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끝난 조계종 제31대 총무원장 선거는 전례 없이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러졌다. 총무원장 선출을 둘러싸고 종단분규가 일어나고 청사 점거를 위해 싸움까지 벌였던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가 절차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치러진 것은 큰 다행이다. 과거처럼 금품을 살포하거나 흑색선전을 하는 일도 없었고, 결과에도 깨끗하게 승복해서 근래에 없었던 모범적인 선거가 됐다는 것이 중평이다. 총무원에 당선축하 화분이 어느 때보다 많이 배달되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이번 선거에 대해 입술을 비틀어가며 원천적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꽤 많다. 선거 과정이나 결과에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 방식이 과연 불교적 이상에 합당한 것이냐에 대한 문제 제기다. 에두를 것 없이 바로 말하면 이렇다.

“세속의 권력을 뜬구름 같다고 가르치는 분들이 속인들처럼 나를 뽑아달라고 하니 보기가 몹시 민망합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지요?”

특히 선거캠프를 차리고, 선거대책위원장을 내세워 공개적인 득표운동을 한다든가, 공약을 담은 전단을 돌리고, 후보가 종책토론회에 나섰던 것에 대해서는 뒷말이 많다. 이로 인해 공명선거가 이루어졌을지 모르나 세속 선거판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이다.

종단의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 이렇게 속화된 데는 종법이 율장 정신을 망각한 채 제정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불교 종단은 이해관계를 다투는 이익공동체가 아니라 화합을 바탕으로 하는 수행공동체다. 그러므로 마땅히 종교 단체의 이상에 맞는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특히 너무 민주주의와 그 절차만을 맹신하다 보니 승단이 세속화의 길로 가는 것 같다는 지적은 경청할만 하다.

많은 사람들은 선거를 민주주의 원리에 바탕을 둔 최선의 제도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민주주의가 반드시 불교 종단을 운영하는 원리로서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전제로 해서 개개인의 주권을 존중하는 이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운영원칙으로 채택한 단체는 모든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려고 한다.

이에 비해 불교의 승단은 법과 율이라는 독재적 권위에의 복종을 전제로 구성된 집단이다. 따라서 승단은 어떤 문제를 결정할 때 먼저 모든 구성원에게 겸손과 양보, 하심과 희생, 자기규제와 진리에 대한 승복을 요구한다. 승단의 운영을 규정하고 있는 갈마법(즼磨法)은 이런 정신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불교계는 승가 전통의 갈마법 대신 세속의 민주적 방식과 제도를 너무 많이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총무원장, 본사주지를 선거로 뽑는 제도다. 그러나 이는 불교적 전통이 아니다. 2천6백년 불교사를 통틀어 보아도 교단이나 승원의 지도자를 선거로 뽑은 적은 없었다.

부처님 당시에도 장로를 선거로 뽑지 않았고, 《백장청규》에도 주지 또는 방장을 선거로 뽑는다는 규정은 없다. 언제나 양보와 추대가 전통이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불교는 전래의 양보와 추대의 미덕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세속적 선거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는 승단이 세속에서 요구하는 도덕적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선거제도가 갖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경쟁이 끝나고 난 뒤에도 또다시 패가 갈리고 골이 깊어진다는 점이다. 아무리 겉으로 깨끗한 승복을 강조해도 마음 속에는 반드시 앙금이 남는 게 선거다. 출마자는 물론이고 지지자들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실망과 분노의 감정을 감추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다수결에 승복할 것을 약속했다고 상처마저 쉽게 아무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승패가 갈라지면 그에 따른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긴 쪽은 이기기 위해 애쓴 사람들을 챙기기 위해 반대쪽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진 쪽은 진 쪽대로 아쉬움이 커서 마음의 문을 열기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두 진영은 승리와 패배만큼의 분명한 이유로 서로에게 얼굴을 돌리게 된다. 이것이 인간세상의 일이다.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 선거를 치렀으니 승가사회라고 별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화합의 언덕보다는 갈등의 골짜기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는 정법인멸(正法湮滅)에 다름 아니다.

승가에 있어서 선거란 이렇게 승패라는 세속적 가치에 함몰돼 화합이라는 승가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행위다. 그렇다면 이제 출가공동체는 새로운 선택을 결단해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출가적 가치를 중시한다면 그에 맞는 제도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교 종단의 대표선출 방식은 경선보다 추대가 백 번 낫다. 그게 모양새도 좋고 불교적 가르침에도 맞다. 이런 주장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이상론이라고 거품을 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나 이는 가치전도를 드러낸 망발이다. 현실론에 매몰돼 세속적인 방법을 추구한다면 굳이 화합이니 출가승단이니 하는 가치를 거론할 이유가 없다. 현실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현실의 바다’인 세속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더 길게 말씨름할 필요도 없다. 선거가 끝난 뒤 승단의 상황을 솔직하게 돌아보자. 정말 모두가 ‘축제의 기분’으로 선거에 임했던가? 선거기간 중 이런저런 패갈림은 없었던가? 선거가 끝난 뒤에는 아무런 앙금도 남아있지 않는가? 양심적으로 조금이라도 이에 대한 괘에(쯀쨌)가 있다면 선거제도를 바꾸는 문제를 신중하게 논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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