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불교학 (4) 돈점론의 티베트 불교적 전개

1. 들어가는 말

불교사상사는 수행도의 기술에 있어 두 개의 상이한 이해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사마타(止)라고 불리는 마음의 적정을 위한 수행이고, 다른 하나는 비파사나(觀)라고 불리는 대상의 바른 관찰을 통해 사물의 무상, 고, 무아를 인식하는 수행방법이다.

이 두 개의 방식은 초기불교 이래 심해탈(心解脫)과 혜(慧)해탈로 분리되어 왔다. 양자는 슈미트하우젠의 표현을 빌리면 깨달음에 대한 긍정적이고 신비적인 언명과 부정적이고 분석적인 서술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이해방식에 따르면 양자의 관계는 서로 상보적인 관계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뿌생의 Mus沖la et Na?ada에서 지적되고 있듯이 해탈도에 관한 두 방식 사이의 차별성은 이미 초기경전에 있어 명백하게 인식되어 왔고, 불교의 각 학파에서 이에 관해 각기 다른 서술이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적 정의만으로 수행도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 양자의 관계를 ‘상보적 관계’로서 파악하는 것 이외에도 그것들을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또는 각각의 수행자의 능력에 따라 수행해야 할 방법으로서 또는 어느 하나가 다른 것에 종속되는 관계로서 파악하는 방법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양 방식의 대립이 8세기 후반 티베트의 수도인 라사의 삼예사(bSam yas)에서 다시 한번 불교사상사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음을 본다. 삼예사의 논쟁은 단계적 해탈론(漸修)을 대표하는 인도의 학승 까말라쉴라(Kamalasヵ?a: 蓮花戒)와 즉각적 또는 동시적 해탈론(頓悟)을 대표하는 툰황의 선사인 마하연(摩訶衍) 사이에서 벌어졌다. 까말라쉴라는 유가행중관파의 대학자인 샨타락시타(S첺?taraks.ita: 寂護)의 제자로서 스승의 돌연한 죽음 이후 삼예사의 논쟁을 위해 794년에 티베트로 초빙되어 왔다. 마하연은 툰황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중국계 선사로서 북선종 계열에 가까운 입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티베트의 툰황 점령 직후인 786년 라사로 초빙되어 와서 당시 왕비와 귀족 가문의 후원 아래 활발히 선교하고 있었다. 논쟁은 불교를 적극 장려한 티베트의 티송데짼 (Khri srong lde brtsan) 왕의 입회 하에 795년 삼예사 보리원에서 일어났다.

삼예사의 논쟁은 흔히 인도적 사유를 대변하는 단계적 해탈론과 중국의 선을 대변하는 즉각적 해탈론 사이의 사상적 대립으로서 알려져 있지만, 이를 지역적·문화적 차이로 환원시키는 것 보다는 앞서 설명했듯이 불교사상 자체가 내포한 두 가지 경향 사이의 상징적 조우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물론 이 논쟁이 갖는 문화적·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티베트 내에 있어 중국문화에 대한 인도문화의 지배성이 확고하게 된 계기라고 하는 사회사상사적 해석도 있지만, 교리적·철학적 맥락에서 볼 때 논쟁의 초점을 정신사적 맥락에 한정시켜 탐구하는 것이 이 논쟁의 성격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양자의 논쟁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 의심하는 학자도 있지만, 중국측 문헌과 티베트문헌에 약간의 서술상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나타나 있어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영향사적 관점에서 볼 때 삼예사의 논쟁이 끼친 영향은 티베트불교의 측에서 압도적으로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측 자료로는 왕석(王錫)이 편찬한 《돈오대승정리결(頓悟大乘正理決)》(이하 정리결) 등이 툰황문서로 남아 있고, 티베트 문헌으로는 일종의 삼예사 창건연기인 《바제(sBa bzhed)》, 《췌중 메톡닝뽀(Chos ‘byung Me tog snying po)》, 부똔(Bu ston)의 《불교사(Chos ‘byung)》 등이 있다. 본고는 주로 티베트자료를 중심으로 서술한 세이포트 루엑(D. Seyfort Ruegg) 교수의 Buddha-Nature, Mind and the Problem of Gradualism in a Comparative Perspective(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1989)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그 밖의 중국측 자료인 《정리결》의 내용은 일본학자의 소개를 인용해 설명할 것이다.1) 삼예사의 논쟁과 관련된 기본적 자료는 다음과 같다: Paul Demieville, Le concile de Lhasa, Bibliotheque de l’Institut des Hautes Etude Chinoises vol. 7(Paris, 1982). R.A. Stein, “Sudden Illumination or Simultaneous Comprehension: Remarks on Chinese and Tibetan Terminology”, Sudden and Gradual (ed. P. Gregory), (Delhi, 1991). Luis O. Gomez, “Purifying Gold: The Metaphor of Effort and Intuition in Buddhist Thought and Practice”, Sudden and Gradual (ed. P. Gregory), Delhi 1991. 일본의 자료로는 芳村修基, 《インド佛敎 思想硏究》(Kyoto, 1974). 이하 자료목록은 菅沼 晃, 〈チベットに おけゐ インド佛敎と 中國佛敎との 對論〉, 《佛敎思想史 4 〈佛敎內部に おけゐ 對論〉 中國 チベット》

2. 삼예사 논쟁의 역사적 배경과 그 내용

티베트문화는 최초의 티베트왕국을 건설한 송짼감뽀(Srong btsan sgam po) 왕의 네팔계 왕비와 당나라 문성(文成)공주의 두 왕비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인도계 문화와 중국계 문화의 습합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티베트에서 불교가 적극적으로 수입되고 장려된 것은 티송데짼 왕(재위시기: 742∼797)에 의해서였다. 그는 전통종교인 본(Bon)교 대신에 불교를 장려했고, 인도에서 학승 샨타락시타와 밀교승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를 초청해 불교의 논리와 위세를 통해 본교를 억제했다고 한다.

그러나 샨타락시타의 돌연한 죽음 이후 인도계 불교의 영향력은 퇴색해 갔고, 그 대신에 티베트의 정치적·군사적 영향력 하에 들어간 툰황 일대에서 유행한 중국계 선불교가 라사에 전해지고 많은 후원자를 얻게 되었다. 그 당시 티베트가 중국불교계와 상당한 교류를 했다는 것은 원측의 《해심밀경소》가 법성(法成 = Chos grub)에 의해 티베트어로 번역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방증된다. 중국 선불교의 대표자는 화상 마하연으로 티베트의 사료에서 그는 흐와샹 마흐옌(Hva shang Mah yan)으로 음사되고 있다. 그의 가르침은 본연적 자성의 밝음, 이것의 ‘자발적’ 활동을 강조했고, 모든 수행과 노력 대신에 어떠한 분별작용이나 지향적 의식작용조차 없는 불사불관(不思不觀)의 상태를 깨달음의 상태로 간주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그가 샨타락시타에 의해 대변되는 철학적 교의적 불교 대신에, 모든 의식작용의 소거를 선정 체험 속에서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철학적인 선불교의 전통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 티베트에서 크게 어필했다.

이에 자극받은 티베트의 인도계 불교의 후원자인 예세 왕뽀(Ye shes dbang po)는 샨타락시타의 유지를 받들어 그의 제자인 까말라쉴라를 초청해 교의논쟁을 시도했고 이것이 소위 라사의 종론(宗論) 또는 삼예의 종론이라고 불리는 삼예사의 논쟁의 역사적 배경이다. 입회한 왕은 논쟁에서 패배한 자는 티베트을 떠나야 한다고 선언했다.

티베트문헌에 따르면 논쟁이 시작할 때에 마하연은 자신이 연장자로서 질문을 제기하거나 또는 그것에 답할 수 있거나 어느 편도 좋다고 말한다. 이에 까말라쉴라는 자신은 의도한 대로 논의하거나, 의도한 대로 명제를 제출하거나 또는 의도한 견해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답한다. 부똔의 《불교사》에 따르면 마하연은 먼저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표현했다.

만일 사람이 선행이나 악행을 한다면 그 결과로서 선취나 악취에 태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며 깨달음을 얻는데 항시 장애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고작용도 없는 사람은 현세의 생존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다. 이같은 방식으로 사람은 제10지에 도달한 보살처럼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간략한 인용만으로 마하연의 교의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악업은 물론 선업도 배제하고 어떠한 사고작용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입장은 티베트불교에 의해 일종의 정적(靜寂)주의로 받아들여졌다. 왜냐하면 이에 대한 까말라쉴라의 반론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어떠한 사고작용도 배제한다는 마하연의 두 번째 언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반론은 다음과 같다.

만일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서도 분별작용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면 이것은 관찰작용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만일 이러한 관찰작용이 없다면 어떤 요가행자도 무분별지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누가 일체법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의도하는 것도 없다면 이것은 그가 이전에 경험했던 것을 기억하거나 사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체법을 사념하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할 때 이 생각 자체도 그가 이미 마음작용을 일으켰다는 증거이다.

만일 사념하지 않는 것이 깨닫는 것이라면 기절하거나 술에 취한 사람도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관찰작용이 없기 때문에 무분별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사념작용을 중지했다고 하면 어떻게 일체법의 무자성함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공성을 증득하지 못한다면 어떤 장애도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관찰작용에 의해서만 잘못된 현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반대가 되므로 좋은 것이 아니다. 기억이나 관찰작용 없이 이전에 거주했던 장소를 상기할 수도 없고 깨달음에 이르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까말라쉴라의 비판은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마하연의 두 번째 입론이 깨달음의 과정에서 관찰작용, 즉 비파사나(觀)의 유용성에 대한 부정으로 이끈다는 점에 향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마하연의 입론이 실은 무분별지에 대한 그릇된 파악에서 나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기절하거나 술에 취한 사람도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한 것과 같게 될 것이라는 까말라쉴라의 지적은 이미 《유가사지론》, 《섭대승론》 등에서 무분별지에 대한 잘못된 파악의 하나로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말라쉴라의 비판에 비해 함께 논쟁에 참여한 예세 왕뽀 등의 비판은 마하연의 첫 번째 입론, 즉 모든 행위는 해탈을 장애할 뿐이라는 주장에 향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비판의 요지는 본래적 불성의 존재성에 대한 인식을 통해 즉각적으로 깨달음에 들어가려는 돈오적 방식에 대해 6바라밀의 수습을 통한 점진적 깨달음의 길에 대한 옹호로 나타났다. 만일 우리가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해탈을 위한 원인으로서의 수행을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는 경전의 청문, 10바라밀의 수습, 3현위와 보살의 10지의 단계에서 획득되는 인식을 통해 궁극적 깨달음을 얻는다는 점진적 해탈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부똔의 기술은 논쟁의 경과의 서술에 있어 중국측 자료인 《정리결》의 설명과 큰 윤곽에 있어 일치하고 있다. 《정리결》에서 마하연에 대한 첫 질문은 구문(舊問), 이에 대한 마하연의 답변에 대한 재질문은 신문(新問)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 질문에서 진실과 방편이라는 대승불교의 근본 과제가 기본이 되어 반야의 지와 그 실천의 문제가 테마가 되고 있고, 마하연은 불사불관(不思不觀), 무작(無作)이라는 용어로 그의 입장을 정리하여 표현하고 있다.

《정리결》의 구문(舊問)에 따르면 반야바라밀은 무상(無想), 무취(無取), 무사(無捨), 무착(無著)으로 정의되고 있고, 이 반야의 실천이란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고 어떠한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반야를 완성시키는 것으로서의 보시 등의 바라밀의 수행은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까말라쉴라는 반야의 작용이란 모든 것이 궁극적 의미에서 실재하지 않음을 관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런데 만일 모든 사고작용을 망상으로 간주해서 이를 제거한다면 반야의 작용 자체도 부정되게 될 것이다. 진실은 반야의 관찰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명백하게 된다. 반면 마하연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모두 망상, 망분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그러한 심작용이 끊어지는 곳에 진실이 현현하는 것이다.

까말라쉴라에 의해 비판된 점은 반야의 일상적 실천의 문제이다. 반야라고 할 때 이것은 작용하지 않는 지(智)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보시 등의 실천행으로서 작용할 때 비로소 반야가 완성된다는 것이 반야경의 취지일 것이다. 반야와 방편은 대승의 역사를 통해 테마화된 것이고 마하연의 주장은 이러한 대승의 근본 과제를 부인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 까말라쉴라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무엇도 행하지 않는다”의 근거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정리결》은 만일 불사불관한다면 어떻게 일체종지를 얻을 수 있는가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망심이 생기지 않고 일체 망상을 떠난다면 진실한 본성이 본래 있는 것으로(眞性本有) 일체종지는 자연히 현현하게 될 것이다.

《정리결》은 《화엄경》과 《입능가경》을 인용하면서 이 진성본유를 “태양이 구름에서 나오고 탁수가 깨끗해지고, 깨끗한 거울이 맑고 정결해지고, 은이 광산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마하연의 진성본유라는 표현은 《입능가경》의 본주법성(本住法性, paura?.a-dharmat )를 연상시킨다. 《입능가경》은 “본주법성의 도는 금은을 산출하는 광산과 같은 것이다. …… 법계는 상주하는 것이다.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시든 출현하지 않으시든 이러한 제법의 법성, 법의 상주성, 법의 결정성은 ……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입능가경》의 설명은 본성에 있다기보다는 자내증(自內證)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마하연의 불사불관은 이 본유의 법성이 자연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에 초점이 놓여 있다.

여래장과 관련해 《정리결》은 《입능가경》의 “그것은 자성적으로 청정하고 본래 청정하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에 의거해 “불성은 본래적으로 존재하며 이것은 수행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탐진치] 3독을 떠난다면 허망한 망분별과 그 습기의 더러운 옷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佛性本有 非是修成 但離三毒 虛妄妄想 習氣垢衣 則得解脫)”고 주장하고 있다. 마하연에게 있어 불사불관(不思不觀)은 이러한 망분별과 그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방식으로서 그의 입장은 중국 북선종 계통에 가깝다고 평가되고 있다.
여기서 까밀라쉴라가 문제삼은 것은 결코 ‘중생본래유불성’이라는 명제가 아니다. 그것은 중관학파에서도 이미 널리 인정된 교리로서 그에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그가 제기한 반론은 불성이 저절로 어떤 노력없이 현현한다고 하는 마하연의 설명에 있었다.

이러한 까말라쉴라와 예세 왕뽀 등의 비판에 대해 마하연은 어떤 답변도 하지 못한 채 패배를 자인하고 티베트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까말라쉴라는 마하연이 보낸 밀사에 의해 암살되고 예세 왕뽀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단식하다가 죽었다고 부똔의 《불교사》는 기술하고 있다.

3. 삼예사 논쟁의 종교적 철학적 쟁점

삼예사의 논쟁이 가지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마하연의 주장의 핵심은 그다지 상세하게 알려지고 있지 않다. 때문에 마하연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이 논쟁 이후 저술된 까말라쉴라의 《수습차제(修習次第)》에서 제기된 익명의 반대자의 견해가 즐겨 인용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마음의 분별작용에서 생겨난 선악의 업의 힘에 의해 유정은 윤회하면서 천국 등의 과보를 받는다. 반면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어떤 것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완전히 윤회로부터 벗어나 있다. 따라서 어떤 것도 생각되어서는 안 되며 보시 등의 선한 행위도 수습되어서는 안 된다. 보시 등의 행위는 단지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제시되었을 뿐이다.2) Bha?ana?rama의 범본은 G. Tucci가 편찬한 Minor Buddhist Texts I-III이 있고, 본 인용은 III, 13-14.

이어서 까말라쉴라는 모든 요소에 대해 마음 쓰지 않고(不思), 의식작용의 대상으로 삼지 않음(不作意)에 의해 진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반대자의 견해를 인용한다. 그러나 부작의에 의해 물체 등의 현상적 상을 제거한다고 할 때, 여기서 부작의란 단순히 작의의 비존재가 아니라 반야를 통해 분석적 관찰을 하는 사람을 대상화시키지 않는 것 내지 비지각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수습차제》 III 25-26에서 저자는 6바라밀이 선정 속에 포함되며 따라서 선정의 수습을 통해 다른 모든 바라밀이 수습되게 된다고 하는 반대자의 명제를 인용하고 있다. 반대론자는 해탈적 인식을 얻기 위한 선정의 중심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반야바라밀이 모든 바라밀의 근본이고 그것들을 인도해야 한다는 반야경의 견해와 명백히 상치되고 있다.

정혜가 결합되어 있는 상태에서 마음이나 작의는 분석적 관찰의 중지를 통해 특징지워지고 언어적 개념적인 구상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것은 저절로 작동하며 따라서 수행자는 의욕작용 없이 실재성 속에 주하게 된다. 마음이 저절로 작동하고 정혜의 균형잡힌 상태 속에 있을 때 의욕작용이 이완되기 때문에 평정하게 된다. 이것이 지관쌍운(止觀雙運)의 도이다. 이때 보시 등의 방편과 반야가 즉각적으로 작용하게 되며 이것이 쌍운도인 것이다.

까말라쉴라가 《수습차제》에서 경론의 인용을 통해 논박했던 반대자의 견해가 마하연의 그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수습차제》와 《입무분별다라니석(入無分別陀羅尼釋)》 및 《정리결》 등의 툰황의 티베트문헌에서 발견된 마하연의 견해 사이에는 확실히 공통된 부분이 존재하고 있다. 부똔의 《불교사》는 까말라쉴라의 입장을 차제론자(rim gyis pa)로 기술하고, 마하연의 입장을 동시론자(cig car ba)로 명명하면서, 차제론자는 중국어 점문(漸門)에, 동시론자는 돈문(頓門)에 상응한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불교에서나 한국불교에서 돈점 논쟁은 사상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이지만, 티베트불교와는 다른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그 차이는 특히 돈문(頓門, cig car ba) 개념의 상이한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이며, 이것이 각기 다른 철학적 이해를 발전시켰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티베트어의 일반적 어의 설명에 의거하는 한, 찍짜르(cig car)는 여러 구성부분이 모여 이루어진 단일한 것을 지시한다. 나아가 이 말은 “한 순간에(at a single occasion)” 또는 예쉬케(Ja촶chke)가 말하듯이 “동시에(at the same time, simultaneously)”를 의미한다. 이것은 ‘점차적’이라는 의미와 반대되는 것으로, 티베트어의 어원적 해석에 따르는 한 돈(頓), “갑작스런(sudden)”이라는 뉘앙스는 제2차적인 해석이라고 보여 진다.

티베트문헌에서 단계론적 과정은 산을 한걸음, 한걸음씩 올라가는 것인 반면, 동시론적 과정은 하늘에서 나무 위로 급강하하는 독수리의 모습에 비유되고 있다. 해탈이 번뇌의 제거에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두 방식은 결국 번뇌가 어떻게 제거되는가 하는 양태와 관련된다. 차제론자란 해탈도의 반복된 훈련을 통해 점차적으로 수행을 강화시켜 번뇌를 차례로 제거하는 방식을 강조하는 반면, 동시론자란 한 심(心)의 찰나에 번뇌가 제거됨에 있어 동시적인 측면에 중점이 놓여 있다고 보인다.3) R. A. Stein, 앞의 논문 참조.

마하연에 귀속되는 가르침으로서 모든 종류의 분별적 사고의 중지와 무작의, 무념이 마음을 이해하고 직접 인식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이런 작의의 부정은 매우 특징적이다. 작의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싯다(Siddha)운동, 특히 마이뜨리빠다(Maitr沖pa?a, 1000년경)에게서 두드러지고 분별적 사고와 관련지어 설명될 수 있다. 분명 마하연이 추구했던 것은 자발적이고 본래적 마음으로의 회귀였다고 보여진다. 외부와 교류하는데 마음을 쓰기 보다는 직접적 인식의 형태 속에서 마음의 본래성을 자각하는 것이 가장 긴요한 과제라는 인식이 마하연의 주장의 요지라고 보인다. 비록 그러한 외적 교류가 붓다와 관련된다고 해도 이러한 중개적인 언어적 인식은 필히 분별적 영역에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마하연의 생각이었다.

4. 티베트불교 내에서의 마하연의 유형론적 이해

티베트 전승에서 마하연의 가르침은 그 구체적 내용을 떠나 하나의 유형으로서 정형화되었다. 이러한 유형화는 역사적 사실에 의존하기 보다는 범주유사적 관점에서 조직화되었다고 보여진다. 그가 4바라밀의 유용성을 부정했다는 것은 일종의 수행불필요론으로, 그리고 무작의에 대한 강조는 정적주의로서 간주되었다. 대부분의 티베트 학파는 마하연의 사상을 위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있지만 몇몇 까규파의 문헌은 그의 사상적 지향점에 대한 동조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하에서 우리는 일종의 영향사의 관점에서 티베트문헌에 수용된 그에 대한 평가를 개관할 것이다. 먼저 마하연의 교설에 대해 보다 융화적 태도를 보여주는 사상적 입장을 보자.

일부 티베트 전통이 마하연의 사고에 대해 포용적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까규파(bKa’ brgyud pa)는 사상적으로 선불교적 전통에 친밀하다고 하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또 닝마파(Nying ma pa)의 주요 교설인 족첸(rdzogs chen = 大圓滿)과 마하연의 교설의 유사성도 지적되고 있다. 마하연의 교설은 기본적으로 경전에 의거해 있는 반면, 족첸은 만트라승(乘)이라고 하는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지향점은 동일하다는 인식이 보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몇몇 문헌에서 행해진 점문·돈문·마하요가·족첸의 네 단계의 교판적 해석도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그리고 마하무드라(= 大印)와 마하연의 교설 사이의 일치점에 대해서도 일부 까규파의 학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그 관련성은 “만능의 구제약”이라는 비유의 사용에 의해 암시되고 있는데, 까규파는 어떤 작의도 없이 마음을 직접적으로 인식한다고 하는 마하연의 교설을 매우 포섭적으로 다루면서 이를 무작의에 대한 까규파의 교설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바제》에서 마하연의 교설은 “만능의 구제약”(dKar po chig thub)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것은 마하연의 가르침을 《열반경》에 나오는 agada라는 약으로 비유하는 《정리결》의 이해와도 상통한다. 마음을 직접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만능약”으로서 기능하며, 이러한 마음의 순수한 본성에 대한 직접적 인식만으로 해탈을 얻기 위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결국 방편바라밀과 반야의 유용성에 대한 부정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지적이다.

마하무드라에 따르면 동시적 해탈도(cig car ba)에 주하는 수행자들은 어떤 사변적 분별적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그 상태를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마음의 자성을 확립한 후에 결코 분별적으로 이를 지속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차제적 방식에 따르는 수행자들은 마음의 자성을 노력을 통해 수습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마하무드라의 근본적 가르침과 아티샤의 전통을 결합시킨 까규파의 위대한 수행자인 감뽀파(sGam po pa: 1079∼1153)는 이 “만능의 구제약”을 준비 기간의 길이와 인식적 원천을 정할 수 없는 정신적 증득을 가리키는 것으로 파악하며, 그것에 의해 자신의 마음속에 큰 기쁨의 차원이 획득되고 해탈이 얻어지며 모든 윤회의 속박이 끊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선정 수행에서 모든 종류의 개념적 분석적 탐구를 배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는 이와 관련해 돈문파를 점문파의 다음 단계의 정신적 수행의 단계를 보여주는 사상으로 교판적으로 위치지우고 있다.

마하연의 사상에 대한 이러한 호의적 판단에 비해 대다수의 티베트 전통은 이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 이하에서 간략히 언급할 그 대표적 학자는 샤캬 판디타, 샤캬 촉덴 그리고 쫑카파이다. 그들의 비판점은 마음의 직접적 인식으로서의 “만능적 구제약”이 지관쌍운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 관점이 쉽게 수행부정론으로 이끌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자기의 마음의 직접적 인식을 저절로 실현되는 효과적인 일종의 정신적 치료약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꺄파(Sa skya pa)의 대학자인 사꺄 빤디따(Sa skya Pan.d.ita: 1182∼1251)에 의해 철저히 부정되었다. 그는 마하연의 가르침을 정신적 “만능적 구제약”으로 간주하고, 이를 “오늘날의 마하무드라”에 대한 비판과 연결시켜 이를 “중국적 족첸”(rgya nag lugs kyi rdzogs chen)으로 부르고 그 단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가 “오늘날의 마하무드라”라고 지칭한 것은 탄트라 계통에서 수행되었던 모든 종류의 마하무드라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감뽀파 등의 당대의 까규파 수행자들에 의해 채택된 경전에 입각한 마하무드라 수행법이었다. 왜냐하면 마하무드라는 단지 만트라의 전거에 근거해서만 증득될 수 있고 경전에 근거해서는 그 본의가 밝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샤캬파의 전통에서 정통 마하무드라는 인도적 체계로, “오늘날의 마하무드라”는 중국적 체계로 간주되었다. 후자는 사이비 비파사나로서, 공에 대해 마음을 고착시키는 방식의 일종으로서 결국 모든 사고작용을 억제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중국적 체계로서의 마하연의 교설도 공성에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로 평가절하되었다.

사캬 촉덴(S첺?ya mchog ldan: 1428∼1507)은 마하연의 교설과 ‘현재의 마하무드라’를 관련시키면서 그것들을 비판하기 위해 심주(心住)의 수습과 관찰의 수습을 구별하고, 심주가 관찰에 선행하는가의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심주와 관찰의 구별은 《유가사지론》에서 사마타와 비파사나와 관련되어 명확히 논의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삼매에는 사마타에 속하는 심주와 비파사나에 속하는 관찰의 두 종류가 있다.

심주에는 내주(內住), 등주(等住), 안주(安住), 근주(近住), 조순(調順), 적정(寂靜), 최극적정(最極寂靜), 전주일취(專注一趣), 등지(等持)의 9종이 있다. 그것은 요약하면 마음을 적정하게 하는 수행법이다. 반면 관찰이란 능정사택(能正思擇), 최극사택(最極思擇), 주편심사(周遍尋思), 주편사찰(周遍司察)의 4종으로서, 9심주에 의해 집중력이 강화된 마음에 의지해서 4단계로 선정의 대상에 대해 관찰을 행하는 것이다. 샤캬 촉덴은 관찰수습이 반야바라밀과 중관의 방식과 연결되며, 반면 심주의 수습은 만트라승과 마하무드라에서 말하는 기쁨과 공성의 일치에 대응된다고 말한다. 그는 관찰을 학승적 전통으로서의 현교(顯敎)에, 그리고 심주수습을 분석적 심리적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마음을 여실하게 보려고 하는 유가행에 연결시킨다.

그의 설명에서 주목할 점은 티베트의 여래장 교설과 관련시켜 불성을 자발적이고 본유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이다. 티베트의 여래장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여래장과 공성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이론이다. 하나는 정통 중관론자들에 의해 주장된 자공(自空, rang stong)설이다. 다른 하나는 조낭파(Jo nang pa) 학자들에 의해 주장된 타공(他空, gzhan stong)설이다. 티베트불교에서 이 학파의 여래장의 성격규정을 둘러싸고 매우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는데, 여기서 그 논쟁을 다룰 여가는 없지만, 조낭파의 타공설은 결국 부똔과 샤캬 판디타, 쫑카파 등의 비판을 거쳐 이단으로 몰리게 되고 찬드라키르티 등의 자공설이 정통적 교설로 자리매겨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샤캬 촉덴이 이 논쟁에서 타공설(他空說)을 옹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타공설이 자공설(自空說)과는 달리 마하무드라와 상합된다고 설명한다. 마하무드라의 문제와 관련해 그는 샤캬 판디타에 의해 채택된 교의적 입장과 조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있고, 중관파의 자공설과 평행하게 타공설의 입장을 재확립시키려 한다. 생사와 열반의 불이성은 감뽀파와 샤캬 판디타에게 있어 비록 명목상의 차이는 있더라도 동일하다고 여긴다. 샤캬 판다타의 경우 분석적·논리적 방법에 의해 증익을 제거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것은 붓다의 3시 교판 중에서 제2시에 해당되며, 자공의 교리에 따른다. 반면 감뽀파의 마하무드라는 실재를 직접적으로 인식하는데 목

그는 마하연의 교설과 ‘현재의 마하무드라’를 논의할 때에 마하연의 입장의 오류를 분명하게 지적한다. 그의 오류는 세속과 승의, 이론과 실천, 불요의와 요의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데 있고, 그 결과 단순한 무작의를 해탈에 이르는 가장 필수적 방법이라고 오인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마하연류의 정적주의와 마하무드라에서 설하는 개념적 구성으로부터의 자유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쫑카파의 마하연 비판의 출발점도 심주수습과 관찰수습의 관계에 대한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유형론적으로 말해 무작의와 무관찰은 심주수습이나 선정과 유사하다고 보인다. 그렇지만 심주와는 별도로 철학적 사유와 선정과정은 관찰혜와 비파사나를 요구한다. 쫑카파에게 있어 요점은 이런 두 형태의 수습이 상보적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석적 관찰에 의해 수반되지 않는 이해나 단순한 무상 등의 주장은 효과적일 수 없고 따라서 무아성의 확실함은 심주와 관찰의 상호작용에 의해 반복적으로 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때 무분별지가 일어나는 것이다. 무상, 무념에 도달하기 위해 단지 모든 작의를 억누르기만 하면 된다는 마하연류의 교의에 따르면 분석적 관찰이 없이도 해탈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쫑카파는 마하연의 교의가 경증과 모순된다고 하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 교설을 비판한다.

개아의 구성요소가 실재한다고 하는 실체론적 집착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실재의 비구성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것의 무아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추상화된 개체의 구성적 파악이 없다는 것과 비실체성에 대한 인식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쫑카파의 입장이다. 마하연의 말대로 모든 개별적 구성 행위가 생사윤회의 원인이라 한다면 그에게 무분별의 가르침을 구하는 행위도 그의 논리에 따르면 윤회로 이끌 것이고, 따라서 그의 이론은 처음부터 난파될 운명을 가진 것이다.

설사 심리적 인식작용이 오류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문제는 우리가 인식 대상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어떻게 이것을 알 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식 대상의 비실재성은 단순한 주장에 의해 확립될 수 없고 실재성의 인식은 경증이나 논리적 증명에 의해서만 확립될 수 있다. 따라서 요구되는 것은 이미 반야를 통해 수행된 관찰에 선행하는 비개념화 작용이다.

쫑카파는 지관쌍운의 전거로서 《해심밀경》 제8장을 거론하고, 이에 의거해 심주의 수습과 분석적 인식인 반야를 통한 관찰이 삼매 속에서 교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같이 될 때, 지관이 평등하게 되고 심주도 관찰을 겸하게 될 것이다. 그는 여기서 지관의 작용방식과 관련해 두 단계를 구분한다. 전 단계에서는 지관이 분리되어 인식되고 서로 교대해 작용하고 있다고 하면서, 여기서 관찰과 심주가 심의 한 찰나 속에 함께 실현되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음 단계에서는 지관쌍운이 뒤따르며, 이 수행도는 저절로 작용하며 어떤 의지적 노력 없이도 이루어진다. 여기서 관찰의 힘이 사마타를 획득할 수 있게 만든다. 관찰은 비파사나의 작용이지만 반야바라밀로 이끄는 관찰은 사마타에 의해 한정되는 공성의 인식이다.

쫑카파에게 있어 본질적인 것은 심주와 관찰이 항시 상보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단순한 이해에는 도달하지만, 분석적으로 관찰된 의미에서 무아와 공성의 완전한 인식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탈적 인식을 위한 이러한 관찰의 불가피성에 의거해 쫑카파는 마하연의 무작의와 무념의 교설이 결코 여실한 인식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5. 맺음말

8세기 말 티베트의 수도 라사의 삼예사에서 일어난 까말라쉴라와 마하연 사이의 논쟁은 문화적 충동이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불교사상이 갖고 있는 두 측면, 즉 철학적 분석적 방식과 직관적 선정적 방식의 조우였다고 보인다. 전자가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 여러 방편의 사용을 전제하고 요구하는 반면, 후자는 해탈은 어떤 종류의 분별적 사고로부터 벗어난 데 있다고 하면서 이러한 점진적 수행도는 결국 망분별의 단계로 이끌 뿐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마하연의 교설은 티베트 전통에서 선정중심주의로서 일종의 안티반야주의로서 유형화되었다. 선정 속에서의 마음의 직접적 인식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유형화된 그의 교설은 해탈을 위해서는 마음 자체의 근원적 밝음, 그 자발적 작용성에 대한 직접적 인식만으로 충분하고, 이를 위해 다른 방편의 도움, 즉 오랜 해탈도의 수습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으로 간주되었다. 그것은 “만능적 구제약”이라는 비유 속에서 사용되었는데 족첸파와 마하무드라를 설하는 까규파의 일부는 그의 돈문설을 점문파보다 뛰어난 가르침으로 간주하고 있다.

반면 티베트의 주류 전통에서 마하연에 대한 비판은 그의 ‘무관찰 무작의’설이 결국 비파사나로서의 관찰의 작용을 부정하게 된다는데 있다. 심주와 관찰이 해탈적 인식을 획득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으로 심주에 의해 마음의 집중력과 평정이 가능해지며, 이에 의지해 선정의 대상에 대한 관찰이 여실히 수행될 때 윤회로부터의 해탈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듯 대상에 대한 여실한 인식은 지관쌍운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인데 비해, 마하연의 입장에서는 관의 어떤 작용도 인정될 수 없고 따라서 그의 ‘무관찰 무작의’는 보시 등의 바라밀을 부정하는 단순한 적정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비판론의 요지라고 보인다.

티베트전통에 있어 까말라쉴라는 점문파로, 마하연은 돈문파로 명명되었다. 그들 사이의 구체적 논쟁은 매우 소박한 형태로 밖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특히 후대의 티베트불교에서 유형적으로 파악된 마하연의 교설은 티베트불교 내에서의 ‘돈오’ 이해의 한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그것은 특히 동아시아 불교에서의 돈-점 논쟁과는 다른 맥락에서 논의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돈문파는 “Subitist”으로 점문파는 “Gradualist”으로 보통 영역되고 있지만, 티베트어 찍짜르와(cig car ba)에 대응하는 단어는 “Subitist”이라기보다는 오히려 “Simultaneist”이라고 하는 스타인의 지적은 티베트과 중국 사이의 철학적 이해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연구의 여지가 많다고 생각된다. ■

안성두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교육과 졸업. 한국 정신문화연구원 부설 한국학 대학원에서 한국불교 전공으로 석사. 동국대 인도철학과 대학원 수료. 독일 함부르크대학 인도학과에서 인도 유식불교 전공으로 석사·박사학위 취득. 현재 동국대 인도철학과 강사로 재직중이다.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