에서 항상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 앞서 논한 동기주의는 이 중에서 보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보시행의 동기는 이타주의다.

한편 방생의 동기는 생명주의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의 제1의 본능은 존재하는 것 자체이며 존재하는 것, 즉 생명은 모든 어떠한 가치보다 우선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생명은 그 자체로서 목적일 뿐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이다.

인간복제가 생명을 절대로 해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될 수만 있다면, 연구는 물론 합법적인 목적으로 그것을 이용함으로써 인간의 행복을 창출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의 생명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희생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아직도 끼니를 잇지 못해 굶어 죽는 이들이 허다한 상황에서 다른 생명을 해치면서까지 자신의 건강과 수명 연장을 위하는 것은 불교적으로 옳을 수 없다.

복제 기술은 어느 한 편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한 편의 생명을 손상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그 독특성이 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을 이용한 복제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자면 불가피하게 불살생계를 어기게 된다. 수정란이나, 배아 줄기세포, 하나의 개체로 생장 가능한 체세포, 또는 실험 동물을 이용하는 생명공학은 ‘수많은 다른 생명을 죽임으로써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라고 평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복제 기술을 비롯한 생명공학은 어떤 다른 과학기술보다도 윤리적인 성찰과 사회적 감시를 엄중하게 받아야 하며 결국에는 반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불교계의 어떤 인사는 “치료 목적으로 줄기세포를 활용하는 것은 인정할 수도 있다”23)고도 하지만 이는 다시 심각하게 반성해봐야 할 것이다. 사회의 실정법에서도 수정란과 배아에게 잠재적인 인간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다. 23) 〈동아일보〉(2002. 01. 10). http://news.empas.com-/show.tsp/20030110n05987/?s=1859&e=2036

최근에 수정란을 이용하지 않고 배아줄기세포를 생산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미수정 난자의 외피에 성인의 체세포를 주입하여 성장시킨 후 낭포(blatocyst)의 단계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기술이다. 이를 체세포핵전이(體細胞核轉移: somatic cell nuclear transfer) 기술이라고 부른다.24) 24) http://-europa.eu.int/comm/research/quality-of-life/stemcells/about.htm

영국에서는 이를 자궁에 착상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 기술의 사용을 합법화하였다. 그러나 이를 통해 생산된 낭포 역시 태아로 자라날 가능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낭포와 동일한 생명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를 해체하고 활용하는 것 역시 불교적 견지에서는 살생으로 규정되어 반대될 수밖에 없다.

3) 관계주의
복제 기술을 논하는 불교의 세 번째 입장은 관계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은 동적인 흐름의 작용과 과정일 뿐으로서 그것에는 아무런 실체도 자성도 없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물과 현상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적 깨달음의 핵심인 무아와 연기법의 원리다. 불교는 관계성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상생의 지혜를 찾는 것이다.

독자들은 지금 한 권의 책을 손에 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이 책이 언제 어디서나 책일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불교는 실체적 존재로서의 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책이란 존재는 사용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책으로 존재한다. 즉 종이와 활자로 이루어진 물체에 담긴 내용을 ‘읽고자’하는 사람이 있을 때만 책이 존재한다. 그 물체를 베고 누우면 그것은 책이 아니라 베개이다.

그 물체 위에 그릇을 올려놓으면 그것은 그릇 받침이다. 찢어서 오물을 닦으면 휴지가 된다. 틀어쥐고 때리면 무기가 될 것이다. 심지어 뜯어먹는 염소에게는 음식이 될 것이다. 종이와 활자로 이루어진 그 물체가 언제 어디서나 스스로 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에 의해서 책이 되는 것이다. 그 물체 자체가 언제나 스스로 음식인 것이 아니라 뜯어먹는 염소에 의해서 음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가 있고 나서 아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들이 태어난 뒤라야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즉 아버지라는 존재는 아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아버지의 존재 근거는 아들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을 수 있다. 만일 네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아내가 사라지고 나면 남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홀아비가 존재할 뿐이다. 아내가 없는데도 자신을 계속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실재하지 않는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일 뿐이다.

사실은 내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네가 다 나의 존재 근거다. 따라서 불교는 너를 해치고 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너를 해침으로써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복제 기술은 불교로부터 찬성받을 수 없다. 복제 기술이 그 어떤 것도 해치지 않고 성립할 수 있을 때까지, 불교는 인간복제에 대해 ‘아직’ 반대다. ■

 

윤영해
동국대학교 선학과 및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졸업. 종교학 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교수. 논저서로 〈불교와 기독교의 자기부정의 의미〉 《주자의 선불교비판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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